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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 교주를 애지중지 키웠다 (138)화 (138/257)

138화

얘는 왜 여기 있을까?

초윤은 잠시 안을 훑어보며 몰아치는 상황을 따라가기 위해 애썼다. 해무당에 도착하기 한참 전부터 불청객의 존재는 눈치채고 있었지만 아이들의 기운이 얌전한 편이라서 안심하고 있었는데, 멀리 들려오는 대화가 아무래도 영 심상치 않아 문을 열어 보니 소설 속 인물이 또 있었다. 그것도 밝은 모래색의 머리카락과 눈동자, 반듯하고 수려한 귀공자의 얼굴, 장신의 균형 잡힌 몸과 바른 자세로 절도 있게 몸을 숙이고 인사하는 남자. 바로 모용세가의 소가주 모용단이었다.

모용단을 만나면 골치가 아플 것 같아 주인공까지 야멸차게 뿌리치고 나왔는데…… 안락하고 편안할 줄만 알았던 별장으로 돌아와 보니 그토록 피하고 싶었던 천재가 우뚝 자리 잡고 있었다. 이럴 줄 알았다면 그냥 이 곤란한 형제를 한꺼번에 만났을 텐데. 뒤늦게 후회해도 변하는 건 없었다.

소리 없는 한숨을 폭 쉬고 나니 머리 한구석으로 겨우 밀어 두었던 골칫거리가 불쑥 떠올랐다. 문턱을 넘어 안으로 들어가던 초윤의 발이 멈칫 굳었다.

‘잠깐만, 근데 진짜 얘가 왜 여기 있어? 비무를 해 달라 말라 하는 건 들었는데, 그 전에는 뭔 얘기를 나눈 거야? 이 사람 동생한테서 회귀에 관한 것도 다 들었다며? 설마 그걸 말했나?’

‘초윤’은 현경의 고수인 만큼 기본적인 신체 스펙이 상당했다. 가만히 있어도 멀리서 펄떡이는 물고기의 물장구를 들을 수 있었고, 까마득한 산을 바라보아도 나뭇가지 위에서 날갯짓하는 새를 볼 수 있었다.

정말이지 타인의 사생활을 침해하기 딱 좋은 능력이었다.

의식하지 않아도 들려오는 주변의 소리는 저도 모르게 초윤을 피곤하게 만들었다. 이에 초윤은 애써 오감 인지의 반경을 줄이고 필요할 때만 사방의 움직이는 기척을 감지할 수 있도록 수를 써 두었다.

그렇기에 초윤은 이곳까지 걸어오며 모용단과 아이들이 비무에 관한 실랑이를 하는 것밖에 듣지 못했다. 소설 속 모용단의 외형과 행적, 성격만 알았지 목소리를 들은 적은 없었으니 그가 이 사람이란 사실도 몰랐으며 그저 웬 간덩이 큰 놈이 우리 애들한테 대련을 해 달라고 이렇게 빌고 있나 싶었다. 그래서 느긋한 마음으로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할지, 아니면 중간에 양해를 구하고 들어가야 할지 문 앞에서 고민하고 있는데 들려온 사영의 목소리가 초윤을 잡아끌었다.

-스승님과 담화를 나누실 자리가 필요하시다면 말씀을 드려 보겠습니다, 칠성검 대협.

칠성검이라면 모용단의 별호가 아니던가. 어렵사리 자리를 파하고 도망친 게 방금 전인데, 사영이가 그자와 나의 면담을 주선한다고?

화들짝 놀라 안으로 들어가자 아니나 다를까 모용단이 보였다. 사현이는 어째선지 안색이 좋지 않아 보였고, 천오는 평소와 같은 얼굴에 짙은 반가움이 묻어났으며, 사영이는…….

“다녀오셨어요, 스승님!”

명명백백 기뻐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모용단과의 대화가 영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이었다.

초윤은 다시 문지방을 넘고 문을 닫았다. 대문을 들어오면서 한 손에 쥔 죽립을 비어 있는 제 의자의 등받이에 걸고 자리에 앉았다. 사영이 곧장 따라 앉았고, 사현과 천오가 그 뒤를 이었다. 끝까지 서 있던 모용단은 초윤이 허락한다는 듯 손짓을 한 뒤에야 뻣뻣하게 몸을 낮췄다. 초윤은 마음을 진정시킬 겸 반쯤 식은 찻주전자를 들고 내공으로 따듯하게 데운 뒤 빈 찻잔에 기울였다.

“네 아우와 상면하고 왔다는 것을 모르진 않았을 텐데.”

“예, 약선 대협. 이리 배알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동생은 스승에게, 형은 제자에게. 너희들이 작정을 했구나. 너도 그와 똑같은 말을 했더냐? 백주 대낮에 갑자기 칼을 겨눈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고, 도대체 왜 그랬는지 모르겠으니 만나 달라?”

자신의 입에서 나간 말에 깜짝 놀란 초윤의 손에서 찻주전자가 덜그럭 흔들렸다. 초윤은 침착하게 다기를 내려놓고 아슬아슬하게 채운 찻잔을 양손으로 들어 올렸다. 무림인의 몸은 손이 잘 떨리지 않아 다행이었다.

오랜만에 듣는 스승의 신랄한 말에 아이들이 어색하게 눈을 굴리는 모습이 훤히 보였다. 초윤은 제동기가 없는 성대를 몇 번이나 원망하며 차분하게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입 안에 말을 머금고 둥글게 굴린 모용단이 말했다.

“대협을 만나 뵈면 어떻게 말씀을 드릴지 여러 번 신중히 상의한 탓에 겹치게 되었을 뿐, 이곳에 찾아온 것과 비무를 부탁드린 일은 오로지 제 독단입니다.”

“그러니 네 아우와 세가에겐 죄가 없다? 남에게 누를 끼치며 서로만 눈물겹게 위해 봤자 반감밖에 더 사겠더냐.”

야멸찬 타박을 날린 초윤은 차분하게 얇은 내공의 실을 뽑았다. 보이지 않는 무형의 힘이 천천히 뻗어 나가 모용단의 고막에 닿았고, 초윤은 육성과는 다른 내용의 전음을 흘려보냈다. 머리가 복잡해 몸까지 피곤했지만 그와 별개로 모용단에게 물어야 하는 게 있었다. 그것도 같은 자리에서 멀뚱히 눈을 뜨고 있는 아이들은 가급적 모르게.

“이따위 일로 잘잘못을 물을 생각도 없으니 구구절절 번지르르한 사과만 늘어놓을 요량이라면 일찍이 나가거라.”

[서하가 시간을 거슬러 되돌아왔단 사실을 네게 털어놓았다면서?]

고개를 숙인 채 독설을 듣고 있던 모용단이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갑자기 들려온 전음과 내용에 놀랐을 게 분명했지만 티를 내지 않으려는 듯했다.

모용단은 잠시 간극을 두었다가 천천히 대답했다. 초윤을 따라 입으로 말하는 것과 전음으로 보내는 것에 금세 익숙해진 모양이었다.

“불편하게 해 드려 죄송합니다, 대협. 경외심과 이기심이 앞서 어리석은 짓을 저질렀습니다.”

[예, 4년 전에 제게 알려 주었습니다.]

“공경보단 두려움이고 이기심보단 탐욕이겠지. 용렬한 짓임을 알면 하지 않으려 노력하지는 못할망정.”

[까마귀 모양 신물은 네가 갖고 있더냐.]

“…….”

초윤의 질문을 들은 모용단이 입을 꾹 다물었다. 겉보기에는 연이은 문책에 변명할 말이 없어진 것으로 보였다.

도대체 그 신물이 어디 있기에 다들 이렇게 애매한 반응을 보일까. 원작이라면 당연하다는 듯이 모용서의 옆에서 떨어지지 않았을 물건이 제자리를 잃었으니 당최 짐작 가는 곳도 없었다. 그저 모용단이 관리했단 말을 듣고 물어보았을 뿐인데 왜 또 대답이 없을까.

주위를 휘 둘러보니 짜증이 쌓인 건 초윤뿐만이 아닌 것 같았다. 모용단이 나타나기 전부터 시달리던 사영은 아예 찡그린 인상을 숨기지도 않았고, 사현은 여전히 안절부절못하는 게 영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았다. 무슨 말을 들었기에 저러는지. 초윤의 시선이 사현에게 닿자, 눈치 빠른 사영이 스승을 바라보며 살짝 고개를 저었다. 지금 말하기엔 그다지 적합하지 않다는 표현이었다.

초윤은 그 뒤에야 시선을 옮겨 천오를 바라보았다. 초윤이 다른 곳을 보고 있을 때도 내내 올곧게 꽂혀 오던 새까만 시선은 이젠 직접적인 압력까지 느껴지는 듯했다. 이젠 저 무조건적인 눈도 익숙해진 초윤은 대수롭지 않게 아이와 눈을 마주친 뒤 모용단에게 관심을 돌렸다. 마침 시기 좋게 모용단이 무언가를 결정한 듯했다.

“성급한 마음에 때를 맞추지 못하고, 조급한 선택으로 심기를 거슬렀으니 오늘은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사실을 말씀드리자면, 신물은 오래전에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이미 일을 벌인 뒤에 갑작스레 사라졌다 발표하면 끌어들인 이들이 혼란에 빠질 것 같아 대체할 물건을 만드는 중이었습니다.]

뭐라고?

까마귀 신물이 사라졌다고? 그럼 주인공은? 회귀는? 영웅은?

전해져 온 전음을 들은 초윤의 가슴이 바닥으로 쿵 추락했다. 내가 키운 주인공도, 내가 쓴 소설도 아니지만 스토리의 큰 축을 담당했던 요소가 뜬금없이 사라진 상태라니 믿을 수 없었다.

황당한 기분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하고 있자 자리에서 일어나 의자를 밀어 넣은 모용단이 초윤을 향해 단정한 자세로 인사하며 말했다.

“부디 너무 노여워 마셨으면 합니다. 송구합니다, 대협. 동석한 일을 일생의 광영으로 여기겠습니다.”

[이곳에선 자세히 설명해 드릴 수 없을 듯합니다. 신시 초에 하오문 밖에 자리를 만들고 기다리겠습니다. 모쪼록 안온한 밤 보내십시오.]

더할 나위 없이 공손한 예를 올린 모용단은 배웅이 없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방을 나갔다. 일정한 보폭으로 정원을 가로지르고 대문을 열어 나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점점 더 먼 곳으로 사라지는 불청객의 기척을 감지한 초윤이 작게 한숨을 내쉬자, 스승을 보던 사영이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재수 없어! 뭐야? 비무 맡겨 놨어? 사과하러 왔다면서 싸우자는 건 또 무슨 심보인데? 스승님만 오시면 찍소리 못하고 도망칠 놈이!”

“사영.”

“안 되겠어요. 저 하오문 나갈래요. 저런 놈한테 명분으로 밀리다니 말도 안 돼요. 저도 그냥 스승님 밑의 문하생으로 돌아갈래요. 자기 동생 일거수일투족 좀 봤다고 은근히 눈치 주는 건 또 뭐야? 지는 내 동생 안 속여 먹었나?”

“일단은 진정하거라. 저쪽도 물러날 수 없는 이유가 있지 않겠느냐. 불화를 무릅쓰고 이곳까지 찾아올 정도면.”

쌓인 게 많았는지 역정을 내던 사영이 불만스러운 얼굴을 하고도 얌전히 분을 가라앉혔다. 초윤은 황망한 정신을 추스르고 아직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은 사현에게 넌지시 말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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