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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 교주를 애지중지 키웠다 (134)화 (134/257)

134화

거친 수색을 마친 초윤이 모용서의 어깨를 붙잡고 눈을 마주쳤다. 한 줄기의 수심이 단정한 얼굴에 선명한 금을 그렸다. 힘을 주어 명료해진 초윤의 목소리가 또박또박 물었다.

“신물은?”

“예?”

“까마귀 모양 신물 말이다. 네 형이 네게 주었던 것!”

당황스러운 마음에 인상을 쓴 모용서의 뒤로 허공에 머물러 있던 주렴이 차라락 소리를 내며 제자리를 되찾았다. 알알이 꿰어 둔 보석들이 맞부딪히며 영롱하게 빛났지만 그런 소음에 할애할 신경은 없었다. 모용서는 도저히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초윤의 손목을 잡고 뻣뻣하게 말했다.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이전 세계면 몰라도, 작금에 이르러 가형에게 신물을 받은 적은 없습니다.”

“이쪽에서 눈을 떴을 때 가까이에 그것이 없었다?”

“시간을 되돌리듯 돌아오게 되었는데 여태 그것을 갖고 있을 리 없지 않습니까!”

호소하는 듯한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초윤은 모용서를 밀치듯 놓았다. 그리고 팔걸이에 팔꿈치를 괸 채 입가를 만지작거리며 혼란스러운 생각에 빠져들었다. 이를 알 리 없는 모용서는 불쾌감을 감추지 못하고 옷매무새를 다듬으며 덧붙였다.

“말씀하시는 신물이 비동에서 발견된 게 맞다면 아직 가형의 손에 있을 겁니다. 이전 세계에서도 모용이 멸문당할 때까지 이를 꽁꽁 감추고 있던 사람이니까요. 그 뒤로 항시 몸에 지니고 다니긴 했지만, 과거로 오게 된 이상 제가 그것을 손에 넣을 일은 아직 요원합니다.”

“…….”

“말이 신물이지 아무런 효능도 없을뿐더러 가형이 직접 계승자를 찾은 지 벌써 8년입니다. 저는 그동안 딱히 그것을 본 적도 없고, 갖고 싶지도 않습니다. 이제 와선 가형의 유품도 뭣도 아니지 않습니까.”

이상해. 이건 너무 이상해.

모용서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초윤의 꽉 쥔 주먹은 하얗게 질려 갔다. ‘까마귀 신물’이 무엇인가. <귀환영웅>을 관통하는 주인공의 상징이다. 직접적으로 무슨 능력이 있다고 언급되진 않았지만 주인공에게 기이한 일이 생길 때마다 진동이 느껴지거나 뜨겁게 달아오르는 것 같다고 묘사되었으며, 모용서는 알 수 없는 힘의 도움을 받아 종종 위기에서 벗어나곤 했다. 거기에 더해 얽혀 있는 사연까지 기구하니 작중에서 신물이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히 클 수밖에 없었다.

원작대로라면 주인공이 회귀를 한 후 신물은 모용서에게 붙어 있게 되고, 모용단은 동생이 신물의 적합자라는 사실을 적당한 시기까지 열심히 은폐해야 했다. 정마대전이 발발한 뒤 벌어진 커다란 전쟁에서 보잘것없는 한량인 줄로만 알았던 주인공이 상서로운 기운을 두르고 온 무림에 ‘영웅의 탄생’을 알리는 장면은 <귀환영웅>의 몇 안 되는 웅장한 명장면 중 하나였다.

그런 물건이 회귀 후 8년의 시간이 지났는데도 아직 모용단의 손에 있다고?

‘그럼 회귀의 중심인물이 모용단인가? 아니,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어쨌든 모용서도 기억이 있긴 하잖아. 신물을 사용하는 사람이 바뀌었다면 회귀도 다른 사람이 해야 하는 것 아냐?’

열심히 머리를 굴려 보았지만 그럴듯한 가설은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초윤은 처음부터 ‘회귀 이후의 세계’에 빙의했으니 이건 빙의자의 영향으로 바뀐 것도 아니었다.

그때, 대수롭지 않게 지나간 모용서의 한 마디가 퍼뜩 떠올랐다.

“딱히 신물을 본 적 없다는 말은, 이 시간으로 돌아온 이후 그것의 모습을 눈으로 확인하지 않았다는 뜻이더냐.”

“예. 남궁의 눈을 피하기 위해 가형이 아주 심혈을 기울여 관리하고 있다는 사실만 압니다. 매일 밤마다 어딘가에 틀어박혀선 신물을 연구하고 있기도 하고요.”

원작에서는 절대 영웅이 될 리 없다 여겨졌던 모용서가 신물을 가지고 다니며 자연스럽게 행적이 묘연해졌다. 하지만 지금 모용단은 주인도 없는 물건을 8년 동안 기어코 숨겼다.

모용단은 설정상 기관진식에도 능통한 천재였지만 히로인인 제갈설린과 특성이 겹쳐 그다지 부각되진 않았다. 그런 자가 매일 밤 신물을 연구하고 있으며, 모용서조차 돌아온 후에는 실물을 본 적이 없게 관리했다.

원작을 촉발했던 물건의 실체가 없는데 회귀는 벌어졌다.

그 이외에 달라진 기본 설정이라면…… 조연에게 난데없이 빙의해 버린 정하윤밖에 없다.

이거 설마 나도 모르는 내 탓인가? 나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겠는데 뭘 어쩌라는 거지? 주인공도 아닌 내가 신물의 행방을 찾겠답시고 마구 뒤적이고 다녀도 되나? 천오 독립시키고 나면 유유자적 돌아갈 방법이나 찾으려고 했는데, 당운금의 중독도 미리 막고 마교 교주가 될 애도 잘 키워 놓은 마당에 굳이 무언가를 더 할 필요가 있긴 한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사건을 두고 답이 보이지 않는 고민만 하고 있는데, 이상한 낌새를 알아챈 모용서가 초윤의 안색을 살폈다. 겉보기엔 깊은 생각에 잠겼을 뿐 아무런 동요도 없어 보였지만 갑작스럽게 태도가 달라진 이상 예상을 벗어나는 일이 생겼다는 뜻일 터였다.

“그 신물이 중요한 물건입니까?”

“…….”

네가 무쌍을 찍게 도와줬어야 할 치트키였다고 말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러나 초윤의 침묵을 다르게 받아들인 모용서는 치열한 고민 끝에 간신히 입을 열고 자신이 저지른 짓을 실토했다.

이는 안 그래도 어질어질할 정도로 충격을 받은 초윤에게 제대로 쐐기를 박아 넣었다.

“……실은, 가형 또한 제 비밀을 알고 있습니다. 섬서성에서 서문천오를 만나게 되었을 때 혼절한 까닭을 얼버무릴 자신이 없어 털어놓게 되었습니다. 감히 장담하건대 누구보다도 믿을 수 있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모용단이 네 입을 통해 이전 세계를 전해 들었다는 뜻이냐.”

“예. 담화가 어떻게 흘러갈지 몰라 대협을 독대하겠다 고집을 부렸습니다만.”

신물만으로도 머리가 아픈데, 이제는 칠성검 모용단이 회귀를 알고 있다고?

초윤의 사고가 과도한 부하를 받고 작동을 멈추었다. 이를 알 리 없는 모용서는 꼿꼿이 선 채 결연한 눈으로 초윤을 응시했다. 열다섯도 되지 않은 소년의 몸이긴 하나, 충분한 단련으로 자란 키는 앉은 이를 내려다볼 수 있었다. 바닥의 어딘가에 꽂혀 있던 초윤의 연갈색 눈동자가 매끄럽게 위를 향했다.

모용서는 제 이복형처럼 특출하게 오성이 뛰어나지 않았다. 오랜 시간에 걸친 멸시는 그의 인격을 대차게 비틀었으며, 오래전에 입은 가슴의 상처는 쩍 벌어져 흉터조차 되지 못하고 있었다. 대의와 정의에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 염세적인 성질머리에 고질적인 반골 성향은 모용서를 개차반에 가까운 인간으로 조성했다.

하지만 모용서는 늙은 늑대 같은 노련함을 지니고 있었다. 복수심을 품고 숨죽인 채 이어진 오랜 도망 생활은 곧 능란한 생존 본능이 되었다. 그렇기에 모용서는 무엇이 자신에게 도움으로 작용할지 귀신같이 골라낼 수 있었고, 적어도 지금 제 눈앞을 하얗게 채운 선인이 ‘적’이 아니란 사실 하나만은 장담할 수 있었다.

모용서는 초윤의 행적에서 도출된 의도를 믿고 가장 소중한 이를 걸어 보기로 했다.

“중차대한 일이라면 저보다 제 가형이 더욱 유용할 겁니다. 대면하길 바라신다면 불러오겠습니다.”

위험한 일에 노출시키고 싶지 않아 꽁꽁 잡아 둔 자신의 형이 지금 누굴 만나러 갔는지도 모른 채.

모용세가는 백협맹을 이루는 세력 중에서도 손꼽히는 문파였지만, 뛰어난 무력과 우수한 지략에도 불구하고 중원에 터를 잡은 이들에겐 괄시받는 경향이 있었다. 이는 멀리 떨어진 요녕성에 본거지를 두고 있다는 점도 한몫을 했으나 소수 민족에 속하는 그들의 출신 또한 커다란 이유였다.

모용씨는 먼 과거 한 국가의 왕족에서 이어져 내려왔다. 돌궐인의 피가 짙어 외모 또한 이국적이었고, 가끔은 서역인처럼 밝은 머리색으로 태어나기도 했다. 땅이 거대하나 개방적이라고 보긴 어려운 중원의 특성상 자신과 외관부터 다른 모용세가를 홀대하게 되는 건 당연했으며 이러한 인식이 깨지기 시작한 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중원인의 편견을 바꾼 주된 사유인 모용단은 어둑한 야밤의 희미한 달빛 아래서도 확연히 보이는 모래색의 머리칼을 지니고 있었다. 검은 머리의 동생과는 다른 배에서 태어났다는 걸 공공연히 알리기라도 하듯 명도 높은 머리카락을 하나로 틀어 올린 모용단은 천오보다 한 치가 더 큰 장신이었고, 어깨와 등이 반듯한 거체였으며 생김새는 단정하고 자세는 고상했다.

열린 문 너머 문턱을 넘지 않고 공손히 인사부터 하는 모용단에게 새까만 시선이 꽂혔다. 수년에 걸쳐 그를 보아 온 사현이나 오랫동안 소식을 접한 사영은 몰라도 천오는 모용단을 처음 보았다. 타인에게 관심을 줄 성정이 아니고, 그보다 열 배는 더 특이한 인물과 평생에 가까운 시간을 함께 살아온 탓에 이제 와 신기함을 느낄 리도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계속 눈길이 갔다.

모용단의 체형과 골격을 무게감 없이 훑던 천오가 갸우뚱 고개를 기울일 찰나, 꺼내 들었던 폭죽을 조용히 집어넣은 사영이 말했다.

“이리 빙문(聘問)해 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칠성검 대협. 미리 기별을 해 주셨다면 맞이할 준비를 해 두었을 텐데요. 연달아 추태를 보여 드리게 되어 송구할 따름입니다.”

“……거듭 죄송합니다. 아마도 지금이 아니면 말씀을 나눌 수 없을 것 같아 마땅한 도리를 지키지 못하고 무작정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야밤에 불쑥, 그것도 숨겨진 장소에 모습을 드러낸 이한테 반어법으로 정중히 비아냥거리던 사영은 되돌아온 겸허한 태도에 잠시 입을 다물었다. 조금 전에 들은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 하며, 양옆에 있는 못 미더운 동생들 하며, 이 부담스러운 불청객까지 무엇 하나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귀를 막고 피할 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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