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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 교주를 애지중지 키웠다-244화 (244/257)

244화.

“지체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더불어 다른 곳도 아닌 화산파에 숨어든 마교도라면 더욱 많은 정보를 알고 있지 않을까 하여.”

이해는 하는데! 예의와 전통과 체면을 중요시하는 대형 문파에 가서 장로한테 그런 위협을 하면 망나니로 취급받지!

“그러면 화산과는 척을 지게 되었느냐?”

“진짜 고독이 나왔고, 마교도도 맞다고 판명이 나서 척지진 않았어요. 어쨌든 천오가 큰 문제를 해결해 주긴 했으니까요. 다만 이제…….”

사현이가 막냇동생의 앞날을 걱정하는 큰형답게 천오를 힐끔거리다 한숨을 푹 내쉬었다. 천오는 고집스럽게 스승의 매무새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미움을 좀…… 받게 됐죠.”

그야 그렇겠지…….

“천오가 그런 일이 또 한두 번이 아니라서…….”

뭐?

뒷골이 찡하게 당겨 왔다. 이런 데자뷔는 겪고 싶지 않았다. 손끝을 들어 이마를 짚는데, 무언가 미심쩍은 느낌이 들었다. 고개를 돌려 보자 천오가 특유의 동공 죽은 눈으로 사현을 협박하듯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초윤은 참지 못하고 천오의 허벅지를 아프지 않게 찰싹 때리며 말했다.

“일각이 다 되었겠다. 내려가서 아침거리를 좀 가지고 와 주련.”

“…….”

“네 사형을 겁박할 생각일랑 접어 두고, 어서.”

무언의 대거리는 5초도 가지 않았다. 천오는 결국 알겠다고 대답한 뒤 가지고 들어온 세숫물을 챙겨 느릿느릿 방을 나갔다. 문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 사현이는 그제야 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조용히 차음막을 둘렀다. 둘째의 긴장에 설핏 불안해진 초윤이 물었다.

“천오가 너를 무섭게 했느냐?”

“예? 아, 아니요. 천오가 저랑 누나한테 뭔가 한 적은 없어요. 오히려 많이 도움을 받았죠. 그런데 그냥…… 그냥 약간…….”

사현이가 입가를 매만지며 말을 골랐다. 고른다고는 하지만 스승님 앞에서 쓰기 적당하며, 비속어가 아니고, 어느 정도 두둔하는 듯 보이지만 또 은근하게 타박하는 표현이 마땅히 생각나지 않는 듯했다. 결국 이 느낌을 전달할 단어는 하나밖에 없었다.

“좀……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어요.”

“…….”

“잘못 건드리면 큰일 날 것 같은…… 그런 거……. 솔직히 스승님 돌아오시기 전까진 천오랑 별말도 못 했어요. 누나도 이제야 일 말고 다른 걸로 말 붙이는 거지. 아, 그, 그런데, 막 따돌리려고 한 건 아니에요. 정말로요.”

“알고 있다.”

의지할 스승도 없는 상황에서 누나와 형이 소속된 하오문에 들어가긴커녕 낭인 신분으로 십 년 가까이 돌아다닌 행적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초윤이 묵묵히 끄덕이자, 자신과 누나는 나름 잘 지내 보려 했다고 열심히 변호하던 사현이 깊게 안도했다. 그러고는 손을 내려 깍지 낀 채 장난스럽게 실실 웃었다. 사영이 없는 곳에서야 보여 주는 능청스러운 모습이었다.

“그런데 지금…… 스승님께서 돌아오시자마자 천오가 좀 살아난 것 같아요, 하핫. 조금 놀렸다고 째려보는 건 소름 돋았지만 이거 재밌네요. 우리보다 며칠이나 일찍 스승님을 뵀으면서 화산파나 제갈세가 얘긴 하지도 않았구나. 자기도 좀 심했다고 생각하긴 하나 보지.”

“너무 놀려도 좋지 않아.”

“네, 스승님. 그럼요.”

알았다고 말은 하지만 싱글벙글하는 모습이 이전보다 더욱 부드럽고 천연덕스러웠다. 많이 달라 보여도 남매가 맞긴 하구나. 편한 사람 앞에서만 나오는 사현이의 일면이, 이젠 하나하나 두려워하거나 걱정하지 않고 여유롭게 받아들이게 된 성정이 반갑게 느껴졌다. 초윤은 속으로 픽 웃으려다가, 문득 불길한 직감이 들어 퍼뜩 정신을 차렸다. 제갈세가가 갑자기 왜 나와?

그러고 보니 천오가 화산파처럼 쳐들어간 문파가 한둘이 아니라는 말에 시작한 대담이었다. 초윤은 다급히 물었다.

“천오가 또 무슨 일을 했지?”

“많이…… 했죠. 화산파가 천오한테 망신을 당하고서도 별달리 징계를 요구하진 않은 게, 사이가 나쁜 종남파는 더 심한 꼴을 당해서였어요. 보니까 종남은 아예 마교의 무공을 받아서 익히고 있었더라고요. 무슨 흡기공(吸氣功)이었는데, 천오가 들어가선 그 마공을 익힌 사람들의 단전을 다 부숴 놨어요.”

“……그래. 또?”

“또…… 제갈세가에도 오래된 배신자가 있었다는 거 알고 계셨나요? 가주의 동생이고 제갈 소저의 숙부였는데, 제갈 누구더라…….”

“제갈영환?”

-한참 기관진식을 익히며 빈번한 교류를 할 때 가주님의 아우 제갈영환에게서 들은 바가 있습니다. 물론, 사적인 자리에서 잔뜩 취한 채 멋대로 이야기하고 다니는 것을 주워 담은 것뿐이지만…….

시간상으로는 오래전, 초윤의 체감으로는 몇 주 전에 들은 이름이었다. 모용단이 지나가듯 언급한 사람이었는데, 지금의 세계가 아직 〈귀환영웅〉인 줄 알았을 때라 히로인의 삼촌이라면 등장할 리 없는 역할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건 더 이상 남성향 하렘 무협지가 아니게 되었으니 상황이 달라졌다. 사현이는 초윤의 말을 듣고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예, 맞아요! 역시 알고 계셨네요. 그 사람이요. 그 사람은 무공을 익힐 수 없는 몸인 대신 기물의 천재였다는데, 알고 보니 제갈세가에 보관된 진법이나 기물을 연구한답시고 복제해서 팔아 왔더라고요. 그…… 성침월구? 그것도 그 사람이 유출했고.”

실종당한 사현이의 기척을 숨긴 기물이라 유추했던 물건이었다. 하지만 실상은 월량의 술법에 당해 생기와 진기가 느껴지지 않았을 뿐이었고, 성침월구는 하오문의 간자 계월이 쓰고 있었다.

좋지 않은 기억이 줄줄이 떠올랐다. 희미하게 시선을 내리까는데, 사현이가 한 번 더 기함할 소식을 전해 주었다.

“제갈세가에도 들어가서 그 안에 깔려 있던 진법을 모조리 뭉개 놓고 제갈영환을 찾아 빈사로 만들었대요. 몸을 무골로 탈바꿈하겠다고 마교의 술법을 시술받아서 구별하기는 쉬웠다는데, 이건 제갈 소저가 편을 들어 줘서 큰 문제 없이 지나가긴 했어요.”

“……설마 또 있느냐?”

‘이건’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걸려 묻자, 사현이는 아예 한 손을 들어 손가락을 꼽기 시작했다.

“사천당문이 봉문을 풀어서 한 번 찾아간 적이 있었는데, 다행스럽게도 당문은 오래 폐쇄되어서 그런지 마교가 손을 뻗진 못했어요. 그런데 그 대신에 사천에 있던 청성파가 또 결탁을 했더라고요. 청성파도 보니까 암기를 쓰는 문파던데, 매번 당문보다 아래로 취급되는 게 싫었는지 마교의 암기술을 받아 개조하고 있었어요. 천오가 거기 사람들도 많이 때렸고…….”

“때렸……다고.”

“네, 그래도 죽이진 않더라고요. 그리고 또 당문이 봉문한 동안 청성파와 대립하던 점창파도 상대가 점점 강해지니까 어쩔 수 없이 덩달아 마교의 힘을 빌렸는데…… 거기는 그래도 들어가서 비무 형식으로 꺾어 주긴 했어요. 한 명 한 명씩 전부.”

도장 깨기를 했다고? 초윤은 기가 막혀 숨을 들이마셨다. 현경의 육신이 아니었다면 어질어질해서 눕고도 남았을 터였다.

하지만 사현이는 그다지 눈치가 재빠른 편은 아니었다. 스승의 안색이 점차 하얗게 질리는 줄도 모르고, 자신은 제어하지 못하는 동생의 흉을 보느라 바빴다. 재잘재잘 끝도 없이 쏟아지는 고발을 들어 보니 천오가 자신의 행적을 직접 상세히 말하지 않은 데엔 전부 이유가 있었다. 장강 근처의 번화가를 돌아다니며 민간인으로 위장한 마교도의 근맥을 백주 대낮에 냅다 끊어 놓지 않나, 감숙성이며 산동성까지 칼 한 자루 들고 전방위로 번쩍거리며 돌아다니질 않나.

스승이 없는 동안 쓸쓸하고 고독하고 험난한 길을 걸었으리라 예상하긴 했지만, 이놈의 자식은 아주 중원 곳곳을 나돌아다니며 깽판이란 깽판은 홀로 다 치고 있었다. 이 정도면 별호에 미칠 광(狂)자가 붙지 않은 게 도리어 용했다. 흑무상은 매우 고상한 이름이었다.

“제가 아는 건 대충…… 이 정도예요. 자세한 얘기는 누나가 더 잘 알고 있을 거예요. 전 이 뒤처리를 맡은 누나가 하소연하는 얘기나 소문밖에 못 들어서.”

“……그래.”

그럼 이것보다 더할 수가 있다고……. 초윤은 건조한 손바닥으로 얼굴을 문지르며 마른세수를 했다. 스승에게 모든 고자질을 마친 사현은 흡족하게 헤실헤실 웃었다. 저렇게 일러바치는 애가 아닌데, 그동안 천오 때문에 꽤 심한 고생을 한 듯했다.

그때, 답지 않게 다급한 발소리가 밑에서부터 들려왔다. 경공까지 써서 빠르게 계단을 뛰어 올라온 사람이 황급히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초윤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어깨로 문을 밀어 열고 고개를 숙여 안으로 들어왔다. 빠르게 돌아오는 와중에도 완벽한 균형을 유지한 덕분에 조금도 흘러넘치지 않은 쟁반을 양손에 하나씩 든 천오가 눈을 깜빡이며 방 안의 분위기를 살폈다. 그리고 사현이와 눈이 마주치자 입가를 살짝 굳혔다.

사현이가 고개를 돌리고 있는 탓에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는 볼 수 없었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모르는 건 아니라서, 초윤은 땅이 꺼지듯 한숨을 내쉬었다.

하여간 남자 형제란…… 평소에는 말 한마디 나누는 일도 드물면서 서로를 골탕 먹일 생각으로만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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