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화
“안심하십시오. 치료할 약을 가져왔으니 이리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소소라고 하셨습니까? 부스럼인지 아닌지를 판단해 드리겠습니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말했잖아. 나는 잠자리를 한 적도 없다니까?”
낙담이 섞인 분노로 씩씩거리던 소소가 치맛자락을 붙잡고 초윤의 앞으로 걸어왔다. 초윤은 조심스레 손을 뻗어 소소의 입술 가장자리에 번진 하감을 꼼꼼히 살폈다.
“잠자리는 같이 하신 적이 없어도 최소한 입맞춤을 해 보신 적은 있으실 겁니다. 맞습니까?”
“뭐? 그…… 그렇긴 한데.”
“양매창은 상대의 구강에 병소가 있다면 입맞춤만으로 옮을 수 있고, 궤양을 만지는 것만으로도 감염될 수 있습니다.”
“그런…….”
매독에 걸렸다는 확답을 받은 소소는 다리가 풀려 버렸는지 무릎이 꺾여 풀썩 주저앉았다. 바닥을 부유하는 눈은 순식간에 꺼멓게 죽어 버렸다.
초윤은 안타까운 마음에 잠시 입을 꾹 다물었다가 말을 이었다.
“모르시는 분이 많으나, 양매창은 몇 년에 걸쳐 네 단계로 나뉩니다. 첫째는 막 감염되어 가장자리가 단단한 궤양이 나타나는 시기입니다. 이때는 전염성이 아주 높으므로 타인과의 접촉을 최소화해야 합니다. 한 달가량 지속되다 사라지지만 절대 나은 것이 아닙니다.”
초윤이 말한 것과 같은 증상을 가진 여인들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들이라고 병에 걸리고 싶어 걸렸을까. 당장 기루에서 쫓겨날 생각, 온갖 비난과 인신공격을 받을 생각만 해도 눈앞이 캄캄했다.
“둘째는 궤양이 나타난 지 한두 달이 지났을 때 전신에 발진이 돋는 시기입니다. 손바닥이 울긋불긋한 것도 대표적인 증상 중 하나입니다. 입 안이나 국부의 점막에 농을 포함한 상처가 생길 수 있으며, 이때도 타인에게 병을 옮길 가능성이 큽니다.”
몇 명의 사람들이 치맛자락에 손바닥을 문지르며 울상을 지었다. 하지만 아무리 손을 씻고 닦는다 한들 피부 안쪽에 도사린 병증이 사라질 리는 없었다.
그다음, 초윤은 겉으로 보기엔 멀쩡한 사람들을 보며 말했다.
“셋째는 일명 잠복기입니다. 전부 나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병증이 속에 도사린 채 더 지독해져서 나타날 때만을 기다리는 시기입니다. 언제든 발진이 재발할 수 있고, 기간은 1년부터 20년까지 다양합니다.”
피부가 말끔하던 사람들도 참담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궤양과 발진을 이전에 겪었으나 다 나은 줄 알고 마음을 놓고 있었는데,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막 알게 된 탓이었다.
행수기녀 설도는 순식간에 핼쑥해진 낯으로 미간을 꾹꾹 눌렀다. 괜찮다고만 생각했던 사태가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아 머리가 징징 울렸다.
“마지막으로, 가장 치명적인 넷째입니다. 이 시기의 양매창은 여러분이 알고 계시는 증상과 일치합니다. 병이 심장과 뼈를 침투하여 중풍, 전신 마비, 치매, 발작을 일으킵니다. 덩어리진 염증이 전신 곳곳에서 나타나며 죽음보다 못한 삶을 살게 합니다.”
소소를 비롯한 몇 명의 사람들이 결국 눈물을 터트렸다. 문가에 꼿꼿이 서 있던 호위 무사가 어떻게 할 거냐는 듯 그들과 초윤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울릴 생각까진 없었던 초윤은 조금 당황한 마음에 허둥지둥 약함을 열어 가져온 것을 꺼냈다.
“사람들과의 접촉을 최소화하고 꾸준히 약을 먹으며 쉬신다면 나을 수 있습니다. 여기, 양매창에 듣는 환과 탕약재입니다. 천오야, 읊어라.”
“예, 스승님. 이 환은 우방자와 방풍, 백선피와 연교가 주로 들어간 창약이며 술과 함께 드시면 됩니다. 이것은 토복령과 금은화를 주로 넣은 해독탕이니 하루 세 번 달여 드시면 되고, 이 세약은 지골피와 창이자가 들어간 것이므로 김을 쐬고 목욕하여 땀을 내시면 되는데…….”
약함에서 약이 나올 때마다 또랑또랑한 아이의 목소리로 설명이 붙었다. 포장 안에 약방문을 전부 넣어 두긴 했지만 아무래도 말로 듣는 쪽이 신뢰감을 줄 것 같다는 계산 때문이었다.
현대라면 항생제 주사 한두 번으로 금방 나을 병이었지만 이곳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페니실린과 같은 약을 만들자니 푸른곰팡이를 배양해서 약 성분을 분리할 지식이 없었다.
초윤은 결국 차선책으로 ‘초윤’의 지식에 기대 매독에 듣는 각종 약을 만들었다. 사람마다 체질, 증상의 강도, 시기의 다름에 따라 맞는 약이 있어 비슷한 효능을 가진 수십 종류의 약이 필요했다. 그 밖에도 기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임질, 요도염의 약과 사면발니용 고약도 만들었다. 그야말로 이번 거래에 모든 정성을 다 쏟은 셈이었다.
이날, 초윤의 약은 약함이 거의 텅텅 비어 버릴 정도로 대성황을 이루었다. 초윤은 은자를 온전한 배 모양으로 몇 개씩 받아 챙겼다. 침통한 표정이던 환자들은 각자 처방받은 약을 품에 안은 채 등등하게 방을 나갔고, 행수기녀 설도는 효과가 없으면 혼쭐이 날 거라며 날카롭게 말한 뒤 초윤의 약을 보따리 채 챙겨 갔다.
마지막으로 호위 무사가 방을 나가기 전, 초윤은 그의 손에 몇 첩의 약을 쥐여 주었다. 눈만 내놓은 그는 손에 들린 약을 보더니 말했다.
“……전 아픈 곳이 없습니다만.”
“백복령과 대추나무, 인삼을 넣었습니다. 불면에 좋습니다.”
효능을 알리자 무사가 우뚝 움직임을 멈췄다. 어떻게 알았냐는 듯 눈만 들어 초윤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차가운 경계심이 가득했다.
초윤은 굳이 대답하지 않고 흐트러진 약함을 정리하며 말했다.
“값은 받지 않겠습니다.”
“…….”
한동안 초윤을 바라보던 남자는 다음에 다시 뵙겠습니다, 한 마디를 남기고 사라졌다. 약에 불평불만이 없는 이상 다시 볼 일은 요원하지 않나 싶었지만 으레 하는 인사라 생각하고 크게 여기진 않았다.
다음번에 만나면 다들 좀 친절해지려나. 열심히 만든 약이 효과가 있길 바랄 뿐이었다.
약을 다 팔고 나오니 장사하는 사람도 없는 아주 늦은 시간이었다. 기녀들은 실력 좋은 호위 무사의 보호를 받아 돌아갔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었지만 아이를 너무 늦게까지 깨워 둔 것 같아 조금 미안했다.
초윤은 극구 사양하는 천오를 품에 안고 하현달이 휘영청 뜬 밤길을 걸어갔다. 초윤의 등 뒤로 긴 달그림자가 졌다.
“음, 오늘이 네 첫 내진이었지. 감상을 들어 보자꾸나.”
기껏 사천까지 왔는데 온종일 나가 놀지도 못하고 고생만 한 아이에게 부드러운 말을 건네는 것도 잊지 않았다.
올해로 열한 살이 됐지만 발육은 열둘, 열셋 못지않게 훌륭한 천오는 초윤의 품에 이제 꽉 들어찼다. 내년만 되어도 이렇게 안기는 힘들 것 같았다.
그렇다면 지금 충분히 안아 주고 예뻐해야 나중에 아쉽지 않겠지. 안 그래도 주머니가 두둑해져서 기분이 좋아진 초윤의 발걸음은 아주 가벼웠다.
“……항상 그렇지만, 스승님의 박학하심이 경탄스러웠습니다. 그토록 무서운 병을 연구해 치료법을 발견하신 것도 대단했고, 납이 위험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내신 것도 놀라웠고…….”
사람들의 관심을 능숙하게 끌어모아 약을 파시는 것도 엄청났고, 궤양의 모양이나 발진의 형태만으로도 병을 알아내시는 것도 신기했고, 피부나 혀의 색으로 또 무슨 병을 앓고 있는지 맞추시는 것도…….
천오가 초윤의 옷깃을 만지작거리며 낯 뜨거운 칭찬을 줄줄 쏟아 냈다. 남의 지식으로 돈을 벌어 먹은 초윤은 지레 찔리는 마음에 서둘러 말을 덧붙였다.
“아니, 그런 것 말고. 고된 병에 걸린 이들을 치료하는 입장에서 느낀 것이 있지 않겠느냐.”
환자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내 병인 것처럼 성심성의껏 돌보겠다거나, 아니면 간단하게 안타까워서 돕고 싶었다거나. 그런 기특한 소감 말이야.
영상을 보고 느낀 점을 적으시오. 이런 것이 불가능한 이상, 초윤은 앞으로도 아이에게 최대한 많은 것을 겪게 한 뒤 그것이 생각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노력할 생각이었다. 어린아이의 사고 발달과 자아 성립에 도움이 되는 활동이었다.
하지만 천오의 다소곳한 대답은 이번에도 초윤의 예상을 와장창 깨트렸다.
“예, 스승님. 사내가 조신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큽! 흠, 뭐, 뭐라고?”
“사내가 조신해야 합니다.”
화들짝 놀라서 덜컥 사레에 들릴 뻔한 초윤을 아는지 모르는지, 천오는 눈을 똘망똘망하게 뜨고 자신감 있게 말했다.
“오늘 본 이들이 병에 걸린 것은 전부 염치도 모르는 사내가 득병한 사실을 숨기고 제 음욕만을 채우려 했기 때문 아닙니까. 무고한 사람들이 병에 걸려 고통받는 일을 줄이기 위해선 이를 경계해야 합니다. 여인에게는 이미 정절을 지키길 강요하고 있으니, 이제 사내만 몸가짐을 조심하면 됩니다.”
“그…….”
맞……맞나? 들어 보니까 틀린 말은…… 아닌 것 같기도 한데?
기대하고 있던 대답과는 아예 결이 달랐지만 그렇다고 틀렸다 말하기도 뭐했다. 초윤은 결국 아이를 둥개둥개 얼러 안으며 잘했다, 네 말이 맞다고 해 줄 수밖에 없었다.
‘전염병 대책이라고는 무림 고수가 되는 것밖에 없는 세계관에 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 뭐……. 원작 주천오도 여색을 밝히던 애는 아니었고.’
“그래. 모쪼록 네 반려 될 사람에게만 충실하려무나. 그것이 도리고, 의리를 지키는 것이다.”
당초 예정과는 다른 주제로 빠지게 됐지만 나름 잘 마무리한 것 같았다. 그런데 평소 같았으면 ‘예, 스승님.’ 하고 꼬박꼬박 대답했을 천오가 어째선지 조용했다. 의아한 마음에 살짝 밑을 내려다보니 아이는 입을 꾹 다문 채 초윤의 옷자락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천오는 초윤을 힐끔 올려다본 뒤 다시 시선을 내리깔고 우물우물 말했다.
“반려는…… 제게 너무 먼 이야기 같습니다.”
“아직은 멀게 느껴지는 것이 당연하다. 넌 열한 살이니까.”
“하지만 아무도 저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거 진짜 쓸데없는 고민일걸. 다 크면 얼굴이든 실력이든 충분하다 못해 넘칠 너한테 모자라는 건 인성뿐일 텐데 그것마저도 내가 이렇게 채워 주려 노력하고 있잖아.
초윤은 한 손으로 아이의 볼을 톡 건드렸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긴다면 상대 또한 너를 좋아하게 되도록 노력하면 되고, 생기지 않으면 혼자 살아도 될 일인데 무얼 벌써 그리 걱정하느냐.”
“…….”
잠시 침묵을 지키던 천오가 다시 슬그머니 시선을 들어 초윤을 올려다보았다. 까맣고 먹먹한 눈이 마냥 귀엽게만 보이는 건 자신만의 콩깍지가 아닐 거라며, 초윤은 나름 객관적으로 생각했다.
아이는 입술을 달싹거리더니 조그만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스승님은…… 저를 좋아하십니까?”
“……아무렴. 아끼고 있단다.”
초윤!!! ‘아휴, 그럼. 좋아하지. 천 번 만 번 사랑하지. 아이고, 내 새끼!’가 어떻게 ‘아끼고 있다’ 한마디로 일축되는 거냐!!!
하지만 속에서 천불이 이는 초윤과는 다르게 천오는 만족스러운 듯 헤헤 웃으며 손을 뻗어 초윤의 목을 끌어안았다. 평소에는 얌전하고 무표정하기만 하던 아이의 친근한 몸짓은 거의 파괴적이라고 해도 될 정도의 파급력이 있었다.
초윤은 잠시 뻣뻣하게 굳어 있다가 천오의 등을 부드럽게 쓸어 주며 걸음을 재촉했다. 헤실헤실 풀어지지 않는 얼굴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감사하게 여긴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