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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 교주를 애지중지 키웠다 (23)화 (23/257)

23화

“다들 잠시 이리 오렴.”

초윤이 아이들을 부른 건 늦은 해시(亥時), 잘 준비를 전부 마친 아이들이 운기조식을 전부 마무리 지었을 때였다. 스승이 흐트러진 약함을 정리하고 자신들을 부르자 아이들이 옹기종기 다가와 근처에 앉았다.

“아무래도 일정을 수정해야겠다. 원래는 이 서안에서 필요한 것을 사고 다시 돌아갈 생각이었지만, 잠시 사천에 가야 할 일이 생겨서 말이다.”

“사천이요?”

사천에 가고 싶다며 노래를 부르던 사영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래. 당초 예정보다 오래 걸릴 것 같지만 너희들이 가기 싫다고 한다면 다음으로 미루겠다. 아니면 너희들은 먼저 무심서에 돌아가 있어도 좋고.”

“싫을 리가요. 저는 같이 가고 싶어요!”

“저……저도.”

“천오는?”

“스승님이 가신다면 저 역시도 따르고 싶습니다.”

일단 말을 꺼내긴 했는데 잘하는 건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해서 이제 와 애들을 놓고 가기엔 다들 불만이 쌓일 게 뻔한 일. 그렇다면 차라리 확실하게 말해야겠다. 길어진 여행에 잔뜩 흥분한 아이들을 보던 초윤은 속으로 한숨을 푹 쉬고 조곤조곤 말했다.

“몸이 고될 수도 있고 무서운 꼴을 보게 될 수도 있다. 위험한 게 많으니 반드시 내 말을 들어야 한다. 특히 사영, 네 멋대로 동생들을 구슬려서 천방지축 행동하면 안 돼. 혼자서는 물론이거니와.”

“예, 스승님. 절대 안 그럴게요.”

“다시 말하지만 먼저 무심서로 돌아가 나를 기다려도 된다. 그리 오래 걸릴 일은 아니야.”

이렇게까지 말했지만 아이들은 눈을 반짝반짝 빛내거나 눈치를 보거나 묵묵히 있을 뿐 결정을 철회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결국 한숨을 삼키며 말했다.

“며칠 안으로 연락이 올 테니 그때까지 찬찬히 생각해 봐도 좋다. 이제 가서 어서 자렴.”

“평안한 밤 보내세요, 스승님!”

침상이 두 개 있는 방을 하나 잡은 덕분에 남매는 한 침상에 같이 자고, 천오는 따로 누웠다. 따로 재우자니 안심이 안 되고 같이 자자니 방이 작아 잘 봐 줘도 싱글 크기의 침대에 두 명이 구겨서 자야만 했다.

건강한 생활 리듬을 가진 아이들은 금세 잠에 들었고, 초윤은 아이를 불편하게 하기 싫어 그날 밤을 샜다.

잠자리 걱정을 할 일은 금방 없어질 것 같았다.

예상은 금방 맞아 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잠깐 스쳐 지나간 인연 같았던 난위정에게서 연락이 왔다. 아니, 난위정이 직접 찾아와 흥분한 얼굴로 말을 늘어놓았다.

“무려 일대제자 셋을 보내 준답니다. 솔직히 깃발만 빌려줘도 감지덕지라 여겼습니다만, 산을 넘는 것뿐만이 아니라 사천에 도착할 때까지 동행해 준다고 합니다!”

“잘됐다니 다행입니다. 대가는 어느 정도 지불하기로 하셨습니까?”

“그게…… 은자로 스무 냥입니다. 절반은 먼저 지급하고, 절반은 도착해서 주기로 했습니다. 당장은 손해지만 앞으로도 꾸준히 상행을 지원한다고 하니 장기적으로 보면 나쁜 거래는 아닌 것 같았습니다.”

난위정은 정말 그걸로 만족한다는 듯 순하게 웃었다. 그런 그를 잠시 보다가 고개를 끄덕인 초윤은 반대쪽 옆에 앉은 노인을 돌아보며 약이 담긴 죽통과 종이 한 장을 건넸다.

“풍열을 낀 슬통(膝痛)이니 하수오 환을 먼저 드리겠습니다만, 통증이 심해지면 이 약방문을 갖고 약방에 가셔야 합니다. 이 약을 달일 때는 창출을 가장 먼저 물에 넣고 팔팔 끓인 뒤 다른 약재를 넣으십시오.”

“어, 얼마를 내면 되겠는가?”

“석 달은 먹을 양이니 6문, 내진비는 1문이니 7문을 주시면 됩니다.”

통상의 의방이나 약방보다 저렴한 가격에 이빨이 숭숭 빠진 노인이 희희낙락하며 돈을 지불하고 절뚝절뚝 떠나갔다. 그 모습을 보던 위정이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그렇게 팔면 이문이 남습니까? 내진비가 1문에 하수오 환이 6문이라니, 들어간 약재 값도 안 남을 것 같습니다. 내진만 받아 가는 사람도 있는 것 같은데.”

“과한 욕심을 부리지 않는 것뿐입니다.”

애들 먹일 쌀 사러 내려온 거지 돈을 모으러 온 것도 아니고.

현대인의 관점으로 이 시대의 빈부 격차를 본 초윤으로서는 일반인을 상대로 한 장사에 도저히 높은 가격을 매길 수가 없었다. 제대로 돈을 벌 수 있는 약은 따로 있었고, 무엇보다도 내다 팔면 금 몇 관은 거저로 얻을 영약이 집에 쌓여 있어서 그런지 이 정도 일은 손해로도 느껴지지 않았다.

“흐음…… 그래도 아이 셋을 키우기 위해선 돈이 많이 들 텐데요.”

난위정이 말하며 사람이 북적거리는 시장 거리로 눈을 돌렸다.

초윤은 시장 한가운데의 평상에 지고 온 약함을 올려 두고, ‘내진(來診)’이라는 단어를 크게 써 놓은 종이로 등을 만들어 세워 둔 채 찾아오는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이 복잡하고 사람 많은 곳에 데려오면 내내 신경이 쓰일 것 같아 저녁에 데리고 나오겠다는 약속을 하고 객잔에 둔 상태였다.

“예, 먹는 값만 해도 상당량입니다.”

“그건 그렇더군요.”

숙취에 지끈거리는 머리로 일어났을 때 막내라는 아이가 먹은 식비를 듣고 얼마나 놀랐던가. 자그마치 장정 네다섯이 먹을 양을 열한 살 꼬맹이가 해치웠다고 했다. 위정은 경악했던 그때를 떠올리며 냉큼 대답했다. 물론 그 정도의 지출이 아쉽진 않았다.

“더군다나 서안의 약방은 심성이 암상궂은 편이라 모레쯤이면 훼방이 들어올 겁니다. 그러니 지금 번 돈을 전부 여비로 하여 다른 지역에 갈 예정입니다.”

“흐음…….”

위정이 주먹 쥔 손을 입술에 가져다 대며 고민에 빠졌다. 초윤은 그런 그를 죽립 밑으로 힐끗 보고, 약함을 정리하는 척 한 마디를 더 얹었다.

“약방에 약이 모자라지 않는 이상 떠돌이 약사를 환영하는 건 빈민들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낼 수 있는 돈에 한계가 있으니, 이 정도가 딱 적당합니다.”

“약방에 약이…….”

위정이 생각을 마친 듯 초윤을 퍼뜩 돌아보았다. 그리고 단정히 앉아 있는 그의 양손을 덥석 잡고 반색을 하며 말했다.

“형님, 이 위정과 함께 사천에 가시지 않겠습니까?”

“사천을…… 말입니까?”

“예, 사천에 가시지요! 사천은 지금 형님처럼 실력 좋은 약사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당문이 오랫동안 연을 이어 온 약재 상단과도 거래를 중단한 탓에 사천의 약계(藥契)는 전부 자급자족을 하게 된 지 오래입니다. 물론 저력이 있어 아주 위험한 정도는 아닙니다만 외부의 약에 비할까요! 형님이라면 분명 잘 해내실 겁니다. 그리고 막 자리에서 일어난 왕초와 장강도 계속 돌봐 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누가 상인 아니랄까 봐 말도 청산유수처럼 잘한다. 초윤은 재차 생각하며 양손을 잡힌 채 뻣뻣하게 고개를 돌렸다. 타인과의 친밀한 접촉에 익숙하지 않은 몸이 매우 어색하게 반응했다.

“음…… 하지만 산맥을 두 번이나 넘어야 하고 애들도 있는데.”

“대상단에 몸을 의탁해 가시는데 무슨 걱정을 하십니까! 화산파의 후기지수들도 온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녹림에게 눈이 있는 이상 건드리지 않을 것입니다.”

“…….”

튕기는 건 이쯤이면 됐나. 초윤은 잡혀 있던 손을 자연스럽게 놓고 허벅지 위에 올리며 자세를 바로 했다.

“그렇다면 단주님을 믿고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다만, 마냥 의탁하는 것도 면구스러우니 이번 상행에 한해 임시로 상단 소속의 약사가 되는 것은 어떨까 합니다. 급여는 받지 않아도 괜찮으니 아이들 식사와 잠자리만 챙겨 주십시오.”

“역시 형님이십니다. 더할 나위 없이 꼼꼼하시군요. 저야 형님 같으신 분이 제 사람들의 안위를 돌봐 주신다면야 감사할 따름입니다.”

위정이 넉살 좋게 말하며 웃었다. 초윤은 그 모습을 바라보다 근처에서 얼쩡거리는 손님을 불러 옆에 앉히고 문진(問診)을 한 뒤 말했다.

“그럼 해가 지기 전에 아이들을 데리고 단주님께서 머무시는 객잔으로 옮기도록 하겠습니다. 단주님은 준비할 게 많지 않으십니까.”

“아! 그렇지요. 이만 가 봐야겠습니다. 그럼 형님, 저녁에 다시 뵙도록 하겠습니다. 또 기절할 때까지 대작해 주셔야 합니다!”

술도 약하면서 그렇게 좋은가. 초윤은 손을 흔들며 멀어지는 위정에게 가만히 고개를 끄덕여 답했다. 섬서성에서 팔기로 생각한 것은 아직 한참 남아 있었다.

위정은 기분 좋게 웃으며 뒷짐을 지고 시장 바닥을 거닐었다. 햇볕에 타지 않은 고운 피부나 값비싼 옷, 비단 신발에 위정의 부유한 출신이 묻어났다.

되도록 위정과 마주치지 않으려 하는 인파 사이에서 그림자처럼 나타난 한 사람이 위정의 뒤에 붙어 나직하게 물었다.

“정말 화산을 데리고 사천에 들어가실 생각이십니까?”

“물론입니다, 조 무사님. 은 약간에 기꺼이 일대제자를 내준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걸로 진령 산맥은 기꺼이 넘어갈 수 있겠지요.”

“애초에 녹림은 문제가 아니지 않습니까, 도련님. 그깟 산적 패거리는 짐조단에게 한 입 거리도 되지 않습니다. 말씀 한 마디만 하시면 얼마든지 흔적도 없이 치울 수 있습니다.”

“도련님이라니, 오랜만에 듣네요.”

위정이 소리를 높여 명랑하게 웃었지만 지나가는 사람 아무도 그를 신경 쓰지 않았다. 조우일은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인상을 쓰며 볼멘소리를 했다.

“속하는 도대체 어째서 도련님이 녹림패 따위로 고민을 하신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추문이 생길 게 자명한 화산파를 끌어들이시는 것도 말입니다.”

“견문발검(見蚊拔劍)이라 하지 않습니까. 흔적 하나 남기지 않는 게 오히려 흔적이 될 수도 있습니다. 짐조단은 아직 나서면 안 되는 사람들이에요.”

이리 나온 것만 해도 충분히 과한 일이었다니까요. 쌓인 것은 위정에게도 많은 듯 퉁명스러운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는 곧 다시 웃으며 조우일을 돌아보고 양팔을 활짝 펼쳤다.

“약선입니다, 약선! 조 무사님, 그 약선 초윤이에요! 초윤을 사천의 땅으로 데려가는데 화산의 추문이 문제랍니까. 이 지긋지긋한 20년을 끝낼 기회라고요!”

“……정말 그가 맞는 겁니까? 약선이 애를 키운다는 말은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만.”

“그래서 더욱 재미있는 겁니다, 무사님. 그것도 끔찍하게 아끼고 있다는 게 훤히 보이지 않습니까.”

위정은 입을 가리고 쿡쿡 웃으며 몸을 돌려 앞으로 걸어갔다. 잠시 멈춰 서 있던 우일도 서둘러 그 뒤를 따랐다. 그의 도련님은 무엇이 그리도 즐거운지 손가락을 하나하나 꼽아 가며 혼잣말처럼 말했다.

“아버님이 말씀해 주신 그대로입니다. 하얀 옷에 낡은 약함, 그 자신이 영약인 것 같은 향기에 목소리까지. 머리카락과 아미는 보지 못했지만 마땅히 이유가 있기에 숨기는 거겠지요.”

“……죽립을 벗을 상황을 만들어 보는 건 어떻습니까?”

“아닙니다, 조 무사님. 이대로만 계세요. 모습을 보아하니 약선은 이미 얼추 알고 있을 겁니다. 더불어 그 꼬맹이들에게 순박한 숙부의 모습이라도 보여 주세요. 적어도 사천에 도착할 때까지는 한 치의 틀어짐도 있어선 안 됩니다.”

부모를 노리려면 아이를 공략하라고 하지 않습니까.

즐거운 듯 뒷말을 속삭인 위정이 기루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따라 부르며 나아갔다. 그 뒤를 묵묵히 지키는 조우일의 눈에 무감한 검은빛이 잠시 스쳐 지나갔지만, 곧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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