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13. 바쁜 하루
4학년의 마지막 방학이었다. 나는 요즘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는 말을 실감하는 중이었다. 사실 방학이랄 게 없었다. 이제 2월에 졸업식만 하고 나면 나는 이제 학교에서 나가게 되니까.
운이 좋아 대기업 인턴에 합격하게 되면서 더더욱 바빠진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요즘같이 다들 취업난에 허덕일 때 스펙에 조금이라도 도움될 수 있는 것을 한다는 거야 당연히 좋은 일이 아닐 수 없지만.
-오늘도 야근이야?
“……응. 미안.”
-아냐, 미안할 게 뭐 있어. 너 피곤할까 봐 그렇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이유한은 시무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나는 어색하게 웃음 지었다. 달래 주고 싶은데 안타깝게도 곧 들어가 봐야 했다. 6시, 남들은 퇴근할 시간. 퇴근도 하지 못하고 나는 피곤한 눈을 꾹꾹 눌렀다.
“나 들어가 봐야 해.”
-……그냥 그만두면 안 되겠지.
“유한아.”
-미안해. 투정 좀 부려 봤어. 너 너무 힘든 것 같아서…….
한숨 섞인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가 걱정을 가득 담고 있었는데도 이상하게 힘이 나는 것도 같았다. 인턴이 되고 나서 녀석들을 자주 만나지 못하고 있었다. 늘 바빴었는데 이상하게 이번 겨울은 그래도 다들 여유가 있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더욱 심통이 나는 것도 있었다. 왜 하필이면 이 시기에 나만 바쁜 건지.
녀석들을 만나기 시작한 것도 벌써 1년하고도 6개월이나 지났다. 하지만 그럼에도 모두들 여전했다. 여전히 나를 좋아했고, 나도 여전히 녀석들을 좋아하고 있었다. 무척이나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끝나고 연락할게.”
-응. 기다릴게.
달게만 느껴지던 전화가 끊어졌다. 나는 핸드폰을 힐끗 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마 잠깐의 짬이 났을 때 왔던 전화였기에 받을 수 있었다. 평상시에는 전화는커녕 문자에 답장조차 해 주지 못할 때가 많았다.
내가 연락을 잘 받지 못하면 말은 하지 않지만 불안한 기색을 보이는 일이 더러 있어서 꼭 연락을 받고 싶었지만, 사회생활이라는 게 내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목을 조이고 있는 넥타이를 조금 느슨하게 옮겼다. 불편한 것투성이였다.
“지헌 씨.”
“아, 네. 가요.”
하지만 그런 시답잖은 생각조차 오래할 틈이 없었다. 나는 바쁘게 발걸음을 옮겼다. 그저 한 걸음. 녀석들의 발걸음을 맞추고 싶었던 건데 어째선지 점점 더 만나기 어려워지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쓸데없는 생각 그만하자. 빨리 끝내고 모두를 만나고 싶었다. 그래도 금요일, 오늘이 지나면 주말이었다. 힘내자. 한지헌.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내딛는 발걸음이 그래도 처음보다는 가벼워진 것 같았다.
***
비몽사몽한 정신으로 느릿느릿 집에 도착했을 때는 벌써 9시였다. 회사 생활은 할 게 못되는 구나. 혀를 내두르며 현관문의 비밀번호를 눌렀다. 삑삑삑 도어락이 해제되는 소리를 들으며 두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현관 안으로 들어섰다. 그냥 자고 싶다. 자고 일어나서 씻을까. 그런 생각 따위를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지헌아.”
아마도 그 익숙한 목소리가 아니었다면 나는 현관 앞에서 그냥 누워서 잠들어 버렸을지도 몰랐다. 멍하던 정신이 빠르게 돌아왔다. 그제야 눈을 크게 떴다. 반가운 목소리, 이유한이었다.
“어?”
“왔어? 늦었네.”
“피곤하지.”
이유한뿐이 아니었다. 장우진과 강수하도 있었다. 잔뜩 피곤함을 달고 있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나는 빠르게 신발을 벗어 던지고 거실로 들어섰다. 이유한이 나를 제 품으로 끌어당겼다.
“아, 진짜 좋아.”
“피곤해 보인다. 어떡하지.”
이유한의 품에 한 번, 강수하의 품에 한 번, 그리고 장우진의 품에도 한 번. 로테이션을 돌 듯 왔다 갔다 하고 나니 자꾸만 웃음이 났다. 이유한은 피곤해 보인다고 잔뜩 걱정스러운 얼굴을 했지만 세 사람을 보고 나니 나는 오히려 피곤함이 싹 가셔 버린 것 같았다.
아, 진짜 그만둘까 봐. 철없는 생각이 드는 들었다가 사라졌다.
“안 피곤해. 너희 봐서 좋아.”
“무슨 인턴을 그렇게 굴려. 그 회사 못 쓰겠다.”
“무슨 프로젝튼가 뭔가. 아, 모르겠어.”
나는 투정을 부리듯 머리를 비비적거리며 웃었다. 어떻게 셋이 다 우리 집에 있지. 말은 안 해도 셋 다 바쁠 텐데. 잔뜩 궁금함을 담고 있는 내 시선에 입을 연 것은 강수하였다.
“내일부터 주말이잖아. 우리도 쉬거든.”
“진짜?”
“응. 오랜만에 다 같이 쉴 수 있을 것 같아서 여기서 모이기로 했어.”
“아하하하. 되게 좋다. 근데 그럼 준이랑 현이는?”
“김 형제는 근데 아버지 생신이라 오기 어렵다나 봐. 가족끼리도 모인 지가 오래됐다고.”
이유한이 덧붙인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보지 않아도 축 처졌을 눈썹이 떠올라 웃음이 배어 나왔다. 다 같이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지금은 이렇게 세 사람이 내 집에 들어와 있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방금까지 피곤했었다는 생각조차 잊을 정도였다.
나는 살살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는 손길을 받으며 장우진의 품 안에 있었다.
“근데 나 정장 입은 거 처음 본다. 너.”
무심한 말이 들려왔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무척이나 흥미롭게 나를 보던 시선이 찬찬히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어느새 장우진은 어깨를 잡고 내게서 조금은 떨어졌다.
“잘 어울려?”
배시시 웃으며 꺼낸 말에 장우진이 바람 빠진 소리를 내며 웃었다. 그러면서 딱히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는 탓에 입이 불퉁해졌다.
“안 어울려?”
“그럴 리가 있어?”
하지만 곧 들려온 대답은 만족스러웠다. 나는 답답한 넥타이를 잡아당겼다. 생각하고 보니 옷을 먼저 갈아입어야 할 것 같았다.
“옷 갈아입을래.”
“응.”
장우진의 품에서 벗어나서 하는 말에 그새 강수하가 내 어깨를 다시금 잡아 왔다. 응이라고 대답해 놓고 어깨를 잡는 게 이상해 의아하게 쳐다보자 예쁘게 웃으며 내 넥타이를 쥐어 잡는다.
“벗겨 줄게.”
“어?”
그러면서 편하게 하는 말이 얼마나 당황스러운지 나는 멍청하게 입만 벌렸다. 어느새 넥타이가 풀려 바닥으로 떨어지고 셔츠 단추가 하나씩 풀려 가고 있었다.
“아니, 괜찮은데……. 내가 할게.”
“회사에서 사람들이 잘해 줘?”
손사래를 치며 꺼낸 말에도 강수하는 동문서답이었다. 일단 물어봤으니 대답은 해야겠기에 고개를 끄덕였지만 강수하는 아무런 표정 변화가 없었다. 어느새 셔츠는 풀어 헤쳐져 있었다. 그사이 슬금슬금 이유한이 다가왔다. 내 머리카락을 쓰다듬는 손길이 가볍지만은 않아 시선이 갈 곳을 잃고 헤매었다.
“이마도 동그래.”
“……어?”
왁스를 발라 깔끔하게 넘겨진 머리카락을 조심조심 쓰다듬는 게 어색했다. 손끝이 무거웠다. 어느새 장우진도 다가와 있었다.
“아니, 뭐 하는…….”
“씻어야지.”
그 잠깐 사이 상체가 휑하니 드러났다. 더듬더듬 다가오는 손길이 싫지만은 않았지만 너무 갑작스러웠다. 어색하게 눈을 굴리는 나를 보며 장우진이 푸흐흐, 웃음을 흘렸다.
“피곤할 텐데 씻겨 줄게.”
“아냐, 그럴 필요는 없는데.”
“사양할 거 없어.”
언제부터 장우진이 이렇게 능청스러워졌더라. 세 사람 사이에 시선이 오고 갔다. 필연적으로 작년 겨울의 일본 온천이 기억난 내가 헛웃음을 쳤다.
이러다가는……. 잠시 시선이 움직였다. 그래도 오늘은 쌍둥이들도 없고, 세 명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뻘한 생각을 했다가 내 스스로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게 놀라워 고개를 저었다.
하기야 자주 만나지 못한 데다 만나더라도 서로 피곤해서 잠자리도 잘 갖지 못했다. 적어도 내일부터 이틀은 쉴 수 있으니까, 녀석들도 쉰다고 하고. 머릿속이 점점 단순해지고 있었다.
“빨리 씻고 올게.”
그래도 저 비좁은 화장실에 네 사람이 들어가 있다는 건 영 불편한 이야기였다. 내가 단호히 고개를 저었더니 세 사람이 동시에 입을 꾹 다물었다. 그래도 내가 두 번 이상 거절한 건 절대로 하지는 않는 녀석들이라 곧 내게서 손이 떨어져 나갔다. 나는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씻고 와서, 어. 씻고 와서 같이 자자.”
부러 두루뭉술하게 꺼낸 말에 세 사람이 귓가가 달아올랐다. 하여튼 생각하는 건 똑같지. 애써 밉지 않게 웃으며 나는 욕실로 걸음을 옮겼다. 귓가가 달아오른 것은 비단 녀석들만은 아닐 터였다.
***
“으응…….”
“날이 갈수록 말라 가.”
“그러게. 걱정되게.”
넓은 침대 위. 네 사람이 엉겨 붙었기 때문인지 침대가 쉼 없이 움직였다. 허리에서 갈비뼈를 타고 피아노를 두드리듯 움직이는 장우진의 손에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오랜만이라서인지 손끝만 닿아도 닿은 자리가 홧홧한 것 같았다.
강수하의 손이 내 입가에 닿아 왔다. 입 안으로 들어온 손가락을 아프지 않게 깨무니 낮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오묘해진 기분에 혀를 내어 그 손가락을 살며시 핥아 냈다. 웃던 입매가 굳어 들어간 것은 금방이었다.
“그러면 안 돼.”
“왜?”
퍽 단호한 소리에 여전히 입 안에 손가락을 문 채 웅얼거리듯 말했다. 그랬더니 강수하가 슬그머니 제 손가락을 꺼낸다. 목울대가 움직이는 것이 적나라했다.
“보채지 마. 그러다 주말 내내 집 밖에 못 나가는 수가 있어.”
이유한이 킥킥 웃으며 말했다. 우습게도 그 말에 겁을 집어먹기는커녕 슬그머니 입꼬리가 올라가고 있었다.
“어디 나가게? 안 나갈 건데. 나.”
“……야해 빠져 가지고.”
부러 야살스레 건넨 말에 장우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느새 갈비뼈 사이로 부드러운 입술이 닿아 왔다. 나는 무심코 허리를 들썩였다. 쌓인 건 너희뿐만이 아니라고, 그러니까. 차마 입 밖에는 내지 못한 말을 삼키며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그사이 이유한의 입술이 미간에 닿았다. 급한 기색을 보인 것치고는 무척이나 느린 몸짓이라 안달 나는 것은 내 쪽이었다. 강수하가 천천히 손을 움직였다. 목덜미에서 내려간 손이 장우진이 매만지고 있는 갈비뼈 부근을 지나 하체에 닿았다. 본능적인 기대감에 나는 밭은 숨을 내었다.
“지헌이가 이렇게 급해 보이는 게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네.”
이유한이 입을 맞추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대답을 기대하고 한 말은 아니었는지 바로 내 입술을 머금으니 혀끝이 맞닿았다. 데일 듯 뜨거운 입술이었다. 아직 젖어 있는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 넘기는 손길이 기분 좋아 두 눈이 무거워졌지만 그것은 순간이었다.
아래로 천천히 내려갔던 강수하의 손이 내 성기를 쥐어 잡아 왔을 때 장우진이 내 유두를 깨물었다. 나는 손을 뻗어 이유한의 어깨를 잡았다. 지난겨울 이후로 다시 이렇게 여럿과 잠자리에 누워 본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강수하는 거리낌 없이 내 아래를 물었다. 혀끝을 세워 핥아 내는 느낌이 생생해서 허리가 비틀렸지만 그마저도 내 상체를 더듬고 있는 장우진에 의해서 내 뜻대로 되지 않았다. 강수하가 침대 아래로 내려가며 내 몸을 훑었다.
서로 대화를 나눈 것도 아니면서 강수하가 움직이자 이유한이 내 몸을 일으켜 앉혔다. 장우진은 여전히 쪽쪽, 소리를 내며 제 흔적을 남기고 있는 중이었다. 잠깐 이유한의 입술이 떨어졌을 때 나는 어느새 침대의 끄트머리에 앉아 있었다.
“아, 으……. 너희, 뭐 상의했어? 흣.”
분명히 날씨가 무척이나 추운데 더운 숨이 나오는 것 같았다. 척척 맞는 손발에 내가 의심스러운 소리를 내뱉으니 푸흐흐, 하는 낮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니까 맞다는 거야, 아니라는 거야. 그 와중에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오래 할 것도 아니었다. 장우진이 입술을 머금었다. 이유한은 기다렸다는 듯이 내 뒷목에 입술을 맞췄다. 그러니까 너희들 너무 자연스러운 거 아니냐고.
“흐으…….”
하지만 뭐, 그런 생각이야 당연히 오래 할 수 있는 게 못됐다. 이미 뻣뻣해진 성기를 입 안 가득 문 강수하가 고개를 위아래로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너무 오랜만이라서인지 뭔지 금방이라도 싸 버릴 것 같았다. 나는 다급하게 손을 내려 강수하를 밀어 냈다. 그에 올린 시선이 의아한 기색을 가득 담고 있었다. 나는 급히 장우진의 입술을 떼어 냈다.
“아니, 아! 나, 읏, 잠깐만. ……윽.”
그 다급함의 이유를 아마 강수하는 알아챈 것 같았다. 하지만 알아챈 것과 행동을 멈추는 일은 별개였다. 강수하는 힐끗 나를 보고는 하던 일을 계속했다. 핥아 올리는 그 저릿한 자극을 견디기가 힘들었다. 허리가 꺾이고 점점 고개가 뒤로 넘어갔다.
어느새 장우진은 내 목울대를 핥아 냈고, 이유한은 날개 뼈 부근에 입을 맞췄다. 아, 못 참겠어. 하얘진 머릿속에 몸을 버둥거리며 나는 결국 강수하의 입에 사정하고 말았다. 몸이 축 늘어졌다.
“아, 씨. 바보야. 너…….”
“너무 빨리 가는 거 아냐?”
흥분에 눈꼬리에 눈물을 매단 나는 당황한 눈으로 강수하를 바라봤다. 정작 강수하는 대수롭지 않았다. 배시시 웃으며 하는 말에 왠지 민망해진 내가 부러 입을 비죽거렸다. 너무 오랜만이라 그렇지. 너희는 뭐 다를 줄 알아. 어쩐지 자존심이 상했다.
나는 불퉁하게 강수하를 잡아당겼다. 덕분에 녀석은 침대 위로 올라섰다. 내가 갑자기 움직이니 이유한과 장우진의 움직임은 멈췄다. 내가 무얼 할지 지켜보고 있는 모양이었다.
“나만 쌓인 건 아닐 거 아냐.”
부러 배시시, 웃음을 흘렸다. 녀석들의 미간이 곱게 접혀 들었다. 붉어진 얼굴로 내 행동 하나하나에 반응하는 세 사람을 보는 건 썩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나는 크게 숨을 들이켰다. 받기만 하는 것도 한두 번이었다.
“나 이제 넣을 거야.”
내 단호한 말에도 녀석들은 말이 없었다. 하지만 나 또한 대답이 필요했던 건 아니었다. 몸을 만지는 손길이야 나도 무척이나 좋지만 일단은 급했다. 지금 당장이라도 그동안 바빴던 것들에 대해 보상을 받고 싶었다. 녀석들 중 누군가 들었다면 야해 빠진 생각이라고 웃었을 테지만.
나는 협탁으로 손을 뻗어 직접 젤을 내 손에 짜냈다. 직접 손에 짜내 본 것은 처음이었다. 미끌거리는 느낌이 썩 좋은 것은 아니라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미끌미끌해.”
“허.”
헛웃음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나는 꿋꿋하게 손에 묻은 것을 문지르며 내 뒤로 손을 가져갔다. 한동안 아무도 침범하지 않았던 뒤는 손가락 하나도 버거운 듯 굳게 닫혀 있었다.
“아, 오랜만에 만나서 그렇게까지 하면 나보고 어떡하라고…….”
이유한이 제 얼굴을 쓸었다. 그러면서도 내 몸으로는 선뜻 손을 뻗지 않았다. 만지지 말라고는 안 했는데, 뻘한 생각이 들어찼지만 밀려오는 흥분에 뒤를 넓히는 손이 빨라지고 있었다.
두 개, 세 개로 늘어나는 손가락이 안을 열심히 찔러 왔다. 찌걱이는 소리가 방 안에 들어차는데도 누구도 움직일 생각조차 못 하는 듯 보였다. 아, 더 못 하겠다. 지켜만 보고 있는데도 몸이 달아서 견디기 힘들었다.
“하기 싫어?”
나는 가만히 넋이 나간 녀석들에게 물었다. 마치 얼음, 땡 놀이를 하듯 바보처럼 멈춰 있던 세 사람이 내 한마디에 바로 손을 움직였다.
가장 빨랐던 것은 장우진이었다. 내 허리를 잡은 우진이 곧바로 나를 들어 올렸다. 순간 내 아래로 장우진의 성기가 닿았다. 어느새 다시금 뻣뻣해진 아래가 그사이 아프기까지 했다.
“아, 좀. 나도 급하다고.”
“몰라. 먼저 움직이지 그랬어. 그럼.”
유한의 말에 우진이 단호한 소리를 내뱉으며 내 시선을 마주했다.
“다 푼 거야?”
“어, 아마도.”
“아플 것 같은데.”
미간이 잠시 고민하느라 살짝 찌푸려졌다. 하지만 말했잖아. 나도 급하다니까. 나는 별다른 대답 없이 허리를 내렸다. 넓힌 아래로 장우진의 성기가 밀고 들어왔다. 덕분에 얼굴을 확 구기는 것은 금방이었다.
“아, 아파…….”
“윽, 좁아.”
그 잠깐 사이 손에 식은땀이 배어 나왔다. 아, 좀만 더 풀걸 그랬나. 그제야 후회가 차고 올랐지만 이미 안으로 들어온 후였다. 다행히 장우진은 바로 몸을 움직이지는 않았다. 대신에 녀석은 나를 끌어안아 입을 맞춰 왔다. 그게 얼마나 단지 발끝이 간지러워 견딜 수 없을 정도였다.
“남의 손에 있어도 예쁘게 보이면 이것도 중증이지.”
킥킥거리는 이유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유한은 어느새 내 손가락을 잡아 입에 물었다. 조심조심 손가락 사이사이를 핥는 혀가 간지러워 손가락을 오므렸지만 이유한은 꿋꿋이 계속했다.
그 순간 다시금 강수하가 움직였다. 슬금슬금 뒤로 다가온 녀석이 뒤에서 나를 껴안았다. 손이 가슴께로 올라오고 있었다.
“윽…….”
장우진에 입이 막힌 내가 목 끝에서 나오는 신음을 삼켰다. 어디 하나 자극적이지 않은 곳이 없었다. 안달이 난 몸이 슬금슬금 움직이고 있었다. 그 짧은 변화를 장우진이 금방 알아챘다. 녀석이 낮게 웃음을 흘리며 내 골반을 잡았다. 곧 허리가 들렸다가 아래로 내려앉았다.
“아윽!”
흉흉하게 서 있던 성기가 배 깊은 곳을 찔렀다. 잠깐 움직였을 뿐인데 뒤로 넘어간 몸이 강수하의 품 안으로 들어갔다. 그 몸을 감싼 수하가 기다렸다는 듯 입술을 맞댔다. 뜨거운 혀가 내 입 안을 유영했다.
점점 내 몸은 뒤로 넘어가 침대에 눕혀졌다. 장우진은 한번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하자 계속해서 느끼는 지점만 노리고 찔러 댔다. 당연하게도 잇새에서는 계속 앓는 소리가 튀어나왔지만 격렬한 입맞춤에 다 먹혔다.
이유한이 손가락에서 차츰 팔로, 그리고 쇄골로, 그리고 가슴께까지 옮겨 왔다. 온몸이 자극에 녹아 버리고 있었다.
“으응, 아윽! 하, 우진아……. 흐윽!”
강수하계속 물고 빨던 내 입술에서 떨어져 귓바퀴를 물어 왔다. 녀석이 내쉬는 밭은 숨이 귓가에 너무 가까이 닿아 와 간지러웠다. 와중에 장우진은 너무 빨랐다. 무척이나 오래 참았다는 것을 몸소 보여 주는 것처럼 빠른 허리 짓이었다.
펑펑, 터지듯 머릿속이 울렸다. 멍한 정신이 다잡기 어려웠다.
“아…….”
장우진의 낮은 목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녀석의 움직임이 멈췄다. 꽤 오랫동안 이어진 정사였다. 나는 깊은 숨을 내쉬고 있었다. 그사이 또다시 사정한 덕에 내 배 위로 정액이 튀어 끈적끈적했다. 하지만 아직도 둘이나 더 있었다.
머리끝까지 들어찬 흥분을 경험하고 나니 그제야 조금은 후회스러웠다. 무슨 자신감이었지, 나는 도대체. 둘도 아니고 셋이나 상대하겠다니, 무척이나 멍청한 생각이었다.
장우진이 내 아래에서 벗어나 입술을 맞춰 왔다. 사정의 여운을 즐길 새도 없이 입술을 머금은 그 혀가 농밀해서 다시금 귓가에 삐삐삐 하는 경고음이 들렸다. 그리고 다시금 아래에 묵직한 것이 닿았다.
“장유유서 모르냐.”
“네. 모르겠네요.”
두 사람의 대화가 오고 가고 있었다. 시선을 돌리지 않았지만 대화만으로도 누구의 것이 닿았는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곧 안으로 천천히 강수하가 밀려 들어왔다. 빠듯하게 찬 배에 살짝 이빨을 세운 내가 장우진의 혀끝을 무니 녀석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아윽, 미안…….”
“안 아파. 또 설 뻔해서 그렇지.”
무척 뻔뻔한 얼굴이었다. 덕분에 되레 내 얼굴이 찌푸려졌다. 제발 이렇게 여럿이 붙을 땐 한 번씩만 했으면 좋겠다. 그 생각에 한숨이 샜다. 한 번은 어렵겠지. 다시금 그 일본 여행이 떠오르고 있었다.
“흐읏. 아…….”
강수하가 제 허리를 움직였다. 누운 내 위로 엎드린 녀석의 허리 짓이 거세 방금 전까지 하던 헛생각은 치워 버린 내가 움직임대로 교성을 내질렀다. 민감해질 대로 민감해진 몸은 아주 작은 자극에도 떨려 왔다.
그러니까 작게는 내 얼굴, 머리카락까지 입을 맞추는 장우진이라든지, 크게는 내 성기를 입으로 물어온 이유한이라든지.
“아, 잠, 깐, 으윽……. 아흣, 흣, 아윽……!”
버둥거리는 손을 강수하가 깍지 껴 잡았다. 그에 안정감이 든 것도 잠시, 손을 잡아채자마자 스퍼트를 올리듯 속도가 빨라졌다. 어느새 땀으로 젖어 버린 머리카락이 무거웠다.
“지헌아.”
강수하가 낮게 목소리를 냈다. 여전히 거센 허리 짓이었다.
“으응, 윽, 응…….”
“회사에서 사람들이, 잘해, 줘?”
다시금 물어 오는 말이었다. 이거 아까도 묻지 않았나? 미간을 찌푸린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와 똑같은 대답이었다. 정신없이 흔들리면서도 뭔가 이상한 물음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도 같았다.
“강수하, 집착 봐.”
그사이 이유한이 어이없는 웃음을 흘리며 내 성기를 위아래로 움직였다. 다시 사정해 버릴 것 같아 정신없는 와중에 그 말이 귓가에 꽂혔다. 집착? 나는 떠지지 않는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며 강수하를 바라보고 있었다.
찌푸린 미간이 마음이 붕 뜰 만큼 섹시하게 느껴졌다. 눈을 떴던 목적도 잊은 채 나는 가만히 수하와 눈을 마주쳤다. 예쁜 눈이 흔들림 없이 나를 주시하는 벅찬 기분은 이루 말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으응. ……좋아, 흣, 해.”
그러니까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이런 것뿐이었다. 강수하의 눈이 다시금 예쁘게 휘며 허리를 움직였다. 감당할 수 없는 속도로 움직이는 것에 퍽퍽, 소리가 방 안을 휘몰아치듯 울려 퍼졌다. 곧 사정을 했는지 움직임이 멈췄음에도 바로 입술, 뺨, 할 것 없이 제 입을 맞춘 강수하였다.
“응, 나도 사랑해. 많이.”
가파른 숨에 가슴이 크게 오르락내리락했다. 눈을 감으면 바로 잠들 것 같았다. 그런 내 표정을 금세 알아챈 것은 이유한이었다. 이유한은 입을 비죽이며 내 눈에 입을 맞춰 왔다.
“많이 힘들어?”
다들 그랬지만 유난히도 내가 힘들고 아픈 것에 예민한 녀석이었다. 나는 기분 좋게 웃으며 녀석의 목을 감싸 안았다.
“안아 줘.”
눈을 반짝 뜨고 끌어당기는 손길에 이유한은 푸흐흐, 하고 웃었다. 기분 좋은 기색을 굳이 숨기지 않은 덕에 내 심장도 몽글몽글 피어올랐다. 좀 힘들어도 내일 푹 자 버리면 된다. 지금 당장은 안겨 있고 싶었다.
이유한은 내 몸을 들어 올려 제 품에 안았다. 곧 잠시 비어 있던 아래에 녀석의 성기가 닿았다. 이렇게 뻣뻣하게 서 있으면서 내가 쉬고 싶다고 하면 멈췄을 거라 생각하니 기분이 이상해졌다.
곧 아래가 꽉 채워졌다. 나는 두 눈을 질끈 감으며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아…….”
이유한은 오래 기다린 만큼 급한 기색이 역력했다.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위아래로 움직인 탓에 나는 다시 정처 없이 흔들려야 했다. 나는 이유한의 목을 꽉 껴안았다.
하지만 내가 앉아 있는 게 위태로웠는지 이유한은 나를 떼어 내 침대 위에 눕혔다. 그제야 나는 어깨에 묻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낸 순간, 강수하와 장우진과 눈이 마주쳤다.
“어, 뭐 해?”
나와 눈이 마주친 두 사람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 모습에 오히려 내 쪽이 더 당황스러웠다.
“너 힘들게 하기 싫었나 보지.”
키득거리고 웃으면서도 이유한은 허리를 계속해서 움직였다. 다시금 강수하와 장우진이 머쓱하게 웃었다. 방금 전 내 몸에 들어왔다 나갔음에도 다시 뻣뻣해진 성기를 제 손으로 잡아 움직이고 있던 두 사람이었다. 어쩐지 그 모습을 보니 조금 미안한 마음이 올라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몇 번이고 안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결국 손을 뻗어 두 사람의 성기를 양손으로 쥐었다. 몸은 계속해서 흔들리고 있는데 두 사람에게 손을 뻗는 내 모습은 누가 봤다면 문란하기 그지없는 장면일 테지만, 누가 볼 일은 없으니까.
갑자기 내 손에 쥐어진 성기에 녀석들이 곁으로 바짝 다가왔다.
“해, 줄게. 읏.”
짧은 신음성을 내뱉으면서 손을 천천히 위아래로 움직이자 두 사람이 미간을 찌푸렸다. 내 안에 들어온 이유한은 그런 나를 빤히 보며 움직이고 있었다. 이미 발가벗고 있는데도 내게 집중된 세 사람의 시선에 완전히 다 벗겨진 기분이었다. 나는 혀를 움직였다. 손만으로는 빨리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아…….”
낮은 목소리에 흥분이 올라왔다. 머릿속 나사 하나가 빠져 버렸다면 이런 느낌일까. 다급하게 양손을 움직이며 혀를 내어 핥는 내 모습을 세 사람은 마치 하나하나 뜯어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노골적인 시선은 오로지 나만을 향하고 있었다.
“아, 윽……. 흐읏, 아!”
이유한의 허리 짓은 점점 빨라졌고 그에 따라 내 손도 빠르게 움직였다. 거의 절정에 다다르자 미간이 곱게 접혀 들어갔다. 살을 밀어 올리는 소리가 계속해서 귓가에 울려 퍼졌다.
입 안으로 이걸 넣고 혀를 굴리는 내 모습은 무척이나 야하지 않을까, 생각을 하면서도 멈출 수가 없었다. 곧 내 손에 제 것을 잡혔던 두 사람이 다급하게 몸을 뒤로 뺐다. 이유한의 움직임이 거세졌다.
“아!”
다시금 절정에 오른 내가 오히려 먼저 사정했다. 내 얼굴 부근에 있던 두 사람은 급하게 뒤돌아서서 사정했다. 덕분에 얼굴에는 튀지 않았지만 침대의 시트에 정액이 흩뿌려졌다.
머쓱한 웃음을 흘리는 두 사람을 보던 나는 가만히 눈을 끔뻑였다. 제일 늦게 사정한 이유한이 드디어 몸에서 빠져나왔다. 나는 그것을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 이유한이 조심조심 내 입술에 입을 맞추며 웃었다.
“피곤하지.”
“……조금.”
“눈이 완전히 감겼는데.”
“……근데 나 씻어야 할…… 것 같은데.”
두 눈이 깜빡깜빡 느리게 움직였다. 아, 내가 몇 번 갔더라, 멍청한 생각이 들고 있었다.
“응, 괜찮아. 자.”
내가 한 말에 대한 대답이랑 좀 안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두 눈에 졸음이 가득 차 오고 있었다.
“……사랑해.”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린 말에 답하듯 들린 웃음소리를 끝으로 눈앞이 깜깜해졌다.
미연시 게임에 대한 고찰 3권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