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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 교주를 애지중지 키웠다 (49)화 (49/257)

49화

“안에서는 화기를 금하고 있는 터라 횃불을 쓸 수 없습니다. 대신 야명주를 박아 두었으니 보기 불편하시진 않을 겁니다.”

“괜찮다.”

초윤은 가볍게 손을 젓고 안으로 들어갔다. 당염초의 말마따나 벽과 천장에 드문드문 박힌 야명주가 깜깜한 곳에서도 푸르스름한 빛을 내고 있었다. 그리고 공기 중을 떠다니는 독 기운이 강해서, 역시 천오를 데리고 오지 않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가장 가까운 단상으로 다가가자 유리병에 담긴 하얀 가루가 보였다. 야명주도 그렇고, 이 시기엔 구하기 힘든 유리병도 그렇고 거대한 세가는 역시 돈이 많구나 싶었다.

당염초가 여전히 소매로 호흡기를 가린 채 공손한 자세로 옆에 서서 독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이는 군자산입니다. 치명적이진 않지만 제조법이 비전으로 내려오는 터라 이곳에 두었습니다. 산공독의 일종인데 군자처럼 자비롭게 사람을 해치지 않고 내력만 흩어지게 만든다 하여 이런 이름이 붙었습니다.”

“양적이 있나?”

“예?”

“양적 말이다. 무게를 재는 숟갈을 가져왔느냐.”

“아, 예. 갖고 있습니다.”

당염초가 허둥지둥 소매 안쪽에서 계량스푼처럼 생긴 숟가락 꾸러미를 꺼냈다. 푼 단위의 무게를 재기 위해 만든 건지 아담하게 만들어진 게 딱 마음에 들었다. 초윤은 그중 가장 조그만 것 하나를 뚝 뗀 뒤 나머지를 당염초에게 돌려주었다.

“쓸데없이 야명주를 사는 것보다 유리나 도자기 양적을 만들 생각을 먼저 하거라. 네 집안에 널린 게 쇠도 녹이는 독인데, 하물며 산이라는 이름이 붙은 가루는 철을 녹슬게 한다는 것도 알고 있을 터인데 왜 여태 쇠 숟갈을 쓰고 있더냐.”

“예, 약선 어른.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쇠로 만든 계량스푼보다는 유리로 만든 걸 써야 변조가 잘 안 될 거예요.’가 저런 타박으로 나와 버렸다. 이런 걸 항상 갖고 다니는 것부터가 대단한 프로 의식이라는 걸 알고 있는데.

초윤은 내심 한숨을 푹 쉬고 손에 들린 조그맣고 오목한 쇠 숟갈을 만지작거리며 말을 이었다. 당염초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이곳에 있는 독 중 식물을 쓴 것은 전부 한 푼씩 받아 가겠다. 이 자리에서 맛보고 갈 생각이니 반출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예, 약선 어른. ……예?”

당염초가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들은 것처럼 어색한 얼굴로 고개를 기울였다. 초윤은 가타부타 대답하지 않고 군자산이 담긴 병을 들어 마개를 열었다. 좁은 병목 안으로 숟가락을 집어넣고, 가루를 소복이 뜬 뒤 입 안에 덥석 털어 넣었다. 옆에서 당염초의 소리 없는 경악이 들려왔다.

“어억…… 야, 약선 어른……!”

“…….”

백호철이 죽어 갈 때보다 더 당황한 당염초가 꺽꺽거리며 간신히 한 마디를 꺼내자 초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괜찮다는 듯 한쪽 손을 들어 보였다. 혀를 굴리며 맛을 보고 타액으로 가루를 녹이느라 입을 열 순 없었다. 독이 몸으로 천천히 스며들기 시작하자 초윤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약 향이 점점 진해졌다. 이윽고 침과 함께 입 안의 것을 전부 삼킨 초윤이 말했다.

“무엇이 다른가 했더니 영약을 썼구나. 사람에게 해를 가하지 않는다기보다는 해를 가함과 동시에 득을 주어 상쇄시킨다고 봐야 옳겠다. 내공이 흩어지는 건 어디까지나 부산물일 뿐이고.”

“야…… 약선 어른! 괜찮으신 겁니까! 이걸 그리 넙죽넙죽 드시다니요! 군자산으로 내공이 흩어지면 보름은 되찾을 수 없습니다!”

“호들갑 떨 필요 없다.”

당염초가 차마 초윤을 만지지도 못하고 어정쩡하게 손을 든 채 머뭇거렸다. 초윤은 가재 수건을 꺼내 숟가락을 한 번 닦고 다음 단상으로 걸음을 옮겼다. 독이 있는 동물의 내단을 이용한 것, 아니면 광물 독으로 제조한 것은 귀신같이 알아차리고 비껴갔다.

초윤이 관심을 가진 것은 오로지 식물성 독이었고 식물성 독의 대부분은 독초가 원료였으며 독초는 잘만 조절한다면 약이 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초윤’의 몸이 바라는 건지, 아니면 몸에 버릇이 남아 있는 건지는 몰라도 초윤은 이곳에 발을 들였을 때부터 빨리 이 독극물들을 먹고 싶었다.

‘이 망할 약초 오타쿠!’

이런 생각이 들어도 어쩔 수 없었다.

어떤 것은 온몸의 근육이 잠시 찌릿찌릿하다가 가라앉았고, 어떤 것은 인상이 찌푸려질 정도로 신맛이 났다. 고소한 냄새가 새어 나오던 피마자 독도 한 입 먹었다. 어떤 건 숟가락이 그대로 녹을 것 같아 입에 곧바로 붓기도 했다.

초윤이 먹는 독의 종류가 늘어 갈수록 붙따르는 당염초의 안색은 하얗고 파랗게 질려 갔다. 종국에는 시커먼 안색을 한 당염초와 대비되게 초윤은 멀쩡하기만 했다. 산공독을 여남 개는 먹은 게 무색하도록 잠잠하던 내력이 생기 있게 전신의 기맥을 돌았고, 약초를 막 짓이긴 듯한 향이 몸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초윤은 마지막으로 몇 년 뒤 당운금을 중독시킬 ‘석산’의 원형이 되는 독을 머금으며 조금 어이없이 웃었다.

‘약선 초윤’은 어렸을 때 산속을 헤매다 우연히 발견한 영약을 계기로 약초에 빠지게 되었다. 영약을 먹어 얻은 내공이 기본으로 깔린 덕분에 ‘식물의 강한 기운을 자신의 내력으로 치환하는 능력’이 있었는데, 이 말인즉슨 ‘기운이 강한 식물이 쓰인 독이라면 내력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러니까 식물성 독이라면 무엇이든 초윤의 한 줌 내력이 될 뿐이었다.

거기에 동물성 독이어도 금방 해독제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판타지 소설 속 독룡의 브레스처럼 몸속에서 온갖 독을 제조해 입으로 불어 적을 쓰러트릴 수도 있었다.

무림 고수인 만큼 검도 잘 쓰고, 진법도 잘 알았다.

게다가 아직 무서워서 믿기 싫은 특성도 있었다.

이게 무슨 과설정 캐릭터냐. 무협지 속 은거 기인의 설정이 다 거기서 거기 수준으로 과하다지만 이건 진짜 심하지 않냐. 소설에 잠깐 나오는 내가 이 정도면 잘 등장하던 마교 쪽 캐릭터들은 묘사되지 않은 설정이 얼마나 더 많다는 거냐.

아니, 오히려 소설에서 정해지지 않아서 이렇게 된 건가.

초윤은 입맛을 다시며 마지막으로 숟가락을 꼼꼼히 닦은 뒤 당염초에게 돌려주었다. 스스로의 스펙에 기가 막혀서 정신이 잠깐 나가 있는 사이 요동치던 내력이 잠잠해졌다. 프로토타입의 석산은 초윤의 몸에 일말의 해도 끼치지 못한 것으로도 모자라 조각조각 해체되어 사용 설명서까지 만들어지는 처지가 되었다.

사천당문에서도 감히 다루지 못해 고이 모셔 두기만 한 독의 제대로 된 제조법, 개량법, 해독법을 줄줄 읊는 목소리를 들으며 당염초는 마른침을 삼켰다.

‘만독불침, 아니, 그보다 더 질이 나쁘다.’

독이 통하지 않는 사람은 있을 수 있다. 정말 극히 드물게 독이 통하지 않을 정도로 강건하게 신체를 단련하는 외공을 배웠거나, 아니면 그보다도 드물게 막강한 경지에 이른 사람은 독을 물처럼 마시고도 멀쩡할 수 있다.

이것이 사천당문의 약점이다. 수많은 이들을 단번에 비명횡사시킬 수 있고, 독만 갖다 쓴다면 큰 배움도 필요로 하지 않아 간편하다.

하지만 일정 수준 이상을 넘어가는 무공을 지닌 사람에게는 애초부터 통하지 않는다. 하물며 마교에는 중원보다도 악독한 독이 많아 웬만한 것에는 내성을 갖고 있는 마교도도 적지 않다.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확률이긴 하지만 가끔 이런 상황이 닥친다면 사천당문은 어떠한 공도 세울 수 없었다. 나약한 촌놈들이라고 비웃음당하며 뒤로 물러나 졸개만을 해치울 뿐이었다.

그래서 사천당문은 철저히 다른 쪽을 공략해 자신들의 자리를 넓혔다. 교활한 기회주의자, 천박한 장사치라는 꼬리표가 붙는 것을 감수하고 독을 팔아넘기기 시작했다. 적절한 시기, 필요한 사람에게 막대한 금화를 받아 가며 적합한 효능의 독을 은밀하게 시장에 풀었다. 세상에는 온갖 이유로 필요한 살인이 많았으며 독은 언제나 좋은 수단이었다.

그 결과, 중원은 점차 사천당문의 독에 의존하기 시작했다.

강호뿐만이 아니라 독극물이 필요한 모든 세력이 사천당문에 청탁을 넣었다. 문을 걸어 잠갔던 지난 20년간은 물밑에서 심하게 난리가 벌어졌다. 당염초는 간사한 자들의 우두머리답게 구매자들의 애간장을 한계까지 태우다가 선심이라도 쓰듯 은밀하게 독을 내어 줬고, 이전보다 희귀해진 당문제 독의 가치는 하늘을 찔렀다.

이 과정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기밀’이었다.

당문은 독의 효능도 효능이지만 무엇보다 독의 제조법이 새어 나가지 않게 하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 아마 보안으로만 치자면 황제가 기거한다는 건청궁에 비견될 정도라고 자부했다. 기밀을 중요시하느라 제자들이 동기조차 못 믿게 하는 경쟁 구도를 만들었는데 어련할까. 악순환의 반복이었지만 사천당문은 선택지가 없었다.

그렇게 세가의 명예와 신뢰를 해치면서까지 지켜 낸 기밀이…….

‘소용이 없구나, 소용이 없어.’

어떤 도구와 방법을 써도 알아내지 못하게끔 쌓아 온 당문 수백 년의 저력이 저 한 입에 들통난다. 도대체 어떻게 살아왔으면, 무엇을 배워 왔으면 인간의 몸으로 저런 게 가능할까. 이젠 경탄을 넘어 경외심이 느껴진다.

약선은 사천당문과 상극이다. 당문의 무기가 아예 듣질 않으니 우화등선했다는 말이 들려오기 전까지는 경거망동하지 말아야 한다.

경합에 이어 이런 일까지 직접 목도하게 되자 저절로 다짐하게 됐다. 당염초가 이를 유훈으로 남겨야겠다며 혼자 끄덕이고 있을 때, ‘석산’의 해독법에 대한 설명을 마친 초윤이 돌연 말을 걸었다. 아무래도 당염초가 다른 생각에 빠져 있다는 것을 눈치챈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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