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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 교주를 애지중지 키웠다 (2)화 (2/257)

2화

……자, 그럼 이제 어떻게 한다.

초윤은 자신의 반듯한 이마를 짚었다. 두통은 없었지만 머리가 복잡하다 보니 자꾸 손이 갔다.

초윤의 눈앞에는 훌쭉 마른 아이가 창백한 안색으로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다. 정갈하게 무릎을 꿇어앉은 초윤은 한동안 말없이 아이를 내려다보다가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천장으로 고개를 들었다. 오래된 객점의 먼지 쌓인 대들보가 눈에 들어왔다.

“이걸 정말 어떡하면 좋냐고…….”

온종일 하고 있던 생각이 결국은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초윤, 아니, 정하윤은 지금 정말이지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간단히 말하자면 정하윤은 이 세계의 인간이 아니었다. 21세기의 대한민국에 사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었으며, 취미라고는 소소하게 장르 소설을 찾아 읽거나 귀여운 동물 사진을 찾아보는 것뿐이었다.

맹세컨대 자기 전에 대충 보던 무협지 안에 빙의되길 바란 적은 없었다. 그것도 이런 시기에 이런 식으로!

초윤은 재차 긴 한숨을 내쉬며 물끄러미 아이를 보았다. 죽은 듯이 잠에 들어 뒤척임도 한 번 없는 아이에게 머뭇머뭇 손을 뻗어 이마를 짚고, 손을 잡아 맥을 짚었다.

그러다 거꾸로 뒤집힌 조그만 손톱을 발견하고 히익 숨을 삼켰다.

‘이거 엄청 아픈 거 아냐? 아니, 손도 엉망이네? 잠깐만, 다리도 말이 아니잖아…….’

우는 애를 달래느라 정신이 없어서 다친 걸 알아채지도 못했다. 여기저기 거뭇하게 묻어 있는 검댕과 아프게 박혀 있는 가시를 보니 잔해를 헤치고 다니기라도 한 것 같았다. 자신이 도착하기 전까지 이 작은 아이가 보고 있던 장면을 떠올리자 안쓰러운 마음에 저절로 이마가 찌푸려졌다.

초윤은 곧 결심한 듯 자리에서 일어나 죽립을 썼다. 죽립에 달린 면사가 무릎까지 내려와 하얀 머리카락을 완벽히 가렸다. 조금 수상쩍긴 해도 괜한 시선을 받는 것보단 나았다.

초윤은 객실의 바깥으로 나가 점소이를 불렀다.

“게 있느냐.”

“예, 나리.”

식당 의자에 앉아 쉬고 있던 어린 점소이가 객실 앞으로 종종 달려왔다. ‘저기 실례합니다. 좀 도와주실 수 있나요?’라고 말하려 했는데, 제 의지와 상관없이 나이를 왕창 먹은 듯한 말투가 튀어나왔다. 영 적응이 되지 않는 어조다. 초윤은 면사 안에서 자신의 말에 소름이 돋았단 얼굴을 하며 말했다.

“일곱 살 아이가 입을 만한 옷 한 벌과 깨끗한 물을 물통 가득 담아 오거라. 또 화로가 필요하구나. 방 안에 넣을 수 있는 화로가 있느냐? 없다면 주방의 불이라도 빌리고 싶다만.”

“화로는 있습니다. 겨울에 쓰는 화로도 괜찮으신가요, 나리?”

“괜찮고말고. 가져오다 데이기라도 하면 큰일이니 화로는 내가 가져오마. 너는 옷과 물만 내 방에 놓아 주려무나.”

“예, 나리.”

점소이가 꾸벅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더니 화로가 있는 장소를 알려 주고 서둘러 뛰어나갔다. 초윤은 잠든 아이를 힐긋 돌아보고 객실을 나갔다.

객잔 뒤편에 딸린 창고에는 점소이가 알려 준 화로가 객실의 개수만큼 쌓여 있었다. 초윤은 그중 하나를 꺼내 우물의 물로 깨끗이 씻고 지푸라기로 닦은 뒤 바싹 마른 장작을 담아 방으로 가지고 돌아왔다. 잡다한 철을 녹여 만든 화로는 은근히 무게가 나갔다. 초윤에겐 별것 아니었지만 어린 점소이를 시키지 않은 것을 내심 다행으로 여겼다.

방으로 돌아오자 마침 점소이가 침상 옆에 옷과 물을 내려놓고 있었다. 그는 소리 없이 들어온 초윤이 화로를 내려놓고 나서야 그를 눈치채고 화들짝 놀라며 허둥지둥 말했다.

“그, 허락 없이 들어와서 죄송합니다, 나리. 방 앞에 두면 옷이 더러워질까 봐…….”

“수고했다. 고맙구나. 네 이름이 무엇이냐?”

“예, 이, 일도입니다.”

“그래, 잠시 앉아 보렴.”

초윤은 방 한구석에 있던 커다란 약함을 가져와 침상 옆에 앉았다. 그리고 약함 구석에 있는 작은 서랍을 열어 얇은 붓과 작은 종이, 먹, 나무판을 꺼냈다.

“본래라면 네게 금전으로 보답을 해야 하지만 여비가 적어 마땅치 않구나. 대신 지금 이곳에 가장 필요한 것을 주려 한다. 일도야, 이곳은 네 가족이 함께 꾸려 나가는 객잔이 맞느냐?”

“예, 예? 마, 맞습니다.”

“그렇다면 주방의 일을 돌보던 여인은 네 어머니가 맞더냐?”

“맞습니다…….”

어린 점소이가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초윤은 고개를 돌려 그를 잠시 보더니 나무판에 덧댄 종이 위로 세필 붓을 슥슥 놀리기 시작했다.

“만삭인데도 불구하고 손에서 일을 놓지 않는 것 같아 보였다. 복중통(腹中痛)을 호소하진 않더냐. 아기의 발길질이 심하다든가, 하혈을 한다는 얘기는 없고?”

“예? 그, 복통도 하혈도 겪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어머니를 이리로 모셔 올까요?”

“아서라. 임부(妊婦)에게 계단을 오르게 하면 안 돼. 약방문(藥方文)을 줄 터이니 의원이 아닌 약방에 가거라. 열증이 생기면 선학초와 모근을 배합하고 지황을 생으로…… 다 써 두었으니 약방에서 알아서 해 줄 게다. 몸을 풀고 나서도 혈허(血虛)가 계속되면 다시 먹여라.”

초윤은 종이에 일곱 가지 약재와 용량, 복용법을 적어 먹을 말린 뒤 작은 도장을 찍고 점소이에게 내밀었다. 점소이는 허둥지둥 종이를 두 손으로 받아 휘둥그레진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글을 모르는 그로서는 알 수 없는 내용이었다.

“의, 의원님이십니까?”

“한동안 약 달이는 냄새가 장히 날 텐데 민폐만 끼치는 객이지. 이제 내려가 보렴.”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의원님. 언제든 불러 주세요. 성의껏 모시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점소이는 약방문을 두 손으로 꼭 쥔 채 연신 허리를 수그리며 인사를 하다가 후다닥 객실을 빠져나갔다. 초윤은 그가 나간 문을 잠시 지켜보다 죽립을 벗었다.

그리고 약함에 빼곡한 서랍을 열어 필요한 약재를 하나하나 꺼냈다.

“필요한 게…… 인삼에 육계, 천궁, 지황, 당귀, 백작약…… 간단한 약재밖에 없으니까 일단 응급 처치만 할까. 생강이랑 대추가 있던가? 주방에서 얻어 와야 하나?”

초윤은 약재를 조금씩 잘 씻어 놓고 화로에 불을 붙였다. 마른 장작을 휘감고 타오르기 시작하는 불꽃을 보며 몇 번째인지도 모를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래, 문제는 이것이었다.

정하윤은 본래 약학이나 의학이라고는 하나도 모르는 교육대학교 졸업생이었다. 그런 그가 어떻게 이리 능숙하게 고대 중국의 한약재를 다루는가 하면, 이는 정하윤이 들어온 몸의 본주인 ‘초윤’ 덕분이었다.

「초윤(肖淪)은 중원의 모든 산과 강에 더불어 해동의 진법, 남만의 독곡, 동영의 바다, 북해의 광물과 천축의 의술을 전부 꿰뚫고 있었다. 천지에 모르는 약과 모르는 독이 없어 수많은 자들이 초윤을 애타게 바랐지만 정작 본인은 두망산 깊은 곳에 은거해 나오지 않았다. 사람들은 속세와 동떨어져 바람처럼 구름처럼 살아가는 초윤을 언제부턴가 약선(藥仙)이라고 일컫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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