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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 교주를 애지중지 키웠다 (113)화 (113/257)

113화

임 남매를 보낸 뒤, 초윤은 혼자 남은 천오의 희박한 사회성에 대해 정말 오랫동안 고민을 했다. 그러나 내 새끼 키우자고 남의 자식을 위험에 빠트릴 순 없는 노릇. 아무리 생각해도 공감 능력을 비롯한 도덕성과 윤리 의식이 결여된 데다 평균치를 월등히 뛰어넘는 육체적․지적 능력까지 가진 천오를 민간인 아이들 사이에 은근슬쩍 집어넣을 순 없었다. 초윤이 곁을 쫓아다니며 천오에게 하나하나 가르쳐 주지 않는 이상 분명히 문제가 생길 것 같았다.

그럴 바엔 그냥 먼저 다 가르쳐 주자. 일단 전부 머릿속에 박아 넣어 준 뒤에 어느 정도 상식의 틀이 잡혔을 때 세상에 풀자. 결국 차선책을 택한 초윤은 가끔 산 밑의 마을에 내려갈 때 천오와 동행을 하거나 심부름을 시키는 것으로 제자의 소통 능력을 애써 유지시키며 기본적인 교육부터 끝마치기 위해 노력했다.

그 결과가 성공적으로 눈앞에 나타났다 생각하니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꽁꽁 얼어붙은 적대감이 둘 사이를 흐르는 건 당연하게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겉으로만 정중히 오가는 대화를 훌륭한 사교의 장이라고 철석같이 믿으며 흐뭇하게 지켜보던 초윤이 입을 열었다. 마음 같아선 이대로 친해지라고 두고 싶었지만 마차가 어딘가로 향하고 있는 이상 일찍 목적지를 알려 둬야 할 것 같았다.

“난 복건을 지나 광동까지 갈 예정이다. 이 시기의 복건성은 날이 변덕스러워 몸이 약한 사람에겐 극독이나 마찬가지니 혹여라도 따를 생각은 하지 말거라.”

“……절강성까지 온 것은 단순한 변덕이 맞사오나, 집을 나설 적에 어머니께서도 허락하셨사옵니다. ‘먼 길을 떠나는 김에 하고 싶은 것은 다 하고 오라’고요.”

“…….”

“무공 한 자락도 쓰지 못하는 반푼이 주제에 감히 대협과의 동행을 바라진 않겠사옵니다. 다만…… 마지막으로 한 번이라도 좋으니 다시 한번 대협께 가르침을 받고 싶사옵니다. 대협의 신묘한 지식으로 안목을 넓히고 싶사옵니다. 제 막무가내를 따라 동승해 주신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할 일이온데, 이토록 억지를 부려 면구스러울 따름이옵니다.”

많이 자랐다지만 기껏해야 열여섯 살, 희귀한 불치병으로 평생 집 밖을 벗어나 본 적 없던 아이가 ‘하고 싶은 걸 다 할 수 있을 때’가 언제일까.

제갈설린의 어머니는 이번 나들이가 딸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며, 설린 역시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걸 체감하고 있단 뜻이었다.

‘결국 죽을 거라는 생각에 너무 익숙해져서 목숨에 미련도 가질 수 없게 된 건가.’

부끄럽다는 듯 고개를 숙이고 있으면서도 또박또박 말을 잇는 설린의 얼굴에선 기이하게도 비관적인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아직 이십 년도 살지 못한 애가 아무렇지 않은 듯 버킷 리스트를 채우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입맛이 썼다. 바다가 보고 싶어 여기까지 왔다는 건 도대체 무슨 사망 복선…….

‘어?’

초윤은 문득 이 근방의 도시를 떠올렸다. 해안가를 따라 북쪽부터 쭉 늘어진 강소성, 절강성, 복건성, 광동성. 약재 시장이 있던 안휘성은 그중에서도 강소성과 가장 인접해 있었고, 절강성은 안휘성의 동남쪽에 약간 붙어 있는 정도였다.

만약 제갈설린이 박주시에서 갑자기 바닷가로 가고 싶었다면 안휘성을 종단해 내려온 뒤 동쪽으로 나아가야 하는 절강성보단 바로 옆에 자리한 강소성에 가야 했다. 즉 제갈설린의 동선은 무언가 목적이 없는 이상 지극히 비효율적이었다.

‘절벽은 몰라도 절경의 바다라고 할 만한 건 절강성에 없는데…… 왜 굳이 이리로 온 거지? 안휘성은 남궁세가가 꽉 잡고 있으니 그리 좋은 분위기도 아닐 텐데……. 아, 남궁세가!’

고민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초윤은 떠오른 가설을 곧장 설린에게 물어보았다.

“남궁세가에 직접 도움을 청하려 했느냐.”

“……맞사옵니다. 직접 방문해서 소문의 근원을 물어보려 하였사옵니다.”

잠시 놀란 토끼 눈을 하던 설린의 얼굴이 금방 울적해졌다. 입을 다물고 가만히 눈을 내리깐 채 초윤의 무릎께만 응시하던 천오는 남궁세가의 이야기가 나오자 슬그머니 시선을 들어 관심을 보였다.

어떻게 알긴. 안휘성 남쪽에 있는 게 남궁세가밖에 더 있나. 제갈설린은 역시 몸소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남궁세가의 본채가 있는 황산시까지 내려왔다가 그대로 가까운 절강성에 온 듯했다.

여기까지 생각한 초윤의 입술 끝이 못마땅한 듯 희미하게 비틀렸다가 빠르게 제자리를 되찾았다.

‘아니, 속단하지 말자. 남궁세가가 진짜 쓰레기 같은 집단이긴 하지만 절맥증 치료법만큼은 정말 몰라서 안 가르쳐 줬을 수도 있잖아. 주인공도 수십 년 뒤에 우연히 알았다고 했는데.’

“하지만 제대로 된 이야기도 나누지 못하였고, 그런 헛소문에 대해선 아는 바가 없으니 개방에 기별을 넣어 보겠다는 말뿐이었사옵니다. 세가 내부에 중차대한 일이 벌어졌다고 했사온데 알아보기도 전에 융숭한 내쫓김을 당해 버려서.”

‘아니다, 그냥 진짜 쓰레기 같은 자식들이구나. 남궁세가가 박주시를 휘어잡고 있다는 사실을 온 중원이 다 아는데 뭐라고?’

박주시에 모이는 약재와 의원들은 오래전부터 남궁세가에게 막대한 부와 권력, 기술을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남궁세가는 이 이권을 지키기 위해 음지와 양지 양쪽으로 부단한 노력을 했다. 백협맹이 출범한 뒤로 최강의 패권을 누리고 있는 지금에 이르러선 안휘성이라는 거대한 도시 하나가 전부 남궁세가의 손아귀에 들어가 있었다.

그래서 초윤은 절강성에 올 때 안휘성을 경유하지 않았다. 대신 섬서성에서 호북으로 내려와 장강(長江)의 수로를 이용했다. 아무 생각 없이 올라간 산에서 갑자기 녹림왕을 만날 정도로 예측할 수 없는 운을 지녔으니 강에선 장강수로십팔채와 조우하게 되는 게 아닐까 싶었지만 남궁세가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여기까지 오는 길은 평탄했다.

‘큰 고비는 넘겼다고 안심했을 때 설린을 만나 버렸지만 말이지…….’

그래도 남궁세가와 쓸데없는 분란이 일어나는 것보다는 역시 훨씬 나았다. 이건 남궁세가의 비밀과 악행을 낱낱이 알고 있는 초윤은 물론, 현 무림을 살아가는 무림인들의 공통적인 인식이었다.

그런 흉흉한 도시를 몸도 좋지 않은 애가 종단해서 직접 찾아갔는데…… 집안일 때문에 그걸 내쫓았다고?

이 시기에 남궁세가에서 뭘 했었나?

주인공 아직 열네 살 아닌가? 적어도 열여섯 살은 먹은 뒤에 본격적인 마교의 침탈이 시작되고, 남궁세가도 그때부터 전면에 나오지 않나?

원래라면 소교주였을 천오도 없어서 일이 빠르게 진행될 리가 없는데?

그렇다면 역시 핑계인가? 하지만 제갈세가의 금지옥엽을 이런 허술한 변명으로 내쳐서 좋을 것도 없지 않나? 어차피 다 집어삼키기로 한 거, 막 나가기로 한 건가?

초윤의 시선이 무의식적으로 천오의 옆얼굴에 닿았다. 스승이 아닌 다른 이의 말에 드물게 흥미를 보이고 있던 천오가 득달같이 고개를 돌려 눈을 마주쳤다. 초윤은 별 뜻 없다는 의미로 가볍게 고개를 저어 보인 뒤 다시 설린을 보았다.

“그러니 이곳에서 대협을 만나 뵙게 된 것은 제게 천재일우이옵니다. 바람 앞 등불 같은 목숨을 내세우며 염치없이 인정에 호소하는 짓을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사오나…….”

설린은 얼굴도 들지 못한 채 변명인지 부탁인지 모를 말을 줄줄 쏟아 내고 있었다. 새빨갛게 달아오른 귀와 뺨을 봐선 스스로의 행동에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는 듯했다. 초윤은 잠시 머릿속으로 ‘히로인 제갈설린’을 떠올렸다. 지금 눈앞에 있는 설린은 글자로 접했을 땐 예상할 수 없었던 행동을 하고 있었지만, 그렇기에 더욱 가만히 둘 수 없었다.

초윤은 짧게 한숨을 쉰 뒤 설린의 목소리를 뚝 잘랐다. 이 아이가 이 꼴로 나타났을 때부터 초윤의 선택은 정해져 있었다.

“이대로 쉬이 포기하기 위해 그 고된 수학(修學)을 해 왔더냐. 아직 멀쩡히 살아 있는 몸으로 풍전등화를 운운하다니, 너답지 않을뿐더러 실망스럽기 그지없구나.”

“……예?”

“돌아다닐 생각 말고 객잔에 돌아가 목욕재계를 하거라. 축시 반 각에 찾아갈 테니 반드시 주위를 무르고 홀로 있어야 한다.”

제갈설린의 입이 천천히 벌어졌다. 경악하던 얼굴이 천천히 일그러지고, 목이 메어 아무 말도 못 하는 틈을 타 초윤은 죽립을 뒤집어쓰고 창문 밖으로 손을 뻗었다. 그리고 마차가 금세 멈추자 천오와 함께 바깥에 내렸다.

저잣거리로 섞여 들어가면서 뒤를 돌아보진 않았다. 똘똘한 아이니까 잘 알아듣고 준비하겠지, 싶었다. 예민한 청각은 거리가 꽤 멀어질 때까지 희미한 흐느낌을 잡아냈다. 위로할 필요도 없고, 살가운 말을 할 수도 없다는 걸 알면서도 괜히 한숨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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