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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 교주를 애지중지 키웠다-185화 (185/257)

185화

“송구스럽지만 맹주님의 행보에는 이전부터 의문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섣불리 불경한 추측을 하고 싶지 않아 그저 지켜보았는데, 결국은 일이 이렇게 되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자, 잠깐…… 칠성검! 전부 오해에 불과하오. 이거 다 저 간악한 장사치의 함정……!”

“다분히 일방적인 위험이 오가는 도중에도 그럴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잠자코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맹주님께서 끝내 살인멸구를 시도하셨으니…….”

모용단은 남궁영이 악을 쓰며 바동거려도 담담하게 할 말만 하며 지그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느새 잡담을 멈추고 흐뭇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희, 정체를 알 수 없는 호위무사 여와, 그리고 방금 전까지만 해도 마교도였던 계월까지 온통 골치 아픈 인간들뿐이었다.

올가미에 얽힌 신세는 이쪽도 마찬가지인가. 나는 도대체 어디서부터 말려든 걸까. 밀려드는 해일처럼 대책 없는 이 인간들과 앞으로도 지독하게 휘말릴 것 같았다. 막막한 한숨을 폭 쉰 모용단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작게 고개를 흔들고 말을 이어 갔다.

“이는 무엇보다도 명백한 자백이며, 증거입니다. 저는 모용세가의 임시 대표 자격으로 백협맹에 조사를 요청할 예정입니다. 청렴결백하고 공명정대한 수사를 위해 적극적으로 관여할 것이며, 그 과정에 남궁세가와 결탁하였다고 드러나는 세력은 배제할 생각입니다.”

“앗, 안 돼요. 제 예상이 들어맞는다면 이자를 먼저 하오문에 넘겨주시기로 하셨잖아요.”

“……다만 이곳에서 벌어진 사건이 일단락될 때까진 맹주님의 신변을 하오문에 잠시 위탁하겠습니다. 현재 가장 급박한 천보도 임사현의 실종을 우선적으로 해결할 필요도 있으니…….”

“정말 감사해요, 소가주님!”

불쑥 끼어들은 희가 양손을 마주치며 말갛게 기뻐했다. 손에 걸린 사검이 움직이며 남궁영을 거열형에 처하듯 사방으로 쫙 늘렸다. 이에 반사적으로 비명을 지르자, 깜짝 놀란 희가 서둘러 실을 적절히 풀었다. 현 상황에 비해 웃기고 실없는 촌극이었다.

“그러면…… 어디 보자. 맹주님께 여쭙고 싶은 게 많아요. 아까는 경황이 없어 일단 넘어갔는데, 암존 초월량에 대해 말씀하셨지요? 광명교의 목적이 ‘새로운 암존의 탄생’이 아니라 ‘봉인당한 암존의 부활’이었던 건가요? 그래서 지금 초월량이 현세에 다시 나타났고?”

“말할…… 것 같더냐! 내 차라리…….”

“설마 자진하진 않으시겠지요. 맹주님께 그만한 충성심이 있을 리 없잖아요.”

당연하다는 듯 단조롭게 튀어나온 말이 남궁영의 말문을 틀어막았다. 희는 조소라고 하기엔 기품 있고, 고아하다 하기엔 컴컴한 미소를 입술 위에 올린 채 눈을 내리깔았다. 오른손에 감아 두었던 사검을 왼손으로 옮긴 뒤 책상 위를 굴러다니던 붓을 들어 올리는 손길이 차분하고 고상했다.

“여기서 입을 다물어 봤자 어떻게 될지 아시잖아요. 제가 지난 세월 동안 파악해 온 마교는 사람 목숨을 철저히 대체 가능한 자원으로밖에 보지 않는 집단이에요. 맹주님께서 양심과 정의를 져 버린 채 얼마나 헌신하셨다 한들 제게 발각되신 죄는 매우 크실 거고요.”

“…….”

“보답 없는 충성이 얼마나 허무하고 부질없나요. 운이 좋으면 멀끔히 제거되실 테고, 좋지 않으면 고통으로 잘못을 갚으시겠지요. 아니면 명토에서 명줄이 끊어질 때까지 돌벽만 보고 사실 건가요? 평생 도망치다 연고도 없는 타지에서 객사하실 건가요?”

경험과 지식에서 비롯된 두려움이 주름진 심장을 스멀스멀 움켜쥐었다. 남궁영은 마교를, 그리고 그 뒤에 도사린 광명교를 잘 알고 있었다. 사람과 단체의 빈틈을 파고들어 교묘하게 물들이는 수법이나, 세상에 뻗친 꼬리를 사정없이 썰어 내는 치밀한 방침도 오랫동안 보아 왔다.

그래……. 그들에게 남궁영의 지위는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남궁영이 정파 무림을 총괄하는 백협맹의 주인이든, 온 중원에 위세를 떨치는 화경의 고수든 그들은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을 게 분명했다. 그저 목판을 대패질하듯 튀어나온 부분을 깎아 내고, 도중에 못 쓰게 된 날은 버릴 뿐이었다.

아무리 잘 들던 칼날이어도 수습 불가능한 실수를 저지르면 가차 없이 반동강 내어 내던지는 인간들이었다. 심지어 남궁영은 그들의 뒤처리를 도운 적도 수없이 많았으니, 이 자리에 있는 누구보다도 본인에게 닥친 위험을 선명히 예감할 수 있었다.

뒤늦게 실감한 공포로 남궁영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다. 희는 시선을 들어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중원이 아무리 넓다 한들 만국에 비할까요. 나는 수많은 무역선을 바다 너머로 보내왔고, 편협한 집단에 휘어 잡힌 이 폐쇄적인 땅보다 더 광활한 세계를 안답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셨나요?”

“…….”

“지금 당신을 배에 태워 먼 이국으로 보내 줄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는 뜻이에요.”

“……잠깐, 문주님. 그럴 수는 없습니다. 백협맹주 남궁영은 합당한 논의를 거쳐 저지른 죄에 걸맞은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목숨의 보전과 안전한 도피를 담보로 한 제안이 흘러나오자, 곁에서 가만히 듣던 모용단이 황급히 희의 말을 가로막았다. 하지만 희는 모용단을 돌아보지도 않은 채 남궁영을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소가주님, 당신은 이자보다 현 상황을 잘 파악하고 계시나요?”

“그건…….”

“광명교가 무엇을 위한 단체인지, 어디에 위치했는지, 정파의 사람들과는 어떻게 접선하는지 아시나요? 자그마치 백육십 년 전에 죽었다고 알려진 광천마제 초월량의 이름이 이곳에서 왜 갑자기 등장했는지 아시나요? 천보도 소협이 어디에 감금되었는지는, 이자가 어째서 약선 대협을 놓고 실패작을 운운했는지는 아시나요?”

“…….”

“물론, 십여 년 만에 돌아온 내 유능한 간자를 채근하는 법도 있겠지요. 하지만 아월은 어디까지나 마교의 수족으로 머물렀을 뿐 수뇌부는 못 되어서…….”

또 그럴 만한 깜냥이 안 되어서. 가볍게 덧붙인 희가 어깨를 으쓱였다. 곁에 당사자를 두고 말하기엔 타박이나 다름없는 발언이었지만, 여와도 계월도 희의 짓궂은 구박에는 익숙한 듯 태평하기만 했다.

“저 사람 하나를 잡아 족쳐 모조리 토설하게 만드는 편이 훨씬 효율적이에요. 단전을 폐했으니 알량한 무공으로 더러운 손을 뻗치는 짓거리도 더는 못하겠지요. 내게 감히 윽박지른 죄도 그 정도로 용서하겠어요.”

“하지만 이는 옳지 않습니다. 만일 정말 이자가 지난 세월 동안 수많은 이들에게 누명을 씌워 왔다면, 이제껏 고통받아 온 피해자들에겐 무어라 하실 작정이십니까. 남궁영이 저지른 죄는 낱낱이 밝혀져야 하며 배상 또한 본인이 직접 책임져야 합니다.”

“그 끝은 결국 전쟁일 텐데도?”

날카롭지도, 신경질적이지도 않았다. 평이하고 일상적인 목소리에 도리어 등줄기가 섬찟했다. 너무나도 두려운 무게를 지닌 말과는 별개로, 모용단의 머리는 기민하게 희의 뜻을 해석했다.

“…….”

그리고 어렵지 않게 최악의 전개를 연상해 냈다. 공교롭게도, 벌어질 가능성이 가장 높은 미래였다.

“백협맹의 전각에 발도 들여 본 적 없는 저조차 알고 있으니 소가주님께선 더욱 절절히 체감하겠지요. 정파는 이미 양분된 지 오래예요. 정확히는 ‘남궁세가가 포섭한 세력’과 ‘그 이외’로 나뉘지요. 그래서 신물의 존재를 철저히 감추신 거잖아요. 제가 조금 도와드리긴 했는데.”

“……언제부터 알고 계셨습니까?”

“한참 전이요. 음, 소가주님께서 드물게도 소집을 요청하신 뒤, 사람이 다 모이지 않았다는 이유로 일찍이 자리를 파하셨을 때부터요. 그리 적극적이고 주동적이신 분이 아닌데 어째서 그러셨을까 궁금했어요.”

요녕성에 하오문 지부가 없을 때, 모용단이 중원에서 벌인 행동만으로도 이변을 감지했단 소리였다. 내 옆에 먹잇감처럼 잡힌 이자도 희와 단둘이 마주 보고 이야기를 나눌 때 이렇게 간파당한 기분을 느꼈을까. 그걸 견디지 못해 무심코 살수(殺手)를 펼치고 말았을까. 모용단이 남궁영을 살짝 힐끔거리자, 희는 피식 웃으며 계속해 말했다.

“우두머리가 이리 비참하게 붙잡힌 사실이 공공연히 알려진다면 다들 어떻게 할까요. 일단 목청이 터지도록 무고를 주장하며 당신과 나를 매장하려 들 테고, 그동안 뒤로는 비리의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겠지요. 하지만 당신이 불러 모았던 이들도 바보는 아니니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거예요.”

괄괄하고 호전적이며 패도를 중시하는 하북팽가, 청빈한 수양과 해탈을 궁극적인 목표로 둔 소림사, 비구니들이 서로를 지키기 위해 결합한 아미파, 늘 가장 밑바닥에 자리하며 하늘을 욕심내지 않는 개방…….

모용단은 그들의 됨됨이와 협의를 믿었다. 그들만큼은 확실히 중도를 걷고 있으리라 신뢰했기에 서슴없이 불렀다.

그러나 이는 반대로, 모용세가를 포함한 구파일방 오대세가의 최소 삼분의 일이 불의를 목격하면 불같이 역정을 내며 일어날 게 분명하다는 뜻이었다.

“조사에 의하면 무당파는 속세에 환멸을 느껴 몸을 사릴 뿐이고, 제갈세가는 내부의 적을 골라내는 중이라고 해요. 사천당문은 약선 대협께 자극을 받아 무럭무럭 힘을 키우는 중이고 화산파는 장로 한 분이 완전한 잠식을 열심히 막고 계시다 하더군요. 아, 곤륜파는 늘 그랬던 것처럼 가장 위험한 변방에서 훌륭히 소임을 다하고 있고요.”

“그럼 남궁세가를 제외한 다른 네 개의 문파는…….”

“완전히 먹혔지요. 여기서 가장 큰일은, 남궁세가의 덩치가 지나치게 크다는 거예요. 이깟 늙은이 하나 죽인다고 해서 끝날 문제가 아니에요. 머리통을 잘라 내고 몸뚱이를 조각내도 제각기 나돌아 다닐 괴물이 되었으니까요.”

“…….”

“이 모든 이들이 거대한 충격파에 두들겨 맞고 한꺼번에 날뛴다면 어떻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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