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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 교주를 애지중지 키웠다-241화 (241/257)

241화.

‘수습해! 어떻게든 수습해!’

황당하게 이쪽을 바라보는 운궁주의 어깨 너머로 사영이 다급하게 손을 휘저었다. 억울하게 두들겨 맞은 사람처럼 울먹이던 사현은 누나의 시끄러운 입 모양을 보고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러고는 몸을 돌려 도를 집어넣은 뒤, 손바닥에서 팡 소리가 나도록 포권을 취하고 냅다 머리를 숙였다.

“실례를 끼쳐 대단히 송구합니다. 고명하기로 이름 높은 곤륜파와 무예를 겨룰 수 있다는 사실에 들떠 마땅한 예의를 지키지 못했습니다. 사죄할 기회를 주셕, 주셨으면 합니다.”

우직한 목소리가 진심을 담고 연무장에 우렁차게 울렸다. 사현은 자세를 풀지 않은 채 씹은 혀를 입천장에 마구 비볐다. 누나처럼 유려한 어휘로 번드르르하게 말할 순 없어도 어떻게든 뜻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했는데, 당황하면 입부터 굳는 버릇이 여전히 남아 있어 매번 사현을 곤란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진심은 전해졌는지, 반으로 갈라져 말싸움하던 사람들의 소음이 차차 잦아들었다. 운궁 측에 서서 갈등에 가담하던 차인강파가 터벅터벅 걸어 나와 턱하니 사현의 곁에 섰다. 그런 뒤엔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가 몇 번 오갔는데, 아무래도 통역을 하는 듯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검문 측에서도 한 사람이 걸어 나와 소리 없이 사현의 앞에 섰다. 사현은 옆에 선 차인강파가 고개를 들라고 하는 말을 듣고 나서야 쭈뼛쭈뼛 시선을 올렸다. 그러자 운궁을 찾아온 검문의 도사 중에서도 가장 연배가 있어 보이는 사람이 사현의 앞에서 포권을 하고 있었다.

『 이쪽이야말로 송구합니다, 임 소협. 광동성의 하오문에서 이곳까지 찾아와 주신 분일 줄은 모르고 있었습니다. 운궁은 곤륜파의 계율을 쉬이 어기고 주붕(酒朋)을 산에 들여 술판을 벌이는 일도 심심찮게 저지르는지라 다짜고짜 의심부터 해 버렸군요.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 죄송할 뿐입니다. 』

『 그 주붕이 그냥 주붕이 아니라니까? 좋은 사람들 데려와서 밥 한 끼 먹여 준 것뿐인데 쩨쩨하게 굴긴. 』

“임 대협, 하오문에서 왔다고 말 전했습니다. 검문은 몰라서 미안하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데려오는 술친구인 줄 알았다고 합니다.”

“아, 괜, 괜찮습니다. 사과를 받아 주셨다면 다행일 따름입니다. 그리고 저기, 부상을 입으신 분은 어떻게…….”

그러고 보니 비무라고 하면서 서로 통성명도 하지 못했다. 나를 정말 운궁의 사람들이 데려온 건달 정도로 생각했나 보구나. 아니, 이 사람들은 술친구를 운궁까지 데려와서 먹이고 재웠다고? 그래도 돼? 일단 도사한테 술친구 같은 게 있어도 돼?

혼란스러운 의문이 머릿속을 꽉 메웠지만 어쨌든 과열된 분위기가 어느 정도 가라앉아 다행이었다. 곤륜파의 사람들은 빠르게 달아오르는 만큼 또 빠르게 식는 듯했다. 사현은 멋쩍게 목뒤를 매만지며 조금 전까지 무기를 맞댄 사람을 힐긋힐긋 바라보았다. 피 흘리는 손의 손목을 움켜쥔 그는 여전히 씨근거리며 얼굴을 붉히고 있었지만 더는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

“강한 사람에게 덤볐다가 다쳤습니다. 멍청하지만 자기 잘못입니다. 피 난다고 죽지 않습니다.”

“죽지만 않으면 다행인 건가요…….”

“물론입니다. 죽지만 않으면 더 강해질 수 있습니다.”

『 잘하는 짓이다, 잘하는 짓이야. 평소 행실 때문에 기껏 모신 손님께도 민폐나 끼치고 아주 잘한다, 잘해. 』

『 궁주님! 』

차인강파와 허탈한 대화를 나누는데, 느닷없이 뒤쪽에서 빈정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수선하게 서 있던 운궁의 제자들이 절도 있게 돌아서며 길을 트고, 검문의 사람들은 저마다 일제히 포권을 취하며 예를 보였다. 다가오는 기척을 느끼지 못한 사현이 깜짝 놀라 소리의 근원지를 돌아보자, 물러난 궁도들 사이로 얇은 외투 한 장을 어깨에 두른 나라연천금강이 비딱하게 선 채 쯧쯧 혀를 차고 있었다.

그리고 나라연을 따라 황급히 내려온 사영은 그 옆에서 완벽한 사회인의 얼굴을 한 채 어떻게 됐냐는 듯 사현에게 마구 눈짓을 보내고 있었다.

『 이 철부지들아. 나도 도사는 못 되는 몸이라 너희에게 많은 걸 바라진 않았다. 화식(火食)을 끊으라 하지도 않았고, 적선(積善)에 목숨을 걸라고 한 적도 없어. 그저 곤륜파의 이름에 몸담는 만큼 부끄러운 짓은 하지 말라 하였는데, 허구한 날 천둥벌거숭이같이 날뛰더니 지금의 꼴을 보아라. 같은 문파의 동문에게는 업신여겨지고, 주변의 얼굴에는 먹칠을 하니 기분이 좋더냐? 』

『 죄송합니다, 궁주님! 』

『 손님 앞에서 떼거지로 드잡이질을 하질 않나, 그것으로도 모자라 손님의 등을 떠밀어 싸움장으로 내보내질 않나. 만인 앞에서 들 얼굴이 없구나. 환영만 해도 모자랄 판국에 퍽 좋은 대접이다. 』

『 죄송합니다! 』

고개를 들어도 좋다는 허락을 받지 못한 검문은 여전히 포권에 머리를 숙인 자세로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운궁의 무사들은 나라연의 꾸중이 한 단락씩 끝날 때마다 입 맞추어 사죄했다.

그들이 비켜난 길을 저벅저벅 걸어오며 카랑카랑하게 일갈한 나라연천금강이 사현의 앞에 비딱하게 섰다. 운궁에 발을 들인 뒤 궁주를 처음 마주하게 된 사현은 순식간에 연무장의 분위기를 휘어잡은 나라연의 기세에 지그시 눌려 눈을 피했다. 무언가 혼을 낸 것 같긴 한데 언어를 모르니 정확히 알아들을 수가 없었고, 말을 전해 주던 차인강파도 깍듯한 예를 취한 채 미동도 하지 않아 무슨 대화가 오갔는지 물어볼 수도 없었다.

모아 잡은 손만 꼼지락거리고 있는데, 그 위로 가락지와 팔찌로 잔뜩 치장한 손이 툭 올라와 사현을 도닥였다. 보기와는 달리 거칠고 단단한 손바닥이 느껴졌다. 사현이 우물쭈물 시선을 들자, 잠시 눈을 마주친 나라연이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모자란 내 수하들이 무례를 범했소, 천보도. 정식으로 인사를 하기도 전에 이렇게 마주하게 되어 유감이군.”

“아…… 아닙니다, 궁주님. 저야말로 소란을 일으켜서…….”

반갑고 익숙한 중원의 언어였다. 사현을 빠르게 눈을 깜빡이며 나라연과 그 뒤를 따라온 사영을 번갈아 보았다. 그리고 사영이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야 안심이 섞인 한숨을 내뱉었다.

“철부지들만 모아 둔 운궁인데 소란이 없을 수가 있나. 난데없이 휘말려 욕보셨소. 이곳은 책임자인 내가 마저 정리할 테니, 이만 들어가시오.”

“그, 제가 미숙하여 상처를 입으신 분이…….”

“괜찮대도. 아, 그대의 누님은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으니 조금만 더 빌리겠소이다. 스승에게 돌아가 계시오.”

나라연은 사현의 손을 몇 번 더 두드려 준 뒤 손등으로 그의 팔을 톡 건드렸다. 그 손길에 저도 모르게 몇 걸음 옆으로 물러난 사현은 얼떨떨한 기분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눈이 마주친 운궁의 사람들이 모두 눈가를 찡긋거리거나 머리를 슬쩍 까딱이며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나라연이 나아가 검문의 문도 앞에 서고, 사영이 뒤따르며 동생의 어깨를 무심히 툭 두드리고 나서야 사현은 발걸음을 떼었다. 사건을 키운 자신이 이대로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고 들어가도 되나 싶었지만, 반대로 있어 봤자 할 수 있는 일은 없는 데다가 누나까지 허락한 듯하니 일단은 돌아가는 편이 나을 듯했다.

자신이 들어오면서 트인 길을 터벅터벅 걸어 나가는 사현의 기척을 느끼며, 나라연천금강은 가슴 앞에 팔짱을 꼈다.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예를 차린 검문의 도사들을 가만히 바라보다 느리게 말문을 열었다.

『 ……운(雲)자배의 유(遊)구나. 그래, 장문인께서 내 손님들을 궁금해하셨다고? 』

『 문안이 늦어 송구합니다, 운궁주님. 하문하신 대로입니다. 장문인께서 운궁의 손님을 만나 뵙고 오라 명하셨기에 이리 급히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

『 그런 이유라면 너 홀로 와도 충분했을 터인데 굳이 이대 제자 무리를 데리고 기별도 없이 들이닥쳐선, 내게 고하기도 전에 운궁의 마당에서 검을 뽑았다고……. 』

『 ……. 』

나라연이 평온한 어조로 말끝을 길게 늘였다. 만년설이 소복이 내리는 와중에도 후텁지근했던 운궁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냉랭해졌다. 힘을 보이지도 않고, 내공을 위시하지 않아도 공기를 묵직이 누르는 위압감에 조금 놀란 사영이 나라연의 등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얇고 마른 몸으로도 오만한 이들을 쉬이 압도하곤 했던 흰 인영이 아른거리며 눈앞에 겹쳤다.

현경은 발 디딘 공간을 자연스레 눈 아래 두고 마는 경지인가. 구태여 우위에 서려는 의지가 없어도 승복하게 되는 것이, 그저 당연한 이치 같고 순리 같다.

사영이 아직 닿지 못한 무위를 슬쩍 엿보는 사이, 나라연은 허리춤에서 물소 뿔로 만든 담뱃대를 꺼내 입에 물었다. 꽉 채워 넣은 담뱃잎에 손끝으로 불을 붙이고 깊게 들이마셨다. 한겨울 호수처럼 두껍게 얼어 있던 침묵은 오래 이어져도 깨지지 않았다.

『 이해한다. 운궁은 나부터가 글러 먹었지. 도가 문파인 곤륜파에서 문(門)자를 달 수 없어 유일하게 궁(宮)이 된 지파에, 도사는커녕 도교에 입문조차 할 수 없는 파계승이 아니더냐. 데리고 있는 것들은 하나같이 어디에도 두각을 보이지 못한 머저리고, 너희들처럼 그럴싸한 후원도 받지 못해 길쌈한 돈으로 살림을 꾸리는 형편이다. 우스울 만도 하지. 충분히 이해하기에 내 아이들을 깔봐도 여태껏 내버려 두었다. 』

『 그, 그렇게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 』

『 저놈들은 혈기만 넘치고 철은 들지 않으니 제 잘못으로 말미암아 호되게 당해 봐야 정신을 차리리라 생각하기도 했고 말이야. 그렇기에 너희들이 주기적으로 무리를 끌고 와서 내 아이들을 우롱해도, 다른 지파에게 같잖은 험담을 풀고 다녀도 가만히 두었다. 』

검문의 일대 제자, 운유가 들어 올린 손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목젖을 움직여 침 삼키는 소리가 사영의 귀까지 닿았다. 시선을 조금 빗겨 보니 운유의 뒤로 나란히 선 무사들 역시 상태는 다르지 않았다. 개중엔 사현이의 비무 상대도 있었는데, 그는 손에서 흐른 피가 발 앞에 후두둑 떨어져도 미처 신경 쓰지 못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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