01
검은 것은 부정한 것이다. 반박할 구석이 없다.
***
학교 내부에는 필수불가결한 서열이 존재한다. 포식자와 피식자 혹은 가해자와 피해자.
“핥아.”
책상 위에 우유가 뿌려졌다. 박강수가 집어던진 우유갑은 옆구리가 터지면서 몇 번 구르더니 떨어질 듯 말 듯 모서리에 걸렸다. 나는 눈을 굴려 상황을 파악했다. 무방비하게 앉아 있던 탓에 내 얼굴과 상체까지 튄 우유 자국, 그리고 축축하게 젖어버린 교과서 두 권이 시야에 들어온다. 씨발, 새로 살 돈 없는데.
우유 특유의 비린내가 불쾌하게 코를 쑤셨다. 심지어 썩은 거다. 주변에 있던 학우들은 이미 반경 10m 밖으로 도망친 채 코를 막으며 이쪽을 힐끔힐끔 훔쳐보고 있었다.
“이 짓하려고 기껏 산 우유 썩혀 왔냐. 정성이다.”
“이깟 거 얼마나 한다고. 우리 채승이한테 쓰는 돈은 안 아까워.”
저 반질거리는 얼굴에 옆구리 터진 우유갑을 냅다 처바르면 볼 만할 것 같은데. 그러나 하고 싶은 말은 혓바닥 아래 수납했다. 돈 많은 집안의 성격 더러운 새끼는 건드리는 게 아니다. 특히 나처럼 빽도 좆도 아비도 없는 새끼는.
“냄새 나.”
“잘 어울려. 따로 향수 뿌릴 필요가 없겠다, 채승아. 아, 어차피 향수 살 돈도 없지.”
구겨지려는 미간을 애써 참는다. 격정적으로 반응해 봤자 돌아오는 것은 감당할 수 없는 폭력과 놀림, 그리고 법적 소송뿐이었다. 나는 묵묵히 자리에서 일어나 사물함에서 휴지를 꺼낸 후 북 뜯었다. 휴지는 딱 열 바퀴 돌렸다.
“거지새끼 놀리느라 고생이 많다.”
나는 툭툭 내뱉으며 주먹보다 커진 휴지 뭉치로 책상을 닦았다. 이미 바닥으로 뚝뚝 떨어지고 있는 우유의 썩은 냄새가 순식간에 교실 곳곳으로 퍼졌다. 냄새 다 지우려면 며칠 고생 좀 하겠는데. 담임이 지랄할 걸 생각하니 벌써 골이 아프다.
“이 새끼 요즘 슬슬 기어올라.”
박강수가 실실 쪼갰다. 기어오르긴. 같은 동급생 주제에 우위에 있는 것마냥 단어 선택하는 꼬라지. 나는 한숨을 삼키며 젖은 교과서 위에 휴지를 덕지덕지 올려놨다. 제발 찢어지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냄새가 밴다거나 젖어서 쪼글해지는 건 괜찮다. 추가 비용 없이 마무리되니까. 하지만 찢어지는 건 다르다. 볼 수조차 없이 형태가 망가지는 건 새로 사는 방법밖에 도리가 없는데, 내 지갑 사정이 영 신통치 않으니 피해야만 한다.
“채승아. 네가 놀아주면 내 고생이 보답받을 것 같은데.”
이름 박강수. 나이 십팔 살. 나랑 동갑. 집안에 돈은 많으나 과외에 돈을 처부어도 본인의 성적과 수준은 저질에서 상승하지를 않으니 사립 고등학교를 가지 못하고 대신 공립으로 온 새끼. 중학생 때부터 쳤던 사건, 사고들이 하도 많아 아무리 뒷돈을 찔러도 사립에서 거절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난 그게 소문이 아니라 팩트라고 보지만.
“오만 원.”
“…….”
“우리 채승이 고민하네.”
좆같은 게 말머리마다 ‘우리’를 붙인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돈 준다는데. 자존심은 밥 먹여 주지 않는다.
“이십.”
“네 배잖아. 거지새끼답게 돈 밝히는 꼴 좀 봐라.”
“척 봐도 썩었는데 이거 먹고 입원해서 나갈 병원비랑 구멍 날 아르바이트 일급 생각하면 많은 것도 아니야.”
도대체 며칠을 묵힌 건지, 냄새는 교실 밖 정문에서도 맡을 수 있을 만큼 지독했다. 박강수는 멍청한 게 꼴에 머리 굴린다고 입을 합 다물었다. 아르바이트를 해 본 적도 없는 게 일급이 얼마인지 어떻게 알겠는가.
얘랑 돈으로 퉁 친 게 이번 한 번도 아니고. 박강수는 집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결핍을 밖에서 나 같은 애들한테 돈으로 과시하며 허세를 충족하고는 했다. 무릎이야 몇 번 꿇어주면 된다. 맞는 것도 몇 번 맞아주고. 대신 깽값 받아서 이번 달 월세만 좀 채우자.
좆같아도 참는 거다. 나는 사라진 아버지가 입버릇처럼 달고 다니던 말을 속으로 염불하듯 외웠다.
돈 없으면 참아라. 그게 이 세상에서 생존하는 법이다.
“십오.”
“왜. 엄마가 요즘 용돈 안 줘?”
시골 잡배마냥 가격 후려치기를 시도하는 박강수 앞에서 대놓고 이죽거렸다. 가진 게 돈밖에 없는 새끼가 가오 상하게 에누리가 뭐야.
그러자 박강수의 입꼬리가 굳었다. 히말라야 봉우리 등산이라도 할 것처럼 얄밉게 올라갔던 입꼬리가 단숨에 내려오는 꼴을 보니 전신에 희열이 돈다. 내가 걔의 찔러서는 안 될 곳을 제대로 건드렸는지 단숨에 태도가 돌변했다.
“강채승.”
“…….”
대꾸하지 않았다. 박강수의 눈깔이 돌았다. 일그러지는 안면 근육만 보고 맞닥뜨릴 폭력을 감지했다. 아, 잘 참았었는데. 이렇게 될 것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터지는 아가리를 참을 수 없다는 게 내 고질병이다.
박강수가 내 머리채를 움켜쥐었다. 쥐어뜯듯이 억세게 당기는 바람에 머리카락이 뽑힐 듯한 통증이 두피를 타고 번졌다. 나는 얼굴을 찡그리면서 반사적으로 걔 손목을 잡았다. 박강수는 내 가엽고 소심한 반항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곧장 썩은 우유가 쏟아진 책상 위에 내 머리를 눌러 박았다. 쾅. 이마와 책상이 부딪치며 둔탁한 소리가 났다. 나는 갑작스러운 충격 탓에 두통이 일며 일순 현기증을 느꼈다.
“씨발.”
작게 욕을 읊었다. 거울을 보지 않아도 이마에 들었을 크고 새파란 멍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이거 얼마짜리지. 통증을 억누르며 폭력 한 번에 받을 수 있는 금액을 산정해 봤다. 타격 한 번에 만 원.
쾅, 쾅, 쾅. 박강수가 연거푸 내 머리를 책상에 찧었다. 이만 원, 삼만 원, 사만 원. 아니지, 기본 오만 원부터 시작이니까 구만 원…….
미처 닦지 못한 썩은 우유의 파편들이 얼굴에 덕지덕지 묻었다. 두 눈 똑바로 뜨고 부딪치는 횟수를 세려고 했으나 계속 반복되는 타격이 제대로 정신을 차릴 수 없게 만들었다. 돈, 돈 세야 되는데…….
사방이 조용했다. 박강수의 횡포는 어제오늘 시작된 일이 아니었고 선생님들은 묵과했으며 동급생들은 그저 날 구경거리 삼았다. 몇 명은 당연한 일이라고 납득하는 애들도 있었다.
제대로 주먹 쥐고 싸우면 이깟 박강수쯤은 아무것도 아닌데. 그러나 사후가 두려워서 나는 순순히 맞고 있을 뿐이었다. 걔 콧대를 내려앉히는 건 쉽지만 메주가 된 박강수의 얼굴을 돌릴 성형 수술비를 내 줄 수도 없고 팔다리를 부러트려도 마찬가지다. 병원비와 합의금을 감당할 수 없으니 나는 알량한 아가리를 몇 번 털어 쟤 자존심에 상처 내는 게 고작이었다.
“강채승.”
타격이 멈췄다. 박강수가 쥐고 있는 내 머리카락을 놓으면서 씨근덕거리는 숨소리가 샜다.
“난 네가 이해가 안 돼.”
어쩌라고. 나도 너 같은 새끼가 날 이해한다고 했으면 소름 끼쳤을 거다.
“치료비다. 몸 팔아서 번 돈이니 아껴서 써.”
저질. 박강수가 널브러지듯 누워 있는 내 바지를 잡아당기더니 허리춤에 오만 원짜리 몇 장을 꽂아줬다. 나는 곁눈질로 액수를 세 보려고 했으나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액체 때문에 시야가 벌겋게 가려져 볼 수 없었다. 얼굴에 묻은 이 축축한 것들이 죄다 우유는 아닌 모양이었다.
나는 걔가 자리를 뜨기만을 묵묵히 기다렸다. 다행히 박강수는 오늘의 불만을 방금의 폭력으로 죄다 회수한 건지 금방 반에서 퇴장했다.
박강수가 나가고 난 다음에야 조용했던 교실이 살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웅성거리는 소음들 속에 나와 박강수의 이야기는 없었다. 가끔 우유 냄새 지독하다는 말만 들려왔을 뿐, 언제나 다를 것 없는 일상은 새삼스럽게 화자될 가치도 없는 것이었다. 고작해야 오늘의 운세라거나 교문 앞에서 웬 노점상이 팔고 있는 부적에 대한 이야기가 다였다.
상체를 일으켰다. 머리가 핑 돌았다. 찢어진 이마가 욱씬거렸다. 주르륵 흐르는 핏물이 입술을 간지럽혔다. 혓바닥을 잠깐 내밀었다가 진하게 느껴지는 비린 맛에 이맛살을 구겼다. 으, 맛없어.
나는 일어나서 엉망이 된 주변을 정리했다. 짝이 없으니 망정이지, 있었으면 미안할 뻔했다. 우유를 잔뜩 머금은 휴지 뭉치를 휴지통에 버리고 젖은 교과서는 잘 펼쳐 창가 앞에 놔두었다. 이런 소란 속에서도 따사롭게 비추고 있던 햇빛이 교과서를 잘 말려 줄 것이다. 어쩌면 종이 사이사이에 베였을 썩은 우유 냄새도 살균해 줄 수 있지 않을까.
몇 번 올라오는 헛구역질을 참으며 정리를 한 후 자리에 착석했다. 타이밍 좋게 국어가 들어왔다. 검은색 카라티를 입은 40년 중반의 남성은 들어오자마자 코를 찡그리며 역정을 냈다.
“이거 무슨 냄새냐? 으, 이거 우유 썩은 냄새 아니야?”
국어가 묻자 모두의 시선이 순식간에 내게 쏠렸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돌연 쏟아지는 눈들을 마주했다. 국어가 애들을 따라 나를 쳐다봤다. 눈이 마주친 건 약 5초. 국어는 ‘창문 열어’라는 짧은 명령을 끝으로 가타부타 말없이 수업을 시작했다.
나에 대한 박강수의 괴롭힘은 이렇듯 학교 내부의 암묵적 합의로 지속됐다. 돈밖에 없는 그 집안이 얼마나 주머니로 찔러 넣었으면 이렇게 아무도 말을 안 하냐. 내 얼굴도 이렇게 엉망인데 괜찮냐는 소리 하나 없다. 나는 슬쩍 손을 들었다.
“선생님.”
“왜?”
“보건실 좀 다녀오겠습니다.”
“그래라.”
국어의 허락하에 나는 교실을 벗어났다. 교실 문을 닫고 복도로 나오니 모두 수업 중인지 조용하다. 진동하던 썩은 우유 냄새도 문 하나 벗어났을 뿐인데 한결 괜찮아졌다. 나는 참았던 숨을 몰아쉬었다.
보건실로 한 걸음씩 옮기면서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다행히 썩은 우유는 먹지 않았으니 배탈로 인해 아르바이트 펑크 낼 일은 없겠고. 중얼거리면서 액정을 키자 이미 도착해 있던 수십 통의 문자가 보였다.
[니애비살인자]
[살인공범]
[그애비에그아들]
[죽은피해자한테 미안하지도않냐?]
[왜살아 애비랑같이죽지]
[지옥에갈거다]
대충 스크롤만 내려도 쌓여 있는 문자가 수십 개다. 매번 다른 번호, 같은 맥락의 저주. 이제는 무뎌진 악의.
아버지가 회사 대표를 죽이고 잠적한 지 벌써 2년이다. 시체의 가슴을 갈라 심장이 사라진 데다가 유기된 장소가 하필 또 경찰서 앞 쓰레기통이어서 매스컴에서 한 달 동안 오르락내리락했던 사건이었다.
나는 아버지가 그를 왜 죽였는지, 죽이고 어디로 숨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걸 이해하지 못했다. 경찰부터 시작해서 기자, 하물며 일반인들까지 우리 집 앞을 기웃거리며 뭐라도 얻어낼 정보가 있지는 않을까 들쑤시고 다녔다. 그 과정에서 인터넷에 신상 팔린 건 기본이고. 그때 날아오기 시작한 악플 같은 문자가 지금까지 끊이지도 않고 계속되고 있었다.
신경 쓰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스크롤을 쭉쭉 내렸다. 주말에 신청한 아르바이트가 있었는데, 합격 문자가…….
“어.”
걸음을 멈췄다. 수많은 저주와 악의 속에서 수상한 문자 한 통을 발견한 탓이다. 익숙한 네 자리 번호, 문장부호까지 정갈하게 맞춘 문장, 그가 아니면 부르지 않을 호칭.
010-xxxx-7899
[아들, 곧 보자.]
실종된 아버지다.
불쾌한 혼란이 머릿속을 점령했다. 보건실까지 가는 내내 액정에 눈을 처박고 문자의 출처를 파악하기 위해 애를 썼다. 어떤 미친 새끼지. 제일 먼저 든 합리적 의심이었다. 누군가의 사칭일 게 분명하다. 그렇지 않은가. 2년 동안 한 번의 연락도 없던 사람이 갑자기 이렇게 문자를 보낼 리가 없다. 그것도 이렇게 다정한 문자를.
그럼에도 마냥 장난 문자로 치부하고 버릴 수 없는 까닭은 심장에 눌어붙은 증오와도 같은 미련 때문일까. 그래도 애비는 애비라고. 집에 남을 자식새끼 생각도 안 하고 살인 후 튄 남자가 뭐가 좋다고.
보건실 문을 열었다. 책상에 앉아 서류 업무를 하고 있던 보건 선생님이 날 힐끗 쳐다봤다. 얼굴의 반을 가리는 동그란 안경 아래에 왜 왔는지 뻔히 알겠다는 표정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는 익숙하게 소독약과 거즈를 준비하면서 의자로 고갯짓했다.
“앉아.”
나는 빙글빙글 돌아가는 동그란 의자에 착석했다. 선생님은 피가 엉겨 찐득해진 내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면서 이마를 자세히 살폈다. 그는 내 편 없는 이 학교에서 유일하게 내게 어떤 혐오의 감정도 표현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실제 속마음은 어떨지 모르지만 박강수한테 처맞고 오는 나에게 늘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저 상처를 치료해 주는 사람이었으므로 나는 그런 그의 태도에서 꽤 위안을 받고는 했다.
“찢어졌어. 꿰매야 해.”
“병원은 못 가요.”
“그 돈으로는?”
선생님이 힐끔 내 뒤로 시선을 던졌다. 나는 그제야 박강수가 내 허리춤에 꽂아준 돈을 떠올렸다. 뜬금없는 문자에 정신이 팔려 돈 세는 걸 잊고 있었다. 나는 그제야 지금까지 꼬리처럼 달고 있던 오만 원 뭉치를 꺼냈다.
“하나, 둘, 셋, 넷……. 여섯 장이요. 월세는 되겠다.”
“이대로 두면 흉져.”
“대수로운 건 아니네요. 죽는 것도 아니고. 요즘 같은 세상에 이마에 흉터 하나쯤 있으면 우습게 보는 것도 덜하겠죠.”
마법사 같기도 하고. 나는 무미건조하게 덧붙이며 삼십만 원을 잘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십만 원 더 줬네. 기세로는 거의 백만 원은 던져 줄 것 같더니, 요즘 용돈 사정이 좋지 않긴 한가 보군. 보건 선생님은 소독약으로 상처를 소독한 후 그 위에 거즈를 붙여 주었다.
“오늘은…… 우유?”
“네, 썩은 거. 냄새 심하죠.”
“그러네.”
“토할 뻔했잖아요.”
나는 낄낄 웃었다. 별일이냐는 태도로 일관했다. 한두 번도 아니고. 그래, 한두 번도 아니고.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치료 다 끝난 건가요?”
“그래. 소독 자주 하고. 웬만하면 병원 가.”
“네.”
안 갈 거지만. 나는 반항적인 대답은 속으로 삼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선생님은 일어서는 나를 붙잡지 않았다. 내가 욱신거리는 이마를 붙잡고 문고리를 잡았을 때, 선생님이 문득 생각났다는 듯 뒤통수에 대고 말했다.
“요즘 세상 흉흉하니까 조심해.”
“절 생각해 주는 건 선생님밖에 없네요.”
“남 막 믿지 말고.”
믿을 사람도 근처에 사람이라는 게 있어야 믿죠. 나는 피실 웃으면서 밖으로 나왔다. 집어넣었던 핸드폰을 다시 꺼내 액정을 눌렀다. 여전히 화면 위에 띄워져 있는 문자 메시지가 자꾸만 신경에 거슬렸다.
아들, 곧 보자.
아들, 아들, 아들……. 그리고 ‘곧 보자’. 나는 악의적인 사칭 문자라고 일백 퍼센트 확신하고 있지만, 정말 혹여나 이게 사칭이 아니라고 한다면. 진짜 어디서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그가 어디서 휴대폰을 구해 나한테 문자를 보낸 거라면. 그리고 그가 갑자기 내 앞에 나타난다면.
뒷목에 소름이 돋았다. 나는 그와 마주하기를 바라지 않았다. 공범으로 치부되는 것도 싫고 어떻게 될지 모를 그의 뒷바라지를 하는 것도 싫다. 신고를 하든 하지 않든 어떻게 되든 나는 다시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릴 것이다. 질색이다. 나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
하루가 어떻게 끝났는지 알 수가 없다. 하교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릴 때까지 나는 혼몽한 상태였다. 눈앞에 아른거리는 그 짧은 문장이 심장을 조였다가 풀었다가 난리였다.
이 불안한 감정을 확실하게 하려면 전화를 거는 수밖에 없으나 나는 통화 버튼을 누를 수가 없었다. 아니면 다행이지만 진짜로 그 남자라면? 그렇다면 나는 그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곧 보자는 그자에게. 내 말은 죄다 묵살해 버릴 아버지에게.
해가 떨어지고 있었다. 비도 함께였다. 어느새 우중충해진 하늘을 바라보면서 나는 탄식했다. 아, 우산 없는데.
학우들은 하교했다. 우산이 없는 애들은 부모님이 데리러 오거나 정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는 학원 버스까지 냉큼 달려갔다. 쏟아지는 빗줄기 속에서 황망하게 서 있는 건 나밖에 없었다.
폭우였다. 빗줄기가 굵은 탓에 밖으로 두 발자국만 걸어도 속옷까지 죄다 젖어버릴 그런 장대비였다. 나는 핸드폰만 껐다 켰다를 반복했다. 도움을 요청할 사람이 없었다. 엄마는 내가 어릴 때 강도를 당해 돌아가셨고 그 외 일가친척들과는 절연한 지 오래였다. 2년 전, 아버지의 살인 사건이 일어난 후 그나마 있던 주변 사람들도 죄다 떨어져 나갔다.
나는 한숨을 삼켰다. 어쩌겠는가. 그렇다고 여기서 이러고 있을 수도 없다. 나는 가방을 두고 맨몸으로 학교를 빠져나왔다. 옷은 어떻게 빨고 말리면 되지만 교과서는 답이 없다. 그렇지 않아도 두 권이 우유에 빠졌다가 나온 바람에 아슬아슬한데, 이 참사를 더 늘리고 싶지는 않았다. 휴대폰은 가지고 갈까 말까 고민했으나 자꾸만 문자가 눈앞에 어른거리는 바람에 결국 챙기기로 했다. 그리고 물에 젖어 고장 날까 싶어 전원을 끄는 것도 잊지 않았다.
예상대로였다. 한 발자국 뻗자마자 비가 쏟아지면서 뼛속까지 들이쳤다. 차가운 빗물은 시야도 가렸다. 나는 자꾸만 눈을 타고 흘러내리는 물을 벅벅 비비면서 철벅철벅 걸었다. 바닥에 고인 물웅덩이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귀갓길을 밟았다.
주변 사람들은 우산도 없이 혼자 걷는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았으나 해명할 수는 없었다. 무턱대고 지나가는 사람 붙잡고 우산이 없어서 이렇게 걷고 있어요 해 봤자 더 미친놈으로 볼 게 뻔했다.
그딴 시답잖은 생각만 머릿속에서 둥둥 떠다녔다. 쏟아지는 빗물 속에 물 먹은 바지가 점점 무거워지고 몸에서 슬슬 연기가 나며 발걸음 한 번 떼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 가는 길목이었다. 하늘은 우중충하고 빗물 때문에 시야 확보까지 어려운 그때, 내 눈을 확 뚫고 들어오는 핫핑크가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 주춤하고 섰다.
핫핑크는 우산이었다. 동그란 우산. 쫙 펼친 그 우산은 쪼그려 앉아 있는 어떤 사람의 몸을 쏟아지는 폭우로부터 막아주고 있었다.
저 사람은 저기서 뭘 하고 있는 걸까. 비도 오는데. 뛰어도 모자랄 판에 나는 천천히 걸음을 멈추며 핫핑크 우산한테 시선을 고정시켰다. 그 남자 앞에는 고양이 두 마리가 있었다. 성체인 듯 팔뚝만 한 크기의 고양이 두 마리는 검은색 얼룩 고양이 한 마리와 노란 무늬가 귀여운 치즈 고양이였다.
아마 갑자기 쏟아지는 비를 미처 피하지 못한 고양이를 저 남자가 길 가다 발견하고 우산을 씌워 준 것이리라, 그렇게 생각했다. 훈훈한 장면이군. 요즘 같은 세상에도 저렇게 약한 자들에게 정을 베푸는 사람이 있다니. 내 꼴은 고양이보다 못한 꼴이고. 어느새 입에서는 입김이 새고 있었다. 비를 너무 오래 맞은 모양이었다. 사실 가다 보면 비가 멈출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 판단이 틀렸다. 내가 그렇지, 뭐. 앞으로 넘어져도 코가 깨지는 인생. 되는 게 없는 좆같은 삶.
어지러웠다. 그렇지 않아도 오늘 머리를 집중적으로 타격 당한 바람에 뇌가 띵한데, 설상가상으로 비까지 맞았으니. 나는 걷다 말고 현기증이 일어 한 발자국만 툭 내딛은 채 그대로 멈췄다. 핑크색 우산 바로 뒤편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 생긴 건 그때다. 핑크색 우산이 벌떡 일어난다 싶더니 어느새 내 멱살이 그 남자에게 잡혀 있었다. 나는 그가 내 멱살을 쥐고 한 바퀴 돌려 벽에 밀칠 때까지 어떤 반응조차 하지 못했다. 당황스러웠다. 우산 밑에 드리워진 남자의 숨이 막힐 정도로 잘생긴 얼굴이 숨통을 조일 듯 살기 어린 눈으로 날 노려보고 있었다.
더 충격적인 건 남자의 손에 들린 망치였다. 망치. 장도리라고도 하나. 뒤에는 못을 뽑을 수 있도록 노루발 모양을 하고 있고 앞은 단단한 원기둥 꼴 모양을 한. 지금이라도 내 대가리를 깨부술 듯이 높이 들어 올린 그 망치가 그의 얼굴에 이어 사람의 시선을 강탈했다.
“너 뭐야.”
남자가 물었다. 그가 내 멱살을 쥐고 거칠게 흔드는 통에 벽에 등이 부딪쳤다. 아팠다. 그러나 지금 아픈 게 문제가 아니었다.
“뭐냐고 물어보면…….”
눈을 도르륵 굴렸다. 아무리 봐도 사람 잘못 본 것 같은데. 나는 이렇게 잘생긴 애한테 이런 살기를 받을 정도로 잘못한 게 없다. 묻지 마 살인이 아닌 이유는 확실하다. 내게 질문을 하고 있으니까.
“저, 사람 잘못 보신 것 같은데 그 망치 좀 놓고 얘기하시죠.”
나는 침착하게 입을 뗐다. 일단 이 남자를 진정시킬 필요가 있었다. 이러다 실수로 들고 있는 망치를 놓쳐 내 발가락 위로 떨어진다면 박강수한테 맞고 세이브한 삼십만 원이 고스란히 날아가는 거다.
“뭐지?”
남자는 계속 같은 말만 반복했다. 아니, 뭐냐고 묻는다면 내가 뭐라고 하겠냐고. 나는 떨떠름하게 대꾸했다.
“사람입니다.”
“사람?”
“네.”
사, 람. 또박또박 한 글자씩 끊어서 얘기해 줬다. 그런데 이 못 믿겠다는 눈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물론 내가 이마에는 거즈가 붙어 있고 거즈로 가릴 수 없는 새파란 멍이 곳곳에 들었으며 물에 홀딱 빠진 쥐 꼴이라 사람처럼 안 보이는 건 알겠는데. 그래도 형상은 사람이지 않은가. 사전에 실려도 반박하지 못할 완벽한 인간의 구조인데.
“그럼 이 냄새는 뭐야.”
“냄새?”
“그래, 이 썩은 우유 냄새.”
남자가 말꼬리를 잡으면서 부리부리하게 뜬 눈으로 내 면상에 대고 코를 킁킁거렸다. 아니, 씨발. 지금 그깟 냄새 때문에 날 사람 취급도 안 하고 죽일 듯 망치를 들고 덤빈 거란 말인가. 나는 억울했다. 죽는 게 무섭지는 않지만 죽은 이유가 내 몸에서 나는 냄새 때문이라고 한다면 어디 가서 말하기 쪽팔리지 않은가.
남자의 머리는 나보다 머리통 하나 더 올려놓은 곳에 있었다. 키 크다. 감상도 잠깐이다. 나는 살기 위해 해명해야만 했다.
“옆 반 애가 쏟은 거예요.”
“옆 반?”
“박강수라고 있어요. 있는 거라고는 돈밖에 없는 새끼.”
나도 모르게 날 죽이겠다는 남자 앞에서 원수를 씹고 있다. 이러려던 건 아닌데, 그 새끼 얘기를 하니까 나도 모르게 한의 정서가 올라오고 만다.
“쏟은 게 아니라 뿌린 거지만. 걔 맨날 저 괴롭혀서 안달 난 애거든요. 혹시 제 냄새가 당신의 심기를 거슬렀나요? 빗속에 파묻혀서 냄새 안 날 줄 알았는데. 그랬다면 죄송합니다.”
제가 집에 무사히 귀가해서 내일 등교할 수 있게 되면 박강수 그 새끼 꼭 한 대 때려볼게요. 그러니까 오늘 제 목숨만은. 나는 중얼중얼 읊조리며 불안한 눈으로 남자의 눈과 망치를 번갈아 쳐다봤다. 번쩍 들어 올린 저 망치 든 손은 여전히 내려올 생각을 안 했고 남자는 뭔가를 고심하듯 내 얼굴을 샅샅이 훑었다.
뭐지. 왜 말이 없지. 나는 초조한 심정을 다스릴 수가 없었다. 이 틈에 도망이라도 칠까 싶어 살금 한 발자국을 옆으로 뺐을 때다. 발에 뭐가 걸렸다. 말랑한 뭔가가 툭 채였다. 나는 반사적으로 밑을 쳐다봤고 거기에는 아까부터 있던 고양이 두 마리가 내 발목에 머리를 기댄 채 뺨을 비비고 있었다.
뭐야? 존나 귀여워.
“아. 그 사람.”
죽음의 공포도 잠깐 잊고 고양이한테 홀렸을 때, 드디어 남자가 입을 열었다. 낮고 허스키한 탄식이었다. 나는 얼른 시선을 들어 그를 쳐다봤다. 어느새 망치 든 손은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의 얼굴에서 살기 어린 눈빛이 사라졌다. 어쩌면 맹해 보일 정도로 순박하게 변한 눈깔이 천천히 깜박였다.
“죄송해요. 착각했습니다.”
남자가 정중하게 사과했다. 그 태도에 태클을 걸 만한 요소가 하나도 없었다. 단숨에 바뀐 태세가 어리둥절할 정도로 갑작스러워서 나는 방금까지 망치 앞에서 빌빌 떨던 것도 잊었다.
“아니, 뭐……, 사람 착각할 수도 있죠. 비도 오고. 날은 어둡고. 시야는 깜깜하고. 네.”
뭘 이해를 하고 있냐. 나는 얼떨떨한 얼굴로 손을 휘저으며 대꾸했다. 내가 생각해도 내 반응이 영 납득할 수는 없었으나 그 남자의 얼굴은 모든 걸 이해하게 했다. 사슴처럼 커다란 눈이 올망올망하고 매끄럽게 뻗은 콧대가 남성적이었으며 칼 댄 것처럼 부드럽게 깎인 턱은 모난 곳이 없었다.
위협이 사라진 남자의 얼굴은 훨씬 앳돼 보였다.
“사과로 이거 드릴게요.”
“아니, 안 그래도 되는데…….”
중얼거렸으나 이미 내 손에는 남자의 핑크색 우산 손잡이가 쥐여 있었다.
“안 돌려주셔도 돼요.”
“그게 아니라…….”
어차피 이름도 번호도 주소도 모르는 판국에 돌려줄 방법 같은 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나는 다만 이 핫핑크가…… 존나 튄다고 생각할 뿐. 세상 밖으로 드러나고 싶지 않은 나한테 이 핫핑크는 너무 과했다. 게다가 나한테 이 우산을 주면 이 남자는 어떻게 간다는 말인가?
“가자.”
남자가 뒤돌아섰다. 누구한테 말하는 건가 했더니, 나한테 얼굴을 비비고 있던 고양이 두 마리한테 하는 말이었다. 고양이들은 남자의 말을 알아듣는 건지 금방 나한테서 떨어져 남자의 발뒤꿈치에 따라붙었다.
그렇게 한 명의 인간과 두 마리의 짐승은 빗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그저 거기 멀뚱히 서 있을 뿐이었다. 사람 위협한 죄로 겨우 우산이면 저쪽이 꽁으로 먹은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저렇게 푹 젖어서 가는 걸 보니 내가 못할 짓 한 것 같기도 하고……. 아니다, 방금 그 흉흉한 기세의 망치를 생각해라. 나는 방금 죽을 뻔했다. 그것도 냄새 때문에!
심란한 마음을 추스르는 사이 어느새 그들은 시야에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더 이상의 고민은 그만두기로 했다. 이미 쫓아가서 붙잡기에는 늦었다. 엄연히 말하자면 난 피해자니까 이 우산 하나 정도는 받아도 된다. 그렇지 않아도 몸이 으슬으슬해지고 있었다. 자칫하면 몸살이다. 나는 갈팡질팡하다가 서둘러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나중에 길에서 보면 그때 우산을 돌려주든 뭘 하든 하고, 일단 내 몸부터 챙기자……. 그래도 되겠지. 오늘은 너무 고단한 날이었으니까.
하지만 내 고난이 이걸로 끝일 거라고 생각했다면 정녕 하늘을 우습게 여긴 것이다. 오늘은 대체 무슨 고행의 날인가? 나는 겨우 도달한 집 앞에서 한숨을 삼켰다.
“강채승.”
나는 얼굴을 딱딱하게 굳혔다. 짧게 깎은 머리, 쭉 내려간 눈꼬리, 다부진 입술. 다 낡아빠져 헤진 갈색 자켓, 헐렁한 청바지, 닳은 운동화. 그리고 사람을 집요하게 쳐다보는 저 눈.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묻어 두었던 과거의 파노라마가 순식간에 몰아쳤다.
“기자님.”
2년 전에 일어났던 살인 사건의 취재 기자, 유은철이었다.
“어쩐 일로 오셨는데요.”
그를 보자마자 내 머릿속을 점령한 건 오후에 받은 문자 한 통이었다. 아들, 곧 보자. 7899. 심장 박동이 가파르게 치솟기 시작했다. 우산 손잡이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잘 지냈나?”
“저희가 평화롭게 안부 인사나 나눌 사이는 아니잖아요.”
나는 일부러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현관문 앞에 서 있는 그를 지나쳐 건물로 들어섰다. 쓰고 있던 우산은 접어 얌전히 손에 쥐었다. 돌연 진한 핫핑크가 눈에 들어왔다. 동시에 그 남자의 얼굴도 떠올랐다. 내가 거기서 죽었으면 제일 먼저 내 시체를 발견하는 건 여기서 어슬렁거리던 기자님이었을지도 모르겠군.
남자가 내 뒤로 따라붙으며 재차 물었다.
“아버지는.”
“…….”
“아직 소식 없어?”
있어요. 아까 문자 한 통이 왔어요. 사칭 같은데, 사칭 아닌 것 같기도 해요. 그 말이 혓바닥 끝까지 튀어나와 걸렸다가 겨우 다시 삼켰다. 확실한 것도 아니고 나는 아직 저 남자에게 얽힌 감정이 많았다. 지금은 저렇게 누구보다 부드러운 눈을 하고 있으나 취재할 때는 다르다. 아주 이중인격자가 따로 없다.
“있겠냐고요. 제 무혐의는 벗은 거 모르시나요? 아직도 제가 공범이라고 생각하세요?”
“너무 날을 세우는구나.”
“내가 누구 때문에……! 됐어요. 돌아가세요. 해 드릴 말 없고, 아버지 소식도 모릅니다.”
울컥 토할 뻔한 울분을 겨우 참았다. 그 사건 이후 내 편이라고는 아무도 없는 일상이 지속됐다. 냉랭한 취조실에서 아는 게 없다는 말만 내뱉다가 겨우 나왔더니 온갖 포털사이트에 대문짝만하게 “살인자의 아들, 공범?”이라는 타이틀을 단 기사가 나돌았다. 그 첫 기사의 출처는 이 남자였고 자극적인 기사라 일파만파 퍼지는 것은 우스웠다. 이후로 모두가 나에게서 등을 돌렸다. 아르바이트도 잘렸다. 나는 단숨에 고아가 됐다. 그나마 집주인의 배려가 아니었다면 난 거리로 내몰렸을 것이다.
입술을 깨물며 남자한테서 뒤돌아섰다. 바로 앞에 있는 계단을 밟아 내려가면 반지하에 위치한 우리 집이 있다. 비가 오는 바람에 꿉꿉한 냄새가 공간을 점령했다. 집에 들어가면 곰팡이 같은 퀴퀴한 냄새가 맴돌 것이다. 반지하의 단점이다. 반지하에 장점이 어디 있겠냐만.
오늘은 냄새로 괴로운 날이군. 나는 아직도 몸에 남은 듯한 썩은 우유 냄새를 맡았다.
“근처에 살인 사건이 생겼어.”
그러나 그는 가려는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때와 비슷해. 가슴을 갈랐고 심장이 없어.”
심장이 밑으로 쿵 떨어졌다. 계단을 밟으려던 발이 멈췄다. 이 남자가 2년이 지난 지금 왜 갑자기 우리 집 앞에 서 있는지 이유를 알겠다. 숨이 막혀 왔다. 기자의 말과 핸드폰에 저장된 문자가 자꾸 겹치듯 머릿속에서 빙빙 돌았다. 들고 있던 우산의 빗물을 탁탁 털었다. 나는 얼굴을 굳힌 채 남자를 향해 뒤돌았다.
“들어오세요. 밖에서 할 이야기는 아닌 것 같으니까.”
닫혀 있던 문을 따고 들어갔다. 예상한 대로 집에서는 비 냄새가 섞인 꿉꿉하고 이상한 냄새가 났다. 그 냄새 사이에 썩은 우유 냄새까지 섞이니 정말 있을 곳이 되지 못했다. 고약한 냄새는 밖에 있을 때보다 실내에서 유독 심해졌다. 박강수 이 개새끼. 나는 냄새의 주범인 그 새끼를 욕하면서 텔레비전도 없는 좁은 거실로 기자를 안내했다.
“여기 앉아 계세요. 냄새가 좀…… 심하긴 한데.”
“괜찮다. 그래도 어떻게 잘 지내고 있나 봐.”
“이게 잘 지내고 있는 걸로 보이나요?”
남자는 날 세운 내 말에 별다른 대꾸가 없었다.
“죽을 것 같은 고비 넘기고 겨우겨우 살아가는 청소년한테 한다는 말이라고는. 기자들은 원래 다 그래요? 자기가 쓴 글로 대한민국의 미래라는 청소년 인생을 조져 놓고 뻔뻔하게 잘 지낸다고 단정해요?”
“내 말은 그게 아니라…….”
“됐습니다. 묻고 싶은 말이나 얼른 묻고 가세요. 따로 음료 내올 필요는 없죠? 사실 드릴 것도 없고 저 마실 물도 아까워서.”
관자놀이가 쑤셨다. 편두통의 전조다. 스트레스 지수가 급격하게 치솟기 시작했다. 게다가 썩은 우유 냄새가 자꾸 신경을 갉아 먹었다. 어쩐지 점점 더 심해지는 것 같다. 빗물에 씻겨나간 줄 알았는데.
나는 수건을 가져와 대충 머리와 몸을 닦은 후 바닥에 깔았다. 기자님과 마주 보는 자세로 앞에 앉았다. 당장 샤워실로 직행해 몸에서 나는 냄새와 찝찝한 빗물을 씻어내고 싶었으나 이 남자를 집에서 내보내고 싶은 욕구가 더 컸다.
“씻고 와도 된다.”
“제가 싫어요. 그러니까 하려던 말씀이 뭐였죠. 살인 사건이요?”
내가 먼저 화제를 꺼냈다. 근처에서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고 했다. 그것도 2년 전, 아버지가 자행했던 방식 그대로.
“그래. 피해자는 52세 회사원. 자식 둘 있고 아내 있고 집 대출금 갚으면서 평범하게 살아가던, 성격도 무난해서 원한 살 곳도 없고 지극히 무난한 인생의 남자야. 사건 발생은 어제 오후 11시경. 퇴근길이었지. 살아있는 모습이 마지막으로 목격된 건 근처 공원의 CCTV야. 검은 후드를 뒤집어쓴 어떤 남자가 그를 불렀고 피해자는 그를 따라 어딘가로 이동했어. 그리고 두 남자는 공원의 화장실로 들어갔지. 그리고 30분 뒤, 남자는 혼자 나왔어. 지나가다가 화장실이 급해 들른 목격자가 처참한 모습으로 유기된 피해자의 시체를 발견 후 신고한 건 그로부터 한 시간. 생각보다 그 화장실을 이용하는 인구가 많지 않더군.”
“그래서요?”
침착하자. 반응 주지 말자. 나는 두 눈 똑바로 뜨고 남자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내게 미안한 척 상냥하게 굴고 있으나 저 얼굴 뒤에 숨겨진 흑심을 내가 모를 리 없다. 그는 내게서 낌새를 찾고 있었다. 전신을 샅샅이 훑는 불쾌한 눈깔. 조금이라도 아는 티를 냈다가는 당장 그 부분을 물고 늘어질 것이다.
그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범인은 피해자와 한바탕 몸싸움을 했어. 피해자의 온몸에 상흔이 가득했지. 그리고 갈라진 가슴 안에 심장이 없었고.”
“그거 참, 역겨운 이야기네요.”
구역질이 났다. 2년 전 지겹도록 들은 이야기다. 뒤에서 기습당한 피해자의 가슴은 구멍이 뻥 뚫려 있었다면서 범인이 심장을 파먹은 거라는 끔찍한 유언비어가 돌았다. 나는 아무리 아버지가 미쳤어도 심장을 먹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대중들의 시선은 다르다. 게다가 사실 여부를 떠나서 사람들은 그저 자극적인 걸 좋아했다.
심해지는 편두통과 썩은 우유 냄새. 욱신거리는 관자놀이를 엄지로 꾹꾹 눌렀다.
“이건 경찰에서 수사할 내용 아닌가요? 거듭 말하지만 전 무혐의입니다. 공범, 그런 거 아니고요.”
“…….”
남자는 말이 없었다. 묘한 시선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을 뿐.
“왜 그렇게 보세요, 찝찝하게.”
“진짜 몰라?”
그가 재차 물었다.
“모른다고요. 2년 전 그렇게 사라진 이후로 아버지와 연락한 적 단 한 번도 없어요.”
거짓말은 아니다. 오늘 문자도 일방적으로 받았을 뿐이지, 연락을 한 건 아니니까. 나는 불편한 속을 애써 참으며 억울한 표정을 꾸며냈다.
“네 말이 사실이기를 바란다. 방금 시체 한 구가 더 발견됐다고 하니까.”
시체……. 다시 핑 현기증이 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몸에서는 열이 나고 두통은 점점 심해지고 있었으며 냄새는 더 지독해졌다. 기자가 뒤에 뭐라고 덧붙이는 말을 흘려들으며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샤워라도 먼저 해야 할 것 같았다. 코가 썩어 문드러질 것 같은 냄새부터 몸에서 씻겨내고 싶었다.
“잠시만요. 저 씻고…… 씻고 나머지 얘기 계속해요.”
“……그래.”
나는 그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다급히 화장실로 뛰어갔다. 문을 쾅 닫고 비를 맞아 축축해진 옷을 벗어 던졌다. 순식간에 알몸이 되어 샤워기를 쥐고 물부터 틀었다.
공해 섞인 빗줄기 대신 깨끗하게 정수된 수돗물이 전신에 쏟아졌다. 박강수가 부은 우유 냄새를 벗겨내기 위해 다이소에서 산 천 원짜리 싸구려 비누를 온몸에 칠한 다음 샤워 폼으로 박박 문질렀다. 썩은 우유 냄새가 코끝에서 지워질 때까지 아주 박박.
밖에서 무슨 소리가 들린 것 같은 건 그때였다. 시원하게 쏟아지는 물줄기에 묻혀 자칫 듣지 못할 뻔한 소리였다. 사람 목소리 같기도 하고 뭔가 부딪히는 소리 같기도 하고…….
뭐지. 날 부르는 소리인가. 나는 수도꼭지를 잠그고 잠시 바깥 상황에 귀를 기울였다.
우당탕.
“으…….”
이건 신음인가? 나는 더욱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문을 살짝 열어봤다. 문틈으로 보이는 바깥은 조용했다. 좁은 집구석인 탓에 문만 열면 거실의 전체 구조가 보이는 편인데 거기 얌전히 앉아 있어야 할 기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어디 갔지. 뭐라도 남아 있을까 봐 집 안 구석구석을 뒤지고 있나. 합리적인 의심이었다.
그나저나 이 냄새는 왜 몸을 씻어도 사라지지를 않지. 나는 미간을 찌푸리면서 내 팔에 코를 대고 살냄새를 맡았다. 킁킁. 싸구려 비누 냄새가 확 풍겼다. 아닌데, 분명히 제대로 씻었는데.
나는 문득 고개를 들고 화장실 내부의 냄새를 맡았다. 썩은 우유 냄새가 섞여 있기는 하지만 거실에 있을 때보다는 연하다. 의문이다. 이게 나한테서 나는 냄새가 아니라면……. 다시 화장실 문을 열었다. 그 틈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문을 열자마자 확 끼치는 썩은 우유 냄새가 후각을 자극했다. 나는 확신했다. 그것은 분명 집안에서 나고 있었다.
이게 왜 집에서 나는 거지.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집에 썩은 우유 같은 건 없는데. 나는 고뇌했으나 그 고민은 오래 가지 않았다. 확인해 보면 될 일이다. 샤워를 끝낸 나는 대충 몸을 닦고 새 속옷과 옷을 꺼내 입었다. 욱신거리는 편두통은 여전했으나 그래도 샤워 덕택인지 한결 개운해졌다. 이 썩은 우유 냄새의 근원지가 내가 아닌 거라는 걸 알게 돼서 한결 속이 편해진 것도 있다.
물론 그것보다 더 문제인 건 숨겨 놓은 문자와 어딘가에 있을 기자이지만.
개운했던 것도 잠시다. 내 눈앞에 놓인 묵직한 문젯거리들이 내 어깨를 짓눌렀다. 다시 속이 울렁거렸다. 일단 이거부터 빨리 해결해야겠다. 21세기다. 웬만한 살인 사건은 DNA 채취만으로 죄다 잡히는 시대다. 만약 그 사건의 범인이 정말 아버지라면 언제까지 모른 척 숨어 있을 수 없다. 기자가 먼저 찾아왔을 뿐이지, 언제 형사들도 찾아올지 몰랐다. 문자는……. 기자를 먼저 보내고 경찰서에 자진 신고해야겠다.
생각이 정리됐다. 나는 거실로 나가며 그를 불렀다.
“기자님.”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대답은 없었다. 적막한 거실만이 나를 반겼다. 이 코딱지만 한 집에서 갈 곳이 어디 있다고 모습이 보이지 않지. 어쩐지 등골이 싸늘하다. 썩은 우유 냄새가 돌연 지독해졌다. 나는 그 속에 섞인 비린내를 맡았다.
냄새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거실을 지나쳤다. 겨우 네 걸음이면 횡단할 정도로 좁은 공간이다. 나는 눈 깜박할 새에 안쪽에 유일하게 있는 방 앞에 섰다. 아버지가 집을 나가기 전 살던 방이었다. 조용히 문에 귀를 댔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아니다. 아주 작은 인기척이 느껴졌다. 부스럭거리는 소리. 고깃덩어리를 푹푹 찌르는 소리.
썩은 우유 냄새가 심해졌다.
문득 발바닥 아래가 축축했다. 이상하다. 발에 묻은 물기는 제대로 닦았는데. 나는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제일 먼저 시야에 들어온 것은 붉은색이었다. 선명할 정도로 새빨간 붉은색의 액체가 문 밑으로 느리게 새고 있었다. 그렇게 흐르는 붉은 물이 내 발바닥을 적시며 천천히 고이고 있었다.
머릿속이 정지됐다. 이것의 정체를 떠올리는 단 하나의 단어가 두뇌를 관통했다.
피.
이건 피다.
점도 높은 핏물이 발바닥에 쩍쩍 달라붙었다. 나는 서둘러 문고리를 잡아 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기자한테 어떤 사고가 일어난 줄 알았다. 넘어졌다거나 뭐 그런 거. 뒤통수가 깨져 피가 줄줄 새고 있는 그런 어떤 위급 상황. 주저 없이 119를 호출해야 하는 순간.
“기자……, 아니, 아버지……?”
나를 제일 먼저 반긴 것은 그 어떤 것도 아닌 썩은 우유 냄새였다. 헛구역질을 일으키는 그 불쾌하고 지독한 냄새가 후각으로 확 밀고 들어왔다. 학교에서부터 달고 왔던 그 어떤 냄새보다 강렬했으며 불길한 냄새였다.
남자는 바닥에 널브러지듯 누워 있었다. 팔과 다리를 대(大) 자로 뻗은 채 얼굴은 문을 열고 들어간 내 발밑에 놓여 있다. 나는 무방비하게 시선을 내렸다가 그의 부릅뜬 눈과 마주쳤다. 흠칫 놀라 뒤로 몇 발자국 물러섰다.
나는 지금 눈앞에 보이는 상황을 믿을 수가 없었다. 죽은 남자와 그 위에 올라타 가슴을 가르고 심장을 꺼내고 있는 아버지. 아버지의 안색은 창백했다. 눈 밑의 새까맣게 들어간 다크서클과 핼쑥해진 볼은 2년 만에 그를 아예 다른 사람으로 보이도록 했다. 그러나 나는 그를 동정할 수가 없었다. 파리하게 질린 그의 입술 틈새에 물린 저 살덩이가 뭔지 알 것 같았던 탓이다.
“지금 뭐 하시는 건데요……?”
달달 떨리는 음성으로 겨우 입을 뗐다. 목이 막힐 듯 거대한 공포가 나를 짓눌렀다.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살덩이가 그의 입속으로 천천히 빨려 들어갔다.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한 구의 시체와 한 명의 사람을 번갈아 쳐다볼 뿐.
“아들.”
그가 드디어 입을 뗐다. 날카롭고 쇠를 긁는 듯 귀를 괴롭히는 목소리였다. 내가 알고 있는 아버지의 음성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성격은 좋지 않았지만 목소리는 꽤 좋은 편이었다. 젊은 시절에는 노래로 탄 상 몇 장이 그의 유일한 자랑으로 선반 위에 액자로 걸려 있었다.
“아들. 채승아.”
아버지가 다시 입을 뗐다. 그의 입에서 핏물이 뚝뚝 떨어졌다. 나는 손을 벌벌 떨며 뒷걸음질 쳤다. 119, 아니지, 112를 불러야겠다. 나는 황급히 거실로 달려갔다. 내가 핸드폰을 어디에다 뒀더라. 핸드폰을, 핸드폰을…….
아, 저기 있다.
“채승아.”
씻기 전에 옷을 벗으면서 화장실 앞에 놓아둔 걸 마침 발견했을 때다. 아버지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뒷덜미를 움켜쥐었다.
나는 뒤돌아섰다. 그는 온몸에 피 칠갑을 한 채 흐흐 웃고 있었다. 실성한 듯 반쯤 돌아간 눈깔. 난 본능적으로 감지했다.
이 남자는, 내 아버지가 아니다.
“저, 저리 가.”
“채승아.”
“저리 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현관문으로 달려갔다. 사람을 죽인 놈이다. 나도 어떻게 죽을지 모른다. 죽이고 심장을 파먹을지도 모른다. 어느새 두통은 사라지고 없었다. 썩은 우유 냄새는 여전했다. 아버지가 가까워질수록 그 냄새는 더 심해지고 독해졌다. 근원은 명확했다.
현관문 손잡이를 잡았을 때다. 억세고 강한 손이 내 머리채를 움켜쥐었다.
“악!”
나는 비명을 지르며 뒷머리로 손을 올렸다. 박강수한테 잡힌 것도 모자라 오늘은 내 머리카락 수난 시대인가. 아버지가 잡은 머리채를 잡아당겼다. 아니, 아버지라고 불러도 되는 건지 모를 그 괴물이 말이다. 나는 직감했다. 이대로 끌려가면 나는 속수무책으로 죽고 말 것이다. 살아야 했다. 적어도 아버지의 얼굴을 한 저런 놈한테 심장이 파먹혀 죽고 싶지는 않았다.
“채승아.”
“놔! 놓으라고!”
“심장을…….”
웅얼웅얼. 낮고 불쾌하게 속삭이는 목소리가 고막을 긁었다. 나는 손잡이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문을 열고 얼굴만이라도 내밀자. 얼굴을 내밀고 소리를 지르자. 그러면 건물 내부에 있는 사람 중 한 명 정도는 도와줄지도 모른다. 신고해 줄지도 모른다. 그러면, 그러면.
달칵.
겨우 문이 열렸다. 바깥의 찬바람이 단숨에 집안으로 쳐들어왔다. 두피를 뽑을 듯 당기는 괴물의 손등을 박박 긁으며 열리는 문밖을 간절한 눈으로 쳐다봤을 때다.
“어, 문이 자동이…… 아니구나.”
사람이 서 있었다. 맹한 얼굴로 순진한 눈을 깜박이면서. 아는 얼굴이다.
“이번에는 형 냄새 아닌 거 확실하죠?”
핫핑크 우산. 걔다. 모든 이목구비가 오밀조밀하게 다 들어가 있는 게 말도 안 될 정도로 작은 얼굴을 가지고 있던 애. 나는 울컥 울음을 토해내며 걔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
“경찰, 경찰에 신고해요! 사람이 죽었어요!”
나는 간절하게 외쳤다.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는 악력이 더 강해졌다. 심지어 그가 내 어깨마저 짚었다. 원래 이렇게 힘이 센 사람이 아니었는데. 나는 이를 악물고 잡은 손목이 동아줄이라도 되는 것처럼 꽉 붙잡았다.
“뭐 해! 빨리!”
남자애는 느긋했다. 지금 무슨 상황인 건지 파악하지 못한 것처럼 굴었다. 보다 못한 내가 빽 소리까지 쳤다. 그러나 걔는 집 안으로 한 발자국 들어오더니 오히려 겨우 열어놨던 현관문을 닫았다. 걔 손에는 아까 그 망치가 들려 있었다.
그의 멍한 얼굴에 순간 살기가 돌자마자 눈빛이 돌변했다. 아까 처음에 날 봤던 그 소름 끼치는 얼굴이 내 뒤에 있는 남자를 향하고 있었다.
“썩은 우유 냄새, 심장을 갈취하는 손, 살덩이를 삼키는 입.”
걔가 알아듣지 못할 말을 중얼거리면서 한쪽 팔로 내 허리를 끌어안듯이 당겼다. 나는 그 애 품에 안기는 꼴이 됐다. 그러나 내 머리카락과 어깨는 여전히 그 괴물의 손아귀에 있었고 당기는 힘이 너무 센 탓에 어깨나 머리 둘 중 하나는 뽑힐 지경이었다.
날 끌어안은 남자애가 고저 없는 억양으로 말을 이었다. 원한이 번들거리는 눈과 대조되는 어투다. 기묘한 괴리감에 소름이 돋았다.
“사람의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죄를 행하는 당신을 단죄하겠습니다.”
기도문 같은 암송. 걔가 망치 든 손을 쳐들었다가, 그대로 내려찍었다.
뼈가 살을 찢는 소리가 들리면서 뺨에 피가 튀었다.
“악!”
아버지의 탈을 쓴 그 정체불명의 괴물이 비명을 질렀다. 놀란 나는 날 안고 있는 남자의 허리를 끌어안으면서 몸을 바짝 붙였다. 단단한 팔은 날 밀어내는 대신 흔들리지 않도록 지탱해 주면서 망치 든 손을 연거푸 휘둘렀다.
덜덜 떠는 손으로 망치 든 남자의 옷깃을 꽉 쥐고 눈을 감고 있었던 탓에 어떤 일이 어떻게 벌어지고 있는지 정확히 알 수가 없었다. 다만 반복되는 남자의 비명과 일정한 리듬으로 이어지는 둔탁한 타격음으로 대충 짐작만 할 뿐이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 수 없다. 한 시간이 지난 것 같기도 하고 불과 10초도 안 된 짧은 시간이었던 것도 같다. 아버지의 비명이 멈췄다. 둔탁한 타격음도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슬쩍 눈을 떴을 때 보이는 건 그 애의 노란 티셔츠에 묻은 핏자국이었다.
“잠시만요.”
걔가 무덤덤한 어조로 달라붙은 내 어깨를 살짝 밀며 떼어냈다. 나는 그제야 반쯤 나갔던 정신을 차리고 머쓱한 얼굴로 물러섰다. 목숨의 위협을 받은 절체절명의 순간이긴 했으나 안 지 겨우 5분밖에 되지 않은 남자에게 어린애처럼 매달렸다는 게 뒤늦게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사실 이 남자도 아까 망치로 날 위협하지 않았던가. 아무리 착각이었다고 하더라도 신뢰 순위로 따지자면 하위권에 등재될 건 분명하다.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한테 망치를 휘두르는 꼴만 봐도 타인에게 상해를 끼치는 게 아주 익숙한 사람일 텐데.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는 또 다른 공포에 모골이 송연해졌다. 이거 여우 잡겠다고 호랑이 들인 꼴이 아닌가 몰라.
그러나 걔는 나한테 별 관심이 없는 듯 온갖 망상으로 덜덜 떨고 있는 나를 옆으로 밀어두고 쓰러진 아버지 옆에 쪼그리듯 앉았다. 아버지의 형상은 처참했다. 양쪽 팔이 남자의 망치질로 인해 처참하게 너덜거리고 있었다. 손목은 부러져서 하얀 뼈가 툭 튀어나와 있고 살은 찢어져서 피가 새다 못해 폭포수처럼 흐르고 있었다. 심지어 머리는 마지막 일격이었던 건지 오른쪽 두개골에서도 피가 고여 웅덩이를 만들었다.
나는 적나라한 시체의 모습에 몸을 돌리며 헛구역질을 했다. 새삼 모든 시체를 마주하게 되는 직업의 사람들이 존경스러워졌다.
“으…….”
쇠를 긁는 듯한 신음 소리에 나는 퍼뜩 놀라 그쪽을 쳐다봤다. 죽은 줄 알았던 아버지가 두 눈 부릅뜨고 바르작거리고 있었다. 아프지도 않은지 기능을 상실했을 게 분명한 팔을 들어 올리려고 애쓰고 있었다.
“아직 살았네.”
남자애가 중얼거렸다. 나는 문득 그가 살아있다는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처참할 정도로 상해를 입히기는 했지만 사람을 죽인 것과는 또 다른 문제다. 게다가 우리 집에 온 기자도 죽지 않았는가. 이거 자칫하면 2년 전과는 차원이 다른 고통에 시달리게 될지도 몰랐다.
“119……. 119에 시, 신고해야 하나? 112?”
나는 중얼거리면서 핸드폰을 찾았다. 둘 다 신고하는 게 좋겠지. 아니다, 경찰에 신고하면 알아서 119도 같이 오나? 사람을 이 지경이 될 정도로 팬 걸 경험해 봤어야 알지. 화장실 앞에 있던 핸드폰을 다시 찾아오기 위해 쓰러진 시체와 쪼그려 앉은 남자를 지나치듯 걸음을 옮길 때였다.
빡.
걔가 가차 없이 들고 있던 망치를 휘둘렀다. 본의 아니게 두개골 깨지는 장면을 생생하게 목격했다. 나는 움직이다 말고 그 자리에 멍하니 섰다. 말릴 틈도 없었다. 아니, 지금 쟤가 행하고 있는 행동의 목적을 이해하지 못해 제동이 걸렸다고 보는 게 맞을 듯했다.
빡. 빡. 빡.
맹렬하게 휘두른 망치가 아버지의 얼굴을 곤죽 내놨다. 나는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허겁지겁 걔의 팔을 매달리듯 붙잡았다. 그러자 걔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는데 나는 저 망치가 나를 향해 날아올까 봐 겁을 집어먹었다.
“뭐, 뭐 하는 거야?”
“확인 사살이요.”
“그걸 왜, 왜 하는데?”
나도 모르게 말을 더듬었다. 수치다. 나 원래 말 잘하는데. 하지만 방금 막 사람을 아무렇지도 않게 죽인 살인자 앞을 막아선 것만으로도 있는 용기 없는 용기 다 끌어낸 걸로 족하다.
“그런 게 있어요.”
걔가 대꾸하면서 나를 조심스럽게 밀어냈다.
“아니, 이미 죽은 것 같은데 뭘 더 한다는 거야?”
“아직 안 죽었어요.”
경악할 소리다. 사람 머리를 망치로 몇 번이나 갈기고서는 안 죽었다니. 나는 다시 제대로 보라는 뜻으로 시체를 고갯짓하려다가 흠칫 놀랐다. 걔 말대로다. 진짜 안 죽었다. 여기저기 함몰되어 눈조차 뜨지 못할 정도인데 그의 입술이 달싹였다.
“채…….”
빡.
“…….”
그러나 그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걔가 주저하지 않고 망치로 입을 갈겼기 때문이다. 나는 악 하고 짧은 비명을 질렀다. 이 상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인간의 질긴 생명력에 감탄을 보내야 하나? 아니면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해야 하나?
“이것들은 두개골의 80% 이상을 파괴해야 제압할 수 있어요.”
망치 든 남자가 말을 덧붙였다. 나는 여전히 상황 파악이 안 되는 순간 속에 여전히 바르작거리며 살아있는 듯 꿈틀거리는 그것을 주시하고 있었다.
이미 평범한 인간이었다면 움직일 수가 없는 상처다. 과다 출혈로 죽어도 이미 죽었거나 아무리 좋게 봐줘도 기절은 했어야 맞다. 사실 이미 즉사인데, 분명히 즉사인데……. 죽었는데 움직이는 걸로 봐도 무방해 보였다.
“무서우면 눈 감아요.”
걔가 옆에서 권유했으나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비현실적인 상황 앞에서 패닉이었다. 남자의 손은 놓아주었으나 그 옆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하나 남은 아버지의 눈동자가 데굴데굴 구르며 나를 응시했다. 이미 턱과 입이 뭉개진 바람에 말은 할 수 없었으나 계속 나한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처럼 움찔거리는 살갗이 보였다.
홀린 듯 쳐다봤다. 그러고 보니……. 나한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눈앞이 핑 돈다. 어느 순간부터 썩은 우유 냄새가 달콤하게 느껴지는 듯했다. 천천히, 그 썩은 눈으로 빠질 듯한 순간…….
“부정한 거예요. 감화되지 마세요.”
뭔가가 시야를 가렸다. 그게 망치 든 남자의 손이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홀린 듯 마주하고 있던 아버지의 동공도 사라졌다. 머리에 안개가 낀 듯 혼란했던 정신이 퍼뜩 돌아왔다. 달콤하게 느껴지던 썩은 우유 냄새가 다시 지독하게 고통스러워졌다.
내 호흡 소리만 겨우 들리는 적막 속에서 몇 번의 타격음이 더 들려왔다. 뼈 부서지는 소리는 덤이다. 나는 두근거리는 심장 박동을 애써 진정시켰다. 눈을 가린 남자의 손바닥 온기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의 규칙적인 호흡이 손바닥을 통해 전해지면서 내가 진정하는 데에도 도움이 됐다.
“손 뗄게요. 비위 약하면 보지 마세요.”
타격음이 멈췄을 때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곧 얼굴의 반을 막고 있던 따뜻한 온기가 사라졌다. 어두웠던 시야가 점차 밝아졌다.
“읍…….”
남자가 주의했으나 나는 보고 말았다. 원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박살이 난 두개골을. 눈과 코와 입이 모두 사라졌다. 검붉은 피가 흥건했다. 그는 마치 피바다에 수장된 것처럼 누워 있었다. 이 처참한 몰골의 시체가 내 아버지였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죽은 남자는 조용했다. 얼굴이 아예 날아간 그것은 언제 덤벼들었냐는 듯 꼼짝도 하지 않고 누워 있었다. 나는 혹시 아까처럼 죽은 몰골로 움찔거리거나 그러지는 않을까 싶어 가만히 지켜보았으나 그것은 미동도 없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이제 이 육체로는 활동할 수 없을 테니까.”
“응…….”
남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나를 힐끔 볼 뿐 더 이상의 말은 덧붙이지 않았다. 나는 그대로 멍하니 주저앉아서 혼란한 머릿속을 정리하려고 애썼다. 그러니까 이제 뭘 더 어떻게 해야 하지. 집에서 사람이 죽은 걸 본 적은 없어서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심지어 시체가 두 개다. 저쪽 방에 기자님 한 명, 내 눈앞에 얼굴이 사라진 2년 전 살인 사건의 범인 한 명. 이야기 짜내기 딱 좋다.
시체는 그렇다 치고 살인의 주범은 어떻게 해야 하지. 나는 여전히 이쪽에는 신경도 쓰지 않는 남자를 곁눈질했다. 그는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은 손을 시체의 얼굴 쪽으로 뻗었다.
뭘 하려는 걸까. 어차피 말려도 듣지 않을 것 같고, 그저 손을 내미는 것만으로 말릴 합리적인 이유를 찾지 못한 나는 그냥 그대로 두고 보았다. 그는 이상한 짓을 했다. 다섯 개의 손가락을 쫙 펼친 그는 손바닥을 머리에서 한 뼘쯤 떨어진 허공에 두었다. 그리고 무슨 기도문 같은 것을 웅얼거리는 게 아닌가.
“모든 것들의 부정에서 태어나 불경과 불온을 일삼고 심장을 탐하는 존재들이여. 죽은 것을 일으켜 세우고 자행한 살(殺)의 죄가 묵시할 수 없을 만큼 무거우니 당신을 환옥으로 거두겠습니다.”
사이비 종교 출신인가. 문득 그런 의심이 들 정도로 생전 처음 들은 기도문이었다. 기도문이 맞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러나 내 눈을 더 믿기 힘든 상황은 기도문이 끝나자마자 이루어졌다. 아버지의 얼굴에서 검은 아지랑이 같은 것이 피어오르더니 남자가 펼친 손바닥으로 흡수되듯이 빨려 들어갔다.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 거지. 원래 사람이 죽으면 저런 연기 같은 게 피어나는 건가 그런 생각까지 해 봤다. 말도 안 되는 개소리라는 걸 안다. 그런 게 당연한 거였으면 이미 유튜브 같은 곳에서 <시체에서 발생하는 검은 연기?!>라는 제목을 단 영상이 넘쳤을 것이다.
생전 처음 보는 장면이다. 그러나 남자는 익숙한 듯 검은 아지랑이가 점점 연해지다가 아무것도 나오지 않을 때까지 손바닥으로 빨아올렸다.
몇 분 후, 남자가 손을 거두자 코를 찌를 듯한 썩은 우유 냄새는 언제 지독했냐는 듯 깨끗하게 말소되어 있었다.
그는 주섬주섬 망치를 챙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나한테 별말도 없이 그대로 몸을 돌려 현관문 손잡이를 잡는 게 아닌가. 도망치려는 건가. 집을 이 꼴로 만들어 두고. 물론 그가 아니었다면 여기 이렇게 쓰러져 있는 건 나일 거라고 생각하지만.
“저기……!”
나는 다급하게 걔를 불렀다. 걔가 손잡이를 돌리다 말고 나를 돌아봤다. 무슨 일로 불렀냐는 눈이다. 방금 사람을 죽인 것 같지 않게 순박하고 사슴 같은 눈이 깜박거리면서 날 쳐다보고 있다.
“이대로…… 가는 건가? 요?”
허겁지겁 문장 뒤에 존댓말 어미를 붙였다. 급할 때는 나도 모르게 반말이 튀어나왔지만,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리고 저 남자와 단둘이 남았다고 생각하니까 척수반사로 존댓말이 기본이 됐다. 다른 사람들이라도 그럴 것이다. 왜냐하면 쟤는 지금 망치를 들고 있으니까. 피와 살점이 묻은 그 망치의 뭉툭한 머리는 다소 살벌해 보였다.
“아.”
그가 잊고 있었다는 듯 탄식했다. 가다 말고 돌아서서 여전히 주저앉아 있는 나를 내려다봤다.
“따라와요. 그렇지 않아도 선생님이 데리고 오라고 했으니까. 여기는 나중에 처리반이 와서 수습해 줄 거예요. 이미 오고 있을걸. 그들은 늦는 법이 없으니까.”
남자가 뜻 모를 소리를 중얼거리며 내게 다가왔다. 나는 다가오는 그를 쳐다보고만 있었다. 갑자기 이 남자가 마음이 바뀌어 저 망치로 내 두개골을 깨지는 않겠지. 죽일 거였으면 진작 죽였을 거다.
그가 내 앞에 쪼그려 앉았다. 망치는 여전히 손에 쥔 채로.
“일어나요.”
“어디로 가는데? 요? 그나저나 당신은 누구세요? 이 황당하고 당혹스러운 일련의 사건에 대해 제게 설명해 주고 싶은 생각은 없는 건가요?”
정신 좀 차리니까 혀가 풀렸다. 나는 긴장한 탓에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를 꾹 누르며 물었다. 그 남자가 검지로 뺨을 긁었다. 얼굴에 튄 피가 흐르면서 간지러운 모양이었다.
“어차피 이 사태를 정리하려면 집 비워 줘야 해요. 나가서 얘기하든가 해요.”
누구한테 집을 비워 줘야 된다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가서 얘기하자는 말에는 동의했다. 썩은 우유 냄새는 사라졌으나 바닥에 흥건한 피 냄새의 역한 비린내는 여전했기 때문이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 동의의 뜻을 읽은 그가 일어나며 손을 뻗었다.
다섯 개의 손가락이 곧게 쭉 뻗은 손이다. 피아노를 치면 잘 칠 것처럼 예쁘게 생겼다. 얼굴만 예쁜 줄 알았더니 손도 예쁘군.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남자의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전히 다리가 꼴사납게 떨리고 있었다. 다리뿐인가. 손도 떨린다.
“절 죽이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할게요.”
“저 원래 사람은 안 죽여요.”
남자가 밖으로 나가면서 대꾸했다. 개소리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이렇게 대놓고 뻔뻔한 거짓말을 하는 건지 알 수 없다. 비록 아버지의 상태가 좀 이상하다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사람이다. 그가 설사 괴물처럼 보이기는 했으나 사전적 의미로 사람이었다는 소리다. 그런 사람을 죽인 것도 모자라 확인 사살로 시체 훼손까지 아주 곤죽을 내놓고서, 뭐? 사람은 안 죽여?
비가 여전히 쏟아지고 있었다. 썩은 우유 냄새 탓에 제대로 맡지 못했던 꿉꿉한 비 냄새가 물씬 풍겼다.
“비, 아직 오네.”
현관 앞에 서서 우중충한 하늘을 멍하니 쳐다봤다. 아이러니하게도 평화롭다고 생각했다. 옆에 나란히 서 있는 남자의 느긋한 태도가 나한테도 전염이 되기라도 한 건지. 나는 그를 올려다봤다. 키가 몇일까. 180 중후반은 될까. 비를 맞으면서 여기까지 온 건지 머리카락에서는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이름이 뭐예요?”
내가 물었다. 그가 짧게 대꾸했다.
“황도욱이요.”
“황도욱……. 전 강채승이에요.”
“알아요.”
남자, 그러니까 황도욱이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대답했다. 사람 머쓱하게. 나는 입을 다물었다. 내 이름을 어떻게 알고 있는 거야. 스토커인가? 비는 여전히 퍼붓고 있었다.
“우산 가져올게요.”
황도욱이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본 나는 집으로 돌아가서 그가 줬던 핫핑크 우산과 내 우산을 챙겼다. 문 앞에 쓰러져 있는 아버지의 시체를 보고 잠깐 걸음을 멈췄다. 나는 거기 물끄러미 서서 엉망이 된 남자를 내려다봤다. 옛날 일들이 머리를 스쳤다. 늘 돈이 없던 가정, 익숙했던 부모님 사이의 불화, 고성이 들릴 때마다 이불 뒤집어쓰고 자는 척했던 순간들, 언젠가부터 보이지 않던 어머니와 아무도 없는 빈집에서 술만 마시고 있던 아버지.
그리고 사람을 죽이고 잠적해 버린 그 후 2년.
인생 참 좆같다. 고달프다. 이렇게 살다 갈 거면 날 낳지 말지. 원망해도 달라지는 건 없다. 아버지는 다시 돌아와서 취재 기자를 죽였고 웬 정체 모를 어린 남자애한테 죽었다. 나는 그의 마지막 얼굴을 떠올렸다. 핏발 선 눈, 심장을 삼켜 입에서 뚝뚝 떨어지는 핏물. 다시 생각해도 모골이 송연할 정도로 위험했던 순간이었다.
“묵이라고 해요.”
“어?”
갑자기 뒤에서 들린 목소리에 나는 흠칫 놀라 뒤돌아섰다. 걔가 서 있었다. 황도욱. 날 구해 준 남자애.
“죽은 사람 몸에서 태어나 인간의 육체를 뒤집어쓰고 살아있는 사람을 죽이는 것들이에요. 보통 심장이 목적이죠. 그걸 먹으면 생명이 연장되거든요.”
나는 그 애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별안간 달라붙어 구구절절 설명하고 있는 것도. 그나저나 나는 그 애 말에서 어떤 기시감을 느꼈다. 죽은 사람 몸이라고?
“죽은 사람?”
“네, 죽은 사람. 영혼 없이 비어있는 육체. 그래야 몸의 주도권을 차지할 수 있으니까. 살아있으면 아무래도 힘들죠.”
황도욱의 말에 나는 다시 아버지의 육신을 내려다봤다. 죽은 사람……. 아버지가 이미 죽었다는 소리인가.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휘몰아쳤다. 어디서 어떻게 죽어서 이런 꼴이 된 걸까. 궁금했다. 2년 전 그때, 이 남자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좋은 남편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좋은 아버지는 되어 주려고 노력했던 사람인 걸 알고 있었으므로.
걔가 날 힐끔 쳐다봤다. 내가 손에 쥐고 있는 핫핑크 우산을 태연하게 가져가며 말을 잇는다.
“묵은 주로 살해당한 사람 몸에서 태어나요. 마지막으로 남은 원한과 미련이 클수록 부활하기 좋은 환경이거든.”
그 말이 내 뒤통수를 때리는 듯했다. 그 말은…….
“2년 전에 이미 죽은 남자예요. 말했잖아요. 저, 사람은 안 죽인다고.”
문득 아버지가 그날 집을 나서면서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떠올랐다. 돈 없으면 참아라. 그게 이 세상에서 생존하는 법이다. 그는 몇 달째 월급이 밀린 사장에게 사정하러 가는 길이었다.
“시체만 죽이거든요. 모순처럼 보이긴 해도.”
황도욱이 순진하게 눈을 깜박였다. 나는 울컥 눈물이 차올랐다. 2년 전 살인 사건의 피해자는 사장이었다. 심장을 먹힌. 그럼 그도 아버지의 육신을 뒤집어쓴 ‘묵’한테 죽었다는 소리다.
그럼 아버지는? 집을 나갈 때까지 살아있던 아버지는 누구한테 죽었나? 누구한테 죽었길래 원한과 미련이 그렇게 남았나?
“묵에서는 썩은 우유 냄새가 나요.”
황도욱이 중얼거리면서 갑자기 나한테 고개를 숙였다. 그의 코가 내 목덜미에 콕 박혔다. 나는 생각하다 말고 화들짝 놀라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걔가 별일 아니라는 얼굴로 무해하게 지껄였다.
“다시 사과할게요. 아까 위협했던 거.”
대꾸할 기운이 없었다. 나는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받아쳤다.
“이제 와서 뭘.”
“묵인 줄 알았어요.”
“…….”
“그런데 만져보니까 말랑하고…….”
말을 잇는 황도욱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냄새가 좋길래.”
좋긴 무슨. 그때는 박강수가 뿌린 썩은 우유와 빗물이 뒤섞여 엉망진창이었을 텐데. 나는 예의상 물었다.
“무슨 냄새?”
황도욱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덥석 내 손을 잡고 얼굴까지 끌고 가더니 맥박이 뛰는 손목에 코를 댔다. 그대로 눈을 치켜뜬 걔와 눈이 마주쳤다. 얼굴에 피가 덕지덕지 묻은 얼굴이 살벌하도록 곱게 생겼다. 홀린 듯 주시했다.
따뜻한 숨결이 손목에 닿는다. 걔가 속삭였다.
“살냄새. 좋아서.”
내 몸의 어딘가가 간지러웠다. 심장인 것 같다.
우리는 거리로 나왔다. 황도욱이 말한 행선지는 도저히 도보로 이동할 수 없는 거리였기 때문에 다리가 박살이 나지 않으려면 교통수단을 선택하는 것이 필수였다.
“버스 타자. 버스 타면 둘이서 삼천 원으로 끝나는 거 택시 타면 이만 원 우습게 나와, 거기.”
나는 어느새 말을 까고 있었다. 걔가 열일곱 살이라고 나이를 밝힌 까닭이다.
사실 나는 택시비를 낼 돈이 없었다. 둘이 탄다고 해도 거금 이만 원이다. 게다가 지금처럼 폭우가 퍼붓고 있을 때는 길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막힐 것이다. 그럼 이만 원이 삼만 원이 되고 삼만 원이 사만 원 되기 우습다. 한정된 생활비로 한 달을 살기 위해서 학생이 줄일 수 있는 것은 교통비와 식비가 고작이었다. 안 먹고 안 입고 안 타고 다니는 팍팍한 생활이 몸에 뱄으니 어쩔 수 없다.
“제가 낼게요.”
하지만 내 지갑에서 나가는 돈이 아니라면 말이 달라진다. 황도욱의 말이 끝나자마자 난 냉큼 거리로 나가 택시를 잡기 위해 팔을 있는 힘껏 휘둘렀다. 핸드폰은 깜박하고 놓고 나온 탓에 어쩔 수 없었다. 다시 돌아서 가지고 나오기에는 너무 멀리 왔다.
퍼붓는 빗줄기 속에서 지나가는 택시를 잡는 것은 박강수가 나한테 어떤 시비도 걸지 않고 하루를 무사히 넘어가는 확률과 동일했다. 존나 안 온다. 기껏 지나가는 택시는 안에 사람이 타고 있거나 예약 표시가 걸려 있었다. 나는 우산 밖으로 쭉 뻗은 팔이 푹 젖는 것을 신경질적으로 바라보며 황도욱에게 말했다.
“너도 어플 좀 켜서 잡아 봐. 우연히 지나가는 택시가 빈 택시이기를 바라는 요행보다는 낫겠다.”
“아.”
걔가 뒤늦게 생각났다는 듯 맹한 얼굴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묵인지 사람인지 정체 모를 뭔가를 죽일 때는 무슨 피에 취한 맹수 같더니, 평소 모습은 유치원생보다 더 손이 많이 갈 정도로 헐렁하다.
“아는 무슨 아, 야. 택시 부르는 법 알아?”
“아니요.”
황도욱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순순히 대답하는 얼굴이 귀여운 아기 고양이 같다. 아니, 내가 나보다 머리 한 개는 더 큰 애한테 도대체 무슨 감상을.
“너 요즘 애 맞냐. 핸드폰 줘 봐.”
황도욱의 핸드폰은 깔끔했다. 배경 화면은 초기 설정 그대로고 깔린 어플들도 기껏해야 카카오톡이 전부다. 나는 카카오톡을 열어 타인의 사생활을 침해하는 대신 택시 호출 어플을 깔았다. 남익아파트 1차. 그러고 보니 여기 부자 동네인데. 능숙하게 목적지를 입력하고 호출을 누른 다음 계산 방식은 현장 결제로 선택했다. 돈 있겠지? 힐끔 훔쳐본 황도욱은 내가 하는 걸 옆에서 지켜보며 멀뚱히 서 있었다. 본인이 낸다고 당당하게 얘기했으니 있겠지.
하지만 폭우 탓인지 어플로도 택시는 쉽게 잡히지 않았다. 탐색만 10분이 넘어 종료하고 다시 시도하기를 두 번 반복했을 때야 겨우 10분 거리에 있는 택시 하나를 잡을 수 있었다. 상단에 뜨는 택시의 번호판을 확인하고 본인에게 돌려주면서 말했다.
“춥겠다. 이럴 줄 알았으면 옷이라도 갈아입고 올 걸 그랬나 봐.”
걔는 아까 비 맞은 몰골 그대로였다. 머리카락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젖은 앞머리는 뒤로 쓱 넘겨 훤칠한 이마를 깠는데 아버지의 피일 게 분명한 붉은 자국이 립스틱 번지듯 묻어 있었다. 허겁지겁 우산만 챙겨서 나오느라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사람이 두 명이나 죽은 곳에서 태평하게 샤워까지 하고 올 수도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괜찮아요. 몸에 열이 많아서.”
황도욱이 축축하게 젖은 손으로 내 손목을 잡았다. 살갗에 닿은 손바닥은 걔 말대로 따뜻했다. 비 맞은 상태를 오랜 시간 동안 유지하고 있었으니 체온이 떨어져 차가울 법도 한데, 은은하게 피어오르는 열에 나는 납득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그렇게 잠깐 서 있었다. 걔는 내 손목을 잡은 채로, 나는 잡힌 채로. 두근두근. 규칙적으로 뛰는 맥박이 의아할 정도로 뚜렷하게 느껴졌다.
“왔다, 택시. 저거죠.”
손목을 쥐고 있던 손이 자연스럽게 손을 감싸 쥐었다. 황도욱은 내 손을 잡은 채 우리 앞에 도착한 택시 앞에 섰다. 걔가 뒷문을 열고 날 밀어 넣으며 우산을 접었다. 물이 뚝뚝 떨어지는 우산 두 개를 쥐고 내 옆에 탄 황도욱이 문을 닫았다. 기사 아저씨는 가벼운 인사와 함께 미리 지정해 둔 행선지로 출발했다.
기사 아저씨가 백미러로 이쪽을 힐끔거리는 게 보였다. 정확히는 황도욱을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왜 애를 저렇게 자꾸 훔쳐봐 하는 생각으로 따라서 시선을 돌렸다가 이유를 깨달았다. 황도욱은 누가 봐도 수상한 차림새였다. 얼굴과 몸 전체에 튄 핏자국 하며 몸에서 뚝뚝 흐르는 물 하며.
“학생이 왜 그렇게 다 젖었어? 시트 다 망가지겠네, 아이고.”
시트가 문제였던 건가? 그는 피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나야 좋다. 괜히 옆에서 해명하느라고 쩔쩔매는 난감한 상황보다는 낫지. 갑자기 그게 뭐냐고 신고하겠다고 나서면 그것도 그거 나름대로 문제다.
“그나저나 요즘 분장은 살벌하기도 하네. 무슨 연극이라도 하는 거야?”
그게 아니라 핏자국일 거라고 전혀 생각하지도 않은 탓이군. 황도욱은 아저씨의 말에 대꾸해 줄 생각이 없는지 고개를 돌린 채 창문 바깥만 바라보고 있었다. 백미러를 자꾸 흘깃거리며 쳐다보고 있는 아저씨의 눈은 호기심으로 이글거리고 있었다. 나는 전혀 입을 열 의사가 없는 황도욱 대신 대답해 줬다.
“네. 얘가 살인자 역할을 맡아서 분장이 좀 살벌해요.”
“그러게. 처음에는 진짜 사람이라도 죽인 줄 알고 도망가야 하나 싶었다니까. 하하.”
“에이, 설마요. 그럴 리가 없죠. 아하하.”
기사 아저씨와 나는 공명하듯 웃었다. 식은땀이 등 뒤에서 솟는다. 다행이다. 이 택시마저 놓쳤으면 몇 분을 더 빗속에서 서 있었어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비현실을 감당하지 못해 현상을 왜곡하여 받아들이는 기사 아저씨는 놔두고 황도욱의 핏자국을 닦아주기 위해 손을 뻗었다. 손수건 같은 걸 대한민국 십팔 세 고딩이 들고 다닐 리는 만무하다. 소매를 힘껏 끌어 올려 십칠 세 고딩의 반질반질한 얼굴에 가져다 댔다.
“…….”
놀랐다. 손이 얼굴에 닿기 무섭게 강한 힘으로 손목을 잡아채는 악력 때문에. 오늘 손목 여러 번 잡히네. 사슴처럼 순박하게 깜박거리던 눈은 어디로 가고 망치를 휘두를 때처럼 서늘한 눈빛이 얼굴을 따갑게 훑어댔다.
“아니, 닦아 주려고.”
“아.”
내가 강채승이 아니었다면 바로 잡은 손목을 꺾어버렸을 듯한 살기다. 그 오줌 지릴 듯한 살벌한 살기에도 불구하고 더듬거리지 않고 해명에 성공한 내가 새삼 대견했다.
“얼굴에 손 올라오는 거 싫어해서.”
“몰랐어. 미안.”
“어떻게 알겠어요. 제가 말한 적 없는데.”
걔가 무심하게 대꾸하며 다시 얼굴을 반대로 틀었다. 잡혔던 손은 풀렸다. 나는 어정쩡한 자세로 손을 내리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닦아주지도 못한 채로 멈췄다.
“닦아 줘도 돼?”
황도욱이 다시 나를 쳐다봤다. 살기 등등했던 눈은 어디 가고 다시 사슴 눈이다. 사람 눈이 저렇게 예쁠 수가 있나. 진한 쌍꺼풀 아래 커다랗고 동그란 눈이 도드라졌다. 하도 선하게 생겨서 지나가다가 사이비 신도들한테 수십 번이고 잡힐 것처럼 생겼는데, 괴물 잡을 때는 전혀 다른 얼굴이 된다는 게 기묘했다. 뭐가 그렇게 원한이 깊은 건지 묵이 깃든 아버지에게 망치를 휘두르던 얼굴은 마치 철천지원수를 보는 눈이었다.
“그러세요.”
허락이 떨어졌다. 나는 걔가 또 놀라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이마와 뺨 그리고 코에 묻은 핏자국들을 닦아냈다. 겨우 얼굴 닦아주는 것뿐인데 뭐가 이렇게 긴장이 되는 일인지 모르겠다. 호기심을 해결한 기사 아저씨가 운전에 집중하는 바람에 조용해진 탓인가, 그게 아니면 뚫어지게 나를 쳐다보고 있는 이 아기 사슴 탓인가.
“……왜 그렇게 보는데?”
불편한 시선과 침묵을 참을 수 없던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걔가 순진무구하게 눈을 껌벅였다.
“눈을 보고 있으면 좀 덜하거든요.”
“뭐가?”
“무서운 게.”
무섭기는 방금까지만 해도 자기가 더 무서운 짓을 자행해 놓고 뻔뻔하군. 나는 헛웃음을 쳤다. 아까부터 생각했던 거지만 황도욱이라는 이 남자애한테는 말할 수 없는 사연이 가득한 게 분명하다.
“뭐가 그렇게 무서워.”
“…….”
걔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말하기 싫은 주제인가. 그럴 수도 있지. 궁금하기는 했으나 말하기 싫어하는 주제를 굳이 들쑤셔 듣고 싶은 것도 아니다. 나부터 그렇게 쑤셔져서 상처를 입은 피해자 중 한 명이지 않은가. 듣는다고 내가 어떻게 해 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듣는 것만으로도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생각하니까 생각 없이 운을 띄운 것부터 미안했다.
“대답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 그냥 물어본 거야, 그냥. 내가 주의할 수 있는 거면 주의해 보려고.”
변명하듯 뱉어냈는데도 황도욱은 말없이 나를 쳐다봤다. 그나저나 내가 말했던가. 나 이렇게 잘생긴 얼굴에 면역 없다고. 사람 얼굴을 뚫어질 듯이 쳐다보는 통에 나는 고개를 틀며 시선을 피해 버렸다. 그런데도 여전히 뺨에 닿는 시선이 의식돼서 얼굴 닦아주겠다고 까분 걸 잠깐 후회했다.
“다 왔어요.”
“어, 어.”
딴생각을 하는 사이에 택시가 정차했다. 용케도 먼저 주의를 환기한 건 황도욱이었다. 걔가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는 동안 난 요금을 확인했다. 삼만 원……. 저거 봐라. 기겁할 금액이다. 버스 탔으면 삼천 원인데. 물론 한 시간은 족히 걸렸을 거고 피 칠갑이 된 황도욱을 신고할 시민을 만날 확률도 높아졌겠지.
“잔돈은 됐어요.”
“감사합니다……, 잠깐만.”
나는 걔를 따라 내리려다가 황도욱의 말과 눈앞을 스쳐 가는 노란색에 흠칫 놀라 움직임을 멈췄다. 오만 원 권이었다. 삼만 원에 오만 원인데 잔돈은 됐다니? 얘 혹시 재벌 2세인가. 나는 상상조차 하지 못할 사치를 목격해 버린 것이다.
“아니요, 아저씨. 잔돈 주세요.”
“잉? 저 학생이 잔돈 필요 없다는데?”
“애가 아직 어려서 돈 개념을 잘 몰라서 그래요.”
입이 귀까지 찢어질 뻔한 기사 아저씨에게는 미안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만 원을 꽁으로 먹는 건 좀 그렇지. 그는 툴툴거렸으나 눈을 부릅뜨고 손을 내밀고 있는 내게 이만 원을 돌려주었다. 나는 돌려받은 이만 원을 그대로 접어 내 주머니에 넣었다. 이미 황도욱은 내렸고 내 은밀한 횡령을 보지 못했다. 어차피 받을 생각 없는 돈, 누구한테 가든 좀 더 살기 힘든 쪽이 가지는 게 세계 평화에 이롭지 않겠는가.
“비가 그치지 않네요.”
말은 그렇게 해도 내 머리 위로 쏟아지는 빗줄기는 없었다. 황도욱이 먼저 내려서 우산을 펼친 채 기다려 주고 있었던 탓이다. 생전 처음 받는 배려가 살갗이 간지러울 정도로 낯설었다.
“그나저나 여기 부자 동네잖아. 너 여기 살아?”
황도욱이 건네준 우산을 쥐고 옆에 섰다. 주변을 훑어봤다. 높게 솟은 고층 아파트가 즐비하고 주변에 솟은 근처 상권도 죄다 평균 금액이 만 오천 원을 상회하는 고급 음식점이다. 나는 절대 못 살 곳이다. 배달 아르바이트가 아니라면 발도 들이지 않았을 동네인데, 십구 년 살고 볼 일이네.
“네.”
짧은 대답이다. 그렇구나. 어쩐지 오만 원을 턱턱 내더라니. 잔돈은 됐어요, 라는 간지가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지금 너희 집 가는 거야?”
“아니요.”
“아니야?”
“가 보면 알아요.”
내가 너를 뭘 믿고 따라가겠어. 말이 목젖까지 튀어나왔다. 그렇다고 진짜 불신하고 있다는 건 아니다. 여기까지 온 주제에 발 빼는 것도 웃겼다. 황도욱을 힐끔 쳐다봤다. 키는 커서 눈높이가 한참 위에 있다. 걔는 오로지 전방을 주시하며 똑바로 걸었다. 깨끗한 얼굴과 반대로 옷에 덕지덕지 묻은 핏자국이 선명했다. 하필 입은 옷이 또 노란색 후드티라서 빨간색이 더 튄다.
우리는 남익아파트 단지 내부로 들어갔다. 주차장에는 고급 외제차들이 즐비하게 서 있다. 나는 혹시라도 잘못 건드려서 경보음이 울릴까 조심하며 황도욱 등 뒤에 바짝 따라붙었다. 걔는 여기 산다는 걸 과시라도 하듯 거침없이 쭉쭉 직진하더니 301동이라고 적힌 건물로 진입했다.
비싼 아파트답게 내부는 깔끔했다. 척 봐도 수준급 시설이다. 듣기로는 아파트 주민들만 이용할 수 있는 헬스장과 수영장도 있다고 들었는데. 냄새도 남다르다. 아로마 향이 도는 것 같다. 아닌가? 아로마 향이 뭔지 알 게 뭐람.
“어디 가요?”
“엘리베이터 타는 거 아니야?”
“이쪽이에요.”
자연스럽게 엘리베이터 앞에 서서 버튼을 누른 나는 머쓱하게 돌아섰다. 황도욱이 가리킨 곳은 지하로 가는 계단이었다. 이렇게 고급스러운 아파트에도 이런 음침한 지하가 있다니 같은 생각이 들 정도로 바닥이 어두컴컴했다. 한 발자국 내딛기가 찝찝했다. 나는 정말 여기가 맞냐는 얼굴로 황도욱을 쳐다보았으나 걔는 이미 지하로 내려가는 중이었다.
“같이 가.”
나는 이 부자 아파트에서 버려질까 싶어 황급히 걔 뒤를 따랐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은 빙빙 돌았다. 빛이라고는 위층에서 내려오는 게 전부라 발밑조차 잘 보이지 않았다. 자칫하면 발을 헛디뎌 데굴데굴 구르다 죽기 딱 좋은 길이다. 나를 여기까지 데리고 온 장본인은 이런 컴컴한 길이 무섭지도 않은지 아무렇지도 않게 성큼성큼 내려갔다. 누가 손 올리는 건 무섭다고 징징거렸으면서 이런 건 또 잘만 가네.
혹시 이미 누가 한 번쯤은 죽은 계단인 거 아니야? 시체는 몰래 소각하고 사건은 은폐한 거지……. 불과 몇 시간 전에 믿기지 않은 끔찍한 일을 겪었더니 머릿속에서 온갖 잔인한 망상이 떠다녔다. 사람을 아무렇지도 않게 죽이는 걸 보니 더 그렇다. 물론 쟤 말을 따르자면 사람이 아니라고는 하지만 그거야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여기예요.”
다행히 지하 바닥에 닿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어떤 끔찍한 일이 생기지도 않았다. 나는 발 한 번 헛딛지 않았고 잠깐 비틀거리지도 않았다. 바닥에 도달하자 계단 끝 정면 벽에 붙은 잿빛 문이 보였다. 문 위에 붙은 비상구에서 빛나고 있는 초록색 불빛은 실루엣만 겨우 보일 정도로 옅었다.
“여기가 어딘데?”
“우리는 그냥 지하 방이라고 불러요. 거창한 호칭 같은 건 없고.”
지하 방이라고. 진짜 사이비 아닐까. 호칭마저 수상하다. 나는 여차하면 튈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하며 문을 여는 황도욱의 뒤에 바짝 붙어 섰다.
“다녀왔습니다.”
황도욱이 예의 바른 청소년처럼 인사했다. 맞다, 얘 열일곱 살이지. 새삼 깨닫기도 전에 문을 열자마자 제일 먼저 든 감상은 밝다는 것이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새 어둠에 눈이 익숙해진 건지 강렬하게 튀어나오는 빛줄기에 나는 눈을 꼭 감았다가 뜨기를 반복했다.
“늦었네.”
“택시가 안 잡혀서요.”
“이래서 미성년자라는 신분은 빨리 탈피할수록 좋다니까. 살면서 좋은 건 범죄 저질러도 봐주는 촉법소년 시절뿐이지.”
“저는 빵 훔치면 소년원 가요.”
“그러니까 네가 제일 최악이지. 운전도 못 해, 빵도 못 훔쳐. 삼 년 동안 지루해서 어떻게 살아.”
이게 무슨 해괴한 논리야. 걸걸한 허스키 보이스가 매력적인 여자 목소리였다. 나는 황도욱 뒤에 서서 얼굴만 빼꼼 내밀고 안쪽을 쳐다봤다. 내부는 의외로 평범했다. 큰 방처럼 보였다. 벽은 하얀색 벽지로 도배되어 있고 바닥은 따뜻한 원목이었다. 중앙에는 모던한 무늬의 스퀘어 카펫을 깔아 세련된 감각을 더했다. 왼쪽에는 쉼터인 듯 검은색 소파 두 개, 갈색 탁자 한 개가 놓여 있고 오른쪽 벽면에는 책으로 꽉 채운 고풍스러운 책장이 배치되어 있었다. 더 안쪽은 부엌인 듯 냉장고와 커다란 식탁의 실루엣이 조금 보였다.
소파에는 턱까지 오는 빨간 단발머리의 여자가 비스듬하게 누워서 과자를 까먹고 있었다. 저거 고래 과자인가. 나이는 대략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전형적인 고양이상으로 삐죽 치솟은 눈꼬리 밑에 찍힌 점이 상당히 매력적인 여자였다.
와작와작 씹는 소리가 적나라하게 울렸다. 황도욱한테 개논리를 설파하던 목소리의 주인공인 게 분명했다. 심드렁하게 누워서 고래 과자만 씹고 있는 여자의 눈이 돌연 내게 왔다. 눈이 마주치는 건 한순간이었다.
“쟤가 걔구나.”
“네.”
“안녕.”
여자가 오른손을 살짝 흔들었다. 나는 허리를 꾸벅 숙였다.
“안녕하세요.”
“응. 드디어 아버지가 나타났다고?”
나는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의 등장과 죽음은 아직도 현실감이 없었다. 뒤통수가 얼얼했다. 모든 게 꿈 같으면서도 부정할 수 없이 오감으로 생생하게 겪은 탓에 아직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 몰랐다.
아니, 그런데 드디어라고? 여자는 뭔가를 알고 있는 듯 말을 하고 있었다.
빨간 머리의 여자가 먹던 고래 과자를 대충 테이블 위에 놔두고 상체를 일으켰다. 사람을 꿰뚫어 볼 것처럼 날카로운 눈빛에 괜히 눈치를 봤다. 이 동네 사람들은 다 원래 좀 살벌한가.
“이리 와 봐.”
여자가 손짓했다. 나는 황도욱을 힐끔거렸다.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러나 걔는 나를 별로 신경 쓰는 기색이 아니었다. 태평하게 신발을 벗고 휘적휘적 입성했다. 나도 어쩔 수 없이 신발을 벗었다. 황도욱은 나를 두고 안쪽으로 들어가 버렸고 나는 빨간 단발머리 여자 앞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왜요?”
“그냥 좀 보려고. 다친 곳은 없지?”
“네? 네.”
“한 바퀴 빙글빙글 돌아봐.”
나는 이 여자의 요청이 의아했으나 어른의 말을 거부하기도 좀 그래서 순순히 빙글빙글 돌아줬다.
“응, 안 다쳤네.”
이게 도대체 뭐 하는 짓인지? 나는 영문을 알 수 없는 상황 전개에 약간 얼빠진 표정으로 멍청하게 서 있었다.
“채승이 왔구나.”
그때 갑자기 생각하지도 못한 인물이 툭 튀어나왔다.
“선생님?”
“안녕.”
부엌에서 컵 하나를 쥐고 걸어 나온 그 남자는 우리 학교 보건 선생님이었다. 안경을 벗고 머리에 왁스를 발라 앞머리를 바짝 올려세웠으며 흰 가운도 벗은 탓에 하마터면 못 알아볼 뻔했다. 그 무심한 듯 툭툭 내뱉는 목소리가 아니었다면 길에서 만났어도 모르고 그냥 지나쳤을 모습이었다.
“밖에서 만나는 건 처음이지.”
“네. 근데, 왜 여기…….”
“나도 환이라서.”
“환이요?”
“도욱이가 아직 얘기 안 했어?”
무슨 얘기요? 쟤 여기까지 오는 내내 무섭다고 칭얼거린 게 단데. 하고 싶은 말은 꾹 삼키고 눈만 멀뚱 뜨며 그를 응시했다. 선생님이 들고 있던 컵을 내게 건네주었다. 얼떨결에 받은 그것은 따뜻하게 데운 코코아였다.
“묵을 잡는 사람들을 환이라고 해.”
세상에. 이건 또 무슨 소리냐?
“차차 설명해 줄게. 어쨌든 우리가 늦지는 않았구나. 다행이네.”
“이게 다…… 무슨 일이에요?”
혼란스러운 내가 되묻자 보건 선생님은 소파를 눈짓으로 가리켰다.
“앉아. 고생했을 텐데.”
나는 그의 말대로 코코아를 손에 쥐고 빈 소파에 앉았다. 빨간 단발머리 여자가 움직이는 나를 부담스러울 정도로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었으나 일부러 모르는 척했다. 새삼 황도욱이 대단했다. 기사 아저씨가 그렇게 보는데도 뻔뻔할 정도로 아무 생각 없어 보이던 모습이란!
“선생님, 밖에 불은 왜 꺼두셨어요. 어두워서 넘어질 뻔했는데.”
언제 어디서 옷을 갈아입고 나온 건지 피 묻은 옷을 벗어버리고 깔끔한 무지 흰 티로 갈아입은 황도욱이 웅얼거렸다. 바지는 연한 회색빛이 도는 조거 팬츠에 물이 뚝뚝 흐르던 젖은 머리 위에는 하얀 수건을 뒤집어씌워 놨다. 그리고 또 저 순박하게 맹한 표정으로 날 쳐다본다. 두 눈을 깜박거리면서 자연스럽게 내 옆에 앉는 걔는 정말 키만 멀대처럼 큰 십칠 세 고등학생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존나 모델 같다는 부사를 빼면.
“아, 전등 고장 났더라. 청하야, 경비실에 아직 말 안 했어?”
“말했어. 그쪽이 게으름 피우는 거지.”
“큰일이네. 저대로 두면 다치는 사람이 생길 수도 있는데.”
보건 선생님이 미간을 찌푸리며 문 너머를 힐끗 곁눈질했다. 학교에서 볼 때와는 외관도 그렇고 태도도 상당히 다른 모습이다. 무뚝뚝하지도 않고 무심하지도 않다. 골 아프다는 듯 굴어도 기본적으로 애정이 깔려 있다. 나는 문득 이 조합의 이유가 궁금해졌다.
그…… 묵과 환이라는 개념에서 파생된 집단인가.
“그나저나 신기하네. 도욱이가 사람한테 그렇게 달라붙는 건 처음 봐.”
보건 선생님이 내 어깨에 팔을 걸치고 반쯤 매달려 있는 황도욱을 보면서 뱉은 감상이다. 그런가요, 선생님. 전 잘 모르겠는데. 얘 처음 만났을 때부터 멱살 잡는 걸로 시작해서 사람 냄새도 맡고……, 그랬거든요. 그러나 당사자 앞에서 하기에는 좀 민망한 얘기라 나는 단순하게 대꾸했다.
“그런가요.”
“냄새 좋아.”
답변한 건 황도욱이었다. 걔는 내 목덜미에 코를 박은 채 계속 킁킁거리고 있던 참이었다. 무슨 개도 아니고. 간지러울 뿐 딱히 불쾌한 것은 아니었으나 어른들이 보기에는 상당히 남사스러울 장면인 건 분명하다. 나는 민망해서 벌게지려는 귀를 숨기려고 애쓰며 황도욱을 어깨로 밀어냈다. 꿋꿋하게 달라붙는 게 환장할 지경이었지만.
“너만 괜찮으면 그냥 둬. 도욱이가 뭘 좋아하는 건 처음 봐서 신기하네.”
“이거 별거 아니에요. 다이소에서 파는 천 원짜리 싸구려 비누 냄새예요.”
“넌 그렇다고 생각하겠지만……. 환들은 냄새에 민감하거든. 도욱이는 그게 유독 예민한 편이고. 고작 비누 냄새로 저러는 건 아닐 거야.”
“전 잘 모르겠는데. 애초에 묵인지 환인지 하는 것들도요.”
“그럼 설명해 줄까. 어쨌든 네 목숨도 걸린 일이니까.”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어디에선가 화이트보드를 끌어오는 선생님을 눈으로 좇았다. 내 목숨이라고? 그러고 보니 아까 황도욱이 말하던 ‘선생님’이라는 대상이 이 사람인 것 같았다.
“채승이 학교 성적 좋은 편인가?”
“성적도 구리면 학교 뭐 하러 다녀요. 나중에 대학교 잘 가서 박강수 비웃어 줄 날만 기다리는데.”
“그럼 대충 알아들을 거라고 생각하고 설명할게.”
“그래도 본업이 선생님인데 대충 설명은 직무 유기 아닌가요?”
“말대꾸 한 번에 벌점 1점이야.”
“이건 권력 남용.”
“벌점 1점.”
가차 없이 벌점을 부과하는 탓에 나는 입을 다물었다. 이 벌점이 쌓여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건지 알 수 없으나 어쨌든 학교에서 유일하게 위로되던 선생님이었던 만큼 나쁘게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튀어나오려는 불만은 이 꽉 물고 참으면서 내게 안기는 황도욱의 뒤통수를 쓰다듬었다. 아, 차거. 얘 아직 머리 덜 말랐다.
보건 선생님은 내가 입을 다문 것을 확인한 후 매직 뚜껑을 열며 화이트보드의 위아래를 나누는 긴 선을 가로로 쭉 그었다.
“세상은 이승과 저승으로 나뉘어. 모두가 흔히 알고 있는 개념이야. 육신과 영혼을 가진 살아있는 것들의 세상 이승, 그리고 죽어서 육신을 잃은 영혼들이 가는 곳 저승.”
맙소사. 시작부터 종교적 색채가 진하게 풍긴다. 이승과 저승이면 기독교? 불교? 나태 지옥 그런 거? 사실 종교에 관심 없어서 잘 모른다. 신이 있다고 하더라도 내 불행은 내가 감당해야 하는 거니까 오히려 더 허망해져서 믿기를 관뒀다.
“보통 세계의 이치대로라면 영혼은 육신이 죽자마자 저승으로 가야 하거든. 저승사자 같은 건 인간들이 꾸며낸 이야기고 사실 영혼들은 자연스럽게 자신이 갈 곳을 알아서 가는 편이야.”
선생님이 선 위쪽에 졸라맨 하나와 동그란 원을 하나 그렸다. 그리고 다시 원 옆에 아래로 이어지는 화살표를 쭉 그었다.
“그런데 가끔 이 영혼들이 이승에 남은 미련 때문에 떠나지 못할 때가 있거든. 이런 경우는 주로 갑자기 죽었을 때 발생하고는 해. 그럼 그런 죽음은 뭐가 있을까? 강채승.”
이거 쪽지 시험도 있는 강의였나? 그런 말은 없었잖아요. 이런 날치기 강의 같으니라고.
“사고나 타살이겠죠.”
그래도 대답은 착실하게 해 줬다. 그러고 보니 묵도 살해된 사람한테서 태어난다고 했던 것 같은데.
“그래. 자살이나 병으로 인한 사망도 미련이 강한 편이지만 그래도 그건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에 대해 마음의 준비를 미리 하는 경우가 많아서 사고나 타살보다는 덜한 편이야. 하지만 어디까지나 덜하다는 거지, 아예 없는 경우는 아니지. 언제나 예외는 있는 법이니까.”
“네.”
“묵은 거기서 태어나. 부정한 감정, 그 찌꺼기지. 그 부정한 감정이 짙으면 짙을수록 묵은 더 강력한 힘을 가져.”
선생님은 죽은 왼쪽 졸라맨의 시체 위에 검은색의 동그란 구체를 그렸다. 저게 묵인가. 나는 황도욱의 손으로 빨려 들어가던 검은색 연기를 떠올렸다. 물리적으로 만질 수 있는 형태는 아닐 거고.
“어쨌든 이 묵의 유일무이한 목적은 단 하나야. 인간에게 기생해서 살아남는 것. 어떻게든 이승에서 말이지. 죽을 때 원한과 미련이 이승에 있으니 어떻게 보면 당연한 본능이라고도 볼 수 있지.”
이다음은 나도 알고 있다. 원한과 미련을 크게 남긴 시체의 육신에 들어가서 살인을 자행하는 것. 내가 똑똑히 보고 온 것.
“묵이 다른 사람의 심장을 노리는 이유도 그거야. 살아있는 사람의 영혼은 심장에 있으니까 영혼을 빨아 먹는 거지. 살인으로 인해 원한과 미련이 남았을 타인의 부정한 영혼을 갈취하는 거야.”
졸라맨 하나가 더 죽었다.
“살해당한 자에게서 태어난 부정의 찌꺼기. 이미 세상을 떠난 영혼 대신 묵이 그 시체를 뒤집어쓰고 대신 살아가는 거지.”
나는 아버지를 떠올렸다. 핏발 선 눈, 핼쑥해진 뺨. 그 모습이 묵이었다는 거지. 이미 죽은 상태였다고. 머릿속이 다시 복잡해졌다. 아버지는 누구한테 죽었을까. 의문문처럼 띄웠지만 나는 대충 짐작이 됐다. 그가 누구한테 죽었을지.
“육체를 얻은 묵은 첫 번째 살인을 감행하지. 목표는 단 하나.”
의심은 확신이 된다.
“눈앞의 살인자.”
그 사장 새끼다.
내 표정을 본 선생님이 말했다.
“강재형이 그런 케이스지.”
“저희 아버지를 아세요?”
“알지. 그게 우리 일인데.”
선생님이 묵 옆에 다른 졸라맨 하나를 더 그렸다. 그 졸라맨은 다른 졸라맨과 다르게 망치를 손에 들고 있었다.
“묵을 그냥 놔두면 살인이 전염병처럼 번질 거야. 그것들이 흘리고 다니는 어떤 종류의 부정의 기운은 묵으면서 인간에게 악영향을 끼칠 거고 묵은 계속 태어나겠지. 공권력도 노력은 하겠지만 근본 자체를 죽일 수는 없거든. 그래서 있는 게 우리야.”
그가 망치 든 졸라맨 옆에 한자 하나를 썼다.
“환(煥).”
“환?”
“불꽃이라는 뜻이야.”
“아.”
불현듯 묵을 빨아들이던 황도욱이 읊었던 기도문이 떠올랐다. 환옥이라고 했던가.
“우리는 묵과 같은 부정을 태워. 추상적인 표현 같지만 말 그대로야. 묵의 몸에 기생하는 부정을 뽑아내 우리 몸에 가두고 심장에서 태워 없애지. 그러기 위해서 묵을 사방으로 찾고 감시하는 일이 필요하고. 강재형도 그 과정에서 발견했어. 하지만 강재형은…… 좀 특이 케이스이긴 하지.”
“특이요?”
“보통 묵이 제일 처음 노리는 건 자신을 죽인 살인범이라고 얘기했지? 그다음 희생자는 보통 그들의 가족이야.”
“왜요?”
“그들은 사망 직후 살아생전의 습관을 관성처럼 따라 해. 몸에 박힌 일상의 루틴을 그대로 밟는 거지. 퇴근 후 집에 돌아가는 것처럼.”
“대부분의 사람은 집에 돌아갈 테니까…… 그때 죽이는 거군요.”
나는 알겠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아버지를 뒤집어쓴 그 묵은…… 2년 뒤에 나타났다 이거죠?”
“그렇지. 그는 첫 번째 살인 이후 잠적해 버렸어. 원래 묵의 첫 번째 살인을 찾아낸 다음 두 번째는 가족 근처에서 감시하고 있으면 대부분 잡히거든. 그런데 이 녀석은 그렇지 않았다는 거지.”
“왜 그랬던 거죠?”
“글쎄, 아직 그건 우리도 잘 몰라. 우리가 흔적을 놓친 걸까 싶어서 근방을 다 뒤졌는데도 특이한 사항은 발견되지 않았거든. 하지만 오히려 그 점이 이상하긴 했어.”
“뭐가요?”
내가 눈을 끔벅거리며 되묻자 옆에 있던 청하 누나가 끼어들었다.
“묵은 자고로 이지(理智)가 없지. 살아있던 시절의 습관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앵무새처럼 같은 말을 반복한다거나 사람이 하는 일을 흉내 내고는 하지만 그것뿐이야. 생각을 할 수 없는 것들이 살인 후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고 갑자기 증발하듯이 사라질 수 있을까?”
다 먹은 고래 과자는 뚜껑이 열린 채 널브러져 있었다. 그녀는 무심한 표정으로 어느새 새로운 감자칩을 하나 뜯어 손에 쥐고 있었다.
“우리는 그가 납치라도 당한 게 아닐까 의심 중이었어.”
“납치요?”
아니, 그런 괴물을 납치하는 해괴한 인간도 있나. 들으면 들을수록 이해가 안 된다. 이거 참 괴이한 세계구나.
“아직 조사 중이라서 확실한 건 없어. 다만 갑자기 최근 두 달 사이에 이 근방 묵의 출연 빈도가 높아졌다는 거지. 사라졌던 강재형이 오늘 이렇게 다시 나타날 거라는 건 예상하지 못했지만.”
“최근…… 이요?”
“그래. 뉴스 같은 거 못 봤어? 지역 신문이라든가. 요즘 이 동네에 흉흉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는데. 묵의 출연이 부쩍 늘어난 지역은 일반인들에게도 나쁜 영향을 끼쳐서 악한 마음을 부추기기도 해.”
그 말을 듣고 보니 지금까지 유야무야 한 귀로 흘려들었던 사건들이 번뜩 머릿속을 스쳐 갔다. 노가다 뛸 때는 같이 일하던 아저씨가, 편의점에서 일할 때는 가게에 한 번 들렀던 손님이, 식당에서 일할 때는 점장이……. 다들 한 번씩 몹쓸 꼴을 당했다고 했다. 요즘 세상 참 흉흉하다고 생각하고 말았는데 그게 다 이유가 있었다고?
“근래 눈에 띄게 그 수치가 증가해서 우리도 급하게 팀을 꾸려 파견됐어. 그 과정에서 알게 된 건 유독 네 주변에서 그런 일이 발생하고 있다는 거지.”
그런 말을 하지 않아도 이미 혼란스러운데 선생님의 말은 나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 내 주변에서? 굳이? 왜?
“이것도 최근에 알게 된 거야.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일들이 너와 연관되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고.”
그러고 보니 선생님이 학교에 새로 부임해 온 것도 그쯤이었던 것 같다. 나는 가만히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지금까지는 멀리서 너를 지켜만 봤지. 될 수 있으면 민간인을 굳이 우리 일에 깊이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럼 이 사람들은 이미 나를 알고 있었다는 소리인가?
“하지만 이제 상황이 바뀌었어. 강재형이 2년 만에 나타났고 널 직접적으로 위협했지. 넌 몰랐겠지만 며칠 전에도 널 노리던 묵이 있었고, 그걸 청하가 용케 찾아 잡았거든. 그런 식으로 수상하게 늘어나고 있는 묵들이 너랑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는 양상을 보이고 있어.”
이거 어쩐지 이제 내 목숨이 위험하다는 말처럼 들리는데. 그 말은 즉, 내가 죽을 뻔했던 상황이 오늘이 처음이 아니라는 거잖아?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목숨을 노리는 자들이 늘어났다는 말을 들으니 간담이 서늘했다.
“그래서 오늘부터는 네 옆에 붙어서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어.”
“저를요?”
“그래. 그들이 불특정 다수가 아니라 한 사람 주위를 맴도는 건 이상한 일이거든. 그들이 너라는 존재를 노리는 건지, 그게 아니면 네가 가진 뭔가를 노리는 건지 알아봐야 할 필요가 있겠지. 오늘 강재형이 나타난 걸 보면…… 아마 2년 전 일과도 연관이 있지 않을까 싶기는 하지만.”
선생님이 하는 모든 말들이 얼떨떨했다. 아버지가 죽은 게 불과 한 시간 전이라서 그런지 속사포같이 뇌에 박히는 이야기들은 감당하기 버거웠다. 평범한 대한민국 고등학생이었던 내가 어느 날 갑자기 눈을 떴더니 액션 스릴 호러물의 주인공이 되어 있는 격이었다. 청하 누나가 이어 말했다.
“그들을 잡기 위해서는 반드시 육체를 부수어야 해. 정확히 말하자면 머리. 살아있는 사람의 영혼은 심장에 있지만, 부정은 묵의 머리에 기생하거든.”
청화가 검지로 자신의 관자놀이를 쿡쿡 찌르며 설명을 이었다.
“게다가 두개골을 80% 이상 박살 내지 않으면 끝까지 살아 움직여. 무슨 좀비처럼.”
그래서 황도욱이 그런 말을 했구나. 나는 여전히 나한테 안기듯 기대고 있는 황도욱을 쳐다봤다. 아주 개박살을 내기는 했지. 도욱이를 보는 내 시선을 눈치챘는지 누나가 말을 보탰다.
“쟤는 거의 곤죽을 내놔.”
“그런 것 같더라고요.”
“묵이 아주 싫대.”
그렇군. 나 같아도 싫겠다. 그런 괴물을 좋아하는 인간이 실존은 할까?
“아까도 말했듯이 묵을 정화할 수 있는 건 환밖에 없지. 환은 오로지 각성을 통해 생겨나고 그 각성의 필요조건은 단 하나야. 묵에게 살해를 당하는 것.”
“그거 좀 참신하고 섬뜩한 조건이네요.”
나는 반쯤 기가 질려 대꾸했다. 등골이 오싹한 조건이군. 그 괴물한테 죽어야 한다고? 죽으면 그대로 영혼이 먹히는 거 아닌가. 지금까지 한 말로 따지자면 그렇지 않은가. 이게 무슨 개념의 오류야. 역시 사이비 아니야? 나는 불신 섞인 눈으로 선생님을 쳐다봤다. 고등학교 선생님이나 돼서 자기 학생을 이런 음침한 종교로 전도하려고 하다니.
“그나마도 확률이 높은 건 아니라서 묵의 피해자 중에서도 환이 되는 자들은 극소수에 불과해. 한국에서만 대략 30명 전후. 지금껏 개체가 30명 내외로 유지되는 걸 보면 어떤 규칙이 적용되는 건가 싶기도 하지만 이건 우리도 알 수 없는 문제지. 그냥 자연의 법칙이구나 하고 있어.”
“아니, 그럼 여기 계신 세 분은…….”
나는 눈을 끔벅거리면서 세 사람을 훑었다. 천진난만한 얼굴로 뺨을 비비적거리고 있는 황도욱부터 시작해서 또 감자 과자 한 봉지를 박살 내고 다른 과자를 찾고 있는 청하, 그리고 가운을 벗은 보건 선생님.
“죽은 거예요?”
그러니까 그런 건가. 묵이 죽은 사람의 시체를 도구 삼아 살인하는 것처럼 환도 죽은 사람이 살아나서 어떻게 보면 같은 속성의 시체들을 잡으러 다니는 거다. 그렇다면 여기는, 이 집단은!
“이상한 생각하지 마. 아예 죽는 게 아니라 죽었다가 살아나는 거니까.”
예수냐? 예수인가? 나는 여전히 의심의 눈초리를 감출 수가 없었다.
“각성 같은 거라고 보면 돼. 묵이 가슴을 가르고 심장을 꺼내는 순간 눈을 뜨는 거지.”
“상상만 해도…… 호러예요.”
“글쎄. 생각보다 괜찮아.”
선생님이 오묘한 표정으로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 그게 정말 괜찮겠냐고요. 내가 봐서 안다. 그러니까 선생님 말씀은 기자가 그렇게 가슴이 벌어져 죽은 상태에서 다시 일어났다는 말이지 않은가? 누가 봐도 무서운데.
“꽤 신기하거든. 묵의 손이 각성하는 환의 심장에 닿으면 불꽃이 피어올라. 그렇게 타오르는 불이 묵을 삼키고 환의 몸까지 다 삼키고 나면 짠, 새 몸이 되는 거야. 가슴에 흉터만 남고.”
“흉터?”
“심장 수술한 것처럼 이렇게 세로로 생겨. 보여 줄까?”
“아니요.”
나는 즉답했다. 선생님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피식 웃고 말았다.
“어쨌든 그래서 너를 지키기 위해서는 환이 옆에 붙어 있을 수밖에 없지. 일반인으로는 한계가 있을 테니까.”
그런가. 그렇구나. 하여튼 내가 대단한 위기에 처했다는 것은 알겠다. 충격적인 사실의 연속 속에 머릿속이 굉장히 심란해지고 있는데 뺨에 도욱이의 머리카락이 닿았다. 강의를 듣는 동안 거의 다 마른 듯 촉촉한 물기만 남아 내 얼굴을 문지르고 있다. 복슬복슬 부드러운 그 감촉이 내 걱정을 한결 덜어주는 듯했다.
“사건은 어떻게 수습될 거야. 기자가 죽은 건 예상하지 못한 변수지만. 집도 치워질 거고.”
“그럼 저는 어떻게 살아요?”
“당분간은 도욱이랑 지내. 도욱이도 연경고 입학 처리까지 해놨으니까 네 곁에서 너랑 붙어 있을 거야.”
“아니, 제 의견은 없이 그렇게 막 진행해도 되는 건가요?”
나도 모르게 삐딱한 어투로 대꾸했다. 물론 내가 아주 위험한 상황에 부닥쳤고 그들의 도움 없이 혼자 살아남는 게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라는 건 이해했다. 불과 몇 시간 전에 날 죽이려고 덤벼들었던 아버지의 서슬 푸른 눈빛이 아직도 뇌리에 박혀 생생했다. 하지만 나는 지금까지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내 자의가 아닌 일로 고통받으며 살아왔다. 아무리 나를 위해서 그런 거라곤 하지만 진작 이 모든 일에 대해 내게 알려주고 협조를 구해도 되지 않았나 싶은 얄팍한 원망이 드는 건 당연하지 않나?
“얘 말본새 좀 봐. 아주 귀엽게 봤는데 꽤 건방져.”
청하 누나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그렇잖아요. 갑자기 이렇게 됐으니 이래라저래라하면 누가 쉽게 받아들여요.”
나는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받아쳤다. 누나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 눈꼬리가 일그러지니 나도 모르게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아니, 그럼 뭐 다 거부하고 혼자 지내다가 죽든가.”
“청하야, 그만해. 얘도 얼마나 황당하겠어.”
“웃기잖아. 우리가 뭐 우리 좋자고 일해? 이게 다 본인 살리려고 하는 짓인데?”
청하가 선생님을 쏘아보며 반박했다. 그의 말도 틀린 게 없었다. 선생님이 엄한 표정으로 누나를 쳐다봤다. 나는 말다툼을 시작한 둘을 놔두고 황도욱에게 시선을 돌렸다. 여전히 아무 생각 없는 표정이다. 어느새 한 팔을 내 허리에 두르고 있는 걔와 눈이 마주쳤다. 내가 황도욱에게 물었다.
“너 우리 학교 와?”
“네.”
“나랑 같이 살기도 해?”
“네.”
“넌 그게 안 불편해?”
“별로. 냄새가 좋아서 그런가.”
걔가 고개를 저으며 다시 내 어깨에 코를 박고 냄새를 킁킁 맡았다. 그게 그렇게 좋은가. 나중에 다이소에 들릴 기회가 있으면 같은 비누를 사 줘야겠다고 새삼 다짐했다.
“황도욱은 사람을 꺼려.”
그때 우리 대화에 끼어든 건 선생님이었다. 참 황당한 소리를 하시네. 취미인가?
“얘가요?”
나는 찹쌀떡처럼 달라붙은 황도욱을 검지로 가리키며 반문했다. 선생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좀 과장해서 말하면 우리 외의 사람은 싫어해. 살 닿는 것도 싫어하고 말도 안 섞고. 사교성이 최악이다 못해 폭력적이라 뒷수습이 어려워서 중학교도 중퇴했거든.”
“얘가요?”
같은 말을 반복했다. 진짜 의외다. 만난 지 반나절밖에 안 된 사람한테 이렇게 안기는 걸 본다면 누구라도 믿지 못할 말이다. 뭐, 갑자기 망치를 들고 위협한 것만 본다면 그런가 싶기도 한데. 그건 묵으로 오해해서 생긴 일 아닌가. 사람 손목 냄새 맡는 걸로 모자라서 이제는 애착 인형을 만난 것처럼 달라붙는 애한테 붙일 명칭은 아닌 것 같다.
“그래, 걔가. 황도욱이. 그래서 지금 모습이 좀 신기하네.”
“야. 너 그런 애야?”
나는 황도욱한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본인 입으로 직접 듣고 싶었던 탓이다. 그러나 돌아오는 답은 없다. 눈만 뻐끔뻐끔 순박한 표정으로 날 쳐다보고만 있다. 참나.
“쟤 또 착한 아이 코스프레 한다.”
청하 누나가 기가 막힌다는 듯 혀를 차더니 이번에는 치토스를 뜯었다. 많이도 먹는다. 그 와중에 한번 먹어 보라고 권유도 안 하시네. 슬슬 배가 고프던 참이었다. 아까부터 계속 코를 간지럽히는 과자 냄새 덕분에 허기의 고통이 두 배가 됐다.
침묵하는 황도욱 대신 선생님이 대신 대답했다.
“그런 애야. 어쨌든 그래서 도욱이가 네 옆에서 지켜볼 테니까 네가 조금만 참아주면…….”
“그래서 지금 결론이 뭐예요. 안 그래도 죽을 고비 넘긴 애한테 앞으로 이런 위험은 계속 있을 거고 아직 해결할 방법은 찾지 못했으니까 동선 통제된 채 살란 얘기예요? 언제 해결될 건지 말도 안 해주고? 아니, 막말로 평생 이렇게 살 수는 없는 거 아니에요. 방금 막 하나 남은 가족도, 집도 다 잃은 청소년한테 다짜고짜 네 목숨이 위험하다 엄포 놓고 나보다 어린애 한 명 옆에 달랑 붙여두면 다 해결될 거라고 보는 건지…….”
“야.”
예민해진 거 인정. 괜히 시비 걸고 싶었던 것도 인정. 허기도 그렇고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도 그렇고 내 목숨을 위협하는 일이 여기서 끝이 아니라는 말도 그렇고. 기껏 해결책이라는 게 어린애를 붙여놓는 거라는 것도. 아무리 평범한 어린애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이런 위험한 일에 막 굴리는 건 좀 아니지 않나? 아동 학대 아니야? 사람 불러 놓고 이게 뭐야. 밑도 끝도 없이 따지다가 청하의 낮은 목소리에 나는 입을 멈췄다.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눈이 돌아갔다.
청하 누나의 얼굴이 싸늘했다. 나는 아차 싶었다. 여자의 손에는 책 한 권이 들려 있었다. 입을 다물었으나 늦었다. 팔이 크게 돌았다. 책이 그의 손을 떠났고…….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는 계산했다. 책 두께가 어느 정도였더라. 그렇게 두껍지는 않았던 것 같던데. 모서리만 안 맞으면 덜 아프지 않을까. 앞으로 닥쳐올 통증을 가늠하며 각오하고 있을 때다. 각오만 10초 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예상한 고통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실눈을 떴다. 눈앞에는 책이 허공에 떠 있었다. 시간이 멈춘 건가 싶은 멍청한 착각도 잠깐이다.
“조심해, 누나.”
책을 잡은 황도욱의 손이 보였다. 나긋하게 낮게 깔리는 목소리도. 건너편에 있는 청하의 짜증 난 얼굴을 보고 고개를 틀었다. 뺨이 닿을 정도로 가까운 곳에 걔 얼굴이 있었다. 솜털마저 보일 정도다.
황도욱이 말했다.
“강채승 다치잖아.” 하고.
“네가 잡을 줄 알고 던진 거야.”
누나가 태연한 얼굴로 대꾸했다. 당황스러운 건 나였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사람 얼굴에 대고 냅다 책을 던지는 누나는 너무하고 그렇게 날아오는 책을 무리 없이 잡는 반사 신경을 가진 황도욱은 이상하다. 와, 여기 진짜 괴상한 집단이네.
“너 도욱이 아니었으면 그대로 책 맞고 이마에 혹 났을걸.”
“…….”
“그렇게 비명횡사하고 싶은 거 아니면 우리 말 들어. 다 너 살리려고 하는 거니까.”
청하 누나가 따끔하게 말했다. 나는 입을 꾹 다물고 고개만 끄덕였다. 자고로 어른 말 잘 들으면 떡 하나 더 생긴다고 했다. 내가 쫄아서 그런 건 아니고……. 아니, 진짜로.
내가 누나의 기세에 눌려 벌벌 떠는 동안 황도욱은 책을 대충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햇빛에 녹은 고양이처럼 널브러졌다. 옆구리에 나를 끼워 넣은 건 덤이다. 마치 고양이가 푹신한 쿠션 위에서 낮잠 자는 것과 같은 모양새다. 두 팔을 허리에 두르고 내 어깨에 턱을 얹어 놓은 탓에 내게 실리는 무게가 꽤 묵직했다. 키만 크고 마른 줄 알았더니 등에 닿는 가슴은 꽤 단단하다.
“피 냄새나게 만들지 마요.”
“실컷 맡고 왔을 거면서 새삼.”
“그래서 싫어요. 코 썩을 것 같다고.”
황도욱이 어린애처럼 툴툴거리면서 미간을 구겼다. 괴로워 죽겠다는 얼굴로 울상까지 짓는다. 그렇게 심했던가. 다시금 그때의 상황을 떠올려 봤다. 바닥에 흥건했던 피. 썩은 우유 냄새가 워낙 지독했던 탓에 다른 냄새를 신경 쓸 겨를은 없었으나 그 와중에도 은근하게 섞이던 피비린내가 역했던 것 같기는 하다.
“누나도 향초 피웠을 때 선생님이 부엌에서 청국장 끓이면 질색하잖아요. 같은 거라고요.”
“청국장이랑 피 냄새를 같은 선상에 놓는 거야?”
“고약한 냄새라는 건 동일하니까.”
어쩐지 상처받은 표정을 지은 건 선생님이다. 청하 누나는 여전히 불만 섞인 얼굴이지만 황도욱의 비유가 먹히긴 한 듯 웅얼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은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다시는 청국장 안 끓일게…….’라고 했다.
“쟤도 참. 묵 탐지 성능이 최상급인 건 좋은데 덕분에 부작용이 큰 게 불쌍하다니까.”
누나가 혀를 쯧쯧 찼다. 언제 다 먹은 건지 치토스 껍질은 딱지처럼 곱게 접혀 나뒹굴고 있었다. 여자의 손이 또 다른 과자를 향해 접근할 때다. 살갗이 마찰하는 날카로운 소리가 울렸다. 뒤를 이어 누나의 높고 새된 고함이 방 전체를 울렸다.
“왜 때려!”
빨갛게 자국이 남은 손등을 쥐고 있는 여자의 분노가 향한 곳은 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은 언제 시무룩했냐는 듯 차분하고 침착한 어투로 대꾸했다.
“밥 먹어야 돼. 군것질 그만해.”
“나 밥 안 먹어.”
“애야? 도욱이도 안 하는 밥투정을 하고 있게?”
“어디서 저런 머리에 피도 안 마른 햇병아리랑 비교를 해? 나는 민증도 나왔고 잉크도 마른 지 십 년 됐거든.”
“자랑이다. 아무튼 그만 먹어. 채승이한테 사과도 하고.”
선생님의 훈계에 누나는 꿍얼거리다가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미안하다. 내가 다혈질이 병이야.”
“그래, 채승아. 나도 사과할게. 일단 일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우리 밥부터 먹자. 배고프지.”
“네에……. 저도 죄송합니다. 생각이 짧았어요.”
나도 마주 사과하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 와중에 선생님의 권유는 반가워서 낯빛에 활기가 돌았다. 허기가 나를 잡아먹어 이제 현기증마저 돌 지경이었다. 조금만 더 시간을 끌었다면 묵한테 죽는 것보다 굶주림으로 먼저 아사해서 무덤에 묘비까지 세워졌을 것이다.
묘비명은 이런 거겠지. 평생 불행의 늪에서 살았던 강채승, 결국 굶어 죽다. 이팔청춘 돌아서면 배고플 시기의 청소년에게 끼니를 보장해 주는 건 법적으로 제도를 마련해야 하는 일이라고 본다.
“저녁 준비할 테니까 방에 가서 옷 갈아입고 와.”
“옷이요?”
나는 내가 입은 옷을 내려다봤다. 깨끗…… 하지가 않군. 황도욱보다는 덜하지만 사실 나도 핏물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내가 깨끗할 거라는 판단 자체가 망상이었던 거다. 생각해 보면 황도욱은 날 붙잡은 묵의 손을 사정없이 내려쳤으니 피가 튀지 않았으면 물리적으로 더 이상했을 것이다. 이 상태로 잘도 택시 타고 왔다는 거지. 기사 아저씨들이 우리를 보고 승차 거부의 기로 앞에 섰던 것을 이해했다. 남자 두 명이 피 칠갑을 하고 서 있는데 누가 태워 주고 싶겠는가. 혹시 택시가 안 잡혔던 건 그런 이유였던 걸까.
“도욱아, 채승이 데려가서 네 옷 좀 줘.”
“가요.”
걔는 군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몸에 달라붙어 있던 거대한 온기가 떨어지자 그사이를 묘하게 싸늘한 공기가 틈을 메웠다. 어쩐지 추운 것 같다고 느낄 무렵, 누나가 입을 열었다.
“아, 추워. 백재우. 보일러 튼다?”
“틀어.”
“웬일이야. 돈 아낀다고 못 틀게 하더니.”
“손님 왔잖아.”
나는 누나가 시시덕거리며 벽에 붙어 있는 보일러를 트는 걸 보면서 황도욱의 뒤를 따랐다. 역시 집이 좀 추운 거였군. 방에 훈기가 도는 동안 황도욱은 안쪽으로 들어갔다. 부엌이 전부인 줄 알았던 곳에 문 하나가 더 있었다. 여기가 얘 방인가.
“제 옷이 좀.”
황도욱이 말을 끊으며 나를 힐끔 쳐다봤다. 나는 조심스럽게 발을 뻗으며 문지방을 밟았다. 불이 켜진 방의 내부는 그리 크지 않았다. 방보다는 창고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로 작은 그 방에는 온갖 잡동사니들이 쌓여 있었다. 한쪽 벽에는 행거에 걸린 옷들이 쭉 걸려 있고 그 외 책이라든가 지금은 쓰지 않는 가구들이 엉키듯 널브러져 있다.
“클 거예요.”
“알아.”
누가 모를 줄 아나. 나랑 키가 10cm는 나는 것 같은데. 뒤에서 보는 황도욱은 심지어 어깨까지 넓었다. 태평양이야, 뭐야. 부럽다. 남자라면 당연히 가질 질투심을 애써 숨기며 걔를 지나쳐 척척 걸어갔다. 목적지는 행거 앞이다. 나는 걸려 있는 옷들을 뒤적거렸다. 옷은 몇 벌 없었다. 티셔츠 몇 장, 바지 몇 장, 겉옷 두 개가 전부다.
“아무거나 입어도 돼?”
“네. 편하게 입으려고 가져다 둔 거예요.”
옷을 뒤적거리는 내 옆에 황도욱이 섰다. 장신의 그림자가 내 몸을 덮었다. 나는 걔를 올려다봤다. 전등 아래 턱 밑 그림자가 도드라졌다.
“이거랑 이건 어때요?”
먼저 나서서 옷을 골라준 걔가 꺼낸 건 검은색 반소매 티셔츠와 반바지였다. 무늬라고는 가슴에 바나나 우유 그림 하나 그려져 있는 게 다인 무난하다 못해 지루할 정도로 단조로운 티셔츠. 바나나 우유가 깜찍하군. 그림은 그렇다 치고 황도욱이 준 옷은 몸에 대충 대보기만 해도 컸다. 반소매인데도 팔이 팔꿈치까지 올 것 같다.
“더 작은 건 없지?”
“……네.”
“왜 그런 눈으로 봐. 입을게, 입을게.”
더 작은 건 초등학생 때 입은 것밖에 없다고 말하는 것 같은 황도욱의 눈을 피하며 상의를 탈의했다. 벗고 보니 티셔츠에 묻은 피가 더 벌겋다. 와, 이걸 입고 어떻게 돌아다녔지. 새삼 그때 정말 정신이 없었구나 싶다. 사람이 두 명이나 죽어 나갔는데 누가 멀쩡한 정신이겠냐만.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티셔츠에 두 팔을 꿰다 말고 문득 옆을 쳐다봤다.
계속 시선이 느껴진다 싶더니.
“얼굴 뚫려.”
황도욱이 나가지도 않고 날 멀뚱히 지켜보고 있다. 사람 옷 갈아입는 거 처음 보나. 나는 어쩐지 민망한 기분을 숨기지 못하며 툭 뱉었다.
“안 뚫려요.”
“아는데. 비유법 몰라?”
“…….”
대답을 안 한다. 나는 걔를 흘겨봤다. 불리한 질문에는 입을 다무는 성향인 것 같군. 벌써 답답해서 가슴을 몇 번이나 두드릴 앞날이 훤하다.
황도욱이 준 옷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컸다. 원래도 좀 크게 입는 스타일인 건지, 팔이 팔꿈치마저 덮고 어깨가 축 내려왔다. 이건 무슨 어린애가 아빠 옷 입은 것도 아니고. 밑도 길어서 엉덩이를 덮을까 말까다. 나는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옆에 서 있는 황도욱을 무시하려고 애쓰며 바지도 냉큼 갈아입었다. 바지도 크다.
“넌 뭐가 이렇게 다 크냐.”
“나와요. 선생님이 식탁 다 차린 것 같으니까.”
치사하게 말을 돌린다. 이 세상 모든 거인은 그렇다. 본인들만 상층 공기를 점유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키 크는 법은 비밀로 하고는 하지. 나는 먼저 뒤돌아서서 나가는 황도욱의 뒤를 졸졸 따라갔다. 펑퍼짐한 옷이 꽤 편하기는 했다.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부엌의 식탁에는 이미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었다. 한가운데 보글보글 끓고 있는 된장찌개와 노란 계란 물에 부친 두부 부침, 매콤하게 식욕을 자극하는 빨간 색깔의 낙지 젓갈, 달달한 참기름 냄새가 나는 시금치나물과 잡채, 두 접시로 나누어져 있는 따끈한 갈비 하며 동그랑땡까지.
나는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선생님 의외로 요리 잘하시네요.”
“의외?”
선생님은 밥을 뜨다 말고 어이없다는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누나는 이미 한 자리 잡아 숟가락을 쥐고 있고, 황도욱도 익숙한 듯 자리 하나를 찾아 앉았다. 나는 자연스럽게 걔 따라 옆에 앉으며 머쓱하게 웃었다.
“먹기나 해. 오늘은 도욱이 집에서 자고.”
“여기서요?”
“아니, 쟤 집에서.”
나는 의아한 얼굴로 황도욱과 선생님을 번갈아 쳐다봤다.
“여기서 사는 거 아니에요?”
“이렇게 좁은 곳에서 셋이 어떻게 살아. 종일 백재우 잔소리 듣다가 고막 죽일 일 있어?”
누나가 밥 한 숟갈 뜨다 말고 대꾸했다. 흠, 그건 그렇지. 잠깐 있어 본 결과 선생님의 잔소리는 견디기 어려워 보였다.
“그렇게 심각해요?”
“존나.”
그렇군. 나는 다시 상처받은 선생님의 표정을 애써 무시하며 식사에 집중했다. 밥 한 숟가락 뜨고 찌개 마시고 잡채 먹고 시금치 먹고 동그랑땡도……. 모든 반찬을 하나씩 다 집어먹었다. 음식 맛은 아주 훌륭했다. 태어나면서 계량기라도 손에 쥐고 태어난 건지 단맛과 짠맛이 아주 조화롭게 이루어져 있다. 간이 적절하다. 맨날 학교 급식만 먹거나 집에서 컵라면과 김밥으로 때우며 연명하는 삶을 살았더니 집밥이 눈물겨울 정도로 감동이었다.
“선생님, 우리 학교 영양사 선생님으로 보직 변경하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없다.”
안타깝다. 그가 온다면 매일 급식으로 괴로워하는 중생들의 낯에 꽃이 필 텐데. 그리고 나는 단숨에 영웅으로 등극하는 거다. 그러면 박강수도 날 더는 건드릴 수 없지 않을까? 물론 이루어지지 않을 바람이라는 것을 안다. 학교에서 난 이미 공범일지도 모르는 살인자의 아들이라는 낙인이 찍힌 상태고 박강수는 날 죽이지 못해 안달인 놈이다. 졸업하기 전까지 이 지옥은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그게 현실이다.
식사는 금방 끝이 났다. 큰일을 겪은 데다가 몹시 허기가 진 한 명의 청소년이 식탁 위의 음식을 전투적으로 결딴냈기 때문이다. 그러다 체한다고 말리는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린 것도 같았으나 나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말린다고 말려지기에는 혓바닥에 닿는 맛이 정말 끝내줬다.
나는 선생님이 뒷정리를 하는 동안 소파에 늘어지듯 누웠다. 황도욱도 냉큼 쫓아와서 아까와 똑같은 자세로 나를 끌어안고 목에 코를 묻었다. 이제 간지럽기까지 해서 손바닥으로 걔 이마를 밀었으나 한 번 밀려나고 말 뿐, 다시 바짝 붙어오기를 반복했다. 졌다, 졌어. 속으로 혀를 차며 불필요한 체력 소모를 관뒀다.
설거지를 하고 돌아온 선생님이 옆에서 함께 널브러진 청하 누나에게 말을 걸었다.
“일어나. 협회 갈 시간 됐어.”
나는 눈을 도르륵 굴리면서 둘을 쳐다봤다. 다른 손으로는 황도욱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걔가 고양이처럼 가르릉 소리를 내며 뺨을 비볐다.
“아, 왜 하필 지금. 밖에 비도 오는데.”
“가서 이번 건에 대해 보고도 해야 되고.”
누나가 세상 억울한 말투로 찡찡거렸다. 나가기 싫어 죽겠다는 얼굴이 절절하다.
“너 혼자 다녀와.”
“좋은 말 할 때 나와. 아, 채승이는 도욱이 따라 올라가. 내일 등교 늦지 말고 제때하고. 도욱이 등교는 다음 주부터야. 반찬은 냉장고에 다 넣어 놨으니까 아침 굶지 말고 가라.”
선생님이 빠르게 읊었다. 핸드폰을 계속 쳐다보는 눈치는 한시가 급한 듯했다. 아직 궁금한 게 많은데. 그들이 말하는 협회라는 것도 그렇고 내 주변에서 들끓고 있다는 묵에 대한 이야기도 그렇고.
내 걱정을 눈치챈 듯 선생님이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지금 당장 설명해 줄 수 있는 건 한계가 있어. 우리가 조사 중인 것도 있고, 너와 묵에 대한 상관관계도 아직 다 추측에 불과해. 다 알려줘도 오히려 너의 불안만 증폭될 수도 있는 거고.”
따뜻하고 커다란 손이었다. 박강수한테 처맞고 상처투성이로 갈 때마다 안타까운 얼굴로 나를 치료해 주던 그 손.
“황도욱. 잘할 수 있지.”
“응.”
황도욱이 다부지게 대꾸했다. 듣기 좋을 정도로 낮고 단단한 목소리가 귀를 간지럽혔다. 나는 허리를 끌어안고 있는 황도욱의 손등 위에 내 손을 겹쳤다. 살갗의 표피가 발열하고 있었다. 타인보다 영 점 몇 도는 더 높을 게 분명한 체온이 나를 감싸 안았다.
“그럼 제 안전 무조건 보장해 주시는 거라고 약속해요.”
선생님은 단호한 어투로 즉답했다.
“물론이지.”
단 네 글자로는 만족이 되지 않는지 말을 덧붙였다.
“채승아. 나 말고 도욱이를 믿어 봐.”
“…….”
내가 입을 꾹 다물고 선생님을 응시했다. 여전히 황도욱의 손을 잡은 채였다. 곧고 길게 뻗은 손의 뼈마디가 단단했다. 망치를 얼마나 휘두르고 다녔던 건지 손바닥에 박힌 굳은살도 제법 딱딱하다. 열일곱 살 치고는 고생을 많이 한 손이다. 문득 그런 의문이 들었다.
이 아이는 언제부터 이 일을 했던 걸까.
“황도욱을 네 옆에 괜히 붙였겠어? 적어도 한국에 있는 환 중에서는 도욱이보다 묵을 많이 죽인 환은 없어.”
고개를 틀어 황도욱을 쳐다봤다. 여전히 순진무구한 얼굴로 끔벅끔벅 눈만 뜨고 있는 걔다. 여기저기 흠집이 난 손과는 다르게 반질반질한 얼굴이 십칠 세 고딩의 탱탱함을 자랑했다.
얘가 그렇게 대단한 애란 말인가. 나는 눈을 게슴츠레 뜨고 황도욱을 주시했다. 머릿속에서는 망치를 휘두르던 황도욱의 모습이 연신 재생됐다. 피가 튀어 빨갛게 된 얼굴, 살기로 번들거리는 눈, 망설임 없이 육체를 부수던 망치.
나는 선생님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수긍하기로 했다. 부모님도 다 잃고 일가친척조차 없는 천애 고아가 되어 버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사실 별로 많지 않았다. 그들의 말을 믿는 것 외에 더 도리가 없던 탓이다. 게다가 숙식 제공까지 해 준다는데 그걸 어떻게 거절하겠는가. 나는 지금 당장 갈 곳이 없었다.
“그럼 다녀와서 마저 얘기하자. 이청하, 가자.”
“준비는 아까 다 됐거든요.”
선생님은 툴툴거리는 청하를 데리고 방을 나갔다. 삐리릭 소리를 내며 닫히는 현관문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대화에서 아주 큰 지분율을 차지하고 있던 두 사람이 나가자 방은 단숨에 정적으로 가득 찼다. 황도욱은 나를 무슨 커다란 곰돌이 인형처럼 생각하고 있는 듯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누군가와 이렇게 살을 맞대고 붙어 있던 적이 하도 옛날 일이라 어색했으나 걔 몸에서 노릇노릇 피어나오는 따뜻한 온기가 또 싫지 않아 밀어내지도 않고 있던 판국이었다.
나는 걔가 무슨 말을 먼저 하기를 기다렸다. 어서 자러 가자든가……. 벽에 걸린 시계가 어느새 열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형.”
내 생각을 읽은 건가. 걔가 입을 뗐다. 내가 돌아봤다. 응 하고 대꾸하기도 전에, 황도욱이 말했다.
“같이 자요.”
얘가 남사스럽게 도대체 무슨 소리를? 나는 입을 떡 벌렸다. 연인 사이에서나 할 법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황도욱을 어이가 탈주한 얼굴로 쳐다봤다. 끔벅끔벅. 눈만 깜박거리고 있는 걔 얼굴은 꽤 볼만 했지만 그렇다고 이 미모에 홀려 넘어가기에는 뱉은 말이 꽤 뜬금없다. 어린애 투정을 너무 받아줬나. 혈기 왕성한 17세 고딩이 선 넘는 발언인 것도 모르고.
“뭐라는 거야.”
기껏 나온 말이 그거다. 나는 인상을 팍 구기면서 어깨와 손바닥으로 걔를 밀었다. 황도욱은 조금 버티다가 내 단호한 의지를 알아챘는지 금방 떨어졌다. 그렇지 않아도 아까 청하 누나가 켜두고 간 보일러 탓에 방이 더워지고 있었던 터라 황도욱의 체온이 슬슬 부담스러워지고 있기도 했다.
“같이 자면 안 돼요?”
걔가 마치 강아지처럼 순한 얼굴로 되물었다.
“이유가 뭔데?”
“형한테 나는 냄새가 좋아요. 안고 자면 푹 잘 수 있을 것 같아서.”
“그게 다야?”
“그거 말고 더 필요한 이유가 있어요?”
있어야 하지 않냐? 처음 만난 외간 남자랑 끌어안고 자려면? 나는 걔를 의심하는 눈초리를 숨기지 않았다. 어렸을 때도 종종 나를 향해 자신의 취향을 강요하는 사람을 몇 명 만난 적이 있더니 불신을 쉽게 거둘 수가 없었다.
“진짜 그게 다지?”
“응.”
황도욱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한숨을 삼켰다. 그래, 괜히 내가 예민하게 반응하는 걸지도 모른다. 도대체 나한테 무슨 냄새가 난다고 이렇게 달라붙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묵 특유의 썩은 우유 냄새와 피비린내를 매일 맡다 보면 별것 아닌 향기가 심적으로 안정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될 수도 있겠지. 아로마 테라피 같은 거. 나는 황도욱의 복슬복슬한 머리를 쓰다듬었다. 황도욱은 기다렸다는 듯 냉큼 두 팔을 벌렸다.
“또 수작이다. 일단 너희 집 가자. 같이 자는 건 올라가서 생각해 볼게.”
대놓고 실망한 얼굴을 하는 황도욱의 팔을 잡아당겼다. 이대로 두다가는 소파에서 둘이 끌어안은 채 붙어 잘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좁은 곳에서…… 다른 남자의 품에 안겨 잠드는 건 아무래도 좀 그렇지 않은가. 나는 아직 여자랑도 못 자 봤다. 남자는 물론이고. 솔직히 애초에 타인과 살을 밀착하고 잔다는 것 자체가 굉장한 애정을 동반한 일 아닌가. 단순히 곰 인형으로 전락하는 거라고 납득하기에는 그것도 그거 나름대로 인권 침해에 해당하는 일이다.
내가 먼저 일어나자 황도욱도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따라 일어났다. 걔는 나갈 준비를 했다. 틀어뒀던 보일러를 끄고 사방에 켜 둔 불도 껐다. 황도욱이 마지막으로 부엌의 불을 껐을 때, 우리는 중요한 사실 하나를 간과했던 것을 깨달았다. 지하 방에 창문 하나 없어 빛 샐 틈이 없다는 것을.
불을 끄자마자 암전이었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형상의 실루엣조차 삼켜버린 어둠이었다.
“……너 어디 있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 멈춰 서서 두 팔을 뻗었다. 허공을 더듬었지만 잡히는 것은 없었다. 황도욱도 보이지 않았다. 괜히 섣부르게 한 발자국 움직였다가 테이블에 종아리가 부딪히는 불상사가 일어나고 말았다.
“아!”
짜릿한 통증이 척추를 타고 전신으로 퍼졌다.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종아리를 감싸 쥐며 신경질을 냈다.
“황도욱! 안 나와?”
얘는 왜 말을 안 해. 사람 놀리는 것도 아니고.
“부딪혔어요? 몰랐어.”
다급하게 이쪽으로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말투에는 걱정이 섞여 있다. 넓고 큼직한 손바닥이 내 어깨를 짚더니 금방 손을 찾아 잡아 일으켰다. 아주 조금 어둠에 익숙해진 눈앞에 커다란 실루엣이 왔다 갔다 하는 게 보였다. 황도욱이다.
“잠깐만요. 금방 문 열게요. 보통 사람은 빛이 없으면 앞을 볼 수 없다는 거 잠깐 잊었어.”
변명을 주워 삼킨 황도욱이 현관문을 열었다. 내려올 때는 어두웠던 바깥 복도에서 쨍한 형광등의 빛이 무더기로 들어왔다. 갑자기 빛을 마주한 눈은 또 거기에 적응하느라 한참을 깜박거려야만 했다.
겨우 정신을 차린 나는 욱신거리는 다리를 절뚝거리며 방을 나왔다. 이미 현관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황도욱이 나를 보고 머쓱한 듯 뒷머리를 긁었다.
“많이 아파요?”
“멍들었을걸. 아주 새파랗게.”
내가 아이처럼 투덜거리자 황도욱은 어쩔 줄을 몰라 허둥지둥거렸다. 나는 얘가 이렇게 서툰 모습을 보일 때마다 아까 사람 머리를 깨던 애랑 동일 인물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거의 미취학 아동처럼 순진해 보이는 애가 (아무리 죽은 사람이라고 하지만) 타인의 육체를 훼손하는 유혈이 낭자한 일에 익숙해질 때까지 얼마나 오래 걸렸을까.
“미안해요.”
“됐어. 얼른 올라가.”
웅얼거리는 황도욱을 잡아끌고 계단을 올라갔다. 환하게 밝혀진 지하 통로에서 밖으로 나온 다음에는 황도욱이 앞장섰다. 아까 타려다가 말았던 엘리베이터를 잡고 30층을 눌렀다. 최고층이었다. 나는 혹시라도 올지 모르는 고소 공포증을 각오했다. 엘리베이터는 1층부터 30층까지 초고속으로 주파했다. 현기증이 돌 줄 알았는데 의외로 안 오더라.
“여기예요.”
황도욱은 문이 열리자마자 오른쪽으로 꺾었다. 꽤 넓은 로비를 가운데 두고 달랑 두 세대만 있는 구조였다. 나는 얌전히 걔 뒤를 따랐다. 슬슬 몸에 누적된 피로가 휴식을 요구하고 있었다. 눈꺼풀이 무거워져 자꾸만 감겼다. 종아리의 통증은 잊힌 지 오래다. 그저 눕고 싶었다.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빠르게 들렸다. 이윽고 현관문을 열고 먼저 들어간 황도욱의 뒤를 따랐다. 들어가자마자 느낀 감상은 역시 좋은 집이라는 것이다. 족히 60평은 될 것 같았다. 혼자 살기에는 너무 큰 게 아닌가 싶은 생각마저 들 정도. 무겁던 눈도 번쩍 뜨였다. 한 발자국 딛는 것조차 부담스러웠다.
“너 왜 이렇게 좋은 곳에 살아?”
내가 얼떨떨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물었다. 부자 동네라는 것은 익히 알았지만 이 집 안에 들어온 적은 당연히 단 한 번도 없다. 지하 방과 비교하면 서너 배는 족히 될 듯한 규모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겨우 열일곱 살밖에 되지 않는 주제에! 뭔가 억울했다. 대한민국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모르는 것도 아니었지만 실제로 눈으로 체감하는 것은 또 처음이었다.
황도욱이 들어가다 말고 멍청히 서 있는 나를 돌아봤다.
“협회에서 지원해 준 거예요.”
“협회?”
“네. 세계 부정 정화 협회라고. 약자가…… WCPA인가. 보통 그냥 정협이라고 불러요.”
아까 선생님이 말한 협회를 말하는 모양이었다. 뭐 하는 곳이길래 이런 어마어마한 곳을 제공해 주는 거지. 궁금증을 띄우기 무섭게 황도욱이 말을 이었다.
“대충 우리 같은 사람이 모이는 곳이에요.”
“우리라면…… 환?”
“네, 환. 불리는 명칭은 지역마다 달라요. 보통은 검은 것과 불꽃……, 뭐, 그 비슷한 명사로 통칭하기는 하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묵도 그렇다면 검을 묵이라는 뜻인가. 검은 것. 확실히 그것보다 더 직관적인 명칭은 없을 것 같다. 황도욱의 곱게 뻗은 손바닥 틈으로 빨려 들어가던 검은 연기를 떠올렸다.
“해외에서는 이미 퇴마 수법 중 하나로 통하고 있어요. 가톨릭 같은 타 종교와도 협업하고 있고. 그쪽은 완전한 영혼의 타락이 위주고 우리는 그 영혼의 찌꺼기와 싸우는 거지만. 칫솔은 여기. 새 거예요.”
걔가 화장실 서랍장에서 새 칫솔을 하나 뜯어내 손에 쥐여 주었다.
“협회는 세계에서 활동 중인 모든 환을 관리하고 있어요.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이긴 하지만 어쨌든 세상에 도움도 되는 일이고…… 해서 이것저것 기본적인 지원을 해 줘요. 묵을 한 번 잡을 때마다 그에 따른 수당도 나오고.”
“수당도 나와?”
나는 황도욱이 안내해 준 화장실로 들어가며 되물었다. 화장실도 무슨 내 방만 한 크기고 한쪽에 마련되어 있는 샤워 부스와 그 외 인테리어들이 깨끗하고 깔끔했다. 이게 보통 기본 구조인 걸까. 전체적으로 황도욱의 거주지는 딱 필요한 것만 있다는 인상이 강했다. 있는 가구들도 마치 원룸 풀 옵션처럼 기본적으로 있는 게 다였다.
옆에서 걔가 내 칫솔에 치약을 짜주었다. 나는 덥석 입에 물고 이를 닦으며 황도욱의 말을 마저 들었다.
“네. 하나 잡을 때마다 일천 정도.”
“일천!”
비명인지 감탄인지 모를 외마디가 튀어나왔다. 이를 닦다 말고 입을 벌린 탓에 치약이 턱 밖으로 흐를 뻔했다. 나는 다급하게 대충 뱉어내고 황도욱을 쳐다봤다. 일천을 입에 담으면서 표정 하나 바뀌지 않는다. 어쩐지, 어쩐지. 그러니까 이렇게 으리으리한 곳에서 사는구나. 나는 갑자기 그들이 몹시 부러워졌다.
“그렇다고 맨날 잡을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잘하면 달에 세 번, 평균은 두 달에 한 번. 환은 보통 평범한 사람처럼 일을 하며 살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애? (왜?)”
선생님은 평범하게 일하면서 살던데. 나는 눈을 깜박거렸다. 황도욱이 옆에서 본인 칫솔을 집어 들었다. 연두색 칫솔의 꼬리에는 귀여운 개구리가 달려 있다. 이건 대체 누가 사 준 걸까. 미취학 아동의 취향이 분명해 보이는 칫솔을 쥔 황도욱의 손을 따라 시선으로 훑었다. 어느새 도달한 곳은 걔 얼굴이었다.
무심한 듯 나른한 표정이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사슴을 닮은 얼굴.
“환은…… 묵을 먹지 않으면 죽어요.”
고저 없는 어투가 이어졌다. 걔가 흘깃 나를 쳐다봤다.
“묵이 살아있는 사람의 영혼을 먹어 생을 연명하는 것처럼, 우리는 묵을 먹어야 살 수 있어요. 먹지 않으면 죽어요. 몸이 이렇게, 부서져요. 먼지처럼. 인어 공주처럼.”
말을 잃었다. 반사적으로 칫솔을 움직이고 있었으나 눈은 황도욱의 얼굴에서 뗄 수가 없었다. 죽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숙식과 돈을 받는다는 이유만으로 환 그거 꿀 빠는 직업 아니냐고 생각했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황도욱이 칫솔을 입에 물었다. 입에 물기 직전, 툭 내뱉은 말이 내 고막에 틀어박힌 것도 모르고.
“누군가는 저주라고 불러요, 이걸.”
저주라는 낯선 듯 익숙한 단어가 입안에서 맴돌았다. 나도 한때 이 비굴한 인생을 원망해 저주받은 삶이라고 날이면 날마다 곱씹고는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다른 사람에 비해서 몰아치는 불행 때문에 변명처럼 주워 삼키던 입버릇에 불과했다. 진짜로 어떤 존재를 주기적으로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 판타지 같은 설정이 결합한 저주와는 다른 이야기다.
나는 양치를 마치고 대강 씻은 다음 황도욱이 침실로 안내할 때까지 환이라는 존재에 대해 계속 생각했다. 사실 뇌리에 꽂힌 건 두 가지 사실이다. 죽이지 않으면 죽는 것 그리고…….
“그런데 진짜 건당 천이야?”
“네.”
건당 천이면 부자 되는 것도 금방이겠다. 살짝 철없는 생각을 좀 했다가 금방 반성했다. 아무리 그래도 저주받은 삶이라고 말하는 사람 앞에서 이런 생각은 좀 그렇겠지. 에이! 이 쓰레기 자식.
도욱이가 문을 열어준 방 안에 있는 가구라고는 달랑 킹사이즈 침대 하나와 그 옆에 놓인 5단 서랍장이 다였다. 나는 문지방을 밟으면서 황도욱을 힐끔 쳐다봤다. 얘가 지금 활동하고 있는 환 중에서 최고 기록을 보유 중이라고 했던가. 그렇다면 보유 중인 자산은 최소 억 단위겠네. 진짜 억 소리가 난다. 대충 집을 둘러봤을 때 사치품에도 딱히 관심은 없어 보였다. 그 말은 즉 황도욱 통장에는 밖에 풀리지 않은 돈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는 뜻이다.
돈 때문에 19년 동안 고생하며 살아왔던 나로서는 그깟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는 저주 따위 별로 무섭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어차피 이쪽은 돈 없으면 죽을 인생을 고비마다 넘기며 생존해왔다.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을 거 돈이라도 좀 많이 벌고 펑펑 쓰면서 사는 게 낫지 않겠는가. 그래도 역시 당사자가 아닌데 이런 생각은 좀 그렇겠지. 다시 반성해 본다.
“같이 자 줄 거예요?”
허튼 생각에 빠져 있는데, 걔가 내 어깨를 짚으며 말을 걸어왔다. 나는 번뜩 고개를 쳐들었다. 우리는 이미 깨끗한 이불과 시트가 깔린 침대 앞에 서 있었다. 황도욱은 뭔가를 굉장히 기대하는 눈으로 나를 응시하고 있다. 색소 옅은 갈색 머리카락이 눈앞에서 흔들렸다.
“아무래도 우리 오늘 초면인데 첫날밤부터 살을 맞대고 자는 건 좀 유교 정신에 어긋나는 일 아닐까?”
내가 말했다.
“형, 유교 아니잖아요.”
“대한민국 사람으로 태어나서 유교의 압박에 시달리며 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어. 너 나한테 존댓말 꼬박꼬박하고 이러는 것도 다 유교야. 삼강오륜도 모르냐. 너 지금 이거 장유유서라고.”
고작 17세와 19세 사이에 끼워 넣을 논리는 아니긴 하지만 말이다. 황도욱은 못마땅한 듯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그래도는 뭘 그래도야. 이불이나 줘. 베개랑. 혼자 산다고 설마 손님용 침구도 없는 건 아니지.”
빠르게 쏘아붙이며 움직였다. 침대 하나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줄 알았던 벽면 한쪽이 벽장이라는 것은 뒤늦게 깨달았다. 나는 멀거니 서 있는 황도욱을 지나쳐 벽장 문을 벌컥 열었다. 다행히 안쪽에는 여분의 이불과 베개가 몇 개씩 쌓여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맨바닥에서 잘 뻔한 상황은 모면해서 다행이다.
“왜 안 돼요?”
황도욱이 어느새 옆에 바짝 달라붙었다. 이불 두 개를 꺼내 하나는 밑에 깐 다음 다른 하나는 덮고 잘 이불로 세팅이 완성된 참이었다. 적당한 두께의 베개도 찾아 꺼낸 다음 옆구리에 끼웠다. 이제 바닥에 등을 대고 누우면 잘 준비는 끝이었는데.
“진짜 안 돼요?”
포기를 모르고 달라붙는 얘가 문제다. 나는 귀찮은 눈으로 황도욱을 밀어냈다.
“안 된다니까. 뭐가 문제야? 너는.”
“형 냄새가…….”
“내가 나중에 같은 비누 사 줄게. 그러니까 오늘은 그냥 혼자 자. 나 멀리 가는 거 아니고 바로 옆에 이불 폈잖아.”
“…….”
한 번만 더 말 꺼내면 아예 거실로 나가 버리겠다는 내 뜻을 읽었는지 황도욱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입을 꾹 다물고 미간이 미세하게 구겨진 걸 보면 아직 성에 차지 않은 게 분명했지만 말이다. 나는 마치 어린애 다루듯 팔을 부드럽게 잡아 침대로 당겼다.
“얼른 자. 나 내일 또 학교 가려면 일찍 일어나야 해서 너랑 실랑이할 시간 없어.”
게다가 여기서 학교까지 가려면 등교 시간 평소보다 30분은 더 잡아야 한다고. 30분은 더 일찍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하니 벌써 눈앞이 캄캄했다. 아침잠이 많은 나로서는 하루아침에 늘어난 30분이 꽤 큰 부담이었다.
“……그럼 어디 가지 마세요.”
무슨 분리 불안 있는 강아지도 아니고. 침대 위에 올라가면서도 옆에 있는 내게서 시선을 뗄 줄 모른다. 처음에는 그냥 취향에 맞는 향을 (얘는 꾸준히 냄새라고 발언하지만 사실 냄새보다는 향기가 좀 더 듣기 좋을 것 같다) 발견한 사람한테 치대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라고 생각했는데 보면 볼수록 좀 이상하다. 애초에 사람을 싫어한다는 선생님의 증언부터가 지금의 태도만 봐서는 연상이 안 되는 말이지만.
어쩐지 자고 싶어 하지 않는 황도욱을 눕히고 그 옆에 앉은 다음, 운을 띄웠다.
“나한테 나는 향이 그렇게 좋아?”
황도욱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왜 좋은데?”
“편안해요. 다른 냄새도 안 나고…….”
“다른 냄새?”
“썩은 냄새. 내 몸에서 썩어가는 냄새.”
걔가 웅얼거렸다. 마치 들키고 싶지 않은 사실이라는 듯 이불을 끌어당기며 얼굴의 반을 가렸다. 사슴 닮은 눈만 밖에 쏙 빼놓고 나를 쳐다보고 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되물었다. 썩은 냄새라고 한다면 묵을 말하는 건가. 그것들한테서는 고약한 냄새가 났고 나도 익히 알고 있는 바니까. 지금도 그때를 상기하면 제일 먼저 감각되는 게 후각이었다. 썩은 우유 냄새와 비슷하지만 사실 잘 따져보면 그것보다 더 비리고 역한 냄새다. 찌꺼기라고 하더니, 정말 속부터 썩어가는 냄새 같은 거.
묵과 환에 대한 것을 아직 잘 알지는 못하지만, 그 고약한 냄새가 잔향처럼 코에 오래 남아 있다면 괴로울 건 분명했다. 익숙해져서 후각이 둔감해지면 모를까, 그것도 아닌 것 같으니까.
황도욱은 더 이상의 대꾸가 없었다. 지금까지 두개골 터질 정도로 주입식 지식 때려 넣을 때는 언제고.
“잘게요.”
“자려고?”
“네. 같이 안 자 준다면서요.”
삐쳤냐? 일곱 살 애 투정도 아니고. 나는 어이가 없는 얼굴로 걔를 쳐다보다가 그래라 하고 침대 밑으로 내려왔다.
방에 켜 두었던 불을 끈 다음 미리 깔아둔 이불 위에 몸을 눕히고 두께가 조금 있는 이불을 몸 위로 끌고 왔다. 포근하고 부드럽다. 극세사인가 봐. 항상 시장에서 산 싸구려 이불만 써왔더니 부드러운 촉감이 생경했다. 부자는 이렇게 사는구나……. 부럽다. 다시 한번 환으로 사는 인생에 대해 진지하게 고심해 보기로 했다.
“형.”
뜬금없이 걔가 불렀다. 나지막한 목소리가 어둠을 타고 내게 닿았다.
“왜.”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잘 자요.”
괜히 미안해지게 저렇게 다정한 인사를.
언제부터 잠이 든 건지 알 수 없다. 많이 피곤했는지 눈을 감자마자 수마에 빠졌던 것 같다. 황도욱이 건넨 굿나잇 인사를 들은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 나는 불현듯 이상한 소리를 감지하고 눈을 떴다.
“으…….”
누운 채로 눈만 끔벅끔벅하며 암전에 적응하려고 애썼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창문에 달려 있던 블라인드가 암막 커튼은 아니었던 걸로 보아 아직 동이 트기 전인 걸로 추측했다.
“으, 으으…….”
현재 시각을 파악하기 무섭게 귓속을 파고드는 의문스러운 신음 소리에 나는 벌떡 상체를 일으켰다. 이 방에는 두 사람밖에 없는데 나는 아니니 남은 사람은 분명.
“황도욱, 괜찮아?”
서둘러 방의 불을 켜고 침대 옆에 붙었다. 황도욱이 이불을 꽉 끌어안고 식은땀을 흘리며 끙끙 앓고 있었다. 꼭 감은 두 눈의 속눈썹이 안타까울 정도로 파르르 떨렸다. 주먹을 꽉 쥔 손가락과 손등에는 하얀 핏줄이 툭 불거졌고 안색도 창백할 정도로 나빴다.
악몽을 꾸는 건가? 그렇다기에는 상태가…….
“야, 일어나 봐.”
내가 다급하게 황도욱의 어깨를 짚고 흔들었다. 119에 신고라도 해야 하나? 그런 생각을 할 때였다.
“…….”
“아, 어…….”
걔가 눈을 떴다. 상체를 반쯤 일으키며 어깨를 짚은 내 손을 덥석 낚아챘다. 살기가 번들거리면서도 어쩐지 초점을 잡지 못하고 있는 눈이 나를 쏘아봤다. 눈이 마주쳤다. 황도욱의 시선은 나를 향하고 있었으나 어쩐지 다른 것을 보고 있는 듯한 표정이었다.
“야……. 괜찮아?”
나는 잡힌 손목을 빼려고 애쓰며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저 표정은 분명 묵을 쳐 죽일 때의 그 얼굴 아닌가. 잠결에 혹시라도 나를 묵으로 착각하고 망치를 휘두를까 봐 등골에 소름이 돋았다.
문득 황도욱이 눈을 천천히 깜박였다. 내 목소리에 반응한 듯 동공이 서서히 초점을 찾았다. 누구 한 명 죽일 듯이 위협적으로 구겨졌던 얼굴도 다시 서서히 돌아와 어느새 온순한 사슴이 되어 있었다.
“……강채승.”
걔가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속삭이듯 내 이름을 호명했다.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지금 형한테 반말이 뭐야라고 구박할 때가 아니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황도욱은 여전히 황도욱이었지만 이끌면 이끄는 대로 밀면 미는 대로 휩쓸리던 맹한 황도욱이 아니었다.
내가 오늘 처음 만난 아이의 모습을 도대체 몇 개나 목격하는 거지. 가슴이 서늘했다. 나를 직시하는 황도욱의 곧은 눈이 내 사지를 옭아맸다. 마치 맹수 앞에서 전의를 상실한 소동물이 된 것처럼 나는 숨을 죽였다. 그런데도 나는 맹수를 가여워했다. 이유도 모르면서. 기묘하다. 이 아이에게 달라붙은 어떤 고약한 ‘부정’이 있는 듯해서.
“강채승.”
황도욱이 연거푸 호명했다. 붙잡은 손목을 천천히 잡아당겼다. 내 몸은 속절없이 끌려갔다. 그 커다란 눈이 나를 애절하게 갈구하고 있어서 차마 거부할 수 없었다. 아니, 어쩌면 그것보다 이불을 생명줄처럼 끌어안고 벌벌 떨고 있던 그 모습이 안쓰러워서 거절하고 싶지 않았던 걸지도 모른다.
괜한 오지랖일지도 모른다. 내 목숨을 구해 준 애한테 주는 답례라고 합리화를 해도 과한 게 분명하다. 악몽에 시달리는 거 깨워 줬으면 됐지, 부담스러운 요구를 들어줄 필요는 없는 것 아닌가. 내가 얘를 밀쳐낸다고 하더라도 나를 욕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밀어낼 수 없는 이유는.
“같이 자자…….”
나를 품에 꽉 끌어안고 색색 내쉬는 그 호흡이 너무 뜨거워서. 창백한 안색과 다르게 펄펄 끓는 몸이 너무 가여워서. 놓으면 죽는 동아줄이라도 쥐는 것처럼 날 끌어안는 두 팔은 놀라울 정도로 조심스러워서. 내 목에 얼굴을 묻고 몇 번 숨을 쉬더니 점점 안정을 찾는 걔가 신기해서.
옛날에 키우다 죽었던 고양이가 생각나서.
“잘 자.”
미처 하지 못한 인사를 귓가에 속삭여 주며 나는 그렇게 한참이나 황도욱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눈을 뜨자마자 직감했다. 좆됐다. 지각이다.
전신을 관통하는 불길한 직감의 근원은 고요하게 내리쬐는 햇빛이었다. 내가 제때 일어났다면 아직 어두컴컴한 하늘 속에서 막 해가 삐죽 솟을 때이기 때문에 이렇게 정오의 따스한 빛을 마주하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
그러니까 지금 이건 그거다. 학교에서 점심 먹은 다음 식곤증을 불러일으키는 오후의 나른한 태양. 재빠르게 벽에 달린 시계를 쳐다봤다. 12시 30분. 진짜 좆됐다. 오전 수업 다 날려 먹었네.
“황도욱. 야, 황도욱. 일어나 봐.”
나는 나한테 매달리듯 엉겨 붙은 황도욱을 밀어내며 상체를 일으켰다. 꼼짝도 하지 않는다. 누구는 급해 죽겠는데, 혼자 태평하게 널브러졌다. 괘씸한 자식! 나는 어쩔 수 없이 황도욱을 내버려 두고 주섬주섬 침대 밖으로 나왔다.
그러고 보니 핸드폰을 집에 놓고 와서 담임한테 연락할 수도 없다. 게다가 교복마저 없지 않은가.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집에 들렀다가 교복을 챙겨 학교에 가는 게 좋을까, 그냥 학교로 바로 가서 체육복이라도 갈아입는 게 좋을까.
대궐 같은 집을 횡단해서 겨우 화장실에 도달한 나는 몸을 씻으면서 최선의 방도를 궁리했다. 핸드폰이 없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렇다 쳐. 없어도 학교는 갈 수 있다. 그러면 학교까지 갈 차비는 어떡하지. 아, 택시 아저씨한테 남겨 먹은 이만 원이 있지. 이만 원이면 무사히 갈 수 있을 거다. 교복은……. 아니, 교복이 문제가 아니다. 애초에 옷이 없는데. 나는 문 앞에 벗어서 던져둔 황도욱의 반소매 티셔츠와 반바지를 생각했다. 한여름도 아니고 아직 기온 차가 큰 아침에 저대로 입고 나가면 최소 감기다. 여기까지 입고 왔던 옷은 피범벅인데다 애초에 지하 방에서 가지고 올라온 기억도 없고.
어쩔 수 없다. 나는 몸을 씻고 나와 수건으로 머리를 탈탈 털며 황도욱의 옷장을 열었다. 뭐든 내가 입을 수 있는 옷 한 벌은 있겠지. 외투도 있으면 땡큐고.
다량의 무채색 옷 사이에 간간이 섞여 있는 채도 낮은 색들을 지나쳐 나는 낯익은 옷 한 벌을 발견했다. 교복이었다. 연경고의 마크가 붙어 있는 짙은 남색의 교복. 나는 옳다구나 하고 빠르게 옷걸이를 집어 들었다. 꺼내고 보니 우리 학교 교복인 게 더 명확해졌다. 전학 올 거라더니 교복을 미리 준비해 둔 모양이다. 아직 걔가 자고 있을 침실에 눈길만 슬쩍 두었다가 흐흐 웃었다. 오늘 전학 올 건 아니니까 괜찮겠지. 나는 스스로 납득하며 걔 옷을 몸에 걸쳤다.
그렇지 않아도 키가 크다 싶더니 옷 소매와 바짓단이 질질 끌렸다. 두세 번을 접고 나서야 겨우 몸에 맞게 됐다. 헐렁헐렁해서 무슨 초등학생이 형 옷 훔쳐 입은 꼴이었다. 남들이 보면 웃을 게 뻔했지만 그렇지 않아도 지각인 판에 사복으로 등교하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았다.
내가 소란을 벌이는 와중에도 여전히 잠에 빠져 있는 황도욱을 그대로 두고 집을 나왔다. 적막한 오후의 햇살을 느낄 새도 없이 빠르게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온 나는 급하게 택시를 잡아탔다. 연경고요. 기사 아저씨는 목적지를 제시하는 내 말에 가타부타 덧붙이는 말없이 핸들을 틀었다.
그렇게 달렸다. 30분을 넘게 한산한 도로를 질주하고 도착한 학교는 적막했다. 이미 시간은 한 시를 넘었다. 점심 먹고 밖에서 땀 빼던 놈들도 지금은 책상 앞에 앉아 졸고 있을 시간이었다. 식곤증에 함몰되어 있을 학우들의 모습이 안 봐도 뻔했다.
아침마다 교문 앞에 서서 등교하는 학생들을 감시하던 선생님들도 없다. 다행이다. 1차 고비는 넘겼다. 어차피 교실에 들어서면 선생님과 맞닥뜨리거나 교무실에 불려가 야단맞을 건 분명하지만.
나는 서둘러 교정을 지나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4층에 있는 3학년 3반까지도 단숨에 뛰어갔다. 늦었지만 서둘렀다는 성의 정도는 보여 줘야 미움을 덜 살 것이 아닌가. 이미 학교 구성원 모두에게 찍힌 몸이라 뭘 하든 아니꼬울 게 안 봐도 뻔했지만 그래도 이건 최소한의 도리니까.
계단 두 칸씩을 뛰어넘으며 한달음에 교실 뒷문까지 도달했다. 아직 수업 중인 듯 복도는 적막했고 지과 선생님의 나긋하고 조용한 목소리만 간간이 문틈 사이로 새어 나왔다.
나는 조심스럽게 뒷문을 열었다. 최대한 소리를 죽인다고 죽였으나 아무래도 수업 시간 도중 열리는 뒷문의 소음은 숨길 수 없는 것이었다. 한 발자국 들이밀자마자 모두의 시선이 내게 쏠렸다.
“죄송합니다.”
“들어가서 앉아.”
부수적인 꾸중은 없었다. 지과 선생님은 나에게 악의를 가진 자들로만 가득 찬 연경 고등학교에서 드물게 아무런 감정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는 모든 학우에게 똑같이 무심했다. 정년까지 남은 5년 동안 어떤 열정도 감정도 소모하지 않겠다는 다짐이 결연했다.
학우들의 시선이 따가웠다. 뭐라고 대놓고 말은 안 하는 대신 머리부터 발끝까지 샅샅이 훑는 눈들이 불쾌하다. 이럴 때는 차라리 박강수가 낫다. 걔는 표출이라도 하지, 이렇게 은근히 체면은 지키면서 아닌 척 괴롭힘에 가담하는 꼴이 더 역겨웠다.
어제 가방을 놓고 가서 다행이었다. 자칫했으면 아무것도 없이 앉아 있을 뻔했다. 난 사물함에 넣어둔 가방을 꺼내 책상 옆에 걸고 교과서와 필기구를 꺼냈다. 교과서에서 아직 가시지 않은 우유 냄새가 코를 찔렀다. 우웩. 내가 헛구역질을 하든지 말든지 수업은 다시 재개됐다. 나는 다른 때보다 좀 더 노골적으로 날 곁눈질하는 눈깔들과 코를 괴롭히는 냄새를 모른 척하며 남은 수업에 집중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학교에 도착한 것만으로 내 수난이 전부 끝난 것이 아니었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담임 선생님이 날 호출했다. 지각자로서 당연한 수순이었으나 벌써 골이 아팠다. 그는 이때를 건수 삼아 내 면전에 대고 온갖 모욕적인 발언을 일삼을 것이다. 안 그래도 살인자의 아들을 자신의 반에 둔다는 것 자체를 참을 수 없어 하는 사람이었다. 얄궂은 내게 어떻게든 시비를 걸고 싶으나 지금까지 아등바등 완벽한 모범생 및 우등생으로 살아온 내 꼬투리를 잡기란 쉬운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이야, 넝쿨째 굴러온 좋은 핑곗거리 아닌가. 반장을 시켜 날 부를 그 인간의 얼굴에 은은하게 감돌았을 미소가 안 봐도 뻔했다.
교무실에 입성하자 예상한 대로 선생님들의 싸늘한 눈초리가 내게 쏟아졌다. 이거 불과 몇 분 전 상황과 똑같은 것 같은데.
무시했다. 이런 시선 하나하나 예민하게 굴면 나만 피곤하다. 한두 번 겪는 일도 아니고. 무뎌진 감정을 방패 삼아 머리가 반 벗겨진 담임 앞에 섰다.
“부르셨어요.”
“그래, 불렀다. 내가 부르기 전에 먼저 와야 하는 거 아니냐?”
초장부터 시비다. 제 발로 가기 전에 불러 놓고.
“죄송합니다.”
그러나 사회생활이란 이런 것이다. 여기서 호기롭게 오기 부려봤자 내게 득 될 것은 없다. 미운털 박힌 놈은 찍소리하지 않고 납작 기는 게 사회에서 배척당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래도 졸업은 해야 할 것 아닌가. 지금까지 3년 다닌 게 아까워서라도 자퇴는 절대 안 된다. 성적도 어떻게 유지했는데. 존나 좋은 최상위 대학에 진학해서 돈도 많이 벌고 안정적인 직장을 얻은 다음 아무도 날 무시하지 못하도록 떵떵거리고 살아야지.
“죄송? 죄송하다면 다야?”
그럼 뭘 더 원하시는지. 반성문인가요, 아니면 교내 봉사라도 하나요. 감흥 없는 눈깔만 대굴대굴 굴리면서 혀를 씹었다. 자제하지 않으면 말대꾸가 꼬박꼬박 튀어 나갈 것이다.
“왜 늦었어?”
“…….”
대답할 수 없었다. 그렇지 않은가. 갑자기 2년 전에 사람 죽이고 도망간 아버지가 찾아와서 저를 죽일 뻔했고 웬 남자애가 와서 구해 줬어요. 아, 아버지는 그대로 죽었고요. 그런데 아버지가 진짜 아버지가 아니래요. 아무튼 덕분에 집이 엉망이 된 바람에 그대로 그 남자애를 따라갔다가 다른 집에서 잤는데, 시계도 없고 집도 멀고 교복도 다 놓고 왔고. 어쩌고저쩌고. 어떻게 말하든 머릿속 시뮬레이션 결과는 파국이었다. 날 허언증 혹은 망상증 환자로 치부할 상대의 태도가 뻔했다.
새삼 깨달았다. 그들이 굳이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는 경고를 덧붙이지 않은 게 아니었군. 어차피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이야기였다.
“왜 늦었냐고.”
“늦잠 잤습니다.”
나는 그가 납득할 만한 이유를 대줬다. 사실인 것도 맞다. 조금 억울한 구석이 없잖아 있지만 어쨌든 따지고 보면 늦잠은 부정할 수 없는 직접적 원인이니까.
“부모님 없다고 너무 늘어지는 거 아니냐?”
치사하다. 다 큰 어른이 부모님 붙잡고 늘어지냐. 불쾌해서 미간을 구겼다. 담임은 그 안면 근육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았다. 어쭈 하면서 피실 쪼개더니 기다란 나무 막대기로 내 이마를 쿡쿡 찔렀다.
“얼굴 펴. 안 펴? 뭘 잘했다고 표정을 구겨? 어?”
“…….”
“너 이 새끼, 어젯밤에 어디서 뭘 하고 다녔는지 누가 알아. 어? 막말로 네 애비랑 몰래 내통하고 있을 수도 있는 거 아니야?”
와, 이건 진짜 막말인데. 어디까지 참아야 하는 거지. 사회생활이고 뭐고 그냥 다 뒤집어엎을까, 아니면 확 아동 학대로 신고해 버릴까.
“김 선생님, 그건 말씀이 좀 너무 심하신데요.”
그때 보건 선생님이 내 이마를 찌르던 나무 막대를 잡아 치우며 등장했다.
“잘못한 부분만 혼내셔야지, 부모님 언급은 애들 보기에도 안 좋아요. 혹시나 다른 학생들 입 통해서 학부모님 귀에라도 들어가면 어떡해요. 학교 이미지도 실추되고 교장 선생님도 별로 좋아하시진 않을 겁니다.”
앞머리를 내리고 안경을 쓴 보건 선생님은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담임을 막아 세웠다. 그는 보건 선생님의 간섭에 눈썹을 찡그리며 불쾌한 티를 내다 말고 주변에 서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몇 학생들의 시선을 의식했는지 슬며시 팔을 내렸다.
“아니, 요즘 워낙 소문이 흉흉하니까.”
“사실 내일 전학 올 제 조카 좀 잘 부탁한다고 집에 초대했다가 하룻밤 자고 가라고 했거든요. 잠자리가 익숙하지 않은 데다가 조카 잠버릇이 심해서 잘 못 잤을 텐데 제가 바빠서 아침에 제가 못 챙겨 줬네요. 제가 대신 사과드릴 테니까 화 푸세요.”
“아, 조카분 전학 온다고 하셨죠?”
“네. 워낙 낯을 많이 가리는 애라 미리 학교 선배라도 한 명 알아두면 좋지 않을까 해서……. 죄송해요, 선생님.”
보건 선생님이 그렇게까지 얘기하자 담임도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떨떠름한 표정은 가시지 않았다.
“그래도 벌점은 추가할 겁니다. 교칙은 교칙이에요.”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람 좋게 웃는 보건 선생님의 면상에 대고 천하의 담임 선생님도 뭐라고 더 할 수 없는 듯 손짓만 휘적였다. 명백한 축객령이었으므로 나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 냉큼 뒤로 돌아 교무실을 나왔다.
닫힌 교무실 앞에 서서 뻗치는 화를 가라앉기 위해 잠시 서 있었다. 지가 어른이면 다야? 사회적으로 위신 좀 받쳐주는 선생이라고 학생에게 막말할 권리가 주어지냐는 말이다. 누구보다도 언행에 신경 써야 할 직무에 종사 중인 사람이 내뱉을 말은 아니지 않은가. 자라나는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해 앞장서야 할 사람이 나서서 가슴에 비수를 꽂는다. 하여튼 요즘 임용고시는 인성 검사도 필수로 통과하도록 개정되어야 한다니까.
“채승아.”
뒤따라 나온 보건 선생님이 내 어깨를 짚었다. 그는 어쩐지 자기가 다 미안한 얼굴로 멋쩍게 서 있었다.
“선생님이 왜 그런 표정을 하세요.”
“내가 좀 더 신경 써 줄 걸 싶기도 하고 같은 어른으로서 창피하기도 하고.”
그냥 보건실만 들락거리면서 의미 없는 농담 따먹기나 할 때는 몰랐는데 생각보다 괜찮은 어른이었다. 어디 영화나 드라마 같은 곳에서 튀어나온 것 같다. 선생님의 다정한 음성에 나는 우습게도 금방 마음의 평화를 찾았다.
“담임이 저 지랄인 게 왜 선생님이 대신 창피해요. 인간은 다 따로 노는 개체라고요. 괜히 이입하실 필요 없어요. 아니면 전 뭐 박강수 대신 세상에 사죄하고 다니게요?”
“그건 그러네.”
선생님이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내가 생각해도 허를 찌르는 비유였다. 등신처럼 단숨에 기분이 괜찮아진 나도 참 단순한 새끼다. 죽은 아버지가 살아 돌아와 다시 나를 죽이려고 했던 참상이 불과 어제인데 내 평정심은 생각보다 일을 잘했다. 아직 실감이 나지 않아서 그런가, 평범한 일상 말고 다른 세상이 바로 옆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그런데 어떻게 딱 맞춰서 오셨어요? 조금만 늦었어도 제가 그 나무 막대기 부러트릴 뻔했는데.”
과격한 농담이다. 나는 한순간의 혈기로 학교생활을 망칠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다. 이미 지금도 진창이라 더 망가질 구석이 있나 싶은 합리적 의심이 들지 않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공식적으로 문제아 딱지를 달고 다니는 건 좀 다른 이야기다. 자칫 잘못해서 징계라도 받아 버리면 내 학생부는 걷잡을 수 없이 수렁으로 박힐 것이다. 지금도 벌써 욕으로 점철되어 있을 것 같긴 한데.
“오전에 볼일 좀 봤다가 이제 왔거든. 네 짐도 집에서 다 챙겨왔는데 다른 건 도욱이 방에 놔두고 핸드폰만 챙겨 왔어.”
다섯 손가락을 곧게 뻗은 손바닥 위에 놓인 검은색 핸드폰이 눈에 들어왔다. 여기저기 긁히고 흠집이 나 이미 걸레짝이 된 몰골이다. 케이스도 끼지 않고 다니는 무심한 성격 탓에 핸드폰은 맨몸으로 몇 년이나 충돌을 견뎌왔으니 당연하다. 오늘 아침 이것만 있었어도 내가 지각은 하지 않았을 텐데. 멍청비용으로 날아간 택시비 만 원을 떠올리며 그가 준 핸드폰을 챙겨 주머니에 넣었다.
“이거 주려고 교실 왔다가 교무실 들어가는 네가 보여서 쫓아 들어갔어. 들어가길 잘했네. 김 선생님이 평소에도 너한테 막말을 좀 하시니?”
“그렇죠, 뭐. 그래서 제가 꼬투리 안 잡히려고 기를 쓰고 학교생활에 충실한 거잖아요. 우리 학교에서 저 제일 싫어하는 거 박강수 다음으로 담임일걸요.”
“그 정도야?”
의아하게 되묻는 선생님을 보면서 혀를 찼다.
“선생님, 다른 선생님들이랑 별로 안 친하죠? 요즘 그 사람들 사이에서 안주 대신 씹히는 게 나일 텐데.”
“들켰네. 그냥 몇 번 섞이고 말았어. 그때도 딱히 네 이야기를 들은 적은 없고…….”
“저 감시하러 왔다면서 주변 사람 이야기 안 들어도 되는 거예요?”
“감시라니. 엄연히 보호 차원이라니까.”
선생님이 당황한 말투로 빠르게 변명했다. 장난인데. 피실 웃으면서 한 발짝 옮겼다.
“그리고 주변 사람 이야기보다는 난 내 눈으로 직접 본 실체를 믿어. 주변인의 편견에 고생했던 거 아니었어?”
“그건 그렇지만…….”
구구절절 옳은 말이 생경하다. 요즘 이렇게 올바른 말을 한 사람을 본 적이 없어서 나는 그의 등장이 새삼 낯설었다. 불신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한 줄기 빛 같은 인간 군상이다. 그래, 이런 사람도 있어야 사회가 굴러가지. 죄다 악인만 있으면 이미 인류는 멸종했을 거다.
“수업 시작하겠다. 들어가.”
“네.”
“종례하면 잠깐 기다려. 오늘은 나랑 같이 갈 거니까.”
“선생님이랑요?”
“응. 등교는 못 챙겼으니까 하교라도 챙겨야지. 그럼 수업 잘 듣고.”
다행히 택시비는 굳었군. 사실 오늘 집에는 어떻게 가나 했다. 아직 우리 집에 돌아갈 준비는 안 됐고 그렇다고 다시 황도욱 집으로 가기에는 또 멀기도 해서. 선생님 아니었으면 분명 버스 타고 한 시간 거리를 빙빙 돌아갔을 것이다.
선생님의 제안으로 하교에 대한 걱정을 잠재운 나는 교실 뒷문을 열었다.
“…….”
그리고 열자마자 다시 닫고 싶어졌다. 씨발, 저 새끼는 진짜 어떻게 휴업 한 번을 안 때리냐. 성실하다, 성실해. 저 근성을 학업에 쏟았으면 서울대는 따놓은 당상이었을 텐데.
“늦었다?”
“보고라도 했어야 했나?”
“했어야지.”
지랄이 참 막무가내다. 헛웃음을 쳤다. 박강수가 내 자리를 차지한 채 삐딱하게 앉아 있었다. 누가 봐도 심기 거슬린다는 얼굴을 하고 기분 나쁜 티를 풀풀 흩날리고 있다. 덕분에 죽어가는 건 학우들이었다. 다들 찍소리 하나 못 내고 눈은 책상에 처박았다. 살벌한 교실 분위기를 한 번 훑은 다음 한숨을 크게 쉬고 교실로 한 발 들이밀었다. 어차피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내 자리야.”
“무서워서 안 나오나 했어.”
교실에 온전히 들어서자 희미하게 나는 불쾌한 냄새가 다시 후각을 괴롭혔다. 어제 터진 썩은 우유 냄새가 아직 여전히 잔재했다. 어쩐지 방금보다 더 심해진 것 같기도 하고. 방금 담임한테 깨져서 예민해진 건가. 나는 어쩔 수 없이 미간을 찌푸렸는데 이 현상에 따른 자유로운 신체 반응을 박강수는 또 어떻게 해석했는지 난데없이 괴성을 지르며 책상을 뒤집어엎었다.
우당탕 요란한 소리가 울리면서 필사적으로 앞만 보고 있던 학우들이 깜짝 놀라 이쪽을 곁눈질했다. 솟구치는 폭력성을 자제하지 못한 박강수 앞에 내 교과서들만 바닥에 쏟아져 가련하게 널브러져 있었다.
“야.”
“…….”
“얼굴 펴. 하루 안 봤다고 그새 내 성격 잊은 거야?”
“사실 네가 나한테 그렇게 큰 존재감은 아니지.”
자아만 비대해서 착각도 보통 사람의 범주를 뛰어넘는다. 제아무리 잘났어도 어제의 일마저 묻을 정도로 강렬한 인상은 아닌 놈이다. 어쩌다 한두 번 괴롭히는 것도 아니고 허구한 날 건드리는 통에 폭력은 내게 그저 평범한 일상에 불과했다. 유혈이 난무하고 호러가 난잡하게 섞인 괴이의 세계에 비견할 바가 되지 않는다는 소리다.
“내 이마에 새겨 놓은 멍 자국만 아니었어도 이름마저 잊었을걸.”
앞머리를 까 이마를 보여 주면서 이죽거렸다. 퉁퉁 부은 이마에는 새파란 피멍이 가득했다. 아침에 씻다가 깜짝 놀랐다. 시간이 촉박하지만 않았어도 그 자리에 서서 족히 10분은 박강수를 씹어댔을 것이다.
비웃는 내 말에 열받은 박강수가 성큼성큼 걸어 단숨에 내 앞에 섰다. 우리 사이의 거리가 짧아질수록 내 시선은 위로 올라갔다. 걔는 시정잡배 주제에 허우대는 멀쩡해서 키도 크고 덩치도 제법 됐다. 저 피지컬을 나 같은 약자를 억압하는 일에만 쓴다는 게 안타깝다. 좀 더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많이 할 수 있을 텐데.
“너.”
굵은 손가락 다섯 개가 내 멱살을 쥐었다. 강한 악력 탓에 목이 조였다. 숨통이 막히는 듯해 안면을 구기며 오른손으로 걔 손목을 잡았다.
“뭐.”
신경질적으로 대꾸했다. 어차피 맞는 거라면 이골이 났다. 한 번 맞을 때마다 맷집도 단단해졌는지 요즘은 전보다 덜 아프다. 때릴 거면 또 때리든가. 그딴 고집으로 도리어 가슴을 내밀었다.
“이 씨발 새끼가.”
늘 생각하는 거지만 박강수는 정말 내 예상을 한 치도 빗나가지 않는다. 걔가 쌍욕을 씹으며 그대로 내 오른쪽 뺨을 주먹으로 갈겼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두개골이 울릴 정도로 얼얼한 고통이 전신으로 퍼졌다. 나도 모르게 비명이 터져 나왔다. 고개가 옆으로 돌아가면서 몸은 균형마저 잃고 크게 비틀거렸다. 이 씨발, 존나 아프다. 턱 돌아간 거 아냐?
“도대체 정신을 못 차리고.”
걔가 주먹으로 다른 쪽 뺨을 한 대 더 갈겼다. 당연한 소리지만 난 그 주먹을 피하지 못했다. 아까와 똑같은 통증이 얼굴을 가격했고 온몸을 저릿하게 만드는 통증이 신경을 통해 전신으로 퍼졌다.
눈앞이 핑 돌았다. 충격 탓에 순간적으로 현기증이 일며 나는 그대로 고꾸라졌다. 넘어지면서 차가운 바닥에 관절이 쿵 부딪혔으나 그 아픔은 안면의 고통에 비하면 새 발의 피였다. 미친 새끼, 오늘따라 더 아파. 엉엉. 눈시울이 시큰거렸으나 박강수 앞에서는 절대로 우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아랫입술을 악물고 눈물을 꾹 참았다.
“뭘 믿고 까부는 거냐?”
원투 펀치로 나를 넉다운 시킨 박강수가 발끝으로 쓰러진 내 배를 쿡쿡 찔렀다. 수치스럽다. 나는 허우적거리면서 그 자식의 발목을 밀어내려고 애썼다. 돈만 있었으면 진작 복싱이라도 다녔을 텐데, 운동도 다 돈이라 허약한 팔다리로 이 자식의 주먹을 견디는 것 말고는 내가 할 수 있는 대처 방안이 없었다. 아직도 머리가 어지럽다. 입안은 터졌는지 피 맛이 났다.
“진짜 죽여 버리고 싶게.”
위협성 멘트는 왜 안 하나 했다. 그래, 죽인다는 말 정도는 한 번 입에 올려줘야 박강수지. 나는 얼얼한 뺨을 움켜쥐며 겨우 몸을 일으켰다. 마침 수업 시간을 알리는 종이 쳤다. 걔가 시계를 한 번 힐끗 보더니 혀를 차고 내 뒤통수를 한 번 더 갈겼다.
“야, 알아서 기어 다녀.”
“…….”
“혹시 알아? 조금이라도 더 살게 해 줄지.”
뭔 개소리야, 씨발 새끼가……. 하고 싶은 말은 입 밖으로 내뱉지 못했다. 무서워서가 아니다. 입이 너무 아픈 탓이다. 아오, 이렇게까지 세게 갈길 일인가? 미친놈. 학교부터 저딴 양아치 편이라 이런 폭력을 버젓이 행해도 학폭위 한 번을 안 열어 주는 게 문제다. 나는 눈을 홉뜬 채 걔를 쏘아보았다. 박강수는 그런 나를 보고 비웃듯 입꼬리만 비틀며 웃다가 그대로 교실 밖으로 나갔다.
나는 어느새 덩그러니 혼자 남아 있었다. 박강수가 나가자마자 나를 향해 무수히 많은 시선들이 쏟아졌다. 동정도 아니고 위로도 아니고 그저 동물원 우리에 갇힌 원숭이 보는 눈보다 못한 시선들이 내 가슴에 박혔다. 오늘따라 서러워서 괜히 울컥 눈물이 쏟아질 것 같다.
“이 반은 왜 이렇게 어수선해. 거기, 서서 뭐 해.”
박강수가 나가자마자 들어온 국어 선생님이 나를 보고 한 말이었다. 나는 그의 말에 코를 훌쩍거리면서 고개를 꾸벅 숙였다. 선생님과 눈이 마주쳤다. 그가 내 얼굴을 보고 눈살을 찌푸리더니 짤막하게 말했다.
“보건실 다녀와라.”
나는 그 말을 거부하지 않았다. 당장 뒷문을 열고 보건실로 뛰어갔다. 속으로는 박강수에 대한 저주를 왕창 퍼부으면서 말이다.
정녕 신이 존재한다면 제발 박강수가 이대로 요절해서 세상에 보탬이 되도록 해 주세요. 신도 아시잖아요. 그런 놈을 사회에 방생하는 건 죄악입니다. 지금까지 불신자로 살아온 것을 회개할 테니 박강수만 죽여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믿습니다. 아멘.
선생님은 교실로 가자마자 얼굴이 엉망이 돼서 보건실로 뛰어온 나를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는 내 턱이 부러지지는 않았는지 이쪽저쪽을 살피면서 박강수에 대해 맹렬한 분노를 표현했다.
“그 자식은 도대체 왜 너한테만 그렇게 못살게 괴롭히는 거야?”
“저도 그게 참 궁금해요. 걔 싸가지보다 내 싸가지가 나을 텐데.”
“교내에서 이렇게 대놓고 폭력 사태가 일어나는데 학교에서는 도대체 왜 수수방관인 거야? 지금까지는 깊게 관여하면 안 될 것 같아서 그냥 두고 보기만 했다만 더는 나도 못 참겠다. 학폭위를 열자고 강력하게 건의해 봐야겠어.”
“말씀만이라도 감사하네요.”
설령 학폭위가 열린다고 하더라도 교장, 교감과 연이 닿아 있는 게 분명한 박강수에게 불리한 처벌이 떨어질 리가 없었다. 나만 또 수모나 받고 끝날 게 눈에 훤했다. 나는 씩 웃다가 찢어진 입꼬리의 통증 때문에 앓는 소리를 냈다. 선생님이 그런 나를 안쓰럽게 바라보다가 약과 밴드를 붙여 주고 무슨 일이 있으면 그냥 곧바로 보건실로 도망 오라고 신신당부했다.
뭐, 진짜로 매번 보건실로 도망칠 리는 없겠지만 그래도 학교 내에서 그렇게 말해 주는 내 편이 한 명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큰 위안을 받았다. 다행히 퉁퉁 부은 뺨을 움켜쥐고 남은 수업을 듣는 동안 박강수가 다시 쳐들어오는 일은 없었다.
하교 후 걱정으로 득달같이 데리러 온 선생님의 차를 타고 집에 돌아온 나는 또 다른 난관에 봉착했다.
“얼굴이 왜 이래요?”
“음.”
“맞았어요?”
황도욱이 얼굴을 무섭게 굳힌 채 나를 추궁했다. 현관문 앞에서부터 나를 기다리던 걔는 내가 신발을 채 벗기도 전에 어깨를 낚아채서는 얼굴 곳곳을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잔뜩 성을 냈다.
“왜 나 없이 나갔어요.”
“네가 잤잖아…….”
“깨웠어야죠.”
“깨워도 안 일어났잖아.”
“그럼 나가지를 말았어야죠.”
순 그런 억지가 다 있냐? 내가 황당한 표정으로 쳐다보는데도 걔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알았어요?”
알긴 뭘 아냐고. 학교는 가야 할 거 아냐. 내가 어떻게 지킨 개근상인데. 하도 황당해서 말도 못 하고 있자 걔가 재차 대답을 재촉했다.
“대답해.”
이제 반말까지 찍찍……. 그러나 반항하기에는 보기 드물게 걔의 기세가 흉흉했던 탓에 나는 얼빠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내 얼굴을 쥐어팬 박강수도 안 무서웠는데 이 두 살 어린놈이 뭐라고 내가 쪼는 걸까. 살짝 억울한 마음이 들지 않는 건 아니었지만 심각한 얼굴로 내 얼굴을 들여다보는 황도욱을 보니 거절하는 것도 힘겹긴 했다.
내 얼굴의 상처를 보고 길길이 날뛰는 황도욱을 진정시키느라 씻고 나온 것은 그로부터 한참 뒤였다. 샤워를 다 한 후 문을 열었더니 내가 샤워 물에 코 박고 뒤질까 두려웠던 건지 화장실 문 앞에서 잠자코 기다리고 있던 황도욱을 보고 놀라 뒤로 넘어질 뻔한 아주 작은 에피소드는 뒤로하고 우리는 자연스럽게 또 같은 침대 위에 누웠다.
황도욱은 나를 품에 안고 목에 코를 박았다. 목덜미에 닿는 뜨거운 숨이 간지러웠지만 나는 꾹 참았다.
“……피 냄새도 같이 나요.”
몇 번 코를 킁킁거리던 걔가 불만 섞인 목소리로 칭얼거렸다.
“아무래도 오늘 유혈 사태가 났으니까 어쩔 수 없지.”
“그래서 누군데요.”
“말하면 아냐.”
“알아보려고요.”
알아서 뭐 하려고……? 아까 걔가 짓던 표정이 떠올랐다. 걸리면 반쯤 죽여 버릴 것 같은……. 박강수가 반쯤 죽는 건 좋지만 그걸 굳이 도욱이한테 맡기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손을 뻗어 복슬복슬한 도욱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말했다.
“네가 그런 말 하니까 괜히 무섭다. 잠이나 자라.”
도욱이는 대답하지 않았고 나는 금방 잠이 들었다.
정각 7시.
이번에는 적절히 때를 맞춰 울린 알람 소리 덕분에 무사히 눈을 떴다. 어젯밤도 도욱이와 한 이불을 덮고 잔 탓에 내 몸은 푹신한 매트 위였다. 딱딱한 바닥에서 몸 굳어가며 잔 게 아닌 건 좋은데 마치 날 곰 인형 취급하듯 꽉 끌어안고 놔주지 않는 이 거대 사슴이 문제다. 첫날 새벽에 악몽으로 끙끙 앓던 게 생각나서 같이 누워줬더니 버릇 잘못 들이는 게 아닐까 싶은 걱정도 조금 든다.
“일어나. 학교 가야지.”
내 몸 하나 챙기는 것도 힘든데 짐이 하나 더 늘었다. 나는 눈만 뜬 채로 황도욱의 어깨를 살살 흔들었다.
본론부터 말하자면 황도욱은 아침잠이 많았다. 존나 많았다. 깨우는 데만 족히 30분이 넘게 걸렸다. 한 번 흔들 때마다 애처럼 칭얼거리면서 두 팔로 내 몸을 꽉 옥죄는데 그때마다 잠시 주마등이 스쳐가며 이대로 숨이 막혀 요절하지는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겨우 황도욱을 깨우고 씻은 다음 (각자 씻었다) 교복을 챙겨 입고 집에서 나왔다. 아침밥은 걸렀다. 황도욱을 깨우느라 여유 시간을 다 소모한 탓이었다. 냉장고에는 선생님이 넣어 주고 간 반찬이 있었으나 꺼내 보지도 못했다. 거울로 보는 내 얼굴은 어제보다 더 퉁퉁 부어 꼴 보기 싫었다. 개새끼. 오늘 만나면 병원비부터 청구해야지. 나는 끌고 나온 도욱이와 나란히 연경고 교복을 입고 남익아파트 301동 현관 앞에 섰다.
“너 때문에 또 늦었어.”
버스 타면 족히 한 시간인데. 심지어 출근 및 등교 시간이니 더 걸릴지도 모른다. 나는 발을 동동 구르며 늦장 부리는 황도욱의 팔을 잡아당겼다.
걔의 모든 행동은 느린 편이었다. 씹는 것도 느리고 씻는 것도 환복하는 것도 심지어 눈을 깜박이는 것도 느렸다. 그런 주제에 반응 속도는 또 빠른 게 의외였으나 어쨌든 나한테 지금 필요한 건 가끔 나타나는 기상천외한 변속이 아니다.
“빨리, 빨리. 이틀 연속 지각하면 담임 개지랄해.”
“급해요?”
“말이라고 해?”
“택시 타요, 그럼.”
“어?”
“저는 버스 탄 적 손에 꼽아요.”
난 택시 탄 적이 손에 꼽는데. 택시 한 번 타면 최소 오천 원 최대 몇만 원은 우습게 날아가는 금액 아닌가. 머릿속으로 계산을 맹렬하게 돌리느라 잠시 행동이 멈췄다. 황도욱은 별일 아니라는 듯 성큼성큼 넓은 보폭으로 앞서 걸었다. 걔가 등에 멘 검은색 가방이 때깔 좋게 반짝거렸다. 그러고 보니 브랜드 있는 가방이다. 누구는 지하상가에서 만 오천 원 주고 산 싸구려 메이드 인 차이나인데.
불현듯 그들이 하는 일에 관해 흥미가 생겼다. 나도 비위 좀 참고 망치 몇 번 휘두르면 도보 열 발자국도 택시 타고 다니는 사치를 부릴 수 있을까? 꼭 사람을 죽이는 것 같아서 거부감은 좀 생길 것 같지만 어차피 진짜 사람도 아니고 껍데기는 이미 죽었으니 시체나 다름없고 잘 생각해서 그냥 좀비 정도로 치환하면 어떻게 될 것 같은데.
문제는 내가 환이 되기 위한 조건이었다. 죽었다 살아나기……. 상상해 봤는데 끔찍하다. 고통의 수위에 대한 건 둘째치고 부활이 일정 확률 랜덤인 건지, 아니면 백 퍼센트 당첨인 건지 알 수도 없다. 재수 없어서 그대로 죽어 버리면 그건 또 그거대로 곤란하지.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재벌 될 생각.”
어느새 택시를 잡은 황도욱이 영 모르겠다는 얼굴로 먼저 올라탔고 나도 그 뒤를 따라 탑승했다. 기사님은 빠르게 도로를 뚫고 우리를 학교 앞에 내려주었다.
8시 45분. 여유롭다. 교문 앞은 등교하는 학생들로 문전성시였다. 선생님과 학생부 애들 몇 명이 앞에 서서 복장을 단속하고 있었다. 연경고등학교의 교칙은 그렇게 센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자유분방한 복장도 교복의 형태만 갖추고 있다면 대부분 광속으로 패스됐다.
황도욱은 생전 처음 오는 낯선 환경에도 불구하고 특이하다 싶은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구조물을 파악하지도 않았고 긴장한 것처럼 뻣뻣하게 굴지도 않았다. 마치 몇 년은 이 학교에 다녔던 것처럼, 혹은 아무런 관심조차 없는 것처럼 느긋한 걸음으로 내 옆에 붙어 움직였다.
“기분이 어때?”
“졸려요.”
“아니, 그거 말고. 설레거나 그러지 않아? 학교 오랜만에 오는 거잖아.”
걔가 날 쳐다봤다.
“학교는 즐거운 공간이 아니잖아요.”
어, 그런가? 잠깐 말을 잃었다. 물론 나도 학교를 좋아하지 않는다. 와봤자 날 괴롭히는 인간들만 득실거리는데 좋아할 구석이 어디 있겠는가. 불과 하루 전에 처맞아 퉁퉁 부은 얼굴이 그 증거다. 하지만 그건 고등학교 입학 전의 이야기지, 그전에는 꽤 등교를 즐기던 애였다. 수업이 지루한 건 지루해도 또 애들이랑 얽혀 노는 건 퍽 선호했던 탓이다.
화석이 되어 썩어버린 기억을 머릿속에 파묻었다. 이미 단호한 부정에 뭔가 김이 팍 샜다. 황도욱은 대답 후 가다 말고 머쓱한 얼굴로 뒤따라가는 나를 힐끗 곁눈질했다. 걔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를 얼굴로 입을 열었다.
“형은 어떤데요?”
“나 뭐.”
“기분이요.”
말마따나 좆같지. 나도 학교에서 즐거운 거 없어……. 웅얼웅얼. 대꾸하는 내 어깨 위에 묵직한 게 올라왔다. 얼굴 위로 그림자도 졌다. 황도욱이었다. 아래에서 올려다보니 곱상한 줄만 알았던 턱선이 제법 다부졌다.
“저랑 같이 등교하는 기분.”
“…….”
“그것도 좆같은가.”
나지막이 중얼거리는 황도욱의 걸음이 눈에 띄게 느려졌다.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나조차도 자각하지 못하고 있던 속을 들킨 기분이었다. 황도욱 이 새끼, 내가 묘하게 들떠있던 걸 눈치챈 게 분명하다.
친구랑 등교라는 걸 해 본 게 몇백 년도 더 된 과거 같다. 학교 내부에 존재하는 모든 동급생은 내게 적 혹은 방관자였으니 당연하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후 난 늘 혼자였다. 입학하고 한 달 후 박강수한테 찍히고 그 뒤로 알게 모르게 쭉, 아버지 사건이 터지고 난 뒤로는 대놓고 쭉.
“조금만 천천히 갈까요.”
황도욱의 걸음이 눈에 띄게 느려졌다. 군중의 빠른 유속 사이에서 우리는 비정상적으로 천천히 걸었다. 나는 입을 꾹 다물고 속도를 맞췄다. 쪽팔렸다. 겨우 친구랑 한 번 등교한다고 설레발친 게. 심지어 그 속을 제대로 꿰뚫린 것마저도. 나 이런 거 신경 안 쓰는 쿨가이인 줄 알았는데.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 와중에도 부정하지 않는 내가 우습다.
오판했던 자아 정체성을 반성하며 교문을 통과했다. 안면이 따갑다. 온갖 시선들이 집중됐다. 우리 옆을 스쳐 가는 인파가 묘하게 조용하다. 연경고 공식 왕따의 새로 생긴 친구를 향한 지대한 관심일 게 분명했다. 갑자기 미안해졌다. 나 때문에 괜히 학교생활 피곤해지는 거 아니야? 박강수는……. 설마, 학년도 다른데 건드리겠어.
우리는 아주 느리게 걸어 55분에 건물 현관 앞에 섰다. 황도욱이 내게서 떨어졌다.
“전 1학년 교무실로 가 봐야 해요.”
“어, 응. 알았어.”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얘 열일곱 살이지……. 학교 구조상 웬만해서는 1학년과 3학년 사이의 접점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교할 때까지 못 보겠네. 그런 생각을 잠깐 했다. 3학년 3반 안에서 또 박강수와 맞닥뜨릴 생각을 곁들이면서.
“몇 반이라고 했죠?”
“3학년 3반.”
“응.”
걔가 고개를 끄덕였다. 1학년 건물과 3학년 건물 사이로 갈라지는 통로 중앙이었다. 황도욱은 미련 없이 돌아섰고 나는 조금 더 미적거리다가 교실로 걸음을 옮겼다.
황도욱을 보내고 나는 혼자 3학년 3반에 입성했다. 뒷문을 열자마자 내게 쏟아지는 불쾌한 눈깔들은 이제 숨 쉬는 것만큼이나 익숙하다. 내 자리를 찾아 가방을 걸쇠에 걸어두고 의자에 엉덩이를 붙였다. 으레 왕따들이 경험하기 쉬운 책상 표면의 낙서나 의자에 붙여놓은 껌 같은 건 없었다. 애들은 나를 순 범죄자 취급하면서도 박강수처럼 대놓고 괴롭힐 배짱도 없는 찌질이에 불과했다.
그런데 오늘따라 교실 분위기가 수상하다. 나를 꼴아보는 눈깔들 사이에 섞인 미시감이 나를 불편하게 했다. 평소처럼 벌레 보듯 하는 우롱은 물론이고 그 저변에 깔린 것은 그것보다 더 불쾌하고 찐득했다. 마치 뭔가를 캐내고 싶은 듯한 집요한 시선.
서로의 귀에 대고 숙덕거리며 이쪽을 흘겨보는 무리를 보면 분명히 나에 대한 이야기가 돌고 있는 건 알겠다. 하지만 주제가 무엇일지는 도통 짐작이 가지 않았다. 물론 엊그제 내가 겪은 일들이 기상천외하기는 했지만 그 모든 일들을 이놈들이 알고 있을 확률은 드물지 않은가? 혹시 희박한 확률로 알게 됐나? 묵과 환 같은 거. 기자 아저씨가 죽은 사건에 대해서는 분명 그쪽에서 어떻게 처리한다고 했던 것 같은데. 그러고 보니 어떻게 처리한다는 거였을까. 나는 몰려오는 불안과 초조함에 아랫입술을 씹었다가 터진 상처를 건드려 악 짧게 앓는 소리를 냈다.
그러나 입술을 너덜거릴 정도로 씹어댄다고 하더라도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을 설명해 줄 친절한 학우 따위는 없었으므로 결국 의문을 해소하지 못한 채 1교시가 시작됐다.
수업은 지루하고 더디게 흘러갔다. 집중은 개나 줬다. 샤프는 중지와 검지 사이에 걸어두기만 하고 필기는 한 글자도 하지 못했다. 공책 위에는 괜한 낙서만이 늘어갔다. 내용은 대충 지금까지 겪은 일련의 상황들에 대한 정리였고 부가적으로 황도욱이라는 이름만 의미 없이 섞여 있었다. 황도욱, 황도욱, 황도욱……. 그 순해 빠진 얼굴의 놈이 학교생활은 잘 적응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생각은 곧장 행동으로 이어졌다. 나는 선생님의 눈을 피해 핸드폰을 슬쩍 열었다. 황도욱의 번호는 어제 받아뒀다. 몇 명 없는 전화번호부에서 황이라고 검색하자마자 황도욱 석 자가 제일 상단에 떴다. 메시지 보내기를 누르고 곧바로 뜬 창 위에서 깜박거리는 커서를 보며 잠시 할 말을 고뇌했다.
[수업 잘 듣고 있는 중?]
이게 무슨 여덟 살짜리를 생전 처음으로 혼자 초등학교 보낸 보호자 같은 말투인지. 하지만 그게 최선의 문장이었다. 나는 가타부타 말을 덧붙이지 않고 그대로 전송 버튼을 눌렀다.
답장은 금방 왔다.
[네 별일 없죠?]
수십 명이 들어찬 반에서 별일이라고 있겠나. 흠, 아니다. 박강수는 사람들 눈을 가리지 않고 별일을 저지르는 놈이긴 하지.
[별일 없어 너도?]
그리고 답장은 수업 시간이 끝날 때까지 오지 않았다. 나는 괜히 핸드폰을 껐다 켰다를 반복했다. 수업에 집중하나. ……아니면 핸드폰을 뺏겼나? 최악의 상황을 가정했더니 제법 신빙성 있는 얘기라 한숨만 나왔다. 그래, 수업 시간에 문자를 보낸 내 죄다. 황도욱이 선생님의 눈을 피하며 핸드폰을 토독토독 두드리고 있을 거라는 상상이 더 어렵긴 했다.
어느새 돌아온 쉬는 시간이었다. 박강수가 찾아올 때가 됐는데. 하루에 한 번 정도는 꼭 교실에 들려 나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 난 정서를 표출하는 박강수였다. 오늘은 어디를 치려나. 턱과 뺨은 물론이고 며칠 전 맞은 이마의 상처도 아직 아물지 않았다. 머리 감을 때도 얼마나 힘들던지. 보이지도 않는 박강수를 속으로 씹어대며 책상에 풀썩 엎드렸다.
호랑이는 도대체 왜 제 말 하면 오는 것인가. 잠깐 잘까 싶던 결심은 눈을 감자마자 박살 났다. 박강수가 뒷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더니 내 책상에 걸터앉은 탓이다.
“강채승. 너 한 건 했더라.”
이죽거리는 목소리와 내 영역을 침범한 그 새끼의 엉덩이가 불쾌해 억지로 상체를 일으켰다.
“뭐?”
“소문이 파다해. 네가 사람 죽였다고.”
“이제 와서 다 낡아빠진 유언비어가 무슨 영향이 있을 것 같아?”
하여튼 개소리 늘어놓는 건 수준급이다. 언제는 뭐 안 그랬던 것처럼.
“다 낡아빠진 옛날 유언비어 말고.”
“…….”
“이틀 전에.”
고개를 퍼뜩 쳐들었다. 박강수가 묘한 미소를 걸고 있었다. 이 새끼 뭘 알고 하는 소린가? 나는 걔 얼굴을 샅샅이 훑으며 침착함을 찾기 위해 애썼다. 절대 말려들면 안 된다. 실수로 찌를 물었다가는 내 인생이 더 고달파지는 것은 안 봐도 뻔했다. 그제야 나는 오늘 아침부터 내 뒤통수에 달려들었던 시선들의 의미가 이해됐다. 그런 소문이 돌았구나? 내가 또 살인을 저질렀다는.
“개소리가 날이 갈수록 참신하다.”
“부정하는 거야?”
“당연하지.”
“목격자도 뻔히 있는데?”
“목격자?”
“남자 한 명이랑 망치로 사람을 패 죽였다며. 그러고 나와서 피 칠갑이 된 채로 주변을 돌아다녔고.”
피가 식었다. 그걸 본 사람이 있다고? 그날은 비가 많이 와서 길에 다니는 사람도 별로 없었고 각자 우산으로 가려져 얼굴도 잘 보이지 않았다. 그래, 그래도 황도욱과 같이 있던 건 아무래도 시선을 끌기 좋았을 것이다. 그중에 한 명이 박강수의 똘마니라 쪼르르 가서 일러다 바쳤거나 돌고 도는 소문을 유포했을 가능성은 분명히 있다. 하지만 망치로 사람을 패 죽였다는 건…….
“피해자는 50대 중년 남자고.”
그 말까지 나왔을 때 나는 더 이상 침착함을 유지하기가 어려웠다. 박강수. 이틀 전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알고 있는 게 분명했다. 심장이 쿵 떨어졌다. 무슨 말을 해야 이 소리를 개소리로 역전시킬 수 있을지 머리를 핑핑 돌렸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우리를 주시하고 있는 수십 개의 시선이 생생하게 감각됐다. 지금 여기서 잘못 말하면 좆된다. 어차피 이미 학교 인생 좆된 거 될 대로 돼라 하고 싶다가도 선생님이 어디까지 막아 줄 수 있는 건지 확신할 수가 없으니 막 나가기도 어려웠다. 혹시라도 내 말이 자백이 돼서 감방 가면 어떡하냐는 말이다. 아니, 사실을 정확히 따지자면 내가 기자 아저씨를 죽인 건 아니지만.
그때다. 나를 불쾌한 눈깔로 훑어보고 있던 박강수의 목이 갑자기 꺾였다. 걔가 억! 하는 소리를 내며 책상에서 우당탕탕 굴러떨어졌다. 꽤 폼을 잡고 있던 육체는 날아가는 지렁이처럼 꿈틀거리며 바닥에 쓰러졌다. 애들 사이에서 짧은 비명이 터져 나왔다. 나는 이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눈을 크게 떴다가 머리 위로 드리워진 그림자를 따라 시선을 위로 들어 올렸다.
“이 남자예요?”
“어?”
황도욱이었다. 걔는 방금 박강수의 머리채를 잡아 냅다 바닥에 꽂아버린 놈 같지 않게 말끔한 얼굴을 하고 재차 물었다.
“얼굴. 이 남자냐고요.”
나는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황도욱이 곧바로 쓰러진 박강수의 상체 위로 올라탔다. 커다란 손에 맥없이 잡힌 박강수의 멱살이 불쌍해 보일 지경이었다. 박강수는 바닥에 머리를 부딪친 탓인지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황도욱은 자비가 없었다. 말도 없이 주먹을 들어 올렸다. 무작정 오른쪽 뺨을 날렸다가 왼쪽 뺨을 날렸다. 망치만 없었을 뿐이지, 그때 아버지를 죽일 때와 비슷한 속도와 강도로 사람을 패고 있었다.
박강수의 입에서 억! 억! 소리가 튀어나왔다. 걔는 두 손을 휘저으며 황도욱을 막아보려고 애썼으나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무기력하게 처맞는 박강수와 무심한 표정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황도욱을 보면서 나는 등골이 오싹해졌다.
“황도욱, 그만해.”
나는 황도욱의 오른쪽 어깨를 붙잡으며 말렸다. 아무리 나쁜 놈이라도 이렇게 처맞는 것은 좋지 않다는 어떤 알량한 정의감에서 나온 행위가 아니었다. 마음 같아서는 이대로 죽도록 놔두고 싶지만 아직 남은 이성이 그렇게 두면 오히려 인생이 더 꼬이는 거라고 알려준 탓이다. 황도욱의 주먹은 이미 핏물로 벌겋게 물들어 있었고 박강수는 퉁퉁 부은 얼굴로 가느다란 신음만 흘리는 게 고작이었다.
“이만하면 됐어.”
우리를 바라보는 애들의 시선이 곱지 않았다. 끔찍한 살인범을 보는 눈이었다. 나는 그 눈들이 분했으나 어쩔 수 없었다. 세상은 다수가 대세인 법이다.
“뭐 하는 거야!”
움직임을 멈춘 황도욱을 겨우 박강수에게서 떼어내 일으켰을 때, 소식을 듣고 달려온 담임이 빽 소리를 질렀다. 그는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황도욱의 가슴을 팍 밀며 박강수의 상태를 살폈다.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있는 박강수를 본 선생님의 얼굴이 빳빳하게 굳었다. 그러고 보니 작년에 박강수 담임이었다고 했나. 안 봐도 뻔했다. 촌지를 미친 듯이 받아먹었겠지. 장영란 법이 뻔히 존재하는데도 위법할 놈들은 다 하는 법이다.
“강수야, 괜찮으냐? 정신 좀 차려봐. 뭘 멍하니 보고 있어! 빨리 119 불러!”
119까지 부를 정도인가? 나는 담임한테 밀려 비틀거리는 황도욱의 손을 잡아주며 쓰러진 박강수를 슬쩍 내려다봤다. 얼굴이 엉망진창으로 뭉개지긴 했다. 심지어 잘 눌러놓은 호빵같이 생겼다. 야무지게도 패놨네 같은 생각도 잠깐이다. 내가 처맞을 때는 본척만척해 놓고 박강수가 쓰러져 있으니 오만 지랄을 다 떠는 담임이 얄미워 견딜 수가 없었다.
“너 누구야. 몇 학년 몇 반이야!”
“1학년 7반. 황도욱.”
담임의 추궁에 황도욱은 태평하게 말꼬리를 잘라먹으며 대꾸했다. 얘 진짜 장난 아니구나. 흉흉한 눈깔로 망치를 휘두를 때부터 알아봤지만 이틀 동안 겪은 잠깐의 애 같은 면모에 홀려 잠시 잊고 있었다. 담임은 애를 어떻게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냐며 괄괄 뛰다가 급기야 황도욱의 머리를 후려갈겼다.
“이 깡패 새끼!”
“아.”
“채 선생님 조카라고 그래서 잘 봐줄까 했는데 사고를 쳐? 그것도 이런 대형 사고를?”
진짜 보면 볼수록 어이가 없다. 박강수가 내 얼굴을 조져 놓고 쌩깐 게 불과 24시간도 안 지났는데. 그때는 눈길도 안 줘 놓고. 괜히 열받는 내가 황도욱을 뒤로 밀어두고 담임 앞에 섰다. 그는 별안간 둘 사이에 끼어든 나를 이건 또 무슨 벌레 새끼냐 하는 눈으로 쏘아봤다.
“넌 또 뭐야!”
“박강수가 먼저 저 괴롭혔는데요.”
“뭐?”
“선빵은 박강수라고요.”
이제 진짜 모르겠다. 이미 말아먹은 학교생활. 씨발. 애 혼자 욕먹게 둘 수는 없는 법 아닌가. 속으로 욕을 짓씹으면서 턱을 빳빳하게 쳐들었다. 어차피 담임은 나를 싫어하고 있으니 여기서 좀 개겨도 평소와 달라질 건 없었다. 괜히 나 때문에 황도욱만 머리 처맞고 개 쌍욕을 듣고 있는 게 더 참기 어려웠다.
“박강수가 맨날 저 때리고 욕하고 침 뱉을 때는 별말씀 없으셨던 분이 갑자기 정의의 교사인 척하는 꼴이 제법 우습네요.”
이판사판이다, 진짜.
“작년에 박강수한테 촌지 받은 거 아무도 모르는 줄 알죠? 이거 신고하면…….”
담임의 동공이 뒤집히는 것을 봤다. 분기탱천해서 열이 올라 새빨개진 그가 오른손을 들어 올리는 것도 인지했다. 이제 저 솥뚜껑처럼 두꺼운 손이 내 뺨을 때리겠지. 인식은 한순간이었고 눈을 질끈 감은 것도 빠른 판단이었다. 짝 소리가 났다. 그러나 미리 대비했던 고통은 없었다.
눈을 떴다.
“강채승 때리지 마세요.”
목격한 상황은 기이했다. 왼쪽 뺨을 붙든 채 어안이 벙벙한 얼굴을 하고 있는 건 담임이었고 황도욱은 그 앞에 서서 태평한 얼굴로 눈만 내리깐 채 남자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저 꼴 나기 싫으면.”
담임의 뺨이 발갛게 부어올랐다. 두꺼비처럼 못생긴 손으로 얼굴을 가렸는데도 틈새로 보이는 살갗이 벌건 게 한눈에 보였다. 여기저기서 힉 소리가 났다. 담임은 자신보다 삼십 년은 훨씬 어린놈한테 맞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는지 납득할 수 없는 얼굴이었다. 그는 말을 잃어 입만 뻐끔거렸다. 황도욱은 사람을 때려 놓고 별말 없이 잠자코 서 있었다. 뒤늦게 뛰어온 선생님들이 쓰러져 있는 박강수를 업고 얼른 병원에 데리고 가자느니 하며 호들갑을 떨고 나서야 선생님은 정신을 차렸다.
그나마 제일 젊은 물리 선생님 등 위에 박강수를 업히고 허겁지겁 뒤를 따라가는 담임은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어느새 소란스러운 교실 중앙에 우리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심지어 다른 반 학생들까지 다 몰리는 바람에 교실은 아주 시장통이었다.
병원으로 간 인원들 외에 쫓아온 선생님들이 애들을 각자의 반으로 돌려보냈다. 구경꾼들은 이대로 돌아가기 아쉬운 듯 우리를 슬쩍슬쩍 곁눈질했으나 어쩔 수 없이 해산할 수밖에 없었다. 3반 놈들도 어기적어기적 자리에 착석하면서 소란은 서서히 진정되는 듯했다. 우리는 갈 길을 잃고 서 있었다. 그러자 차기 학주감이라고 명성이 자자한 수학 선생님이 엄한 목소리로 명령했다.
“둘 다 상담실로 가 있어.”
우리는 별수 없이 자리를 옮겼다.
***
상담실은 중앙에 네모난 탁자와 의자 여러 개가 놓여 있고 오른쪽 벽면에는 책장이 있는 단순한 형태였다. 아무리 구린 소문이 돌아도 상담실을 들락거리는 학생은 아니었는데. 새삼 울적한 기분으로 들어서서 아무 의자나 하나 빼 앉았다.
“……전학 오자마자 이런 일이 생겨서 어떡해?”
나는 낙담해서 중얼거렸다. 나랑 같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다지 즐거운 학교생활이 되지 않을 것은 예상했지만 불과 세 시간도 안 돼서 나락에 처박힐 줄은 몰랐다. 게다가 이렇게 진흙탕 사건이 될 줄은…….
황도욱이 박강수를 패 준 것은 속 시원한 일이었으나 아무래도 추후의 일이 걱정되는 것은 당연했다. 차라리 며칠 사회봉사 수준이면 괜찮지. 박강수의 집안을 생각하면 황도욱 감방 보내라고 별 지랄을 다 할지도 몰랐다.
“형. 그게 문제가 아니에요.”
그게 문제가 아니면 뭐가 문젠데. 자연스럽게 내 옆자리를 차지한 황도욱이다. 걔는 뭔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기울였다.
“냄새 못 맡았어요?”
“무슨 냄새?”
“썩은 우유 냄새.”
썩은 우유 냄새?
“박강수한테서 나는 냄새였어요.”
나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을 했다. 박강수가 나한테 우유를 던진 것은 이틀 전이다. 걔가 이틀이나 교복을 빨지 않았을 일도 없고 애초에 박강수한테는 우유가 묻은 적도 없다. 걔한테서 썩은 우유 냄새가 날 일이 없다는 소리다. 그렇다면…… 묵한테서 나는 냄새가 났다는 소리인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나는 미간을 구겼다.
“하지만 묵은 죽은 사람이라며.”
“그러니까 이상한 거죠.”
황도욱이 내게 허리를 숙이며 목 부근에 코를 묻었다. 서늘한 긴장감이 전신을 돌았다. 나는 주먹을 꽉 쥐었고 황도욱은 그대로 몇 번 숨을 들이쉬더니 천천히 떨어졌다.
“살아있는 사람이 묵이 될 수 있을까요?”
“…….”
“살아있는 사람이 묵의 성질을 가진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
“검은 것은 인간의 힘으로 다룰 수 있는 걸까요?”
나는 어떤 질문에도 대답하지 못했다. 내가 알지 못하는 것들이었다. 묵과 환이라는 개념을 겨우 어제 알게 된 나한테는 택도 없었다. 황도욱도 딱히 나한테 어떤 대답을 바라고 던진 질문은 아닐 것이다. 그건 오히려 독백의 성질과 가까웠다. 나는 입을 꾹 다물고 황도욱을 보고 있기만 했다.
“산 사람한테서는 생기로 가득 찬 향이 나요. 개인마다 천차만별의 향이죠. 하지만 죽은 사람한테서는 시체 썩는 냄새밖에 안 나요. 예외가 없죠. 어쩌면 당연한 현상이에요. 시체는 향을 낼 영혼이 없고 남은 것은 단백질과 지방으로 이루어진 고깃덩어리일 뿐이니까.”
묘사가 꽤 섬뜩하다. 나는 대꾸하지 않고 듣고 있다는 뉘앙스로 고개만 끄덕였다.
“아무리 영혼이 썩은 인간이라도…… 고유의 향은 잃지 않는 법인데…….”
“박강수한테서 묵의 냄새가 났다는 거야?”
말을 흐리는 황도욱의 끝을 내가 대신 맺었다. 걔가 느릿느릿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약하고 희미했지만 분명했어요.”
“하지만 난 못 맡았는데.”
“일반적인 상황이 아니니까요. 이유는 몰라도 살아있는 사람이잖아요.”
대충 납득했다. 그렇군. 묵과 같아도 살아있는 사람의 냄새는 못 맡는 게 당연한 거구나. 환이 돼야 그런 것도 가능해지는 걸까?
그 애 말을 곱씹고 있는데 닫아놨던 상담실 문이 열리면서 보건 선생님이 들어왔다.
“너희.”
그는 딱딱하게 굳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매섭게 치켜뜬 눈과 움찔거리는 미간이 보통 화가 난 게 아니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했다. 나는 어깨를 움츠렸다. 슬쩍 눈을 피하며 몸을 돌렸다. 큰 사고를 쳤다는 자각은 있다. 갑자기 너는 정말 안 되겠구나 하면서 외면하면 어떡하지? 나는 안절부절못하고 있는데 황도욱은 도리어 뻔뻔했다.
“무슨 짓을 저지른 건 줄 알아?”
“할 일을 했을 뿐이에요.”
“네 할 일이 사람 패는 거야? 황도욱, 너는 전학 오자마자 첫날부터 이게 무슨.”
“박강수한테서 냄새가 났어요.”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선생님이 얼굴을 구기며 물었다.
“썩은 우유 냄새가.”
황도욱이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선생님은 여전히 이해할 수가 없는 얼굴이었다.
“네가 잘못 맡은 건 아니고? ……네가 싫어하는 냄새들 말이야.”
“아니에요. 제가 그런 걸 구분 못 할 리가 없잖아요.”
선생님의 반신반의한 물음에도 황도욱은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대답했다.
“삼촌일지도 몰라요.”
“그 사람은 죽었어.”
“시체를 확인한 게 아니잖아요.”
“됐어. 그 이야기는 그만. 그래도 선생님을 때린 건 옳지 않아.”
삼촌? 나는 귀를 쫑긋 세우고 둘의 대화에 집중했다. 그러나 보건 선생님은 중간에 대화의 맥을 끊었다. 엄한 표정을 지은 그는 단호하게 황도욱을 꾸중했다. 그러자 그때까지만 해도 당당하게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던 황도욱이 슬쩍 시선을 돌렸다. 어, 쟤 봐라. 눈 피하네.
“먼저 강채승을 위협했어요. 가만히 뒀으면 얻어맞는 건 강채승이었을 거예요.”
“그럼 차라리 손을 잡아 막든가 했었어야지. 때린다고 같이 때려?”
“…….”
“황도욱.”
“죄송합니다.”
걔가 마지못해 잘못을 인정했다. 그러나 말투에 반항기가 그득그득 붙어 있는 걸 보면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혀를 찼다. 선생님도 기가 막힌 듯했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만 절레 저었다.
“강전만 안 당하면 다행이겠다. 어쨌든 최대한 막아볼 테니까.”
“선생님이 어떻게요?”
“감정 호소?”
“네?”
“반성문이라도 쓰고 있어.”
어이없어. 이 와중에 농담이나 던지는 선생님이 황도욱과 뭐가 다른 건지 구분할 수가 없었다. 이건 환의 특성인가, 아니면 끼리끼리라는 속성을 가진 무리의 특색인가.
“어쩔 수 없이 학폭위는 열릴 거다. 박강수에 대해서는 우리가 따로 조사해 볼 테니 넌 그때까지 얌전히 있어. 더 사고 치지 말고.”
“네.”
개자식들. 박강수가 나를 팰 때는 없는 일인 척 묻고 지나갔으면서 걔는 좀 처맞았다고 아주 잽싸게 학폭위를 열고 있네. 세상이 이렇게 없는 자들한테 잔혹하다.
“아, 선생님. 그리고 박강수가 우리 집에서 있었던 일을 알고 있는 눈치였어요.”
나는 대화를 끝내고 나가려는 선생님의 뒤에 대고 다급히 말을 붙였다. 유혈 사태가 일어난 탓에 혼이 빠져 이 모든 일이 일어났던 원인을 이대로 묻을 뻔했다. 어쩌면 걔한테서 묵의 냄새가 난다는 사실이 이 일에 대해 알고 있는 것과도 관련이 있을까? 아예 별개의 일일 거라는 가정의 확률은 희박했다.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래?”
“네. 갑자기 저한테 와서 살인을 저지른 걸 안다니 뭐라니……. 황도욱에 대해서도 알고 있는 것 같았어요. 목격자가 있다면서.”
“걔가 그런 말을 했다고?”
갈수록 첩첩산중이라는 듯 선생님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피해자에 대한 정보도 알고 있는 것 같았어요. 기자님인지도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50대 남성이라는 말을 했으니까.”
“그럴 리가 없는데. 그때 주변에 아무도 없는 건 확인했어. 애초에 건물 내부에서 일어난 일이었고. ……박강수가 분명 그런 말을 했어?”
“네.”
선생님은 침음을 흘렸다. 아까보다 안색이 더 어두워졌다. 그는 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쉬며 미간을 꾹꾹 눌렀다.
“알겠다. 그것도 같이 알아볼게.”
할 말을 끝낸 선생님은 이번에는 정말로 얌전하게 있으라고 신신당부를 하며 퇴장했다. 남은 것은 다시 우리 둘이었다. 결국 나는 제대로 된 이야기는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
“삼촌?”
운을 띄워봤다.
“좀 복잡해요.”
걔는 그 말로 모든 설명을 퉁칠 생각인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굴하지 않고 집요하게 황도욱을 응시했다. 말해 주지 않으면 이 눈깔로 네 얼굴을 뚫어버리겠다는 듯. 황도욱은 꿋꿋하게 고개를 돌리고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견디다 못한 내가 걔 팔뚝을 잡고 흔들려던 참이었다.
또 문이 열렸다. 이번에는 수학 선생님이었다. 그는 단단히 화가 난 듯 굳은 얼굴을 하고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슬그머니 황도욱의 손을 놨다. 나중에 집에 가서 보자 하는 얼굴로 흘겨봤으나 황도욱한테는 씨알도 먹히지 않은 듯했다.
수학 선생님은 우리에게 자초지종을 털어놓길 요구했고 입을 꾹 다문 황도욱 대신 내가 대부분의 설명을 도맡았다. 박강수가 먼저 우리 반에 들어와 나보고 살인자라는 둥 날조된 유언비어를 퍼트렸으며 황도욱은 그에 대해 응수했을 뿐이다. 김 선생님을 때린 것은 명백히 황도욱의 잘못이지만 걔가 먼저 행동하지 않았다면 뺨을 맞고 서 있는 건 나였을 거라면서 지극히 주관적인 시각으로 증언했다. 황도욱은 내가 옆구리를 찌르는 통에 겨우 죄송합니다라는 짤막한 말만 겨우 남겼을 뿐이다. 어린 새끼. 자존심 때문에 이러나?
“강수는 족히 전치 몇 주가 나올 거야. 지금 그 집에서 애 팬 놈 누구냐고 난리가 났다고. 이렇게 되면 학교 입장도 곤란해져. 알고 있어? 황도욱 너는 전학 오자마자 이게 무슨 사고냐. 그것도 채 선생님 조카라면서. 이건 채 선생님 얼굴에도 먹칠하는 꼴이야. 어?”
선생님이 한숨을 푹 쉬었다. 곤란하긴 하겠지. 나는 무엇보다 보건 선생님께 죄송했다. 괜히 나 때문에 얘마저 휘말려서……. 어제 맞고 오지나 말걸. 그랬으면 겨우 같이 있는 모습 하나만으로 황도욱이 흥분해서 달려들 일도 없었을 텐데. 찔리는 양심 탓에 버석버석 갈라지는 입술을 혀로 훑으며 고개만 끄덕였다.
그런데도 황도욱은 여전히 뻔뻔한 얼굴이었다. 학폭위 열리고도 이런 태도면 어려울 텐데. 나는 걔를 흘겨봤다. 나 지켜 준다고 와놓고 주먹 한 번 잘못 휘둘러서 멀리 가게 되면 어쩌려고 이러나. 어떤 음흉한 세력이 나한테 손을 뻗고 있는 건지는 몰라도 어쨌든 내 목숨이 위험하다는 말을 들은 판국에 이런 식이면 곤란했다. 나는 아직 조금 더 살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황도욱이 필요하다는 공식쯤은 이미 알고 있는 탓이다.
“황도욱.”
걔 이름을 불렀다. 황도욱은 여전히 뻔뻔한 얼굴로 나를 돌아봤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강전이 뭔지 알아?”
“네?”
“강제 전학이야.”
“…….”
역시 맞구나. 얘는 강전이 무슨 말인지 몰랐던 게 틀림없다. 아니, 얘 중학교 졸업한 10대 맞아? 어떻게 강전을 몰라. 경악에 찬 얼굴을 애써 숨기며 나는 미간을 찌푸린 황도욱의 얼굴에 대고 확인 사살을 했다.
“강전 처분 떨어지면 너 다시 전학 가야 돼.”
“…….”
“나는 여기 혼자 둔 채로.”
그제야 심각성을 알았는지 내내 무감한 표정을 짓고 있던 황도욱의 얼굴이 제법 볼만하게 변했다. 어휴, 이 어린놈 같으니라고.
일련의 사건을 겪은 후 나는 황도욱이 인간 사회와 기묘하게 떨어져 있는 놈이라고 평가했다. 반반한 얼굴로 사람들의 시선을 홀리고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것만으로 연예 기획사에서 명함 숱하게 받아 처먹게 생겨서는 주위에 사람이 없는 게 이해 안 되는 용모인데, 그것과는 대조될 정도로 사람을 낯설어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 객관적 평가는 전학 직후 거하게 사고를 친 걔가 매 수업이 끝날 때마다 득달같이 우리 반으로 찾아온 덕분에 더욱 공고해졌다.
박강수를 패고 선생님한테도 손을 댔다는 황도욱의 소문은 입을 막을 새도 없이 전교에 쫙 퍼졌다. 일주일 후 학교 폭력 위원회가 열릴 거라는 고지가 떨어졌다. 피해자는 병원에 입원했으나 황도욱은 아직 등교가 가능했다. 덕분에 걔와 곳곳을 다닐 때마다 주변에서 쏟아지는 시선이 따가웠다. 얼굴이 뚫릴 지경이었다. 그 와중에도 웃긴 건 그들의 눈이 지금껏 나에게 향하던 비난이 아니라 왠지 모를 흠모의 감정을 품었다는 것이다.
“나도 끝내주는 미남으로 태어났어야 했는데.”
“네?”
“나도 네 얼굴로 태어났으면 살인자 아들로 고립돼서 사는 대신 애비 잘못 둬서 인생 고약해졌다고 동정의 손길과 기부로 금품 잔뜩 받고 좀 넉넉하게 살았을 것 같다.”
입맛이 뚝 끊겼다. 급식실에 앉아 있을 뿐인데 주변에서 쏟아지는 눈길이 과포화였다. 그렇다고 근처로 다가오는 놈들도 없다. 나와 맞은편의 황도욱을 중심으로 족히 세 자리씩은 건너뛰어서 앉는다. 최소한의 안전거리를 확보하는 느낌이었다. 나 혼자일 때는 그냥 바퀴벌레랑 한 공간을 공유하고 싶지 않다는 분위기였는데 지금은 뭐 범접 불가 연예인을 경외하는 식이다. 이런 차별로 가득한 세계 같으니라고.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 형 귀엽게 생겼어요.”
“입에 발린 말은 도움이 안 돼.”
“잘생겼어요.”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그런 말 하지 마라. 그냥 나만 비참해지는 꼴이니까…….”
내가 좋아하는 케찹 버무린 소세지 반찬이 나왔는데도 겨우 한 개만 집어 물었다. 더는 젓가락이 가지 않았다. 내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황도욱은 키와 비례하는 왕성한 식욕으로 수저질을 열렬하게 했다. 잘 먹는 걔를 물끄러미 보다가 소세지 몇 개를 집어 걔 식판 위에 올려줬다. 황도욱이 그 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봤다.
“많이 먹어.”
“형은요.”
“난 입맛이 없다.”
“왜요?”
“인생이 존나 불합리해서.”
“맛있는데.”
그러니까 그게 문제가 아니고. 한숨만 푹푹 갈기는데 황도욱 옆으로 남자애 무리가 우르르 몰려왔다. 딱 보니까 박강수랑 어울려 다니는 놈들이다. 당연하게도 나와도 사이가 좋지 않다. 네다섯 명으로 이루어진 걔들 중에 나 한 번 골려먹지 않은 인간이 없다. 그렇지 않아도 기분 꿀꿀한 마당에 보기 싫은 얼굴들까지 마주치자 아예 감정 곡선이 땅을 팠다. 나는 기어이 숟가락을 테이블 위에 내려놨다.
“네가 황도욱이지.”
존나 클리셰적인 멘트. 나는 불퉁한 얼굴을 하고 걔들을 보지 않으려고 애썼다. 저기 멀리 애들이 남은 잔반을 음식물 쓰레기통에 버리는 거나 구경하면서도 귀는 이쪽으로 쫑긋 열려 모든 대화를 훔쳤다.
“그런데.”
내가 얘랑 다니면서 느낀 것은 황도욱은 자신의 구역 안에 들어와 있는 인간들 외에는 굉장히 무뚝뚝하고 날카롭다는 것이다. 생각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모를 얼굴로 순진무구하게 눈 반짝이던 얼굴을 보여 주는 건 나나 선생님 그리고 청하 누나 앞뿐이다. 분명 지금도 그럴 것이다. 보지 않아 표정까지는 모르겠지만 목소리에서는 한기가 뚝뚝 흘렀다.
“박강수 입원시켰다며?”
“그렇게 됐지.”
“그 재수 없는 새끼 꼴 안 보이니까 속이 시원하더라.”
걔들 무리가 낄낄거리며 처참한 꼴로 병원 침대에 누워 있을 박강수를 씹어댔다. 뭐야. 사이 좋은 거 아니었나. 맨날 어깨동무하고 다니면서 애들 괴롭히고 다니길래 지독한 우정인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하여튼 양아치들의 우정이란 것은 얄팍한 기름종이 같은 거지. 나는 흥미진진해지려는 대화에 신경을 쏟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숟가락을 다시 들어 밥을 푹푹 찔러댔다. 가만히 있기 좀 뭐해서 뭐라도 하는 짓이다.
“우리랑 같이 안 다닐래?”
요즘도 이렇게 일진 스카웃을 하나. 모른 척하겠다는 다짐은 어디로 가고 나는 번쩍 고개를 쳐들었다. 황도욱이 그 스카웃 제의를 물 것 같지는 않았다. 애초에 무슨 뜻인지도 모를 확률이 더 높다.
“나 다닐 사람 있어.”
황도욱은 맹맹한 표정으로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박강수가 사라지고 걔들 무리의 대장이 된 듯한 남자, 그러니까 박정규는 황도욱의 냉혹한 거절에도 불구하고 서글서글한 웃음을 만면에 띄웠다. 별안간 걔가 동공을 휘적여 나를 눈짓했다.
“쟤랑 다니느라?”
걔들과 황도욱이 일순간 내 얼굴에 집중했다. 과거에는 박강수였고 지금은 박정규의 따까리가 된 무리들이 낄낄거리며 조소했다. 명백한 비웃음이다. 나는 못 들은 척하며 힘차게 밥 한 숟갈을 떠 입에 욱여넣었다. 나는 똥이 앞에 있어도 밥만 잘 먹는 비위 좋은 새끼라는 걸 어필하는 행위다. 하여튼 사람 앞에 두고 도마 위에 처올리는 저 저급한 짓들은 박강수가 있으나 없으나 똑같다.
“왜 같이 다니는데? 살인자 아들인 건 알아?”
박정규가 물었고 황도욱이 고개를 들었다. 걔의 순한 눈망울이 나를 주시했다. 나는 황도욱이 뭐라고 말할지 궁금해졌다. 그 애가 말했다.
“무슨 상관이야? 살인자도 아니고 아들일 뿐인데.”
황도욱이 내가 준 소세지 하나를 집어 입에 넣기 전에 한 마디 더 덧붙였다.
“애비 잘못 만나서 인생 고약해진 게 얘 죄야?”
미친 새끼. 너는 정말.
***
“걔들이 말한 속뜻은 ‘우리 같이 어울려 다니면서 사람도 좀 패고 돈도 좀 뜯어 보자.’라는 뜻이야.”
“아.”
“알았어, 몰랐어.”
“몰랐어요.”
“모를 것 같더라.”
“형은 왜 아까부터 히죽히죽 웃고 있어요? 아까는 당장 땅으로 꺼질 것처럼 한숨이나 푹푹 쉬더니.”
“몰라도 돼, 인마.”
“어렵다.”
식사를 마치자마자 황도욱을 끌고 나와 매점에 들렀다. 그리고 바나나 우유와 과자 한 봉지를 사서 황도욱의 손에 들린 후 적당히 빈 교실을 찾아 남은 점심시간을 만끽했다. 황도욱의 말 한마디에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다가 돌아 사라지는 그 양아치 무리의 뒷모습이 그렇게 통쾌할 수가 없었다. 나는 예쁜 말만 골라 하는 황도욱의 등을 두드려 주거나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등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칭찬을 퍼부었다.
“어쨌든 박강수가 날 먼저 건드리기도 했고 옆에서 최선을 다해 증언할 테니까 강제 전학까지 가지는 않을 거야.”
“정말이죠.”
“혹시라도 이런 일이 생길까 싶어서 내가 지금까지 당한 모든 것들 녹취는 물론 증거 사진도 남겨놨으니까 걱정 안 해도 돼.”
그렇다. 내가 차곡차곡 모아둔 증거물들은 지금까지야 학교가 모른 척한 덕분에 제대로 된 효력을 발휘할 수는 없었으나 그쪽에서 먼저 법을 걸고넘어진다면 이쪽도 대항할 증거들이야 충분하다 못해 넘쳤다. 정학 처분이나 봉사 활동 같은 처분 자체는 피할 수 없겠지만 그렇다고 최악의 최악으로 치달을 일까지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다소 마음이 가벼웠다. 그런 새끼는 좀 처맞아도 싸다. 황도욱이 눈 돌아서 사람 패는 건 좀 무섭긴 했지만 말이다.
“그런데 너 사람 잘 때리더라.”
“음.”
“하긴 망치로 사람 머리 깨는 것도 봤는데 주먹으로 패는 것 정도는 아무것도 아닌가?”
황도욱이 머쓱하게 눈을 깔았다.
“어제 선생님한테 엄청 혼났는데. 사람 때렸다고.”
“그래?”
“너무 생각 없이 굴었대요.”
틀린 말은 아니지.
“어제 저녁에 나갔다가 한참 뒤에 핼쑥해져서 들어오더니 선생님한테 혼났던 거야?”
밥도 먹기 전에 잠깐 어디 다녀온다더니 그 뒤로 한 시간이 넘도록 안 와서 배를 쫄쫄 굶었다. 그래서 돌아오기만 하면 아주 성을 낼 거라고 다짐했었는데 그 마음이 무안하게 1시간 30분 만에 귀가한 황도욱은 심하게 풀이 죽어 나타났다. 그 축 처진 눈꼬리에 감히 누가 화를 낼 수 있겠는가? 나는 포기하고 얌전히 3분 카레나 뜯어서 걔 쌀밥 위에 얹어 밥이나 먹였다. 조심스럽게 무슨 일이냐고 몇 번이나 물어도 통 대답을 안 해 주더니. 그깟 꾸중 좀 들었다고 저녁에 종일 시무룩해져 있었다고 생각하니 웃겨 죽겠다. 나보다 겨우 두 살 어릴 뿐인데 왜 이렇게 유치원생 같냐.
나는 손을 뻗어 황도욱의 부들부들한 머리를 쓰다듬었다. 얘는 맨날 나보고 냄새 좋다고 지껄이는데 황도욱의 몸에서 나는 향도 만만치 않게 좋다. 시원하면서도 심신을 편안하게 만드는 향이다.
“다음부터 안 하면 되지.”
“안 할 자신이 없어요.”
걔가 즉답했다.
“누가 형을 괴롭히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어?”
진한 감동이 나를 덮쳤다. 살면서 언제 누가 이렇게 맹목적으로 내 편 들어준 적이 있었던가? 아버지는 바빴고 어머니는……. 잘 기억도 나지 않는다. 어릴 때 돌아가셨다는 사실과 흐릿한 인상만 기억에 남아 있을 뿐이다. 나는 황도욱의 엉덩이를 마구 두드려줬다. 우리 착한 강아지. 얌전히 내 손길을 받으며 우유를 쪽쪽 빨아먹던 황도욱이 문득 생각났다는 듯 고개를 들었다.
“오늘 손님 오신다고 하셨어요.”
“무슨 손님?”
내 반문에 황도욱이 눈을 도르륵 굴렸다.
“회장님이요.”
“회장님이라고?”
“그런 사람 있어요. 우리 뒤 봐주는 사람.”
엄청 있어 보이는 직함이다. 그렇지 않아도 황도욱과 그 외 환이라는 사람들의 통장에 입금되는 엄청난 거액의 출처가 궁금했는데. 혹시 이 회장이라는 사람일까.
“그 사람이 돈 주는 거야?”
“네.”
“……뭐 하는 사람인데 그 큰돈을 턱턱 주냐?”
“환상 그룹 회장이에요.”
환상 그룹? 나는 회사 이름을 듣자마자 놀라 뒤로 자빠질 뻔했다. 환상 그룹이라면 대한민국에서 굴지의 대기업으로 통용되는 S그룹과 필적하는 회사다. 그 오너는 세계 부자 순위 50위 안에 드는 사람이라고 했다. 유통, 식품, 제조업, 전자제품 등 손을 안 뻗은 곳이 없다. 심지어 그룹 차원에서 선행도 종종 자주 베풀고 기업 복지도 좋아서 대한민국 사람들에게는 꿈의 직장이라고 불리는 곳이었다. 그런 유토피아에서나 존재할 법한 기업이라 이름도 환상 그룹인 거라고 이름 붙은 곳의 회장이 환들의 스폰이라고?
나는 심각하게 고민했다. 역시 환이 될 수 있다면 한 번쯤 죽는 고통쯤이야 견딜 수 있지 않을까?
“형.”
환이 돼서 망치를 휘두르며 사람들의 뇌수를 터트리고 다니는 내 모습을 상상했다. 밤에는 몸에 피 칠갑을 하고 묵을 사냥하고 낮에는 페라리를 타고 온몸에 명품을 도배한 채 거리를 질주하는 삶……. 아무리 생각해도 손해 볼 게 없는데.
“강채승.”
어차피 진짜 사람을 죽이는 것도 아니고 정확히 말하자면 이미 죽은 시체 아닌가. 검은 것한테 잘못 걸려 흙으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조종당하는 거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그렇게 불편하지도 않을 것 같다. 굳이 걸림돌이라고 생각한다면 내가 그것들과 맞서 싸울 정도로 튼튼하냐는 정도인데…….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아, 깜짝이야.”
망상에 파묻혀 허우적거리고 있는데 황도욱이 불쑥 얼굴을 들이미는 통에 나는 심장이 떨어질 뻔했다. 몇 번이나 불렀던 건지 황도욱은 뚱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다가 이마를 한 번 쿵 부딪히고 멀어졌다. 와, 타인이 이렇게 노골적으로 퍼스널 스페이스를 침범한 건 처음이라 심장이 두근거렸다. 나는 가슴을 손바닥으로 꾹 눌렀다.
“그렇게 갑자기 다가오면 어떡해?”
“대답을 하든가. 딴생각이나 하면서.”
“잠시 황홀경에 빠져 있었다. 미안.”
황도욱이 나를 흘겨보다가 입을 열었다.
“선생님이 형도 데려오래요.”
“어딜?”
“오늘 회장님이랑 만나는 자리.”
“내가 왜?”
“뭔지 몰라도 형이 키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무슨 키?”
나는 마치 물음표 살인마라도 되는 것처럼 반문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내가 알고 있는 정보는 굉장히 지엽적이었는데 반해 내가 겪을 일들의 세계관은 대서사시의 판타지였다. 멍청하게 눈이나 끔벅끔벅 뜨면서 죄다 떠먹여 주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는 소리다.
“환 실종 사건의 키.”
이건 또 무슨 거대한 음모의 전조 같은 말씀이냐?
마침 종이 쳤고,
“환 실종 사건?”
나는 어리숙하게 되물었다. 황도욱은 빈 우유 바닥만 몇 번 더 빨대로 쪽쪽 빨다가 입을 뗐다. 교실의 창문 틈새로 들어오는 햇빛이 황도욱의 머리 위로 내려앉았다. 빛에 눈이 찔린 듯 걔가 눈살을 찡그리며 고개를 들었다.
“시간 됐어요.”
“뭔가를 좀 시원하게 얘기해 줄 생각은 없어?”
“데려다줄게요.”
“아니, 데려다주는 거 말고.”
“늦으면 선생님께 혼나요. 우리 담임 선생님이 채 선생님이랑 친한지 미주알고주알 갖다 바치는 것 같아요.”
황도욱이 꿋꿋하게 몸을 일으켰다. 나는 걔 옷깃을 붙잡으며 올려다봤다. 먼저 운을 띄워놓고 알려주지 않는 심보는 무슨 못돼먹은 심보라는 말인가. 게다가 내가 어떤 범죄 사건의 열쇠라는 그런 의미심장한 말까지 해 놓고. 하여튼 그때 그날 이후로 내가 가지고 있는 일상의 지식으로 일이 전개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숨기려는 거야?”
“그런 게 아니고.”
걔가 눈을 끔벅거리다가 바깥을 가리켰다. 나는 신경질을 내면서 걔를 따라 얼굴을 돌렸다가 서둘러 자리를 정리하려는 황도욱의 뜻에 납득했다.
“종 쳤다. 얼른 들어가라.”
엄한 표정을 지은 채 앞문을 연 건 수학 선생님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박강수 폭행 사건 때문에 황도욱의 꽁무니가 용의주도하게 감시당하고 있던 차였다. 나는 황도욱을 붙잡고 있던 손을 어색하게 놓고 황급히 교실을 나왔다. 걔가 그 뒤를 천천히 따라왔다. 우리는 선생님께 고개를 숙여 가볍게 인사하고 복도를 걸었다. 뒤에서 우리를 지켜보는 수학 선생님의 시선이 의식됐다. 나는 황도욱한테 속삭였다.
“네가 또 사고 칠 것 같은가 봐.”
“가능성이 없지는 않죠.”
태연하게 지껄이는 황도욱을 보면서 기가 질린 표정을 지었다. 혼났다고 풀 죽어 있을 때는 언제고 이 배짱 좀 봐라. 나는 혀를 찼다. 하긴 나 같아도 죽은 사람들이 살아 움직이는 세상에서 살다가 보면 이깟 일상생활쯤이야 무서울 게 하나 없을 것이다.
우리 발걸음이 동시에 오른쪽 코너로 돌아갔을 때다.
“황도욱! 거기 1학년 교실 아니다. 네 반으로 돌아가.”
아직까지 안 가고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던 건지 등 뒤에서 수학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봤다. 엄한 표정을 짓고 있는 선생님이 보였다. 그는 손을 휘적이면서 우리 둘을 갈라놓는 제스처를 취했다. 나는 선생님을 보다가 황도욱을 올려다봤다. 황도욱도 자리에 멈춘 채 선생님을 쳐다보고 있던 참이었다.
“혼자 갈게.”
“그래도…….”
걔는 뭔가 영 찝찝한 표정이었다. 나는 의젓하게 이 두 살 어린 아기를 달랬다.
“박강수도 없어서 이제 나 괴롭힐 사람 없어.”
“…….”
“네가 병원에 처넣었잖아.”
물론 괴롭힐 사람이 없다고 해서 내 존재 자체가 우리 반 아이들한테 받아들여진 것은 아니다. 대놓고 나를 바닥에 눕히는 폭력은 사라졌지만 그 불쾌한 눈빛들마저 줄어든 것은 아니니까.
“얼른 안 들어가?”
황도욱이 우물쭈물하며 여전히 자리 뜨기를 망설이고 있자 뒤에서 수학 선생님이 재촉했다. 나는 황도욱의 어깨를 붙잡아 돌리고 1학년 교실 쪽으로 등을 억지로 밀었다.
“가, 얼른. 나 미취학 아동 취급하지 말고.”
걔는 억지로 밀리면서 나를 힐끔거렸다.
“진짜 괜찮아요?”
“그래, 괜찮다니까.”
“그럼 무슨 일 있으면 꼭 연락해요.”
“알았어, 꼭 연락할게.”
내 확답을 듣고 나서야 걔는 스스로 걸었다. 등에서 손을 떼자 황도욱이 다시 몸을 돌려 나를 응시했다. 따라오려는 기세는 아니었다. 주인 잃은 강아지 같은 표정을 한 채 머뭇거리고 서 있다. 겨우 같은 건물 안에서 헤어지는 건데 이게 이렇게까지 아련할 이유가 있냐? 우리가 칠월칠석의 견우와 직녀도 아니고 달빛 아래 사랑을 맹세한 로미오와 줄리엣도 아닌데. 낯간지럽군.
“이따 봐.”
아무래도 황도욱이 먼저 돌아서지는 못할 것 같아서 내가 먼저 선수를 쳤다. 발걸음을 돌렸다. 일부러 씩씩하게 팔도 휘두르며 3학년 3반 교실로 곧장 올라갔다. 뒤통수에 따라붙는 두 개의 시선은 코너를 돌아 계단 몇 개를 밟자 사라졌다.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춰 뒤를 돌아 텅 빈 공간을 확인했다. 알아서 잘 갔겠지. 애도 아니고. 애 같기는 해도.
어쩐지 심란해진 마음을 달래며 3학년 3반에 도착했다. 이미 종이 친 지 한참이라 복도는 한산했으나 우리 반 뒷문에서는 소음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아직 선생님이 오시지 않은 건가. 오늘 5교시 과목이 뭐더라. 아무튼 지각인데 들키지 않아서 다행이군. 그런 생각을 하면서 문을 드르륵 열었다.
나는 늘 그렇듯 내가 교실로 입성하자마자 날아올 따가운 시선들을 각오했다. 짜고 치기라도 한 것처럼 일동 묵념으로 나의 존재 자체를 눈치 주는 행위 말이다. 이제는 익숙해져서 뭐 좆 까라는 심정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처음에는 상당히 큰 타격으로 와닿았다. 그 씁쓸한 적막 속에서 무너지는 자존심이 얼마나 서럽던지.
그런데 오늘따라 교실 분위기가 평소와 다르다. 소란스럽다 싶더니 내가 들어오는 소리도 제대로 듣지 못한 듯 뒷자리에 앉은 몇 명만 흘깃 돌아볼 뿐 각자 본인들의 얘기를 떠드느라 바빴다.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학급 전체가 소란스럽다 못해 부산스러웠다. 그래도 집중되는 시선은 없어서 좋다.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자리에 앉으면서 귀를 쫑긋 세웠다. 그러자 근처에서 숙덕거리는 애들의 말소리가 간간이 들리기 시작했다.
“죽은 게 소영이 어머니래?”
“그렇다던데. 점심시간에 경찰차 온 거 본 애들이 한둘이 아니래.”
“오늘 소영이 진로 상담으로 어머님 오셨잖아. 그러다가…….”
“어우, 이게 무슨 끔찍한 일이야?”
“무서워서 학교 다니겠어?”
소영이 어머니가 죽었다고? 나는 천천히 교과서를 꺼내면서 소영이 자리를 쳐다봤다. 비어 있었다. 우소영은 우리 반 반장으로 모범생과 우등생 두 가지 타이틀을 거머쥔 엄친딸 같은 존재였다. 성격은 다소 딱딱한 면이 없잖아 있었지만 지킬 건 지키는 편이라 교사와 학생 가릴 것 없이 인망이 두터웠다. 부모님도 딸한테 관심이 많은지 학교에 자주 들락날락했고 집안의 경제 사정도 무난했다. 나름의 스트레스는 있었을지 몰라도 적어도 겉으로 볼 때는 때 묻지 않은 삶이었다. 나와의 관계는 ‘반장’과 ‘반장이 챙겨야 할 소외된 학생’, 딱 그 정도의 관계였다. 나를 반기거나 환영하는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배척하며 티를 내지 않을 정도로 점잖았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런 걔의 어머니가 죽었다고?
펼쳐 놓은 독서 교과서를 멀거니 응시하면서 맹렬하게 생각했다. 불현듯 내 주위로 묵이 몰려들고 있으며 내가 가는 곳마다 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있다는 채 선생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그때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아버지의 살인 사건 이후 각종 매스컴에 시달렸던 나는 TV를 틀기만 해도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우리 부자에 대한 맹비난이 괴로워 뉴스를 보지 않은 지 오래였다. 그렇기 때문에 정말 아주 근처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고 하더라도 모르고 넘어가는 게 다수였고 애초에 알 생각도 없었다.
그렇지 않은가. 살인으로 인생을 망쳐버린 나다. 더는 엮이고 싶지 않았다. 애초에 나 때문에 사람이 죽는다는 얘기도 믿기 어려웠을 것이다. 비현실적이었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일어났다는 그 살인 사건들이 나와 얼마나 밀접하게 관련된 건지 자각하기도 어려웠다. 내 관심사는 솔직히 나의 안전에만 쏠려 있었다.
그렇다면, 그들의 말이 맞다면 소영이 어머니도 나와 관련돼서 죽은 걸까? 아니면 학교 근처에서 죽었다는 게 단지 우연일까? 그냥 신경쇠약에 걸려 버린 내 비약인 걸까?
뒤늦게 선생님이 들어오면서 교실은 조용해지고 수업은 시작됐으나 나는 눈앞의 교과서에 도통 집중할 수가 없었다. 시험에 나온다고 중요하다며 교탁을 탁탁 두드리는 손바닥 소리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종이 한 장을 꺼내 볼펜으로 낙서만 지껄였다. 묵과 환, 살인, 아버지, 살인, 황도욱, 살인, 소영이 어머니, 살인, 환 실종 사건, 살인, 살인, 살인…… 그리고 나, 강채승.
복잡하다. 나는 어쩌다가 토끼굴에 굴러떨어진 앨리스일 뿐이다. 작아지는 약을 마시지도 않았고 모자 장수를 만나지도 않았다. 토끼 따라 잠깐 구경만 하다가 금방 나갈 생각이었다. 그저 이계의 이방인이라고 생각했다. 일원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없던 건 아니었지만 반쯤은 장난이었다. 진짜로 내게 그런 일이 일어나겠는가. 비중 없는 조연은 사건의 겉만 핥다 빠지는 법이다. 그런데 이 망상 같은 모든 일이 괴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19년을 사는 동안 지금까지 어떤 징조도 느끼지 못했는데 아주 갑자기. 내 목숨이 위험하고 의미심장한 일이 나를 중심으로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다. 정말 괴이한 일이 아닐 수가 없다.
나는 학교가 파할 때까지 딴생각에 골몰하다가 문득문득 빈 소영이 자리를 응시했다. 쉬는 시간마다 빠지지도 않고 찾아와 옆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는 황도욱을 보면서도 생각했다. 이 의문을 확실하게 해결하는 방법이 멀리 있는 건 아니다. 황도욱한테 물어보면 알려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쉽게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다. 나 때문에 사람이 죽는다니. 이건 아무리 낯짝에 철판 깔고 사는 나라도 뻔뻔하기 어려운 주제다. 설마, 아니겠지?
그러나 결국 호기심이 두려움을 이겼다. 어차피 모르고 싶어도 종국에는 알게 될 거라는 불길한 예감도 함께였기 때문이었다. 맞을 매라면 미리 맞는 게 낫다. 종례 후 교실 문 앞까지 나를 데리러 온 황도욱 앞에 우뚝 섰다. 아이들이 하교하고 있었다. 서로 수군거리면서 이쪽을 흘깃거렸다. 우리 얘기를 걔들이 듣든 말든 지금 당장은 괘념치도 않았다. 황도욱이 나를 내려다봤다. 나는 비장하게 서서 물었다.
“근처에 살인 사건이 났대.”
걔가 나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그거 혹시 나 때문이야?”
나는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미 반쯤 확신하고 있었다. 이 죽음은 분명히 내가 원인일 것이다. 그리고 다짐했다. 황도욱이 어떤 대답을 내놓든 충격받지 않겠다고. 걔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내 얼굴만 훑었다. 무슨 생각인지 알아내고 싶은 눈이었다.
말을 덧붙였다.
“거짓말하지 않아도 돼. 나는 괜찮으니까.”
“…….”
“나 때문에 진짜 사람이 죽었다면 충격적이겠지만……. 그래도 나도 알아야지. 그래야 내가 뭘 어떻게 하든…….”
“형 주변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은 최근 한 달 동안 총 10건. 그중에서 묵이 범인인 사건은 6건.”
황도욱이 내 말을 자르며 무미건조하게 지껄였다. 최근 한 달 동안만 10건이라고? 맥이 탁 풀렸다.
씨발, 그렇게 많이 죽었다고? 나 때문에? 고작 내 주변에 있었다는 이유로? 왜? 대체 왜? 어떻게? 어째서 그런 일이 일어난 거지? 왜 나는 여태 몰랐던 거지? 아버지가 죽였던 건가? 그렇다면 오늘 일어난 일은 누가 죽인 거지? 도대체 나한테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서……. 포화하는 생각들로 머릿속에서 불이 나고 있었다. 나는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그동안 살인자의 자식이라는 꼬리표가 지긋지긋했는데 실은 자식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진짜로 나 때문에 죽은 거라면……. 나 혹시 불행을 몰고 다니는 저주를 타고난 아이인가? 그래서 그런 건가?
끝없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생각들 탓에 나는 황도욱이 어느새 내 바로 앞에 서 있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형.”
걔가 바들바들 떨리기 시작하는 내 주먹을 잡았다. 문득 눈이 마주쳤다. 황도욱의 눈은 깊고 맑았다. 걔의 순진무구하고 천진난만한 인상은 그 오점 하나 없는 갈색 동공이 90%의 원인을 차지하고 있다. 사슴과 비견될 만한 눈망울. 저렇게 순백의 얼굴을 하고 실상 하는 일은 유혈이 범람하는 일이라니.
하늘도 무심하다. 죽이지 않으면 소멸하는 인생. 내 번잡한 상념 따위 걔의 운명 앞에서는 별것도 아닌 것 같다.
황도욱의 오밀조밀한 입술이 움직였다.
“형 근처에서 사건이 증가한 건 맞지만,”
“…….”
“그렇다고 그게 다 형 탓인 건 아니에요.”
나는 호흡을 멈췄다.
“그 두 가지는 살인과 자살만큼 큰 차이가 있으니까.”
걔 손가락이 꽉 다물린 내 주먹 사이를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힘을 풀었고,
“고약한 인생에 욕 한 번 하고 말아요. 평소처럼.”
우리는 깍지를 끼었다.
잡은 손은 금방 풀었다. 애들이 다 지켜보는 앞에서 살인 어쩌고 한 것도 눈치 보이는 일인데 손까지 잡고 하교하면 또 어떤 헛소문이 꼬리표에 달릴지 몰랐다. 이미 소문으로 덕지덕지 점철된 인생을 살고 있긴 한데 그렇다고 소문의 무게를 늘려도 괜찮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나란히 교문으로 나왔다. 보건 선생님이 이미 차를 교문에 댄 채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조수석 창문이 열리고 청하 누나의 얼굴이 보였다. 왼쪽 뺨에 보지 못했던 반창고를 붙이고 있었다.
“전학 오자마자 거하게 사고 쳤다는 소식은 들었어.”
“나는 내 할 일을 했을 뿐이야.”
“타. 회장님이 기다리신다.”
나는 누나에게 가볍게 고개 숙여 인사하고 뒷좌석으로 들어가는 황도욱의 뒤를 따랐다. 푹신한 시트에 엉덩이를 붙였다. 운전석에 앉아 핸들을 쥐고 있는 선생님이 뒤를 돌아봤다.
“별일 없었지?”
“황도욱이 쉬는 시간마다 반으로 찾아온 것 말고는 별일 없었어요.”
내가 농담 반 진담 반 섞어 말했다. 혼자가 아닌 기분은 나쁘지 않았지만 그래도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쫓아와 옆에 앉아 있는 것은 좀 남사스럽긴 했다. 황도욱이 올 때마다 이쪽으로 쏟아지는 시선의 원인은 구십구 퍼센트는 명백하게 황도욱이었다.
“황도욱.”
선생님이 엄한 목소리로 이름을 불렀다.
“제 할 일을 했을 뿐이라니까요.”
황도욱은 눈을 슬쩍 피하며 불퉁하게 대꾸했다. 그렇지 않아도 뻔질나게 우리 반으로 올라오는 문제에 대해 이미 지적받은 듯했다. 나는 슬쩍 걔 옆구리를 찔렀다. 황도욱은 꿋꿋하게 창문 바깥에만 시선을 뒀다. 귀엽군. 울적한 감상에 빠졌던 건 언제고 나는 또 금방 기분이 괜찮아져서는 흐흐 쪼개며 이동하는 내내 황도욱을 놀려댔다.
***
선생님의 운전은 부드러운 편이었다. 신호도 칼같이 지키고 정지선조차 1cm도 벗어나지 않았다. 거의 뭐 교통 법규의 화신 같은 모습으로 도로를 달린 선생님이 세운 곳은 고급 한정식 가게 앞이었다. 전통적인 기와집으로 대궐처럼 조성된 가게는 척 봐도 한 끼당 몇십은 할 것처럼 생겼다. 선생님과 우리가 하차하자 발렛 직원 한 명이 금방 쫓아와 키를 받아 갔다.
선생님과 청하 누나 그리고 황도욱은 익숙한 듯 직원의 안내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그들 틈에서 나만 사방을 두리번거리면서 생전 처음 와 본 으리으리한 공간을 눈으로 코로 맛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서울로 상경한 시골쥐가 이런 기분이었을까. 눈 두는 곳마다 정갈하면서도 화려한 외관이 도드라졌다. 잘 조성된 정원과 고급스럽게 깔린 대리석 길이 생소했다. 황도욱을 만나지 않았다면 평생 겪지 못했을 경험이다.
“회장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안내하겠습니다.”
가게 안으로 들어가자 매니저로 보이는 사람이 로비 카운터에서 나와 정중하게 인사했다. 우리가 누구인지 말도 안 했는데 알아보는 걸 보면 다들 한두 번 와 본 게 아닌 모양이다. 매니저는 우리를 안쪽 깊은 곳에 있는 방으로 안내했다. 좌식인 듯 은은한 조명이 달린 문 밑에 검은 구두 한 쌍이 정갈하게 놓여 있었다.
“회장님, 들어가겠습니다.”
매니저가 깍듯하게 말한 후 문을 열었다. 선생님과 청하 누나가 앞에 있었던 탓에 나는 내부를 바로 보지는 못했다. 둘이 먼저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가고 나서야 나는 안쪽을 살펴볼 수 있었다.
흔히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고급스러운 방이었다. 직사각형 원목 테이블이 중앙에 놓여 있고 벽면은 옛날 전통 무늬를 본뜬 창문이 달려 있었다. 그곳에 이미 앉아 있는 한 남자가 보였다. 나이는 칠십 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노년의 남성이었다. 희끗희끗한 머리카락과 깊게 팬 주름, 그리고 그 사이에 이마와 눈썹을 가로지르는 흉터가 적나라했다.
환상 그룹의 회장이었다. 험상궂게 생긴 얼굴 위에 또렷하게 새겨진 흉터는 과거 그의 행적을 의심하는 음모론들의 근원지였다.
“회장님, 저희 왔습니다.”
선생님이 깍듯하게 인사하며 안으로 들어섰다. 청하 누나도 정중한 자세로 허리를 숙였고 황도욱은 고개만 까딱였다. 마지막은 나였다. 나는 이 가게와 맞지 않는 낡은 운동화를 조심스럽게 벗으며 숨을 죽이고 들어갔다.
회장님이라는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바로 정면에서 마주친 그의 시선은 마치 호랑이 같았다. 부리부리한 시선이 나를 직시했다. 나를 꿰뚫어 보는 듯한 눈길에 나는 잠깐 움직임을 멈췄다.
“안녕…… 하세요?”
당황해서 얼떨결에 인사했다. 뜬금없이 튀어나온 내 목소리에 모두가 나를 쳐다봤다. 이미 자리에 앉은 선생님이랑 청하 누나 그리고 앉으려다 말고 우뚝 멈춘 황도욱까지. 나 이렇게 이목이 과도하게 집중된 건 초등학생 때 응원 단장 보직 이후로 경험해 본 적이 없는데.
“자네가 강채승인가 보군.”
“네, 네.”
내가 어쩔 줄 모르고 서 있자 황도욱이 옷깃을 잡아당기며 억지로 앉혔다. 나는 걔 손에 이끌려 어영부영 회장님 맞은편 자리에 황도욱과 함께 앉았다.
왼쪽부터 청하 누나, 회장님, 선생님 순서로 앉았고 그 맞은편에 나와 황도욱이 앉게 됐다.
회장님의 시선이 나를 집요하게 쫓았다. 나는 계속 눈치를 봤다. 내가 뭐 잘못한 거라도 있나. 그게 아니면 나에 대해 안 좋은 이야기라도 늘어놨나. 괜히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우리가 자리에 앉자 곧바로 음식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코스 요리인 듯 제일 처음에 들어온 것은 묽은 콩 국물이었다. 손바닥보다 조금 작은 흰색 공기에 담긴 그 요리는 살아생전 처음 본 것이었다. 먹어 보고 싶었지만 지금 내게 쏟아지는 시선 때문에 곧바로 수저를 들 수는 없었다. 나는 눈만 데굴데굴 굴렸다.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청하 누나였다.
“강채승 얼굴 뚫리겠어요.”
“아, 그렇게 오래 봤나?”
회장님이 그제야 눈에 힘을 풀며 작은 미소를 띠었다. 선생님이 말을 덧붙였다.
“애가 지금 겁먹어서 얼굴을 못 들잖아요.”
그러지는 않았는데. 하지만 그러기를 바라는 것 같아서 나는 소심한 척 얼굴을 푹 숙였다. 머리 위로 회장님의 미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안하네. 내가 반가워서 그랬어.”
반가워? 뭐가 반가워? 나는 콩 국물에 두었던 시선을 다시 들어 올렸다. 친절한 목소리를 듣고 난 뒤의 회장님은 첫인상과 다르게 제법 누그러진 얼굴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왼쪽 눈썹뼈 부근에 난 자상은 무서웠지만 말이다.
“회장님께서 제가 반가울 일이…….”
“설명하자면 이야기가 길군. 우리 협회에 관한 이야기도 해야 하고. 일단 들지. 도욱이가 영 지루한 얼굴이니까.”
그 말대로였다. 황도욱은 회장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옆에 놓인 작은 수저를 쥐고 콩 국물을 휘젓고 있었다.
걔가 그러고 있는 걸 보니까 나까지 덩달아 배고파졌다. 나도 황도욱을 따라 수저를 들고 콩 국물을 한 숟갈 퍼먹었다. 안에 또 뭐가 든 건지 물컹물컹 씹히는 식감과 함께 목구멍 뒤로 넘어가는 음식의 맛은 태어나서 처음 먹어 보는 맛이었다.
“입에 맞나?”
“네, 맛있어요.”
“다행이군. 요즘 애들은 뭘 좋아하나 고민하다가 그냥 애들이 잘 먹는 곳으로 골랐네.”
이런 고급 한정식이 애들 잘 먹는 곳이라고? 의아했으나 흐뭇하게 웃는 회장님의 면상에 대고 태클을 걸 수도 없었다.
회장님은 테이블에 앉은 우리들을 둘러봤다. 황도욱은 이미 접시를 비웠고 청하 누나는 반쯤 먹은 상태였다. 선생님과 회장님은 수저를 들지 않았다. 콩을 싫어하나. 나는 마지막으로 남은 국물을 입안으로 떠넣으면서 흘깃 곁눈질했다.
“좋아, 그럼 어디부터 얘기해 줘야 할까. 묵과 환이 뭔지는 대충 들었지?”
나는 다 먹은 수저를 놓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회장님이 인자하게 웃으며 말했다.
“먹으면서 들어.”
다 먹었는데. 수저만 쪽쪽 빨고 있을 수도 없고. 생각하기 무섭게 방의 문이 열리면서 종업원이 들어왔다. 두 명의 페어로 이루어진 그들은 조심스럽게 들어와서 다 먹은 접시를 치우고 다음 코스를 올려놨다.
이번에는 녹두로 만든 죽이었다. 이것도 맛있겠군. 고소한 냄새가 솔솔 풍기면서 코끝을 스쳤다.
“우리 협회가 설립된 것은 약 30년 전 일이지. 그때까지는 서로의 존재만 알고 있을 뿐 결집해서 뭔가를 한 적이 없었어. 각자도생하면서 묵을 죽이고 자신의 생을 연장하는 것을 반복할 뿐이었거든. 그렇게 묵에 미쳐 살아야 자신의 생을 유지할 수 있었으니까. 사실 사방에 흩어져 있는 묵을 찾아 돌아다니기란 생업을 유지하면서 하기란 어렵지. 그래서 원래 환의 수명은 그리 길지 않았다네.”
나는 죽을 떠먹으면서 회장님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내가 환이 된 그날은 아직도 잊지 못하겠군. 나를 죽인 묵은 우리 누나였어.”
친족 살인인가. 미리 설명을 듣긴 했지만, 묵이라는 놈들은 극심하게 잔인하다. 자기 가족을 죽이게 한다니. 이미 죽은 영혼까지 욕보이는 행태다.
“각성하고 정신을 차리고 난 다음에 누나는 이미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지. 나는 나한테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지도 못했어. 그냥 그렇게 다시 새로운 하루를 시작했지.”
“환은 각성하고도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모르나요?”
“아무래도. 알려주는 사람은 없고 덜렁 혼자 누워 있으니 모든 게 꿈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는 건 한 달이 지나던 시점이지. 몸에서 힘이 빠지고 자꾸 잠이 와서 죽겠거든.”
잠이 온다고? 문득 도욱이가 며칠 전에 했던 말이 떠오른다. 환도 묵을 잡지 않으면 죽는다는…….
“보통 그때 묵을 찾지 못해 잡지 못한다면 환도 그대로 죽는 경우가 허다하지. 나는 운이 좋았다네. 어느 날 밤에 어두운 골목에서 행인 한 명을 잡아먹으려고 하던 묵을 발견했거든. 그 자식의 지독한 냄새가 100m 밖에서도 진동해서 도저히 안 가 볼 수가 없었지. 그리고 나는 누나와 똑같은 모습을 한 괴물을 발견했어.”
회장님이 말씀하시는 동안 요리는 이제 본식에 들어서고 있었다. 구운 소고기를 한 점 집어먹으면서 나는 그다음 장면을 상상했다.
“나는 마치 본능처럼 그 자식의 머리를 깼지.”
지금보다 좀 더 젊은 모습의 회장님이 흉흉하게 안광을 부라리면서 괴물의 머리를 무지막지하게 깨고 있는 걸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 장면은 일주일 전 내가 본 바로 그 장면과 흡사했다. 회장님도 망치를 썼을까. 맨손이었나? 그런 사소한 궁금증이 다였다.
“그 이후 다시 정신을 차린 나는 전국을 수소문해서 나와 같은 사람들을 찾았어. 꽤 있었지. 그들은 대부분 힘들게 살고 있었어. 예비 살인자를 잡으면서도 오히려 살인자로 몰려 옥살이하던 경우도 종종 있었지. 갇히면 더는 묵을 잡지 못하고 그렇게 말라 죽어가는……. 그래서 나는 협회를 만들었네. 그들의 권익 보호와 앞으로의 안전한 활동을 위해.”
“안전한 활동…….”
나는 말을 따라 읊조렸다. 장어구이 맛있군.
“우리의 생존도 문제지만 묵이 증식하는 것을 그대로 두고 볼 수도 없지. 묵이란 것들이 살인을 하고 다니면 그만큼 또 묵이 생겨날 거고……. 이 전염은 사회에 일대의 혼란을 일으키게 될 걸세. 묵의 개체 수가 증가한 구역의 일대는 민간인들에게도 나쁜 영향을 끼쳐서 사소한 경범죄도 증가하거든. 보통은 환과 묵은 비례하기 때문에 그 균형을 맞추지. 그런데 2년 전 그 사건 이후로 밸런스가 깨지고 있어.”
나는 밥을 한 숟갈 뜨다 말고 회장님을 쳐다봤다. 회장님이 이어서 말했다.
“1년 전부터 발생한 환의 연쇄 실종 때문이지.”
“들어는 봤어요.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우리는 협회이긴 하지만 환들은 기본적으로는 독자적으로 행동하고, 구속하는 집단도 아니었기에 그들의 실종에 대해서 너무 늦게 깨달았어. 벌써 일곱 명이나 사라졌다네. 흔적을 쫓고 있지만 다들 인적도 카메라도 한 대 없는 곳에서 사라져서 조사에 애를 먹고 있어.”
나는 입을 떡 벌렸다. 연쇄 실종 사건? 심지어 일곱 명이? 대한민국에서? 도대체…… 무슨 수로?
“그러다가 이번에 너희 아버지였던 강재형 씨의 시체에서 이런 걸 발견했다.”
“저희 아버지요……?”
“옷에 머리카락이 묻어 있었어.”
회장님이 갑자기 서류 봉투 하나를 꺼내더니 내 앞으로 슥 내밀었다. 나는 젓가락질을 하다 말고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봉투를 꺼내 열었다.
서류였다. 어떤 사람의 인적 사항이 적힌.
“DNA 검사를 했지.”
갈색 단발머리를 하고 순한 얼굴을 하고 있는 어떤 여자의 사진이 서류 제일 왼쪽 상단에 붙어 있었다. 그 옆에는 신상 명세가 간략하게 적혀 있었다. 나는 눈으로 읽었다. 이름 이자경, 나이 “살아있다면” 51세 추정.
“너의 어머니더군.”
이 씨발, 좆같은 시련 같으니라고.
이쯤 되면 내 사주를 의심해 봐야 한다. 겨우 십구 년밖에 안 살았는데 팔자가 이렇게 기구할 수는 없는 거다.
“우리 엄마 저 어릴 때 돌아가셨는데요.”
나는 서류를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중얼거렸다. 달랑 한 장 남은 가족사진에서 수백 번, 수천 번은 더 봤던 그 얼굴이 맞다. 열 살 무렵 돌아가셔서 엄마에 대한 기억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어느 무더운 여름날, 덥다고 칭얼거리는 내게 아이스크림을 사다 주던 모습은 선명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난 다음 아버지는 급하게 집을 정리하고 여기로 이사 왔다. 내 인생이 꼬인 것은 그때쯤부터였던 것 같다. 그런 큰일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변하지 않았다. 부모님끼리 고성을 지르고 싸우는 소리는 더 이상 듣지 않아도 되었지만 아버지는 하나 남은 아들과도 거의 소통을 단절했다. 그는 초췌한 얼굴로 하루가 멀다 하고 술에 꼴아 들어왔다. 다행히 일을 하긴 한 건지 집에서 쫓겨난다거나 생활비가 뚝 떨어져 쫄쫄 굶는 일은 없었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그를 추억하고 싶지는 않다. 그는 나에게 그저 동거인일 뿐이었다. 그 남자가 내게 아버지 노릇을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비록 다른 사람에게 살해당해 묵이 된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게 다였다. 그는 애초에 나한테 가족이었던 적이 없다.
“서류상 돌아가신 건 맞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기억하나?”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꼭 밥 먹는 도중에 하셨어야 했나요. 나는 숟가락을 놨다. 입맛이 뚝 떨어졌다. 진작 장어구이를 다 먹어놔서 다행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한 입 남은 살코기가 도저히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아 아까울 뻔했다.
“강도가 들어서…… 저항하시다가 칼에 찔려 돌아가셨어요.”
“몇 살 때?”
“열 살이요.”
너무 어릴 때라 기억이 흐릿하기는 하지만 그때 바닥에 누워 나를 쳐다보던 엄마의 텅 빈 눈동자는 선명했다. 맞다, 그런 일이 있었지. 지금까지 까마득하게 잊고 있던 일이다. 열 살이 겪기에는 너무 충격적인 사건이었던 건지 나는 그날의 기억을 거의 하지 못했다. 희뿌옇고 흐린 안개가 머릿속을 점거하고 아무것도 보여 주지 않는 것이다. 나 또한 그것을 애써 들출 생각이 없었다. 들춰서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는가? 밤에 악몽이나 안 꾸면 다행이지.
엄마는 강도에게서 나를 지키다가 돌아가셨다. 그런 거라고 아버지가 말씀해 주셨다. 안타깝게도 범인은 잡지 못했다. 의욕 없는 경찰은 초동 수사를 망쳤고 치안이 좋지 않은 동네라 단서를 확보할 만한 CCTV도 없었다. 게다가 당시 유일한 목격자였던 나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우리는 장례식을 치를 비용도 없었기 때문에 빠르게 화장하고 모든 것을 덮었다.
“무덤은?”
“화장해서 납골당에 모셨어요.”
“시신은 없다는 건가?”
“그렇죠. 화장했으니까.”
“직접 본 건 아닐 거고.”
“전 그때 열 살이었어요.”
이 대화가 불편했다. 내려놓은 서류의 모서리만 만지작거렸다. 엄마의 인적 사항이 적힌 글자들이 눈에 들어와 박혔다. “살아있다면” 이 문구도 그렇다. 지금 이 사람들 생각에는 우리 엄마가 살아있을지도 모른다는 것 아닌가. 미묘한 감정이 일었다. 엄마가 진짜로 살아있을 법하다고 생각한다면 내가 너무 안일한가. 하지만 갑자기 들이닥친 비일상 속에서 나는 뭐가 상식적이고 비상식적인 일인지 판단할 회로가 고장 나 버린 듯했다.
“아직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다.”
“어쨌든 엄마가 살아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이잖아요. 그것도 그 사건과 어떤 유의미한 관련이 있는 상태로.”
회장님은 대꾸하지 않았다. 어느새 모두가 숟가락을 놓고 우리의 대화에 집중하고 있었다.
“저는 엄마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어요.”
“그런 것 같구나.”
“저를 통해 엄마를…… 알아내고 싶으셨던 것 같은데 죄송해서 어쩌죠.”
나는 서류를 다시 쓱 밀어 돌려주었다. 사실 진짜로 죄송한 건 아니다. 어른 앞에서 예의를 차린 거다. 살아있다고 하더라도 이미 열 살 때 인연이 끊긴 사람을 알지 못하는 건 당연하다.
“제가 뭘 어떻게 해야 하나요?”
“살아만 있게나.”
“네?”
회장님이 서류를 다시 가져갔다. 그가 별로 달라지지 않은 표정으로 나를 응시했다.
“지금은 그것밖에 방법이 없어. 배후에 누가 있는 건지, 무슨 목적으로 이런 일을 하는 건지 아무것도 밝혀진 게 없거든. 만약 이 일을 벌이고 있는 사람이 너희 어머니라면 언젠가 자식한테 접근해 올 수도 있겠지. 아니면 그가 실수하기를 바란다거나. 혹은 너희 어머니도 납치된 걸지도 모르고. 게다가…… 그것 말고도 또 다른 소식이 있다고 들었다. 도욱아.”
그가 줄곧 나한테 박혀있던 눈을 황도욱한테 돌렸다.
“박강수라는 친구한테 썩은 우유 냄새가 났다고?”
“네.”
“네가 착각하지는 않았을 거고.”
황도욱이 묵묵히 고개만 끄덕였다. 회장님은 난감하다는 듯 미간을 구겼고 나는 동공을 굴리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게 저희 어머니랑도 관련이 있을까요?”
“환의 실종이 묵의 발생과 어떤 유기적인 연결이 있을 거라는 단서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산 자가 묵만큼 강한 부정으로 영혼이 검게 물들게 되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연구를 했던 사람은 있지. 그의 말에 따르자면 부정 또한 근본은 영혼이기 때문에 찌꺼기의 크기가 크다면 영혼을 잡아먹고 살아있는 묵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박강수가 정말로 그 묵이 됐을 거라는 건가요?”
나는 새된 목소리로 비명처럼 내질렀다. 1년 만에 재회했던 아버지와 박강수를 머릿속으로 나란히 떠올렸다. 괴상한 모습으로 내 심장을 노리며 끊임없이 달려들던 아버지와 똑바로 서서 분명한 발음으로 나를 향한 모욕을 뱉던 박강수. 그 둘에게 어떤 공통점이 있었던가?
아니, 분명히 둘은 달랐다.
“원론적으로는 불가능한 이야기다. 그 찌꺼기가 그만큼 커질 수 있을 리가 없거든. 하지만 확인은 해 봐야겠지. 박강수가 어느 병원에 입원했는지 알고 있나?”
“서경 대학 병원입니다.”
“재우가 선생님이자 도욱이 보호자 명목으로 직접 가 보도록 해. 학폭위 건도 해결해야 하니까.”
“네.”
회장님의 지시에 선생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 테이블 위에 정적이 흘렀다. 대충 이야기가 마무리된 듯했다. 마침 문이 열리면서 다음 코스 음식이 들어왔다. 직원들이 각자의 자리에 접시를 놔주었다. 소갈비찜이었다. 달큰한 냄새가 후각을 자극했다. 도망간 줄 알았던 입맛이 다시 돌아오더니 혓바닥 위에서 미쳐 날뛰었다. 혈기 왕성한 대한민국 19세 남자 고등학생은 원래 뒤돌아서면 배가 고픈 법이다. 게다가 저 갈비찜의 자태를 봐라. 죽은 사람도 일으켜 세울 윤기다. 입맛이 없어도 억지로 먹어 줘야 한다는 말이다.
모든 음식이 세팅되고 직원들이 퇴장했는데도 여전히 사람들은 무거운 이야기로 적막했다. 나는 가만히 눈치를 보다가 슬쩍 입을 열었다.
“저, 마저 먹어도 되나요?”
왜 날 그런 눈으로 보는 거지?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곱댔다.
***
오랜만에 만족스러운 포만감을 느끼며 집으로 돌아왔다. 혓바닥에 기름칠을 잔뜩 해 주고 나니 마음이 한결 너그러워졌다. 회장님은 첫인상과 다르게 아주 인자하게 웃으며 내게 카드 하나를 쥐여 주었다. 필요한 것 있으면 주저하지 말고 사용하라고 했다. 나는 깜짝 놀라면서 한도를 물었다. 그는 다시 한도가 없는 카드라고 대답했다. 뒤로 넘어갈 뻔했다. 거대 기업 회장의 배포란 이런 것인가. 나는 그의 통 큰 기부에 감읍하며 카드를 받았다.
“기분 좋아요?”
“좋지.”
“필요하면 말하지 그랬어요. 내 카드 줄 수 있는데.”
황도욱이 내게 엉겨 붙은 채 중얼거렸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씻고 익숙하게 내 허리에 팔을 감은 걔였다. 이제 어색하지도 않다. 나도 편하게 자세를 잡고 황도욱의 가슴에 머리통을 기대고 누웠다.
“원래 이런 건 말하기 전에 주는 거야. 내가 어떻게 뻔뻔하게 먼저 네 카드 좀 공유하자고 손 내밀겠어.”
“형은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네가 이렇게 선뜻 줄 거라고 생각했다면 나도 진작 시도는 해 봤을 텐데.”
장난처럼 지껄이면서 히죽히죽 웃었다. 손가락 사이에 끼워 구경하던 카드를 한참 들여다보다가 소중하게 주머니 안에 봉인했다. 이거 진짜 아무거나 사도 되는 건가. 카드 비밀번호도 알아 올 것을 그랬다. 요즘 인터넷으로 주문하려면 비밀번호 필수인데. 나중에 물어봐 달라고 해야지.
“형.”
“왜.”
“……안 무서워요?”
목소리를 낮게 깐 황도욱이 속삭였다. 나는 살짝 고개를 틀어 걔를 쳐다봤다. 딱히 큰 감정의 폭이 보이지 않는 얼굴이다.
“뭐가.”
“이런저런 이야기들. 형 어머니라거나 박강수라거나.”
“음.”
나는 아리송한 신음을 길게 내며 고민했다. 무거운 이야기들을 많이 듣기는 했다. 뭐가 이렇게 일들이 많이 꼬여 있는 건지 뒤죽박죽 섞여 혼란스러울 지경이었다. 심각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도 알겠다. 그게 나를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는 것도.
“딱히 무섭지는 않은데.”
“왜요?”
“그야.”
먼저 입을 벌려놓고 잠깐 생각했다. 뭐라고 말을 해야 할까. 이 오묘한 기분을. 나는 황도욱의 얼굴을 감상했다. 잘 뻗은 속눈썹, 티 한 점 없는 동공, 사람 한 명 빠져 익사할 정도로 크고 맑은 눈망울. 역시 잘생겼군.
“너는 네가 할 일을 내팽개칠 사람이 아니니까.”
“…….”
“널 믿는 거지.”
씩 웃었다. 손을 뻗어 말랑말랑한 황도욱의 뺨을 만지작거렸다. 묵이든 뭐든 나한테 해코지를 하려면 한 시도 떨어지려고 하지 않는 이 껌딱지부터 떼야 할 것이다. 그리고 얘는 날 절대 혼자 두지 않을 거고.
“그러니까 묻겠다, 황도욱.”
나는 짐짓 엄한 표정을 꾸며내며 묵직한 음성을 뱉었다. 황도욱이 나른하게 풀린 얼굴로 내려다봤다.
“언제든지 어디서든 누군가가 나를 해하려고 들면 지켜 줄 수 있는가? 도망가지 않고?”
반쯤 장난이었다. 해결책 없는 이야기만 잔뜩 들어 피곤해진 감정을 풀기 위한. 그런데 얘는 이걸 무슨 프러포즈쯤으로 받아들인 건지.
황도욱의 얼굴이 가까워졌다. 걔가 두 손으로 내 뺨을 감싸며 코를 부딪쳤다. 나는 숨을 삼켰다. 막을 새도 없었다. 애초에 막을 생각이 있었냐고 묻는다면 그건 또 잘 모르겠다. 나는 다만.
“맹세할게요.”
내 입술을 삼키는 황도욱이 미친 듯이 범람하는 내 심장 박동 소리를 듣지 못하기를 기도했을 뿐이다.
입술이 부딪쳤다.
왜 부딪힌 건지 모르겠다. 알 수가 없다. 왜 갑자기 이런 일이 생긴 건지, 황도욱의 얼굴이 가까워지자 나도 모르게 질끈 감은 눈을 도대체 뜰 수가 없었다. 폭등하는 심장 박동수는 가라앉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연하의 치아가 내 하순을 부드럽게 물었다. 입술을 맞대고 있자 말캉한 살덩이가 들어와 입안을 한 차례 휘젓고 빠져나갔다.
황도욱의 얼굴이 서서히 멀어졌다. 나는 슬그머니 눈을 떴다. 바로 코앞에 여전히 걔 얼굴이 있었다. 사슴처럼 순진한 눈망울을 하고 살짝 발갛게 달아오른 귀 끝이 보였다.
둘 다 잠깐 아무 말이 없었다. 걔가 나를 잡아먹을 듯이 응시하고 있었다. 내가 먼저 행동할 수밖에 없었다. 누가 봐도 뻣뻣한 몸짓으로 상체를 틀면서 걔 가슴을 밀어냈다. 실컷 즐겨놓고 뻔뻔하기 짝이 없는 수작이다.
“……내가 언제 뽀뽀하라고 했냐?”
나는 이 행위가 별것도 아닌 척 중얼거렸다. 그러면서도 걔 얼굴을 힐끔거리면서 침을 삼켰다. 황도욱은 별말 없이 순순히 떨어졌다.
“갑자기 확 좋은 냄새가 났어요.”
“…….”
“죄송해요. 나도 이게 뭔지 모르겠네.”
황도욱이 뒷머리를 머쓱하게 매만지며 눈을 끔벅거렸다. 이건 뭐 동정끼리 첫 키…… 한 순간도 아니고. 별안간 사이가 어색해졌다. 내가 볼 때 얘도 자기가 무슨 생각으로 입술을 부딪친 건지 모르는 거다. 아니, 술도 안 마셨는데 왜 키…… 하고 지랄인 거야. 괜히 사람 설레게.
“내 몸에서 나는 냄새 때문에?”
“네?”
“뽀뽀하고 싶어진 거야?”
내가 재차 물었다. 그러니까 어떤 추상적인 감정 때문이 아니라 호르몬을 자극하는 화학적 반응 탓이라는 건가. 내 몸에서 나는 냄새가 걔한테 어떤 영향을 주는 건지 모르겠지만 맨날 엉겨 붙는 걸 봐서 뽀뽀하고 싶은 욕구 정도는 충분히 불러일으킬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아무래도…….”
황도욱이 우물거리며 눈을 깔았다. 나는 걔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동그란 뒤통수는 자기도 퍽 당황한 듯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 위에 오른손을 턱 올렸다. 결 좋은 머리카락 사이를 손가락으로 살살 흩트렸다. 조금 서운하지만 뭐 연애 한 번 못 해본 것 같은 애한테 뭘 바랄까.
“연애 안 해 봤어?”
“…….”
침묵은 곧 긍정이다. 황도욱은 입을 꾹 다물고 있었지만 난 대충 눈치 깠다. 중학교 중퇴를 했다는 애가 연애를 했다고 해도 무슨 연애를 제대로 해 봤겠는가. 게다가 방금 그 키…… 를 생각하면 첫 키…… 가 분명했다. 어떤 놈이 키…… 하는데 혓바닥 한 번 날름하고 마냐?
“처음?”
“…….”
거듭 말하지만 침묵은 곧 긍정이다. 눈만 데굴데굴 굴리면서 이쪽은 절대로 쳐다보지 않고 있다. 나는 어쩐지 허탈한 감정을 끌어안으면서도 자신이 연애도 첫 키…… 도 못 해봤던 남자라는 것을 본인의 입으로 인정하지 않는 어린놈을 보고 실실 쪼갰다.
“내가 네 첫 뽀뽀 상대군.”
“뽀뽀, 뽀뽀 하지 마요.”
“왜. 네가 먼저 멋대로 입술 부딪쳐 놓고 이제 와서 빼는 거야?”
“그런 게 아니라…….”
나는 노선을 틀었다. 대놓고 놀려주기로 했다. 그냥 어쩌다가 아는 형한테 키…… 좀 갈겨봤다는 발상이 어처구니가 없었다. 당한 건 난데 지가 피해자처럼 얼굴 푹 떨구고 있는지 그것도 어이가 없다.
“다른 사람한테는 그렇게 갑자기 입술 비비고 그러지 마. 큰일 난다.”
“……죄송해요. 다른 사람한테는 안 그래요.”
“어떻게 장담하냐?”
“다른 사람한테는 형처럼 좋은 냄새가 안 나거든요.”
“그놈의 냄새, 냄새. 얼핏 들으면 악취인 줄 알겠다.”
내가 장난처럼 퉁명스럽게 비죽거렸다. 그러자 계속 고개를 무릎 사이에 처박고 있던 황도욱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형은 악취 안 나요.”
“응?”
“다른 사람들은 다 악취인데, 형은 안 나요. 그래서 이상해.”
그냥 뱉은 말인데 황도욱은 과민하게 반응했다. 걔가 내 손을 움켜쥐었다. 그대로 끌고 가서 코밑에 손등을 갖다 댔다. 더운 숨이 피부에 닿았다. 내리깐 속눈썹이 적나라하게 보였다. 그 모습이 쓸데없이 도발적이라 나는 순간 호흡을 멈췄다.
“환을 제외한 사람한테서는 짙든 약하든 악취가 나요. 가끔 코가 비뚤어질 정도로 독해서 머리를 돌아버리게 만들고는 했거든요.”
“응.”
“그런데 참 이상해. 형은 환도 아니면서 계속 좋은 냄새만 나요. 심신이 편안해지고 핥아서 삼키고 싶어.”
너 지금 네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기는 하냐. 당장 토 달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르면서 걔를 내려다봤다. 한참을 내 손에 코를 묻고 잠자코 있던 황도욱이 고개를 들었다. 우리는 눈이 마주쳤다.
“그래서 그런 실수를 했나 봐요. 다시는 이런 일 없게 할게요.”
황도욱이 손을 놨다. 걔는 참 신실한 어조로 그렇게 맹세했다. 나는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
자각하고 나니까 보이는 세계는 위험으로 즐비했다.
“어제도 옆 동네에서 누가 죽었다며.”
“어디더라. 한솔 빌라? 거기서 혼자 사는 청년이 갑자기 든 강도한테 칼 맞아 죽었대.”
“아이고. 청년이 안쓰러워서 어떡한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려고 자꾸 죽어가나 몰라. 요즘 따라 이 근처 치안이 많이 안 좋아지지 않았어?”
“말해 뭐 해. 그래서 집값 뚝뚝 떨어지고 있잖아. 어휴, 억울해 죽겠네.”
등교하겠다고 부른 택시를 기다리다가 우리 옆으로 지나가는 아줌마들의 수다마저도 살인 사건 얘기였다. 새삼스럽게 이 동네에서 참 많은 살인이 일어나고 있는 모양이구나 했다.
끊임없이 누군가가 악의로 죽어 나가고 있었다. 그 원인이 나 때문이든 아니든 세상에는 미쳐버린 인간이 도처에 존재했다. 뉴스에서는 잊을 만하면 부모를 죽인 자식, 자식을 죽인 부모 같은 존속 살인이 속보로 떠올랐고 아무 연고도 없는 사람을 별것도 아닌 이유로 무차별 난도질하는 흉악한 참상도 꾸준히 뉴스 타이틀을 꿰찼다.
나는 궁금해졌다. 이런 살인들은 전부 묵으로 인해 일어나는 일인가 하고. 내 물음에 답변을 준 건 황도욱이었다.
“묵이 벌인 살인 행위는 보통 뉴스로 나오지 않아요. 그것들을 인간의 상식 범위 내에서 설명하는 건 어려운 일이니까. 어떨 때는 보이지 않도록 덮어두는 게 최선일 때가 있는 법이죠.”
“그럼 죄다 진짜 사람들이 하는 짓이란 말이야?”
“인간이란 그런 존재니까요.”
걔가 무미건조한 어투로 대꾸했다. 인간이란 그런 존재니까요. 그 문장 속에서 인간에 대한 신뢰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하긴 나 같아도 그렇겠다. 걔는 나보다 더 살인을 많이 목도했을 것이다. 서로를 죽고 죽이는 동족상잔을 보는 동안 어떤 생각을 하게 됐을까.
어느새 눈 밖으로 사라진 여자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자꾸만 좋지 않은 생각만 피어올랐다. 내가 이 동네의 집값 하락에 끼친 지분율이 얼마나 될까 같은 거. 괜히 나 때문에 죽지 않아도 될 사람이 몇 명이나 죽었을까 그런 거. 앞으로 몇 명이 더 죽을까 하는 거. 그 낌새를 눈치챈 듯 황도욱이 내가 메고 있던 가방끈을 잡아당겼다.
“왜.”
“형은 가끔 혼자 이상한 생각을 할 때가 있어요.”
“나도 알아. 가끔도 아니야.”
대충 지껄였다. 하지만 뭐가 이렇게 복잡하고 다사다난하게 꼬여 있는지 이상한 생각을 안 하는 게 이상한 거다. 골은 좀 아프지만 그렇다고 생각을 멈출 수도 없다. 고등한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자아에 대한 성찰은 하기 싫어도 하게 되는 법 아닌가.
미리 불러놓은 택시가 바로 앞에 도착했다. 익숙하게 뒷문을 열고 탄 다음 휴대폰을 열어 오늘의 뉴스를 훑었다. 평소에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을 강력반 사건들이 후루룩 떴다. 누가 죽었고 가해자는 누구고 어떤 방법을 썼고.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게 이렇게 쉬운 일인지 미처 몰랐다. 새삼 깨달을 정도로 수많은 사건이 온라인에서 나돌고 있었다.
“도욱아.”
“네.”
“그래도 묵의 근본은 인간이잖아. 거기서 태어나는 거니까.”
“…….”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 같은 문제네.”
읊조리면서 차가운 유리에 이마를 기댔다. 황도욱이 이쪽을 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일부러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중요한가.”
황도욱이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어쨌든 모든 게 형 탓은 아니에요.”
***
시간은 착실히 지나가고 있었다. 학폭위 날짜마저도. 다만 피해자가 아직 병원 신세를 지고 있어서 어떻게 진행할지 의논을 하는 듯했다. 우리 대신 병문안을 다녀온 선생님 말씀으로는 박강수가 여전히 혼수상태에 빠져 있으며 깨어날 때가 됐는데 깨어나지 않는 게 이상하다는 주치의의 진단까지 들었다고 했다. 아직 경과를 더 볼 필요가 있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박강수의 부모님께 거의 얻어맞듯 하며 쫓겨났다고 그는 담담하게 상황을 전달했다.
“황도욱이 애를 그렇게 곤죽으로 만들어 놨었어요?”
“말하는 거 봐서는 오롯하게 도욱이 문제만은 아닐 확률이 커.”
“걔한테서 묵 냄새가 난 거랑 뭔가 연관이 있을까요.”
“그럴지도 모르지. 혼수상태면 육체와 혼을 연결하는 힘이 약해졌을 거고 검은 것이 그 틈을 파고들었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아.”
우리는 점심시간을 틈타 보건실에 모여 짧은 회의를 했다. 선생님이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최근 며칠 동안 그의 얼굴이 심각하게 수척해졌다. 뺨에는 보지 못했던 상처가 생겼다.
“박강수 부모님이 한 짓이에요?”
“그래, 손에 잡히는 대로 집어 던지시더라. 이해해. 금지옥엽 하던 외동아들이 그 모양이 됐는데 어떤 부모가 제정신이겠어.”
선생님이 동그란 안경을 검지로 치켜올리며 대인배처럼 말했다. 황도욱은 마치 자기 일이 아닌 것처럼 침대에 걸터앉아 눈만 멀뚱멀뚱 뜨고 있었다.
“그러게, 누가 사람 괴롭히래? 다 업보예요.”
내가 심술궂은 어조로 지껄였다. 혼수상태가 됐다고 하니 좀 불쌍하기는 한데, 지금까지 내가 당했던 걸 생각하면 천사처럼 눈물 뚝뚝 흘리며 그 아이의 쾌차를 기원합니다라고 기도해 줄 수 없는 건 당연한 거다.
“그래도 그런 말 입 밖으로 내뱉는 거 아니다. 그것도 다 업보로 돌아와.”
선생님이 엄한 어조로 훈계했다. 나는 찔끔하며 입을 다물었다. 억울하다. 입술을 삐죽거리면서 불만을 표시했다.
“하여튼 박강수가 이대로 혼수상태에서 깨어나지 않으면 우리 쪽도 좋은 게 아니야. 학폭위에서 끝나지 않을 거야. 박강수 부모님은 이미 변호사 선임하고 사법 절차로 넘어갈 기세시더라. 절대 합의해 줄 것 같지 않던데, 그렇게 되면 소년원에 가게 될 수도 있어.”
“소년원이요?”
좆됐다. 소년원은 생각도 안 해 봤다. 나는 아득한 얼굴을 하고 황도욱을 쳐다봤다. 걔도 아무 생각 없는 표정으로 늘어져 있다가 선생님의 말을 듣고 뒤늦게 퍼뜩 깨달은 얼굴을 했다. 한층 침울해진 표정이 적나라하다. 저렇게까지 속마음이 드러나는 사람은 처음 봤다.
“그럼 어떻게 해요?”
“협회장님께 말씀은 드려보겠지만……. 엄연히 도욱이가 잘못한 거라 강전은 면치 못할 수도 있어.”
황도욱의 얼굴이 시시각각 죽어갔다. 순식간에 핼쑥해진 걔 얼굴을 보면서 나도 괜히 마음이 급해졌다. 아니, 애가 여기서 전학을 가게 되면 고등학교에 다니게 된 이유가 없지 않은가. 애초에 나 지키겠다고 나만 보고 학교로 보내진 애를.
“방법이 없어요?”
“지금 당장은 걔가 깨어나기를 바랄 수밖에.”
“저 걔한테 맞았다는 증거물도 많은데. 이걸로 어떻게 반전을 꾀할 수 없나?”
우리 둘은 한숨을 푹푹 쉬며 방법을 고안하기 위해 머리를 쥐어짰다. 박강수 이 새끼는 하여튼 나한테 도움이 된 적이 한 번도 없다. 난데없는 적개심으로 이 갈며 걔를 씹는 바람에 나는 주머니에서 울리는 진동을 뒤늦게 눈치챘다. 처음에는 내가 확인할 때까지 진동이 끝도 없이 웅웅 울려대길래 전화인 줄 알았다.
액정 위로 가득 쌓이는 단문들을 확인하자마자 아닌 걸 알았지만.
[강채승]
[강채승]
[강채승]
[강채승]
[강채승]
[강채승]
[강채승]
내 이름을 호명하는 문자가 계속 수신되고 있었다. 또 악성 문자 테러인가? 나는 섬뜩한 불안을 감각했다. 천천히 화면을 열고 수십 통이 넘게 강채승 석 자로만 쌓이고 있는 문자함을 확인했다. 그 문자들은 마치 내가 확인한 걸 안다는 듯이 기가 막히게 뚝 끊겼다.
모르는 번호였다.
진동이 잠시 멈춘 것을 인지하자마자 곧바로 다른 문자가 날아왔다.
[서경 대학 병원 7호 중환자실]
[혼자 와]
[그렇지 않으면]
[다 죽어]
단문으로 뚝뚝 끊긴 문자를 삽시간에 눈으로 훑으며 잠깐 침묵했다. 이게 무슨 의미일까. 그리고 누구일까. 빙빙 돌아가는 머릿속에서는 마땅한 사람이 생각나지 않았다. 아니, 있었으나 영 불가능한 인물이었다.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휴대폰만 직시하고 있자 선생님이 나를 불렀다.
“채승아?”
“선생님.”
“응?”
“서경 대학 병원 302호. 알아요?”
“박강수 병실이잖아?”
역시. 나는 휴대폰 액정을 그대로 내밀어 선생님에게 보여 주었다. 혼자 오라고?
“저보고 오라는데요. 아니면 다 죽는다고.”
좆 까라지.
문자를 본 선생님의 표정이 굳었다. 그가 다급하게 휴대폰을 꺼내 박강수의 연락처를 꺼내더니 내게 온 문자의 발신 번호를 대조했다.
“박강수 번호 맞아.”
“박강수라고요? 걔 아직 혼수상태라면서요.”
박강수의 이름이 나오고 분위기가 심각하게 돌아가는 듯하자 침대에 앉아 있던 황도욱이 의자를 끌고 와 내 옆에 앉았다. 걔가 내 휴대폰을 가져가 슥슥 스크롤을 내리며 문자 내용을 읽었다. 어차피 읽을 문장이라고는 마지막에 도착한 네 통이 다였기 때문에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황도욱은 다 읽고 나서도 표정 변화 없이 책상 위에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선생님이 안경을 벗고 미간을 엄지로 꾹 눌렀다.
“분명히 혼수상태였어.”
“갑자기 깨어난 걸 수도 있죠. 물론 이 문자는 납득이 안 되지만.”
다시 휴대폰을 손에 쥐었다. 스크롤을 위로 올렸다가 아래로 다시 내리면서 천천히 훑어봤다. 섬뜩하게 불러대는 내 이름. 그리고 마치 나한테 무슨 짓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혼자 오라는 요청. 정말 수상할 수밖에 없다.
“가 봐야 할까요?”
“일단 선생님이 먼저 가서 확인해 볼게. 진짜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건지.”
“혼자 오지 않으면 다 죽는다는 말은 실현 가능성 있는 협박이에요? 지가 뭔데 다 죽여, 죽이긴…….”
나는 여전히 이 어불성설 같은 협박에 회의적이었다. 또 살벌한 내용과 다르게 누구를 죽이겠다는 명확한 타겟도 없었다. 겁을 먹으라고 보낸 거면 그냥 웃길 뿐이고 진심이면……. 진심이어도 우스울 뿐이다. 이 새끼는 죽다 살아난 와중에도 회개는커녕 사람한테 협박질이나 하고.
“이건 선생님이 더 알아볼 테니까 너희들은 교실로 돌아가라. 종 칠 때 됐다.”
“네에.”
어차피 여기서 더 뭉개봤자 일이 좋은 쪽으로 전개되는 것도 아니다. 나와 황도욱은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났다. 할 수 있는 일이 더 없었으므로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게 낫다. 지금은 교실로 돌아가서 학생의 본분을 다하는 게 할 수 있는 일의 전부다.
선생님께 인사하고 보건실을 나오자 마침 종이 울렸다. 황도욱이 나를 쳐다봤다.
“곧장 너희 교실로 가.”
“하지만.”
“하지만은 무슨 하지만. 너 이렇게 내 뒤꽁무니만 쫓아다니면 학교 평판 수직 하강한다.”
구라 좀 쳐봤다. 얘가 내 뒤꽁무니를 쫓아다닌다고 하더라도 평판이 떨어지면 내 평판이 떨어졌지, 황도욱 평판이 떨어질 일은 없을 거다. 지금도 봐라. 지나가는 모든 사람이 이쪽을 힐끔거리고 있다. 박강수를 초전 박살 낸 이후로 황도욱의 유명세는 학교에서 고공행진하고 있었다. 아니, 폭력을 행사해서 학폭위까지 열리게 된 애가 인기가 높아진다는 게 말이 되는 일인가. 씨발,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나도 그냥 죽자고 먼저 박강수 패 볼걸. 반대로 생각해 보자면 박강수의 평판도 걔가 기세등등했던 거에 비하면 별반 안 됐던 건데……. 하지만 또 뒤집어서 생각하면 내 평판은 박강수보다 못했던 거다.
“침울해지는군.”
“데려다준다니까.”
“너 때문 아니다. 애 취급 그만해.”
달라붙는 황도욱의 어깨를 밀어내며 상체를 틀었다. 별안간 또 키…… 생각이 번뜩 났다. 이렇게 붙어 있다가 학교 한복판에서 입술 부딪치면 어떡하냐고. 이건 걔가 화학적 반응 탓이라고 벽 친 거 때문에 괜히 심통 부리는 게 아니다. 진짜로. 그렇지 않은가. 학교에서 또 화학적 반응 탓에 키…… 라도 하게 되면 교내가 뒤집어질 거다. 교사와 학생을 막론하고 말이다.
“저 진짜 가요?”
황도욱이 눈꼬리를 축 늘어트리면서 나를 쳐다봤다. 얘는 왜 또 이렇게 처량한 강아지 같은 표정을 하고 있는 거야. 사람 진짜 홀리고 있네.
“그래, 가. 그리고 쉬는 시간마다 찾아오는 것도 자중해라.”
이번에도 내가 먼저 돌아섰다. 저 눈을 계속 보고 있다가는 나도 모르게 “알았어, 대신 지옥 끝까지 쫓아와라” 이런 답도 없는 말을 뱉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걔는 그 말을 그대로 이행할 애다. 쓸데없이 맹목적인 구석이 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몇 걸음 쭉쭉 앞서 걸었다. 3학년 교실로 가는 계단을 밟기 직전 슬쩍 뒤를 돌아봤을 때, 황도욱은 그 자리에 없었다. 나는 괜히 입맛만 쩝 다시다가 교실로 올라갔다.
뒷문을 열고 들어간 교실은 조용했다. 요즘 따라 나를 힐끔거리는 시선이 많이 줄었다. 아직도 내 등장 때마다 이목이 집중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그 눈빛 안에 담겨있던 멸시가 현저하게 감소했다. 나는 이 현상의 원인을 황도욱한테서 찾았다. 걔의 명성이 나날이 높아지면서 옆에 껌딱지처럼 붙어 있는 나도 덩달아 가치가 상승한 것이다.
아니, 도대체 황도욱이 뭐 했다고 나까지 인생이 피냐? 어이가 없다. 내가 일 년 넘게 개고생하며 삽질했던 일들이 황도욱 등장 하나로 손바닥 뒤집듯 반전한다는 게 기가 막혔다. 역시 인생 잘생기고 볼 일인가. 지금 같은 기세만 봤을 때 황도욱이 연경고 일짱 먹는 건 시간문제처럼 보였다.
외모지상주의로 가득 찬 불공평한 세상에 불만을 토로하며 내 자리를 찾아 앉았다. 아니, 앉으려고 했다. 근데 여기 내 자리 맞나? 누가 내 책상을 멋대로 옮겼나? 이상하다. 분명히 내 책상은 네 번째 줄 제일 뒷자리가 맞는데. 책상 위에 잔뜩 쌓인 이 선물 공세들은 뭐냐?
각종 선물 박스들이 알록달록한 포장지에 쌓인 채 놓여 있었다. 나는 아무거나 하나 집어 들어서 봤다. 쪽지가 붙어 있었다. 수신자는…… 황도욱. 황도욱?
그러니까 이거 지금 황도욱에게 선물 좀 전해 달라는 그런 뜻인가? 나는 헛웃음을 쳤다. 이 새끼, 정말 인기가 하늘을 찌르는군. 나는 입술을 삐죽이면서 선물을 죄다 모아 가방에 쑤셔 넣었다. 그러자 학우들 틈새에서 목소리 하나가 튀어나왔다.
“꼭 도욱이한테 전해 줘!”
그렇게 걱정되면 지가 직접 주든가. 나는 꿍얼거리다가 고개를 휙 쳐들고 교실 안을 두리번거렸다. 방금 누가 말했어? 그거 누구 목소리야? 하지만 걔들은 누가 그런 말을 했냐는 듯 합심해서 다 같이 문제집에 코만 처박고 있었다.
하여튼 잘난 놈 떨거지로 살기 힘들군.
***
지루하고 지난한 수업이 끝났다. 종례 후 황도욱을 기다리면서 교문 앞에 서 있는데 선생님에게서 문자가 왔다.
[박강수, 아직 혼수상태래.]
나는 그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당연하지 않은가. 그러면 아직도 수신되고 있는 이 문자는 도대체 누가 보내는 건데?
기가 막히게 도착하고 있는 문자들을 훑었다. 이번에도 협박성 문자들이다. 번호는 똑같다. 박강수의 번호. 그러나 정말 박강수가 맞다고 확신할 수 있는가. 휴대폰이야 다른 사람이 사용해서 문자를 보낼 수도 있는 거고.
[혼자 와]
[혼자 안 오면 다 죽어]
[가령]
[지금 네 앞에 보이는 사람이라던지]
어이가 없군. 지가 무슨 사람을 조종하는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무슨 수로 갑자기 사람을 죽인단 말이냐? 그것도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드나드는 곳에서. 나는 휴대폰을 쥔 채 고개를 들었다. 황도욱 반의 종례 시간이 하도 길어져서 먼저 교문 밖으로 나온 참이었다. 하교하는 학우들이 주위에서 바글거렸다. 학교 앞 도로는 쌩쌩 달리는 차들로 번잡했고.
그리고 그 도로 중앙에 서 있는 남자 한 명이 보였다.
“저 사람 뭐야?”
“좀 이상하지 않아?”
“아니, 위험하게 왜 저기 그냥 서 있어?”
“아저씨! 빨리 나와요!”
어쩐지 모골이 송연한 불안이 뒤통수를 쳤다. 나는 수상한 그 남자를 응시했다. 매연에 섞여 짙고 고약한 우유 썩은 냄새가 바람을 타고 내 코로 섞여 들어오는 듯했다.
그 남자가 고개를 돌렸다. 텅 빈 동공이 나를 직시했다. 동공이 축소됐고 흰자만 과도하게 많아서 희번뜩한 눈깔이었다. 두 팔은 양쪽으로 축 늘어져 있고 어깨도 따라서 밑도 끝도 없이 처져있다. 전신이 힘도 없어 바람에 따라 휘날리는 것처럼 휘청거렸다.
아슬아슬하게 차도 중앙에 서 있던 남자가 한 발자국 걸어 나왔다. 나를 똑바로 바라보면서. 주변에서 꽥꽥거리는 소리는 귀에 제대로 들리지도 않았다. 마치 물속에 빠진 것처럼 웅웅거리는 소음만 남았다.
말릴 새도 없었다. 손안에 쥔 휴대폰이 웅 진동을 울려대면서 문자 한 통이 수신됐다는 것을 알렸다.
요란한 경적과 비명 그리고 사람이 날아가는 소리가 들린 것도 그때다. 다른 차들보다 유난히 빠르게 달리던 차가 서 있던 남자를 앞 보넷으로 무자비하게 들이박았다. 시속도 거의 100km에 육박했던 듯 그 남자가 퉁 소리를 내며 전방으로 족히 100m는 날아갔다.
“꺅!”
“1, 119 불러, 119!”
남자를 친 건 검은색 국산 세단이었다. 고의가 아니었던 듯 급하게 차를 멈춰 세우고 내린 운전자는 중년 남자였다. 그는 자신이 사람을 쳤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 건지 어쩔 줄 몰라 손을 부들부들 떨며 망연히 서 있었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쓰러진 남자에게 몰려들었다. 바닥에 흥건한 피가 웅덩이를 만들고 있었다. 비현실적일 정도로 붉은 색감이 몰려든 사람들 발 사이로 흘렀다. 어딘가 저 멀리서 사이렌이 울리고 있었다.
심장이 쿵쿵 뛰었다. 천천히 핸드폰을 들어 도착한 문자를 확인했다.
[봤지?]
[혼자 와]
[더 죽는 꼴 보기 싫으면]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게 확실했다. 나는 허탈한 웃음을 내뱉으며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우두커니 두 다리를 지면에 붙박고 서 있는 게 할 수 있는 것의 전부였다. 꼴사납게 주저앉는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꼭 쥐고 참담한 상황을 주시했다.
“형.”
익숙한 목소리와 친밀한 팔이 내 어깨 위로 올라왔다. 나는 옆에 있는 게 누군지 알면서도 고개를 돌리지 못했다. 걔처럼 느린 호흡이 귓불에 닿았다. 심장이 쿵쿵 뛰고 있었다. 이게 황도욱 때문인지, 방금 사람이 죽은 걸 목격해서 그런 건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지금 당장 보이는 것은 죽은 저 사람이다. 아마도 나 때문에 죽은 게 분명한. 눈도 감지 못하고 축소된 동공이 아직도 나를 또렷하게 바라보고 있다. 그는 죽기 직전 무슨 생각을 했을까? 생판 모르는 타인으로 인해 목숨이 저승에 걸릴 것을 알았을까.
시야가 갑자기 암전됐다. 나는 몸을 움찔 떨었다. 크고 넓은 손바닥이 시각을 차단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됐다. 비록 암흑 속 여전히 그 남자의 부릅뜬 눈깔은 잔상처럼 남아 있지만.
“보지 마요.”
“도욱아.”
걔가 천천히 나를 달래듯 다른 손으로 내 손을 움켜쥐었다.
“이렇게 떨 필요 없어요.”
멈추려고 애를 써도 떨림은 멈추지 않은 모양이다. 아버지가 망치에 잔혹하게 맞아 죽는 것도 봤는데 이깟 교통사고가 뭐라고 나는 이렇게 심약하게 구는 건지 모르겠다. 생각보다 나 때문에 다른 사람이 죽는다는 이 현실이 꽤…….
“이미 죽은 사람이었어요.”
“…….”
“형도 맡았잖아요, 우유 썩은 냄새.”
걔 말에 문득 방금 맡았던 냄새가 떠올랐다. 맞다, 그랬지. 그런 냄새가 났지. 아마도 그는 이미 죽은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나 때문에 죽은 게 아니다. 이미 죽었고 한 번 더 죽은 것이다. 그게 맞을 거다. 그런데 왜.
“황도욱.”
“네.”
“병원 가자.”
“…….”
“같이.”
방금 죽은 그 남자는 분명 두개골이 80% 이상 훼손된 것 같지도 않은데 일어나지 않는 걸까?
사람이 들것에 실렸다. 구조대원들이 흰색 천을 위로 덮는 걸 보면서 확신했다. 죽은 게 맞구나. 나는 졸지에 사람이 갑자기 죽는 꼴을 한 달도 안 돼서 두 번이나 본 남자가 됐다.
사고 소식을 들은 선생님이 뒤늦게 뛰어왔다. 이미 우두커니 서 있는 황도욱과 나를 번갈아 쳐다보다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무슨 일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지 않아도 대충 눈치를 챈 듯했다.
“병원, 바로 갈래?”
“네.”
대답하면서 휴대폰 화면을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남자가 죽기 전 문자를 보냈던 그 번호는 남자가 죽은 후 문자 한 통을 더 보냈다.
[봤지?]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알아야 했다.
***
서경 대학 병원은 도심지 한가운데 박혀 있었다. 우리는 선생님의 차를 타고 병원으로 이동하면서 수신된 문자들을 보고했다. 정말 박강수가 아직도 혼수상태냐며 이동하는 30분 내내 몇 번을 물어봤는지 모른다. 선생님은 거듭 그렇다고 말했고 우리는 이상하다는 말 말고는 뱉을 수 있는 감상이 없었다. 병원 앞에 도달해서야 내린 결론은 만나 봐야 알겠다는, 그런 지지부진한 의견이 다였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병원에 입성하기 전, 선생님이 황도욱에게 물었다.
“넌 여기서 기다려.”
“갈 거예요.”
“힘들잖아.”
“형 손 잡고 있으면 괜찮아요.”
“……힘들면 바로 나가. 알았어?”
황도욱의 고집에 선생님은 한숨을 푹 쉬며 그의 동행을 허락했다. 옆에서 나만 어리둥절한 채 슬금슬금 다가오는 도욱이의 손을 잡아주었다.
“왜. 병원이 왜.”
내 물음에도 선생님은 대답 없이 내렸고 도욱이는 애매모호하게 대꾸해 주었다.
“제가 병원을 싫어해서.”
“응?”
“얼른 가요.”
도대체 이 집단은 왜 이렇게 비밀이 많냐? 나는 결국 캐묻는 걸 포기해 버렸다. 뭐, 나중에 알게 될 날이 오겠지.
병원 로비는 혼잡했다. 각종 병명을 이유로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이 곳곳에 있었다. 웃는 사람도 있고 좋지 못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사람도 있다. 혼자도 있고 가족 단위도 있다. 그러나 지금 당장은 한 명 한 명 눈을 두고 관찰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선생님은 곧장 안내 데스크 앞에 섰다. 데스크 직원이 무료하고 기계적인 표정으로 키보드를 두들기고 있다가 드리우는 그림자에 얼굴을 들었다.
“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여자가 단숨에 방긋 미소를 걸고 친절한 얼굴을 했다.
“박강수 환자 면회 왔습니다.”
“확인해 보겠습니다.”
직원이 잠깐 키보드를 두들기더니 금방 답변을 내놨다.
“네, 302호로 이동하시면 됩니다.”
“저기 혹시 박강수 환자 깨어났나요?”
내가 급하게 끼어들면서 물었다. 직원은 나를 힐끔 보더니 여전히 예의 그 친절한 미소를 걸고 대답해 줬다.
“아니요, 박강수 환자 아직 혼수상태입니다.”
“혹시 중간에 깨어난 적은 없나요?”
“기록상으로는 전혀 없습니다.”
돌아오는 즉답에 나는 시무룩한 얼굴을 감출 수가 없었다. 황도욱이 얼굴을 빼꼼 내밀며 내 상태를 살폈다. 선생님도 괜찮다는 듯 어깨 위에 팔을 올리고 두어 번 두드렸다.
“직접 가서 확인해 보자.”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우리는 직원이 알려준 병실로 올라갔다.
병원 특유의 냄새가 계속해서 코를 찔렀다. 황도욱은 병원에 들어온 그 순간부터 계속 미간을 찡그리고 있었다. 간혹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가 몇 초 동안 호흡을 참는 듯한 모습도 보였다. 엘리베이터에 타 올라가면서 나는 걔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숨쉬기 힘들어?”
“네, 좀. 병원은 특히 더 그래요.”
“왜?”
“고약한 냄새가 많이 나거든요.”
황도욱이 검지로 미간을 꾹 누르다가 못 참겠다는 듯 내 허리에 팔을 감고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갑자기 뜨거운 숨이 예민한 살갗 위에 닿았다. 예상하지 못한 행동에 나는 팔다리를 퍼뜩 움찔하며 고개를 틀었다. 시야에 황도욱의 얼굴이 그대로 담겼다. 앞에 서 있던 선생님이 우리를 힐끔 곁눈질했다.
“잘들 한다.”
“아니, 이게, 그.”
“잠깐만요. 머리는 어지럽고 속은 메스꺼워요.”
그 얼굴로 이렇게 처량하게 말하는 건 반칙 아닌가. 나는 밀어낼 생각도 못 하고 뻘쭘하게 서 있었다. 진짜 강아지인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후각 때문에 과도한 괴로움을 느끼는 애가 안타까워 죽겠다. 엘리베이터 층수는 계속 올라갔다. 사람 한 명 타지 않고 있는 게 용하다. 대학 병원이라 사람도 많을 텐데. 웃긴 건 그런 생각을 하자마자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나이 지긋해 보이는 중년 부부가 탔다는 것이다. 그들이 우리를 쳐다봤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뻔했다. 대한민국의 중년들은 보수적이니까 혀를 존나 차겠지.
그러나 예상과 다르게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쪽에 관심 하나 두지 않고 자기들끼리 병원비니 아들 결혼이니 얘기 나누느라 바빴다. 나는 괜히 혼자 머쓱해서 헛기침이나 하며 엘리베이터가 얼른 도착하기만을 기다렸다.
엘리베이터의 숫자가 7에 멈추자 문이 열렸다. 황도욱은 그제야 얼굴을 묻고 있던 상체를 들어 올렸다. 우리는 먼저 내린 선생님의 뒤를 따랐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중년 부부도 함께 내렸다. 같은 층이었군. 그런 심심한 생각을 하면서 7호 중환자실로 걸어갔다.
병실 앞에는 이미 다른 사람이 와 있었다. 고급스러운 정장을 입은 두 남녀였다. 둘은 세상이 무너진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여자는 얼마나 울었는지 눈 밑이 빨갛게 부어있었고 남자는 그런 여자를 보며 한숨만 푹푹 쉬었다. 나는 그들이 박강수의 부모님일 거라고 짐작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이 익숙한 듯 그들 앞에 다가가 허리를 숙이며 정중하게 인사했다. 나랑 황도욱은 그 뒤에 뻘쭘하게 서 있다가 선생님을 따라 뒤늦게 허리를 숙였다.
“……왜 또 오셨어요?”
박강수의 모친일 거라고 예상되는 여자가 고개를 번뜩 쳐들며 날카롭게 반응했다. 내가 다 움찔할 정도였다. 그 뒤에 서 있는 남자가 선생님 뒤에 서 있는 우리 둘을 응시했다. 눈이 마주쳤고 나는 움푹하게 패인 그의 두 뺨을 봤다. 그래도 집에서는 금지옥엽 아들이긴 했나 보군. 밖에서는 남의 아들 인생 조질 정도로 괴롭혀 놓고. 어쩐지 기분이 착잡해졌다.
“뒤에 있는 사람들은 그 애들인가? 우리 강수를 이렇게 만든?”
남자가 침착하려고 애쓰려는 말투로 먼저 운을 뗐다. 그의 말에 박강수 모친의 눈이 이쪽으로 확 틀어졌다. 표독스럽게 치켜뜬 눈이 살벌했다.
“너희야? 너희라고?”
여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우리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왔다. 방금까지만 해도 모든 걸 잃은 듯 축 늘어져서 울던 여자는 온데간데없었다. 나는 그의 기세에 밀려 뒤로 몇 발자국 물러나며 주춤거렸다. 황도욱이 등 뒤를 막아서지 않았다면 아마 복도 끝까지 밀려 나갔을지도 모른다.
“우리 강수를 저렇게 만들고 무슨 염치로 여기까지 왔어?”
병동에 울려 퍼지는 고성이었다. 높은 데시벨이 귀를 찢을 듯했다. 소란스러운 소리가 나자 간호사 몇 명이 이쪽으로 다가왔다. 병원 일이 힘든 건지 누적된 피로에 찌든 얼굴을 한 그들이 소리를 질러대는 박강수의 모친을 말렸다.
“어머니, 진정하세요. 여기서 이렇게 소리 지르시면 안 됩니다.”
“아니! 내 아들을 반신불수로 만든 놈인데 내가 소리라도 안 지르면 속이 편하겠어?”
여자가 왁왁거리며 자기 팔을 붙드는 간호사들을 밀쳐냈다. 자식의 참담한 광경을 목격한 부모의 분노는 대단했다. 힘이 얼마나 센지 붙잡는 간호사 두 명을 우습게 뿌리치고 우리에게 달려드는 것이 아닌가. 선생님이 막아섰으나 눈이 희번뜩하게 돌아간 그녀를 막지는 못했다.
“너지! 네가 우리 애를 저렇게 만들었지!”
박강수의 모친이 악에 받쳐 울며 황도욱의 멱살을 잡았다. 황도욱은 무미건조한 얼굴로 그 여자를 내려다봤다. 옷깃을 잡아 흔드는 손길이 아프고 버거울 만도 한데 걔는 아무 짓도 안 했다. 두 팔을 늘어뜨리고 멍하니 그를 내려다볼 뿐이었다.
“네가! 감히 네가!”
그녀는 악악대다가 급기야 오른쪽 손을 들어 황도욱의 뺨을 갈겼다. 날카로운 소리가 났다. 황도욱의 얼굴이 휙 돌아갔다. 그 깨끗하고 말랑했던 피부 위에 붉은 손자국이 생기면서 서서히 부어올랐다. 그런데도 황도욱은 아무 말도 안 하고 가라앉은 눈길로 얌전히 서 있었다. 그럴 애가 아닌데. 중년 여성이 휘두른 따귀를 피하지 못할 리가 없는데. 심장이 내려앉았다. 그때부터 도리어 분개한 건 나였다.
“아니, 애를 왜 때려요?”
내가 몸을 밀어 넣으며 그 둘 사이를 갈라놨다. 다소 버릇없는 행동이지만 여자의 어깨를 밀며 떨어트려 놓았다. 황도욱은 내 등 뒤에 숨겼다. 애초에 나 때문에 벌어진 일인데, 얘는 그냥 날 지켜주려고 한 죄밖에 없는데 이런 꼴을 당하는 걸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상황이 그 지경이 되자 박강수의 부친도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다가와 여자 옆에 섰다.
“그러게, 아들을 잘 키우시지 그러셨어요! 당신 아들 학교에서 온갖 쓰레기 짓 다 하고 다닌 건 알아요? 학교 애들, 박강수 저렇게 된 거 아무도 슬퍼 안 해요. 다들 잘됐다고 꼬시다고 숙덕거린다고요. 아세요? 저건 쟤가 지금까지 벌인 짓의 업보예요!”
못된 말을 쏟아냈다. 해서는 안 될 말인데, 지금까지 묵힌 응어리를 박강수의 부모에게 풀어내듯 나 또한 바락바락 소리를 질러댔다. 내가 그동안 얼마나 괴로웠는데. 남의 자식 가슴 난도질당한 건 아무 신경도 안 쓰면서 지 아들 얻어맞은 것만 아프지. 나는 울컥 치밀어 오르려는 눈물을 꾹 참으면서 황도욱의 손을 꽉 잡았다.
“너, 너 어떻게 그런, 그런 말을!”
“학생, 말이 너무 심하군.”
두 사람이 동시에 말했다. 박강수의 모친은 충격받은 표정으로 뒷목을 잡으며 넘어갈 듯한 제스처를 취했다. 선생님이 다급하게 내 앞을 막아섰다. 그가 당황한 얼굴로 내 어깨를 붙잡았다.
“채승아. 그만해.”
“하지만……!”
“그만해. 이렇게 싸운다고 지금 좋을 거 없어.”
나는 씨근덕거리면서도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여전히 입을 다물고 묵묵히 상황을 관망하는 황도욱이 걱정될 뿐이었다. 황도욱의 손을 움켜쥔 채 힘을 주었다. 고개를 들자 걔도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우리는 눈이 마주쳤다.
잠자코 있던 황도욱이 문득 얼굴을 들고 병실 쪽을 향했다. 걔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박강수.”
“응?”
“깨어났어요.”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모두가 병실을 봤다. 중환자실의 문이 열리고 있었다. 간호사도 박강수의 부모도 나도 선생님도 그 자리에서 굳은 채 천천히 열리고 있는 문 틈새만 주시했다. 그 찰나의 시간 동안 생각이 수십 개가 지나갔다. 저기서 나오는 건 정말 박강수일까. 이미 죽어버린 묵은 아닐까. 무슨 짓을 하기 전에 먼저 선수를 쳐야 하는 건 아닐까.
문이 활짝 열렸다. 그리고 거기 분명히 박강수가 서 있었다. 링거가 꽂혀 있었을 팔뚝은 앙상하다. 목에는 산소호흡기가 달랑거리며 걸려있다. 며칠을 누워 있느라 핼쑥해진 뺨과 눈 밑 그늘이 짙다. 희번뜩한 눈깔이 병동에서 아침 드라마를 찍고 있는 우리를 보다가 부드럽게 휘어졌다.
“왔네.”
“…….”
“그런데 다 같이 왔구나.”
그 말을 듣자마자 전신의 털이 곤두섰다. 나한테 계속 문자를 보낸 애는 얘가 분명했다. 그건 확실하다. 다른 사람이 박강수의 핸드폰으로 대신 문자를 보냈을지도 모른다는 가설은 방금 소거됐다. 하지만 그렇다면 이 사건은 더 기괴해지는 것이다. 방금까지 혼수상태였던 애가 도대체 어떻게 문자를 보낸 건데? 사람이 깼다가 혼수상태가 됐다가 그걸 임의대로 할 수가 있나? 그게 가능한가?
“강수야……?”
당황스러운 건 박강수의 부모들도 마찬가지였다. 생각하지도 못한 상황에 갑자기 깨어난 박강수는 놀라울 정도로 멀쩡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두 다리로 걸었고 두 팔을 움직였다. 박강수의 모친이 눈물을 흘리며 박강수에게 달려가 그 애를 품에 안았다. 박강수가 다정한 아들처럼 그녀의 어깨를 두들기며 위로했다.
“엄마, 나 채승이랑 할 얘기가 있는데.”
“쟤, 쟤랑? 왜. 왜, 아들. 저런 애들이랑 왜 또 말을 섞으려고 그래.”
“선생님이랑 도욱이랑 잠깐 가 있어 줘.”
박강수가 비릿한 웃음을 걸고 나를 쳐다봤다. 씨발, 저 새끼.
“채승아, 궁금하지 않아?”
“…….”
“그 기자 사건…….”
“…….”
“내가 어떻게 알고 있는지.”
박강수일 리가 없다.
이건 명백한 도발이었다.
“가 볼게요.”
“채승아.”
근심으로 가득한 얼굴의 선생님이 내 어깨를 붙잡았다. 나는 시선을 박강수한테 두었다. 약간의 거리를 둔 채 반대쪽에 서 있는 걔는 검사 좀 해 보자고 권유하는 의사와 간호사의 말을 귓등으로 흘려듣고 있었다. 박강수의 부모님이 어르고 달래면서 몸에 이상은 없는지부터 확인하자고 설득하는데도 박강수는 수상할 정도로 음산하게 실실 쪼개면서 나만 직시했다.
헐렁한 병원복을 입고 퀭한 눈깔만 희번득하게 부라리고 있는 박강수는 분명 내가 원래 알고 있던 박강수가 아니었다.
“박강수, 아닌 것 같아요.”
“박강수가 아니면?”
“코가 비뚤어질 정도로 고약한 냄새가 진동해요. 썩은 우유 냄새.”
황도욱이 우리 대화에 끼어들었다. 걔도 심상치 않은 뭔가를 느낀 듯 박강수한테서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우리 둘은 박강수에게 대항하듯 나란히 서서 싸늘한 눈빛을 맞받아쳤다.
“묵이에요.”
선생님이 침묵했다. 구겨진 미간은 그가 가진 고민의 깊이를 내포했다.
“확실해?”
“네.”
“죽은 건 아니잖아. 자아도 있고.”
황도욱이 고개를 돌려 선생님을 쳐다봤다.
“묵이에요.”
걔가 다시 한번 단언했다. 묵직하고 낮게 깔리는 어조는 확신 그 이상을 담고 있었다. 선생님이 입을 다물고 있다가 박강수와 우리를 번갈아 쳐다봤다. 종국에는 한숨을 깊게 내쉬며 앞머리를 쓸어올렸다.
“쟤가 뭔지 알아내려면 대화를 해 볼 수밖에 없어요.”
내가 재차 입을 열었다.
“원하는 걸 얻으려면 우리도 쟤가 원하는 걸 줘야 하고, 지금 박강수가 원하는 건 저랑 일대일 대화를 하는 거예요. 더 괜찮은 방법 있어요? 납치해서 고문하는 비효율적인 방법 말고?”
마지막 말은 반쯤 농담이었다. 너무 딱딱하게 굳은 분위기를 나름대로 풀기 위한 일환. 딱히 도움은 안 된 것 같지만. 선생님은 몇 분 사이에 10년은 더 늙은 얼굴로 오른손을 내 머리 위에 올려놨다.
“근처에 있을게. 무슨 일 있으면 바로 불러.”
“그럴게요.”
대답하고 난 다음 몸을 틀었다. 황도욱은 여전히 나를 보고 있었다.
“부르면 바로 달려와.”
“네.”
가타부타 더 말을 덧붙이지 않는 그 한 글자가 왜 그렇게 믿음직한지. 내가 생각해도 홀라당 신뢰를 줘버리는 게 웃겨서 황도욱의 손을 한 번 꽉 잡았다가 놨다. 이제 박강수와 맞설 차례였다. 지금까지 일 년 동안 걔한테 일방적으로 당해오면서 묵혔던 감정들을 풀 때였다. 아니, 근데 박강수 아닌 것 같은 놈한테 풀어도 되긴 하나?
근본적인 의문을 품은 채 둘을 뒤로 밀고 박강수 앞으로 다가갔다. 내 얼굴이 뚫어질 듯 나만 보고 있던 걔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주변에 서 있는 어른들이 난감하고 당황한 얼굴로 우리 둘을 번갈아 쳐다봤다.
“갈까.”
“그래.”
박강수가 입을 열었고 나는 수긍했다. 우리 둘의 묘한 분위기에 다른 어른들은 말리지 못했다. 둘이 적당한 거리를 두고 앞뒤로 서서 옥상으로 걸어가는 동안 등 뒤에서 그들의 대화가 나지막하게 들렸다.
“돌아오고 나면 뇌 검사부터 합시다.”
“그래요……. 아무래도 충격이 커 보이니까…….”
점점 작아지는 어른들의 소리를 뒤로 하고 우리는 복도를 횡단해 옥상에 마련된 정원까지 갔다. 걷는 동안 걔도 나도 딱히 입을 열지 않았다. 우리 주변으로 다른 사람들이 스치듯 지나갔다. 그들은 우리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어딜 봐도 평범했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애가 혼수상태에서 방금 깨어난 주제에 아무렇지도 않게 걷고 있다는 것만 빼면.
옥상의 정원은 수 그루의 나무와 바닥에 깔린 인공 잔디로 조화롭게 조성되어 있었다. 앉아서 쉴 정자도 하나 있고 꽃과 수풀 등도 외벽을 따라 둥글게 쳐 놨다. 외벽은 사고로 사람이 투신할 것을 방지하려는 모양인지 애초에 사람 키보다 두 배는 더 높이 쌓아 올려놨다. 다행히 박강수가 갑자기 저기로 뛰어내리지는 않겠군. 병원에 오기 직전 차에 받혀 죽은 남자가 떠올랐으나 금방 고개를 털어 지워냈다.
“왜 여기까지 왔어?”
주변을 둘러봤다. 사람은 없었다. 이미 시간도 해가 떨어진 다음이라 달만 걸린 하늘이 어두컴컴했다. 그래도 시야를 확보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는데 정원 곳곳에 걸린 조명이 대낮 부럽지 않게 둘을 비추고 있었다. 앞서 걷던 박강수가 정원의 중앙에서 멈췄다. 걔를 중심으로 그림자가 네 갈래로 뻗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림자가 일어난다거나 하는 비현실적인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둘만 있을 곳이 필요했어.”
“왜?”
“내가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
“그게 뭔데. 죽다 살아났으면서 아직도 날 괴롭히고 싶어?”
어조에 감정을 담지 않으려고 애썼다. 나는 초연하게 서 있었다. 걔가 날 괴롭힐 때마다 하던 짓이다. 별일도 아닌 일에 휘말리지 말자고 수백 번 다짐하면서 박강수의 모욕과 멸시 그리고 폭력을 참아냈다. 내가 반응하지 않으면 그때마다 걔는 더 길길이 날뛰었다. 비록 얻어맞고 너덜너덜해지는 육체는 나일지언정 마지막에 박강수가 씩씩거리면서 돌아서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이겼다며 자기 위안을 삼고는 했다.
“하려던 말이나 해. 기자 사건, 어떻게 알고 있는 건지.”
“그래. 그때 너희 집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났지. 기자는 최근 벌어지고 있는 사건들과 너희 아버지의 연결고리를 알고 싶어서 널 찾았던 거고.”
“…….”
틀린 말이 없었다. 나는 박강수를 쏘아봤다. 쉽사리 반응하지 않고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그러나 머릿속은 몰려드는 정보들을 뒤섞으며 정리하느라 바빴다. 박강수가 이 이야기를 어떻게 알고 있는가. 현재 가장 합리적인 추론은 정보가 샜다는 것이었다. 어디서 어떻게 샌 걸까. 이 이야기를 알고 있는 사람은 우리들뿐인가? 협회에서 알고 있는 사람들은 어디까지인가.
“그래서.”
“이상해. 나는 분명 그 시간에 집에 있었는데 그때 일어난 기억이 눈앞에 선명하게 떠올라…….”
박강수가 느리게 말을 이었다. 분명히 평소 그 애의 말투는 아니다. 박강수는 정신 사나울 정도로 빠른 목소리로 사람 두개골을 후비는 재주가 있는 애였다. 저렇게 지루할 정도로 말꼬리가 늘어지는 애가 아니라.
“빙빙 돌리지 말고 똑바로 말해.”
“뭔가가 내 귀에 대고 속삭이고 있어.”
입이 점점 말라갔다. 한참 고민하다가 침만 겨우 꿀꺽 삼켰다. 박강수가 그 부릅뜬 눈으로 내 동태를 훑고 있었다. 걔가 내 긴장을 눈치채지 않기만을 속으로 빌었다. 나 설마 나도 모르는 새 떨고 있지는 않겠지. 박강수한테서 절대 눈을 떼지 않겠다는 의지로 걔를 지켜봤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불쾌한 냄새를 맡았다. 이미 맡아본 적이 있는 냄새다. 썩은 우유 냄새. 그건 바로 눈앞에 있는 박강수한테서 풍기고 있었다. 처음에는 신경을 써야 알 정도로 아주 약했으나 코를 스치기만 해도 구역질이 날 정도로 점점 지독해졌다. 걔랑 나랑 여기 서서 마주한 지 겨우 5분밖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생각했다. 쟤 부패하는 중인가.
“뭔 줄 알아?”
“너한테서 이상한 냄새가 나.”
“강채승.”
“너.”
“널 죽이래.”
“무슨 짓을 당한 거야?”
내 질문과 걔 답이 섞였다. 미처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박강수의 눈이 희번득 뒤집혔다. 이제 무시하기도 힘든 냄새가 코끝을 찔러댔다. 어느 순간부터 눈앞에 서 있는 박강수는 박강수가 아니었다. 인간의 껍질을 탈피한 듯 흰자는 빨갛게 부풀어 올랐고 양손은 괴수의 손처럼 손톱이 솟아올랐다. 걔가 상체를 비스듬히 숙였다. 초점 잃은 동공의 타겟은 오로지 나였다.
지금이다. 내 인생 중 절체절명의 순간.
“황도욱!”
박강수가 단숨에 거리를 좁혀들며 달려든 것과 덜 닫힌 문을 박차고 들어온 황도욱이 내 앞을 막아선 것, 그 두 개의 동작이 얼마나 짧은 시간 동안 일어난 일인지 알 수 없다. 찰나. 불교에서 기원한 그 단어 말고는 설명할 방도가 없는 것처럼.
황도욱이 박강수의 오른쪽 손목을 움켜쥐고 내 옆에 서 있었다. 그리고 바로 내 눈앞에는 박강수의 날카로운 손톱이 내 심장을 노리고 허공에 멈춘 채 파들파들 흔들렸다. 내 심장 박동 소리가 귀까지 들렸다. 나 방금 진짜 죽을 뻔했다. 점점 핏기를 잃어가는 박강수의 얼굴과 기괴한 동공, 흉측한 손톱을 직면했다. 이 새끼 진짜로 날 죽이려고.
“도욱아.”
“천천히, 뒤로.”
걔가 짧게 명령했다. 나는 입을 다물고 그 말대로 했다. 천천히 뒷걸음질했다. 한 발자국, 두 발자국. 박강수와 멀어졌다. 박강수의 핏발 선 눈이 내 걸음을 끈질기게 따라왔다.
“강채승…….”
“썩은 우유 냄새, 심장을 갈취하는 손, 살덩이를 삼키는 입.”
언제 한 번 들어봤던 기도문을 황도욱이 중얼거렸다. 큰 목소리가 아니다. 아주 낮고 아주 작다. 숨소리가 들릴 정도로 조용하고 가까운 거리가 아니었다면 듣지 못했을 소리다. 박강수한테 뒀던 눈을 천천히 황도욱한테 돌렸다. 조명 아래 음양이 도드라진 얼굴은 유난히 서늘했다.
“사람의 껍데기를…….”
“카악!”
황도욱이 말을 끝맺기도 전에 박강수가 붙잡히지 않은 팔을 크게 휘둘렀다. 살 찢어지는 소리와 붉은 피가 분수처럼 쏟아졌다. 잠깐 눈 한 번 깜박하고 뜬 사이 상황은 변해 있었다. 제일 먼저 보인 건 황도욱의 얼굴 위 흩뿌려진 피였다. 그다음은 황도욱의 손아귀에 잡혀 있는 팔뚝 하나였다. 다시 말하지만 팔뚝 하나다. 팔꿈치 위부터 달려 있어야 할 몸뚱어리가 보이지 않았다. 절단면은 강제로 찢긴 듯 너덜너덜했다.
비명을 지르지도 못했다. 박강수가 팔을 버리고 저 멀리 서 있었다. 어느새 우리 둘과 박강수의 사이에는 이십 미터 정도의 거리가 생겼다.
“……강수야?”
뒤에서 박강수를 호명하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뒤늦게 소란을 듣고 따라 올라온 박강수의 모친일 것이다. 나는 차마 뒤를 돌아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박강수의 껍데기를 뒤집어쓴 묵이 본격적으로 이를 드러내며 우리를 응시하고 있었다. 아주 잠깐의 틈을 보인다면 걔가 달려들어 내 가슴을 가를 것이다. 그런 섬뜩한 불안이 내 심신을 점령했다.
“강수야? 우리 아들, 아들, 맞아? 맞니?”
“어머니, 가까이 가시면 안 됩니다.”
“당신, 일단 진정 좀 해 봐.”
“놔 봐요! 우리 아들이에요! 애 팔이, 지금, 애 팔이!”
비명 같은 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선생님의 침착한 목소리와 당황한 듯 떨리는 중년 남성의 목소리도 뒤를 이었다. 옥신각신 싸우는 소리가 났다. 황도욱이 옷소매로 눈꺼풀을 덮은 피를 닦고 있을 때였다.
“어머니!”
“여보!”
“강수야!”
막을 새도 없었다. 어디서 그런 힘이 솟아난 건지 박강수의 어머니가 우리 옆을 쏜살같이 지나쳐서 박강수에게 달려갔다. 나는 그가 단정하게 빗어넘긴 단발과 곱게 차려입은 고급 브랜드의 옷 같은 것을 봤다. 신발은 옷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슬리퍼다. 아들 옆에서 간병하고 있었던 거겠지. 불편한 구두는 벗어 던지고.
푹 소리가 났다. 서서히 뜨기 시작하는 달 아래, 고요한 정적이 흘렀다. 박강수의 어머니는 뛰어간 그대로 아들의 품에 안겼다. 그리고 아들은 그의 뱃속을 손톱으로 뚫으며 화답했다.
“여보!”
뒤에서 남자의 절규가 들렸다. 나는 여전히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내 앞에는 황도욱이 있었다. 걔도 뭔가 다른 걸 느낀 듯 그 자리에 붙박이처럼 서 있었다. 한쪽 팔은 쭉 뻗은 채 나를 보호해 주는 태세를 취한 채 말이다.
여자의 몸뚱어리가 스르륵 내려앉았다. 박강수가 손을 털며 자신의 어머니였던 사람의 시체를 밀어냈다. 패륜을 저지른 박강수가 나를 똑바로 직시하며 입을 열었다.
“오늘은 널 찾아냈지.”
내가 알던 박강수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목울대에서 그르렁거리며 짐승처럼 울리며 가래가 낀 것처럼 탁하고 불쾌한 목소리다.
“다음에는 널 죽일 거고.”
걔가 히죽히죽 웃으며 천천히 뒤로 물러섰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박강수의 말 한마디 한마디 기억하기 위해 귀를 쫑긋 세웠다. 참담한 장면에서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이 모든 것들이 결국은 무언가의 실마리가 될 것이다.
“다음은 네 심장을 도려낼 거야.”
박강수의 등이 외벽에 부딪혔다.
“우리는 하나가 아니니까.”
그게 뒤를 돌더니 순식간에 외벽을 기어올랐다. 사람의 키 두 배를 훌쩍 넘는 높인데도 그건 아랑곳하지 않고 벽의 끝에 섰다. 그렇게 서서 다시 나를 향해 돌아섰다. 이제는 명백하게 알 수 있다. 저건 박강수가 아니다. 사람이 아니다.
“또 만나자.”
묵이다, 산 사람의 몸을 차지한.
그대로 뒤로 누워 투신하는 박강수를 보면서 내린 결론이다.
<2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