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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 교주를 애지중지 키웠다-246화 (246/257)

246화.

떠올릴 때마다 막막해지는 사실이긴 했지만 모를 리 없었다. 천오에게는 스승인 초윤이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애가 일곱 살 때는 좋지 않은 일을 겪은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당연히 그럴 수 있다고 이해했다. 열한 살 때는 얼마든지 어리광을 부리고 보호받을 나이라고 생각해 넘겼으며, 열다섯 살 때도 마찬가지로 중학생 정도밖에 되지 않았으니 심리적 독립이 조금 늦어져도 어쩔 수 없다고 여겼다.

보통의 아이들은 이차성징과 함께 자아 정체감이 형성되기 시작하고, 부모의 영향을 벗어나 자립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정체성을 확립하는데 천오는 어째선지 사춘기의 모든 징후를 보이면서도 독립만큼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이게 또래 아이들처럼 집단 관계를 이루며 사회 적응을 하지 못해 그런 건지, 정서적 유대감을 가진 대상이 자신밖에 없어서 그런 건지 짚이는 이유는 많았다.

하지만 산 밑으로 내려가 또래와 어울릴 수 있게 하려니 천오의 공감력과 도덕성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고, 또 하루가 다르게 일취월장하는 천오의 무공을 안전하게 감출 방법도 마땅치 않았다. 천살성이라면 환장하며 달려드는 무림인이 얼마나 많은데, 그리고 서문세가는 마교와 내통했다는 누명을 쓰고 멸문당했는데 그 아래 태어난 아이가 눈빛 형형한 공감력 바닥 무공 천재라니 어떤 오해를 살지 빤히 보였다. 초윤이 아무리 능력 많은 현경이라고 해도 온갖 설정의 무림인이 득실거리는 속세에서 천오를 온전히 지킬 자신은 없었다.

그리고 애 키우는 사람의 시간은 빠른 법이라,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는 동안 천오는 금세 열아홉 살이 되어 버렸다. 초윤의 눈에는 여전히 어린아이였지만 더는 때를 놓치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시작한 장기 여행의 끝이 그렇게 나 버렸으니 천오가 스물일곱이 되도록 스승 중심적으로 살고 있을 법도 했다…….

책임져야 해. 초윤은 죽그릇을 비우며 다짐했다. 천오에게서 자신을 지워 내겠다는 뜻은 아니었다. 하지만 자신의 일거일동이 천오에게 영향을 끼치고, 이것이 궁극적으로 세상에 반향을 불러올 수 있다는 사실을 항시 상기해야 했다. 이제는 우리 애들만 지키면 된다는 짧은 생각으로만 행동할 수 없었다.

-염라군 주천오(周天吳)는 명림서하의 가슴우리를 뜯고 심장을 터트려 신물을 빼앗았다.

-그게 명림서하의 결말이었고, 새 주인이 된 주천오의 염원을 위해 다시금 조형된 세계가 이곳이다. 주천오가 살아온 ‘명림서하의 세계’를 ‘주천오의 세계’로 바꾸며 더해진 몇 가지 요소 중 하나가 바로 너라는 뜻이다.

〈귀환영웅〉의 모용서가 정마대전 패배 엔딩이라는 말도 안 되는 완결에 다다랐단 것도 ‘초윤’과의 대화를 통해 알게 됐으니 무협지 주인공은 항상 이긴다고 안심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어떻게? 나는 내 앞날도 설계하기 버거워하던 일반인이란 말이다.

울적하게 고심하고 있자, 천오가 조심스레 물었다.

“……스승님, 제 답이 잘못되었습니까?”

“아니다. 정사마로 나누어 무조건 대적하는 것보단 현명한 생각이구나.”

그러고 보니 대화 도중이었다. 퍼뜩 정신을 차린 초윤은 태연한 척 가장 큰 걱정을 흘렸다.

“다만…… 마음이 쓰일 뿐이다. 너의 적은 너를 중심으로 규정해야지, 나를 기준점에 두어서 되겠느냐. 피아를 철저히 구별하는 일도 종국에는 소용없어질 텐데 하물며 타인을 척도로 삼다니.”

“제게 가장 중요한 가치를 잣대로 두었을 뿐입니다. 제게는 스승님이 무엇보다도 무겁고 귀합니다.”

“옳지 않다. 너 자신을 그렇게 여기라고 누누이 말해 왔을 텐데.”

“스승님께서 그리 말씀하셨기에 행하고 있을 뿐입니다.”

“…….”

대충 알고는 있었지만 할 말을 잃었다. 초윤은 입을 벙긋거리다가 그냥 한숨을 삼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전부 안 죽인 게 어디고 많이 안 다친 게 어디며 내 말은 잘 듣는 게 또 어디냐. 12년의 무게를, 8년의 공백을 단숨에 지울 수 있으리라 생각한 적은 없다. 천천히 한 걸음씩 다시 해 보자. 이제는 천오가 스스로를 지키고도 남을 무력을 지니고 있으니 이전보다 조건이 괜…… 엄밀히 말해 완전히 괜찮다고 할 순 없지만 아주 최악은 아니다. 그래, 할 수 있다.

속으로 몇 번 심호흡을 한 초윤은 생각해 두었던 계획을 꺼냈다.

“사영이 돌아오면 중원으로 갈 채비를 해야겠다.”

“헉……. 여기서 중원까지는 많이 먼데요? 아직 편찮으시니 조금 더 머무르시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

“누만 끼치는 식객으로 오래 있어 봤자 좋지 않다. 나는 내공이 봉해졌을 뿐이지, 당장 걸을 수도 없는 중병에 걸린 것이 아니야.”

근래 들어 유난히 자신을 과보호하는 천오를 의식하고 한 말이었지만 별다른 반응은 없었다. 하지만 천오는 사현이처럼 더 머물러야 한다고 주장하지도 않았고, 놀란 티도 내지 않았다. 아무렇지도 않게 마저 숟가락질만 하는 천오를 힐긋 본 초윤은 아쉬운 마음으로 이어 말했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이 냉기에 시달리며 살 순 없으니, 일단은 가장 익숙한 방법부터 행하려 한다.”

“얼마 전에 극양(極陽)에 치우친 영약의 목록을 작성하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찾아보실 요량이십니까?”

“그래, 위치를 아는 곳은 모두 돌아볼 생각이다. 여정이 길어지겠지만, 마교의 추적을 염두에 둔다면 한곳에 길게 머무르는 대신 바쁘게 움직이는 편이 나을 테지.”

“이곳은 날이 추워 스승님께서 요양하실 장소로는 적합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극양의 영약이라면 주로 따듯한 장소에 있겠군요. 저는 기꺼이 따르겠습니다.”

가겠다는 말에 왜 아무런 토도 달지 않나 했더니, 눈 쌓인 곤륜산이 정말 맘에 안 들긴 했나 보다. 껴입은 옷과 어깨에 걸친 담요의 무게가 갑자기 무겁게 느껴졌다. 하지만 초윤 또한 어느 순간부턴 당연히 천오가 자신과 함께 다니리라 생각하고 있었기에 말없이 끄덕이는 수긍에 별다른 위화감은 없었다. 다음으로 의견을 묻듯 반대쪽을 돌아보자 사현이가 둔한 표정으로 뺨을 긁적였다.

“어…… 저는 원래 하오문으로 가 보기로 했으니까요. 스승님이 거동하실 수 있고, 천오가 혼자 스승님을 모실 수 있다고 한다면…….”

“할 수 있습니다.”

“어응……. 그러면 저는 괜찮아요. 누나가 오면 또 말을 해 봐야 할 것 같긴 한데……. 어디로 가실지 행선지는 정해 두셨어요?”

사실 아직 정확한 경로를 정하진 않았다. 강시 일을 빠르게 해결하려면 섬서성에 세워졌다는 무림맹으로 먼저 가 볼 필요도 있을 것 같았고, 혹여라도 붙을지 모르는 마교의 추적을 전부 천오에게 맡길 순 없으니 가까운 서장으로 내려가 영약부터 먼저 손에 넣어야 하나 싶기도 했다. 영약으로도 아무 소용이 없다면 사영이의 말마따나 빙궁의 도움을 빌려야 할지도 몰랐으며, 직접 발품을 팔아 강시 퇴치에 조금이라도 더 보태고 싶기도 했다.

할 일은 많은데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는 짐작조차 가지 않는구나. 초윤은 곰곰이 고민하며 그릇을 다 비우고 수저를 내려놓았다. 일찍이 다 먹은 아이들은 빈 식기를 앞에 두고 초윤의 판단을 기다렸다. 다시 입을 열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무림맹의 규모가 어떻게 되느냐?”

“대부분의 정파는 다 가입했어요. 사파도 조만간 각자 연합을 이뤄서 들어올 예정이고,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한 곳엔 사자를 보내기로 했단 이야기까진 들었어요.”

“그러면 무림맹부터 가야겠다. 제갈설린도 너희들의 부적에 쓰인 진법을 다 풀어내진 못했다고 하니 직접 신해(申解)부터 알려 주어야 마땅하다.”

아무래도 강시 일부터 먼저 해결해야겠지. ‘초윤’이 씨앗을 뿌리고, 자신이 물을 주어 자아낸 참상이었다. 이젠 원작과는 다른 세상이란 사실을 알았으니 원래도 벌어졌던 일이란 건 그다지 면죄부가 되지 않았다.

“그런 뒤 그대로 남하하여 무심서에 들렸다가 사천을 통해 운남으로 가는 편이 낫겠구나.”

“운남성이요? 무림이 아예 없는 지역 아니에요?”

“운남성의 남쪽으로 내려가면 사시사철 양기가 충만한 왕국이 나온다. 더운 기운이 식지 않는 데다 무수한 비가 내리니 풀은 무성히 자라고 과일은 달지. 몸을 데워 줄 영약이 자라기엔 적합한 땅이다.”

“하지만…… 그러면 중원에서 너무 먼 것 아닌가요?”

“다시 광서성으로 올라갈 수 있으니 염려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광동성까지 가서 하오문에 들리고, 복건성까지 올라가면 다시 서쪽으로 방향을 틀어서 귀주성까지 가는 거야. 아예 무림을 밑에서부터 싹 훑자. 내 몸에 아무리 음기가 가득 차 있다 한들 극양의 영약만 다 찾아 먹는데 당해 낼 수 있을 리 없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 해도 중원을 다 돌아보면서 강시 문제를 해결하고, 내 몸을 고치고, 대비하자.

초윤은 속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향후 몇 년은 걸릴 대계를 세웠다. 마교가 그동안 얌전하리란 보장은 없어 계획이 불안정하긴 했지만, 무림맹에 들려 진법을 알려 준 뒤 남쪽으로 내려가 영약을 하나만 얻기만 해도 당초 목적은 전부 해결한 셈이 되었다.

그런데 초윤과 사현의 대화를 들은 천오의 얼굴에 어둑한 그늘이 졌다. 그러고 보니 아주 길고 멀고 험한 여정이 될 수도 있는데 따르겠다고 한 아이의 의중은 못 물어봤구나. 초윤은 다급히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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