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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 교주를 애지중지 키웠다 (158)화 (158/257)

158화

동생에게서 옮았는지 가끔 보이는 교활한 면모를 제외하면 비교적 성숙한 모용단이 예의 바르게 마주 사과를 했다. 하지만 방금 혈육의 목이 꺾여 죽을 뻔했고, 자신은 이를 막을 수도 없었던 상황에 속이 들끓지 않을 리 없었다. 초윤은 말로 다 하지 못할 참담한 기분을 느끼며 아랫입술을 씹고 시선을 내렸다. 헤아릴 수조차 없는 표정으로 눈을 돌린 채 몸을 경직시킨 모용서가 보였다.

초윤은 자신이 키운 세 아이들을 정말, 정말 많이 아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오랫동안 정성을 쏟은 천오에게 굉장한 애착이 있었지만.

그래도 이런 식으로 천오를 지키고 싶진 않았다.

사건의 발단이 누구든 먼저 과도한 대처를 한 사람은 천오고, 천오에게 올바름의 기준을 심어 주지 못한 것은 초윤이었다. 되짚어 올라가자면 이는 명명백백 자신의 잘못인데 그저 ‘약선 초윤’이 무림에서 알아주는 실력자라는 이유로 피해자가 공손히 물러나야만 하는 현재의 구도가 싫었다.

천오를 포기할 일은 없을 테지만 대화로 해결이 가능할 것이란 믿음이 슬슬 흔들렸다. 내가 정말 이 아이를 감당할 수 있을까, 싶다가도 불쑥불쑥 지금은 이런 걸 고민할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방해를 했다.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당장 천오를 다그쳐서 잘못을 빌게 해도 진실성이라곤 하나도 없으리란 것뿐이었다.

“말뿐인 사과를 들어 봤자 나아질 건 없겠지.”

초윤은 그제야 곁에 선 천오를 돌아보며 손을 놓았다. 놀란 듯 뻣뻣이 굳어 버린 모습에 가슴이 아픈 것과는 별개로 차마 눈을 마주칠 수가 없었다. 심해의 저변처럼 새까맣고 텅 빈 눈동자에 대고 또 화풀이를 하고 말 것 같았다. 왜 너는 내가 쏟아부어 준 만큼 담지 못했냐며 애꿎은 아이를 더욱 채근할 것만 같았다.

하나씩 해결하자. 내가 나 자신을 다스릴 힘이 없을 땐 잠시 떨어져 있는 것도 방법이다. 부담감과 죄책감, 책임감에 짓눌린 머리가 도리어 찬물을 끼얹은 듯 냉철해졌다. 초윤은 손등으로 가볍게 천오의 팔을 건드리고 사영의 기운이 느껴진 곳을 가리켰다. 믿음직스러운 사영에게 맡겨 둔다면 잠깐 정도는 안심할 수 있을 듯했다.

“담화가 끝나면 내 쪽에서 찾아갈 테니 사영에게 가 있거라.”

그리고 흘러나온 목소리는 초윤 자신이 듣기에도 성에가 끼어 있었다.

넌지시 갈 곳을 제시한 초윤은 천오를 놓아둔 채 서둘러 등을 돌렸다. 초윤이 해무당의 대문을 넘어 들어갈 때까지 그 자리에 박힌 듯 얼어 있던 천오가 느릿느릿 발걸음을 옮겼다. 천오의 기척이 터벅터벅 멀어질 때마다 심장에 흙 발자국이 남는 기분이었다. 초윤은 도대체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가늠할 수 없었다.

전복죽 냄새가 가시지 않은 방 안엔 들어설 생각도 못 한 채 내원에 멈춰 서자, 모용단과 모용서도 초윤의 뒤에서 천천히 보폭을 줄였다. 초윤은 착잡한 마음에 쉬이 입을 열지 못하고 건조한 손으로 눈가를 덮었다. 그의 뒷모습을 응시하던 모용서가 고개를 비딱하게 기울이며 툭 말했다.

“손댄 만큼의 책임을 지려 한다 하셨지요. 이렇게 내내 주천오의 곁에서 그의 살생을 막으실 요량이십니까?”

“…….”

“주천오는 올해로 열아홉 살이 되었다 알고 있습니다. 과거의 기억도 없이 고작해야 십이 년간 무공을 배우고, 실전 경험도 딱히 없는 자에게 저는 방금 죽을 뻔했습니다.”

“서제.”

“약선 대협께서야말로 주천오가 이전 시간대에서 어떤 괴물이 되었는지 잘 알고 계실 겁니다. 당장은 대협께서 저자를 다루어 막으실 수 있을 테지만, 언제까지 이러한 제재가 가능하리라 보십니까? 이래도 주천오가 그저 보살펴야만 하는 제자 같으십니까?”

“서제, 그만하십시오.”

그럼 너처럼 애를 죽이겠다고 달려들라는 거야? 초윤은 살짝 울컥했다. 얼굴을 쓸던 손을 내리고 소매 안쪽으로 살짝 주먹을 쥐었다. 초윤에게 냅다 잘못을 고하던 며칠 전과는 다르게, 형의 만류도 마다한 채 빈정거리는 모용서는 그야말로 작중에서 묘사하던 미친개 같았다. 고운 말로 정중하게 다시금 사과를 건네려 하자마자 이런 반응이 돌아오니 당연히도 반발심이 솟아올랐다.

하지만 초윤은 짤막한 한숨 한 번으로 충동을 삭혔다. 평정을 되찾고 돌아서자 막 나가는 동생의 어깨를 꽉 쥔 모용단이 보였다.

“다시 말하지. 미안하다. 저 아이에게 사람과 어울려 살아가는 법을 가르치고 있지만 한참 모자랐나 보구나. 여차하면 저 손에 죽는 법이 있더라도 다루어 막을 생각이다.”

“……아닙니다. 감정적으로 굴어 송구합니다.”

“사죄를 받아 주십시오, 대협. 아우가 경황이 없는 탓에,”

“내 잘못을 따지면 되바라진 말 한마디에 사과받을 계제가 못 되니 접어 두거라.”

‘거봐, 내가 말한 대로지. 쟨 글러 먹었다니까.’라는 비아냥에 대뜸 죽음을 각오하더라도 탈선을 막겠다는 답을 돌려 주니 두 형제가 소리 없는 경악을 했다. 초윤은 손을 내젓고 담담하게 덧붙였다.

“조금 더 덧붙이자면, 서문천오는 주천오와 다르다. 내 제자가 끝내 그 모습으로 변질되리라 벌써부터 단정 지을 필요는 없다.”

“……사람의 본질은 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밑바탕 위로 새로운 모양의 탑을 쌓을 순 있지.”

초윤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약간의 화를 섞어 무작정 장담하듯 꺼낸 말이었지만 언어로 소리 내어 정돈할수록 제 마음도 고르게 정리되는 기분이었다. 모용 형제에게 당부하는 건지,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건지 분간하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내가 키운 서문천오는…… 비록 타인의 감정에 쉬이 공감하지 못하고, 다른 이에게 쉬이 정을 주지도 못하며 살아 움직이는 것들의 소중함을 아직까지 깨우치지 못했지만.”

“…….”

“최소한 내가 그만하라 이르고 손을 잡아 내리면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따르고 보는 아이다. 그런 뒤 내게 연유를 묻고, 내 말을 해득하기 위해 오래도록 곱씹는 아이다.”

초윤은 천오가 자신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 하나만큼은 확신할 수 있었다. 애정을 배제한 채 객관적인 판단을 내리려고 해도 천오의 눈을 마주치기만 하면 막연히 알 수 있었다. 이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금수의 각인처럼 느껴지기도 했고, 어쩌면 그보다 더욱 깊은 낙인일 것 같기도 했다.

그만큼 처참한 현장에서 꺼내 왔으니 나를 전적으로 의지할 만도 해. 매번 본능적인 불안감이 느껴질 때마다 애써 회피하긴 했지만 어느 쪽이든 천오가 초윤에게 의미를 두고 있다는 사실은 똑같았다.

이런 걸 보면 사람에게 아예 애착을 갖지 못하거나 배려를 할 수 없는 애는 아닌데. 초윤은 작게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머리 검은 짐승을 사람 만드는 일이 쉬운 줄 아느냐. 삼십 년, 오십 년, 팔십 년을 살아 죽을 때가 다 되어서도 인간 구실을 못하는 것들이 태반이다. 나 역시도 오랜 세월을 살아왔지만 온전한 이가 되었느냐 묻는다면 부끄러운 대답밖에 할 수 없다. 고작해야 십 년 남짓한 보살핌으로 책임을 다했다 일컫기엔 이르지.”

요컨대 ‘애 교육을 도대체 어떻게 한 거야!’라고 따지는 사람에게 내가 계속 노력할 테니 조금만 봐 달라고 비는 말이었다. 이는 ‘초윤’의 입을 통해 굉장히 철학적인 것처럼 포장되어 나갔고, 이어지는 떨떠름한 침묵과 겸연쩍음은 영 버티기 어려웠다.

초윤은 결국 헛기침도 없이 빠르게 화제를 돌렸다. 자신의 자아 성찰과 각오보다 중요한 일이 이미 도처에 널려 있었다.

“약왕산의 기물을 이야기했었지. 제갈세가의 진법가들이 만들어 낸 은폐기물이라면 알고 있다. 하나밖에 내려오지 않아 기밀에 부쳐 둔 물건을 잘도 알고 있구나.”

“한참 기관진식을 익히며 빈번한 교류를 할 때 가주님의 아우 제갈영환에게서 들은 바가 있습니다. 물론, 사적인 자리에서 잔뜩 취한 채 멋대로 이야기하고 다니는 것을 주워 담은 것뿐이지만…….”

단정한 몸가짐을 중시하는 모용단이 슬며시 눈살을 찌푸렸다. 초윤은 <귀환영웅>에 그런 애가 있었나 싶어 기억을 되감다 포기했다. 가주의 아우라면 설린의 작은아버지인데, 히로인의 삼촌이라니 남성향 하렘 무협지에서 등장할 리 없는 역할이었다.

“광동성은 출입이 비교적 자유롭고 북적이는 도시이긴 하나 그만큼 따라붙는 눈이 많습니다. 수면 위와 아래를 모두 침투한 하오문의 감시를 완전히 뿌리친 채 성도 밖으로 나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며, 하물며 약선 대협께서 이렇게나 공들여 펼치신 기감망(氣感網)을 피해 흔적 하나 남기지 않고 사라지는 일은 전설 속의 은영암제가 와도 어려울 것입니다.”

“그리하여 나온 결론이 기물이더냐?”

“저는 기물과 신물의 신묘함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자신합니다. 약선 대협의 손아귀에서 없는 체를 하려면 최소한 약왕산에 엄중히 모셔져 있는 물건이 필요할 것입니다.”

“…….”

뇌 내에 잠겨 있던 기억 하나를 건져 내자 연관된 경험들이 사슬처럼 딸려 올라왔다. 무심서가 자리한 두망산을 몰래 누볐던 무리, 연파강 아래 죽어 있던 맹독의 짐조, 그로 인해 위험에 빠질 뻔했던 내 제자와 산 아래 사람들, 돌아와서 찾아냈던 사람의 흔적.

-어쩌면 약선 대협의 눈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이 익힌 무공의 특성이나 기물 때문일지도 모르옵니다. 종류에 상관없이 독을 중화시키는 정화석도 있는데, 기척을 숨겨 주는 기물이 없으리란 법은 없지 않사옵니까.

그때 그 아이는 은폐기물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달라졌을까.

의혹과 추정으로 이루어진 가설에 불과했지만 당장 쥔 실마리는 이뿐이었다. 모든 일이 짜 맞춘 듯 돌아가는 작태가 이상하다는 걸 알면서도 제 발로 더 깊숙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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