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4. 김준 외전
-어디야?
한껏 들뜬 김준의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왔다. 반가운 기색을 숨길 수 없는 목소리에 내가 푸흐흐, 하고 웃었다.
“맞혀 봐.”
-나 보러 온 거야?
“글쎄.”
-아, 뭐야.
웃음기가 어린 목소리는 기분이 좋아 보였다. 야구 경기가 막 끝난 야구장 근처 카페에 앉아 나는 김준과 통화를 하고 있었다. 몰래 보러 간 경기는 운 좋게도 김준의 선발승으로 끝이 났다. 졌으면 연락하기 좀 민망했을 것 같은데 김준 소속팀의 완승이었던지라 편안한 마음으로 시합 도중 찍었던 사진을 전송했던 참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김준에게 전화가 온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였다.
-응? 어디에 있는데?
“앞에 카페에 있어.”
-와. 나 금방 갈게.
“응. 기다릴게.”
기분 좋은 웃음소리가 들리곤 빨리 준비하겠다는 들뜬 말을 끝으로 전화는 끊어졌다. 나는 오늘 찍은 김준의 사진을 한번 둘러봤다. 잘생겼단 말이지. 고등학교 때도 생각했었는데 진짜 공 던질 때 엄청 섹시하고, 멋있고. 누구 남잔지, 진짜.
나도 모르게 드는 생각에 웃음을 지었다가 나는 빠르게 표정을 관리했다. 혼자 앉아서 웃고 있는 모습이 여간 우습게 보이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다시 한번 핸드폰이 울렸다. 김준임을 확인한 내가 가방을 들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응.”
-나 나왔어!
“하하. 응. 네 차 보인다.”
나는 배시시 웃으며 카페에서 벗어났다. 김준의 차가 바로 앞에 있었다. 나는 거리낌 없이 조수석에 올라탔다.
“어? 씻었어?”
“응, 대충. 와! 시합 끝나고 너 보니까 엄청 기분 좋은데.”
머리카락이 축축하게 젖어 있는 녀석이 대충 머리를 흩트리며 웃었다. 풍겨 오는 샴푸 향에 좁지 않은 차 안에 금방 그 향기가 퍼졌다.
“좋은 냄새 난다.”
“아, 진짜?”
“응. 샴푸 냄샌가?”
나는 슬쩍 김준에게 다가가서 숨을 들이켰다. 응, 샴푸 냄새 맞는 것 같다. 혼자 맡아 보고 혼자 고개를 끄덕이니 녀석이 작게 웃는다.
“이것만 써야겠다.”
곧 장난스러운 대답이 돌아왔다. 뭘 쓰든 너한테 나는 거면 다 좋을 것 같지만, 이 향기가 꽤나 마음에 들었던 터라 나는 딱히 부정하진 않았다.
“배고프겠다. 뭐 먹을래?”
“응. 너 먹을래.”
“어?”
“너.”
장난스러운 말에 내가 얼굴을 붉혔다.
“아니, 나 말고 밥. 밥 먹자고.”
나는 당황해 달아오른 뺨을 감싸며 말을 내뱉었다. 저렇게 가끔 아무렇지도 않게 장난을 칠 때마다 심장이 쿵쿵 내려앉았다. 녀석이 여전히 장난스러운 얼굴로 웃었다. 차는 여전히 부드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래, 그럼 그건 후식으로 먹고.”
“아, 진짜!”
“하하하. 알았어.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맛있는 거 먹으러 갈까?”
살며시 접히는 눈매가 장난기를 가득 담고 있었다. 나는 씩씩대며 애써 붉어진 얼굴을 가라앉혔다.
“뭐 먹을 건데?”
“고기 먹으러 가자, 고기.”
해맑게 웃으며 김준이 말했다. 그래, 운동하고 왔으니까 고기 먹으면 좋겠다 싶어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너도 살 좀 쪄야 하고.”
배시시 웃는 얼굴이었다. 나 살 꽤 쪘는데. 무심하게 내려다본 몸이었다. 막 모두를 다시 만났을 때 한 달 만에 엄청나게 빠져 있던 살은 다시 돌아오고 있었다. 전하고는 다르게 볼에도 오른 살이 거울을 볼 때마다 눈에 띄고 있었는데.
“나 살 많이 쪘어.”
“어, 더 쪄야 돼.”
“……으음.”
무척 단호한 말에 나는 입을 다물었다. 분명히 모두를 만난 이후로 나는 엄청나게 잘 먹고 있었다. 모두 뭐든 먹이려고 하는 게 살을 찌우겠다는 의지가 가득 담겼다는 것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살이 이것밖에 찌지 않은 건.
“너희들 때문에 안 찌는 거잖아.”
“우리가 왜.”
김준이 킥킥거렸다. 대충 감이 잡히는 데가 있는 모양이라 나는 김준을 노려봤다.
“잠도 안 재우고, 맨날……!”
하지만 욱해서 뱉은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막상 말을 뱉으려니 민망스러웠던 탓이었다. 얼굴이 다시 붉어지고 있었다.
“맨날 왜? 응?”
“몰라. 바보야.”
하지만 건수를 잡은 사람처럼 김준은 능글맞게 되물었다. 내가 내 무덤을 팠지.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자취를 시작하고 나서부터 혼자 자 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매일 누군가 한 명은 꼭 집에 있었다. 그리고 거의 잠을 못 잤다. 더군다나 개강까지 맞물렸으니, 당연히 살이 찔래도 찌기 어려운 것이었다.
아무래도 출입 금지를 시켜야겠어. 근데 문제는 나도 좋았다. 한숨이 나올 노릇이였다. 아무도 못 들어오게 하자니 아쉬운 것은 내 쪽이라니.
“응? 맨날 뭐.”
김준이 끈질기게 되물었다. 나는 얄미운 마음에 김준의 어깨를 찰싹하고 때렸다. 녀석이 아, 하는 소리를 내더니 왼손으로 제 어깨를 슥슥 문지른다.
“너 나 몸값 꽤 나가는 운동선수야. 그렇게 막 다루면 안 돼.”
“어차피 내 거잖아.”
“……아, 뭐 그렇긴 한데.”
뭐, 하루가 다르게 능글맞아지는 김준이었지만, 그만큼 나도 여유로워지고 있었다. 김준은 맞아 놓고도 기분이 좋은지 연신 웃는 얼굴이었다.
차가 미끄러지듯 고급스러운 외관의 식당 주차장에 들어섰다. 고기를 먹으러 가자기에 그냥 근처 고깃집을 생각했던 내 예상과는 전혀 다른 곳이라 어색하게 눈을 굴리는데, 차를 막 세운 김준이 제 얼굴에 꽃받침을 한다.
“유명인이잖아.”
“와, 진짜…….”
귀여워.
나는 나도 모르게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뭐 하나 빠지는 게 없다고 생각하고 있긴 하지만 나날이 녀석은 귀여워지기까지 했다. 애교가 늘어 간다고 해야 되나. 능글맞으면서 애교 있는 모습을 보일 때마다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질 것 같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왜 시간이 지나도 적응이 안 되는 것 같은지.
어쨌든 차를 주차시키고 나서 우리는 안내에 따라 방에 들어섰다. 칸칸이 다 막혀 있는 고깃집이 어색했지만 누군가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점은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여기 엄청 비싸겠다.”
“괜찮아. 너 먹이려고 버는 거니까.”
“……준이 너 오늘 기분 엄청 좋은가 봐.”
툭툭 내뱉는 말이 제 기분이 얼마나 좋은지 보여 주는 것 같아 내가 웃으며 물었다. 김준이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응. 네가 나 보러 왔는데 당연히 기분 좋지.”
이렇게 좋아할 줄 알았으면 좀 자주 오는 건데. 홈구장 경기는 멀지도 않고……. 나는 오히려 미안해져 살며시 고개를 끄덕거렸다.
“자주 보러 갈게.”
“와, 완전 좋아.”
김준은 곧 정말 해맑게 웃었다. 그에 몽글몽글해지는 마음도 잠시 타이밍 좋게 직원분이 들어왔다.
“술 마실래?”
“으음. 넌 못 먹잖아.”
“대리 부르면 되지.”
“아, 그런가.”
나는 그 말에 고개를 바로 끄덕거렸다. 안 그래도 딱 소주 하나 추가하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한 참이었다. 알 만하다는 듯 김준이 웃었다.곧 불판 위 고기가 구워졌다. 딱히 우리가 움직이지 않아도 직접 고기까지 구워 주는 걸 보며 비싼 게 좋은 거구나 하는 쓸데없는 생각도 들었다.
“맛있게 드세요.”
무척이나 친절한 직원분이 사라지고 나는 기다렸다는 듯 젓가락을 들었다.
“그렇게 배고파?”
“아니, 그건 아닌데 막상 앞에 있으니까 빨리 먹고 싶어서.”
그 말에 작게 웃은 김준이 어느새 소주를 따른 잔을 들어 올렸다. 건배를 하자는 것 같아 나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그 술잔에 짠 하고 잔을 맞췄다. 목을 타고 넘어가는 소주가 유난히 달게 느껴졌다.
***
“지헌아.”
“……으응?”
“아…….”
김준이 한숨 섞인 탄식을 내뱉었다. 하지만 지헌은 두 눈을 느리게 깜빡이고만 있었다. 고기도 배불리 먹었고 만족스러운지 제 배를 통통 두드린 지헌이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멀쩡했는데 언제 이렇게 먹었더라. 준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잠깐 사이에 눈이 풀려 버린 지헌이었다.
“많이 먹었어?”
“응. 배불러.”
준은 지헌의 대답에 참지 못하고 웃음을 내뱉었다. 그냥 가만히 목소리만 들으면 지헌이 취했는지 아닌지 구분할 수 없을 만큼 또박또박한 말투였다.
“취했어?”
“응? 아니? 나 안 취했는데?”
지헌은 고개를 가로저었지만 취했다는 걸 준은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준이 자리에서 일어서서 지헌의 옆으로 다가갔다. 취하기만 하면 머리가 무겁다고 넘어가는 일이 잦은지라 걱정이 됐던 탓이었다.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준을 따라 고개를 돌리던 지헌이 아니나 다를까 몸을 기우뚱했다. 다행스럽게도 빠르게 다가간 준이 그런 지헌을 제 품에 안았다. 아, 나이스 타이밍.
“어?”
“어는 무슨. 못 산다, 내가 너 때문에.”
그러면서도 기분이 좋은지 김준은 낮게 웃었다. 한 품에 들어온 지헌이었다. 그 작은 몸이 편하게 제게 기대어 올 때마다 늘 마음이 이상해졌다. 그러니까 매번 설레고 매번 두근거리는 이상한 기분.
“좋은 냄새 나.”
“아직도?”
“응.”
지헌이 준의 품에 머리를 부비적거렸다. 김준은 헛기침을 했다. 사람을 딱 조급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김준은 저도 모르게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취한 애를 상대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집에 갈까?”
“응. 너 다 먹었어?”
“응.”
“그래!”
지헌이 김준을 보며 배시시 웃었다. 그에 무심코 입술을 맞대고 싶어졌다. 곧 김준은 고개를 저었다. 취한 애를 상대로.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한 보람은 없었다. 지헌이 김준의 입술에 쪽, 하고 입술을 맞췄다가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어?”
“뽀뽀하고 싶다.”
방금 전에 해 놓고 하는 말치고는 앞뒤 맥락이 안 맞았다. 준이 헛웃음을 쳤다. 진짜 완전히 취했네. 슬슬 머리로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은 모양이었다. 준이 핸드폰을 꺼내 대리 기사를 불렀다. 집으로 데려가야 할 것 같았다.
“어쩌면 이렇게 잘생겼지.”
막 통화를 끝낸 참에 지헌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덕분에 김준은 어이없이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는 너는 어쩌면 그렇게 귀엽냐.
그나마 예전에는 입으로 생각을 하는 제 주사를 알고 있었는지 조심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편하게 술을 마시기 시작한 지헌이었다. 덕분에 지헌이 술에 취할 때마다 김준은 약간 부처의 마음이 됐다.
뭐라고 할까, 술 취한 사람한테 달려들진 않겠다는 혼자만의 양심 지키기였다. 그래서인지 김준은 아까 전 술을 권한 제 입을 할 수만 있다면 본드로 붙여 버리고 싶었다. 왜 그랬을까, 내가. 하아.
“집에 가자. 졸려.”
지헌이 김준의 품을 파고들었다. 어, 그러니까. 얼른 집에 가자.
방금 전까지 지키고 싶던 양심이 쩍쩍 금이 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준은 지헌을 데리고 일어섰다. 생각보다 대리 기사님이 빨리 도착했는지 다 왔다는 연락을 방금 받았던 탓이었다. 휘청거리긴 했지만 나름대로 꼿꼿하게 지헌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하여튼 그냥 있으면 취한 줄도 모르겠다니까.
“가자.”
“응.”
지헌은 졸리기까지 한 듯 눈을 부비적거리며 김준에게 기대어 왔다. 준은 녀석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차까지 가는 거리가 얼마나 길게 느껴지던지 왠지 등을 타고 식은땀이 흐르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속도 모르는 한지헌은 아주 편안하게 제게 기대 오고만 있었다.
“준아.”
겨우 지헌을 옮겨 막 차에 올라탔다. 지헌의 집 주소를 말하자 대리 기사님은 차를 부드럽게 출발시켰다. 준을 알아본 기색이었지만 그걸 헤아릴 정도로 김준의 머릿속은 여유롭지 않았다. 저를 부르는 목소리에 김준은 몸을 흠칫 떨었다. 하지만 마주친 눈이 언제나 보던 그 말간 눈이라 준은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응.”
제 한숨 섞인 대답에 그저 배시시. 그리고 꾸물꾸물 제 품으로 들어오는 그 작은 몸에 김준은 다시금 한숨을 내쉬어야 했다. 가끔 사람 돌아 버리게 한다니까.
한지헌의 집에서 그리 멀지 않았던 게 얼마나 다행인지 그래도 차는 부드럽게 집 앞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다만 주차장이 협소한 탓에 골목을 등지고 겨우 구석진 곳에 차를 세우긴 했지만.
“좀 앉아 있어야 할 것 같아서. 감사합니다. 조심히 가세요.”
“아유, 감사합니다.”
조금 더 얹은 대리비에 살갑게 웃으며 기사님은 차 안에서 사라졌다. 덕분에 이제야 둘만 남게 된 준이 숨을 몰아쉬었다. 여전히 지헌은 제 품에 안겨 있었다.
“자?”
아까부터 조용한 지헌의 얼굴을 준이 고개 숙여 확인했다. 잠들었다면 안아서 들고 올라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제 예상과는 다르게 말똥말똥한 두 눈을 깜빡이고 있는 지헌과 시선이 마주쳤다.
“잘생겼다.”
무심하게 뱉어 내는 말. 그 덕에 김준이 헛웃음을 쳤다. 그러고 보면 술에 취할 때마다 저 소리는 한 번씩은 꼭 듣는 것 같았다. 내가 네 눈에 잘생긴 사람이라 얼마나 다행인지. 가끔은 그런 생각도 들었다.
“알아.”
부러 장난스럽게 뱉은 말에 지헌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또 말로 내뱉었는지 아닌지 헷갈린 모양이었다. 아, 진짜 귀엽다. 준이 지헌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가 떨어졌다. 아직 완전히 부서지지 않은 양심을 챙긴 것이었다. 얼른 집에 데려다 놔야겠다, 싶은 생각이 가득했다.
“아, 미쳤나 봐.”
하지만 그 생각은 그리 오래가진 못했는데 지헌이 불현듯 한마디를 내뱉은 탓이었다. 준은 움직임을 멈췄다. 매번 지헌이 미쳤다고 말했을 때마다 폭탄 같은 발언이 이어졌을 때가 많았던 터라 은근히 기대가 된 탓이었다. 또 무슨 생각을 했기에 미쳤다는 말이 나오는…….
“근데 차에서도 해 보고 싶은데. 아냐, 미쳤지. 미쳤어.”
아.
폭탄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정말 핵폭탄급이었다. 김준은 입을 꾹 다물었다. 무어라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한지헌은 제 입으로 내뱉었는지 아닌지 여전히 구분하지 못하고 있었다.
가슴 한구석에 가지고 있던 양심이 크게 쩍 하고 갈라졌다. 곧 산산이 조각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성, 이성을 찾자. 취했다. 지헌이 취했다. 취한 사람을 그것도 이 차 안에서 안을 수는 없…….
“어, 심장 떨려. 상상했다.”
없긴 뭐가 없어. 준은 결국 안겨 있던 지헌을 떼어 냈다. 제가 입 밖으로 냈는지 분간 못 한 얼굴은 눈만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김준은 이제 눈에 뵈는 게 없었다. 아니, 얘가 괜찮다고 하잖아.
“뭐가 그렇게 떨려.”
양심을 치워 버린 김준의 머릿속은 이미 하얘진 지 오래였다. 안고 싶어, 나도. 지금 당장. 오롯이 머릿속에는 그 생각뿐이었다.
“어?”
당황한 듯 크게 뜨는 눈을 바라보며 김준은 지헌의 입술을 한 입에 물었다. 품 안에 있던 지헌을 뒷좌석 시트에 눕히면서 아직 열리지 않은 입술을 혀로 톡톡 두드렸다. 지헌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김준의 혀가 파고들었다.
이미 욕정이 뚝뚝 떨어지는 머릿속은 이성적인 생각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일말의 이성은 남아 있었다. 혀를 내어 지헌의 입 속을 헤집으며, 그 허리를 감은 손을 옷과 함께 밀어 올리면서도 김준은 눈을 떠 주위를 둘러봤다. 일말의 이성. 나만 보고 싶은 한지헌이 밖에서 보일지, 안 보일지에 대한 가늠.
“아, 잠, 잠깐만…….”
애써 붙들고 있던 이성 날려 버린 게 누군데 잠깐만 소리가 왜 나와. 김준은 당황한 듯 더듬거리는 지헌의 입술을 다시 한번 내리눌렀다. 밖은 어둡고 주차가 된 곳은 외졌고 썬팅은 어둡다. 김준은 더 이상 거리낄 게 없었다.
준의 손에 밀려 올라간 옷이 지헌의 상체를 휑하게 드러냈다. 옷을 밀어 올리며 가슴께를 스치는 손에 지헌의 허리가 움직였다. 미치게 야하다. 김준은 이미 이성이라고는 1그램도 남아 있지 않은 눈빛으로 지헌을 보고 있었다. 입술이 떨어지고 지헌이 숨을 몰아쉬었다.
“준아…….”
“물어봐.”
애처롭게 저를 부르는 지헌의 눈은 여전히 술기운으로 가득 차 있었다. 김준은 그 시선에 침을 꿀꺽 삼키며 걷어 낸 상의를 지헌의 입가에 가져갔다.
그런 눈을 하고서 물란다고 옷을 물면 미친, 진짜 내가 어떻게 해야 되는 거지. 아랫도리가 뻐근해져 왔다. 순진한 눈을 하고 저를 보고 있는 한지헌을 보고 있으니 배덕감이 물밀 듯이 일어나고 있었다.
“물어. 꽉.”
그래서였는지 어쨌는지 평상시와는 조금 다른 말투가 툭 튀어나왔다. 지헌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놀라겠다. 놀랐을 텐데. 머릿속으로는 그런 생각이 계속 드는데 안타깝게도 그렇다고 해서 하던 것을 멈출 생각은 없었다.
취했다. 취했으니까. 자기 합리화를 하면서 준이 제 옷을 입에 물고 있는 지헌의 입가에서부터 목, 상체를 타며 손을 천천히 내렸다. 온몸을 훑어 내려가는 손에 지헌이 제 허리께를 들썩였다. 아, 진짜 안 되겠다.
“지헌아.”
“으응…….”
착실하게도 입에 물고 있는 것은 놓지 않으면서도 부르니 꼬박꼬박 대답도 잘했다. 천천히 지헌의 허리께를 쓰다듬으며 입을 맞춰 내려갔다. 입술이 닿을 때마다 움찔 떠는 몸이 놀라우리만큼 야해서 이미 아까 전부터 뻣뻣해졌던 아랫도리가 이제는 아프기까지 했다.
마른 몸인지라 더욱 도드라진 쇄골을 지나 얕게 솟아 있는 가슴을 지분거리며 그곳에 입술을 맞댔다. 혀를 움직여 살살 핥아 올렸을 때는 읏, 하는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준이 뒷좌석에 누워 있던 지헌을 들어 올렸다. 갑자기 몸이 일으켜진 지헌이 저도 모르게 입을 벌리는 동시에 말려 올라가 있던 옷이 흘러내렸다. 동시에 지헌은 준의 무릎 위에 앉아 있게 됐다.
“어…….”
“꽉 물랬잖아.”
김준이 웃었다. 웃으면서 하는 말인데도 너무나도 단호해서 지헌이 씨이, 하는 소리를 냈다. 근데 그러면서도 입가에 제 옷을 말아 올려 가져다주니 군말 없이 앙, 하고 물어 왔다. 미치겠다. 진짜 너 때문에.
김준이 어금니를 깨물며 땀이 배어 축축해진 손으로 지헌의 바지에 손을 가져다 댔다. 바지 버클을 풀어내고 엉덩이까지 바지와 속옷을 내렸다. 덕분에 툭, 하고 튀어나온 지헌의 성기가 이미 저처럼 뻣뻣해져 있었다.
“흥분했어?”
그걸 보니 웃음기 서린 목소리가 절로 나왔다. 준이 튕겨 나온 지헌의 성기를 제 손으로 동그랗게 말아 쥐자 지헌이 티 나게 몸을 움찔 떨었다. 씹어 먹고 싶다. 씹어서 먹어도 단내가 날 것 같다. 들으면 무서워할까. 에이, 내가 설마 너를.
“으으응.”
지헌은 여전히 제 옷을 물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뭔가 할 말이 많은지 입을 웅얼웅얼대는 게 귀여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물고 있는 걸 빼내 줄 생각은 없었다. 시간은 많으니까. 신음 소리야 날이 새도록 들을 수 있었다. 지금 당장은 이 야해 빠진 모습을 충분히 보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준은 제 바지의 버클도 풀어 내렸다. 지헌이 엉덩이까지 바지를 내린 것과는 다르게 김준은 뻣뻣해진 성기만 꺼냈다. 솟아오른 성기가 지헌의 엉덩이를 찌르고 있었다. 그 느낌에 당황했는지 지헌이 제 다리에 힘을 줬다. 김준의 목에 손을 감고 바들바들 떨리는 몸을 버티고 있었다.
“와.”
김준은 저절로 입에서 나오는 소리를 굳이 숨기지 않았다. 어차피 곧 제 몸에 들어갈 것인데도 닿을 때마다 화들짝 놀라는 지헌을 보니 음습한 생각이 든 탓이었다. 준이 열심히 제 팔과 다리에 힘을 주고 있는 지헌의 얼굴을 보며 가슴께를 핥았다.
지헌의 몸이 떨렸다. 하지만 김준은 지헌의 몸 어떤 곳도 잡지 않은 채였다. 그저 혀를 내밀어 상체를 핥고 또 핥았을 뿐이었다. 버티고 있는 지헌의 팔과 다리가 점점 더 심하게 떨렸다. 그 모습을 보면서 웃음 지은 김준이 어느새 봉긋하게 솟아오른 유두를 이로 살짝 긁으며 깨물었다.
“아!”
결국 지헌이 입을 벌렸다. 꿋꿋하게 물고 있던 상의가 스르륵 아래로 떨어졌고 녀석의 몸도 떨어져 내렸다. 겨우 버티고 있던 팔과 다리에 힘이 풀린 모양이었다. 그때를 놓치지 않고 김준이 지헌의 허리를 꽉 잡았다. 김준은 여전히 웃는 얼굴이었다.
“놓지 말랬잖아.”
“아……. 으, 너 하아, 너 진짜…….”
잔뜩 원망스러운 얼굴을 하고 지헌이 김준을 노려봤다. 숨을 쌕쌕거리고 몰아쉬면서 그렇게 노려보는데 왜 이마저도 야한지, 준은 가만히 입꼬리를 올렸다.
“응? 놓지 말라고 했는데, 놓으면 안 되지.”
지헌이 원망을 하고 있음에도 김준은 멈출 생각이 없었다. 웃는 얼굴로 허리를 잡아 지헌의 엉덩이에 제 성기를 비볐다. 넣을 듯 말 듯 가만히 그곳에 그저 닿아만 있었다.
“으응, 아. 야, 진짜……. 김준, 너……. 흐읏.”
지헌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저절로 몸을 움찔거리게 하는 아래의 느낌이 감당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넣을 듯 넣지는 않는 김준 때문에 지헌은 애가 타고 있었다.
“다시 올려 줄 테니까 놓으면 안 돼. 알았지?”
배시시 웃으며 꺼내는 말은 표정과 말이 전혀 일치가 안 되고 있었다. 밝은 얼굴로 그런 말하지 말라고. 다시 한번 제 입에 물린 티셔츠에 그 말은 먹혀 들어가고 말았지만 입으로 말하는 대신 지헌은 눈빛으로 죽일 듯이 항의했다. 하지만 당연히도 김준은 그 항의를 외면했다.
“콘돔 써야 하는데, 배 아플 텐데.”
김준은 혼잣말을 했다. 여전히 아래에 비벼지는 김준의 성기가 까딱까딱하며 지헌의 아래를 자극하고 있었다. 몸을 후들거리는데 허리를 잡고 있는 김준 때문에 움직일 수도 없었다. 취기가 올라 눈앞이 일렁거렸다. 술 때문일까. 평상시보다 더 흥분감이 몰아치고 있었다.
“뒤처리는 내가 다 해 줄게. 응? 한 번만.”
김준이 웃었다. 지헌이 고개를 빠르게 저었다. 하지만 제 허리에 감긴 손에 천천히 힘이 들어오고 있었다. 이미 힘이 풀린 지헌의 다리는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이끄는 대로 쑥 내려간 덕에 아래가 천천히 벌어졌다. 그 느긋함에 점점 안달이 나는 것은 지헌이었다.
“왜 이렇게 허리를 흔들어. 응?”
아, 진짜 돌겠다. 사실 김준은 느긋한 얼굴이었지만 딱 죽을 맛이었다. 제 티셔츠를 물고 있는 입도, 제가 여기저기 물어 울긋불긋해진 상체도, 느릿하게 들어오는 자극을 참지 못하고 움직이는 허리도 어디 하나 야하지 않은 데가 없었다.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하나하나 눈에 담고는 있었지만 이제는 진짜 한계였다.
“아흑!”
결국 인내심을 잃은 김준이 지헌의 허리를 단박에 내렸다. 천천히 들어오던 성기가 한 번에 밀려 들어오자 지헌은 결국 입을 벌렸다. 아찔한 신음 소리가 터지며 티셔츠가 빠르게 내려갔다. 하지만 김준은 이번엔 굳이 그 티셔츠를 말아 올리지 않았다. 인내심은 이미 바닥났다. 그저 박고 움직이고 싶었다.
“아, 아윽. 하, 읏! 아! 준, 아읏, 아흑.”
빠르게 치고 올라오는 자극은 술에 취한 지헌이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제대로 풀지도 못하고 들어왔음에도 빨리 김준을 받아들이고 싶어 안달이 났던 지헌의 몸은 아픈 줄도 모르고 녀석을 받아들였다.
김준은 허리와 지헌의 것을 감싼 제 손을 동시에 움직이고 있었다. 고개가 넘어가는 지헌을 하나하나 눈에 담으면서. 야해, 야해 빠졌어. 어디서 이런 게 떨어졌을까.
움직임은 점점 더 빨라졌다. 퍽퍽 크게 울리도록 허리 짓을 강하게 한 덕에 차가 흔들렸다. 지헌이 다급하게 김준의 어깨를 잡아 왔다. 기꺼이 어깨를 내어 준 김준은 빠르게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다.
“아.”
“읏!”
순간 두 사람의 움직임이 멈췄다. 몰아치는 쾌감에 상체가 들썩였다. 아주 잠시 두 사람은 말이 없었다. 지헌은 쓰러지듯 김준의 어깨로 머리를 기댔다. 준은 자연스레 지헌의 등허리께를 감싸 안았다.
아, 너무 좋다. 제게 안긴 지헌의 등을 천천히 준이 토닥였다. 거칠었던 숨이 천천히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너…….”
그렇게 한참을 안겨 있던 지헌이 조금 잠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김준은 몸을 움찔 떨었다. 한차례 폭풍 같은 섹스가 끝나고 나니 제정신이 돌아온 탓이었다. 미친. 뭘 한 거야. 이 차 안에서. 콘돔도 없이.
당장 지헌이 욕을 해도 할 말이 없을 정도였다. 김준은 속으로 욕구에 충실했던 저 자신을 수십 번, 수백 번 욕하고 있었다. 지헌이 살짝 몸을 움직였다. 몸 안에 사정을 한 터라 지헌이 움직이자 정액이 죽 흘러나왔다. 미친, 그냥 나가 죽어라 김준.
“김준, 너…….”
“미안해. 지헌아. 아, 내가 잘못했어. 미쳐 가지고.”
준이 당황스러운 목소리로 빠르게 사과했다. 일단 빨리 들어가서 지헌을 씻겨야 할 것 같았다. 준이 지헌의 몸을 살짝 들어 올려 아직까지도 안에 들어가 있던 제 성기를 빼냈다. 어느새 지헌은 저를 보고 있었다.
“왜 이렇게 잘해?”
무심한 말투. 그에 김준이 두 눈을 크게 떴다. 제가 잘못 들은 건가 싶을 정도로 뜬금없는 말이었다.
“한 번 더 하고 싶은데.”
하지만 그 뜬금없는 소리는 다시 한번 이어졌다. 지헌이가 갑자기 왜 이러지? 외려 당돌함에 불안할 지경이었다. 그러다 문득 든 생각에 김준은 결국 어이없이 웃었다.
맞다. 한지헌 취했었지. 김준은 웃으면서 지헌을 제 품에 안았다. 찝찝하게 제 옷을 타고 정액이 흘러내리고 있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안에 들어가서 씻으면 되지, 뭐. 별로 신경 쓸 만한 일도 아니었다.
“지헌아.”
“응?”
아마도 한지헌은 내일 기억 못 할 것 같긴 하지만…….
“내가 많이 사랑해. 한지헌.”
“나도.”
진짜 넌 어디서 떨어졌을까.
“올라가서 한 번 더 하자.”
“어…….”
“너 질리도록 해 줄게.”
“나 또 입으로 말했어?”
의아한 기색 가득한 말에 결국 김준은 한참을 웃어야 했다. 미운 구석 하나 없이 좋은 너를 어떻게 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