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8. 학교 축제
“미친 거야. 미친 게 틀림없어.”
“네 키가 제일 작으니까…….”
“아, 이유 들으니까 더 싫어.”
나는 짜증스레 내 머리칼을 헤집었다. 잔뜩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김현이 장난스럽게 웃으며 다시 제자리로 돌려놨다. 그 다정한 손길에도 내 머릿속은 복잡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점심시간이 끝나기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각, 반 녀석들이 모두 교실에 모여 있었다. 축제 기간이 도래했기 때문이었다. 반장이 앞에 서서 이번 축제에 대한 전달 사항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고, 부반장은 오고 가는 내용을 칠판에 적고 있었다.
사실 처음 축제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솔직히 매우 기분이 좋았다. 내가 기억하는 축제는 대학 시절 그저 술, 술, 술, 아침에 해가 뜰 때까지 마시고 첫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그런 난장판의 기억밖에 없었는데 왠지 고등학교 축제라고 하니 마음이 동한 탓이었다.
하지만 단순히 고등학교의 축제라서 기분이 좋은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내가 컴퓨터로 진행했던 축제 이벤트를 떠올린 덕분이었다.
나는 축제 이야기가 나왔을 때부터 기대감에 가슴을 부풀렸다. 축제 이벤트. 게임 속 축제에는 아주아주 중요한 이벤트가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축제의 꽃이자 클리셰인 여장 남자 콘테스트였다.
게임을 할 때는 나와 같은 반인 강수하나 김현 중 누군가가 여장을 했었다. 그게 게임상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었던 부분이라 나는 둘을 번갈아 가면서 여장을 시켰다. 그래서 사실 이번에는 누구를 시킬지 엄청나게 기대하고 있었다. 직접 4D로 보는 여장이니까. 하지만…….
“아, 왜 나냐고!”
그 여장을 하게 되는 캐릭터가 내가 될 줄 누가 알았겠어.
그래, 게임이 이제 스토리 상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컴퓨터로 게임을 할 땐 내 캐릭터는 여자였으니까, 이 스토리에 주인공으로는 낙점되지 않았을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왜 나야?
“수하야, 나 진짜 하기 싫어어!”
“……잘 어울릴 것 같은데.”
“그러니까, 지헌아. 완전 잘 어울릴 것 같아.”
애처로이 우는 소리를 내 봤지만 안타깝게도 녀석들은 말이 안 통했다. 솔직히 따져 물으면 내가 아니라 너희들이 몇백 배, 몇천 배는 잘 어울리겠지. 조금 많이 큰 여자가 되겠지만 얼굴만 봐도, 어딜 봐도.
나는 게임 일러스트 속 녀석들의 화장한 결과물을 떠올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내 눈으로 직접 볼 수 있을 거라고 믿었는데, 완전히 날아가 버렸다.
“그럼 한지헌이 하는 걸로 한다.”
반장의 청천벽력 같은 소리가 들리고 반의 모두가 애석하게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견이 없는 사항이라 안타깝게도 완벽하게 나로 확정이 되어 버린 것이었다. 칠판에 여장 콘테스트 ‘한지헌’이라는 글자가 부반장에 의해서 쓰이고 있었다. 나는 세상이 무너질 듯한 한숨을 내어 쉬고 말았다.
“아, 진짜 하기 싫은데…….”
내가 하기 싫기도 하지만 강수하나, 김현이 하게 될 수도 있는 거였는데. 그걸 놓치게 되다니…….
“잘 어울릴 거야.”
그러니까 안 어울릴까 봐 걱정하는 게 아니라고. 나름대로 위로랍시고 꺼낸 말에 내가 한숨을 내쉬었다. 진짜, 진짜 이건 아닌 것 같은데.
나는 머릿속에 내가 여자처럼 입고 화장을 한 모습을 떠올려 봤다. 정말 안타깝게도 괴기스럽기 그지없는 몰골이었다. 한숨이 다시 새어 나왔다.
진짜, 진짜…… 정말 싫다.
***
시간은 빠르게 흘러 대망의 축제 날이 됐다. 막상 당일이 되니 여장에 나가게 됐다는 것도 잊고 나는 녀석들과 신나게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확실히 게임이라서인지 아니면 요즘 고등학교의 축제는 이런 것인지 볼거리도 즐길 거리도 많았다. 심지어 다른 학교 학생들한테까지 개방된 덕에 사람 보는 재미도 꽤 쏠쏠했다.
나는 방방 뛰고 있었다. 즉 아주 많이 신이 난 상태였다는 거다. 당장 닥쳐 올 일을 생각지도 못한 채로.
“한지헌! 너 뭐 해! 빨리 와!”
내 한 치 앞을 못 보는 해맑음은 귓전을 울리는 부반장의 목소리에 와장창 깨져 버리고 말았다. 나는 급하게 걸음을 멈췄다. 부반장이 내 팔을 잡아챘기 때문이었다.
“어?”
“여장 남자 콘테스트 준비해야지! 뭘 빨빨거리고 돌아다니고 있어!”
다른 여자애의 손이 내 다른 팔을 잡아 왔다. 어쩌다 보니 양쪽에서 잡혀 연행되는 모양새라 나는 놀란 토끼 눈을 뜨고 양쪽을 쳐다봤지만 녀석들은 놓아 줄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시간 얼마 안 남았어! 화장하고 옷 갈아입고 머리도 해야 돼! 빨리 와!”
나는 뭐라 말할 새도 없이 그 손에 질질 끌려갔다. 강수하와 김현도 당황해서 나를 따라오려 발걸음을 옮기는 것 같았지만.
“너희는 오지 마! 콘테스트 때 봐. 벌써 봐서 뭐 하려고.”
“엄청 예쁠 거야. 기대하고 있어.”
여자애들에 의해 가로막혀 버렸다. 능청스럽게 한마디를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은 녀석들이 나를 잡아끌어 교실로 달려갔다. 어벙하게 나를 뺏긴 두 사람은 그저 자리에 서 있었다. 언제 다가왔는지 김준과 장우진의 모습이 보였다. ‘뭐야, 지헌이 어디가?’ 하는 소리도 들렸다.
미친, 여장하러 가. 여장……. 전하지 못할 소리를 하며 나는 질질 끌려갔다. 진짜 정말 도살장에 끌려가는 기분이었다.
어느새 나는 교실에 도착해 있었다. 그 교실 안에 어쩐지 우리 반 여자애들이 다 몰려 있는 것 같아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마냥 당혹스러운 나와는 다르게 모두가 어쩐지 매우 즐거워 보였다.
“지헌아. 이게 좋아, 이게 좋아?”
일단 나를 자리에 앉히고는 부반장이 예쁘게 웃으며 내게 무언가를 내밀었다. 나는 헛웃음을 쳤다. 그러니까 노란 가발이냐, 검은 가발이냐 선택하라는 건가. 왜 저렇게 치렁치렁해, 보기만 해도 답답해.
그 가발을 가만히 보고 있던 나는 어쩐지 게임 속에서 강수하나 김현에게 여장을 시켰던 것이 미안해졌다. 나는 한숨을 내어 쉬며 울며 겨자 먹기로 검은색 가발을 선택했다. 무난하게 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좋아. 검정은 섹시지!”
하지만 선택과 동시에 들려온 말에 나는 한숨을 내어 쉴 수밖에 없었다. 아니, 나는 그냥 무난하게……. 차마 내뱉지 못한 목소리가 목 끝에 걸려 사라졌다.
도대체 검정이 섹시면 노랑은 뭐였을까. 큐트였을까? 섹시보다는 큐트가 좀 더 낫지 않나. 지금이라도 바꿔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녀석들은 내 선택과 동시에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아, 애들 보고 싶다. 얘들아 나 좀 구해 줘, 망할.
마음속으로 애절하게 외쳐 봤지만 당연하게도 녀석들이 올 리 없었다. 오히려 기대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기왕 그렇게 된 거 예쁘게 부탁한다. 괴기스럽게 하면 진짜…… 울 거야.”
나는 해탈한 얼굴로 말했다.
“걱정 마. 콘테스트 1등은 무조건 너니까!”
부반장이 말했다. 어쩐지 부반장은 이 여장 콘테스트 총책임자의 느낌을 풍기고 있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굳이 1등까지는 안 해도 되니까 제발 무난하게만…….
“옷은 이거 입을 건데 괜찮지?”
나는 결국 내 손에 얼굴을 묻어 버리고 말았다. 무난은 개뿔이구나, 진짜. 나는 녀석이 들고 있는 구멍 가득한 스타킹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미 저거부터 무난과는 거리가 멀어졌다. 하지만 내 좌절과는 관련 없이 모두들 분주했다.
일단 갈아입으라며 옷을 쥐여 주곤 다들 우르르 교실 밖으로 나갔다. 괜히 밖으로 나가서 옷을 보여 줄 수는 없다는 게 이유였다. 덕분에 텅 빈 교실에서 혼자 옷을 갈아입게 됐다. 이건 어떻게 입는 거지.
제일 먼저 보인 건 손에 쥔 스타킹이었다. 망사 스타킹이지, 이게? 하아, 한숨이 절로 나왔다. 커튼 뒤에 숨어 바지를 벗고 스타킹을 밀어 넣었다. 넣을 때마다 발가락이 걸렸다. 이게 뭐야.
처음에는 우악스럽게 바지를 입듯이 다리에 밀어 넣다가 발가락이 걸리니 찢어질까 봐 무서워졌다. 나는 결국 의자에 앉아 다리를 조심조심 밀어 넣었다.
스타킹을 신고 나니 꽉 껴 보이는 가죽 치마가 보였다. 보기만 해도 더울 것 같은 치마였다. 왜 다리가 휑하게 드러날 것이 분명해 보이는데 이렇게 더워 보이지. 한숨을 쉬다 스타킹만 신고 있는 다리가 이상해서 얼른 주워 입었다.
어찌나 꽉 조이고 짧은지 걸을 때마다 말려 올라갈 것 같아 나는 치마를 꾹꾹 잡아 내렸다. 그리고 나서 건네준 윗옷에 머리를 밀어 넣었다. 그냥 무난한 하얀색 티셔츠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위아래가 짧았다. ……완전히 배꼽티인데, 이거?
“아. 진짜….”
나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뭐 하나 편한 옷이 없었다.
“다 했어? 왜 이렇게 오래 걸려?”
생각보다 참을성이 없는 듯 부반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후다닥 옷을 정돈했다. 딱 붙는 티셔츠를 있는 힘껏 내려 봤지만 금방 다시 올라가 버려 의미 없는 몸짓이었다.
“다 입었어.”
“……어? 생각보다 괜찮은데? 얘 다리 곧은 것 좀 봐.”
“우리 1등이다. 완전 1등. 민영아, 초커, 초커.”
“응! 여기!”
초커는 또 뭐야. 나는 이제 온 힘이 빠져 가고 있었다. 윗옷을 내리는 손짓은 부반장에 의해 못하게 됐다. 대신에 나를 한 바퀴 훅 돌아보게 한 녀석은 담요를 내게 쥐어 줬다. 덕분에 나는 이 더운 날씨에 담요를 꽁꽁 두르게 됐지만, 보여 주고 있는 것보다야 훨씬 나으니 군말 없이 받아들였다.
녀석들은 이제 본격적으로 화장 준비를 시작했다. 뭐가 저렇게 많은지 한가득 나오는 화장품에 얼굴을 굳혔지만 모두들 별로 개의치 않는 모양이었다. 엄청나게 빠른 손길들이 내 얼굴에 닿아 왔다.
세상에 살면서 이렇게 여자들한테 둘러쌓여 본 적도 없었던지라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누구라도 나를 여기서 꺼내 준다면 정말 사랑해 마지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지만, 누구도 나를 꺼내 주지 않을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얼마나 손길이 닿았을까, 지네 같은 속눈썹을 붙인다고 난리를 치더니 눈에 뭔가를 열심히 그려 대던 녀석들이 내게 무언가를 내밀었다.
“뭔데.”
“렌즈 껴야지. 화장의 완성은 렌즈야.”
아, 진짜.
나는 다시 한번 과거 나 때문에 여장을 하게 됐던 강수하와 김현에게 속으로 미안함을 표했다. 진짜 내가 미안하다. 예쁘다고 좋아해서 미안해, 진짜.
***
“완벽해.”
“와, 지헌이 네가 우리 학교 여자애들 중에 제일 예쁠 것 같아.”
“그건 그거대로 굴욕이긴 한데, 진짜 예쁘다.”
한 시간 정도는 훌쩍 지나 버린 것 같았다. 화장이 끝나고 가발까지 씌워 낸 녀석들이 만족스럽게 웃었다. 하지만 나는 그 목소리에 같이 기뻐할 수가 없었다.
눈이 따끔거렸다. 뭔가 이물감이 가득한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속눈썹은 무거웠고 렌즈는 불편했다. 하지만 군말할 수 없었던 것은 너무나도 만족에 가득 차 있는 여자애들 때문이었다.
“1등이야. 이건 확실해.”
“맞아, 다른 반 애들 키는 다 커 가지고. 지헌이 만한 애가 없지.”
“키 작다는 말을 돌려 하는 거지, 지금.”
“대놓고 했잖아, 바보야.”
나는 불퉁하게 입을 내밀었다. 아니, 나는 평균이라고. 누가 보면 나 160대인 줄 알겠다, 진짜.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부반장이 내게 거울을 내밀었다. 한번 보라는 것 같았다. 목이 왠지 갑갑해서 나는 그 언저리를 긁으며 거울을 받았다. 물론 그 손길은 또 부반장에 의해서 막혀 버리고 말았지만.
아니, 개 목걸이도 아니고 목에 이런 건 왜 하는 거야. 목에 감긴 이게…… 아까 뭐라고 했지? 그 초커라는 것도 거슬렸다. 어쨌든 거울을 받은 내가 내 몰골을 확인했다. 제발 괴기스럽지만 말아라, 제발…….
“헐.”
“대박이지?”
거울을 본 내가 당황해서 입을 벌렸다. 만족스러운 웃음이 여자애들 사이에 피어났다.
“와, 나 길거리에서 이런 여자 본 것 같아.”
“……한 시간 넘게 걸려서 완성시켜 놨더니 겨우 감상이 그거야?”
아주 당연하게도 바로 혼났다. 아니, 예쁘다고. 진짜 여자 같다고. 그런 의미였지만 내가 생각해도 언어의 선택이 잘못된 것이었다. 나는 방금 맞아 따끔거리는 등을 괜히 폈다. 아프잖아, 이씨.
“시간 거의 다 됐어. 이제 가야 돼.”
“응. 지헌이 숨겨.”
“어?”
이제 움직일 모양이었다. 시간은 콘테스트 시간에 많이 가까워졌다. 자리에서 일어선 녀석들이 갑자기 검정색 우비 같은 것을 꺼내 왔다.
“……이 날씨에?”
“보안이 제일 중요하거든. 일단 이거 신어. 콘테스트 가기 바로 직전에 힐로 갈아 신자.”
아, 진짜. 미치겠네. 나는 녀석들이 건넨 슬리퍼를 신고 거의 발목까지 올 것 같은 우비를 입었다. 그러고는 절대 고개를 들지 말라는 신신당부를 들었다.
벌써부터 더워서 땀이 날 것 같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콘테스트가 이루어지는 강당까지 그리 멀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지나가는 걸음마다 이상한 몰골에 누군가 쳐다보는 것 같긴 했지만, 나는 차라리 빨리 콘테스트가 끝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발걸음을 열심히 옮기고 있었다.
***
“하하.”
저절로 헛웃음이 나왔다. 콘테스트의 대기실이라고 준비된 무대 뒤에는 온갖 괴기스러운 여자들이 판을 치고 있었다. 아니, 여자라고 표현할 수도 없었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나마 대기실에 들어온 이후로는 갑갑한 우비를 벗어 버릴 수 있어 다행이었다.
대기실 안에 미리 와 있던 녀석들은 나를 신기한 것을 보듯 쳐다봤다. 마치 동물원의 원숭이가 된 것 같았다. 슬쩍 훑어봐도 나처럼 성심성의껏 꾸민 사람은 없어 보였다. 아, 완전히 사기당했어. 나는 저절로 한숨이 새어 나왔다.
“곧 시작한대. 얼른 구두 신어. 올라가면 뭐 할 거야?”
“……또 뭘 해?”
“뭐야. 그냥 서 있다가 내려올 거야? 춤이라도 춰야 하지 않아?”
“도연아, 이거!”
“응! 이리 줘.”
갑작스러운 대화에 나는 당황하고 말았다. 올라가서 뭘 하라고? 춤을 추라고? 미친 거 아냐? 당황스러움에 할 말이 없었다. 아, 그러고 보니까 게임에서 강수하나 김현이 꼼지락댔던 것 같기도 했다. 아니, 김현은 꼼지락댄 수준이 아니었지. 코믹 댄스를 췄었다.
아, 이제야 떠오른 그 기억에 나는 한숨을 지었다. 그 와중에 부반장은 손에 항공 점퍼를 하나 들고 있었다.
“그건 또 뭐야.”
“네가 준비한 게 없다면 내가 팁 하나 줄까?”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나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준비한 게 하나도 없으니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다. 부반장이 씨익 웃었다. 어쩐지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
***
“올해도 찾아왔습니다. 하나 물어볼게요. 축제의 꽃은 뭐죠?”
“여장 남자 콘테스트!!!!”
결국 콘테스트가 시작됐다. 나는 떨리는 손을 가다듬었다. 결국 저 무대에 내가 오르게 되는구나. 그 와중에 계속해서 드는 이물감에 나는 눈을 비비고자 손을 올렸다가 부반장에게 탁 하고 맞았다. 마치 집중 마크를 하는 것처럼 옆에 붙어 있는 녀석 때문에 아무것도 제대로 못 하고 있었다.
“올라갔다 내려올 때까지만 참아. 꼭 1등 해야 한다?”
“……너 진짜 싫어.”
“푸하하하. 귀여워.”
진심으로 한 말인데 부반장은 뭐가 재밌는지 배를 잡고 웃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올라갈 때가 되었는지 녀석이 내게 자리에서 일어나라 손짓했다. 나는 부들부들 떨리는 다리를 애써 가누며 일어섰다. 어디 하나 불편하지 않은 데가 없었다.
“그래도 곧잘 걸어서 다행이네.”
“그러니까.”
솔직히 힐을 처음 신었을 땐 무대에 올라가서 넘어지지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하지만 그래도 좀 신고 있다 보니 적응이 됐는지 좀 부자연스럽긴 해도 넘어지진 않을 것 같았다. 나는 떨리는 속을 가다듬었다.
저기 올라갔다 오면 애들이 얼마나 놀릴까. 생각만 해도 눈앞이 깜깜해졌다.
“지헌이 네가 제일 예뻐.”
“하나도 칭찬 안 같아.”
불퉁하게 말했지만 녀석은 웃으며 내 어깨를 두드렸다. 이제는 올라가야 할 때였다. 참가 인원은 나까지 총 다섯 명이었다. 반마다 다 나오는 것도 아닌데 나는 도대체 여기에 왜 나왔는가, 회의감이 들었지만 돌이키기엔 이미 늦었다.
1번부터 차례로 무대 위로 걸어갔고 나는 부반장의 파이팅을 받으며 천천히 걸음을 내딛었다. 어쩌면 자리 운도 참 좋게 정 가운데인 3번이었다. 눈부신 무대 위로 발걸음을 내딛자 와아아, 하는 함성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우와. 진짜 여자분 한 명 나오셨는데요?”
사회자가 우리를 쭉 훑어보다 정확하게 나를 보며 말했다. 여기저기서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고 있었다. 눈이 따가워져 나는 살짝 눈을 감았다 떴다. 눈이 부셨다.
“와. 나한테 윙크한 거예요? 나 지금 심장 좀 떨리는데?”
장난스러운 남자의 목소리에 나는 헛웃음을 쳤다. 누가 윙크를 했다는 거야.
내 시끄러운 머릿속과는 관계없이 콘테스트는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진행됐다. 처음 시작은 간단한 자기소개였다.
1번부터 대순입니다, 강숙입니다 하며 이름을 여성스럽게 바꿔 소개할 때마다 여기저기서 웃음소리와 함성 소리가 동시에 터지고 있었다. 이윽고 내 차례가 됐다. 나는 사회자가 주는 마이크를 잡아들었다.
“안녕하세요. 3반 어, 예, 예쁜이 한지현입니다.”
나는 애써 태연한 척 입을 열었다. 예쁜이는 부반장 아이디어였다. 죽고 싶을 만큼 창피했지만 앞선 녀석들과 비교도 안 될 만큼의 함성 소리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진짜 정말 쥐구멍이 있다면 숨고 싶어졌다. 진심으로.
“예쁜이가 이렇게 잘 어울리는 참가자는 또 처음이라, 내가 좀 심장이 막 뛰는데요.”
사회자가 능글맞게 웃으며 내게 마이크를 받아 갔다. 괜히 느끼한 마음에 속이 메스꺼워졌다. 으씨, 진짜 이거 언제 끝나냐고.
하지만 콘테스트는 계속 진행되고 있었다. 5번까지 왔다가 다시 마이크는 사회자에게 돌아갔다.
“자! 소개는 이쯤 하고, 여기서 우리 아름다운 여성분들의 장기자랑 한번 봐야 하지 않겠어요?”
사회자의 말에 나는 남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때가 오고야 말았다. 하지만 이것만 하고 마지막으로 투표만 하면 끝난다. 이게 제일 복병이지만 어쨌든. 나는 마음을 가다듬었다. 1번부터 차례로 다시 장기자랑이 넘어왔다. 1번은 우스운 코믹 댄스를 2번은 애교를 부렸다. 또 내 차례였다.
“나 이 친구 너무 기대돼요. 한지현 씨.”
사회자가 내게 한걸음에 다가왔다.
“뭐 준비했어요?”
“어……. 춤이요.”
꺄아아아악, 하는 함성 소리가 들렸다. 어쩐지 점점 커지고 있는 것 같았다. 아, 춤. 진짜 추기 싫은데. 아…….
“와, 나 기대해도 돼요?”
“……아니요.”
“도도하기까지 해요.”
사회자의 장난스러운 말에 우우우, 하는 야유 소리가 들렸다. 어깨를 으쓱한 사회자가 내게서 멀어졌다.
“우리 끈적거리는 노래로 갑시다. 노래 틀어 주세요.”
사회자의 말에 바로 노래가 틀어졌다. 나는 쭈뼛거리며 무대에 두 걸음 앞으로 나갔다. 여전히 여기저기서 터지는 함성 소리에 귀가 울려왔다. 눈 딱 감고 한 번만 하자, 한 번만.
나는 조심스럽게 몸을 움직였다. 춤을 잘 추는 편은 아니었지만 너무나 다행히도 못 추는 편도 아니었다. 최대한 여성스럽게 웨이브를 한번 하니 또다시 함성이 터졌다. 뭐 하나만 해도 터지니 욕은 안 먹겠다 싶어 다행스러워졌다.
조금은 자신감이 붙으니 그 뒤로는 쉬웠다. 웨이브를 하며 팔을 위로 들었다가 몸을 살랑살랑 움직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까 부반장이 알려 준 대로 객석을 등지고 섰다.
저절로 한숨이 나왔지만 애써 태연하게 녀석이 입힌 겉옷을 어깨까지 쭉 내렸다. 꺄아악 하는 함성 소리를 들으며 오른쪽으로 몸을 틀어 발목부터 천천히 쓸며 쭉 올라오며 웨이브 했다.
강당이 터질 것같이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나는 준비한 부분을 끝내자마자 다급하게 내 자리로 돌아왔다.
“와, 와씨. 대박. 어우, 이런 비속어 쓰면 안 되는데. 죄송합니다. 근데 너무 섹시한 거 아니에요? 진짜 여자 아니에요?”
“……죽고 싶으니까 말 걸지 마세요.”
“하하하하. 미치겠네, 진짜.”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여전히 함성 소리도 들리고 있었다. 어쨌든 끝났다. 장기자랑도 끝났다. 여기서 좀 서 있다가 내려가면 끝난다. 그제야 나는 안도감이 들어 객석을 바라봤다.
조명이 여기에 비추고 있어 객석이 잘 보이진 않았다. 어딘가에서 녀석들이 보고 있을까? 아, 진짜 여기서 혀 깨물면 죽나? 부끄러워서 죽을 것만 같았다.
여장 콘테스트는 모두가 말한 것처럼 이변 없이 내가 1등이었다. 1등을 했다고 꽃다발을 쥐여 준 사회자는 사심 좀 채우자며 나를 끌어안았다. 경기를 일으키며 나는 멀리 떨어졌다. 짜증스레 미간을 찌푸린 채였다. 그래도 뭐가 좋은지 남자는 웃고만 있었다.
“와! 대박이었어. 한지헌 진짜!”
“……하아.”
힘이 풀려 버린 나는 무대에서 내려오자마자 의자에 털썩 앉았다. 무대에서는 콘테스트가 끝났다는 안내가 나오고 있었다. 사회자의 목소리도 금세 끊겼다. 나는 그때까지도 넋을 놓고 앞만 보고 있었다.
“어? 한지현 씨!”
그때 사회자가 무대 아래로 내려왔다. 나를 보고 반가운 기색을 보인 남자였다. 하지만 나는 어쩐지 별로 가까이 가기 싫었기에 그냥 살짝 목례만 했다.
“와, 다시 봐도 진짜 예쁘네.”
“제 작품이에요.”
부반장이 장난스럽게 웃으며 나를 살짝 뒤로 빼냈다. 불편한 느낌은 나만 가진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나는 살짝 웃으며 고개를 까딱였다. 어쨌거나 칭찬이니까.
“어떻게, 연상 좋아해요? 나는 지현 씨 되게 마음에 드는데.”
“……저 남잔데요.”
하지만 웃었던 얼굴은 금세 가라앉았다. 기분도 안 좋은데 계속 질척거리는 남자를 보니 삐뚤게 말이 나갔다.
“그게 왜?”
남자가 웃었다. 아, 여기 게임이지. 나는 한숨을 내어 쉬었다.
“죄송합니다.”
나는 바로 거절의 의사를 내비쳤다. 남자는 웃으면서 내게 한 발자국 다가왔다. 아니, 방금 내가 거절했잖아, 미친놈아. 목 끝에 걸린 욕이 차마 밖으로 나가지 못한 채 사라졌다.
“왜. 나 되게 괜찮은 사람인데.”
싫다고 했는데 다가오는 거 보면 전혀 신빙성 없는 이야기 같은데. 부반장이 다급하게 앞을 가로막고 섰다. 불편한 기류였다.
“거절한 것 같은데요, 지금.”
다행스럽게도 그 타이밍에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바로 고개를 돌렸다. 어떻게 다 같이 왔는지 익숙한 다섯 명의 얼굴이 보였다. 나는 잔뜩 들뜬 마음에 그쪽으로 달려갔다.
“이유한, 언제 왔어?”
“아까.”
하지만 평소답지 않게 딱딱한 말투라 나는 바로 입을 다물었다. 화가 났나? 왜 화가 났지? 나는 두 눈만 굴리고 있었다.
“그래, 뭐 경쟁할 사람이 없을 거라고는 생각 안 했지만…….”
남자가 의미 모를 말을 하며 웃었다. 그러더니 제 안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내 내 손에 억지로 쥐여 주었다.
“언제든 마음 바뀌면 연락해요. 알겠지?”
남자는 눈웃음을 치며 내 손에 제 명함을 쥐여 주고 금방 대기실에서 나갔다. 나는 한숨을 내어 쉬었다. 조금의 안도감이 생긴 탓이었다. 내 손에 쥐어진 명함은 어느새 다가온 장우진이 채갔다. 순식간에 명함은 구겨졌고 쓰레기통에 버려졌다.
“아…….”
왠지 예의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뭐 진짜 연락할 건 아니었으니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이제 옷을 갈아입고 싶었다.
“내 옷은 어디 있어?”
“어? 옷? 아, 옷? 네 옷 여기 가져왔었, 어? 어디 갔지?”
부반장은 내 물음에 눈에 띄게 당황했다. 그 느낌이 심상치 않아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녀석이 여전히 당황한 얼굴을 한 채로 웃었다.
“잠깐만.”
그러고는 슬그머니 핸드폰을 들고 눈앞에서 사라졌다. 아니, 어디가? 내 옷은? 나 이거 언제까지 입고 있어야 하는데?! 온갖 말이 떠올랐지만 차마 내뱉지 못했다. 이미 대기실을 빠져나간 탓이었다. 다들 자기들 옷으로 갈아입고 있는데 나만 여기에 가만히 있었다.
나는 눈을 굴리다가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잠깐 힐을 신고 있었을 뿐인데 발바닥에 불이 난 것처럼 아팠다. 내 곁으로 김현이 쪼르르 달려왔다.
“……지헌아.”
“응?”
“한지헌.”
“왜?”
김현은 뭔가 이상했다. 괜히 이름만 몇 번 부르고 있었다. 나는 두 눈을 깜빡였다. 속눈썹과 렌즈가 계속 거슬렸다. 지금은 떼어 내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다가 왠지 무서워졌다. 렌즈를 껴 본 적도 빼 본 적도 없었다.
이거 부반장이 해 줘야 하는데, 렌즈도 결국 끼워 줬는데. 결국 한숨을 내쉬며 나는 가만히 있었다. 빨리 이 갑갑한 것들을 치워 버리고 싶었다.
“미치겠네.”
그 사이에서 강수하가 조용히 읊조렸다. 내 시선이 녀석에게 닿았다. 눈이 마주친 강수하가 휙 하고 눈을 피했다. 어쩐지 이상한 기분이었다. 많이 이상한가. 그래도 괜찮았는데. 나는 어디 하나 거슬리지 않는 데가 없었지만 특히나 거슬리는 목을 괜히 긁적였다. 이거라도 빼고 싶은데. 이거 어떻게 빼는 거지. 여기 뭐 잠그는 게 있었던 것 같은데…….
“왜?”
내 불편한 느낌을 알았는지 김준이 다가왔다.
“아, 나 이거 빼고 싶어. 간지러워.”
“어……. 빼 줄게.”
다행히도 빼 준다는 김준 덕분에 나는 등을 보이고 앉았다. 머리가 거슬릴까 싶어서 치렁치렁한 긴 머리를 옆으로 치웠다. 목걸이와 비슷하게 빼는 거겠지. 근데 진짜 여자들은 머리가 이렇게 길면 불편하지 않을까. 새삼스럽게 이 불편함을 안고 다니는 여자들에 대한 존경심이 들었다.
“아…….”
내 등 뒤에 선 김준의 목소리가 들렸다. 풀어 준다 했으면서 손길이 닿지 않아 내가 의아하게 녀석을 바라보니 그제야 움직였다. 김준의 숨이 가까웠다. 꿀꺽하고 침을 삼키는 소리가 적나라하게 들리고 있었다. 그 와중에 헛손질을 했던 건지 초커가 목을 졸렸다.
“준아. 풀어 준다고 해 놓고 목을 조르면 어떡해…….”
“어, 어? 아, 미안! 미안해.”
여전히 당황스러운지 다급한 손길이었다. 목에 닿는 손이 축축했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진짜 다들 왜 이러는 거지. 너무 이상해서 넋을 뺐나. 그게 아니면 너무 예뻐서? 나는 순간 든 어이없는 생각에 푸흐흐 웃어 버렸다.
“내가 할게.”
제대로 풀어내지 못하는 김준에게 이유한이 말했다. 김준이 자리에서 일어서고 이유한이 막 다가왔을 때 대기실 안으로 부반장이 들어왔다. 그때쯤에는 참가했던 녀석들이 대부분 옷을 다 갈아입고 나갈 준비를 마친 후였다.
“어, 지헌아.”
나는 왠지 엄습하는 불안감을 내리누르며 녀석을 봤다. 어째선지 녀석이 미안한 기색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지혜가 네 짐 챙기고 있었거든…….”
“그런데?”
“근데 갑자기 남자 친구가 축제 보러 왔다고 나갔는데.”
“……?”
“근데 네 짐을 가지고 갔나 봐. 얼마나 즐거운지 얘가 전화를 안 받…….”
“아, 진짜 너희 진짜, 아.”
나는 저절로 나오는 헛웃음에 내 머리카락을 흩트렸다. 아니, 흩트리려고 했다. 안타깝게도 가까이 있던 이유한에게 손을 잡혔다. 가발이야 치우면 그만인데 왜 머리카락도 못 흩트리게 하는 거냐고. 괜히 불퉁해진 나는 내 머리 대신 녀석의 머리를 마구잡이로 헝클였다. 이유한이 어이없이 웃었다.
“연락 닿는 대로 가지고 오라고 할게. 일단 이거 신어.”
“응.”
나는 녀석이 준 슬리퍼를 신었다. 발이 조금이라도 편해지니 살 것 같았다.
“교실로 바로 오라고 할게. 거기로 와.”
“하아. 이 몰골로?”
“……하하.”
부반장이 민망하게 웃었다. 나는 한숨만 내쉬었다. 그리고 결국 자리에서 일어섰다. 모르겠다. 어차피 웬만한 사람들 앞에서 춤까지 췄는데, 뭐 어떠랴 싶은 생각에서였다.
“금방 가져올게. 알겠지?”
그 말을 남기고 녀석은 빠르게 내게서 멀어졌다. 순간 다급하게 녀석을 불렀지만 이미 사라진 이후였다.
아, 렌즈 빼 달라고 하려고 했는데. 아까 전 렌즈를 넣다가 몇 번이나 실패한 내 눈에 직접 넣어 준 녀석이었다. 그래서 빼는 것도 해 주기로 했으면서, 왜 가 버리냐. 나는 한숨만 내어 쉬었다.
“불편해.”
불퉁하게 내뱉으며 나는 걸음을 옮겼다. 그런 내 팔을 강수하가 잡았다. 당황해서 녀석을 보니 한숨을 내쉬며 내가 아까 벗어 놓은 점퍼를 집어 내 허리께에 감았다.
“더운데.”
“좀만 참아.”
근데 이렇게 입으니까 더 여자 같아. 나는 대기실에 자리 잡은 거울을 한번 보고 미묘한 기분을 느꼈다. 가까이에 있는 강수하와 함께 보이는 거울에는 정말 커플 한 쌍이 같이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저절로 나오는 헛웃음을 흘렸다.
“왜?”
“거울 봐. 남녀 커플 같아서.”
내 말에 강수하가 거울을 바로 봤다. 거울 안에서 녀석과 눈이 마주쳤다. 강수하가 고개를 훽 돌렸다. 순간적으로 귓가가 붉게 달아오른 게 보였다.
다른 녀석들은 말이 없었다. 커플 같다는 말에 불퉁하게 한마디씩 할 법도 한데 말이 없으니 이상했다. ……혹시 이거 내가 이상해서 그러는 게 아니라.
“너희 혹시 내가 너무 여자 같아서 그러는 거야?”
“어?”
“왜, 너무 예뻐?”
나는 장난스럽게 꽃받침을 하며 말했다. 하지만 막상 아무도 말이 없었다. 괜히 장난을 한 나만 민망해졌다.
“장난을 쳐도 안 받아 주고. 왜 이래, 다들.”
나는 불퉁하게 툴툴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교실에 가서 빨리 치워 버리고 싶었다.
“예뻐.”
그때 내 뒤에서 김현의 목소리가 들렸다.
“너무 예뻐서 정신을 못 차리겠어.”
아. 이렇게 대놓고 말할 줄은 몰랐는데…….
“심장이 터질 것 같아.”
녀석이 민망하게 웃으며 제 가슴께를 두드렸다. 그 덕에 방금까지 괜찮았던 내 심장도 터질 듯이 뛰기 시작했다.
“아, 뭐, 뭐야. 장난이었는데.”
나는 어색하게 고개를 돌렸다. 그런 내 어깨를 순간 김준이 감싸 왔다. 나는 티가 날 정도로 어깨를 움찔 떨었다.
“나가기 싫어. 옷 갈아입히고 싶어.”
“……어?”
“다 쳐다볼 거 아니야. 예뻐서. 아, 짜증나.”
나는 민망하게 눈을 굴렸다. 얼굴이 붉어졌는지 열이 올라오고 있었다. 왜 갑자기 이렇게 되는 거냐고. 그런 말 대놓고 안 해 줘도 된다고.
“진짜 너 춤출 때 심장 터지는 줄 알았어. 옆에 새끼들이……. 아, 진짜 짜증 났어.”
이유한도 말을 덧붙였다. 나는 아무런 대답도 못 하고 어색하게 웃었다.
“됐어. 그만 띄워도 돼.”
급하게 말을 돌린 게 티가 났다. 일단 나는 이제 그만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다. 가서 옷도 갈아입고 화장도 지워 버려야지. 민망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어느새 대기실은 모두가 다 나가 나와 녀석들만 남았다.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은 나와는 의견이 다른지 그새 다가온 장우진이 내 손을 살짝 쥐었다. 움찔 떠는 내 손가락을 천천히 매만지던 녀석이 한숨을 내어 쉬었다.
“그냥 옷 가져오라고 하자.”
그 단호한 말에 김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아마 부반장에게 전화를 하려는 모양이었다. 나는 결국 다시 자리에 앉았다. 내 옆으로 강수하가 다가왔다.
“목에 그거, 빼 줄게.”
“으응.”
한번 어색해진, 터질 것처럼 뛰기 시작한 심장은 이제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뛰어 대고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아까 전처럼 앉았다. 나를 대신해서 강수하가 내 머리카락을 옆으로 쓸어 넘겼다. 조심조심 닿아 오는 손이 불에 닿은 듯 뜨거웠다. 탁 하는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목에 있던 게 떨어졌다. 간지러웠던 것이 사라지니 조금 편안해졌다.
“렌즈, 빼 줄까?”
가만히 우리가 하는 것을 보고 있던 이유한이 한 발자국 다가왔다. 나는 선뜻 고개를 끄덕이지 못했다. 두근두근 대는 심장이 더 이상의 자극은 멈춰 달라고 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내 동의를 받지 않았음에도 이유한은 성큼 다가왔다.
내 얼굴을 부드럽게 잡아 올린 녀석이 천천히 손을 뻗었다. 렌즈를 빼려면 눈을 뜨고 있어야 하는데 그 순간 나는 눈을 감고 싶을 정도였다. 나는 부들부들 떨리는 몸을 진정시켰다. 녀석은 조심조심 내 눈에서 렌즈를 빼냈다. 불편했던 것이 사라지니 그제야 해방감이 들었다.
“아, 살 것 같아.”
빠르게 눈을 깜빡거렸다. 속눈썹이 아직 조금 무겁긴 하지만 그래도 눈에 닿아 오는 게 없으니 확실히 편해졌다. 그때 내 짐을 가지고 갔다던 지혜가 대기실로 들어섰다.
“지헌아, 진짜 미안!”
나는 그제야 한숨을 내쉬었다. 드디어 끝났다.
***
여장 남자 콘테스트가 시작되는 곳에는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콘테스트에 직접 나가는 지헌을 제외하고 나머지 다섯 명은 나름대로 잘 보이는 자리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와, 나 기대 돼.”
김현이 발을 동동 굴렸다. 다들 아무런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 기대를 하고 있었다. 한지헌의 여장이라고 하니 돈 주고도 못 볼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됐는지, 엄청 귀여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 시작해?”
“곧 할 거예요. 아마.”
지헌이 여장을 하게 됐다는 소식에 축제를 구경 온 유한도 기분이 좋은 상태였다. 빨리 시작하면 좋겠다.
“올해도 찾아왔습니다. 하나 물어볼게요. 축제의 꽃은 뭐죠?”
“여장 남자 콘테스트!!!!”
모두의 기대를 한 몸에 받는 콘테스트가 시작됐다. 입가에 피어오르는 웃음을 굳이 숨기지 않은 녀석들은 서로 대화도 없이 무대에 집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참가자를 모신다는 사회자의 설명과 함께 이번 콘테스트 참가자인 다섯 사람이 무대 위로 올라왔다.
하지만 그 무대를 보던 다섯 사람의 웃던 얼굴이 무섭도록 굳어졌다.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저 가운데에 서 있는 지헌을.
“허.”
김준이 헛웃음을 쳤다. 하지만 그 누구도 반응하지 않았다. 이글이글 타는 눈으로 오로지 무대 위에 서 있는 지헌을 보고 있을 뿐이었다.
“안녕하세요. 3반 어, 예, 예쁜이 한지현입니다.”
조심조심 걸으며 꺼낸 인사에 결국은 모두가 제 얼굴을 쓸었다. 미친, 왜 저렇게 예뻐.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지만 심장이 두방망이질 치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무슨 반응을 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예뻤다.
“와! 한지현! 예쁘다!”
“야, 쟤 여자 아냐? 왜 저렇게 예뻐?”
“저런 애가 있었어?”
“쟤 걔 아니야? 미국에서 왔다는 전학생?”
“아, 그 작은애? 와. 엄청 예쁜데.”
“아씨. 말 걸어 봐야지. 친해지고 싶다.”
하지만 순간 들었던 그 감정은 주위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차갑게 식어 갔다. 예뻐, 너무 예쁜데. 모두 다 예쁘다고 생각하진 말았으면 좋겠다. 모두가 말이 없었다.
콘테스트는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었다. 사회자가 은근히 지헌에게 가까이 다가가고 있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장우진이 딱딱 소리를 내며 짜증스레 머리를 헤집었다. 모두의 심정도 그와 다를 바는 없었다.
진행되는 콘테스트는 이내 장기자랑 차례가 됐다. 이미 속이 뒤집혀 버린 다섯 명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땐 지헌이 평소처럼 쭈뼛대다 들어가겠거니,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기를 바라기도 했고. 하지만 그 예상은 무참히 깨졌다.
지헌이 살살 웨이브를 할 때부터 얼굴을 찡그리던 강수하는 점퍼를 내리고 다리를 쓸던 그때, 결국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하지만 자리는 뜨지 못하고 안절부절못했다.
“와! 미쳤다, 진짜!”
“진짜 와. 미쳤네. 쟤. 와.”
여기저기서 난리가 났다. 속이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애초에 이 여장 남자 콘테스트에 나간다고 했을 때 못 나가게 말렸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제가 한스러울 정도였다. 김현이 제 머리카락을 짜증스레 헤집었다.
“내 지헌이가 만인의 지헌이가 되고 있어…….”
애초에 자신의 지헌이라고 하는 말도 안 맞는 거지만 누구도 그것에 반론을 제기할 생각을 못 했다. 모두가 다 같이 만난다는 생각을 할 때도 이렇게 속이 부글부글 끓었던 적이 없었는데, 지금은 딱 질투심에 돌아 버릴 것 같았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섹시함, 그 자체였다. 보기만 해도 뭘 노리고 입힌 의상인지 알 수 있었다. 검은색 긴 머리에 목에 두른 검정색 목걸이, 딱 붙는 흰색 티셔츠에 가죽 치마. 거기에 스타킹, 그리고 아찔한 높이의 힐까지.
이유한이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러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 타이밍에 결국 지헌이 1등을 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었다. 모두가 미련 없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편하게 웃음 지으며 이 콘테스트를 즐길 수가 없었다. 파리 떼가 꼬일 것 같았다. 그건 당연히 안 될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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