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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 교주를 애지중지 키웠다-207화 (207/257)

207화

첫 발작은 사막에 몸을 던진 지 세 시진이 지난 시점, 돌아가서 마차를 찾기엔 한참 늦었을 때였다. 천오는 햇빛 아래 웅크릴 그늘도 없는 모래밭 한복판에 주저앉은 채 스승을 깨웠다. 그러나 혼절한 이는 아무리 흔들고 불러도 일어나지 않았고, 팔꿈치와 무릎 밑이 모조리 얼어붙은 시점엔 천오 혼자서 무엇이라도 해야 했다. 이에 무작정 스승의 손목을 잡아 제 옷자락 안으로 밀어 넣었다. 피가 몰려 체온이 높은 가슴팍과 목에 차게 굳은 손을 문지르고 한데 모아 입김을 불어 넣었다. 그러자 얼음장 같던 손끝이 희미하게 움찔거렸다.

천오가 익힌 무공이 다른 것도 아닌 미무일식공이고, 이곳은 뜨거운 사막이란 사실이 그나마 천만다행이었다. 자연과 동화하는 미무일식공의 특성상 운기를 하자 주위의 열기가 전신의 내력에 녹아들었다. 서문천오는 이 힘이 온기를 잃지 않도록 갈무리하여 스승의 단전으로 밀어 넣고, 자신이 운기조식을 하는 순서대로 기맥을 따라 인도했다. 전신이 녹기까진 그로부터 장장 한 시진 반이 걸렸다.

자신의 내공으로 타인의 운기조식을 대신한다니, 인간의 수준을 벗어난 서문천오의 재능과 직전제자라는 위치, 그리고 끊임없이 돌이켜보았던 그 날의 장면이 아니었다면 어림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위업을 이뤄낸 서문천오를 칭찬해 줄 유일한 이는 그 품 안에 여전히 정신을 잃고 쓰러져있었다. 천오는 탈력감에 숨을 몰아쉬며 땀에 젖은 이마를 훔칠 생각도 못한 채 스승만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신수의 터럭처럼 새하얀 머리카락이 들러붙은 이마와 곧게 뻗은 눈썹, 그 밑에 굳게 닫힌 눈꺼풀과 핏기 없는 뺨을 눈에 담았다. 단정한 어깨에서 뻗어나간 팔은 힘없이 축 늘어져 있었고, 힘없이 고개를 기울이며 드러난 턱과 쇄골의 선은 파리하기 짝이 없었다.

기어 다니는 바람 한 줄기가 모래를 일어와 스승의 손끝과 발등을 덮었다. 빚어 구운 도자기처럼 생기 없는 초윤이 상아색 흙에 파묻힌 짧은 찰나가 더할 나위 없이 소름 끼치는 순간으로 다가왔다. 천오는 저도 모르게 질겁을 하며 스승을 다급히 고쳐 안았다. 장포를 빠져나간 팔을 다시 꽁꽁 싸매고 옴폭한 오금 밑으로 손을 넣어 추켜세웠다. 무심코 거친 손길이 나가버리자 한 줌의 모래가 스승의 옷자락과 얼굴에 튀었다. 조바심과 혼란으로 머릿속이 새하얘진 천오는 초윤의 얇은 옷 위에 자리 잡은 모래알을 서둘러 털어냈다. 볼품없는 홑겹의 흰 내의는 이미 소맷단이 피에 젖어 무엇을 해도 깨끗해질 수 없었지만 제 실수에서 비롯된 흔적을 가만히 둘 순 없었다. 복부의 옷주름에 고인 모래를 툭툭 쳐내던 손길이 옷감에 들러붙은 흙을 따라 천천히 위로 올라갔다. 스승의 가슴께를 털어내고, 목 아래 가로로 길게 패인 굴곡을 조심히 쓸고, 창백한 뺨을 엄지로 문지른 뒤 소금꽃 핀 아랫입술을 톡 건드렸다.

그리고 어떻게 했더라?

잠깐 사고가 멈췄던 것 같다.

“색시요?”

이질적인 목소리가 상념을 깨트렸다. 서문천오는 습관처럼 되돌려 보던 기억에서 빠져나와 고개를 들었다. 작은 녹주의 맞은편, 검은 옷을 친친 휘감아 입고 눈만 내놓은 남자가 불량하게 주저앉은 채 말을 걸고 있었다. 주위로는 저무는 해의 불타는 금빛이 가득했다. 몇 시진의 경험을 되감아 보았으나 실제로 지난 시간은 얼마 되지 않은 듯했다.

새까만 눈이 매끄럽게 잠기며 상황을 파악했다. 스승님 계신 앞에서 백정처럼 사람을 도륙하긴 저어되어 배운 대로 얌전히 말을 붙이고 양해를 구하긴 했지만, 어느 정도 제정신을 되찾고 나니 잠시나마 무방비한 모습을 보였다는 점이 찜찜하기 그지없었다. 저들이 조금이라도 위협적인 자세를 보였다면 조치를 하는 도중에도 한 손으로 수습할 자신이 있었으나 사소한 빈틈에도 예민하게 날을 세워 자신을 책망하고 마는 까닭은 과거의 통렬한 실패 탓일까.

사막을 건너는 내내 도통 나아지지 않는 서문천오의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까만 옷의 무리는 하얗게 얼어붙은 연못물을 곡도로 깡깡 깨며 이게 무슨 조화냐고 신기해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는 녹주 건너편에서 서문천오를 마주 보고 앉아 있었다. 자신을 향한 눈길에는 관심 한 점 없다가, 스승을 힐끔 향하는 시선은 곧장 기민하게 알아차린 천오가 남자에게로 눈을 돌렸다.

그러고 보니 뭔가 말을 한 것 같은데.

“예?”

“색시냐고.”

뭐……?

한참을 곱씹어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뜻이었다. 순간 얼이 빠진 천오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숙여 품 안에 안긴 이를 확인하듯 내려다보았다. 단정한 이마선, 곧은 콧대, 감은 눈에 나비 날개 같은 속눈썹, 수척한 뺨과 메말라 갈라진 입술…… 위에 올라간 제 검지 손끝.

감정이 무게를 갖고 심장 위로 쿵 떨어졌다. 서문천오는 헛숨을 삼키며 재빨리 제 손을 등 뒤로 숨겼다. 고강한 무림인의 작정한 동작은 중간 과정 없이 발단과 결과만 보일 정도로 민첩했다. 천오는 목울대가 선명히 꿀렁이도록 마른침을 삼키고 차분하게 말했다.

“아닙니다.”

“아닌데 그렇게 싸매고 떠받드나? 아니면 ‘아직’ 아닌 건가? 예비 색시 업고 야반도주라도 하는 거요?”

“……아닙니다.”

간신히 목소리를 짜낸 천오는 그대로 허리춤에 묶어두었던 물통을 꺼내 들었다. 스승의 턱을 살며시 눌러 입술을 벌리게 한 뒤 얼마 남지 않은 내용물을 조심조심 흘려 넣었다. 스승의 목과 흉통이 조금씩 들썩이며 물을 삼켰다. 안도한 천오는 입가에서 흘러넘친 물줄기를 제 손으로 닦고 남은 물기로 초윤의 마른 입술을 적셨다.

그리고 앞에 있는 남자가 던진 물건을 반사적으로 턱 받아들었다. 약간의 시원함이 느껴지는 양가죽 물통과 누린내가 조금 나는 천 주머니였다. 냄새로 보건대 육포가 들어있는 듯했다.

“이 중앙지대까지 오면서 뭔가 먹긴 했소?”

“……챙겨온 것을 조금.”

“낙타는커녕 보따리도 하나 없이 물통 하나만 달랑 갖고 있는데 잘도 챙겨온 게 있겠소이다. 어디서부터 온 거요?”

“…….”

이 질문은 후환이 생길 수 있으니 답하기 어려웠다. 천오가 입을 다물자, 남자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더니 알아서 납득한 듯 어깨를 으쓱였다.

“내가 본데없는 도적놈이긴 해도 모래폭풍을 업고 온 고수에게 겁도 없이 덤벼들진 않소. 그냥 내 얼굴이나 기억해 놓고 나중에 연이 닿으면 사막 한가운데 물 한 통만큼의 호의만 보여 주시오.”

그렇게 말한 남자는 얼굴을 가린 천을 쥐고 끌어 내렸다. 정리되지 않은 수염과 직사광선에 바짝 탄 피부, 그리고 뺨을 대각선으로 가로지른 깊은 흉터가 보였다. 눈을 깜빡이며 그 모습을 머리에 담은 천오는 별다른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에게 할애할 신경 따위 조금도 없었으나, 비상한 기억력은 멋대로 남자의 모습을 뇌 한구석에 담아두었다.

점차 어두워지는 하늘 아래서 천오는 잠시 고민했다. 지난 이틀간 사막을 건너오며 천오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자신은 일주일 정도는 영양분 섭취 없이 거뜬히 버틸 자신이 있었지만 상태가 좋지 못한 스승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다. 이에 급한 마음으로 선택한 방법은 다름 아닌 구명단이었다.

사저가 어린 나이에 하오문에 남았을 때, 스승이 오랫동안 신수의 발에 들려 보냈던 막대한 물량의 약재는 지난 8년간 사형제들의 든든한 여벌 목숨이 되어 주었다. 어지러운 정세에 수많은 세가와 단체들이 일어나고 스러지는 동안 약선의 세 제자는 끊임없이 위험에 처했고, 또 스스로를 위험에 기꺼이 몰아넣었다. 그런 와중에 사영이 꺼낸 자개함은 그들의 품속에서 언제나 부적이자 기치, 목표이자 기회가 되어주었다. 이젠 그 자개함도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지만 8년의 집요한 노력을 건 여정에 마지막 구명단을 가져오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천오는 소중히 간직해온 손가락 두 마디 크기의 구명단을 아낌없이 쪼개어 밤낮으로 식사 대신 스승의 입 안에 넣어드렸다. 선인의 경지에 올랐다는 이가 만들어낸 약은 씹어 삼킬 필요 없이 입에 넣는 순간부터 녹아 목구멍을 넘어갔다. 인세의 약과 독이 스승님의 선체(仙體)에 큰 효과를 미칠 순 없다지만 들어간 재료가 있으니 며칠쯤은 버틸 수 있을 터. 나름의 계산을 마친 행동이었다.

그리고 세로로 두 번, 가로로 한 번 쪼갠 구명단은 이제 절반이 남았다.

역시 없는 것보단 낫겠지. 언젠가 은혜를 베풀지언정 쉽게 얻어오진 말라며 사형을 다그치던 사저의 말을 들은 적이 있었으나, 지금은 소소한 것 하나도 아쉬운 상황이었다. 천오는 받은 물건을 요대에 잘 묶어 두었다.

일련의 과정을 지켜본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쭉 펴며 말했다.

“이제 밤이 찾아오는데 어떻게 할 생각이오? 우리 막사에 하루 머물렀다 가시겠소?”

“호의에 감사드립니다만, 괜찮습니다.”

짤막이 대답한 천오 역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늘 저편부터 밤하늘이 밀려오며 광막한 모래밭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조각 같은 별빛들이 벌써부터 광채를 흩뿌리고 있었다. 사막은 해 품은 낮엔 잔인한 열기로 사람을 말려 죽였으며, 태양을 잃은 밤에는 죽은 자들의 도시가 되었다.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던 모래밭은 유골을 갈아서 뿌린 무덤처럼 보였으며 혹한과 사기(死氣)가 골수에 치미는 시간이었다. 그렇기에 해가 떨어지고 난 뒤엔 절대로 사막을 헤매지 않는 것이 사막의 유일한 규율이자 값싼 목숨을 온존하는 방법이었다.

그러나 천오는 마침 잘 되었다는 듯 태연한 얼굴로 초윤의 몸을 등 뒤로 돌려 업었다. 내리쬐는 햇빛이 없으니 이제 편한 자세로 다시 달릴 수 있었다. 스승의 몸이 식지 않도록 자신을 연소시켜 온기를 공유하면서, 아무도 움직이지 않을 시간에 조금이라도 더 거리를 좁혀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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