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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 교주를 애지중지 키웠다 (60)화 (60/257)

60화

그리고 작가의 편애가 듬뿍 담긴 묘사와 절체절명의 위기를 전부 읽은 초윤은 그가 마지막 보루로 남겨 둔 비밀도 알고 있었다.

‘나중에 보니 희가 걸을 수 없다는 것도 거짓말이었지.’

일어날 수 없다고 몇 번이고 못을 박은 캐릭터가 궁지에 몰리자 갑자기 벌떡 일어나선 사검으로 마교도들을 썰어 버리는 전개에 많은 독자들의 어이가 털렸었다. 정하윤도 이건 말도 안 되는 주먹구구식 전개라며 화를 냈었다.

하지만 미숙한 사이다 추구성 전개와는 별개로 ‘희’는 그 정도의 심략을 지닌 캐릭터가 맞았다. 이게 전부 초윤의 현실에 구현된 이상 〈귀환영웅〉만을 떠올리며 우습게 볼 순 없었다.

“그런 사람이 너를 직접 가르치고 싶다고 하는 것이다. 네 인생은 아직 한참 남았으니 일생일대의 기회라고 할 순 없지만, 네게 커다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일임은 분명하다.”

“…….”

“사영아, 손을 이리 다오.”

초윤이 양손을 사영에게 조용히 내밀었다. 사영은 잠시 주저하다가 스승의 손바닥 위에 자신의 손을 겹쳤다. 초윤은 사영의 손을 모아 잡고 부드럽게 말했다.

“너는 영리하고, 상냥하고, 책임감이 있으며 야심을 지닌 사람이다. 나는 네가 내 무공이나 약학만을 전수받아 반드시 나와 같은 길을 걸어가길 바라지 않는다. 너를 제자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네가 잘하고 좋아하는 일을 했으면 하는 것이다.”

“……네, 스승님.”

“잠시 다른 사람에게 가르침을 받는다 해서 네가 더 이상 내 제자가 아니게 되는 것은 아니다. 안온한 일상이 그립다면 언제든 비녀를 쥐고 돌아와도 좋다.”

“…….”

“그러니 잘 생각해 보거라. 어떻게 하고 싶은지, 너는 무엇을 배우고 싶은지. 네가 바라는 것에만 오롯하게 초점을 맞추어 결정하거라. 어떤 선택을 하든 나는 그를 들어줄 것이다.”

그렇게 말한 초윤은 사영을 살며시 끌어당겨 품에 안았다. 하필이면 살갑지 못한 몸에 갇혀 제대로 안아 주지도 못했던 아이들이었다. 천천히 바꿔 나가면 된다고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것들이 이제 와서 어찌나 후회가 되는지. 접촉에 익숙지 못한 초윤도, 스승의 애정 표현을 처음 받아 보는 사영도 서로 어색한 포옹이었지만 차츰차츰 뻣뻣한 힘이 풀리며 잘 보듬어 안게 되었다.

“더욱 다양한 경험을 줄 수 있어 기뻐하기는커녕 내 곁을 떠날 수도 있다는 사실에 근심부터 앞서다니. 언제부턴가 너희들을 제자보다 자식처럼 생각하고 있었나 보구나. 너의 대성이 곧 나의 대성이고, 너의 행우가 곧 나의 행우다. 나는 걱정하지 마려무나.”

[사현이하고는 나 역시 이야기를 나누어 볼 테니 이 또한 우려하지 말고.]

“스승님…….”

사영의 목소리가 울 듯 말 듯 쪼그라졌다. 초윤은 아이의 등과 머리를 도닥도닥 다독였다.

“희는 대단한 사람이다. 내가 모르는 많은 것을 네게 가르쳐 줄 것이다. 내 제자라는 명패가 있으니 너를 함부로 대하지도 않고, 큰 위험에 빠트리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거짓말은…….”

“소소하면 거짓말이고, 장대하면 백년지계지. 너 스스로의 신조가 뚜렷하고 떳떳한 목표를 갖고 있다면 자격지심을 가질 이유가 없다. 사기꾼이 아니라 책략가라고 불릴 사람이 되면 될 일 아니더냐.”

당장 결정할 필요는 없다. 며칠 느긋하게 지내며 생각해 보자꾸나. 언제까지 답을 달라 하진 않았으니 괜찮을 것이다. 초윤은 갈팡질팡하는 아이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자신은 더 이상 품을 그릇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으니 종용하는 데에 거리낌이 없었다.

‘그래, 초등학교는 졸업할 때가 됐지.’

현대에서도 아무리 길어도 1년밖에 돌보지 못하는데 무려 4년을 함께 지냈으니 충분하다 못해 차고 넘쳤다. 더군다나 사영이는 중학교도 넘어 고등학교에 들어갈 나이였다.

그래도 가슴 한구석의 허전함을 감추지 못해 쓴웃음이 나오려던 찰나, 허리 쪽에 작은 무게가 실렸다. 내려다보니 어쩐지 꿋꿋한 얼굴의 천오가 슬그머니 다가와 양팔을 벌리고 초윤의 옆구리에 찰싹 붙어 있었다. 사현은 그 뒤에서 음 소거 비명을 지르며 천오의 옷자락을 잡고 늘어지듯 말리다 초윤과 눈이 딱 마주쳤다. 초윤은 내심 웃음을 터트리며 한 팔을 빼서 천오를 안을 수밖에 없었다.

“너도 이리 오거라.”

엉거주춤 천오의 옷을 놓아주는 사현이도 불러 한가득 끌어안았다. 언제 이렇게 컸지. 어쩐지 벅차고, 뿌듯하고, 슬프고, 아쉽고, 미안하고. 온갖 감정이 뒤섞여 몰아치는 마음에서 명확한 문장으로 떠오르는 생각은 이것뿐이었다.

초윤은 그렇게 자신의 품에서 범람하는 아이들을 한참 안고 있었다. 평생 함께할 것 같았던 아이를 놓아주기에 하룻밤은 너무나도 짧은 시간이었다.

“조건이 있습니다. 이를 들어주신다면 따로 도움이 될 만한 것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그 말에 희는 잠시 눈을 크게 뜨다가 바닥을 짚고 초윤 쪽으로 상체를 기울였다. 감출 수 없는 흥분이 기쁘게 벌어지는 입술로 나타났다.

“예, 물론이에요. 무엇이든 전부 들어드릴 테니 말씀만 하세요.”

사흘 만에 희의 거처를 찾아온 초윤이 꺼낸 말은 꽤 좋은 소식이었다. 조건을 논한다는 것은 이미 수락할 생각이라는 뜻이었고, 약선이 직접 논하는 ‘도움이 될 만한 것’도 구미를 돋우기에 충분했다.

그동안 희는 같은 저택에서 지내는 초윤과 아이들의 행적을 일부러 보고받지 않았다. 여와에게도 쫓지 말라 말했다. 마룻바닥을 콩콩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소리는 알아챌 수밖에 없었지만, 약선 초윤은 시선을 떼면 바로 앞에 서 있어도 모를 만큼 기척이 없었다.

약선 초윤이 대성한 미무일식공은 자연과 자신의 기운을 동화시키는 무공이었다. 도심의 공기와 같아질 수도 있고, 숲속의 나무와 같아질 수도 있다고 했다. 초윤의 출생지나 성장 과정, 약학에 발을 들이게 된 계기, 인연이 깊은 사람과 스승까지 전부 꿰고 있는 희는 즐거운 마음으로 초윤의 말을 기다렸다.

그 ‘도움이 될 만한 것’이 자신이 아는 것이어도 좋고, 모르는 것이라면 더욱 좋았다.

초윤은 차분하게 눈을 내리깔고 입을 열었다.

“사영은 오성이 뛰어나고 독기가 있는 아이입니다. 어떤 것을 가르쳐도 금방 습득하고, 미흡한 부분이 있다면 밤잠을 줄여 가며 어떻게든 해낼 것입니다. 그러니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방법은 쓰지 마십시오. 이해를 못 하는 것이 있다면 무조건 따르라 하기보단 앞뒤의 상황을 잘 설명해 주시고, 아이의 의견을 묵살하지 말아 주십시오.”

“…….”

조건이라고 하기에 귀중한 것을 구해 달라거나 누군가를 배척해 달라 말할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약선은 더욱 소박한, 그러나 예상치 못한 말을 하고 있었다. 자신의 예견과 다르게 흘러가는 전개를 사랑하는 희는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럴게요. 반드시 소중히 하겠습니다.”

“……더불어 당신의 대계에 내 아이를 쓰고 버리는 부속품으로 사용해서도 안 됩니다. 앉은 자리에서 십여 년이 지나도록 무슨 일을 획책하고 계신지는 모르나, 아이의 능력을 빌린다면 그만한 대가를 정당하게 지불하셔야 합니다.”

희는 순간 꿈틀 경련한 입매를 빠르게 다듬었다. 흉터를 덧붙인 발목에 저절로 들어간 힘도 풀었다. 동요를 쉬이 내보이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속까지 평온한 것은 아니었다.

‘설마 알고 있나?’

하지만 어떻게?

모르는 일, 모르는 일, 알 수 없는 일의 연속이다. 희는 머릿속에 몰아치는 혼란과 낭패와는 별개로 두근두근 흥분하기 시작하는 가슴을 양손으로 꾹 눌렀다.

“예, 자숙자계할게요. 임 소저가 약선 대협의 제자라는 것을 잊지 않겠습니다.”

무엇보다 난 그 아이를 돕고 싶을 뿐이니까.

인재 욕심이라고 하기엔 약간 시꺼먼 탐욕에 가까웠지만 희는 능숙하게 스스로를 합리화했다. 그러자 이를 가만히 지켜보던 약선은 주섬주섬 갖고 들어온 나무 함을 꺼내 다과 상에 올렸다.

“이렇게 부탁만 드린다면 문주님께 이득이 될 것은 하나도 없으니, 제가 아는 한에서 최대한 준비했습니다.”

“아, 무슨 그런 말씀을 다 하세요. 저는 임 소저를 가르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대되는걸요.”

“아니요. 그 이외에도 한 가지 더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그렇게 말한 초윤은 나무 함의 뚜껑에 손을 얹었다. 이 안에는 세계의 시나리오를 통째로 바꿀 수 있는 물건이 들어 있었다.

그러나 이제 와서 본래의 흐름이 무슨 소용이 있나. 초윤은 이타적이고 배려심 깊은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의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양심을 버리고 세상을 엉망으로 만들 수도 있었다.

이건 일종의 뇌물이다. 내 아이들을 잘 돌봐 달라는 뜻을 담아 흰 봉투에 꽉꽉 눌러 담은 뇌물.

“사현도 함께 맡아 주십시오. 스승은 따로 찾아 붙이셔도 좋습니다.”

초윤의 마지막 청은, 초윤 스스로도 전날까진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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