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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 교주를 애지중지 키웠다 (79)화 (79/257)

79화

초윤이 천오의 옷자락을 부여잡고 문장이 되지 못한 말만 띄엄띄엄 토해 내다 결국 쓰러졌을 때, 천오의 머릿속은 혼란이 극에 달해 아예 멈춰 버렸다. 천오는 자신에게 기대 정신을 놓은 스승을 감싸 안고 주저앉은 채 뻣뻣하게 굳어 버린 입술을 달싹이다 간신히 말했다.

“……스승님?”

“…….”

“스승님…….”

축 늘어진 몸을 흔들어 가며 너덧 번을 애타게 부른 뒤, 천오는 천천히 이 상황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받아들여야만 했다.

하나, 스승님이 실신하셨다.

둘, 스승님이 위독하시다.

셋, 그리고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위중하신 스승님을 도울 수가 없다. 해독은커녕 독수(毒水)로 지은 요리를 드렸을 정도다. 그래 놓고서 함께 있게 해 달라 억지를 부렸고, 스승님께서 힘겹게 독물을 처리하시는 동안에도 불경한 생각만 떠올렸다. 자신이 이 사태에 일조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모든 게 자신의 잘못인 것 같았다.

항상 고고하고 단정했던 스승의 흐트러진 모습을 넘어, 아예 상상도 못 했던 나약한 일면을 충격적으로 접하게 된 탓에 더욱 논리적인 사고를 할 수가 없었다.

스승도 한계가 있는 인간이라는, 그리고 지금 제 품에 온전히 처우를 맡기고 있다는 어그러진 만족감을 인식할 틈도 없었다.

천오는 생각을 하고, 선택을 하고, 행동을 해야 했다. 하나라도 어긋나면 스승의 미약한 고동이 이대로 꺼질 것 같았다. 극도의 두려움이 천오를 덮쳤지만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순 없었다. 천오는 막막한 어둠 속에서 스승의 모든 언행을 거꾸로 되짚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그곳에 해답이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섬서…… 섬서성에.

실마리는 그리 머지않은 곳에 있었다.

어쩌면 스승님의 혜안을 단어 하나만 주워듣고 얄팍하게 해석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어쩌면 스승님의 의도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일 수도 있었고, 또 어쩌면 자신이 더 큰 잘못을 저지르는 것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천오는 이대로 스승을 업고 무심서로 돌아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애타게 기다리고만 있을 순 없었다. 아무것도 못 한 채 무력하게 숫자만 세는 경험은 일곱 살로 족했다. 무언가를 해야 했다. 무엇이라도 해야 했다.

천오는 스승의 등에서 흘러내려 바닥으로 떨어진 약함을 보았다. 조그만 칸에 넣어 두었던 금전이 충격으로 빠져나와 흩어져 있었다. 자신에게는 며칠의 노숙을 예상하고 챙겨 온 짐이 있었고, 스승의 약함에는 각종 약재도 가득했다.

강물은 이제 깨끗한 것 같았으며 스승의 손이 닿았으니 곧 모든 것이 괜찮아질 게 분명했다.

“그래서…… 가까운 마을에서 바로 마차를 대여했습니다.”

“……그래, 고생이 많았구나.”

“낯을 드러내길 저어하시는 것 같아 가까운 마을에서 면사와 죽립도 구했습니다. 함부로 스승님의 금전을 남용해서 죄송합니다.”

“아니, 잘했다.”

과연 이걸 잘했다고 해야 하나……. 초윤은 말하면서도 고민했다. 하지만 당시 천오가 처했을 상황과 느꼈을 감정을 생각하면 나름 잘 대처한 것 같긴 했다.

119로 구조를 부를 수도 없는 시대에 보호자가 풀썩 쓰러졌으니 얼마나 놀랐을까. 도움을 청하고 싶지만 누구에게 해야 할지 몰라 스승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만 믿고 무작정 길을 떠날 수밖에 없었겠지. 천오는 불안하고 걱정스러운 상황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것이었다.

게다가 자신이 깨어났을 때 펑펑 울던 모습을 생각하면…… 그래, 잘한 게 맞았다. 설령 못했어도 다그칠 수 없었다. 이건 스스로의 능력을 과신한 초윤의 실수였다.

초윤은 한숨을 삼키고 머리를 틀어 올려 묶었다. 그런 뒤 죽립을 쓰고 면사도 내렸다. 허리에 다시 검을 찰 때쯤, 번화한 도심의 소리가 지척에서 들려왔다.

마차에서 내린 초윤이 아이를 데리고 가장 먼저 간 곳은 사람이 붐비는 객잔이었다. 혹시나 싶은 마음에 자신이 깨어나길 기다리는 동안 식사는 했는지, 물은 마셨는지 묻자 식음을 전폐했다는 경악스러운 대답이 돌아왔기 때문이었다. 이에 초윤은 점잖게 아이를 훈계하며 괜찮은 밥집부터 찾았다.

와글와글한 객잔의 1층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은 초윤은 연이어 나오는 음식들을 마주 앉은 천오의 앞으로 밀어 주며 말했다.

“누누이 말하지만 어떠한 상황에서도 식사는 거르지 말아야 한다. 음식의 양분이 곧 네가 움직이는 힘이고, 생각하는 원천이다. 먹지 않으면 정작 필요할 때 몸을 움직일 수 없으며 논리적인 선택을 할 수도 없다. 알았느냐.”

“예, 스승님.”

“더군다나 너는 성장기가 끝나려면 한참 남았으니 더욱 신중을 기하는 것이 마땅하다. 다신 네 몸 망치는 짓을 하지 말거라.”

“……예, 스승님.”

고분고분 대답한 천오는 숟가락을 들어 고깃국을 떠먹었다. 완자와 고기, 떡을 넣어 오래 끓인 탕은 쌀 요리를 찾지 못한 초윤의 차선책이었다.

소리 없이 깔끔하고 바르게 식사를 하는 천오를 만족스럽게 보며, 초윤은 이제 이곳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했다.

‘천오는 내가 섬서성에 뭔가 할 일이 있는 줄 알잖아. 이대로 그냥 무심서에 돌아가면 분명 자기가 잘못한 거라고 생각할 게 뻔하단 말이지. 그러면 이렇게 된 김에 모란 표국에 들러서 사영이한테 답신도 보내고…… 아무래도 제갈설린이 주인공을 오해하지 않도록 좀 도와줘야겠어.’

이미 원작의 판도를 크게 바꿔 놓고 원작에 대한 애정도 별로 없는 초윤이 주인공을 도울 마음을 먹은 이유는 이번에도 철저히 개인적이었다. 4년 전, 주인공이 신물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팔아먹어 남매의 앞길에 꽃을 깔아 주었을 때와 일맥상통했다.

‘천오는 커서 복수를 하고 싶어 해. 그리고 복수의 대상은 백협맹의 썩은 세력과 마교야. 단순한 이분법으로 보자면 천오는 일단 정파에 속한다고. 그것도 완전히 주인공 편인 정파.’

서문세가의 멸문에 직접적으로 관계된 세력은 백협맹을 이끄는 남궁세가와 모든 일의 배후인 마교였다. 그리고 이들은 전부 원작에서 주인공의 손에 무너지는 역할이었다.

천오는 어렸을 때 마교에 납치되었기에 그곳의 일원으로 자랐지만, 구시대의 마교를 제패하고 사파의 다른 세력을 모두 흡수한 뒤 불어난 전력으로 정파를 덮쳤다. 온갖 정치적 노림수가 있었겠지만 결과적으로 복수는 마친 셈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초윤이 천오를 데리고 왔고, 또 건강하게 키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니…….

‘적의 적은 아군이라잖아. 주인공이라면 분명 천오의 복수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거야. 물론 주인공이 천오를 염라군 주천오와 연관시키지 않는다면 말이지. 이것도 잘하면 내가 해명할 수 있고…….’

문제는 바뀐 흐름이 주인공에게 영향을 끼쳤을 경우인데, 이는 제갈설린을 보러 가며 확인하면 될 것 같았다. 희가 간간이 전해 준 소식이 있어 주인공의 행동이 원작과 크게 어긋나지 않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번 기회에 한 번쯤 보는 것도 괜찮을 듯했다.

‘주인공이 벌써부터 허풍쟁이 취급을 받으면 곤란해. 그 애가 모은 후기지수들이 나중에 천오의 복수를 도와줄 올바른 젊은이들로 자라는 거라고.’

제갈설린과 주인공의 러브라인은, 음, 설린이에게 잘 얘기해 주자. 초윤은 속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행선지를 정리했다. 그때 입에 있는 것을 꿀꺽 삼킨 천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공교롭게도 초윤이 천오와 관련된 생각에서 완전히 벗어난 순간이었다.

“저…… 스승님, 그런데 이제 정말 괜찮으신 겁니까?”

“음?”

“중독 말입니다. 실신하실 정도로 힘겨워하지 않으셨습니까. 지금은 온전히 괜찮으신 게 맞습니까? 실내로 들어가 안정을 취하셔야 한다거나…… 누군가에게 보이러 가야 하는 것 아닙니까?”

기특하다……. 누구 아이인지 참 사려 깊고 귀엽다…….

초윤은 때도 잊은 채 속으로 헤벌쭉 웃었다. 자신이 쓰러졌을 당시에 어떻게든 도움이 되기 위해 노력한 것도 지금 보면 아주 대견했다. 이제껏 인성은 살짝 모자란 아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자신이 틀린 것 같았다. 선생님 걱정을 이렇게 하는 아이가 착하지 않을 리 없었다. 역시 염라군 주천오의 모습은 잘못된 교육이 불러온 폐단에 불과했다.

초윤은 벅차오르는 가슴을 애써 진정시킨 뒤 차분하게 말했다.

“한 번 걸린 뒤 무사히 낫고 나면 두 번은 걸리지 않는 병에 대해 가르쳐 준 적이 있었지. 무엇 때문인지 기억하느냐.”

“예. 몸이 병을 기억해 이전에 만들었던 약을 다시 지어 내기 때문이며, 이런 현상을 면역이라 하셨습니다.”

“그래. 독에도 이러한 면역이 일어날 수 있다. 그리고 나는 독에 대한 면역이 특출한 편이다.”

아마도 판타지에 가까운 무협이라서 그런 거겠지. 초윤은 홀로 납득했다. ‘초윤’처럼 무식하게 약초를 체험하며 독 면역을 기르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할 리 없었다. 하지만 ‘초윤’은 이를 해냈고, 초윤은 이제 더 이상 짐조의 독이 자신의 몸에 영향을 끼치지 못할 것을 직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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