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되, 되게…… 예뻐하시는 것 같아요.”
“야, 그걸 말하면 어떡해!”
일 났다.
초윤은 속으로 제 이마를 부여잡았다. 애들이 뭘 배울지 몰라 대놓고 난감한 티를 낼 수도 없었다. 초윤은 애써 마음을 가다듬고 사현의 입을 틀어막는 사영을 말린 뒤 말했다.
“예뻐한다니.”
“예, 예뻐하시잖아요. 고…… 고기도, 바, 발라 주시고.”
“듣지 마세요, 스승님. 얘가 배가 불러서 그래요. 야, 입 다물라니까!”
“식사도…… 지, 직접 해 주시고.”
그건 ‘초윤’이고! 열한 살 애들한테 알아서 밥해 먹으라고 떠맡긴 무림인 초윤이고!
고만고만한 애들이 새벽 네 시부터 자기 몸보다도 큰 솥단지와 냄비를 들고 불이 활활 타오르는 아궁이 앞을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봤을 땐 정말 기겁을 했다. 허둥지둥 애들을 다시 재우고 초윤의 손으로 식사를 준비하기 시작했는데, 하필이면 천오를 데려온 시점과 딱 맞물려서 오해를 산 것 같았다.
아무튼 그런 초윤의 사정을 모르는 사현은 섭섭한 얼굴을 숨기지도 못하고 입술을 비죽거리며 고개를 푹 숙였다. 눈치가 빠른 사영은 동생을 잡아먹을 듯한 기세로 보호하고 있고, 어쨌든 진짜 일 났다. 초윤은 최대한 쉬우면서도 자세한 설명을 조합해 아이들을 어르고 달래기 시작했다.
“그 아이의 손이 아직 다 낫지 않았다. 상처에 음식물이 들어가면 덧나지 않겠느냐. 손에 감은 명주 천도 갈아 주어야 할 테고, 여러모로 잡일이 많아지지. 그렇다고 해서 같이 식사하는 너희들에게 시중을 들어 주라 할 수도 없으니 내가 했을 뿐이다.”
“……그럼, 손이 다 나으면 더 이상 고기를 발라 주지 않으실 건가요?”
“당연한 말을 하는구나. 스스로 먹는 법을 모른다면 가르쳐 주고, 알고 있다면 제 손으로 먹게 할 것이다.”
아이들의 표정이 조금 누그러졌다. 중요한 건 이제부터였다.
“스스로 밥을 짓게 한 것은 너희들이 식사를 짓는 노고를 알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그리고 내가 잠깐 자리를 비웠을 때 너희들이 혼자서도 충분히 생활할 수 있도록 하려 했지. 알다시피 나는 약을 팔기 위해 자리를 비우는 일이 종종 있지 않느냐.”
“아…….”
“그 목표는 만족스럽게 이룬 것 같으니 이제부터는 너희들의 성장에 뜻을 두고 내가 식사를 지을 뿐이다. 너희들이 너희 몸에 알맞은 약재를 넣어 요리를 할 순 없지 않더냐.”
“이…… 야, 약탕처럼 말인가요?”
“그래, 이 약탕처럼.”
초윤의 옆에는 두 개의 나무 욕조가 있었다. 욕조에는 김이 솔솔 피어오르는 투명한 갈색 액체가 가득 차 있었고, 주위로는 온갖 약재 냄새가 가득했다.
초윤은 약탕에 손을 넣어 온도를 가늠하며 말했다.
“아까도 일러 주었듯이 너희들은 오늘부터 매일 밤마다 약욕을 할 것이다. 물이 식을 때까지는 몸을 푹 담그고 있어야 한다. 욕조를 나오면 옆에 있는 깨끗한 물로 전신을 한 번 헹구고 깨끗이 닦은 뒤 들어가 자거라.”
“예, 예, 스승님.”
“네!”
물놀이라도 하러 가는 것처럼 신이 나서 무복을 벗는 아이들을 보며 초윤은 욕실을 빠져나왔다. 욕실이라고 해 봤자 오두막의 뒤편에 나무로 높은 울타리를 만들어 둔 것뿐이지만 아이들에게 공간에 따른 쓰임새와 개념을 알려 주려면 이런 식으로라도 구분을 할 필요가 있었다.
‘얼렁뚱땅 변명한 것뿐인데 다행히 잘 먹혔나 보다. 앞으로는 조심해야지.’
초윤은 내심 안도와 피곤의 한숨을 푹 쉬며 오두막 앞으로 터덜터덜 걸어갔다. 아이들이 보고 배울까 봐 한숨도 마음껏 못 쉬는 처지였다.
‘그래도 잘한 거겠지……. 앞으로 계속 같이 살게 될지도 모르는데 아니꼽게 여기게 되면 곤란해.’
사영과 사현의 세상에는 아직 서로와 초윤밖에 없었다. 초윤이 어머니고, 아버지고, 친구와 오라비면서 동시에 스승이었다. 그렇다 해도 본래 ‘초윤’의 성격상 어느 정도는 서먹할 수밖에 없었는데, 정하윤이 빙의하면서 분위기와 방침이 대폭 바뀌어 이전보다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관계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만큼 중요한 사람이 갑작스럽게 나타난 다른 아이한테 관심을 갖는다면 질투를 하는 게 당연했다. 부모의 관심이 갑자기 태어난 갓난아기한테 향했을 때 아이가 다시 관심을 받기 위해 문제 행동을 일으키는 건 아주 흔한 패턴이었다.
무엇보다 시기와 질투는 초등학생 나이의 아이가 능숙히 소화할 수 있는 감정이 아니었다. 그 사이를 조율할 사람이 초윤밖에 없는 만큼, 초윤은 자신의 모든 언행을 검토하며 조심해야만 했다.
아무튼 남매가 목욕을 하고 있으니 앞으로 반 시진은 별일이 없을 것이다. 초윤은 마음을 다잡고 무심서의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곧장 이상한 기운을 감지했다.
“깨어 있었구나.”
아이들의 약욕 물을 달이려고 나갈 때만 해도 저녁밥을 먹고 잠들어 있던 천오가 어느새 일어나 앉아 있었다. 그뿐이었다면 평소와 다르지 않았을 테지만, 언제나 멍하니 정신을 놓고만 있던 아이가 갑자기 무릎을 꿇고 앉아 허벅지에 주먹을 올려놓은 단정한 자세를 하고 있는 것은 확실히 이상했다.
초윤은 천오에게 사뿐사뿐 다가가며 말했다.
“무릎은 꿇지 말거라. 기껏 나아 가는 다리를 혹사시키고 있지 않느냐.”
“…….”
“내 일을 늘리려는 셈이 아니라면 어서.”
입을 뻐끔거리던 아이는 반박할 틈도 없이 이어진 초윤의 말에 결국 자세를 풀었다. 초윤은 그에 만족하지 않고 아이의 어깨에 이불을 둘러 준 뒤 그 앞에 정갈하게 앉았다. 그리고 먼저 입을 열어 운을 떼었다.
“할 말이 있는 거겠지. 해 보려무나.”
“…….”
목소리를 내기 힘들다면 입만 움직여도 좋다, 말하려는 찰나 머뭇거리던 아이가 천천히 바닥에 손을 짚고 몸을 숙였다. 불편한 자세로도 손등에 이마를 대고 깊은 절을 한 뒤 몸을 일으켰다. 그 후 아이의 입에서 흘러나온 목소리는 정말 오랜만에 말을 해서 그런지 땅을 긁는 듯 낮고 절절하게 음울했다.
“……선인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에 감사합니다.”
시, 신선은 아직 아닌데.
초윤은 불쑥 튀어 나갈 뻔한 말을 억지로 집어삼켰다. 어쩐지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누가 세계관 최종 보스 아니랄까 봐, 열 살도 되지 않은 새파란 어린아이의 분위기가 장난 아니었다.
‘아니, 그래도 진짜 신선은 아닌데. 나 이름 말하지 않았나?’
“가진 모든 것으로 보답해야 마땅하나, 비통하게도 지금 제게는 남은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한 주제에 감히 선인께 몇 가지를 여쭙고자 합니다. 심기 불편하시다면 부디 꾸짖어 주십시오.”
‘아니, 얘는 말투가 또 왜 이렇게 정중해? 누가 애한테 이런 말을 벌써 가르쳤어?’
초윤이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든 말든 천오의 질문은 한 박자의 틈을 두고 이어졌다. 초윤은 아이의 질문을 듣고 순간 말문이 턱 막힐 수밖에 없었다.
“……제 가문은 정녕 짓밟혔습니까? 운한 서문씨에 속해 있던 이들은, 정녕 전부 그리 죽은 것입니까?”
피가 이어지지 않은 가솔은 가두어진 채 깔려 죽고, 피를 나눈 친족은 목창에 꿰어진 채 타 죽고. 저와 함께 살던 이들이 정말 다 죽은 것이냐며 묻는 아이의 눈은 제 머리 색처럼 새까맣게 죽은 채 아래를 향하고 있었다.
초윤은 짧은 시간 동안 정말 많은 고민을 하고, 또 하다가 입을 열었다.
“……너 말고 그곳에서 살아 나간 사람은 없다 들었다.”
“한 명쯤은…… 한 명쯤은 있을 수 있지 않습니까. 세가에는 잡일을 하던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조부모님께서 거리를 떠도는 아이들을 거두어 하인으로 일하며 살 수 있게 해 주셨던 것인데…….”
“무엇 하나 남기지 않고 모조리 죽였다고 했다. 그런 뒤 땅에는 독을 풀어 풀 한 포기 자랄 수 없게 하였더구나.”
“…….”
아이의 눈이 점점 더 깊은 지옥으로 침잠하고 있었다. 초윤은 자신을 가다듬듯 가만히 눈을 감았다 떴다.
천오는 자신에게 남은 희망을 죽이려는 것처럼 초윤에게 계속해 물어보았다.
“세가의 사람들이 백협맹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운한 서문을 멸문시킨 것은 백협맹에 속한 정파의 세력이 맞습니까.”
“네 세가에 들이닥친 이들은 백협맹의 집행부라고 불리는 잠룡단과 와호단이다. 백협맹의 구파일방과 오대세가 중 절반 이상이 동의해야 움직일 수 있는 직속 무력 조직이지.”
“……제 가족은 어째서 죽은 겁니까?”
초윤의 관심이 천오에게 쏠린 것을 남매가 기민하게 알아차린 것처럼, 아이들은 본디 본능적으로 깨닫는 존재였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천오는 특히 영민하고 영특했다. 초윤이 어설프게 감추고 숨기려 해 보아도 통하지 않거나, 통한다 해도 나중에 큰 원한을 사게 될 가능성이 컸다.
그렇다면 그냥 솔직하게 알려 주자. 그렇게 판단하고 각오하긴 했지만 막상 입 밖으로 꺼내려 하니 영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어른들이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의 존재 자체를 죄로 삼았다는 것을 어떻게 전할까.
그것도 작가가 악역에게 개연성을 부여하기 위해 아무 생각 없이 집어넣은 배경 설정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