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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 교주를 애지중지 키웠다 (101)화 (101/257)

101화

‘아…… 이걸 어떡하냐.’

천오가 홀로 고민하다 나름의 답을 찾아낸 그날, 아침 일찍부터 제자를 두고 나온 초윤은 산책이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부지런히 불귀 산맥을 누비고 있었다.

무심서로 돌아온 직후 이틀은 천오의 상처를 낫게 하는 데에 온 신경을 쏟느라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괴물 같은 회복력을 가진 제자는 어제부로 멀끔한 몸뚱이로 욕조에서 걸어 나왔고, 그에 한숨을 돌린 뒤 간만에 근심 없는 밤을 보내나 했는데.

차라리 온종일 천오의 몸을 걱정하던 게 나았다. 아니, 애가 다치는 게 나을 리는 없으니 정확히 따지자면 그것도 딱히 좋진 않았지만, 아무튼 피차일반이었다. 다른 게 아니라, 가장 중요했던 고민거리 하나가 가시자 제자의 상처 핑계를 대며 뒤로 미루어 두었던 것들이 한꺼번에 닥쳐오게 된 것이었다.

눈덩이처럼 불어난 문제들과 답이 나오지 않는 머리를 부여잡고 한참을 고민하다 간신히 선잠에 들었더니 꾸게 된 꿈도 가관이었다. 이곳에 오게 된 뒤로 처음 꾼 꿈이었는데 악몽도 정말 그런 악몽이 없었다.

초윤은 결국 동이 트자마자 천오가 놀라지 않도록 서신 한 장을 남기고 무심서를 뛰쳐나왔다. 곳곳에 포진한 문젯거리를 하나부터 열까지 차근차근 해결하려는 노력이라도 해 보아야 마음이 좀 편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대자연을 유유자적 거닐며 유난히 사나웠던 꿈자리를 해소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습한 새벽을 가로질러 가장 먼저 고도산에 도착한 초윤은 묻어 놓은 짐조의 독이 무사히 분해되고 있는지부터 확인했다. 다행스럽게도 산은 이전보다 약간 더 음침해졌을지언정 무너질 조짐은 보이지 않았고, 독에 물든 지하수가 망망강으로 흘러나오지도 않았다.

그대로 안심하고 무심서로 돌아갔으면 마음이라도 편했겠지만 끝내 연파강을 지나치진 못했다. 초윤은 언젠가 원래의 세계로 돌아가야만 하는, 처음부터 이곳에 존재한 게 아닌 이질적인 사람으로서 무슨 일이든 깊게 얽히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혈혈단신으로 혼자 사는 게 아닌 이상 혹시 모를 위협의 가능성을 외면할 순 없었다. 초윤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샅샅이 산맥을 뒤지는 내내 누구의 흔적도 발견되지 않길 바라는 것뿐이었다.

그 결과가 바로 지금에 다다랐다. 초윤은 원익산의 한복판에 우두커니 선 채 온갖 좌절을 체감하는 중이었다.

‘이거…… 내 착각 아니지? 틀렸으면 하는데…… 틀릴 리가 없지?’

제발 내 오판이었으면 좋겠다……. 내심 기원하며 신발 코로 봉긋하게 솟아 있는 흙더미를 툭 파헤쳤다. 누가 봐도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조그만 둔덕은 초윤의 부질없는 바람처럼 나약하게 무너졌다. 바싹 마른 겉과 다르게 드러난 내부는 축축한 수분을 가득 머금고 있었다. 스멀스멀 비강에 들러붙는 희미한 악취를 보아 물기만 간직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

“하…….”

초윤은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며 마른세수를 했다. 얼굴을 문지르던 손은 곧 입가를 가리고, 언짢은 기색이 역력한 두 눈은 까발려진 흙무덤에 꽂혔다. 한동안 미동도 없이 그대로 불청객의 흔적만을 노려보던 초윤은 결심을 세웠는지 재차 한숨을 내쉬며 무릎을 굽혀 그 앞에 앉았다. 그리고 소매를 걷어 맨손으로 직접 흙무더기를 뒤적거렸다.

‘순수한 피……라고 하기에는 불순물이 너무 많아. 독기도 느껴지는데 그보다 산성이 더 강해. 고도산이면 몰라도 원익산은 이걸 흡수하기엔 조금 부족했던 것 같네. 한두 명도 아니야. 최소 다섯 명 이상…….’

흙을 조금 집어 냄새를 맡고 엄지와 검지로 문지르며 곰곰이 생각하던 초윤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초윤’의 기억에 땅이 꺼지도록 소리 없는 한탄을 했다. 이게 무엇인지 모르고 넘어갈 자유도 주지 않는 박식한 몸이 원망스러울 지경이었다.

‘화골산이구나…….’

시체 위에 뿌리면 뼈 한 조각 남기지 않고 녹일 수 있는 무협지 특유의 증거 인멸법, 화골산(化骨散)을 썼구나……. 섞여 있는 독이 친숙한 것을 보아 짐조에게 중독되어 죽은 사람도 있는 것 같고, 흔적이 이렇게 깔끔히 정리되어 있다는 건 생존자가 있다는 뜻이겠지……. 여기까지 오면서 다른 주검은 못 봤으니까…….

이것이 뜻하는 바는 하나밖에 없었다. 누군가 정말로, 현경에 다다른 강자인 초윤의 눈을 피해 온갖 요괴와 자연진법으로 가득한 불귀산맥에 들어와선 의도적으로 짐조를 풀어 두어 생태를 망치고 섬서성의 혼란을 야기하려 했다.

난처하고 곤란한 마음에 낙담했던 것도 잠시, 초윤의 목석같은 얼굴에 보기 드문 분노가 서렸다. 선명한 감정에 동화한 산이 바람 없이도 불안정하게 술렁였다.

‘위험했다. 하나라도 삐끗했으면 정말 위험할 뻔했어.’

그 자리에 초윤이 없었다면, 물에 섞인 독을 알아차리는 게 늦었다면, 그 전에 천오가 먼저 독을 접했다면, 이 흉수들이 자신이 자리를 비운 사이 무심서를 습격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이렇게 지독한 악의를 아무런 피해도 없이 모면할 수 있었던 건 어디까지나 우연에 불과했다. 초윤이 빙의한 이후로 제자들을 위해 꾸준히 노력해 온 것들이 일시적인 안배가 되어 준 것뿐이었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불현듯 얕은 잠에서 보았던 장면이 떠오르며 초윤을 옭아맸다. 개꿈이 다 그렇듯 할 일을 찾아 정신없이 몸을 움직이다 보면 금세 잊을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아닌 것 같았다.

꿈속에서 초윤은 진령 산맥과 불귀 산맥을 가르는 짙은 안개 속에 서 있었다. 등에는 반쯤 찬 약함을 지고 있었고, 시야의 절반은 죽립으로 가려져 있었다.

초윤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개를 망설임 없이 홀로 헤치고 나갔다. 서두르는 발걸음에 점차 조바심이 섞였다. 무뎌진 가슴은 지금 느끼는 기분이 무엇인지도 알 수 없었지만 당장의 목적 하나만큼은 명확했다.

가야 한다. 가서 보아야 한다.

잔잔하다 못해 얼어붙은 호수 같던 평온은 깨진 지 오래였다. 수면 아래 갇혀 있던 감정들이 조각난 얼음을 이고 출렁였다. 그만한 정을 주었던가. 그만한 시간을 보냈던가. 버거운 생애에서 언제나 초윤을 건져 주었던 관조적 성찰 따위 지금만큼은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자신이 지닌 어렴풋한 감정을 운운하며 외면하기엔 이미 모든 인과가 확실했다.

안개를 벗어나자 보인 광경은 생각보다 처참했다. 강인한 생명력으로 푸르게 무성했던 나무들은 저마다 바싹 마른 채 너저분한 갈색으로 물들어 있었고, 하늘을 날아다니던 산새는 찾아볼 수 없었다. 발밑으로 밟히는 낙엽은 퍼석하게 부스러졌으며 풀벌레 소리는 어디서도 들려오지 않았다.

변해 버린 모습을 눈에 담으며 몇 걸음을 지체하던 초윤은 다시금 속도를 높였다. 아직 날아가지 못한 독기가 공기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걸음걸음마다 빛을 잃어 가는 희망을 느끼고 나서야 자신이 가망 없는 낙관을 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윽고 조그만 인가가 시야 끝에 들어왔다. 낮은 울타리, 좁은 마당과 단출한 방 두 칸, 마른 풀을 엮어 만든 지붕. 겉보기에는 그대로였다.

있으나 마나 한 대문을 밀어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다녀왔다, 입 밖으로 나간 목소리는 생각보다 담담했다. 돌아오는 대답과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초윤은 약함을 내려놓고 방문을 하나하나 열었다. 자신의 방은 비어 있었고, 그 옆의 방도 마찬가지였다.

산의 무서움을 아는 아이들이 제멋대로 하산했을 리는 없으니 마지막으로 남은 건 주방이었다. 낡은 물독이 있는 곳, 먹을 것을 두는 곳.

벌어진 일을 목도하기까진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부엌으로 들어가는 문에는 발목까지 올라오는 문턱이 있었다. 초윤은 그 문지방에 힘없이 걸쳐진 마른 손목을 보았고, 두 사람분의 시취를 맡았다. 보지 않아도 명백한 사실을 굳이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려 하는 것은 인간이라면 어쩔 수 없는 어리석음일까, 아니면 한참 늦은 죄책감일까. 어느 쪽이든 바뀌는 건 없었다.

초윤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지며 하나 되어 쓰러져 있는 시신을 뒤덮었다. 도움을 구하듯 바깥으로 뻗어 있는 손은 큰아이의 것이었다. 독한 구석이 있었지. 파도치고 요동친다 생각했던 무언가가 무안할 정도로 가라앉으며 곧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진정보다는 침몰에 가까웠지만 이를 알아채기엔 너무나도 지쳐 버렸다.

그 자리에 굳어 미동도 없이 둘을 내려다보던 초윤의 고요한 눈이 천천히 어딘가를 향했다.

벽 너머, 산 너머에선 여전히 강이 흐르고 있었다.

이런 내용의 꿈을 꾸고 벌떡 일어났으니 초윤의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긴 개뿔, 꿈속에서는 갑작스레 들이닥친 최악의 상황에 머리가 따라가지 못해 오히려 식어 버렸을지 몰라도 이를 곰곰이 곱씹을 수 있는 현실의 초윤은 도저히 차분할 수 없었다.

치미는 불안을 억누르며 이게 그저 악몽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돌아다녔더니 나오는 건 불법 침입과 생물학 테러의 뚜렷한 증거였고, 자신은 아직도 이 불청객들이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불귀 산맥에 들어와 이딴 짓을 벌였는지 짐작조차 하기 어려웠다. 잘만 떠오르던 ‘초윤’의 지식도 이럴 때만 꼭 먹통이었다.

초윤은 몇 번째인지 모를 한숨을 내쉬며 앉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저분한 흙으로 더러워진 손을 탁탁 털어 내고 산 밑으로 고개를 돌렸다. 저 아래서 흐르는 연파강과 두망산의 정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이렇게 된 이상 받아들여야 했다. 초윤은 모든 것을 혼자 해결할 수 있을 정도로 전능하지 않았고, 불귀 산맥은 절대적으로 안전한 곳이 아니었다.

이제 누군가를 지키기엔 충분하다고 확신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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