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화 (10/10)

하늘이 무척이나 높고 푸르던 어느 날 3학년 3반의 국어시간. 언제나 학생들과 친근한 대화를 나누기로 유명한 국어선생님이 입시에 찌든 아이들과 ‘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열심히 풀던 모의고사 문제집도 내려놓고, 아이들은 잠시 국어 선생님과 기분 전환겸 수다 삼매경에 빠졌다.

“그래서... 안병욱아. 넌 에로 소설을 쓰는 작가가 되겠다는 말이냐?”

국어 선생님이 필사적으로 어이없다는 표정을 참아내며 물었지만 번쩍이는 피어싱에 이어서 요새는 반지와 팔찌 수집에 몰두해 있는 병욱은 심드렁하게 대꾸한다.

“그러니깐요 선생님. 되겠다는 게 아니고 벌써 됐다니까요. 벌써 되버린 건 꿈이 아니잖습니까.”

이미 반 아이들의 대다수는 병욱이 쓴 ‘에로에로한 차씨의~’로 시작되는 시리즈물을 전부 섭렵한 상태였다. 예외가 있다면 2년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박중건에게 ‘조인!! 이제 어른이 되거라!’라는 허락을 못 받은 조인우 뿐이었다. 

“그..그래. 하지만 작가가 되려는 꿈을 갖고 있다면 무엇보다 국어시간에 충실해야 겠지...?”

국어선생님은 필사적으로 여러 단어를 삭제하고 축약하고 잠재적으로 묻어 놓으면서 자라나는 새싹의 꿈(?)을 밟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자, 그럼. 이현기는 어떤 꿈을 생각하고 있지?”

선생님의 다정한 물음에 현기는 잠시 우물쭈물 하다가 어렵게 자신의 생각을 내뱉는다.

“저...저는... 이...인우가 하..고싶은 일을 도..돕는게 꿈이예요.”

다시 한번 국어선생님의 얼굴이 일그러지려고 한다. 하지만 늘 아이들과 친화적인 국어선생님 입장에서는 여기서 자신의 프라이드를 꺾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현기야.. 너도 네 나름대로의 꿈을 갖고 있을 텐데?”

현기는 입가에 일어나는 경련까지 훤히 보이는 국어 선생님의 질근질근 씹어 내뱉는듯한 물음에 겁먹은 나머지 ‘그냥 인우랑 함께 있고 싶을 뿐이예요..잘못했어요!’라고 말해버린다. 아이들의 반은 웃어대고 반은 현기를 울린 국어 선생님에게 야유를 보낸다. 선생님은 뻘뻘흐르는 땀을 손수건으로 닦아내며 너만은 배신하지 말아다오라는 눈빛으로 인우를 지목한다.

“그럼 조인우는 어떤 꿈을 갖고 있는지 말해 볼래?”

갑자기 지목당한 인우는 잠시 샤프 끝을 물고 생각에 잠겼다. 헌데 그 텀이 너무도 긴 나머지 한동안 교실에 침묵이 흘러 교단앞에 서 있는 선생님을 다시 한번 당황 시켰다.

“저,저기... 조인우야?”

“죄송합니다 선생님. 아직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시간을 더 주시겠습니까.”

인우마저 선생님의 애원을 져버리고 말았다. 국어 선생님은 자포자기 해버렸다.

“그럼 조인우가 생각할 동안 옆에 차규형. 넌 꿈이 뭐냐.”

순간 교실안이 싸늘하게 얼어 붙었고 눈보라가 휭휭 몰아 쳤으며 저 멀리 허리케인이 불어오고 있었다. 저 국어 선생이 드디어 맛이 갔구나..하는 표정으로 아이들은 맨 뒤의 차규형을 돌아보지 못한 채 등줄기가 빳빳하게 굳었다.

“저는... 가업을 이을 생각입니다.”

낮고 느린 목소리가 교실의 침묵을 깼다. 규형의 대답이 의외로 건전했고 국어 선생님이 원하는 범위 안에 속한지라 순간 분위기가 반전 된다. 국어 선생님은 만면에 미소를 띄우며 보충 설명을 부탁한다.

“가업이라? 차규형이 가업으로 이어 나갈 그 꿈이 뭔지 궁금하네?”

규형은 잠시 생각 하더니 말했다.

“현재 저희 아버님께서는 극동 아시아 광역 폭력단체의 제 3지부 미들 보스의 직위를 수행하고 계시고 저 역시 그 자리를 이어받길 원하십니다. 저는 그것을 발판 삼아 글로벌 시대를 앞질러서 제 마누라가 원하는 대로 인텔리한 국제적 마피아가 되는 것이 꿈입니다. 아무래도 요새는 e-solution 시대이니 만큼...”

규형의 말이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교단 앞의 선생님은 점점 망부석이 되어간다.

“도대체 아까부터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냐 조인!”

중건이 달려와 인우의 목에 헤드록을 건다. 3학년이 되어도 철이 들 기미가 안 보이는 중건이었다. 인우가 중건에게만큼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스킨쉽을 한다는 것에 늘 불만인 규형이 중건을 발로 확 차버린다. 마침 이곳이 체육관바닥인지라 아무런 마찰 없이 중건은 저 멀리까지 데굴데굴 굴러가 버린다. 이에 진유가 좋다고 중건을 따라다니며 계속 굴렸고 병욱이 또 현기에게 작업을 걸고 있자 열이 받은 중건이 그 기세로 데굴데굴 굴러와 병욱을 확 덮쳐버린다. 그 위를 진유가 또 그 위를 다른 아이들이 차곡차곡 포개듯 짓누르고 결국 고3 사내놈들의 엄청난 몸무게를 감당하고 있는 인간탑의 제일 밑에 깔린 병욱이 살려달라고 애원하기 전까지 그 짓거리는 계속 되었다.

“흥! 시끄러운 놈들.”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는 인우의 무릎을 베고 여지없이 깊이 잠들어 있는 규형을 이리저리 찌르며 계명이 투덜거렸다. ‘자자, 사이좋은 애들 방해 말고 넌 우리들의 인간난로나 해라!’라면서 쌍둥이들이 계명을 자신들 사이에 샌드위치처럼 포개고는 끌고 가버리는 것을 마지막으로 조인우와 차규형의 주변은 조용해졌다. 

그제서야 규형은 감고 있던 눈을 떴다. 인우의 턱이 보인다. 저 녀석 아까 국어시간부터 생각에 빠져 있더니 아직도 끝내질 못한 모양이었다.

“뭐가 문제냐.”

규형이 물었다. 인우는 규형의 안면을 손바닥으로 탁 때린다. 문제가 아니다.라고 무뚝뚝하게 말하자 규형이 인상을 찌푸린다. 그럼 왜 그러고 있냐고 했더니 인우는 도저히 결론이 안난다면서 고민을 포기하고 기지개를 켠다.

“말 안해줄거냐.”

조금 화가 난 듯한 규형의 말에 인우는 피식 웃었다. 평소에 잘 웃지 않기 때문에 가끔 이렇게 웃어주면 규형이 놈 좋아라 한다. 저거봐. 벌써 삐지려던게 풀렸잖아. 인우는 어조 없는 목소리로 여느 때와 같이 말한다.

“국어 선생님이 꿈이 뭐냐고 물었을 때 나는 아무것도 대답할 수가 없었다. 사실 공부를 하고는 있지만 왜 공부를 하는 지는 한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어. 그저. 가족들에게 착한 막내이고 싶었고 부담을 주기 싫었다는 이유 밖에는.”

규형은 듣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자신의 말을 늘 이렇게 존중해주는 규형이 좋았다. 물론 다른 사람들의 말도 존중해 주면 좋겠지만 한술에 배부를 수는 없지 않은가.

“벌써 3학년이다. 이제는 학교를 벗어나서 앞으로 뭘 하고 살아야 할지 결정해야해. 더 이상 막내라고 어리광 부리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거지.”

그렇지만 도대체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라며 인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였다. 규형은 그 긴팔을 들어 올려 인우의 뒷통수를 살살 쓰다듬는다. 왠지 감촉이 좋아서 인우는 자신도 규형의 앞이마를 쓰다듬어 준다.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알고 있다.”

늦은 저녁, 야간자율 학습을 마치고 집을 향해 걸었다. 인우는 하늘을 바라보면서 또는 그 위에 촘촘히 박혀 있는 흐릿한 불빛들을 보면서 문득 어머니가 뵙고 싶어졌다. 1년이나 지나버렸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이. 정말 시간은 빠르고 세월은 가차 없다. 그동안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살았는지 인우는 기억을 해낼 수가 없었다. 그저 시간이 등을 떠미는 대로, 세월이 앞을 끌어주는 대로 그렇게 지내온 것만 같다. 형들도 그런 느낌이었을까. 아프신 부모님을 위해서 잘 살아야 된다는 지침이 흐릿해졌는데... 과연 형들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살았을까. 인우는 아파트 단지에 들어서며 숨을 한번 크게 쉬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살아가다가 문득 아까 오전에 국어 선생님의 그 한마디가 인우에게는 충격의 전환점이 된 셈이었다. 찬 물 한바가지가 머리 위로 쏟아 부어진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이제는 가족도, 이제까지 자신의 주변을 에워싸고 있던 허물도 벗어던지고 자신만의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인우는 왠지 심장이 뛰기 시작한다. 특별한 느낌의 감각이다. 자신만의 꿈. 어느 누구도 영향주지 못하는 자신만의 그 소중한 것. 인우는 정확하진 않지만 자신이 꼭 그 소중한 걸 발견할 것이라 강하게 확신한다. 차규형도 그렇게 말했다. 내가 하겠다고 생각하면 못할 것이 없다고 말이다. 그러면 된 것이다. 인우 스스로가 확신이 있고 규형이 믿어준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 이제는 늘 가슴속 한 켠에 무겁게 자리하던 착한 막내라는 짐은 덜어두고 자신만을 위해서 걸어가 보자. 인우는 고개를 곧 바로 든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발걸음이 무척이나 가볍게 보인다. 분명 쉽지 않은 인생일테지만 상관없다. 지쳐서 돌아오는 곳에는 언제나 큰형과 작은형이 동생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어느 순간 갑자기 커져버린 자신들의 막내를 보듬어 안아줄 것이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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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우에게 진정한 꿈이 어서 생겼으면 합니다.

막내의 이야기를 쓰는 요 근래 스스로에게 실망하는 일이 많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견뎌내야겠지요..

장남과 차남 커플과는 달리 막내 커플은 미성년자인지라 성인이 된 후의 모습을 짧은 에필로그로 써보았습니다. 눈을 어지럽혀 드리는 것은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부족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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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 2년 후 어느 날 오후.

조인우는 오늘 아주 이례적으로 늦잠을 잤다. 눈을 떠보니 낮 2시로 추정되더라. 눈이 부어서 잘 떠지지 않아 한참 시계를 보다가 알아낸 시간이었다. 믿기지 않았다. 순간 얼어붙어 꼼짝 할 수 없을 정도로. 

화다닥 일어나 휴대폰을 체크한다. 과연 고등학교 동창이며 함께 대학에 진학한 안병욱으로부터 부재중 수신 10통. 인우는 황급하게 메시지를 보낸다.

[ 욱아. 나 늦잠 잤다. 6,7교시는 갈거다. ]

바로 답장이 날아온다.

[ 사고라도 났는 줄 알았다. 임마. 왠일이야? 늦잠이라니. ]

인우는 급히 옷을 꿰어입으며 부지런히 문자를 날린다.

[ 괜찮아. 미안. 노트 필기 잘하고 있지? ]

병욱은 안심이 되었는지 농담을 한다.

[ 그런 걸 할 내가 아니지. 어젯 밤 차씨가 무리를 시킨 모양? ]

젠장. 하고 짧게 내뱉은 뒤 방을 뛰쳐나가려는데.

“아흑....”

“....아파...?”

“.....아니요....좀...하아..”

묘한 신음소리와 젖은 남자의 낮은 목소리가 거실에서 들려온다. 인우는 그대로 한 뼘 만큼 열린 방문 틈 사이 보이는 광경에 석화 된 채 멈추어 섰다. 

형이다. 큰형이다. 그 완고한 큰형이 거실에서 무척 섹시한 신음을 내고 있다. 맙소사.

“강...선...선생님... 아흣...그..그만..”

“...선생님이라고 부르지 말라니까....”

“...제발.. 아앗... 이제 더 이상은...!..학...”

살결이 부딪치는 소리. 질퍽이는 소리. 신음소리. 인우는 큰형이 강주인에게 어떠한 짓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충격에 바닥에 주저앉고 만다. 강주인의 무릎위에서 나신의 형은 허리를 휘며 흔들리고 있었다. 이 견딜 수 없이 끔찍한 기분은 뭐란 말인가! 

큰형은! 큰형은 아버지나 마찬가지인 큰형은!!

“아하학! 아흑.. 제발.. 죽겠....”

그만해! 우리 형님이 죽는 다잖아. 인우는 당장 뛰쳐나가고 싶은 것을 참았다. 자신이 듣고 있었다는 것을 안다면 큰 형님 성격에 바로 베란다에 뛰어들어 자살한다고 할런지도 몰랐다. 주먹을 어찌나 꽉 쥐었는지 뼈마디가 하얗게 될 정도였다.

“....아직이야...엎드려봐..”

강주인은 잔뜩 갈라진 목소리로 뭐라 웅얼댄다. 용우는 눈물 맺힌 눈을 원망하듯 치켜 떴지만 거역하지 못하고 거실 쇼파에 상체를 걸치곤 무릎을 바닥에 댄 채 엎드린다. 뒤에서 깊숙이 삽입한 강주인의 입에서 짙은 숨결이 뿜어져 나온다. 전력으로 밀어 넣는 강한 움직임에서 강주인의 격렬한 욕망이 그대로 느껴졌다. 저 남자는 정말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인우는 손으로 귀를 막았다. 절대 쉬이 내뱉지 않는 욕설을 잔뜩 퍼부으며.

용우는 숨을 꺽꺽 들이쉬며 미칠듯한 흥분을 참아보지만 결국은 강주인의 움직임에 동조하여 허리를 흔든다.

“아학... 아흑!.. 학.. 하앗... 앗.. 앗.. 주..주인.. 아앗..”

“..헉..헉...헉...”

인우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문자 메시지를 보낸다.

[ 욱아. 나 오늘 학교 못간다. ]

“것참. 형도 제법이네.”

한편, 오늘은 휴무인 경우가 침대에 길게 누워 중얼거린다. 

“으음.. 다리 좀 벌려봐..”

“...30분째 핥기만 하는 거냐.”

“하지만 난 네 XX 핥는게 좋다고. 부쩍 부쩍 변신하는 것도 재밌고!”

“......창피한 소리 잘도 한다.”

경우가 허리까지 덮은 이불 속에서 꿈틀꿈틀 괴생명체(?)가 움직인다. 이유신이라고 하는 그 괴생물체는 조그만 입으로 아주 부지런히 경우의 물건을 핥고 빨고 깨물고 요란 법석이었다. 물론 혼자 팔 베게를 하고 누워 느긋하게 나름대로 봉사를 즐기고 있는 경우는 즐겁긴 했지만 슬슬 몸이 달아오르려 하는 게 왠지 아랫배 근처가 간지럽고 뜨겁다.

“음..? 끝내고 나갔나봐.”

경우는 거실에서 들려오던 삐걱거리는 소리가 사라지자 이불을 휙 걷어버리고 유신을 잡아 끌어 덮쳐 안는다.

“윽! 무슨 짓이야! 이 XXX!!"

“하자.”

“으악. 다짜고짜. 아프단 말이야. 이 XX.."

"어젯밤 많이 해서 아직 부드럽잖아. 여기..“

“으악악! XX!! 부끄러운 소리 하지 마!! 읍!!”

유신의 고함소리가 경우의 입으로 막히고 그 후부터는 쿵덕쿵덕 사이좋은 애정표현의 소리. 침대 삐걱이는 소리까지 사중창이다. 

“하아.... 좋아.. XX... 으흣...XX!"

한참을 음란한 소리가 집안 가득 들려온다. 너무도 거침없이 튀어나오는 욕설이 교성과 정신없이 섞이고 곧 잠잠해진다.

“...그런데.. 막내... 방에 있는 거 아냐...?”

“인우?.... 행여나. 오늘 그놈 9시 수업인데 절대 빠질 녀석도 아니고....”

“...그렇구나.... 아아.. 나른해... 헉! 그렇게 갑자기 빼면 어떻게 해! 이 XX! XX같은!! 죽고 싶어?!!!”

그리고 절대 수업을 빠질 놈이 아닐 예정이었던 조인우. 자신의 방에 탈진해 자빠져 있었다. 이미 제정신이 아닌듯한 얼굴로 ‘작은..형이... 엄마나 다름없던... 작은 형이..’라고 중얼거리며.

[ 어디냐.]

인우에게로 온 문자 메시지. 손가락 하나 까딱할 기력밖에 없었던 인우는 바로 통화버튼을 누른다.

“학교 안갔다며?”

바로 들려오는 굵은 목소리. 병욱이 녀석이 그새 말한 모양이다. 인우는 피곤에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차씨.”

수화기 너머로도 녀석이 움찔하는 것이 느껴진다. 얼마 전 동창회에서 만난 박중건이 ‘이제는 싫어도 알아야 될 때가 왔구나..조인..’하며 병욱의 소설을 읽는 것을 허가한 뒤로 인우는 고등학교 때부터 궁금했던 그 금단의 잡지를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심심하면 규형을 극중 카사노바인 ‘차씨’라 부르며 즐거워했다. 물론 규형 본인은 인우에게 절대 그렇게 불리고 싶지 않았겠지만.

“왜.”

“너 혹시 쌍둥이들이... 그거... 하는거 본적 있냐.”

규형이 놈에겐 쌍둥이들이 친 형제나 다름없으니까.

“그거가 뭔데.”

“섹스.”

“응.”

거침없이 바로 나오는 대답.

“느낌은?”

“귀여운 것들. 잘도 노는군.”

인우는 그만 풋 하고 웃어버린다.

“한참 서로 엎치락 뒷치락 강아지새끼들처럼 싸우더니 사랑해 하고는 XXX를 XXX XX하고 XX..."

사랑해...하고는 까지만 참아주라. 하며 인우는 말을 막는다.

“차규형.”

“왜.”

심신에 타격을 많이 받으니 왠지 녀석이 보고 싶어진다.

“나 보러 와.”

“어딘데.”

“집.”

“간다.”

뚝 끊고는 어디에 있었는지 20분 만에 날아온 차씨. 인우는 녀석을 현관문에서부터 와락 안고 입을 맞추며 들어왔다. 오늘은 수업도 가지 않았는데 집으로 규형을 끌어들이다니. 정말 평소 같으면 어림도 없는 짓을 서슴없이 해버린다. 인우는 스스로도 정말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일하던 중이었을까. 규형은 빳빳한 정장 차림이었다. 자신의 방으로 녀석을 이끌고 들어간다. 

형들이 행복해서 다행이다. 하늘에 계실 어머니는 관에 함께 넣어드린 안대를 잘 쓰고 계시려나. 그렇게 손주손주 하셨는데.

“왠일로 이쁜짓을...”

규형이 급하게 타이를 푸른다. 인우가 빠르게 녀석의 탈의를 돕는다. 물론 옷이 구겨지지 않도록 최대한 신경을 써서 조심스레 의자에 걸어 놓는다. 곧 듬직한 맨살의 어깨가 드러난다. 그의 아버지께 얼마 전 받았다는 문신의 끝이 보인다. 백호가 녀석의 넓은 등을 거쳐 허리까지 수놓아진 모습을 보고 인우는 울음을 삼켰었다. 서럽고 아름답고 아프고 사랑스러워서... 꼭 이랬어야 했냐는 물음에 쓴웃음만 짓던 녀석이었다. 적어도 군대는 안가도 되네..하며 인우는 녀석을 위로했다. 

규형의 굳센 팔이 인우의 발목을 잡아 올리고 그대로 몸을 겹친다. 서로가 흥분하여 준비없이 하나가 되는 통에 통증섞인 신음성이 터져 나온다. 순간의 아픔에 눈물이 저절로 맺힌다. 하지만 결코 멈추는 일이 없는 차규형은 엄청난 힘으로 밀어 붙인다. 온힘을 다하여 녀석에게 매달리는 인우다. 서로 말도 없고 신음도 없다. 다만 상대방이 한껏 달아올랐음을 증명하는 숨소리만이 자극적으로 방안에 흘러다닌다. 그때 규형이 갑자기 인우에게서 몸을 빼낸다.

“.........왜.....”

놀란 인우가 젖은 눈동자로 올려다본다. 규형은 침대위에 등을 대고 눕는다. 인우는 갑작스런 녀석의 행동에 어이가 없다는 듯 잠시 앉아서 내려다본다.

“올라와.”

뭐, 못할 것 같지만. 이라고 말하고 싶은 얼굴의 차씨를 보며 인우는 발끈한다. 조인우의 승부욕은 규형이 이용하기에 아주 쉬운 먹이었다. 세월이 지나다보니 규형역시 자신의 반장을 다루는 법을 알게 된 것이었다.

인우는 일단 한쪽 무릎을 들어 올려 녀석의 아랫배에 지긋이 올려놓는다. 아무런 동요도 없는 규형의 얼굴이 너무도 얄미워서 꽉 힘을 주어 눌러주려고 하다가 더 좋은 생각이 난 인우였다. 손을 규형의 다리사이로 미끌어뜨렸다. 그리고는 용맹히 자신을 주장하고 있는 녀석의 물건을 손으로 꽉 잡아버린다.

“흡....”

규형이 잠시 숨을 들어쉰다. 인우는 눈을 가늘게 뜨고는 주물주물 녀석의 페니스를 만져준다. 그럴 때마다 규형 주니어는 점점 맑은 액을 내뿜었고 이만하면 됐겠다 싶은 인우가 엉덩이를 들어올려 그 위에 앉는다. 자신의 입구에 녀석의 몸을 끼워 맞춘다.

“천천히...”

규형이 인우의 허리를 양손으로 잡아준다. 막상 내리려니 조금 무서워진 인우였다. 하지만 조금씩 천천히 허리를 내렸다. 그리고 한번에 넣는게 언제나 덜 아프다고 생각하는 인우는 중간쯤 들어왔을때 단박에 허리를 내려 규형의 몸을 자신의 안으로 깊숙이 파 묻었다.

“...헉...!”

단발마의 신음이 두 사람의 입에서 동시에 터져나온다. 인우는 순간 입술을 깨물었다. 그 모습이 못견디게 사랑스러워서 규형은 그만 허리를 툭하고 튕겨 올린다.

“어흑...”

갑작스러운 충격에 인우가 경악을 하며 규형의 가슴팍에 풀썩 쓰러져 버린다. 한동안 그렇게 몸이 이어진 채 몸속의 떨림으로 인해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차규형...”

“응.”

“좋아한다.”

“아아...”

인우는 볼을 녀석의 심장위에 기분좋게 부볐다. 그러다 순간 자신의 몸이 휙 들어올려지는 것을 느낀다. 규형이 놈이 웃고 있다.

“너 때문에 가기 직전이다. 얼른 해줘.”

아직도 포기하지 못한거냐. 인우는 인상을 찌푸리고는 허리를 세운 상태에서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늘 자신이 가만 있으면 규형의 것이 들어와 좌우 앞뒤 전진 후진 전자동으로 움직였건만 지금은 꼿꼿히 선 그것을 자신이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하니 묘한 기분이었다. 질퍽질퍽 거리는 소리가 평소보다 더 크게 들려왔다. 인우는 얼굴이 뜨거웠다. 손을 내려서 규형의 입속에 자신의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마치 범하듯 왼쪽으로...오른쪽으로...입안 곳곳을 자극하며 움직였다. 규형이 혀로 인우의 손가락을 감아올렸다. 인우는 피식 웃으며 손을 빼내 자신의 것을 잡으려 했다. 헌데 그 순간 인우의 양 손을 모두 잡아 버리고 마는 규형이다.

“야.”

장난하지 말라고 하려는데 규형이 또 예의 그 ‘넌 못할거야 아마’라는 눈으로 말한다.

“밑으로만.... 가봐.”

이런 나쁜새끼..라며 인우는 속으로 욕을 퍼붓는다. 어디까지 창피하게 만들 작정이냐고 했더니 웃기만 한다. 인우는 하는 수 없이 미간을 찡그리며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때 규형이 밑에서 동조하듯 위로 찔러 올렸다. 

“...흑..”

새로운 쾌감이었다. 그 어느때보다 깊숙이 삽입된 느낌. 인우는 순간 뇌가 타들어 가는 줄만 알았다. 점점 그 감각을 지속시키고 싶어서 빠르게 허리를 움직인다. 규형도 속도를 낸다. 서로의 양 손을 꽉 마주 잡고 두 사람은 정신없이 몸을 결합한다.

“아흑... 학... 아앗... 젠장!!.. 아학...!”

인우가 처음으로 비명을 질렀다. 눈앞이 새하얗게 물든다. 허리를 크게 휘며 순간 팟 하고 정액이 튀어 오른다. 규형의 아랫배에 온통 쏟아진다. 인우는 힘을 잃고 침대로 툭 떨어지고 만다. 이를 자신의 팔로 받아 안아 규형은 다정하게 입을 맞춘다.

“.....여기서... 더하면... 나는 죽는다...”

슬그머니 아래로 손을 뻗어 내려오는 규형에게 일침을 놓고 인우는 녀석을 끌어안아준다. 타인에게는 그렇게 차가울 수가 없는 차규형이지만 인우의 부탁은 늘 들어준다. 이 맛에 연애를 하는 거라며 인우는 곰 같은 녀석이 아쉬워 입맛을 다시는 것도 무시하고 토닥토닥 등을 두들기며 자장가를 불러준다. 아.. 행복하다.

에필로그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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