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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 교주를 애지중지 키웠다 (80)화 (80/257)

80화

“내가 정신을 잃었던 것은 바로 그 반응이 격렬하게 일어났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내 면역은 더욱 견고해졌으니 괘념치 말거라.”

“그렇다면 정말 다행입니다. 한데 식사가 건강에 중요하다면 스승님께서도 무언가 드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막…… 회복하신 참인데.”

아직 의기소침한 기색이 다 가시지 않은 천오가 눈을 내리깔고 물었다. 음식을 주문하기 전에 먹지 않겠다고 얘기했지만 아무래도 마음이 쓰이는 모양이었다.

초윤은 천오의 배려를 한껏 흐뭇하게 여기며 말했다.

“네가 내 입맛을 네 손에 맞추지 않았느냐. 네가 지은 것이 아니면 구미가 당기지 않으니 어쩔 수 없다.”

“……예?”

사실 독에 직격당한 속이 아직 살짝 메슥거려서 먹지 않는 거지만 그것까지 얘기해 준다면 아이가 엄청 걱정할 게 눈에 선했다. 천오의 손에 입맛이 길들여진 게 아예 거짓말도 아니었기에 쉽게 말할 수 있었다.

초윤의 말을 들은 천오는 번쩍 고개를 들더니 갈팡질팡 눈 둘 곳을 찾지 못하고 헤매다 입을 열었다.

“그렇지만 저는 스승님께 독이 든 음식을 드렸는데…… 아니, 지금이라도 숙수에게 가서 주방 한구석을 빌릴 수 있는지 물어볼까요? 무심서에서 했던 것처럼 약선 요리를 하진 못하겠지만 그래도…….”

“아서라. 가뜩이나 바쁜 곳에 민폐다.”

초윤은 허둥지둥 천오의 말을 막았다. 가만히 놔두면 정말 객잔의 부엌으로 뛰어가서 요리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외칠 기세였다. 왜 이렇게 절박하게 날 먹이려고 하지, 싶어 당황스러웠지만 며칠 사이 아이가 겪은 일을 생각해 보니 이해가 갔다. 아무래도 아이의 부당한 죄책감을 제대로 해소시켜 줄 필요가 있어 보였다.

“너는 내 말을 제대로 듣지 않은 것 같구나. 네가 멋대로 확대한 사실에 얽매이지 말고 상황을 똑바로 보거라. 나는 독이 든 음식이라고는 고작 쌀밥 두 술밖에 먹지 않았다. 틀리더냐.”

“……아니요, 맞습니다.”

“그러면 미약한 독기가 서린 밥 두 술과 독의 근원인 요괴의 살점 중에서 어떤 것이 내 상태에 더 큰 영향을 끼쳤겠느냐.”

“……독의 근원인 요괴의 살점입니다.”

“그래, 무심서에서도 말했지만 네 요리에 들어 있던 독은 내게 티끌만큼의 해악도 입히지 못했다. 네가 지금 하는 행동은 내 제자를 폄하하고, 나아가서 나를 과소평가하는 짓이다. 계속 그리할 것이냐.”

천오가 하얗게 질린 안색으로 연신 그러지 않겠다고, 죄송하다고 답하며 고개를 흔들었다. 이번에도 이렇게까지 말할 생각은 없었던 초윤은 아이의 사과를 적당히 받고 중간에 끊어 식사부터 마저 다 하게 했다.

분명 아이에게 엄하게 대한 적은 없었는데 왜 초윤의 말 한 마디에 이렇게 쩔쩔매는지 모를 일이었다. 추측하건대 ‘초윤’의 이 사회성 없는 말투 때문인 것 같기도 했다. 몇 년을 함께 지내며 그나마 나아진 게 이 꼴이라는 것도 한숨이 나왔다.

천오는 잠깐 사색이 됐던 게 언제였냐는 듯이 의욕적으로 그릇을 비웠다. 산 밑으로 내려오기만 하면 식사량이 많아지는 아이는 오늘도 빈 접시로 탁자를 꽉 메웠다. 먹으면서 이건 이걸 넣으면 스승님의 입맛에 맞을 것 같고, 저건 어떻게 바꾸면 스승님도 좋아하실 것 같다며 간간이 말을 거는 게 참 귀여웠다.

덕분에 초윤은 돌발 여행의 상세한 계획을 하나도 수립하지 못한 채 저녁 내내 천오에게만 몰입했다. 그리고 이를 그저 아이가 말을 조리 있고 일관성 있게 잘한다거나, 어휘력이 좋아 대화를 나누기 즐거웠다고 생각했다.

초윤은 객잔을 나오며 손에 쥔 금색의 열쇠를 만지작거렸다. 약함의 구석에서 오랜만에 꺼낸 열쇠는 여전히 정교하고 화려했다. 겉면에 있는 모란꽃 세공이 오후의 햇볕을 반사하며 반짝였다.

4년 전, 희에게 선물로 받은 뒤 한 번도 써 본 적 없던 물건이었다.

‘서안에 오는 것 자체가 4년 만이니까……. 그때 번 생활비도 아직 충분하고 산에서 멀지 않은 곳에 표국이 있는데 왜 여기까지 오겠어.’

하지만 어쩌다 보니 와 버렸다. 그리고 초윤은 이제 이걸 영영 쓰지 않는 것이 무례한지, 아니면 제 것처럼 쓰는 것이 무례한지, 자신의 거의 모든 외부 활동을 희가 보조하고 있는 게 아닌지, 다시 생각해 보니 이건 꽤 부담스러운 선물이 아니었는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에는 등장인물에 대한 내적 친밀감이 커 알아채지 못했지만 며칠 만나지도 않은 사람이 자신의 고급 별장 열쇠를 덜컥 쥐여 주며 네 마음대로 쓰라고 하는데 과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자신에게 부채감을 안겨 주려는 뜻이 아니라면 희의 경제관념은 꽤 왜곡되어 있을 게 분명했다. 촉망받던 황자라는 걸 생각하니 후자일 것 같기도 했지만.

‘그래, 오늘 하루만 서안에서 보내고 내일은 표국에 들렀다가 바로 제갈세가에 갈 건데 굳이 고급스러운 곳을 찾을 필요가 어디 있어. 그냥 가까운 데로 들어가자.’

이렇게 결심한 초윤이 열쇠를 꾹 쥐었을 때, 갑자기 콰앙! 하고 집기와 가구가 부서지는 커다란 소리와 함께 고함이 들려왔다. 초윤과 천오는 조용히 시선을 들어 소음의 근원지를 찾았다. 머지않은 곳에 위치한 또 다른 객잔이었다.

“쇠꼬챙이나 들고 깔짝거리는 비겁자들이!”

“⎯⎯감히!”

웅성거리는 소리에 파묻히긴 했지만 초윤은 오가는 언쟁을 쉽게 알아들었다. 더불어 어느새 객잔의 주위를 에워싼 관중들이 목소리를 낮춰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화산파랑 종남파야? 이젠 저 무복만 봐도 가슴이 떨린다니까.”

“화산파는 몇 년 전부터 조용했는데 요즘은 종남파가 문제야, 종남파가. 주막 하나 다 박살 낸 지 얼마나 됐다고 애먼 객잔에서 싸움질을 한대.”

“아이고, 저걸 어째. 남아나는 게 없게 생겼네.”

엄연한 민간인의 거주지에서 칼부림을 하는 무림인이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의 싸움이 격렬해질수록 구경하는 사람들은 탄성을 높이고, 객잔의 주인으로 보이는 가족은 바깥으로 쫓겨나 바닥에 주저앉은 채 자신들의 재산이 박살 나는 모습을 허망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초윤은 가까운 곳에서 여관을 찾을 마음을 깔끔히 접었다. 그리고 잠시 고민하다가 사람들 너머로 지그시 내공을 뻗었다. 일반인을 스쳐 지나간 기운은 반구 형태의 뚜껑처럼 펼쳐져 두 무리의 무림인들을 부지불식간에 감쌌고, 곧 목소리를 변조한 전음(傳音)이 그 안을 사방팔방 튕기며 돌아다녔다.

어디서 누가 말하는 건지 알 수 없도록 앞, 뒤, 상, 하, 좌, 우에서 같은 소리가 들리도록 하는 전음의 응용 기술, 육합전성(六合傳聲)이었다.

“허억! 누구냐!”

“썩 나와서 정체를 밝혀라!”

번듯한 무복을 차려입고 비싼 진검을 뽑아 든 건장한 무림인들이 기겁을 하며 허공에 대고 칼을 들이미는 꼴은 꽤 우스웠다. 그들이 각자 다른 곳에 대뜸 칼을 들이밀자, 육합전성의 영역 밖에 있어 아무것도 듣지 못한 민간인들 틈에서 놀란 듯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초윤은 헛짓거리를 하는 정파 무림인들을 찬 눈으로 비웃고는 천오의 손을 잡고 몸을 돌렸다. 무림인들이 있는 곳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천오가 저항 없이 따라오며 전음으로 물었다.

[스승님께서 하신 게 맞습니까?]

“…….”

어째 기시감이 들었다.

원래는 소란에 끼어들지 않으려 했으나, 무너지는 객잔을 보며 허망하게 주저앉은 가족들을 붙잡고 우는 열 살 남짓한 애가 가엾게 느껴져서 어쩔 수 없었다고 대답하기 곤란하기도 했다.

초윤은 비교적 한적하고 고급스러운 거주 구역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말을 돌렸다. 복작복작한 번화가에서 아이를 잃어버릴까 봐 저어되어 잡은 손에도 꼭 힘을 주었다. 그 아이가 올해로 열다섯 살이고, 초윤과 키가 거의 비슷해지고 있다는 사실은 안중에도 없었다.

[눈과 귀는 네게 세상을 가장 밀접하게 알려 주는 기관이다. 눈으로 보는 것과 귀로 듣는 것이 너의 삶을 이루니 가능하다면 좋은 것을 접해야 하지 않겠느냐.]

[예, 스승님.]

[그런 의미에서 타인의 갈등을 멀찌감치 구경하고 있지 말거라. 네가 개입해야 할 것 같으면 일찌감치 끼어들되, 아니라면 관심을 갖지 말란 소리다.]

천오는 언제나처럼 고분고분 수긍했다. 남의 일에 오지랖을 부릴 성격이 아니라는 것은 알지만 혹시 모르기에, 그리고 주제를 바꾸기 위해 시작한 말이 점점 길어지기 시작했다. 초윤은 시끌시끌한 난장판에서 빠르게 벗어나며 인생 경험에서 우러나온 절절한 교훈을 줄줄 이어 말했다.

[더불어 네 싸움에 상관없는 타인이 피해를 입어서는 안 된다. 특히나 그것이 네게 반항하고 대항할 수 없는 약자라면 더욱 조심해야 한다. 배우자와 다툰 뒤 아이에게 화풀이를 하는 것처럼 저열하기 짝이 없는 짓이지.]

[명심하겠습니다, 스승님.]

[너는 앞으로 더욱 강해질 것이며, 네 행보에 수많은 이들의 목숨이 결정될 수도 있다. 책임감까지는 아니어도 이를 경시하지 않도록 항시 주의하거라. 그것이 위에 선 자의 의무이며 도리다.]

이렇게 키워 놨는데 설마 정파 말살을 명령하던 염라군 주천오가 되겠나 싶었지만 대비해서 나쁠 건 없었다. 또한 천오 정도의 능력이라면 올바르게 자라도 언젠가 커다란 직책이나 역할을 맡을 것 같았고, 따르는 사람들도 많아질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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