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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5. 김현 외전 (25/36)

외전 5. 김현 외전

아르바이트도 학교도 나가지 않는 주말. 정말 오랜만에 늘어지게 잠을 청하고 있었는데 오후 2시쯤 김현이 돌연 집으로 찾아왔다. 사실 그때까지도 잠을 청하고 있던지라 내 품 안으로 김현이 들어오고 나서야 나는 어렵사리 눈을 뜰 수 있었다.

“으응, 현아 왔어?”

“응. 피곤해?”

내 품 안에 부비적거리며 들어온 현의 머리카락을 살며시 매만지며 나는 고개를 저었다. 너무 오랜만에 푹 자서 그런가, 사실 눈이 쉽사리 떠지지 않았다.

“더 잘래?”

그런 나를 올려다보며 김현이 물었다. 나는 아직도 눈을 뜨지 않고 고개만 끄덕였다.

“5분만.”

“잠탱이네, 잠탱이.”

간지럽게 웃는 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등을 조심스레 토닥이며 ‘더 자’ 하는 자상한 목소리도 함께였다. 하지만 오히려 그 목소리에 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바쁜 시간 겨우 쪼개서 온 걸 텐데 지금 잠들면 5분이 아니라 끝도 없이 자 버릴 것 같았다. 김현은 나를 깨우지 않을 테고. 나는 부스스하게 몸을 일으켰다.

“밥은 먹었어?”

내 물음에 김현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초밥 먹었어. 너 안 먹고 이러고 있을 것 같아서 네 것도 사 왔지.”

자랑스레 내뱉는 말에 나는 슬그머니 웃었다. 센스 있는 것 좀 봐. 그 말을 듣자마자 기가 막히게 꼬르륵 거리는 배를 어색하게 두드렸다. 김현이 웃으며 바로 몸을 일으켰다.

“더 안 자도 돼?”

“응. 일어날래.”

“응. 초밥 지금 먹을 거지?”

“응.”

다정하게 물어 오는 목소리였다. 나는 침대 밖으로 발을 내밀었다. 쌍둥이들이 사 온 침대는 정말 생각보다 너무 넓어서 구석에서 잠드는 버릇이 있는 나는 두 번 정도 엉덩이를 옮겨야 발을 바깥으로 내딛을 수 있었다.

“침대 너무 넓어.”

“바꿔 줄까?”

“하하. 됐거든.”

돈을 네가 많이 벌긴 하는구나. 새삼스러운 생각을 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저 혼자 자기에 넓다는 소리였다. 보통 혼자 자는 일이 더 없긴 하지만.

“맛있겠다.”

거실로 나오니 테이블 위 김현이 가져온 초밥이 고급스럽게 포장되어 놓여 있었다. 나름대로 신경 써서 가져온 것이 티가 나 기분 좋게 현이 건네주는 젓가락을 집어 들었다. 맛스럽게 정돈되어 있는 초밥을 하나 입에 넣으니 사르르 녹아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맛있어. 만족스러운 웃음이 피어올랐다.

“볼이 막 움직여.”

이미 먹고 온 김현은 옆에서 내 볼을 꾹꾹 눌러 보고 있었다. 자주 있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먹다가 째려보고, 먹다가 째려보고 했지만 그럼에도 김현은 꿋꿋하게 볼을 누르는 것을 계속했기에 그냥 내가 포기한 것이었다.

“하나 먹을래?”

연어 초밥을 입에 넣으려다 내가 김현을 보고 물었다. 김현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초밥을 입에 넣었다. 배부른가 보다, 무심한 생각을 하던 차였다.

“귀여워.”

뭐가 그렇게 귀여운지 내 볼을 만지작대는 통에 괜히 민망해진 내가 얼굴을 붉혔다. 밥 먹는 걸 그대로 관찰당하는 것 같은 이상한 기분이었다.

“그렇게 빤히 보지 마.”

“왜?”

“……민망하니까.”

오히려 순진무구하게 되묻는 바람에 내가 더 당황스러웠다.

“아, 왜애 귀여워서 보는 건데?”

민망한 소리를 하며 김현은 머리를 도리질 쳤다. 계속해서 보고 있겠다는 말이었다. 김현은 아예 허리를 감으며 내 등 뒤에 앉았다. 덕분에 나는 김현에게 안긴 꼴이 됐다.

“나 오늘은 쉬고 내일부터 드라마 촬영 들어가.”

내 어깨에 제 얼굴을 묻은 김현이 귓가에 중얼거렸다. 전부터 곧 드라마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하긴 했었는데 당장 내일부터라니. 놀란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돌렸지만 여전히 어깨에 묻힌 얼굴은 들릴 생각이 없는 듯 보였다.

“멋있다.”

“아하하, 멋있어?”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그냥 새삼스럽게 배우는 배우구나, 싶어졌다. 사실 나한테는 그 고등학교 때의 김현에 대한 기억이 더 강했기에 오히려 더 새삼스럽게 느껴지고 있었다.

“응. 신기하다. 막상 드라마 들어간다고 하니까 완전 신기해.”

“난 싫어. 너 이렇게 만날 줄 알았으면 한동안 쉬는 건데. 왜 그거 한다고 해 가지고. 내일부터 지헌이 너 보기 엄청 힘들 거야.”

칭얼대는 목소리와 함께 허리를 감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나는 들고 있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얼굴이 보이도록 돌아앉았다. 김현이 시무룩한 얼굴로 내가 하는 양을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었다.

“나는 TV에서 많이 볼 텐데”

짐짓 장난스러운 말을 건네며 나는 김현과 마주 보고 앉았다. 그새 불퉁해진 입술이 잔뜩 서운한 기색을 띠었다.

“나는 못 보잖아, 나는. 아, 지금이라도 무를까?”

“저기 있는 거 대본 아냐?”

“……아, 하기 싫어.”

칭얼거리는 김현의 머리칼을 나는 장난스럽게 흩트렸다. 덕분에 조금은 기분이 풀린 듯 배시시 웃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금세 또 얼굴이 불퉁해진다.

“이 드라마 근데 진짜 이상해.”

“뭐가 이상해?”

“드라마가 처음부터 헤어지고 시작해. 여자 주인공이랑.”

그러면서 김현은 한숨을 내쉬었다.

“사랑해서 헤어진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 하면서 여자 주인공이 나를 차거든?”

“아아.”

“근데 내가 또 그걸 이해해. 말도 안 돼.”

김현은 진심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투였다.

“사랑하는데 왜 헤어져? 잘못했다, 잘하겠다, 어떻게든 만나면서 풀어 가야지. 하나도 공감 안 돼.”

나는 입을 다물었다. 무어라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사랑해서 헤어진다. 드라마에 흔히 나오는 클리셰 같은 거 아닌가. 그 나름대로 절절한 사연도 있고. 하지만 그럴 수도 있다고 하면 어쩐지 나와 저 자신을 투영할 것 같은 느낌이라 나는 김현의 말에 긍정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난 안 헤어질 건데, 너랑.”

배시시 웃으며 하는 대답에 불퉁했던 김현의 얼굴이 단박에 밝아졌다.

“진짜지?”

“에이, 내가 너랑 왜 헤어져.”

“그치?”

기분이 좋은 듯 김현이 제 발을 동동 굴렀다. 방금까지 불퉁했던 얼굴은 온데간데없어졌다. 그 급격한 온도 차이에 나까지도 헛웃음이 나오고 있었다.

“나 양치질 좀 하고 올게.”

“응.”

나는 기분이 조금 풀린 듯한 김현을 두고 화장실로 들어섰다. 양치질과 세수를 대충 하고 나서 수건으로 닦아 내고 잠옷도 갈아입을까 하다가 굳이 그럴 필요 없을 것 같아서 그대로 입고 있었다. 어차피 현이는 나가기 어려우니까 오늘은 계속 집에 있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그렇게 대충 씻고 나오니 마음에 안 든다던 그 대본을 집중해서 보고 있는 김현이 보였다. 싫다고 하더니 그래도 열심히 하네. 귀엽게.

“대본 봐?”

슬그머니 내가 다가가서 물었다. 그새 집중했었는지 미간이 곱게 접혀 있던 현이 금세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근데 진짜 공감이 안 돼서 그런가. 안 읽힌다.”

“나도 봐도 돼?”

“응!”

현이가 거리낌 없이 내게 대본을 건넸다. 시작도 안 한 드라마 스포 받는 느낌이었다. 웬만해서는 해 보지 못할 경험에 내가 웃음 지으며 대본을 받아들였다. 김현의 말처럼 드라마는 시작부터 남녀가 다짜고짜 헤어졌다. 사랑해서 헤어진다더니 마땅한 이유도 안 적혀 있었다.

복선 같은 건가, 나중에 나오나. 무심하게 대본을 뒤로 젖혀 봤지만 1화분만 받은 대본에는 그런 이유 같은 건 적혀 있지 않았다.

“이유가 안 나와 있네.”

“응. 혼자 상상하면서 읽고는 있는데 상대 배우가 무슨 표정을 할지 감이 안 잡혀. 이유를 모르니까.”

“음.”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시선을 돌렸다. 어쩐지 진짜 배우 같았다. 아니, 진짜 배우긴 한데 정말 연기를 하고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푸흐흐, 웃으며 나는 대본을 잡아 들었다.

“대본 외웠어?”

“응. 외우긴 했지.”

“그럼 맞혀 볼까?”

내가 장난스럽게 웃었다. 현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떻게?”

“그냥 읽어 볼게. 내 표정 보고 연기해.”

뭐 썩 자신 있진 않지만. 김현이 배시시 웃었다. 자기도 재밌을 것 같았는지 금방 자세를 고쳐 앉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곤 대본을 봤다. 첫 대사부터. 그래도 그냥 읽을 수는 없으니 나름대로 상황을 가정하고 첫 줄부터 읽어 내려가기로 했다. 그러니까 나라면.

“헤어지자”

“……뭐?”

나는 무덤덤한 얼굴로 말했다. 그에 금세 집중한 현이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어, 멋있어. 그 표정에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하마터면 직접 입으로 말할 뻔했다.

“……헤어지자, 우리.”

“무슨 소리야. 갑자기 왜 그래.”

들을 줄 몰랐던 내용의 이야기를 들은 현이의 얼굴은 일그러졌다. 연기를 하는 건데, 그 표정이 너무나 진지해서 순간 가슴이 저리는 기분이 들었다. 왠지 떨리는 입가를 겨우 가라앉혔다. 나는 그저 대본을 읽어 주고 있을 뿐이다.

“나 너하고 헤어지고 싶어.”

“…….”

“너랑 더 못 만나겠어.”

“윤아.”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현이 입에서 나온 여자 주인공의 이름에 그제야 숨이 내쉬어졌다.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대사가 아니라 내가 김현에게 그런 말을 한 기분이었다. 나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대본을 다시 봤다.

“너랑 만나는 하루하루가 숨이 막혀. 무서워.”

“……내가 더 잘할게. 네가 더 불안해하지 않게.”

“아니, 너는 충분히 했어. 그런데도 안 되는 거잖아.”

“아, 윤아. 제발.”

“그만하자, 내 말 들어. 너를 위해서야.”

묘한 느낌이었다. 그저 대본을 읽어 주고 있을 뿐인데 머릿속에 쓸데없는 상념이 들었다. 만약에 내가 나중에 혹시라도 김현과 이런 일이 있다면 나는 어떤 표정을 짓고 말을 할까. 현이를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이별을 택해야 하는 상황이 만약 오기라도 한다면.

“……네가 나를 위한다면 더 싫어. 나는 네가 없는 게 더…….”

“그럼 나를 위해서 헤어져 줘.”

“…….”

그러면 나는 이렇게 단호하게 이야기할까? 상처 입은 듯 일그러진 네 얼굴을 보면서 내가 이렇게 모질게 네게 말하고 있을까.

“나 너무 힘들어.”

“…….”

“헤어지자. 응? 헤어져 줘, 제발.”

이렇게 아픈 얼굴을 띠고 있는 너를 내가? 나는 가만히 시선을 내렸다. 아니, 그 어떤 상황이 와도 내가 네게 이별을 고하는 일은 없다. 가만히 김현의 다음 대사를 기다리며 그런 생각을 했다. 나는, 네게 절대 이별을 고하지 않을 것이다.

“싫어.”

막 그런 생각이 스쳐갔을 때 김현의 단호한 대답이 들렸다. 나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들고 있던 대본을 다시 봤다. 그다음 대사는 여자 주인공 이름 부르는 건데. 빼먹었나. 시선을 쭉 내렸다. 하지만 ‘싫어’라는 대사는 없었다. 결론적으로 남자 주인공은 알았다고 한다. 네가 그렇다면 그렇게 해야지, 하고 대답했다.

나는 의아한 눈으로 김현을 바라봤다. 하지만 그 일그러진 얼굴을 보자마자 아, 하는 탄식이 절로 터져 나왔다.

“현아. 나 그냥 대본 읽은 거야.”

“아, 진짜 싫어. 안 헤어질 거야.”

일그러진 표정으로 현이 내 품을 파고들었다. 나는 지체 없이 등을 토닥였다. 나를 꼭 쥐어 안은 손이 놓칠까 불안한 듯하여 절로 한숨이 배어 나오고 있었다.

그제야 후회가 밀려들었다. 아, 하지 말걸. 왜 하필 또 현이한테, 그냥 단순한 대본 연습이라고 생각했다. 헤어지는 장면이라고 둘 다 알고 있었으니까. 김현이 나처럼 저와 나를 이 상황에 이입할 수 있다는 생각은 접어 뒀던 내가 멍청했다.

“그냥 읽은 거라니까.”

“거짓말.”

나는 입을 다물었다. 대본을 읽으면서 생각하고 있었던 게 말을 하는데도 티가 났을까. 불안한 듯 내 품을 파고든 현이의 머리카락에 살며시 입을 맞추며 얼굴을 들어 시선을 마주했다. 그새 울먹이는 눈이 안쓰러웠다. 조심했어야 했는데, 내가. 나는 그 입술에 다시금 입을 맞췄다.

“현아.”

“…….”

“현아, 김현.”

“…….”

몇 번이고 내가 입을 맞추고 이름을 부르는데도 현이는 큰 반응이 없었다. 울먹이는 눈에 눈물만 가득했을 뿐이었다. 그 눈에 입을 맞추니 눈이 감기며 그렁그렁하던 눈물이 뚝 하고 흘러내렸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아니, 너를 울리고 싶었던 게 아니었다. 그냥 잠깐 생각을 했을 뿐이었다. 절대로 헤어지고 싶지 않다고. 하지만 쓸데없는 짓이었다. 나는 흔들리는 등을 토닥이며 눈물 젖은 그 뺨에, 입술에 몇 번이고 입을 맞췄다. 울먹이던 현이 결국 어이없이 웃음을 터트렸다.

“안 헤어져. 헤어지기 싫어. 응? 현아. 나랑 헤어질 거야?”

“아니.”

“왜 너를 대입하고 그래. 와, 나 지금 방금 엄청 집중했었는데.”

“집중하지 마. 이런 거 읽지 마.”

김현은 바로 대본을 멀리 던져 버렸다. 무척이나 꼴도 보기 싫다는 듯이 굴고 있었다.

“읽지도 말고 비슷한 말도 하지 마. 응? 알았지?”

곧 현이가 덧붙인 말에 나는 입을 다물었다. 네 상처는 도대체 어디까지 패여 있는 걸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좋아해. 현아.”

“…….”

“내가 진짜 좋아해.”

내가 너에게 이런 말을 한들 네가 7년 동안 가지고 있던 상처가 아물지 모르겠지만, 조금이라도 위로가 된다면 몇 번이고 말해 줄 수 있었다. 그리고 말해 주고 싶었다. 여전히 나를 보고 있는 그 곧은 눈을 가만히 마주했다.

“사랑해. 현아.”

김현의 눈이 동그래졌다. 방금까지 울먹였던 눈이 촉촉하게 젖어 반짝였다. 나는 그런 눈가로 입술을 맞댔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먼저 이렇게 가만히 있는 상대에게 입을 맞추고 사랑한다고 말을 해 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표현에 적극적이고 내가 무슨 행동을 취하지 않아도 입을 맞추는 녀석들 덕분에 내가 먼저 이런 말도 행동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하니 또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충분히 좋아하고 사랑하고 있는데 결론적으로는 그 어떤 표현도 하고 있지 않았다. 그저 누군가 말했을 때 그에 대한 화답을 했을 뿐이었다.

적어도 이번에는, 문득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 그 생각에 나는 조금 더 적극적으로 김현에게 가까이 움직이며 천천히 녀석의 입술을 물었다. 평상시와는 다른 내 모습에 김현이 다시 한번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당황한 듯 손이 갈팡질팡하고 있는 게 느껴져 입술을 맞댄 채로 푸흐흐, 웃었다. 이런 기분이구나. 가슴이 어쩐지 간질간질거리고 있었다.

“현아.”

“응.”

가만히 부르는 소리에 착실한 대답이 돌아왔다. 나는 쪽쪽 입을 맞대며 천천히 현이의 다리 위로 올라섰다. 당황한 듯 갈피를 잃은 손이 곧 내 허리를 잡아 왔다.

혀가 입술을 가르고 들어갔다. 당황한 듯 움찔거리는 현의 혀를 찾아 부드럽게 핥았다. 입술을 빨아들이며 그 입천장을 힘주어 핥아 내니 현이 움찔거리며 내 허리를 잡은 손에 힘을 준다. 그러니까 오늘만큼은……. 천천히 얼굴이 멀어졌다. 어느새 붉어진 얼굴에 심장이 동하고 있었다.

“현아.”

“응?”

“나 하고 싶어.”

“어?”

“그러니까 가만히 있어.”

나는 배시시 웃으면서 김현에게 당부했다. 뭐가 뭔지 당황한 듯 김현의 눈이 도르르 굴러갔다. 하지만 한번 정한 마음이었다.

나는 뻣뻣해진 그 목에 내 입을 맞췄다. 움찔거리는 게 느껴져 웃음이 나왔지만 꿋꿋하게 입술을 맞대며 혀를 내어 목을 핥았다. 현이의 손이 허리에서 어깨로 순식간에 올라왔다. 당황해서 저도 모르게 움직인 모양이었다. 나는 다시 그 얼굴을 마주쳤다.

“가만히 있으랬잖아. 내가 할 거야.”

“아니, 어……. 지헌아?”

당황한 얼굴을 마주보며 나는 다시 김현의 손을 원상 복귀시켰다. 그 김에 입고 있던 셔츠는 찬찬히 벗겨 냈다. 탄탄하게 자리 잡은 몸이 움찔거리고 있었다. 움직이고 싶은데 하지 말라니 또 착실하게 말을 듣고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그런 것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했다. 대신에 허리를 들어 조금 더 가까이 앉았다. 내가 움직일 때마다 움찔거리는 몸에 배 아래쪽부터 흥분감이 물밀 듯이 밀려오고 있었다.

야하게 드러난 몸을 매만지며 천천히 아래로 입술을 내렸다. 입술이 막 가슴께에 닿았을 때 순간 김현이 허리를 들썩였다.

“읏.”

그 덕에 순간 아래를 자극받은 내 입에서 앓는 소리가 튀어 나갔다. 안 그래도 흥분감이 치고 올라오고 있던지라 작은 자극에도 손쉽게 반응한 탓이었다.

“씨. 가만히 있으랬잖아.”

“어떻게 가만히 있어. 잔인해.”

불퉁한 말에 우는 소리가 돌아왔다. 나는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 붉어진 얼굴. 나를 보고 있는 젖은 눈. 그에 급하게 올라온 흥분감이 나를 휘감고 있었다.

나는 조금 급하게 현의 다리에서 내려왔다. 다시금 움찔, 김현이 당황한 눈을 굴리고 있었다. 그것은 가볍게 외면하고 천천히 입술을 내려 복부를 지나 바지 버클을 풀어 헤쳤다. 김현의 손이 급하게 내 머리에 닿았다.

“아니, 지헌아. 잠깐……!”

“자꾸 그러면 묶을 거야.”

“어?”

“묶어 놓을 거야. 못 움직이게.”

부러 장난스럽게 한 말에도 현이의 얼굴은 당황한 듯 확 붉어졌다. 무어라 할 말을 찾지 못한 듯 입이 뻐끔거리며 손이 내 머리에서 떨어졌다.

“아, 혹시 묶는 게 좋아?”

“아니야. 그런 거 아니야.”

문득 든 생각에 물어본 건데 김현의 눈썹이 팔자로 내려갔다. 하지만 아니라기엔 묘하게 김현의 반응이 재미있었다. 처음엔 받기만 하는 게 미안해서 시작한 건데 지금은 오히려 내가 더 즐기고 있었다.

곧 거추장스럽던 속옷까지 끌어 내리자 뻣뻣해진 성기가 튀어 올랐다. 얼마나 흥분했는지 축축하게 젖어 있는 그것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일단 입에 담았다. 아, 하는 짧은 목소리가 들렸다.

사실 지금까지도 해 본 적이 없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잠깐 멈칫했다. 그러다가 내가 받았던 대로, 내가 좋았던 대로 혀를 움직였다. 나는 그 기둥을 살살 핥아 올리며 손을 위아래로 움직였다.

“아, 지헌아. 나 죽을 것 같은데.”

머리 위에서 흥분에 찬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시선을 올렸다. 두 눈이 마주치자 김현의 눈이 흥분으로 빛났다.

“움직여도 돼?”

하지만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여전히 입 속은 가득 차 있었다. 현이의 미간이 곱게 찌푸려졌다. 나는 좀 더 빠르게 움직였다. 쪽쪽, 빨아 당기며 손가락으로는 기둥을 잡아 위아래로 움직였다. 윽, 하는 소리가 다시 한번 귓가에 울렸다.

이런 기분이구나. 어쩐지 슬그머니 입꼬리가 올라가고 있었다. 못 참겠다. 음낭부터 기둥으로 단번에 핥아 올리고 조금은 급하게 김현의 위로 올라가 앉았다. 다시 한번 제 위로 올라오는 내 허리께를 녀석이 힘줘 잡았다. 이번에는 굳이 말리지 않았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끝까지 해 보고 싶었다. 나는 눈웃음치며 편하게 입고 있던 잠옷의 상의를 벗었다. 무언가를 태워 버릴 수도 있을 정도로 이글이글 타는 시선이 내가 움직이는 대로 따라오고 있었다. 목울대가 움직였다. 나만큼이나 혹은 나보다 더 흥분한 것이 확연히 느껴졌다.

곧 김현의 손이 다시 한번 천천히, 하지만 급한 기색을 띠며 내 상체로 올라왔다. 참기 어려운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그 손을 꽉 잡았다.

“지헌아아.”

“가만히.”

이제 김현은 완전히 울상이었다. 하지만 급한 건 내 쪽도 마찬가지라고. 깊은 숨을 내어 쉬며 거추장스러운 하의도 벗어 냈다. 김현은 손도 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뻣뻣하게 서있는 제 아래가 창피했지만 이미 흥분에 젖어 그런 것은 금방 잊어버렸다.

그나저나 풀어야 할 텐데. 그냥 넣어도 괜찮은가. 안 되겠지……. 움직이지 말라 했으니 내 뒤를 직접 풀어야 할 것 같은데 막상 하려니 망설여졌다. 나는 슬쩍 김현의 눈치를 살폈다. 흥분감에 찬 시선이 미친 듯이 일렁이고 있었다.

나는 급하게 입술을 찾았다. 기꺼이 내 입술을 받아들이는 현이에게 강하게 키스하며 내 아래에 손가락을 넣었다. 막상 김현의 얼굴을 마주하니 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한 번도 내 손으로 직접 넣어 본 적이 없어 위화감이 들었지만, 분위기 탓인지 그것도 잠깐이었다.

한 개, 두 개, 세 개쯤 넣었을 때 나는 키스를 하던 것도 그만두고 손가락을 움직이는 데 집중했다. 나를 휘감은 흥분감은 빨리 넣고 싶다는 생각만 하게 만들고 있었다.

“나를 죽일 셈인 거지.”

“으, 하, 응?”

“아. 미쳤다. 진짜 심장 터질 것 같아. 아.”

김현이 제 머리를 저었다. 쿵쿵쿵 뛰는 심장이 내 것인지 김현의 것인지 구분도 안 될 정도로 크게 들리고 있었다. 나는 내 아래를 휘젓고 있던 손가락을 뺐다. 아, 콘돔 안에 있는데. 잠시 멍청한 생각을 했지만 빠르게 포기했다. 지금 들어가서 가져올 여유가 없었다.

김현을 달래려고 시작한 건데 외려 내가 흥분한 상황이 됐지만 이제 그런 것도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김현의 바로 위에 다리를 세우고 그 탄탄한 어깨를 잡았다. 시선이 마주쳤다. 다시 한번 입술이 맞물렸다. 무척이나 흥분에 찬 입술이 내 입을 놓지 않으려는 듯 깊숙이 들어오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흥분에 차 까딱이는 성기를 내 안으로 밀어 넣었다. 흥분감에 벌어진 아래 사이로 딱딱해진 성기는 거리낌 없이 들어왔다.

“윽.”

단발의 신음 소리를 흘리며 순식간에 안이 채워졌다. 김현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아, 진짜…….”

착실하게 내 말을 듣고 있던 현이였다. 아래를 가득 채운 것을 느끼자마자 나는 그의 목에 팔을 휘어 감았다. 내 등을 감싸 오는 손길에 나는 김현의 귓가에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움직여 줘. 응?”

“나 오늘 쉬는 날이라고 했는데. 진짜, 바보가.”

김현이 뜻 모를 소리를 하나 싶더니 내 골반을 붙잡고 허리를 움직였다. 갑작스럽게 움직이는 허리 짓에 나는 감은 팔에 힘을 줬다. 안 그래도 흥분에 가득 차 있던 머릿속이 새하얗게 비워지고 있었다.

“윽, 앗, 아! 현아, 아흑. 너, 너무 빨라……. 악, 읏!”

김현은 내 말에도 대답이 없었다. 그저 허리 짓을 강하고 빠르게 지속하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멍한 머릿속에 그저 생명줄을 붙잡듯 강하게 목을 감싸고 있었을 뿐이었다.

현이 내 허리를 감싼 채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놀란 내가 김현의 허리를 다리로 감싸 안았다. 김현은 일어서서도 허리 짓을 계속하고 있었다.

“아, 왜. 읏, 아! 왜 일어, 나. 으.”

“침대로 갈 거야.”

허리의 움직임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어느새 침실의 문 앞에 선 현이 문을 열 생각은 하지 않고 나를 벽에 기대 세웠다. 떨어질까 무서워 허리를 다리로 감싸고 목을 감은 손에 힘이 들어갔지만 김현은 계속 행위를 이어 갔다.

“하루 종일 못 나오게 해 줄 거야. 너.”

“아……. 읏, 하.”

“진짜. 심장 터질 것 같아.”

김현이 내 입술에 입을 맞췄다. 퍽퍽퍽, 밀어 올려지며 등이 침실의 문에 닿았지만 그마저도 김현이 열어 버린 덕에 사라졌다. 푹신거리는 침대에 눕혀진 순간 김현이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이번엔 지헌이 네가 움직이지 마.”

“……흣, 아으, 현아, 윽.”

“움직이면 묶을 거니까.”

야살스레 눈을 접으며 다시 한번 입술이 맞물렸다. 나는 두 눈을 감고 그 목을 감싸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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