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교 교주를 애지중지 키웠다 (11)화 (11/257)

11화

“너 이상해.”

불만을 품은 목소리가 대뜸 들려왔다.

천오는 굽히고 있던 허리를 펴고 조금 어리둥절한 얼굴로 사영을 쳐다보았다. 지난번의 일 이후로 내내 못마땅한 얼굴이었던 사영은 이번에도 인상을 쓰며 눈이 마주치자마자 고개를 돌려 버렸다.

“너 이상하다고.”

“……예, 뭐.”

천오는 건성으로 대답하며 다시 허리를 숙였다. 종아리 절반까지 올라오는 물은 놀라울 정도로 맑아서 안을 헤엄치는 물고기가 선명히 보였다.

이렇게 잘 보이고 별로 빠르지도 않은데 왜 계속 놓치지. 미끌미끌하게 손안을 빠져나가는 느낌에 몇 번을 속았는지 모른다. 무릎과 팔꿈치까지 걷어 올린 무복은 이미 반쯤 젖어 있었다.

“너 같은 사람 잘 알아. 나 살던 곳에 많았거든. 너처럼 멀쩡히 생겨서는…….”

“누나.”

사영의 입이 점점 험해지자 모닥불에 물고기를 구우며 눈치만 보고 있던 사현이 그를 말렸다. 사영은 쯧 혀를 차며 비딱하게 앉아 있던 자세를 바로 해 앉았다.

“너도 쟤랑 너무 친하게 놀지 마. 나는 안 속아.”

“하지만 스승님이…….”

“스승님은 강하니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거야.”

조그만 꼬맹이가 뭔 짓을 하든 막을 수 있는 힘이 있으니까. 그런데 너랑 나는 아니잖아.

사영은 당사자를 앞에 두고도 태연하게 말하며 품속에서 조그만 소금 주머니를 꺼냈다. 그리고 한 꼬집 집어 자신과 사현 몫의 물고기 위에 뿌린 뒤 능숙하게 뼈를 발라내며 먹었다.

물론 아직 물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한 천오의 자리는 없었다.

스승의 이야기가 나올 때부터 다시 사영의 말을 주의 깊게 듣고 있던 천오는 물이 튄 뺨을 손등으로 문질러 닦았다.

면전에 대고 욕을 먹었지만 딱히 화가 나거나 억울한 마음은 들지 않았고, 굳이 인식을 바꿔 주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스승이 꾸준히 남매를 불러 자신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설득하고 있다는 것도 은연중에 눈치채고 있었지만 정작 천오 본인에게는 별다른 의지가 없었다.

그것을 사영 역시 알아차린 건지, 스승 앞에서는 그럭저럭 친밀해진 모습을 보여 주어도 그가 자리를 비우면 금세 냉랭하게 앵돌아지곤 했다.

그래도 스승이 노력하는 이상 천오 역시 손을 놓고 있을 순 없었다.

“봉밀을 마음대로 먹은 건 정말 죄송합니다, 사저. 다음번에 벌집을 발견하면 꼭…….”

“아니, 그것 때문이 아니라!”

사영이 왁 성질을 냈다가 속이 답답한 듯 제 머리를 풀고 마구 헝클였다.

스승님은 과연 저 모습을 알고 계실까. 전부 손안의 일이겠지. 그렇다면 이것은 자신이 해결해야 할 일이다. 천오는 남매를 바라보며 묵묵히 생각했다.

“아무튼 너한테는 뭔가 문제가 있다고. 그리고 그건 평생 고칠 수 없는 거야.”

“……글쎄요, 사저.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평소라면 그가 무슨 말을 하든 그러려니 하며 넘어갔을 테지만 이건 좌시할 수 없는 말이었다.

-근본적으로 네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너는 그저 덜 배웠을 뿐이야.

“저는 아직 생각이 여물지 않았을 뿐입니다. 앞으로 더욱 많이 배우고 노력할 테니 조금만 제게 기회를 주시면…….”

그때, 느슨히 늘어트린 손 밑으로 세찬 바람이 스쳐 지나갔다. 그와 동시에 무언가 수면을 헤치며 파고드는 소리가 들렸고, 조금 뒤늦게 아래를 내려다보자 손바닥만 한 물고기 한 마리가 작은 비도에 꿰뚫린 채 처절하게 펄떡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열한 살에 어울리지 않는 실력으로 비도를 날린 사영이 자리에서 일어나 바지를 탈탈 털며 말했다.

“말했잖아. 너 같은 사람들은 평생 안 변한다고. 그건 뭘 배워서 되는 게 아니야. 그냥 습성이고 본능이지.”

“…….”

“스승님 앞에서는 어쩔 수 없이 동생 취급을 해야겠지만 그 이상은 바라지 마. 내 동생한테 가까이 접근하지도 말고, 너 혼자 알아서 해. 그 정도는 할 수 있잖아?”

할 수야 있었다. 어렵지도 않았다. 오히려 또래와 어울리는 데 있어 이전에는 없었던 거북함을 느끼는 참이었다.

천오는 말없이 물속에 처박힌 비도를 꺼내 들었다. 날카로운 끝에 꿰인 물고기는 여전히 칼날을 벗어나지 못하고 퍼덕퍼덕 몸부림을 쳤다.

“그거나 먹고 기어들어 와. 난 너랑 같이 다닐 생각 없으니까 변명할 말도 만들어 놓고.”

그렇게 말한 사영은 사현과 함께 등을 돌려 멀어졌다. 사현은 막내 사제를 홀로 남겨 두는 게 마음에 걸리는 듯 자꾸만 뒤를 돌아보았다.

천오는 그 모습을 조금 멍하니 지켜보다가 찰박찰박 소리를 내며 물 밖으로 나갔다. 모닥불은 꺼지지 않고 피어 있어 식은 몸을 녹이기에 충분했다.

남매가 가고 나니 작은 폭포에서 물이 떨어지는 소리와 나무들이 바람에 웅성거리는 소리가 잡음 없이 들려왔다. 천오는 한결 편한 마음으로 방금까지 들어가 있던 폭포 연못에 시선을 주었다. 옥빛 물웅덩이가 폭포의 영향으로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었다.

‘변명이라면…… 나 혼자 늦게 돌아가는 이유인가.’

다 함께 물놀이를 하고 싶다며 사영이 낮부터 자신을 데리고 나온 것도 저 말을 전하려는 이유였을 게 뻔했다. 사영은 자신이 정말 마음에 안 든 것 같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관계를 개선해야 할 것 같았다.

스승이 아끼는 제자에게 미움을 받아서 좋을 것도 없고, 동정을 받으려 해도 스승이 자신의 편에 서리라고 확신할 수 없었다. 이곳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을뿐더러 물고기 하나 잡지 못할 정도로 약한 자신은 한없이 불리하기만 했다.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다가가면 경계심만 키울 게 당연한 일.

‘일단은 가만히 굽히고 있을 수밖에 없나.’

스승의 가르침대로 관계를 하나하나 따져 보던 천오는 결론을 지었다.

어느 정도 손이 녹자 사저가 남기고 간 비도로 물고기의 비늘을 벗기고 배를 갈라 내장을 꺼낸 뒤 뾰족하게 다듬은 나뭇가지에 꿰어 불 위에 올렸다. 사현이 하던 일을 눈대중으로 보고 따라 해 보는 것이었다.

사영의 경계심이 심한 건 이해가 갔다. 아직 직접 전해 듣진 않았지만, 사영과 사현의 언행이나 버릇으로 어느 정도 출신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분명 거리낌 없이 비속어를 쓸 정도로 거친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고 의지할 상대라고는 피붙이 하나밖에 없는 곳에서 살다 왔겠지.

그렇다면 편향된 것만 보고 자랐을 가능성이 컸다.

‘그러니까 틀렸어.’

스승의 말이 옳다. 자신에게 문제란 없다. 그저 아직 다 배우지 못해 부족할 뿐이다.

다 익은 물고기는 간을 하지 않아서 그런지 아무 맛도 나지 않았다. 크기가 작아 가시를 골라내는 것도 어려웠다. 대신 신선해서 그런지 씹는 식감은 마음에 들었다.

나는 언제쯤 사저처럼 무기 다루는 법을 배우게 되려나. 몸은 이제 거의 다 나은 것 같은데.

무심서까지 돌아가는 길은 조금 멀었지만 외우고 있었다. 중간에 다람쥐를 봐서 구경하느라 늦었다고 하면 될 것 같았다. 모닥불에 흙을 덮어 불씨를 끈 천오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문득 폭포의 위쪽에서 다각거리는 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천오가 고개를 들었을 때 눈에 들어온 건 네 개의 뿔을 가진 거대한 사슴의 형상이었다.

돌아가는 길에 억수 같은 비가 내렸다. 초윤은 꽉 찬 자루를 등에 메고 발걸음을 서둘러 산을 내려갔다. 무심코 일에 정신이 팔려 벌써 시간이 이렇게나 흘렀다.

애들은 오늘 낮 내내 얕은 폭포 연못에서 놀다가 온다고 했고 배고플 때 먹을 요깃거리도 준비해 두고 나갔지만 집에 어린애 셋을 둔 채로 마음 편하게 바깥에 있을 수 있는 보호자는 세상에 없었다. 그것도 물가에 가서 놀다 온다고 하지 않았나.

‘천궤산이 진짜 하늘의 궤짝처럼 보물 천지일 줄 누가 알았겠냐고.’

당초 목적은 애들 셋을 건강하게 키울 요량으로 ‘초윤’의 기억 속에 있던 약초밭을 다녀오는 것이었다. 하지만 도착한 천궤산, 불귀 산맥의 끝자락에 있는 불가침의 영역에는 약초라고 할 게 딱히 남아 있지 않았다. 대신 평범한 사람이라면 죽을 때까지 한 번 보기도 힘든 온갖 영약들이 잡초처럼 자라 있었다.

‘이게 다 뭐야. 자하신초에 금령과, 여래선과, 구엽신초에 백초실련과에…… 이름을 알 수 없는 것도 태반인데? 약선 초윤이 이름을 모른다면 세상에 안 알려졌다는 뜻 아닌가?’

만년하수오나 만년설삼은 너무 많아서 대충 정과로 만들어 먹어도 될 정도였다. 저도 모르게 흥분한 초윤은 개중에서도 내포한 내력이 강대하고 독과 부작용이 없는 것을 골라 자루를 가득 채웠다. 그동안 짧은 해는 금세 뉘엿뉘엿 넘어갔고, 변덕적인 요산(妖山)의 날씨가 마구 날뛰기 시작했다.

그래도 빗속을 헤치고 뛰어가는 초윤의 기분은 하늘을 찌르도록 좋았다. 애들에게 좋은 걸 먹일 생각을 하니 괜히 웃음이 나올 것만 같았다.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