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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 교주를 애지중지 키웠다 (39)화 (39/257)

39화

“당 소저, 만독각은 당문의 일대제자도 장로님의 허락을 받아야 겨우 들어갈 수 있는 곳입니다. 아무리 약선 대협의 제자라고 해도 외부인은 출입하지 못합니다.”

“당 소저께서는 지학을 넘으신다면 충분히 들어가실 수 있을 겁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움……. 그럴까요?”

운금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만독각에서 아쉬운 눈길을 떼지 못했다. 이대제자들은 저마다 열심히 운금을 달랬는데,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사영은 솔직히 이 상황이 참 가소롭고 웃겼다.

후환이 두려워서 제대로 적의를 표출하지도 못하는 주제에 자존심은 하늘을 찌르는 애송이들과 아무것도 모르고 추켜세워지며 자라고 있는 금지옥엽 아가씨라니. 이대로 크면 다들 어떤 사람이 될지 꽤 궁금했다. 무슨 말로 초를 칠지 모르는 동생들만 아니었다면 이 상황을 꽤 즐겁게 지켜봤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때, 혼자서만 화가 잔뜩 난 것 같아 보이는 한 이대제자의 말이 사영의 관심을 끌었다.

“그리고 손님 분들께선 만독각에 별다른 관심이 없으실 겁니다.”

“네? 왜요?”

확신을 가진 듯한 말투에 사영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보았다. 그러자 그는 무슨 불구대천의 원수를 보는 듯이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적의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약선 대협의 제자가 아닙니까. 약선 대협께서 20년 전 칠보단혼산과 오독탈명단을 비롯한 우리 사천당문 비전의 독을 전부 파훼하시고 해독하신 건 이미 널리 퍼진 일이니, 제자 분들께서도 일찍이 배워 두셨겠지요.”

“⎯⎯⎯풉!”

사영은 애써 터지려던 웃음을 참았다. 스승의 과거 행적이 놀랍기도 했지만, 뭣보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한심한 인간이었다.

세가의 치부가 될 법한 일을 제 입으로 당당하게 말하는 멍청함, 약선의 제자들이 당연히 당문의 독에 대해 배웠을 것이라고 단정 짓는 자신감, 자신들의 독이 부족했다는 반성보단 파훼한 사람을 비난하는 옹졸함.

‘명문 정파 제자도 역시 별거 아니구나.’

지난번 화산파의 제자들도 그랬지만 20년이나 틀어박혀 수양을 한다고 해서 되는 사람이 있고 안 되는 사람도 있는 법이구나. 사영은 새삼스레 깨닫고 조금 유쾌한 기분이 되었다. 이 즐거운 기분의 기저엔 이렇게 으리으리한 곳에서 떵떵거리며 사는 인간들보다 우리 스승님이 더욱 강하다는, 조금은 치기 어린 과시욕도 자리 잡고 있었다.

아무튼 지금은 남들의 앞이다. 사영은 빠르게 웃음을 정돈하고 당운금에게 몸을 조금 숙이며 말했다.

“괜찮습니다, 당 소저. 저희는 소저께서 이렇게 훌륭한 전각들을 소개해 주시는 것만으로도 넘치게 감탄하고 있습니다. 금지(禁地)나 다름없는 당문을 이 두 눈으로 직접 보게 되어 영광스러울 따름입니다.”

“정말이요?”

“그럼요.”

애초에 우린 독을 배운 적도 없단다. 스승님이 그런 건 신경 쓰지 말라고 하셨거든. 막내 사제도 독보다는 약을 배우고 있고.

그 막내 사제는 으리으리한 만독각에 관심도 주지 않고 스승이 있다는 녹주각만 계속 힐끔거리고 있었다. 사영이 보기에 셋 중에서 가장 정신 연령이 어린 사현까지도 입을 헤 벌린 채 녹색과 붉은색으로 화려한 전각의 단청만 올려다보는 중이었다.

역시 이 중에서 시류와 상황을 파악하고 대처할 사람은 나밖에 없다. 사영의 입꼬리가 파들파들 떨렸다. 눈치 없는 남동생을 둘이나 둔 누나의 굴레였다.

운금은 사영의 말에 조그만 머리통을 주억이고 손가락을 하나씩 꼽았다.

“움, 그럼 이제 어딜 가야 하지……. 녹주각도 봤고, 녹옥각도 봤고, 목선각이랑 연령각도 봤고, 눈엽각도 봤고…….”

“이 이상 소저의 호의에 기대 돌아다니는 것도 당문의 분들께 폐를 끼치는 것 같습니다. 작은 방 하나만 내어 주신다면 스승님과 문주님의 담화가 끝날 때까지 얌전히 기다리겠습니다.”

녹색 좀 그만 보고 싶다. 구경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다 거기서 거기처럼 생겨선 현판만 다른 건물을 보면서 ‘우와’ 소리만 하는 것도 슬슬 피곤하다고.

속내를 숨기고 공손하게 말하자 돌아온 운금의 반응은 예상외였다. 아이는 낯빛을 환히 밝히고 몹시 기쁜 듯 말했다.

“그럼 혹시 그 방에 저도 함께 들어가서 이야기를 나누어도 될까요? 약선 대협의 제자 분들께선 분명 바깥에서 많은 일을 겪으셨겠지요? 저는 이곳에서 나가 본 적 없이 장로 할아버지와 어머님, 아버님의 이야기만을 들어와서 너무 궁금해요, 언니!”

“엇…….”

“안 될까요……?”

자신과는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란 귀한 집 아가씨인 건 둘째 치고, 사영은 이런 사람이 난생처음이었다. 어른에게 예쁨을 받아 각종 실속을 챙기기 위해서 살갑게 굴어 본 적은 있었다. 목적을 가진 채로 친근하게 다가오는 사람도 있었고, 업어 키운 동생도 바로 옆에 서 있었다.

하지만 자신보다 나이 어린 여자아이가 아무런 노림수 없이 ‘언니, 언니!’ 하고 부르며 귀엽게 보채는 건 겪어 본 적 없는 일이었다.

당문과 약선의 사이가 딱히 좋지 않다는 것도 모른 채 마냥 기대에 젖어 올려다보는 운금의 눈을 보자, 미처 생각을 하기도 전에 대답이 먼저 툭 튀어 나갔다. 자신이 내세울 만한 경험이라고는 광동성의 빈민가와 불귀 산맥밖에 없다는 것도 순간 잊어버린 듯했다.

“안 되긴요. 되지요! 소저와 이야기를 나눈다면 저희야 더할 나위 없이 좋습니다.”

“와아! 그럼 이쪽으로 오세요. 제 방으로 가요!”

일 났다. 곱게 자란 애한테 시장에서 생선 훔쳐 먹고 산 이야기를 해 줄 수도 없고, 남은 건 무심서 주변의 자연 풍경밖에 없는데 그걸로 어떻게 시간을 때우냐. 동생 놈들은 도와줄 생각도 없으니 결국 내가 다 떠맡아야 할 텐데.

사영은 운금의 뒤를 쫓아가며 난색을 삼켰다. 뒤따르던 이대제자들이 어디 감히 당 소저의 침소에 외부인이 들어가냐며 분통을 터트렸지만 받아쳐 줄 여유가 없었다. 어서 빨리 스승의 용무가 끝나 객잔으로 돌아갔으면 했다.

그리고 그때, 거짓말처럼 스승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구경은 다 했느냐.”

“스승님?”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자 몇 장 떨어진 곳에 기척 없이 서 있는 스승이 보였다. 지고 왔던 약함은 어딘가에 내려놓으셨는지 단출한 맨몸이었고, 죽립을 벗은 채 햇빛 아래 있는 모습은 정말 오랜만인 것처럼 느껴졌다.

제멋대로 입을 놀리던 당문의 제자들이 숨을 들이켜며 물러났다. 운금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꼭 쥐고 있던 사영의 소매를 놓았다.

다행이다. 저 아가씨의 방에 잡혀 있을 일은 없겠다. 사영은 감출 수 없는 기쁨에 활짝 웃었다.

“스승님, 용무는 전부 끝나신 건가요?”

“이야기는 끝냈다. 다만 조금 지체될 것 같으니 이리 오거라. 함께 있는 편이 차라리 낫겠다.”

스승은 가장 먼저 달려간 천오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어 준 뒤 잠시 뜸을 들였다. 변화 없이 무심한 얼굴이 조금 전의 자신처럼 난감해 보이는 건 단순히 사영의 착각일까. 사영은 운금을 돌아보고 꾸벅 묵례를 한 뒤 스승에게 다가가며 물었다.

“또 무슨 일이 생긴 건가요?”

“…….”

스승이 지그시 눈을 돌렸다. 그를 따라 시선을 옮기니 녹색 옷을 입은 사람들이 어쩐지 분주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운금과 사영을 따라다니며 귀찮게 굴던 이대제자들도 누군가의 부름에 헐레벌떡 어딘가로 달려갔다. 뭔가 아주 큰일을 준비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어진 스승의 대답에 사영은 놀라야 할지 기대해야 할지 모를 심정이 되었다.

“경합을 하게 되었다.”

20년 만의 경합. 사천당문의 설욕전이 될 수도, 또는 더 이상 만회할 수 없는 패배를 안겨 주게 될 수도 있는 일.

그렇게 중대한 사건이 갑작스레 벌어졌다는 것을 알리는 스승의 목소리는 언제나와 같이 지극하게 담담했다. 그 모습이 마치 인세의 소란과 혼란에 홀로 휩쓸리지 않는 선인과 같다고, 사영은 차오르는 기대감에 조금씩 두근거리는 가슴을 느끼며 생각했다.

이걸 어떻게 하면 좋냐…….

초윤은 눈엽각 앞의 널찍한 공간에 빠르게 마련되는 경합장을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경합장이라고 해서 거창하게 준비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대리석 판을 깔아 놓은 바닥의 한가운데 골풀로 엮은 넓은 돗자리를 펼치고, 그 옆에는 독을 제조할 수 있는 각종 기구들을 갖춰 놓은 뒤 몇 장 떨어진 둘레에 수많은 나무 의자를 두는 것으로 끝이었다.

해는 하늘의 정중앙에 걸려 있었다. 시간이 늦었으니 다음에 하자고 변명할 수도 없이 완벽한 햇살이었다. 초윤은 결국 상석에 마련된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신경을 써 준 건지, 초윤의 세 아이들도 가까운 곳에 앉아 한눈에 경합을 지켜볼 수 있게 되었다.

칠십 먹은 노인이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며 간절히 비는 통에 어쩔 수 없이 수락하긴 했지만 사실 스스로도 이게 잘한 짓 같지는 않았다.

‘경합이라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또 해독제를 만들어 달라는 건가? 만들 수 있으면 만들어 봐라, 이런 건가?’

가문에서 자랑하는 독이 일개 무림인에게 깨졌으니 어떻게든 갚아 주고 싶은 마음은 이해가 갔다. 하지만 수백 년의 경험으로 만들어 낸 독으로도 졌는데 지난 20년 동안 만든 게 과연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할까. 초윤은 조금 의아한 마음으로 경합장을 지켜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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