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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 교주를 애지중지 키웠다 (10)화 (10/257)

10화

“어떤 상황에서도 내가 너를 버리고 외면할 일은 없다. 그 점만큼은 안심하거라, 천오야.”

“……예, 스승님.”

“대신에 내 물음에는 언제나 솔직하게 대답해 주었으면 좋겠구나. 그래야만 내가 네 상황을 알고, 전적으로 도울 수 있다. 알아들었느냐.”

“예, 스승님.”

아이는 한층 차분하게 대답했다. 초윤은 그런 아이가 기특하다는 듯 산바람에 흐트러진 아이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 주었다.

“그렇다면 고개를 돌려 앞을 보렴. 이만하면 네 속을 털어놓기 좋은 광경 아니더냐.”

“……와아.”

초윤의 말을 따라 미적미적 앞을 본 아이가 저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었다. 그만큼 눈앞에 펼쳐진 장관은 인간을 압도하는 박력이 있었다.

초윤과 천오는 숲속에서 불쑥 튀어나온 천인단애(千仞斷崖)에 올라서 있었다. 낭떠러지의 밑으로는 고산의 구름이 자욱했고, 거대한 산맥이 물 없는 계곡을 이루며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간혹 가다 새까만 몸통에 하얀 머리를 한 새 떼가 봉우리와 봉우리를 넘나들며 날아다니고 구름 바깥으로 튀어나온 높은 나무들은 바람에 잘게 흔들리면서도 굳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숨을 들이마시자 깨끗하고 시원하면서도 습기 어린 공기가 폐를 속속들이 채웠다. 자연 그대로의 현기가 몸을 한 바퀴 돌아 머리를 맑게 했다.

그야말로 운해(雲海)의 절경이었다.

‘그래, 이런 건 땅덩어리 스케일이 달라서 가능한 거지.’

초윤이 내심 흐뭇하게 웃으며 아이를 내려놓았다. 그런 뒤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절벽을 등진 채 단정히 무릎을 꿇어앉았다. 천오는 별다른 말이 없어도 주섬주섬 초윤과 마주 보는 자세로 정좌를 했다. 초윤은 먼저 아이의 긴장을 풀어 줄 요량으로 다른 주제의 이야기부터 꺼냈다.

“이곳이 마음에 들겠지만 내가 없을 때 함부로 찾아 나오면 안 된다. 반드시 나와 함께 와야만 하니 오고 싶어지면 언제든 말하거라. 내가 이 산이 어느 산이라고 말했는지 기억하고 있느냐.”

“예, 기억합니다. 두망산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 이곳은 불귀 산맥의 세 번째 산, 두망산이다.”

천오가 퍼뜩 고개를 들어 초윤을 바라보았다. 불귀(不歸) 산맥이라는 말에 무언가 생각난 듯 놀란 표정이었다.

“표정을 보아하니 불귀 산맥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 것 같구나.”

“예……. 유모가 가끔 해 주는 옛날이야기에 나오곤 했습니다. 하지만 정말로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한 번 들어가면 돌아오지 못한다는 뜻의 불귀 산맥은 속세와 가까운 순서대로 외공산, 재천산, 두망산, 원익산, 천궤산, 고도산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오래전의 자연이 훼손되지 않은 채 고스란히 남아 있어 각종 광물이나 약초, 영약이 넘쳐 난다 전해졌지만 아무도 감히 외공산을 넘어 산맥에 들어올 엄두를 내지 못했다.

바로 불귀 산맥에 드글드글하다 전해지는 요괴 때문이었다.

실력 있는 무림인들이 무리를 지어 들어가도 차원이 다른 힘에 절망해 살아 나오지 못한다. 사람을 홀리는 요물이 있나 싶어 진법가를 데리고 가면 얼마 지나지 않아 미쳐 죽는다.

이러한 선례가 거대한 소문이 되어 퍼져 있으니 주변의 심마니들도 굶어 죽을지언정 불귀 산맥에는 들어오려 하지 않았다. 각종 설화나 구전의 악랄한 악귀들은 전부 불귀 산맥에서 나왔다 되어 있었고, 죽이지 못할 죄인은 외공산에 던져둔다 했다.

그리고 초윤은 그런 불귀 산맥의 세 번째 산에 오두막을 지어 유유자적 살고 있었다.

“두망산은 그나마 조용한 편이지만 요괴나 요수가 많다는 건 사실이다. 너희들이 자주 다니는 곳과 무심서에는 기문진법을 쳐 두었으나 이곳은 아니지. 그러니 혹여라도 홀로 나와 헤맬 생각은 하지 마렴.”

다행스럽게도 ‘초윤’은 대책 없는 아동 방치범까진 아니었다. 오두막에 도착한 날 집 주변에 그나마 정성스레 쳐 둔 진법이 보인 덕분이었다.

그러고 보니 천오에게도 어서 장신구를 만들어 주어야 하는데. 초윤은 이미 수북한 할 일 목록에 하나를 더 추가한 뒤 고개를 주억이는 아이에게 본론을 꺼냈다.

“아까 나에게 잘못했다고 했지. 넌 네가 무엇을 잘못한 건지 알고 있느냐?”

“그건…… 전부입니다.”

천오가 다시금 어깨를 굳히며 고개를 숙였다. 초윤이 자신을 내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무엇이든 잘못했다며 빌었으나, 사실 천오는 일련의 행동 중 어떤 것이 문제가 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언제나 그랬다.

초윤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 말했다.

“실은 난 네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니 사죄를 받을 이유도 없지. 물론 동문을 호되게 놀래 줬으니 돌아가면 사과를 해야 할 테지만 근본적으로 네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너는 그저 덜 배웠을 뿐이야.”

“예? 하지만…….”

“말해 보렴, 천오야. 너는 무슨 저의로 사저와 사형이 올라간 나무에 도끼질을 했던 것이냐?”

우물쭈물하던 아이가 시선만 힐긋 들어 초윤을 바라보았다. 언제나와 같이 담담하기만 한 시선을 마주하곤 다시 고개를 푹 숙였다. 분명 사랑만 받고 자랐다고 했던 것 같은데 왜 이렇게 눈치를 볼까. 초윤은 설핏 불안감을 느끼며 끈기 있게 아이를 기다렸다.

오기 전에 미리 솔직하게 말해 달라고 얘기한 덕분인지 천오는 곧 입을 열었다.

“그 상황에서 함께 어울리려면 사저와 사형이 나무 아래로 내려오거나, 제가 올라가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큰 나무를 타고 올라갈 자신은 없어서…… 그들이 내려오게 하려고 했을 뿐입니다.”

“사영과 사현이 겁을 먹거나 다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느냐?”

“겁은…… 모르겠습니다. 사저와 사형은 몸이 날래니 나무가 쓰러져도 다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제가 그 나무를 정말 쓰러트릴 수도 없을 것 같았고요. 저는 그저…… 나무에 충격을 주어서 사저와 사형이 그 위에 계속 있지 못하도록 하고 싶었습니다.”

이럴 줄 알았다, 이럴 줄 알았어.

초윤은 자신의 몸가짐을 조심하려 애썼다. 행여나 얼굴을 찌푸리기라도 한다면 아이는 그를 기민하게 알아채고 평생 그 장면을 기억할 터였다.

의도하진 않았으나 아까 아이를 내려다보며 이곳에서 기다리라 한 것도 아이에겐 각인이 되었을 가능성이 컸다. 그렇다면 더는 쐐기가 될 경험을 안겨 주고 싶진 않았다.

천오는 소설 속 악역들이 흔히 갖는 속성인 ‘공감 능력 결여’나 ‘특정 감정 결여’가 있는 것 같았다. 전문적인 지식을 갖춘 것은 아니니 속단할 수 없었지만 적어도 염두에 두어야 할 것 같았다.

한두 살 정도만 되어도 곁에 있는 사람이 울면 괜히 따라 울고, 길을 막는 사람이 있으면 밀쳐 내는 대신 피하려 한다.

지성이 있고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생물은 다른 개체의 괴로움에 공감하고, 되도록 타인을 아프게 하지 않는 방향으로 행동하려는 본능이 있었다.

하지만 천오는 자신이 도끼를 들고 남매가 있는 나무를 내리찍은 행동이 그들에게 위협이 된다는 것 자체를 몰랐다.

‘그러면 천오는 위협이라는 감정을 못 느끼거나, 사영과 사현이 어떤 감정을 느낄지 아예 알 수 없었다는 건데…… 둘 다인가? 그럼 무엇부터 가르쳐야 하는 거지?’

아이의 정신적인 문제는 되도록 전문 기관을 추천하고 주선하는 것까지가 초등학교 선생님의 업무 영역이다. 이런 심층적인 카운슬링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 잘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초윤은 지끈거리는 머리로 올라가려는 손을 어떻게든 억제하며 얌전한 아이를 보았다. 골치가 아프다고 해도 이젠 무를 수 없었다. 끝까지 안고 가야만 했다.

일단 조금만 더 물어보자. 애가 겁이라는 감정을 모르는 것 같진 않던데. 초윤이 조곤조곤 말했다.

“사저와 사형은 네 행동에 겁을 먹었다. 왜 그런지 아느냐?”

“……나무에서 떨어질까 봐 그런 것입니까?”

“그런 것도 있지만, 네 행동을 위협으로 인식했기 때문에 충격을 먹은 게 더 크지. 천오야, 도끼는 흉기다. 사람을 충분히 해칠 수 있는 무기야.”

“하지만 저는 사저와 사형을 해칠 생각은 추호도 없었습니다!”

“그를 사저와 사형에게 말했느냐? 설령 네 힘이 미약했다 해도 말없이 흉기부터 들고 온 사람이 발밑에 있는데 겁을 먹지 않을 리 없지.”

그렇다면 먼저 말을 하면 괜찮았을까? 아이의 머리 굴러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렸다. 어떻게 해야 이걸 잘 설명할 수가 있냐. 초윤은 혀끝으로 입술을 적시고 말을 이었다.

“너도 내가 아무 말 없이 무작정 이리로 데려올 때 홀로 내 뜻을 가정하여 무서워하지 않았더냐. 뜻을 일러 주었어도 상세하지 않았다면 계속 오해했겠지. 너는 사저와 사형에게 방금 네가 겪은 것과 같은 짓을 저지른 거나 마찬가지다.”

이거 결국 나도 널 겁먹게 했으니까 미안하다고 해야 하는 거 아냐? 말하면서 동시에 제 말의 어폐를 알아챘다. 나올 리 없는 식은땀이 등을 주룩 흘러내리는 것 같았다.

재깍 사과를 하려 했지만 어째선지 아이가 ‘아, 그래서 그때……!’ 하는 것처럼 깨달음을 얻은 얼굴을 하고 있어 실수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초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말했다.

“그렇다면 어떤 행동을 취했어야 사저와 사형이 울지 않았을 것 같으냐?”

“상세하게…… 목적을 설명한 뒤 도끼를 가져갔어야 합니다.”

“발전했으나 마땅한 답은 아니다.”

그놈의 도끼에서 좀 떨어지라고! 누가 미래의 최종 악역 아니랄까 봐!

“만일 그랬다면 울진 않았어도 네게 마음의 거리를 두겠지. 사람에게 흉기를 들이댄다는 것은 그런 뜻이다. 그들하고는 앞으로 꽤 오랜 시간 동안 함께할 것 아니냐. 친밀하게 지내면 좋을 이들에게는 위협적으로 느껴질 행동을 기피하는 게 좋다.”

“……어려운 것 같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대응하는 게 그럼 쉬울 것 같더냐. 어떤 관계인지, 어떻게 되고 싶은지,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 조목조목 따져 가며 때에 따라 적합한 행동을 취해야 하는 게 인간관계다. 꼭 그렇지 않아도 행동하기 전에 결과가 어떠할지 충분히 생각하는 건 당연한 일이고.”

어린아이라고 이해하지 못할 거라 생각하면 안 된다. 아이를 대할 때는 물론 표현을 순화해야겠지만, 어른 쪽에서 아이의 수준을 가늠해 무작정 결론만을 강요하면 안 된다. 이유와 인과 관계를 충분히 설명하고 아이가 자발적으로 따르게 만들어야 정신적 성숙함을 이끌어 낼 수 있다.

그리고 양산형 소설의 등장인물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야말로 정신적 성숙함이다.

“가장 온건하게 어울릴 수 있었을 방법은, 네가 나무 위로 사저들을 따라 올라가는 것이었겠지.”

“하지만…… 저는 아직 나무를 타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나무를 탈 수 있게 될 때까지 다른 방식으로 그들을 내려오게 하면 되는 것 아니냐.”

아니, 그냥 평범하게 같이 놀고 싶으니 내려와 달라고 말하면 되는 거 아닌가?

당연한 것을 물어본다는 듯 대수롭지 않게 말하자 멍하니 초윤을 바라보던 천오의 새까만 눈에 반짝 빛이 돌았다. 순간 좋지 않은 예감에 초윤의 몸이 잠시 긴장했지만 애써 가라앉혔다.

‘설마 무슨 일이 있겠어? 위협적인 행동 자체를 하지 말라 했는데.’

“가르침에 감사합니다, 스승님. 다음에는 이러한 심려를 끼치는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돌아가면 사저와 사형에게 사과를 하거라. 사과를 할 때는 변명이 아닌 연유를 설명하고 앞으로는 어떻게 할 것인지를 말하며 용서를 구해야 한다.”

“예, 스승님.”

남매가 천오를 더 싫어하게 됐을 게 분명하니 사과를 한 뒤에도 따로 불러서 얘기를 해야겠지. 천오가 사과를 한 뒤에는 오롯이 보호자의 몫이었다. 아이들의 관계가 개선될 수 있도록 상세하게 오해를 풀어 주고 이해를 구해야 했다.

예민한 사영이가 보일 반응과 그를 달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머리가 아팠다. 이렇게 조그만 애가 벌써부터 뭐 이렇게 분란을 만드는지 모르겠다.

“시간이 많이 지체됐다. 돌아가자.”

초윤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천오도 재깍 몸을 일으켰다. 돌아갈 때는 좀 시간이 걸려도 걸어가는 게 좋을 것 같아 먼저 발걸음을 옮겼지만 뒤따르는 기척이 없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 싶어 뒤를 돌아보자, 천오가 낭떠러지 밑으로 펼쳐진 구름바다에 시선이 끌린 듯 우두커니 서 있었다.

‘마음에 많이 든 건가?’

초윤이 손을 뻗어 아이의 어깨를 살짝 짚었다.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돌려 올려다보는 새까만 눈에 초윤의 형상이 오롯이 비쳤다. 초윤은 아이와 눈을 마주치며 다정하게 말했다.

“다음에 다시 오자꾸나. 내가 널 데리고 오겠다.”

“……사저와 사형도 이곳을 압니까?”

초윤은 골똘히 기억을 되짚었다.

“산을 자유롭게 누빌 수 있는 부적을 주긴 했다만 이곳에 왔었는지는 모르겠구나.”

“스승님이 데려오신 적은 없는 겁니까?”

“그런 적은 없다.”

‘초윤’은 애한테 무공만 가르쳐 주면 알아서 쑥쑥 크는 사람인 줄 알아서 말이지.

남매와의 관계도 하루빨리 더욱 개선해야 했다. 초윤이 그들에게 도움을 준 유일한 어른이라고는 하지만 아직은 신뢰가 영 부족했고, 제대로 변명을 하려면 이제껏 신경을 크게 쓰지 않은 이유도 어서 만들어 내야 했다. 하여튼 할 일이 많았다.

‘초윤이 저지른 일 뒷수습도 내가 해, 작가가 쓴 글 뒷수습도 내가 해……. 이게 도대체 뭔 난리야.’

“스승님, 어서 가요.”

속으로 한숨을 푹 쉬고 다시 시선을 내리자 천오가 흙이 묻은 손을 탁탁 털고 있었다. 숲속으로 돌아가며 얼핏 뒤를 보니 바닥에 그려진 까마귀 오(烏)자가 보였다. 이 자리는 내 거라고 표시라도 해 둔 걸까. 초등학생들이 책상 지분 싸움을 하는 것처럼 귀여운 행동에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사건이 원만하게 수습되고 며칠 뒤 남매가 또 나무를 타며 천오를 놀렸을 때, 천오가 초윤의 가르침대로 ‘다른 방법’을 사용해 내려오게 한답시고 아이들이 꽁꽁 숨겨 놓은 봉밀(蜂蜜)을 그 밑에서 단지째로 퍼먹어 난리가 났던 건 나중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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