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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 교주를 애지중지 키웠다-257화 (257/257)

257화.

비록 내공이 봉해졌다 하더라도 무인의 몸이었다. 초윤은 마음만 먹는다면 이 안장 위에 물구나무를 선 채 청해성을 건널 자신도 있었다. 이걸 누구보다도 오랫동안 함께 살아온 천오가 모를 리 없는데, 역시 과보호가 심해졌다. 이렇게 가슴을 졸이게 만든 원인을 제공한 것도 자신이니 딱 잘라 하지 말라고 말할 순 없었지만, 이러다가 숟가락 들고 밥도 떠먹여 주겠다고 하기 전에 몸뚱이를 고치든 선수를 치든 해야 할 듯했다.

대형 안장에 자리를 잡고 고삐를 쥐자 몸이 먼저 익숙한 승마 자세를 찾아 허리를 세웠다. 그 옆에서 거절당한 양손을 잠시 내려다보던 천오는 곧 고삐를 움키고 있던 초윤의 손등 위를 서슴없이 감싸 쥐었다. 그리고 훌쩍 뛰어올라 스승의 뒤에 가볍게 안착했다. 움직임만 가벼웠지, 단숨에 밀착한 등으로 전해지는 부피와 무게가 어쩐지 거대하게 느껴졌다. 두 명이 앉으라고 이렇게 커다란 안장을 씌웠구나. 초윤은 저도 모르게 멈췄던 숨을 의식적으로 내뱉으며 몸을 움츠렸다. 자세나 접촉이 불편하진 않았지만 어쩐지 뱃속이 수선스러워 얌전히 앉아 있기 어려웠다.

자리를 마련하려는 듯, 혹은 맞닿은 몸에서 벗어나려는 듯 꿈틀거리는 스승의 어깨를 가만히 내려다보던 천오는 어느 순간 초윤의 골반 한쪽을 거머쥐고 제 쪽으로 잡아당겼다. 파리한 등에 전율처럼 퍼지는 긴장을 가슴으로 느끼며 담담히 말했다.

“평보로 가겠습니다. 고삐는 제가 잡을 테니 스승님께선 기대십시오.”

“……네가 못해도 백칠십 근은 될 텐데, 고하가 아무리 준마라고 해도 두 명을 버틸까 걱정이다. 한 마리를 더 데려오는 편이 낫지 않겠느냐?”

“고하는 제갈세가의 말이 아닙니다. 어느 날 갑자기 하오문주의 앞까지 송달되었는데, 황제가 아니면 탈 수 없는 영물의 피가 섞여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그러니 평보로는 거뜬할 겁니다.”

“……아할 테케구나. 어쩐지 마체가 거방지더니.”

어느 날 갑자기 하오문주에게 배달된 한혈마? 이거 너무 출처가 의심스럽지 않나? 아무리 봐도 황궁에서 보낸 말인데 그런 애를 현재도 아니고 이전 직원에게 빌려줬다고?

‘초윤’은 근 몇십 년의 속세에 관해 아는 게 없었고, 초윤은 〈귀환영웅〉에 묘사된 내용 말고는 자세한 정국을 알 수 없었다. 발 닿는 곳마다 있던 민간인들이 높으신 분들에 관한 이야기를 이러쿵저러쿵 떠들 법도 했지만 무협 세계가 거의 다 그렇듯 관은 멀고 무는 가까웠기에 들려오는 말이라곤 대부분 무림의 소문이었다. 그러니 걷지 못하는 희에게 이 말을 보낸 자가 희의 아버지인지, 형인지, 가족 중 누구인지, 이 말이 정말 황제의 하사품이라면 함부로 다루자마자 불경죄로 처벌받을 수 있을 텐데 무슨 생각으로 혈연도 없는 남의 집 딸내미에게 기꺼이 내어 주었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초윤은 곧 고개를 저으며 마음을 다잡았다. 내 일도 태산인데 깊게 생각하지 않는 게 상책이었고, 곱게 다시 돌려주면 그걸로 될 일이었다. 한숨을 푹 쉬고 잠시 감았던 눈을 뜨자 부드럽게 흐트러지는 말갈기가 이전과는 다르게 보였다. 언제 이상한 곳으로 튀어 나갈지 모르는 전차를 등 뒤에 둔 것으로도 모자라, 잘못 건드리면 터지는 폭탄까지 하나 깔고 앉은 기분이었다.

제갈설린은 희의 뒷배경이나 말에 대한 자세한 얘기를 모르니 이 아이를 처음 본 유목민에게 덜컥 맡길 수 있었던 거겠지. 둑 터진 듯 쏟아져 나오는 딴생각으로 기이한 긴장을 애써 덮은 초윤은 천오의 가슴에 뻣뻣하게 등을 기댔다. 느린 움직임을 재촉하듯 초윤의 손바닥 밑으로 엄지를 비집어 넣은 천오가 기어코 고삐를 가로채 쥐었다. 초윤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양손을 놓은 뒤 천오의 품 안에서 다시 자리를 찾았다. 등자에서 발을 빼고, 천오의 팔뚝을 잡아 몸을 기댔다. 천오는 스승이 내어 주는 자리를 냉큼 차지하고선 말의 옆구리를 톡 쳤다. 고하는 두 명의 무림인과 장기 여행용 짐을 지고선 힘든 기색도 없이 털레털레 걷기 시작했다.

경탄했던 풍경이 천천히 옆으로 스쳐 지나갔다. 깨끗한 실바람과 풀 내음이 뺨을 간지럽히는 감각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자, 초윤은 좀처럼 떨쳐 내지 못하던 어색한 기분도 잊고 조금 더 뒤로 몸을 기댔다. 말은 생각보다 더 흔들렸고, 걸음을 옮길 때마다 허벅지 안쪽에 닿는 유기적인 몸체는 생소하게만 느껴졌다.

그보다 생경한 건 역시 밀착한 등에서 느껴지는 심장 박동이었다. 초윤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잡고 있던 천오의 팔뚝을 슬쩍 놓았다. 느슨해진 몸뚱이의 경직과는 별개로 지금의 침묵을 견딜 수 없어 아무 말이나 하고 싶었다.

“……승마를 가르친 기억은 없는데, 능숙해졌구나.”

“말을 탈 필요는 그다지 없었습니다만, 사저가 미리 알아 두라고 성화를 부렸습니다.”

“사영이 가르쳐 주었더냐?”

“아니요, 홀로 익혔습니다.”

“네 사저의 성격상 말만 덜렁 안겨 주진 않았을 터인데. 한두 마디 조언도 듣기 어려울 만큼 바빴느냐?”

“‘배운다’는 말이 붙을 수 있는 행위를 그다지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제게 가르침을 내리실 수 있는 분은 스승님뿐이라고 생각해 온지라.”

가볍게 꺼낸 화두가 이상하게 흘러가자 말문이 턱 막혔다. 얘가 제정신인가 싶어 고개를 돌려 올려다볼 뻔했다. 초윤은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짧은 순간 치열하게 고민하다가 조심히 타이르듯 입을 열었다.

“……천오야, 네 사저와 사형을 하오문으로 보낼 때 말하지 않았느냐. 나는 세상의 모든 지식에 통달한 사람이 아니다. 하물며 내가 항상 네 곁에 붙어 무엇이든 미주알고주알 알려 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스승이란 명패는 내게만 붙인다 하여도 남의 조언마저 듣지 않으면 안 되지.”

“어째서 항상 곁에 계실 수는 없다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뭐?”

“제가 독립해야만 하는 주된 이유로 말씀하셨던 ‘할 일’은 이제 와 스승님을 포함한 온 중원이 함께 매진해야 하는 사안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스승님께서 저를 또다시 놓으시지 않는 이상 곁에 붙어 있지 못할 까닭도 없습니다만.”

이번에는 참을 수 없었다. 초윤은 몸을 일으키고 뒤를 돌아보았다. 천오는 평상시와 다를 바 없는 표정과 안색으로 조용히 스승의 시선을 받아 주었다.

언제나 그랬듯 그 눈을 보자 할 말을 잃었다. 바닥없는 구덩이에 혼란을 비워 내듯 한참 동안, 어쩌면 한참이라 느껴지는 찰나 동안 눈을 마주치던 초윤은 다시 고개를 앞으로 돌리고 천오의 품에 등을 기댔다. 그러자 이번에는 천오 쪽에서 설득하는 것처럼 부드럽게 말을 꺼냈다.

“아집이란 사실은 알고 있습니다, 스승님. 저 역시도 절박한 상황이 온다면 타인의 재능과 경험을 얼마든지 갈취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지 않는 이상, 딱히 그러할 필요가 없는 이상은. 스승님께서 언제까지고 그러한 일이 재차 닥쳐오지 않도록 몸소 막아 주신다면…….”

“…….”

“저는 스승님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것만으로, 스승님의 몸에 배어 있는 것만으로 저를 완성하고 싶습니다. 나머지는 스스로 체득할 테니, 스승님께선 저를 계속해 보완해 주시길 바랍니다.”

“……도대체 커서 무엇이 되려고.”

“스승님께서 돌아오셨으니 이제부터라도 생각해 보려 합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생떼를 쓰다가도 뻔뻔스럽게 대답하는 모습에 기가 막혔다. 한없이 맑기만 한 풍경 속으로 착잡한 한숨을 푹 내쉰 초윤은 문득 일곱 살의 서문천오를 떠올렸다. 가족의 죽음을 받아들인 직후 무참하게 다친 손을 구겨 쥐고 잔혹한 말로 복수를 다짐하던 어린아이는 이제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든 살벌한 목표를 고작해야 ‘할 일’로 치부하고 있었다. 마땅한 도리와 의무에 불과하니 더 이상 마음 쓸 필요는 없다는 듯이, 도리어 걸리적거리는 부분이 해결되었으니 이제부턴 신경 쓰지 않아도 좋다는 듯이 담백하게 언급하고 있었다.

어디서부터 꼬인 걸까. 어떻게 이 매듭을 풀어야 할까. 아니, 이토록 내 존재에 집착하게 되었는데 기어코 연을 풀어 헤쳐 보내는 일이 정말 맞을까. 어떻게 해야 조금이라도 이 아이에게 도움이 될까. 무엇이 천오를 진정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까.

막막해진 초윤은 조그맣게 고개를 저었다. 눈이 시원하도록 탁 트인 하늘도, 머리를 식혀 주듯 불어오는 바람도 몸을 친친 휘감은 온기에 퇴색되어선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다. 여정의 시작부터 뒤숭숭해진 스승을 아는지 모르는지, 천오는 목덜미에 닿은 초윤의 머리카락이 간지럽다며 어깨를 올리고 고개를 기울여 스승의 머리에 제 뺨을 슬그머니 문지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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