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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 교주를 애지중지 키웠다 (17)화 (17/257)

17화

“현아야!”

사영은 대경실색을 하며 계단 밑을 뒹구는 사현에게로 다가갔다. 아이는 정신을 잃은 듯 미동도 없었고 양 뺨에 이미 멍이 들어 있었다. 옷의 이곳저곳이 빨갛게 물든 것을 보아 피가 날 정도로 매질을 당한 것 같기도 했다.

“현아야, 현아야? 정신 좀 차려 봐. 응? 왜, 왜 여기 있어.”

“광이고 복도고 뽈뽈거리며 쏘다니는 꼴이 웃겨 내버려 두려 했건만 머무는 방까지 들어오려 하기에 잡았단다. 입으로 찍소리 하나 못 내면 뭐 하니. 기척이 이리도 시끄러운데.”

청년은 계단 위에서 남매를 내려다보며 사근사근 친근한 목소리를 냈다. 허둥지둥 사현을 끌어안고 뺨을 두드려 가며 아이를 깨우던 사영이 그 말을 듣고 번뜩 고개를 쳐들었다.

매서운 증오와 경멸, 당장에라도 뛰어 올라가 찢어 죽이고 싶다는 살의가 번들거리는 사영의 눈빛을 버릇없다고 생각한 청년이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손을 쓰려 했을 때.

죽은 듯이 늘어져 있던 아이가 피를 토했다.

“컥…… 끄윽, 흐어…….”

“현아야!”

숨통이 트였다고 안도할 일이 아니었다. 여섯 살 난 아이의 퉁퉁 부은 눈이 가늘게 뜨였다가 뒤로 넘어갔다. 폐에 뭉쳐 있던 검붉은 피가 작은 앞니를 적시고 입 밖으로 줄줄 흘러나왔다.

사영은 비명처럼 동생의 이름을 외치고 한 손으로 서둘러 아이의 옷깃을 헤쳤다. 그렇게 드러난 사현의 맨가슴은 눈을 뜨고 보기 힘들 지경이었다.

“이…… 이게…….”

어찌나 옹골지게 맞았는지 아이의 가슴우리가 울퉁불퉁했다. 어디는 움푹 들어가고, 어디는 툭 튀어나온 것을 보아 뼈가 부러진 것 같았다.

사영은 머리가 하얗게 비어 가는 것을 느끼며 이상하게 멍한 기분으로 동생의 맨 살갗을 더듬었다.

이 아이가 왜 여기 있지? 절대 따라오지 말라고 했는데 왜 여기 있지?

답은 금방 나왔다. 사영 자신 때문이었다.

사영은 동료들이 많아져도 오로지 사현밖에 믿지 않았다. 그래서 한쪽이 주의를 끌고 다른 쪽이 실속을 챙기는 양동 작전을 이행할 때는 꼭 사현을 데리고 다녔다. 남매는 한 몸처럼 잘 맞아서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사현은 무림인이라는 말을 듣고 사영 혼자서는 힘들 거라 생각해 스스로 행동한 게 분명했다.

이제껏 들어온 대로.

누나한테 배워 온 대로.

“이제 보니 다 알고 내게 접근했던 거로구나. 기특해서 화도 안 나는데?”

“요즘 어린아이들이 얼마나 영악한데요, 형님.”

“하기야 옥리 너도 만만찮게 빌어먹을 꼬맹이였지.”

피실피실 웃은 남자, 호관이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 사영에게 다가갔다. 사영은 동생을 끌어안은 채 그를 노려보며 뒤로 물러났지만 금세 벽에 등이 닿았다.

호관은 벽을 짚고 허리를 굽혀 사영을 가까이 들여다보았다. 역광 때문에 진 어두운 그림자가 아이 둘을 덮었다. 독하게 호관을 노려보는 사영의 얼굴은 자기도 모르게 흐른 눈물로 어느새 젖어 있었고, 그의 기세에 짓눌린 몸은 파들파들 경련하듯 떨렸다.

호관이 입술을 벌려 비죽 웃으며 한 손으로 사영의 얼굴을 쥐었다.

“이 조그만 머리통을 굴린 죄는 없던 걸로 쳐주겠다. 나는 네년의 입담이 마음에 들었으니 함께 가지 않겠느냐. 이곳에서 비루먹게 사는 것보다는 사정이 좋을 게다.”

말이 끝나자마자 벽을 짚고 있던 호관의 손이 사영의 얇은 손목을 낚아챘다. 하얗게 뼈가 보일 정도로 힘이 들어간 사영의 손에는 낡은 단검이 한 자루 들려 있었다.

“⎯읏!”

하지만 호관은 반사적으로 손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호관의 손목 안쪽 살점을 물어뜯은 사영이 사현을 데리고 빠르게 그의 그림자를 벗어났다. 사영은 입 안에 있던 호관의 피부를 퉤 뱉고, 피범벅이 된 입가를 옷소매로 슥 닦은 뒤 단검의 끝을 호관에게 겨누었다.

호관이 쯧 혀를 차며 몸을 일으켰다. 몇 번 주먹을 쥐었다 펴자 피가 멎었다. 사영의 눈은 여전히 빛을 잃지 않고 있었다.

“여기는 하오문의 영역이야. 제멋대로 날뛰다간 곤란할 텐데.”

“하!”

사영이 흔들리는 목소리로 짓씹듯 내뱉었다. 호관은 기가 찬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네가 하오문도라는 말이냐? 그렇다면 오히려 남궁을 적으로 돌려 좋을 일이 없을 텐데?”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내가 어느 쪽이든 당신은 곤란해질 거야. 민간인을 건드리면 황궁에서 가만있지 않을 테니까.”

“하하! 들었냐, 옥리야! 황궁에서 가만있지 않으신단다!”

크게 웃은 호관이 불시에 검을 뽑아 횡으로 휘둘렀다. 세찬 바람이 사영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날아갔다.

곧이어 뒤에서 쿵, 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사영은 뻣뻣하게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았다. 바닥을 나뒹구는 누군가의 머리통이 눈에 들어왔다. 머리는 한 바퀴 데굴 굴러 사영을 바라보았고, 안타깝고 다급한 듯 살짝 찡그린 표정을 하고 있었다.

머리를 잃은 몸의 무릎이 푹 꺾이더니 옆으로 쓰러졌다. 단면에서는 멎어 가는 심장 박동에 따라 피가 솟구쳤고, 식당에는 정적이 감돌았다.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주방을 나와 달려오던 젊은 숙수였다.

숨이 거칠어졌다. 남궁호관은 아무렇지도 않게 민간인의 목을 베었다. 이것은 즉 남궁세가의 세도가 황궁이나 하오문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될 만큼 창대하단 뜻이었고, 동시에 남궁의 인간들이 제대로 미쳤다는 의미였다.

이런 상황에서도 죽은 사람에 대한 미안함보다는 동생과 제 목숨을 살릴 궁리를 하는 스스로에 대한 경멸이 솟구쳤지만 꾹 눌러 참았다. 인간답게 살 생각은 진작 버렸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살아날 구멍이 없었다.

사영은 단검을 고쳐 잡아 사현의 목에 갖다 댔다. 정파라는 명분을 내걸고 잔악한 짓을 일삼는 이들의 손아귀에 잡히면 차라리 죽는 게 나은 꼴을 당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럴 바엔 차라리 죽어 버리자고, 자신이 없는 동생은 살 수 없을 테니 같이 죽어 버리자고 이전부터 다짐해 왔지만 자꾸만 손이 떨렸다.

더군다나 사현은 이제 살아날 길이 요원해 보였다. 이 자리에서 무사히 빠져나간다 해도 며칠을 아프게 앓다가 죽을 것 같았는데도 제 손으로 편하게 만들어 줄 수가 없었다.

사영은 결국 검을 떨어트리고 사현을 끌어안았다. 빌어먹을 세상에서 동생을 숨기듯 어떻게든 제 몸으로 사현을 덮으려 했다.

“하핫, 무슨 깜찍한 짓을 하나 싶어 가만히 두고 보았더니.”

호관이 다시 한번 가로 긋기를 하기 위해 검을 들었다. 사영은 형형한 눈으로 그의 발치를 바라보다 눈을 감았다. 오랫동안 새것을 사 입히지 못해 낡아 버린 사현의 옷 위로 눈물이 뚝뚝 번졌다.

죽는다면 악귀가 되어야지. 저 칼에 베이지도 않고, 찔리지도 않고, 불타지도 않는 악귀가 되어 전부 죽여 버려야지.

복수심에 찬 다짐을 하며 다가올 죽음을 기다렸다.

하지만 한참을 있어도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사영은 고개를 들었다. 미친놈처럼 번들거리던 남궁호관의 눈이 천천히 뒤집히더니 코에서는 두 줄기의 피가 흘러내렸다. 그는 그대로 검을 놓치고 뒤로 쓰러져 경련했다.

연이어 2층에 있던 남궁옥리 역시 실 끊어진 목각 인형처럼 계단으로 굴러떨어졌다. 식당 안의, 객잔 안의 모든 남궁세가 무림인들이 전부 신음 하나 내지 못하고 고꾸라졌다. 지독히도 비현실적인 장면이었다.

아무런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바닥에 널브러진 남궁세가의 사람들을 바라보던 사영의 어깨에 하얀 손이 닿았다. 턱을 치켜들고 위를 보자 자신을 굽어보는 연갈색의 눈과 마주쳤다. 신수의 터럭 같은 흰 머리카락이 뺨을 스쳤고, 약방에서나 맡는 약재 냄새가 풍겼다.

사영은 갑자기 나타난 백화인의 움직임을 멍하니 지켜보았다.

그는 숨이 넘어가기 직전인 사현의 입술 밑을 지그시 눌러 입을 열게 하고 그 위에서 주먹을 쥐었다. 그리고 무언가를 짜내는 것처럼 힘을 주자 검붉은 액체가 한두 방울 모여 그의 주먹 밑에 매달렸다.

액체는 그대로 사현의 입 속에 똑똑 떨어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현을 안은 사영의 팔에 거센 박동이 전해졌다.

쿵, 보다는 쾅, 이 어울렸다. 시체처럼 늘어져 있던 사현의 몸이 급작스레 요동쳤다. 사현의 고개가 뒤로 휙 넘어가더니 사지에 빳빳하게 힘이 들어갔다. 제멋대로 울룩불룩 나왔다 들어가는 갈비뼈가 보여 사영은 비명을 질렀다.

“이게 지금 무슨 짓……!”

“조용히. 낫는 중이다.”

그가 검지를 올려 사영의 말을 막았다. 낮은 목소리에는 묘하게 사람을 차분히 만드는 힘이 있어, 사영은 울컥 화를 내지 않을 수 있었다. 대신에 사영은 동생이 차가운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사력을 다해 작은 몸을 안았다. 우드득, 꾸드득, 끔찍한 소리가 가까이서 들려왔지만 이를 악물고 버텼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꿈틀거리던 사현의 몸이 잠잠해졌다. 부러져서 튀어나온 뼈는 온데간데없었고, 상처와 멍도 사라진 채 오히려 이전보다 좋은 혈색을 보이고 있었다.

뼈를 붙게 하고 살을 아물게 한 뒤 목숨을 이어 붙이는 약이라니.

이런 게 실존할 리 없었다.

사영은 더듬더듬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나은…… 나은 겁니까?”

살아난 건가요? 제 동생은 살 수 있는 겁니까?

목이 메어 다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겨우 품었던 희망은 단숨에 곤두박질쳤다.

“아니, 이대로라면 닷새 내로 죽는다.”

그의 목소리는 무심하고 단호했다. 곧 죽을 아이에 대한 동정심도 하나 보이지 않았다. 당연하다는 듯, 소용없다는 듯 단정 짓는 말에 사영이 말을 더듬었다.

“어…… 어째서.”

“내가 이 아이에게 먹인 것은 극독이나 다름없다. 이제 감당할 수 없는 기운에 몸부림치다 내장부터 타들어 가겠지.”

“어째서…….”

그렇다면 어째서 낫는다고 말하며 고치는 모습을 보여 준 거야.

사영이 망연자실하게 입술만 달싹거리고 있을 때, 그가 손끝으로 사현의 이마와 눈두덩을 쓸었다. 그의 손이 지나갈 때마다 아이의 찢어진 피부가 붙고 아무는 광경은 경이로웠다.

“이 독을 고칠 수 있는 이는 나밖에 없다.”

고요하게 말한 그는 사영의 손에서 사현을 넘겨받아 일어섰다. 급박했던 상황과 몰아치던 감정의 후유증으로 현실과 동떨어진 기분을 느끼던 사영은 불시에 품에서 동생을 빼앗기고 말았다.

그는 허둥지둥 일어나 손을 뻗는 사영을 내려다보며 통보했다.

“손을 대고 말았으니 책임을 지도록 하겠다. 따라오고 싶다면 마음대로 하도록.”

“……따라오라고?”

갑자기 나타나서 뭐라는 거야. 당신이 뭔데. 누군데.

따지고 싶었지만 말이 되어 나가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여태까지의 짧은 생애 동안 부단히도 사영을 지켜 주었던 본능이 말하고 있었다.

따라가라고. 이것만이 너와 현아가 살길이라고.

내가 미친 게 아닐까. 사실 이미 죽었고 짧은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닐까. 사영은 아연한 기분으로 자조하며 주위를 둘러보다가 바닥에 떨어져 있는 단검을 발견하고 집어 들었다.

식당 바닥에 고꾸라져 꼼짝도 하지 못하는 두 남궁인이 이어서 눈에 들어왔다. 동생을 안아 들은 백화인은 사영을 기다려 주지 않고 돌아선 채 구름 같은 걸음으로 식당을 나서고 있었다.

사영에게는 이 순간이 선택의 기로처럼 느껴졌다.

한 명은 사영과 사현을 겁박하며 종국에는 목숨을 끊으려 했고, 한 명은 사영이 아무것도 모른 채 끔찍한 식사를 하는 동안 사현을 죽도록 구타했다.

이제껏 해 왔던 대로, 지금까지 살아왔던 방식대로 행동하자면 자신과 동생에게 해를 끼친 저 두 사람이 무력화된 지금 그들의 목숨을 끊어야 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동생과 저 정체 모를 사람은 손 닿지 않는 곳으로 자취를 감추어 버릴 것 같았다.

그렇다고 해서 그를 따라가자니 모르는 것이 너무나도 많았다. 그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어째서 갑작스레 도와준 건지, 함께 가면 무엇을 시킬 것인지, 동생을 살리는 대가로 무엇을 요구할 것인지.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 차라리 여기서 남궁세가의 인물들을 죽이고 되는 대로 살아가는 편이 편할 것 같았다.

잠시 고민하던 사영은 몸을 돌려 그의 뒷모습을 쫓았다. 손에 쥔 단검을 버리지 않은 것은 마지막 보루였다.

강서단의 동료들, 구하지 못한 장위, 풍랑객잔의 사람들. 자신이 이 꿈을 따라가면 대신 화를 입을 사람들이 여럿 떠올랐지만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말했듯이, 인간답게 사는 것은 포기했다. 도타운 정을 주고받으며 신의와 도리를 지키고 책임을 다하는 고결한 인간이 되는 것은 진작 단념했다.

사영이 따르기로 결정한 것은 저 정체 모를 이가 아니라 사현이었다.

이 시궁창 같은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오로지 제 동생 하나뿐이었으니까.

<蛇英 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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