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외전 12. 과소평가 (35/36)
  • 외전 12. 과소평가

    “아, 죽고 싶다.”

    “미친놈. 나오자마자 뭔 소리야.”

    드디어 시험이 끝났다. 기껏해야 중간이라 어차피 리포트나 조별 과제는 많이 남아 있긴 하지만 어쨌든 산을 하나 넘어간 느낌이었다. 시간을 내서 공부를 한 보람이 있었는지 그럭저럭 잘 본 시험에 가벼운 마음으로 나온 것도 잠시. 잔뜩 골이 난 신형의 얼굴을 보니 킥킥거리는 웃음이 터졌다.

    “잘 봤나 보다. 표정이 좋은데.”

    “당연한 거 아냐?”

    “아, 재수 없어.”

    신형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반면에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기지개를 켰다. 마음이 가벼워서인지 웃음이 저절로 나왔다. 핸드폰을 확인하니 시험 잘 보라는 문자가 쌓여 있다. 그에 시험 끝났다는 문자를 보내며 나는 발걸음을 옮겼다.

    “야, 근데 너 연애하냐?”

    “어?”

    “매번 핸드폰이 왜 그렇게 울려. 연애하고 있어? 나도 모르게?”

    의심 가득한 눈초리가 내게 닿았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연애라면 하고 있다. 그것도 남들과는 무척이나 다르게. 숨길 이야기는 아니었다. 고개를 끄덕이는 나를 향해 잔뜩 놀란 기색을 보인 신형이었다.

    몰랐던 게 더 놀라울 지경이라 막 헛웃음을 치며 말을 이어 가려 할 때.

    “저, 오빠.”

    같이 조별 과제를 했던 새내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아, 지영아. 안녕.”

    같은 시험이 아니었던지라 왜 여기에 있는 건지 의아했지만 일단은 웃으며 인사를 건네니 발그레한 얼굴이 웃음을 머금었다.

    “헐…….”

    그에 신형의 얼굴이 의심으로 물들었다. 어쩐지 저 시선이 명백하게 방금 연애와 연관시키는 것 같아서 나는 일단 고개를 저었다.

    “아니거든.”

    “아니야?”

    “어, 아니야.”

    조별 과제 외에는 거의 말을 할 일이 없는 친구였다. 근데 어쩐 일이지, 내 무심한 시선에 지영이 조금은 쭈뼛거리는 모양새로 내게 무언가를 내밀었다. 여전히 나는 이 상황이 의아하기만 했다.

    “시험 끝나셨죠.”

    “어? 어.”

    “고생하셨어요. 이거 드세요.”

    지영이 내민 것은 캔 커피였다. 얼떨떨한 얼굴로 일단 건넨 것을 쥐어 받으니 금세 붉어진 얼굴을 하고 고개를 숙이더니 앞에서 사라져 버린다. 무슨 상황인지 이해하지 못한 내가 손에 든 커피를 만지작거렸다.

    이걸 나한테 왜 주지? 이해할 수 없는 일에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와, 될 놈은 된다더니…….”

    “뭐가.”

    “애인도 있는 놈이 이걸 왜 받냐?”

    웃음기 섞인 목소리였다. 나는 고개를 까딱였다.

    “그치? 지금 내가 이거 받으면 안 될 상황이었지?”

    “……미친놈 봐라.”

    어이없다는 듯 신형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주니까 받긴 받았는데 그 발그레한 얼굴부터 무슨 의미인지 깨닫는 것이 어려운 것은 아니라 이제야 실수했다, 싶었다.

    “아, 뭐. 받아 봤어야 알지.”

    “참나.”

    신형의 헛웃음을 들으며 걸음을 밖으로 옮겼다. 마지막 시험이 끝난 참이라 집으로 돌아가서 쉬면 딱 좋을 것 같았다. 오늘은 쌍둥이들이 시간이 남는다고 우리 집으로 오기로 했기에 더더욱 빨리 집으로 가고 싶었다. 조금 미안하긴 했지만 이 커피도 김 형제 생각에 금세 관심에서 멀어졌다. 나는 대충 가방 안에 커피를 넣었다.

    “근데 확실히 연애를 해서 그런가. 좀 잘생겨진 것 같기도 하단 말이지.”

    “누가. 내가?”

    “어. 좀 분위기가 달라졌나.”

    유심한 시선이 나를 향했다.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 헛웃음을 쳤다. 뭐라는 거야, 하며 어깨를 밀쳤지만 금세 내게 가까이 다가온 녀석이 여전히 유심히 나를 바라봤다.

    “음, 좀 잘생겨 보이는 것 같기도.”

    “야, 떨어져. 징그러워.”

    머쓱한 마음에 녀석의 어깨를 다시 한번 밀었다. 낄낄거리고 웃으며 신형이 다시금 나와 발걸음을 맞췄다.

    “근데 진짜 언제부터 연애한 거야? 난 왜 몰랐지?”

    “말을 안 했으니 모르지. 얼마 안 됐어.”

    “그래? 아깝네.”

    무척이나 자연스러운 대답이 들려왔다. 나는 의아하게 시선을 돌렸다.

    “뭐가?”

    “아, 아는 동생이 저번에 너 우연히 보고 소개시켜 달라고 했었거든. 물 건너갔네.”

    “아…….”

    생전 듣지도 못했던 소리에 조금 민망해졌다. 내가 뭐가 변했나. 딱히 별로 변한 건 없었다. 마르기만 한 몸이 민망해서 조금 잘 먹고, 운동을 좀 했던가. 별로 달라진 건 없는데.

    나는 항상 그대로였다. 잘생기고 멋있는 거야 주위에 있는 녀석들이 다 하고 있으니. 무심히 다시금 나를 훑어봤다. 음, 역시 나는 그대로였다.

    “아, 생각났어. 뭐가 달라졌는지.”

    다시금 신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문 앞, 방향이 다른 녀석과 인사를 할 즈음이었다.

    “뭐.”

    “눈빛?”

    “뭐?”

    “예전에는 존나 게으르고, 인생사 무념무상. 뭐 이런 얼굴이었는데.”

    “뭐래.”

    내가 킥킥거리며 웃음을 터트렸지만, 녀석은 말을 멈출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요즘에는 좀 더 열심히 하려고 하거든. 좀 더 친절해지기도 했고.”

    녀석들의 영향일까? 항상 내게 친절하기만 한 녀석들이 주위에 있으니 어쩌면 나도 성격이 좀 변했을지도 몰랐다.

    “근데 또 표정은 항상 무심하고.”

    “너 나 되게 자세히 본다.”

    “……아, 나 지금 되게 기분 나빠졌어.”

    웃음이 다시금 삐져나왔다.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나는 녀석에게 손을 흔들었다.

    “집에나 가. 쉬어라. 월요일에 보자.”

    “어, 그래. 가라.”

    기분이 나빠졌다는 건 진심이었는지 녀석은 뒤도 안 돌아보고 내게서 멀어졌다. 그 뒷모습에 다시금 웃음을 흘리며 나는 걸음을 빨리했다. 아마 집에 있을 것이다. 그닥 멀지 않은 집, 비밀번호를 누르는 손이 급했다. 현관문이 열리는 것은 금방이었다.

    “지헌아!”

    문이 열리자 반가운 얼굴이 먼저 튀어나왔다. 예상대로 먼저 집에 와 있었던 듯 김준과 김현이 거실에 앉아 있었다. 피곤한지 널브러져 있던 두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서서 내게 다가왔다.

    “언제 왔어?”

    “응? 우리 한 시간쯤 전에. 시험 잘 봤어?”

    “응. 잘 봤지.”

    뿌듯한 웃음에 김준이 내 머리카락을 흩트렸다. 칭찬받는 기분에 나는 가만히 그 손길을 받으며 웃었다.

    “밥은?”

    “아직 못 먹었어. 너희는?”

    “우리도 아직. 뭐 시켜 먹을까?”

    “응. 좋아.”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가방을 내렸다. 전공 책 때문에 묵직함을 풍기는 가방이 쿵,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지헌아, 허리 나가겠다.”

    “응?”

    “이렇게 무거운 거 들고 다니려면.”

    김준이 가방으로 다가왔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저으며 가방의 지퍼를 열었다.

    “아냐, 시험 때문에 잠깐 좀 들고 다닌 거고, 평소에는 이렇게 많이…….”

    내가 이렇게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다고 자랑이라도 할 양으로 나는 웃으며 가방의 지퍼를 열었다. 하지만 그 가방이 열리자마자 후회에 말을 잇지 못했다.

    아, 까먹었다. 커피 넣어 놨던 거. 민망함에 어색한 기색을 띠며 나는 다시금 지퍼를 닫으려 했다. 죄지은 건 없는데 잘못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지헌이 너 많이 피곤했구나.”

    “응?”

    “생전 먹지도 않던 커피도 먹고.”

    하지만 그것은 어느새 다가온 현이 그 안의 커피를 발견한 후였다. 아무렇지도 않게 전공 책과 커피를 꺼내는 손길은 망설임이 없었다.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할 말이 없었던 탓이었다. 그새 김현과 김준의 얼굴에 걱정스러운 기색이 묻어 나왔다.

    “아니야, 그런 거.”

    그에 나는 손사래를 쳤다. 이상한 오해를 산 모양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신형이나 주고 올걸. 지금 와서는 아무 소용없는 후회였다.

    “어?”

    어찌 됐든 그렇게 넘어가나 했다. 거짓말을 한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고 싶진 않았기에 입을 다물고 먹을 만한 게 있나 살펴봐야겠다고 막 생각했을 때, 김준이 그 문제의 커피를 집어 들었다. 내 얼굴에 의아한 기색이 스친 것도 순간이었다.

    “왜?”

    “…….”

    김준의 얼굴이 그새 불퉁해졌다. 뭔가 낌새가 이상해서 나는 슬금슬금 김준에게 손을 뻗었다. 손에 쥔 커피가 다시금 내 손으로 들어왔다.

    “……아.”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이렇게 대놓고 붙어 있는 포스트잇을 왜 나는 못 본 거지. 종이에는 동글동글한 글씨체로 어떤 말이 하나 적혀 있었다.

    [오빠, 다음에 밥 한 끼 같이해요♥]

    나는 슬금슬금 시선을 돌려 김준과 김현을 번갈아 봤다. 잔뜩 찌푸려진 미간이 심기가 불편하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 주고 있었다.

    “나 이거 못 봤어. 진짜.”

    “누가 줬어?”

    “어? 그, 조별 과제 같이했던…… 조원이.”

    어색한 눈빛을 굴리는 나를 두 사람은 가만히 보고 있었다. 커피를 한번, 나를 한번. 그러다 곧 김현이 포스트잇을 떼어 버리더니 커피를 제 입에 털어 넣었다. 금세 내용물이 사라진 커피는 쓰레기통 안으로 들어갔다. 아주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마셔도 돼?”

    물음이 늦었다. 나는 어이없이 웃었다.

    “응. 돼.”

    내 답도 늦었다. 이미 다 마셔 버린 후에 할 말은 아니지만……. 내가 어이없이 웃으니 녀석들도 따라 웃으면서도 여전히 불퉁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냥 내가 먹여 살릴 테니 집 안에만 두고 싶다.”

    입을 비죽거리며 김현이 말했다.

    “그거 감금이야.”

    김준이 덧붙였지만 무척이나 불퉁한 말투였다. 어렵지 않게 김현과 비슷한 생각을 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런 소리를 하는데 왜 나는 웃음이 나는지, 매번 느끼는 거지만 이 정도 되면 중증이었다.

    “원래 이런 일 없는데, 좀 취향이 이상했나 봐.”

    부러 장난스레 꺼낸 말이었다. 하지만 쌍둥이들의 표정이 오묘해졌다.

    “왜?”

    “……그럼 우리 취향도 이상한 건가.”

    무심한 말투에 나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그런 의미로 하는 말은 아니었다. 솔직히 애초에 내가 그 게임의 플레이어였기 때문에 모두가 나를 좋아하기 시작했음을 모르지 않았다. 그러지 않고서야 이렇게 좋은 사람들이 내 곁으로 왔을 리가 없으니까. 현실로 돌아와서도 왜 여전히 마음이 그대로인지는 설명할 수 없지만…….

    “지헌아.”

    “응?”

    “너를 좋아하는 사람이 이상할 리가 없잖아.”

    김준의 나른한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에 시선을 마주했다. 그래, 너희들이 이상할 리가 없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너희들이 이상하다거나 그런 말을 하고 싶었던 게 아냐. 그냥…….”

    “너는 왜 너한테 그렇게 항상 자신이 없어.”

    내 변명조의 말을 자른 것은 김현이었다. 나는 말을 멈추고 가만히 김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네가 너무 좋은데, 그럴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입술이 불퉁하게 튀어나왔다. 머쓱함에 무어라 할 말이 없었다. 그렇게 봐 줘서 고맙지만 그럼에도 자신이 없는 것은 사실이었다. 내가 그 게임이 아니라 너희들을 이렇게 우연히 만나게 됐더라도 너희들은 나를 좋아했을까? 그건 아니었을 텐데.

    “왜 그걸 모르는지 모르겠어.”

    무척이나 곧은 시선이 내게 닿았다. 그 시선이 얼마나 올곧은지 방금까지 머릿속에 들어 있던 생각이 깡그리 없어지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정말로 내가 그 정도의 사람이 되는 걸까, 하는 어이없는 착각이 들 정도.

    나는 고개를 저었다. 어찌 됐든 나를 좋아한다는 사람을 이상한 사람을 만들어 버렸으니 내가 실수를 한 거였다.

    순간 배시시 웃는 내 얼굴을 가만히 보고 있던 김준이 내 겨드랑이 사이에 제 손을 끼워 넣어 들어 올렸다. 갑자기 몸이 들어 올려진 내가 순간 몸을 버둥거렸을 땐 이미 김준의 무릎 위로 올라온 후였다.

    “헐?”

    “축제 때 기억나?”

    무척이나 가까운 거리에서 김준은 푸스스 웃으며 내 허리께를 감싸며 뜬금없는 소리를 했다. 그새 옆으로 자리를 잡은 김현이 김준의 물음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전혀 생각하고 싶지 않다는 얼굴이라 외려 의아해졌다.

    “축제?”

    “응. 너 여장했잖아.”

    물론 바로 미간을 찌푸리고야 말았지만. 그렇다면 김현이 저런 표정을 짓는 것도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됐다.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이었는데 굳이 꺼낸 김준을 불퉁하게 노려보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게 뭐.”

    그런 내 표정이 우스운지 입술에 김준이 한번 입을 맞추고 떨어졌다.

    “그날 이후로 우리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르지.”

    “고생?”

    또다시 뜬금없는 말이었다. 고생할 게 뭐 있었지.

    “그날 이후로 난리도 아니었지.”

    김현이 말을 덧붙였다. 하지만 덧붙인 말도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나는 계속해서 들리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에 결국 미간을 확 찌푸렸다.

    “무슨 말이야. 알아듣게 이야기해.”

    “너 예쁘다고, 예쁘고 섹시하고 귀엽고 한다고. 여자애고 남자애고 할 거 없이 얼마나 너랑 친해지려고 다가갔는데. 바보야.”

    아무렇지도 않게 꺼낸 이야기였다. 뭐 귀엽……? 당황한 내 시선이 갈 곳을 잃고 흔들렸다. 매번 녀석들에게 듣는 이야기지만 아직도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당황스러워졌다.

    “아니 무슨…….”

    “자꾸만 네 책상 위에 먹을 것 올려놓고, 쉬는 시간만 되면 너한테 말 걸려고 다가오고. 점심시간에도 다 너만 쳐다보고……!”

    잔뜩 골이 난 듯한 김현의 말에 헛웃음이 터졌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다. 매번 시선이 집중된 건 너희들 때문이었다. 당연 나 때문이 아니었다. 착각을 해도 단단히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매번 시선이 닿아 오는 것조차 몰랐던 주제에.

    “그건……!”

    “우리 아냐. 매번 올라와 있던 간식 꾸러미에 쪽지가 한두 개였는지 알아. 바보야.”

    무어라 반박하려던 말이 김현의 말에 다시금 막혔다. 미간이 좁혀 들어갔다.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나한테 선물을 줬다고?”

    “그래. 아, 물론 우리도 우리 인기 많은 거 아는데…….”

    제가 말하면서도 김준이 킥킥거리고 웃었다. 영 민망한 모양이었다.

    “너도 못지않았어. 지금도 봐. 우리랑 상관없이 이런 거나 받아 오잖아.”

    “가둬 놔야 한다니까.”

    “그거 범죄라고. 멍청아.”

    두 사람의 대화가 오고 갔다. 하지만 몰랐던 이야기를 들은 나는 두 눈만 끔뻑이고 있었다. 그냥 띄워 주려고 하는 말인가? 하지만 그러기에는 너무나 진지했다. 거짓말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런가? 왜? 심지어 그 게임 속 세상은 온통 훈훈한 사람들 천지였다.

    “진짜 요즘에도 따라다니고 싶어, 나 그냥 이 드라마 끝나면 은퇴하고 대학 들어갈까 봐.”

    “어, 내년에 나 4학년이야.”

    “……망했어.”

    칭얼거리는 소리가 진심을 가득 담고 있었기에 어이없이 웃음이 터져 나왔다. 잔뜩 찌푸렸던 얼굴에서 웃음이 나오니 두 사람이 나를 쳐다봤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왜 이런 대화가 오고 가고 있는지 이해가 된 탓이었다.

    내가 너무 자신이 없어 보이는 게 싫었던 거겠지. 어찌 되었던 너희들이 나를 좋아하고 있으니까.

    “알았어. 고마워. 다시는 그런 소리 안 할게.”

    그제야 웃음기 서린 목소리로 내가 대답했다. 김준과 김현이 나를 빤히 응시했었다. 정말 이해한 게 맞는지 보고 있는 모양새라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니까 내가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이라는 거잖아. 그런 말을 하고 싶은 것 같은데. 푸흐흐,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러니까 누가 나 따라오면 내가 예뻐서 그런가 보다, 하라는 거 아냐?”

    “……아니지. 정강이를 차 버려.”

    “그게 뭐야.”

    킥킥거리는 웃음이 나왔다. 뭐, 솔직히 말해서 다 이해가 되는 건 아니지만 너희들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아무렴, 다섯 사람이나 만나는 사람이 흔하겠어. 차라리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어쨌거나 녀석들이 나를 좋아하고 있는 건 자명한 사실이고 지금 이곳이 그때처럼 게임이 아니라는 것도 맞으니까. 어찌 됐든 말이다.

    “너희들 닮아서 잘생겨지고 있나 보다.”

    “그건 또 뭐라는 거야.”

    나를 여전히 무릎 위에 앉혀 놓은 녀석의 눈썹을 괜히 손가락으로 훑으니 김준이 웃음이 터진 듯 킥킥거렸다. 방금 전까지는 불퉁한 얼굴이더니 그새 또 기분이 좋아졌는지 밝은 얼굴이었다.

    “응? 정강이를 까 버려. 알았지?”

    하지만 김현은 여전히 그 말에 집착 중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김현의 머리카락을 흩트렸다.

    “잘생긴 애인 있다고 말하고 잘 거절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

    “진짜지?”

    “누가 너희를 두고 다른 사람을 만나. 바보 아냐?”

    툴툴거리며 하는 말에 진심이 가득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누가 녀석들을 두고 다른 이를 만날까. 애초에 김현이 걱정하는 것 자체가 당혹스러운 일이었다. 뭐, 저것도 내가 그만큼 좋다는 얘기겠지만.

    몽글몽글해진 마음에 괜히 김현의 볼을 꼬집었다. 아, 하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그마저도 좋았다. 아, 진짜 행복한 거에 한계치라는 건 없는 걸까. 언제까지 이렇게 행복할 수 있을까. 이러다가 펑, 하고 한 번에 터져 버릴까 봐 두려울 때도 있었다.

    “그래, 그럼 이제 나도 안아 줘. 거기서 내려와.”

    “아, 싫어. 내가 안고 있을 거야.”

    “야, 오래 안고 있었잖아. 내놔. 지헌이.”

    그러니까 말이야. 이런 사소한 모든 게 행복해서 죽을 것만 같은데. 나는 웃음을 지으며 김현의 목을 감싸 안았다.

    “됐어?”

    “아……. 미친다, 진짜.”

    웃음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너희도 나처럼 행복할까. 그래서 이렇게 예쁘게 웃고 있을까. 그랬으면 좋겠는데. 간지러운 마음에 그런 생각이 들어왔다가 사라졌다. 쓸데없는 걱정은 하지 않기로 했다. 적어도 지금은.

    “지헌아.”

    낮은 목소리가 다시금 귓가에 울렸다. 김준의 목소리였다. 응, 하는 대답에 김준이 웃음을 흘리며 내 허리에 있던 손을 천천히 움직였다. 아주 느린 움직임이었는데 허리가 간지러웠다. 내게 안긴 김현이 목 부근에 입술을 붙였다. 몇 번이고 입술을 맞추는 바람에 쪽, 하는 소리가 바로 귓가에서 들려왔다.

    허리에 있던 김준의 손이 천천히 옷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채는 건 쉬웠다. 나는 아주 잠깐 고민스러워졌다. 하나도 힘든데 두 사람이었다. 하지만 고민도 사치라는 듯 심장이 불같이 뛰기 시작한 것은 금방이었다.

    “어…….”

    “괜찮아.”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는데 괜찮다는 말은 김현에게서 나왔다. 네가 뭐가 괜찮아, 지금 이 상황에. 어이없는 웃음이 나왔지만, 어느새 옷 안으로 들어온 손이 천천히 움직이자 긴장감에 금세 멎었다.

    “운동해?”

    “……어, 조금?”

    “으음.”

    배를 오고 가는 손이 느긋했다. 그 손길이 얼마나 간지러운지 김현을 안고 있는 팔에 힘이 들어갔다. 천천히 목에 입을 맞추던 입술이 귓불을 한번 물었다가 뺨으로 옮겨 오고 있었다.

    “지헌아.”

    “응.”

    “만세?”

    장난스러운 목소리는 김준이었다. 나는 아직도 고민 중이었다. 하지만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나는 슬쩍 김현을 안고 있던 손에서 힘을 풀었다. 기꺼이 멀어진 김현의 붉은 얼굴이 바로 보였다.

    내가 딱히 손을 들지는 않았음에도 김준은 내 옷을 끌어 올렸다. 윗옷이 벗겨지는 것은 금방이었다. 쌀쌀해진 날씨에 한기가 먼저 느껴졌다.

    “추워.”

    “응. 이리 와.”

    김준이 팔을 들어 나를 품에 안았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저벅저벅 걷더니 그새 침대가 있는 방으로 들어섰다. 곧 침대 위에 눕혀진 내 위로 김준과 김현이 올라섰다.

    세 사람이 올라와 있는데도 여전히 널찍한 침대에 헛웃음이 나왔다. 어느새 내 양옆으로 자리 잡은 김준과 김현이 각각 목덜미와 쇄골을 핥았다.

    “너희 이거 노리고 이렇게 큰 침대 사 온 거 아니지?”

    “어, 글쎄.”

    웃음기 서린 목소리가 귓전을 울렸다. 진짜 그런 거 아냐? 영 가능성 없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사이 김현이 내 입술을 물었다. 바보처럼 가만히 있던 팔을 뻗어 김현의 목을 감싸 안았다. 김준은 천천히 입술을 몸에 묻으며 내려가고 있었다.

    매번 떨리고 매번 설레는 일이었다. 하지만 유난히 손끝이 저려 왔다. 그건 두 사람이 같이 있어서일까. 배덕감이 밀려드는데 심장은 쿵쾅쿵쾅 크게 울릴 만큼 좋았다. 그래, 그게 문제인 거다. 이렇게까지 좋다는 게.

    “으응…….”

    앓는 소리는 김현의 입술에 가로막혔다. 차분하게 내 귓가를 살살 쓰는 손길에 목을 감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윽.”

    그 틈을 타 김준이 가슴을 물었다. 판판하기 만한 가슴을 손으로 뭉근하게 쓰다듬으며 혀를 내어 핥아 내는 통에 절로 허리가 띄워졌다. 그사이 김현의 손이 귓가에서 멀어져 바지로 내려간 것은 금방이었다.

    두 사람 다 무척이나 느린 손길이었는데 한꺼번에 움직이다 보니 정작 나한테는 빠르기만 했다.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방황하던 손은 어느새 입술을 떼어 낸 김준에게 잡혔다.

    “벗겨 줘.”

    배시시 웃는 얼굴이 그새 흥분으로 물들어 있었다. 이런 상황이 오히려 더 흥분을 일으키는 건 비단 나만 그런 게 아닌 것 같아 조금은 안심이 됐다. 떨리는 손을 천천히 그 옷깃으로 가져갔다. 가벼운 맨투맨 차림이었던 김준의 옷을 들어 올리니 가려졌던 탄탄한 상체가 드러났다. 나도 모르게 침이 꿀꺽 넘어갔다.

    어느새 내 하의도 김현의 손에 의해 벗겨진 뒤였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몸이 부끄러웠지만 보다 부끄러운 건 나를 보고 있는 두 사람의 일렁이는 시선이었다.

    김현이 빠르게 제 옷을 벗어 던졌다. 두 눈이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를 모르고 움직였다.

    “한두 번 본 것도 아니면서 매번 이렇게 부끄러워하면 내가 더 부끄럽잖아.”

    김현이 배시시 웃으며 내 눈에 입을 맞췄다가 떨어졌다. 열이 오른 얼굴이 뜨거웠다. 아니, 온몸이 뜨거웠다. 닿기만 해도 델 것처럼.

    “지헌아.”

    “응.”

    김현이 나를 일으켜 세웠다. 자리에서 일어나 앉게 된 내가 움찔 몸을 떠니 등 뒤로 김현이 내 몸을 감싸 안아 왔다. 살갖에 김현의 맨살이 닿았다.

    “형.”

    귓가에 생전 들어 보지 못한 단어가 들려왔다. 순간 눈을 크게 떴지만 나보다 더 놀란 것은 김준이었다.

    “뭐야, 갑자기. 징그럽게.”

    “내가 먼저 할래.”

    하지만 김현은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다. 귓가를 물던 김현은 어느새 혀를 내어 귓바퀴를 핥아 내고 있었다. 김준은 어이가 없는지 바람 빠진 소리를 내며 웃었다. 나마저도 이 상황에 웃음이 나왔다. 헛웃음이었다.

    “미친놈이 지가 필요하니까 형이래.”

    김준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지만 영 나쁘지는 않은 듯 별다른 말없이 내 유두를 잘근잘근 깨물고 핥았다. 앞뒤로 혀가 움직이고 있으니 어찌할 바를 모르고 김준의 어깨를 잡았다. 움찔움찔 떨리는 몸이 스스로도 느껴질 정도였다.

    김현은 제가 원하는 바를 얻어 내자 착실히 움직였다. 긴 손가락이 척추 뼈를 타고 천천히 내려갔다. 그에 허리를 움직이니 김준에게 가슴을 내미는 이상한 모양새가 됐다. 진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머리가 핑핑 돌았다.

    김현은 자연스레 협탁에서 젤을 꺼냈다. 쭉, 젤을 짜는 소리가 귓가에 생생했지만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더욱 신경 쓰였다. 눈으로 볼 때는 몰랐는데 소리로만 가늠하려니 더 미칠 노릇이었다. 그렇다고 고개를 돌리자니 김준이 신경 쓰였다. 그야말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읏…….”

    내 혼란과는 관계없이 엉덩이 사이로 차가운 젤이 닿는 게 느껴졌다. 지체 없이 사이로 들어간 손은 안을 찌걱거리며 넓히기 시작했다. 허리가 들썩였다. 푸흐흐, 김준이 웃으며 이빨을 세워 유두를 긁었다. 가슴 주변으로 온통 붉은 꽃이 피어나고 있었다. ㄴㄴㅇ

    “으응, 아, 현아. 아…….”

    안에서 움직이는 손이 구부렸다 펴지는 것까지 생생했다. 김현은 잠시 안을 휘젓던 것을 멈추고 느끼는 지점만을 꾹꾹 누르고 있었다. 녀석들 말처럼 한두 번 있었던 일이 아니라 이제 모두들 내 몸에 대해서는 속속들이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김준은 손가락으로 이미 기립한 내 성기를 괴롭혔다. 까딱이며 움직이는 성기가 이미 흥분에 가득 차 쿠퍼액을 흘리고 있었다.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는 건 단순히 내 손만은 아니었다. 어디 하나 자극에 정신을 차리고 있는 곳이 없었다.

    순간 뒤를 넓히던 손이 빠져나갔다. 나는 여전히 김준을 보고 있었다. 찌익, 하는 소리가 귓전을 울려 왔다. 콘돔을 꺼내는 소리구나, 입이 바짝바짝 탔다.

    “사랑해. 한지헌.”

    귓가에 달콤한 목소리가 들렸다. 언제나 해 주는 말이지만 늘 들을 때마다 가슴이 벅차오르는 말이었다. 나는 그 정신없는 와중에도 입꼬리를 올렸다. 너무 행복해서 눈물이 날 것 같다는 게 이런 기분일까.

    내 허리를 들어 올린 김현이 천천히 제 성기를 내 몸 안으로 밀어 넣었다. 처음에는 저게 들어갈 수 있을까, 걱정될 정도였는데 어느새 내 몸에 맞추기라도 한 것처럼 익숙해져 무리 없이 안을 비집고 들어오고 있었다.

    “으윽…….”

    허리를 꾹 누르는 손길과 함께 아래가 꽉 채워졌다. 이물감에 얼굴을 구겼지만 그것은 잠깐이었다. 그 이물감을 이길 만큼의 흥분감이 치고 올라왔다.

    “예쁘다, 예뻐. 네가 제일 예뻐. 알아?”

    김준의 입술이 이마, 뺨, 눈, 코, 할 것 없이 닿아 왔다. 잠긴 목소리에 터질 것 같은 심장이 끝도 없이 울렸다.

    “응. 으응, 흐읏, 응.”

    “그래, 알면 됐어.”

    낮게 웃음을 지으며 김준은 입술을 머금었다. 입 안을 가르고 들어오는 혀가 내 혀를 옭아맸을 때 막 김현이 허리 짓을 시작했다. 느긋한 동작이었으나 허리를 들어 올렸다가 단번에 내리치는 통에 김준의 혀까지 깨물 뻔했다.

    “윽…….”

    내 입천장을 꼿꼿한 혀로 쓸어 낸 그 느낌에 고개가 뒤로 꺾였다. 하지만 김준은 물고 있는 입술을 떼어 낼 생각이 없는 듯 보였다. 손을 들어 김준의 어깨를 잡았다. 무어라도 잡지 않고는 버틸 수가 없었다. 김현은 아주 천천히 내 허리를 들었다가 내리며 등에 입을 맞췄다.

    한참 만에야 김준이 내 입술에서 떨어졌다. 기다렸다는 듯 김현이 허리 짓의 속도를 높였다. 하지만 그마저도 그렇게 빠른 편은 아니라 애가 달았다. 내리찍히듯 아래로 떨어질 때마다 다리가 덜덜 떨렸다.

    “아, 이 얼굴 보면 너 그렇게 천천히 못 움직인다.”

    잔뜩 열이 오른 김준이 내 얼굴을 쓸며 미간을 찌푸렸다. 흥분에 얼룩진 얼굴이 섹시해서 입술을 짓씹었다.

    “어, 알 것 같아서 안 보고 있어.”

    등 뒤에서 역시나 흥분에 가득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때 다시금 허리가 눌렸다. 다시금 깊게 들어오는 성기에 허리가 들썩였다.

    “으응, 흣…….”

    “소리만 들어도 죽겠어.”

    내 어깨에 입술을 묻으며 내는 소리가 웅웅거리며 들렸다. 정말 죽겠는 건 내 쪽이었다. 김준이 얼굴을 아래로 내렸다. 갑자기 시야에서 사라진 김준에 시선을 따라 내리니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내 것을 무는 게 보였다. 이미 충분히 넘쳐흐르고 있던 쾌감이 더욱 거세지고 있었다.

    “하읏…….”

    바들거리는 손을 김준이 깍지를 껴 잡았다. 생명줄이라도 되는 것처럼 나는 그 손을 쥐었다. 정처 없이 흔들리는 몸이 점점 더 빠르게 움직였고 성기를 빨아들이는 힘도 점점 더 세졌다. 주체할 수 없는 흥분감에 눈가에 맺힌 눈물이 흘렀다. 두 눈을 질끈 감으며 고개를 젖혔다.

    “아……. 진짜 천천히 하고 싶었는데.”

    낮은 목소리가 다시금 귓전을 울렸다. 그 소리에 김준이 고개를 들었다. 귀두를 혀로 핥아 내며 김준이 나를 올려다봤다.

    “으응……. 가, 갈 것, 윽.”

    정작 김현은 본격적으로 움직이지도 않았는데 사정감이 치고 들어왔다. 하얘진 머릿속에 붕붕 머리를 저으며 김준을 밀어 냈다. 곧 죽어도 입 안에 사정하고 싶진 않았다. 김준이 배시시 웃으면서 입을 떼어 냈다.

    그 덕에 잠시 사정을 참아 낼 수 있었지만 그것은 무척이나 잠깐이었다. 일어선 김준이 제 성기와 내 것을 한손에 잡아 왔다. 다른 이의 것과 함께 예민한 살이 비벼지는 느낌이 참을 수가 없었다.

    “윽, 아윽, ……자, 잠깐만. 아흣……!”

    “응, 같이 가자.”

    미간을 잔뜩 일그러트린 채로 김준이 손을 위아래로 움직였다. 그 순간부터 김현의 움직임이 거세졌다. 내 허리를 잡아 움직이는 대신 김현이 스스로 허리를 움직여 왔다. 숨을 헐떡이며 점차 강해지는 흥분감에 눈조차 제대로 뜨지 못하고 나는 그것을 받아 내고 있었다. 하얀 머릿속에 아무런 생각도 들질 않았다. 곧 사정할 것 같았다.

    “아윽, 응. 흣, 아……!”

    “아, 진짜 미치겠다.”

    손놀림이 빨라질수록, 허리 짓 역시 빨라졌다. 짜기라도 한 듯 절정으로 향해 가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었다. 결국 앞뒤로 자극을 받던 내가 먼저 사정했다. 온몸에 힘이 쭉 풀리며 나는 쓰러지듯 김준의 어깨에 머리를 묻었다.

    김준은 같이 잡고 있던 성기를 놓았다. 여전히 뻣뻣한 채였지만 대수롭지 않은 듯 보였다. 여전히 김현은 허리 짓을 계속하고 있었지만 절정에 다다른 모양이었다. 퍽퍽퍽, 소리가 침실 안을 울렸다. 그사이 김준은 다시금 내 입술을 머금어 왔다.

    “아.”

    다시금 치열을 훑어 오는 그 입술에 두 눈을 질끈 감았을 때 김현이 허리 짓을 멈췄다. 꿈틀대고 움직이는 그 느낌이 생생했다. 천천히 김현이 내 몸에서 빠져나갔다. 그사이에도 등에 맞춰지는 입술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너무 좋아.”

    김현이 그제야 웃음기를 머금은 목소리를 냈다. 그 목소리에 김준이 입꼬리를 올린 듯 맞대어 있는 입술이 움직였다. 천천히 김준의 입술이 떨어졌다. 나는 여전히 몽롱한 채였다.

    “바꿔.”

    김준은 김현을 향해 말했다. 사실 딱 쓰러질 것 같았다. 너무 큰 흥분감에 제정신이 아니었다. 하지만 여전히 뻣뻣한 김준의 성기가 눈에 들어왔다. 기왕이면 다 같이 즐거웠으면 좋겠다는, 사실 제정신이었다면 하지 못했을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가만히 인형처럼 김현에게서 김준으로 옮겨 왔다. 나를 품에 안은 김준이 어느새 콘돔의 포장지를 찢어 내고 있었다.

    “아, 역시 안 보길 잘했어.”

    내 얼굴을 마주한 김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입을 벌렸다.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 살짝 찌푸린 미간에 그새 김현이 입술을 맞춰 왔다.

    “돌아 버리는 줄 알았어.”

    이번에는 등 뒤, 김준의 목소리였다. 김준은 어느새 내 안으로 들어올 준비를 마친 채였다.

    “으응. 조금, 조금만 쉬었…….”

    “쉬는 게 쉬는 게 아닐 거야. 그냥 빨리 끝내는 게 나을걸.”

    다급한 손길을 김준이 외면했다. 사실 그 말에 나는 별다른 말을 하지 못했다. 내가 쉬잔다고 가만히 누워 있을 녀석들이 아니란 걸 깨달은 탓이었다. 분명히 계속해서 몸에 닿아 올 손길이 안 봐도 뻔했다. 결국 나는 포기하고 입을 다물었다.

    다시금 웃는 소리가 들렸다. 어느새 나는 김현의 품 안에 있었다. 힘 하나 없는 몸을 김현이 제 몸 위에 겹쳐 올리며 침대 위에 누웠다. 덕분에 나는 김준의 앞에 엎드린 꼴이 됐다. 그 순간 김준의 성기가 몸 안을 찌르고 들어왔다.

    “으윽……!”

    절로 잇새에서 신음이 튀어나왔다. 민감해질 대로 민감해진 몸의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김현이 입을 맞춰 왔다. 방금까지 맞추지 못했던 것을 모두 다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듯 농밀하게. 나는 그 목에 매달리며 입을 맞췄다.

    “응, 으으, 응…….”

    하지만 김준이 뒤를 찔러 올 때마다 자꾸만 잇새에서 앓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방금 전 사정했음에도 빳빳해지고 있는 성기가 원망스러웠지만, 기다렸다는 듯 찔러 오는 성기의 자극이 너무 거셌다. 어느새 김현은 다시 내 몸을 더듬거리며 자극하고 있었다.

    “아, 아니, 윽. 힘들, 어……. 흐읏.”

    그래서였을까. 슬금슬금 내 아래의 김현의 성기가 다시금 서는 것이 느껴졌다. 뒤에서 움직이는 김준 덕에 맞닿은 성기가 앞뒤로 비벼졌다. 나는 도리질 쳤다. 그만하고 싶다는 의사 표시였다. 내 얼굴을 마주 보고 있던 김현의 눈썹이 축 처졌다.

    “이런 얼굴을 하고 이렇게 살을 맞대고 있는데 어떻게 참아.”

    그러니까 못 참겠다는 말이었다. 착실하게 움직여 오는 손에 내 몸도 무척이나 솔직하게 흥분하고 있었다. 뒤에서 찔러 오는 성기가 유난히 깊게 안을 헤집어 새된 소리가 계속 흘러나왔다. 이미 무척이나 흥분한 김준의 속도는 너무나도 빨라서 따라갈 수 없을 정도였다.

    “악, 윽……. 흣! 아읏!”

    점점 더 몰아치는 자극에 나는 두 눈조차 뜨지 못했다. 단발의 비명 소리와 함께 나는 결국 김현의 몸 위에 다시 한번 사정했다. 김현의 성기는 이미 다시금 우뚝 서 있었다. 그 순간 미친 듯이 움직이던 김준이 멈췄다. 울컥거리며 정액이 쏟아지는 게 뒤에서 느껴지고 있었다. 나는 김현의 품 안에 푹 안겼다.

    “윽…….”

    낮은 목소리와 함께 내 몸 안을 끊임없이 자극하던 성기가 빠져나갔다. 무거운 눈꺼풀을 느리게 끔뻑였다. 나는 여전히 김현의 몸 위에 있었다.

    “지헌아.”

    “으응. 그만…….”

    “…….”

    칭얼거리는 목소리가 귓전을 울렸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두 눈이 잘 떠지지도 않았다. 결국 낮은 웃음소리가 김현에게서 들려왔다. 아득히 정신이 멀어지는 듯했다.

    “잘 자.”

    “자고 일어나서 맛있는 거 먹자.”

    “……응.”

    무척이나 달디단 목소리가 잠결에 들린 것도 같았다.

    ***

    “저, 지헌 오빠.”

    수업이 막 끝났을 때였다. 신형과 같이 듣지 않는 수업이라 혼자서 주섬주섬 짐을 챙기고 있을 때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같이 조별 과제를 했던, 그러니까 내게 캔 커피를 건넸던 그 새내기였다.

    “아, 안녕.”

    “아, 네. 그, 오빠. 혹시…….”

    발그레한 얼굴이었다. 나는 조금은 곤란하게 머리를 긁적였다. 명백하게 무슨 의도로 다가오는지 알고 있는 상대에게 거절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된 탓이었다.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지영아.”

    “네?”

    “미안해. 나 진짜 괜찮은 애인이 있어.”

    “……아.”

    “마음 써 줘서 고마운데, 음. 미안해.”

    붉은 얼굴이 나를 마주했다. 나는 여전히 어색한 얼굴이었다. 곧 쭈뼛거리며 끄덕이는 얼굴에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미안.”

    다시금 입 밖으로 사과를 내뱉으며 나는 강의실에서 빠져나왔다. 필연적으로 떠오른 그날의 강렬한 기억에 얼굴이 붉어졌다. 그때 마침, 타이밍 좋게도 핸드폰이 울렸다. 김현이었다. 나는 낮게 웃으며 통화 버튼을 눌렀다.

    “응. 현아.”

    -지헌아, 수업 끝났어?

    “응. 끝났어.”

    -오늘 그거 아냐? 너한테 캔 커피 준 걔랑 같이 듣는 수업?

    내 시간표에 대해서 꿰고 있구나. 어이없이 드는 생각에 다시금 웃음이 나왔다.

    “진짜 괜찮은 애인이 있다고 말했어.”

    -어? 진짜?

    “응. 내가 진짜 괜찮긴 한가 봐. 이렇게 멋있는 애인이 다섯이나 있고 말야.”

    웃으며 건네는 장난스러운 말에 전화기 너머에서도 기분 좋은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러니까……. 너희들한테 사랑받고 있는 걸 보면 나도 영 나쁜 건 아닌가 봐. 무심한 생각을 하며 나는 바쁘게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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