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교 교주를 애지중지 키웠다 (59)화 (59/257)

59화

“약선 대협, 임 소저는 천재입니다. 문재, 무재, 그런 것을 떠나 다른 분야에 재능이 있는 사람이에요. 그리고 자신하건대.”

희가 자신의 가슴 위에 살포시 손을 올렸다. 망설임 가득했던 목소리는 언제 그랬냐는 듯 확신과 자신감으로 단단했다.

“저만큼 임 소저의 천재성을 피워 낼 수 있을 사람은 없을 거예요.”

“…….”

아, 젠장. 아니라고 말할 수가 없다.

초윤은 이곳에 온 뒤 처음으로 패배감을 느끼며 단정히 내려놓았던 양손을 맞잡았다. 나는 과연 사영이와 사현이를 잘 가르치고 있던 걸까. 어쩌면 현대에서 가져와 발전했다고 생각한 교육론들이 오히려 아이들의 발목을 잡게 된 건 아닐까.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사영이와 사현이는 무공에 재능 있는 아이들이 아니었다. 사영이는 몸이 날래고 똑똑하며 끈기가 있었지만 내력을 운용하는 능력은 평균을 약간 밑돌았고, 사현이는 타고난 힘이 좋았지만 영리하거나 섬세하진 않았다.

이를 어렵지 않게 눈치챈 초윤은 아이들의 교육 커리큘럼을 조금 더 조정했다. 원래부터 무공 이외의 것을 많이 가르쳐 주려 하기도 했지만 아예 단련 시간을 오후 한나절에서 반나절로 대폭 줄였다. 아직 장래 희망을 결정한 것도 아니고 꼭 무림인이 될 것도 아니니 사고의 확장과 다양한 지식을 중점 목표로 둬도 괜찮을 것 같았다.

하지만 초윤이 배운 것은 어디까지나 초등학교 교사 수준의 교육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몇 년이 지나면 관련한 전공을 하지 않고서야 간단한 방정식 하나도 풀지 못하는 성인이 되는 것처럼 이젠 기억도 나지 않는 고등학교, 대학교 수준의 지식을 가르칠 수는 없었다.

즉 그 이상으로 전수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초윤’의 특기인 무공, 약학, 진법밖에 없으니 초윤의 밑에서 지금처럼 계속 자란다면 결국 어정쩡한 무림인밖에 되지 못했다. 그것도 ‘약선의 제자’라는 거창한 이름만 가진 무림인이.

그리고 희는 그 점을 파고들어 손을 내밀고 있었다. 스승을 부모처럼 떠받드는 세계에서 상식을 깨는 제안을 하고 있음에도 어디 하나 거리낌 없는 태도였다.

“임 소저의 새로운 스승이 되고 싶다는 말은 아니에요. 그저…… 몇 년 만이라도 곁에 두면서 제가 배운 것을 알려 주고 싶을 뿐이에요. 꼭 저를 위해 일하지 않아도 괜찮고, 지극히 무례한 말을 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으니 거절하셔도 괜찮아요.”

아마 희는 처음엔 기대했을 것이다. 욕심을 내던 인재가 위명이 자자한 초윤의 제자로 들어갔다는 말을 듣고 어떻게 자랐을지 궁금해서 한달음에 달려왔을 것이다.

하지만 곧 실망했을 것이다. 초윤은 사영의 특기를 피워 내기는커녕 알지도 못했으니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초윤과 척을 지게 될 것을 각오하고 이런 말을 꺼냈겠지. 잘 가르치면 초출한 사람이 될 것을 아는데 엉뚱한 스승 밑에서 허송세월을 하고 있는 것이 안타까워 끝내 어쩔 수 없었겠지.

“……대화를 나누어 보겠습니다.”

결국 초윤은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하고 사영과 이야기를 해 보겠다는 핑계로 자리를 뜰 수밖에 없었다.

이 참담하고 속상한 기분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았다.

초윤과 아이들은 붉은 자작나무 저택의 방 하나를 잠시 빌리게 되었다. 희의 방만큼 고가의 소품들로 꽉꽉 메워진 방은 아니었지만 당문에 있을 때 머물렀던 어떤 방보다도 사치스러웠다. 안내역으로 따라 들어온 여와는 부싯돌로 방에 있는 초에 불을 밝혀 준 뒤 나갔다. 희미한 기척을 추적해 보니 희의 방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화류목을 깎아 만든 이불장에서 비단에 솜을 틀어 넣은 금침을 꺼내 바닥에 깐 사영은 한참을 머뭇거리다 스승의 앞으로 다가갔다. 스승은 하오문의 문주와 대화가 끝난 뒤로 한 마디도 없이 창 밑에 앉아 바깥을 보고 있었고, 사영의 동생들은 그런 둘을 힐끔거렸다.

“저…… 스승님.”

사영은 조심스레 스승을 부르며 무릎을 꿇고 앉았다. 먼 곳을 보고 있던 초윤의 눈이 매끄럽게 돌아와 사영을 향했다.

“그런 몰상식한 사람의 말을 담아 두실 필요는 없어요. 저는 끝까지 스승님 밑에 있고 싶습니다.”

스승님께 다른 생각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주제넘은 참견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일렁이는 등불에 비친 초윤의 얼굴이 어쩐지 불안하게 느껴져서, 사영은 스승을 안심시키듯 말해 버렸다.

초윤은 사영을 가만히 바라보며 두어 번 눈을 깜빡이더니 드디어 입을 열었다.

“……홀로 생각한 시간이 너무 길었구나. 다들 이리 와 보렴.”

“네, 스승님.”

눈치만 보고 있던 사영의 동생들이 쪼르르 다가와 동그랗게 모여 앉았다. 초윤은 조금 긴장한 듯한 아이들의 얼굴을 찬찬히 눈에 담고 말했다.

“먼저, 나는 너희들에게 반드시 내 곁에서 내게만 배우라 말하지 않는다. 나보다 뛰어난 스승이 있다면 언제든 그리로 가도 좋고, 그렇게 해야 한다.”

“스승님보다 뛰어난 사람이 있을 리 없어요!”

“마, 맞아요!”

“아니, 그런 걸 말하는 게 아니다.”

초윤은 자신을 열성적으로 옹호하는 아이들을 황급히 말렸다. 이걸 어떻게 말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아주 살짝 미간을 찡그리고 최대한 말을 골랐다.

“나는 다양하고 얄팍한 지식을 갖고 있을 뿐 모든 것에 통달한 사람은 아니다. 내가 모르는 분야에선 나보다 훌륭한 사람이 차고 넘칠 것이고, 이것은 누구에게나 통용될 정도로 당연한 사실이다.”

“…….”

“그리고 너희들의 재능을 알아주지 못하는 스승의 밑에 끝까지 남아 있는 것은 미련한 짓이다. 더 이상 배울 게 없고, 더 이상 가르칠 게 없으면 나와야지.”

“……하지만.”

사영이 손을 모아 잡고 매만지다 고개를 떨어뜨렸다. 사현을 구해 준 지금의 스승, 장위를 구해 준 하오문의 문주. 초윤이 남매를 살려 준 목숨의 은인이라면, 하오문의 문주는 사영이 이전에 버렸던 ‘인간답게 살 자격’을 다시 주워 온 사람이나 다름없었다.

실은 장위를 보았을 때부터 사영은 속절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이를 인정하면 자신이 정말 교활하고 비열하게 은혜도 모르는 인간이 되는 것 같아 거세게 부정하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저는 지금 스승님과 사는 것이 좋아요. 거짓말을 잘하는 법을 배워서 어디에 쓰겠어요. 저는 그저…… 지금이 좋아요. 매일이 꿈만 같을 정도로 즐겁고 행복해요. 그리고 이건 전부 스승님이 계신 덕분이에요.”

그래도 지금의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생활이 이상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았다. 언제나 살아남기 위한 가장 좋은 길을 찾는 데에 익숙했던 사영은 갈팡질팡하며 선택하지 못하는 스스로가 어색해 초조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동생. 내 동생이 있는데. 내가 혼자 떠난다면 동생은 괜찮을까. 절대 놓을 수 없는 소중한 혈육 또한 마음에 걸렸다.

초윤은 사영을 묵묵히 지켜보다가 차음막을 펼쳤다. 희와 여와가 이곳에서 오가는 이야기를 굳이 훔쳐 듣진 않을 것 같았지만 준비는 언제나 튼튼할수록 좋았다. 약선 초윤이 ‘희’에 대해 알고 있으며, 이를 아이들에게 전해 주었다는 사실은 아직 새어 나가선 안 됐다.

“사영, 하오문이 어떤 곳인지는 알고 있느냐.”

“……예, 이전에 광동성에 살 때 들은 바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오문의 주축이 되는 사람들이 기녀인 것도 알고 있겠지.”

“예, 알고 있어요.”

사영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초윤은 말똥말똥 눈을 뜨는 사현과 천오와도 한 번씩 눈을 마주친 뒤 목소리를 낮추었다.

“거대한 청루에서 기예를 갈고 닦는 기녀들은 대부분 관기(官妓)나 시기(市妓)다. 나라에서 운영하는 기원(妓院)이 키우고 관리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이지. 희는 이런 이들을 한 조직으로 묶어 멋대로 지시를 내리는데, 어째서 추포를 당하지 않는 것 같으냐.”

“그건…… 관리들에게 상납금을 바치기 때문이 아닙니까?”

“하나하나 상납금을 바치자면 하오문의 기둥이 뽑혀 나가도 부족할 것이다.”

사영은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하지만 우물 안의 개구리는 광활한 세상을 보지 못하듯 사영이 상상할 수 있는 규모에도 한계가 있었다.

초윤은 사영의 생각을 넓혀 주기 위해, 또 지금 찾아온 기회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알려 주기 위해 이번 한 번만 남의 비밀을 말하기로 했다.

“간단히 생각하거라. 그는 한낱 관리들이 감히 손대지 못할 위치에 있는 것이다. 나포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입에도 올릴 수 없는 사람인 것이다.”

“예?”

“희는 황실의 일원이다.”

순간 따라잡지 못할 정도로 아득히 높은 곳의 이야기를 들은 사영의 몸이 쩡 굳었다. 집안이 망해 빈민가에 흘러들어 와서는 황실과 상호 불가침의 관계인 무림에 한 발을 걸친 채 산에 콕 박혀 살아가던 아이들에겐 너무나도 머나먼 이야기였다.

하지만 평소처럼 잔잔하고 진중한 스승의 목소리가 사영의 이성을 붙잡았다. 사영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 이어지는 이야기에 집중했다.

“희는 현 황제의 혈육이며 친왕의 칭호까지 받았다. 태자는 아니어도 강력한 세력과 초출한 능력 탓에 본의 아니게 경쟁 구도에 놓였지. 황위에 뜻이 없다며 몇 번이고 사절했지만 아무도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런 그가 황실을 벗어나 자유롭게 살기 위해 어떤 선택을 했는지 아느냐.”

“……설마.”

“그래, 희는 성년이 되기도 전에 직접 발목을 베었다.”

운신이 불편해 무릎걸음으로 걷거나 여와의 도움을 받던 희의 모습을 떠올린 사영이 입을 떡 벌렸다. 황위 싸움을 하고 싶지 않다고 발목을 자르다니 지나치게 단호한 결정이었다. 하지만 하나하나 따져 보면 그만큼 살기 편한 길이 또 없었다.

일단 불법에 귀의한 게 아니니 재물과 권력을 계속해 누릴 수 있었다. 평생 걷지 못한다 한들 황실의 핏줄이 아닌 것도 아니니 업신여김을 받을 리도 없었다. 동시에 하늘에게 큰절도 올리지 못하는 사람을 황제로 올릴 순 없으니 황위 싸움에 휘말릴 걱정도 없었고, 걸을 수 없는 거야 본인의 지위로 가마나 다른 탈것을 이용하면 될 일이었다.

그리고 차지한 문파도 하필이면 ‘하오문’이었다. 설령 친왕이라는 정체가 들킨다고 해도 ‘나는 나라의 기녀들과 백성들을 관리했을 뿐인데 그 과정에서 멋대로 무림이 간섭한 것이다.’라고 변명하기 딱 좋은, 일반인과 무림인의 경계가 애매한 조직. 무림 문파라고 일컫기도 뭐하고 완전히 민간인의 조직이라고 하기도 어려운 경계에 놓인 곳.

만일 이것까지 전부 계산에 넣은 것이라면, 희는 실로 무서운 사람이었다.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