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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 교주를 애지중지 키웠다 (157)화 (157/257)

157화

‘천오가 이러는 게 하루 이틀 일이야? 애가 내 상황을 이해해 주길 멋대로 기대하다가 실망하는 것만큼 유해한 게 없다고! 게다가 천오는 남들하고 생각하는 게 조금 다르니깐 처음부터 조심하자고 각오했잖아!’

초윤은 한숨을 삼키며 마른세수만 일삼던 손을 허벅지 위로 내려 두었다. 고소한 음식 냄새가 온 방에 가득해 더욱 돌아 버릴 것 같았다. 이른 아침부터 나 주겠다고 찬물에 손 담가 가며 죽 끓여 온 애한테 무슨 말을 한 건지, 자기 실수를 알자마자 다신 안 그러겠다 하는 말에 무작정 나가라고 할 것까진 있었는지. 아직 스무 살도 되지 않은 천오 앞에서 울컥하는 마음에 줄줄이 죄책감을 쏟아 낸 것조차 너무나 미안했다.

하지만 그러다가도 불현듯 차오르는 미약한 원망을 참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그래도 그렇지 시신이라니, 그러면 정말 사현이한테 아무런 정도 없는 것 같잖아. 어렸을 땐 셋이 얼마나 잘 놀았는데. 진짜 형이나 마찬가지인데…….’

인간인 이상 어쩔 수 없는 속상함과 배신감이 느껴졌다. 자신이 그동안 이 아이를 사회적 동물로 키우기 위해 얼마나 많은 감정 교육을 시켰는지, 또 개선되는 모습을 보일 때마다 얼마나 기뻐했는지 생각하면 자꾸만 허탈해졌다. 애 키우는 보호자들이 대개 그렇듯 이렇게 어긋나는 것조차 자신의 잘못으로 느껴졌다. 뭘 잘못했는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모조리 제 탓인 것 같았다.

타고난 성향을 교육으로 바꿀 순 없는 건가. 혹은 내가 해 온 게 전부 잘못된 건가. 초등 교사라지만 아직 부임조차 못해 본 데다 자식도 없는 사람이 오로지 본인의 신념과 개인적인 사상만을 이정표 삼아 아이를 키우는 건 역시 자만에 가까운 짓이었나.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다면 좀 더 잘했을까. 그러면 천오도 좀 더 본인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성장하고, 사현이도 이런 식으로 종적을 감추는 일 따위 없지…… 않았을까.

자책은 그다지 생산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사색이 땅을 파고 들어갔다. 초윤은 그새 석죽은 낯으로 창틀에 손톱을 세웠다. 이럴 때일수록 대화를 해야겠지만 산재한 문제가 많아 날 잡고 이야기를 나누기도 어려웠다. 천오를 이해하려면 수용력이 필요했으나 이를 지니려면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했고, 초윤은 사현이를 찾지 못하는 이상 자신에게 아무런 말미도 주어지지 않으리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

‘다시 직접 뛰어야겠어. 천오에게는 양해를 구하고 혹시 모르니 같이 데리고 다니자.’

초윤은 막연한 확신을 갖고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천오가 무심코 언급한 사망 가능성에 속절없이 흔들리긴 했지만 어쩐지 사현은 죽지 않았다는 직감이 들었다. 남들이 듣는다면 어리석다고 치부할 희망이어도 상관없었다.

지금은 사색에 빠질 시간이 없다. 가서 사과하고,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하자. 그리고 다시 처음부터 찾아보자.

초윤이 착잡한 심경으로 전복죽 위에 빈 그릇을 덮어 놓고 천오를 쫓아 방을 빠져나온 그때, 머지않은 곳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두 명분의 익숙한 기운이 정련된 걸음으로 의도적인 발소리를 내며 다가오고 있었다.

초윤은 천오와 그들이 마주친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며 청각을 기울였다. 천오와 모용서가 마주친 상황이 문득 걱정스러워지긴 했지만 며칠 동안 이어진 합동 수색에서 별다른 문제가 터지지 않은 것을 보면 서둘러 달려갈 필요는 없을 듯했다.

“안에 계시지만 방문은 거절하실 겁니다. 따로 전달해 드려야 하는 소식이 있다면 제게 말씀해 주십시오.”

대꾸하는 천오의 목소리가 왠지 의기소침하게 들렸다. 초윤은 속으로 땅을 치고 후회하며 다시는 사적인 감정에 휩쓸려 매몰차게 굴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천오는 별로 잘못한 것도 없는데(정말 없진 않으며 꾸준히 교정해 줄 필요성이 있지만) 저렇게 기가 죽은 것을 보니 가슴이 다 아팠다. 와중에 스승의 뜻을 존중해서 손님을 들이지 않으려는 것도 기특하고 안타깝기만 했다.

초윤의 밀청(密聽)을 모른 채 대화는 계속해 이어졌다.

“임 형이 죽었을 가능성이 더 크겠죠. 역시 누가 이런 짓을 벌였는지부터 알아내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네가 뭘 안다고 내 새끼를 막 죽여?

주인공이라 해서 곱게 봐주려고 했더니만 저렇게 매번 인상을 깎아 먹는 것도 재주인 것 같았다. 누그러뜨린 화가 새어 나오며 주위의 공기를 흔들었다. 초윤은 날 선 심기를 애써 다독여야만 했다.

“‘현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기물이 약왕산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씀을 전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러나 뒤이어 들려온 모용단의 차분한 말은 초윤의 감정적 사고를 단번에 서늘히 식혀 주었다.

‘약왕산? 제갈세가를 말하는 건가?’

저 멀리 섬서성에 있는 제갈세가가 갑자기 왜 나오는가. 초윤은 얼핏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돌연 떠오르는 인물이 있었다. 사현을 찾겠답시고 광동성 전역으로 기감을 넓혔을 때 하오문 안에 있는 제갈설린을 발견하고 얼마나 놀랐던가. 제자를 찾는 게 급선무라 반응도 못 하고 넘어가긴 했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기묘했다. 자신을 곧장 따라온 게 아니고서야 불가능한 일 아닌가.

제갈세가의 인물이 광동성 안에 들어와 있을 때, 제갈세가의 기물이 갑작스럽게 언급되는 건 그저 우연에 불과한가?

연결 짓기 어렵지만 외면하기도 힘든 조각들이 줄줄이 드러나고 있었다. 초윤은 인상을 찡그린 채 원작의 기억을 되살리기 시작했다. 무림의 실권을 잡은 세가들의 비밀을 자신만큼 잘 아는 사람은 또 없을 게 분명했다.

‘제갈세가는 원래부터 진법과 기물에 능통하다는 설정을 몰아주기 위해 있는 집안이야. <귀환영웅>에서 묘사된 것도 한두 개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사람을 찾는 것도 있었고, 무슨 결계를 치는 것도 있었고, 기척을 감춰 주는 것도 있었고…… 어?’

설마?

초윤은 우뚝 멈춰 섰다. 그리고 온 힘을 다해 몇백 화에 달하는 전개를 빠르게 되짚었다.

「“공자님, 이것을 가지고 가 주세요.”
“응? 뭔데?”
제갈설린이 꺼낸 것은 작은 해시계처럼 생긴 물건이었다. 손바닥에 들어올 정도로 아담하고 검은색인 그것은 돌릴 수 있는 바늘이 달려 있었다.
“오래전부터 제갈세가에 내려온 은폐기물이옵니다. 제작 방법은 전해지지 않았고, 남은 건 이것 하나밖에 없사옵니다.”
“은폐기물? 그런 걸 받아도 돼?”
“공자님의 잠복술은 익히 알고 있사오나 많은 인원이 원활하게 움직이기 위해서는 꼭 필요하다 생각하옵니다. 시간과 반경을 설정하고 이 바늘을 돌린 뒤 내공을 불어 넣으면 작동하오니, 모쪼록 이 기물이 제 소임을 다하게 해 주세요.”
제갈설린은 은폐기물을 작동시키는 시범을 보인 뒤 서하에게 쥐여 주었다. 그의 손을 붙잡고 당부하는 말도 잊지 않았다.
“부디, 꼭 무사히 돌아오셔야 합니다. 설린이 이곳에서 기다리겠사옵니다.”
그렇게 말하는 제갈설린의 눈매에 눈물이 아른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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