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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 교주를 애지중지 키웠다 (71)화 (71/257)

71화

요리를 싫어하면 어쩌나 생각했던 것이 무색하게 천오는 열성적이었다. 초윤이 천오의 요리를 기꺼이 먹자 더욱 기뻐하는 것 같기도 했다. 손재주가 좋고 영리하며 예민한 감각을 가진 천오의 실력은 금세 일취월장했고, 반년이 흐르자 초윤처럼 약선 요리까지 넘볼 수 있게 되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천오는 초윤의 독특한 입맛을 길들이고 있었다. 그래도 삼시 세끼를 다 제자 손에 맡기고 싶진 않아서 저녁과 아침은 초윤이 준비했지만 점심만은 천오의 몫이었다. 초윤은 아이가 고른 약재가 적절했는지 살피거나 요리법을 고민할 때 조언을 주기만 했고, 천오도 그러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고기 한 점을 입에 넣고 씹자 연한 육질과 풍성한 풍미가 느껴졌다. 푹 쪄 낸 오리는 부드럽고 쫄깃했다. 함께 넣은 약재의 냄새는 입맛을 돋웠고, 적당한 기름기도 느끼하지 않았다.

초윤은 고개를 가만히 끄덕이고 말했다.

“황기와 해동피, 황정을 넣었구나. 잘했다. 네가 만든 것이 어떤 효능이 있고, 누가 먹으면 좋을 것 같더냐?”

“오리, 그러니까 가압과 황정에는 보허와 양음의 효능이 있으니 심신이 허하거나 양기가 왕성해 독이 되는 이들에게 좋을 듯싶습니다. 그 밖에도 혈을 보하고 전신을 활발히 돌게 하며 독기가 적고 오장을 편안하게 해 보신이 필요한 이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그래, 너처럼 한창 성장할 시기의 아이에게 좋지. 네 생각이 나서 사 온 것이니 많이 먹거라.”

“예, 스승님.”

누구 제자가 이렇게 말도 잘하고 영특하고 깜찍할까.

초윤의 눈에 천오는 아직도 귀여운 아이였다. 키는 육 척에 가까워지고 표정은 여전히 드물며 목소리까지 낮아지고 있다는 것은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오히려 튼실한 콩나물처럼 쑥쑥 자라는 게 기꺼워 한 달에 두 번씩 표국에 들르기 위해 산을 내려갈 때마다 바리바리 고기를 사 올 지경이었다.

초윤은 속으로 흐뭇하게 웃은 뒤 젓가락으로 밥을 조금 떠서 입에 넣었다. 입 안의 것을 꼭꼭 씹던 단정한 턱이 점차 느려졌다. 초윤은 슬며시 고개를 기울이며 밥을 삼켰다가, 돌연 얼굴을 굳히고 손을 들어 천오의 움직임을 막았다.

“잠깐, 멈추거라.”

“……스승님?”

막 식사를 시작하려던 천오가 한순간 전개된 초윤의 내공에 묶였다. 과한 압박감 없이 얇게 퍼진 힘이었지만 스승이 제 손목을 쥐기라도 한 것처럼 움직일 수 없었다. 천오는 그나마 자유로운 눈을 들어 스승의 안색을 살피고, 조심스레 물었다. 자신이 무언가 실수한 건가 싶어 두려워졌다.

초윤이 입 안에 남은 맛을 곱씹으며 들고 있던 손을 천천히 내리자, 밥그릇과 수저를 들고 있던 천오의 손 역시 실에 연결되기라도 한 것처럼 느릿느릿 내려왔다. 천오는 반항하지 않고 스승의 인도에 따라 들고 있던 것을 내려놓은 뒤 이어질 설명을 초조하게 기다렸다.

초윤은 무언가 확인하듯 꼼꼼하게 밥을 한 술 더 먹어 본 뒤 말했다.

“밥을 지을 때 무엇을 넣었느냐.”

“쌀과 잡곡…… 그리고 물밖에 넣지 않았습니다.”

“……오리찜을 먼저 하였느냐?”

“예. 밥보다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아서 오리찜을 먼저 불에 올려 두었습니다.”

“…….”

초윤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자 천오가 잔뜩 긴장한 채 상 위에 놓인 음식들을 살폈다. 평소 속을 잘 내비치지 않는 스승을 언짢게 한 원인이 여기 있을 게 분명한데 자신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답답하기만 했다.

잠시 고민하던 초윤이 입을 열었다.

“부엌에서 네가 한 일을 순서대로 말해 보거라.”

“예, 스승님. 먼저 약재와 오리를 손질하고 오리찜을 불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런 뒤 받아 놓은 물이 다 떨어져서 새로 길어 왔고, 쌀을 씻어 안쳤습니다. 조리가 될 동안 찬거리를…….”

“잠깐, 중간에 물이 다 떨어져서 새로 길어 왔다고?”

초윤이 수저를 탁 소리가 나도록 내려놓았다. 처음 만든 엉성한 요리를 드렸을 때도 볼 수 없었던 반응에 천오는 애가 타기 시작했다.

“스승님, 제가 무언가 잘못을…….”

“그런 게 아니다. 새로 길어 온 물을 마시거나, 밥을 맛보거나 하진 않았느냐?”

“……예, 그러진 않았습니다. 죄송합니다. 먼저 맛을 봤어야 하는데 스승님께 드리기도 전에 입을 대는 건 불경한 것 같아…….”

“그런 게 아니래도.”

단호하게 말한 초윤이 자리에서 일어나 천오의 곁으로 다가왔다. 동시에 천오를 옭아매고 있던 힘도 사라졌지만 움직일 마음은 없었다. 의자에 앉은 채 눈을 내리깐 천오의 어깨에 초윤의 손이 가볍게 닿았고, 곧 청량한 내공이 저항 없는 아이의 몸을 한 바퀴 돌며 샅샅이 훑었다.

“중독의 기운은 없구나. 쌀은 맨손으로 씻었겠지? 피부가 따끔거린다거나, 손끝이 저리는 느낌은 없었고?”

“예? 예, 없었습니다. 그런데…….”

중독의 기운이라고?

자신의 손을 살며시 잡아 꼼꼼하게 만져 보는 스승의 손길에 뻣뻣하게 굳어 있던 천오가 퍼뜩 고개를 들었다. 밥과 물에 관한 물음, 갑자기 굳어 버린 스승의 얼굴, 자신의 안위를 살피는 말. 조각조각 흩어진 패들이 빠르게 모여 하나의 결론을 완성했다.

천오는 새하얗게 질린 안색으로 더듬더듬 말했다. 어수선한 빈손이 매달리듯 초윤의 옷을 쥐었다.

“무, 물에 독이 있었던 겁니까? 제가 독이 든 물로 밥을 지은 겁니까? 스승님은, 그걸 드신 스승님은 괜찮으신 겁니까?”

자신은 몰랐다는, 고의가 아니라는 변명을 꺼낼 정신은 없었다. 그보다 중요한 건 스승의 안위였다. 스승의 밑에서 몇 년째 사사받고 있었으면서 눈치 하나 채지 못하고 뻔뻔하게 독을 드린 스스로에 대한 혐오감도 울컥 치밀었다. 천오는 한순간에 다시는 요리를 할 수 없을 정도로 타격을 입고 말았다.

“호들갑 떨지 말거라. 내게는 티끌만큼의 영향도 미치지 못하는 독이다.”

황망하게 부유하던 천오의 이성을 딱 잡아 누른 건 초윤의 엄격한 말이었다. 천오는 뻐끔거리던 입을 다물고 절박한 눈으로 스승을 살피듯 올려다보았다.

초윤은 힘을 주어 잡고 있던 아이의 어깨를 놓았다. 그리고 평소와 같이 차분한 표정으로 몸을 돌려 방을 걸어 나갔다. 따라오거라, 담담한 한 마디에 울 것 같은 얼굴을 한 천오가 그의 등을 쫓아갔다.

먼저 부엌에 들른 초윤은 구석에 있는 물 항아리의 뚜껑을 열고 소매를 걷어 손을 넣었다. 수면을 휘저어 보기도 하고, 항아리 안쪽과 바닥도 슥 만져 보았다. 그런 뒤 몸을 일으켜 손을 툭툭 털고 바깥으로 나섰다. 모아 잡은 양손을 불안하게 꼼지락거리며 부엌 문간에 서 있던 천오가 뒤를 따랐다.

초윤은 성큼성큼 걸어 무심서의 뒤에 위치한 작은 개울로 다가갔다. 어깨 높이의 바위 틈새에서 맑은 시냇물이 쪼르륵 떨어지고 있었다. 물이 맑고 담아 오기도 쉬운 위치에 있어 이전부터 무심서에 중요한 수원이 되어 준 실개천이었다.

그 앞에 당도한 천오가 작게 숨을 삼켰다.

“흡…….”

“…….”

물을 길어 올 때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개천 옆의 나무들이 어느새 갈색으로 시들어 있었다. 바위에 끼어 있던 이끼들은 까맣게 죽어 지저분하게 들러붙었고, 주변에 파릇파릇하게 자라 있던 풀들도 물러 터진 채 픽 꺾여 있었다.

오로지 깨끗한 물 한 줄기만이 처음처럼 맑은 소리를 내며 흐르고 있었다.

다시금 덜컥 겁이 났다. 스승은 괜찮다고 했지만 잠깐 사이에 산을 이렇게 망쳐 둔 독이 괜찮을 리 없었다. 천오는 스승의 등과 개울을 번갈아 바라보며 조마조마하게 가슴을 졸였다.

그때, 묵묵히 서 있던 스승이 손을 뻗어 쫄쫄 떨어져 내리는 시냇물을 손바닥에 담아선 망설임 없이 들이마셨다.

“스승님!”

“괜찮대도.”

독이 든 시냇물을 마신 초윤은 손등으로 입가를 닦았다. 보다 못한 천오도 스승처럼 흐르는 물을 마셔 보기 위해 손을 내밀었으나 초윤이 이를 막으며 말했다.

“아무래도 상류로 올라가 봐야겠다. 너는 물에 닿을 생각일랑 추호도 하지 말거라.”

“그렇게나 심한 독입니까? 그렇다면 저는 왜 괜찮았던 겁니까?”

“내가 너를 그리 키웠으니까.”

당연하다는 듯 돌아온 대답에 천오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 스승이 잡아 살폈던 제 손을 매만지며 다시 한번 꿋꿋이 말했다. 이대로 아무것도 모른 채 있을 순 없었다.

“제자에게도 기회를 주십시오, 스승님. 제가 감히 스승님의 입에 들게 한 독이 무엇인지 알고 싶습니다.”

“유별나기는. 속이 아직 여물지 못했으니 먹지 말고 닿지 말라 했을 뿐이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겠다 했느냐.”

초윤은 가벼운 발돋움으로 물이 흘러내리는 바위 위에 사뿐히 올라섰다. 그리고 천오를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산을 넘어 연파강으로 갈 것이다. 잘 쫓아오거라.”

“예, 스승님!”

득달같이 대답한 천오가 서둘러 바위를 딛고 스승을 뒤쫓았다. 처음으로 불귀 산맥에서 두망산을 벗어나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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