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화
미친 짓이겠지. 내외부로 휘몰아치는 힘을 다스리는 동시에 관조하던 초윤이 자조적인 혼잣말을 삼켰다. 실제로 가능한지도 알 수 없었고, 가능하다 해도 문제가 컸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꼭두새벽부터 어쩔 수 없단 말만 몇 번째 되뇌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잡념과 한탄과 회고와 의심 모두 사치에 불과했다. 손을 들어 애 얼굴을 닦아 줄 경황조차 없는데 자신에게 신경을 쓸 겨를이 있을까. 여유가 있다면 닥닥 끌어모아 천오에게 쏟아부어도 모자랐다. 정말 집중해야 하는 일을 앞에 두고, 초윤이 경고인지 타이름인지 모를 말을 차분히 꺼냈다.
“놓으래도.”
“……싫습니다.”
“어리광을 부릴 정신이 있다면 똑똑히 보고 배우거라. 언젠가 조화지경에 오를 때 네 만신창이가 된 손을 기워 줄 유일한 방도다.”
“싫습니다. 복수도 필요 없다 말씀드렸는데 무공이나 손이 대수겠습니까. 화경의 심득도 이해되지 않고, 제가 홀로 해낼 수 있다 확신하시는 까닭도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제 손이 그리 마음에 걸리신다면 간다고만 말씀하지 마시고 직접…… 직접 보살펴 주십시오.”
천오가 머리를 푹 숙인 채 훌쩍이며 고개를 저었다. 일곱 살일 때도, 열다섯 살일 때도 제대로 생떼 한번 써 본 적 없는 아이가 이토록 막무가내로 구는 건 처음이었다. 상황만 아니었다면 뒤늦게라도 제 나이다운 모습을 보인다며 기뻐했을 텐데, 아쉽다. 초윤은 싱거운 웃음을 삼키고 한결 연하게 말했다.
“천오야.”
“제발 가지 마세요. 천지에 스승님만큼 강한 이가 없는데 왜…… 왜 저자의 겁박을 따르려 하십니까. 어리숙한 저한테도 목이 떨어진 작자입니다. 진 싸움에 괴상한 비술이나 쓰던 인간입니다. 스승님께서 작정하고 손을 쓰신다면 속절없이 당할 자에게 왜 투항하려 하십니까. 저자의 말을 거부할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인연을 맺으셨습니까? 아, 아니면 제자가 약해서입니까? 사저가, 사형이, 제가 당해서 낙심하셨습니까?”
“…….”
“제자가 모자라서 그렇습니다. 아직 어리고 약해서 그렇습니다. 스승님이 계시지 않으면 무엇 하나 제대로 해내지 못할 겁니다. 스승님께서 저희를 지키기 위해 떠나신다면, 스승님이 부재하신 동안 다른 흉수에게 당하고 말 겁니다.”
“서문천오, 아무리 간절해도 그런 말은 입에 담지 말거라.”
울음이 섞여 바들바들 떨리는 애원을 단칼에 잘랐다. 냉담한 일갈에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들고 눈치를 살피는 천오가 안쓰러웠지만, 초윤은 쿵 떨어진 제 심장을 다독이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너는 그게 나한테 할 소리니. 서운한 타박이 새어 나가려 했지만 어떻게든 참아 냈다. 어디까지나 책임은 자신에게 있었으니 아이의 말실수 하나에 날을 세울 순 없었다.
“대답해 줄 테니 일단은 놓거라. 자칫 잘못하면 너까지 다칠 수가 있어 집중하기가 어렵구나.”
세 번째로 나무라자 잠시 머뭇거리던 천오가 느릿느릿 손을 놓고 제 무릎 위에 주먹을 올렸다. 꽉 쥔 손가락 틈새로 피가 배어 나왔지만 아픔도 못 느끼는 듯했다.
혼란스러운지 보기 드문 변덕과 고집을 부렸지만, 서문천오는 역시 설명하면 듣고 부탁하면 따라 주는 아이였다.
착하고 영리하고 기특한 내 새끼……. 초윤은 짤막하게 고맙다고 말한 뒤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대화를 나누며 잠시 소강상태에 들었던 내력이 인도에 따라 다시금 격류를 일으켰다. 초윤은 사납게 날뛰는 기세를 모으고 압착하여 얇고 가느다란 모양이 되도록 몰두했다. 이윽고 수많은 가닥의 기나긴 실들이 사영의 기맥으로도 모자라 뼈와 근육, 혈관과 신경을 따라 뻗어 나갔다. 초윤의 머릿속으로 사영을 이루고 있는 신체의 모든 정보가 두서없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사영의 혀는 몸통 부분, 즉 설체(舌體)의 가운데서 썩둑 잘려 있었다. 얼마 되지 않은 상처였기에 더욱 파악하기 쉬웠다. 단전을 넘어 손끝까지 꽉꽉 들어차고도 한참 남은 내공이 사영의 몸에 생긴 유일한 결손을 찾아 모여들었다.
단순히 단면을 막고 아물게 만드는 일은 당장에라도 할 수 있었지만, 그것으로는 한참 부족했다.
실오라기 같은 공력이 사영의 전신을 점령하고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세포를 괴사시키고, 복제하고, 새로이 토해 내고, 또 이어 붙였다. 그러고도 넘치는 힘은 설체의 구조를 흉내 내어 절단면의 끄트머리부터 한 가닥씩 쌓아 나갔다. 열 바퀴쯤 해 보니 감이 잡혔다. 이건 각오했던 것보다 훨씬 미친 짓이었다.
사영의 피부가 바싹 마르며 갈라졌다. 그 틈새로 흉터 하나 없이 새로운 살갗이 슬며시 비쳤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가능한 거지, 싶은 현대인의 상식은 버려두기로 했다. 이쯤 됐으면 이제 받아들여야만 했다. 아니, 십이 년이면 이미 한참 늦었다. 이곳은 정하윤이 나고 자란 세상과 전혀 다른 법칙이 적용되고 있었고, 초윤은 전자현미경으로나 겨우 볼 법한 미시적 세계를 다룰 수 있었다. 사람의 한계를 깨고 불가능한 일을 구현할 수 있었다. 근육과 힘줄과 신경을 복제하고 이어 붙여 신체 기관처럼 기능하게 할 수 있었다.
아이들을 낫게 할 유일한 방법인 이상 할 수 있다고 믿어야만 했다.
뼈 부러지듯 불쾌한 소리와 함께 사영의 관절이 비틀렸다. 아이가 퍼덕거리며 한차례 몸을 뒤틀었지만 평온한 표정은 흐트러지지 않았다. 어렸을 적 배를 곯아 덜 자랐던 골격이 늘어났고, 근래 심력을 소모하며 부실해졌던 근력은 더욱 견고하게 되돌아왔다. 기해혈과 관원혈은 기존의 힘을 품고도 한참의 여력이 남았으며 신체 말단까지 이어진 기맥은 마를 일 없는 강줄기처럼 드넓게 트였다.
마침내 초윤이 아이의 입을 덮고 있던 손을 거두었을 때, 사영은 허물을 벗은 새끼 뱀처럼 빛바랜 껍질을 떨어트리고 있었다. 새롭게 드러난 얼굴에 눈물 자국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
그 모습을 내려다보며 잠시 입술을 달싹이던 초윤은 조심스레 손끝으로 사영의 아랫입술을 눌렀다. 슬쩍 드러난 구강에 제 것처럼 자리 잡은 혓등이 보였다. 아니, 사영의 것이 맞지. 저도 모르게 안도의 탄식이 터져 나왔다. 벅찬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잠시 사영의 옷자락을 움켜쥐었다. 다행이라는 말은 힘에 겨워 미처 소리 내지 못했다.
축 늘어진 사영은 깊게 잠들어 쉬이 깨어나지 않을 듯했다. 기력이 모자라 씨근거리던 초윤은 곧 사영의 머리를 조심스레 옮겨 바닥에 뉘었다. 미련 많은 손이 아이의 뺨에 머물렀으나 금방 떠났다. 혀도 만만찮게 까다로웠지만, 눈에 비할 바는 못 됐다. 초윤은 본능적으로 지금의 작업이 자신의 살을 깎아 먹는 행위라는 사실을 직감했다.
하지만 낫게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였다. 초윤은 손을 옮겨 사현의 눈과 가슴을 감싸고 한결 능숙해진 미세 진맥을 개시했다.
타고나길 건장한 아이라서 그런지, 사현의 회복 자체는 사영보다 훨씬 쉬웠다. 해건금침을 제거하며 보았을 때 자잘한 상처나 혈을 관통당한 부상은 이미 새살이 올랐을 정도였다.
그러나 재건해야 하는 기관은 사영과 다르게 뿌리까지 뽑혀 있었다. 사영은 남아 있는 혀를 기반으로 쌓아 올라갔지만, 사현은 안구 뒤에 달려 있었을 신경 다발조차 소실되어 본뜰 만한 예시가 따로 없었다. 거기에 감각기 중에서도 오묘하고 섬세하기 짝이 없는 기관이었으니 ‘초윤’의 기억에만 맡길 수도 없었다.
고민을 거듭하던 초윤은 사현의 손끝까지 뻗쳐 두었던 내공을 일부 거두어 제 몸으로 받아 들였다. 팔과 어깨를 타고 머리로 올라가 자신의 두 눈에 집중시켰다. 제 안구가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방식으로 기능하고 어떤 구조로 이루어졌는지 꼼꼼히 살폈다. 그리고 사영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속속들이 주입된 자료를 따라 사현의 눈꺼풀 밑에 힘을 한 가닥씩 포개어 올렸다.
제자의 몸에 온 신경을 쏟다 보니 제 육신에 할애할 관심이 모자랐다. 사현의 안구에 주의를 기울이는 만큼 자신의 눈 주위를 맴도는 기운에 소홀해졌다. 얼마 되지 않아 안면의 모세혈관이 날뛰는 내력을 이기지 못하여 톡톡 끊어지고, 초윤의 감은 눈에선 핏물이 흘렀다. 묽은 핏방울이 덜 마른 뺨을 미끄러져 내려와 턱에 매달렸으나 그마저도 느끼지 못할 만큼 무아지경이었다. 갈무리하지 못한 기운이 몸을 휘감는 안개의 형태로 피어올라 광채를 머금는 것도, 머리 위에서 여러 개의 고리 형상으로 얽혀 오기조원(五氣朝元)의 전신(前身)을 이루는 것도 알지 못했다. 우습게도 여기까지 몰려서야 초윤은 제 몸이 이룩한 경지와 온전한 합일을 실현하게 되었다.
인적 드문 숲에 비가 내린 것처럼 진한 식물 냄새가 자욱이 깔렸다. 소리도 내지 못한 채 조용히 울던 서문천오는 제 앞에 펼쳐진 비경(祕境)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바닥없는 구덩이처럼 탕연한 눈동자가 스승을 더듬질했다. 무공을 익히고 강호에 몸담은 이라면 감탄할 수밖에 없는 이상(理想), 마땅히 가슴에 품고 일평생 묘리를 파헤쳐야 하는 장관이었지만 숭배에 앞서 괴이쩍은 충동이 자꾸만 뇌리를 시꺼멓게 좀먹었다. 목이 타고 열기가 치밀었다. 손이 근질거리고 입술이 말랐다.
서문천오는 당장 초윤을 건드리고 싶었다.
닿은 곳부터 기혈이 꼬여 기어코 토혈하는 자태를 보고 싶었다.
스승은 물론이고 나 역시도 성치 못할 테지만, 그저 이대로 모든 걸 망치고 싶었다. 오히려 함께 뒤엉켜 죽는 게 떠나시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 듯했다. 평소라면 정신없이 눈에 담았을 모습조차 가시기 전 남에게 심력을 베푸시는 도중이라 생각하니 거슬리기 짝이 없었다.
차라리 내 혀가 잘리고 내 눈이 뽑혔다면 지금보단 나았을까. 그래도 나는 홀로 해내라며 냉갈령한 말씀만 돌려주셨을까. 때를 잊은 시기심이 가시처럼 심장을 뚫고 툭툭 돋아 가슴을 찔렀다. 둘만의 세계가 너무나도 견고하고 당연했던 탓에 균열을 묵인하기 어려웠다.
천오는 넋을 잃고 초윤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등 뒤로 성큼 다가온 심마가 귓가에 요사스럽게 속삭였다.
한 번만…….
한 번만 저 뺨을 감싸면 된다. 한 번만 저 손목을 쥐어 보고, 한 번만 저 손등에 겹쳐 보면 된다.
그리하면 그의 이목이 타인을 향하는 일도, 그가 자신을 영영 떠나려 드는 일도 더 이상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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