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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3. 강수하 외전 (21/36)

외전 3. 강수하 외전

사방이 조용했다. 나는 들고 있던 책을 조심스레 넘겼다. 책에서 풍겨 오는 특유의 향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하긴 내가 이런 곳에 자주 오는 편은 아니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나는 결국 책에서 눈을 뗐다. 대신에 내 옆에서 진지한 얼굴로 책을 훑어보고 있는 강수하를 바라봤다.

역시 이쪽 구경이 조금 더 재밌다.

오랜만에 짬이 난 강수하였다. 개강을 하고 조금 더 바빠진 강수하는 정말 얼굴 한번 보기 어려웠다. 그러다 겨우 하루가 비어 오랜만에 데이트랍시고 만난 것이었다. 하지만 데이트라고하기 무색하게 우리는 지금 도서관에 있었다.

꼭 빌려야 할 책이 있는데 평소에는 시간이 없어 들르지 못했다며 미안한 기색을 보인 강수하 때문이었다. 물론 나는 그렇게 미안해하지 않았더라도 딱히 거절할 생각도 없었다. 이렇게 책을 읽는 모습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좋으니까.

“왜.”

멍청하게 저를 보고 있는 내 시선을 느꼈는지 강수하가 나를 응시했다. 엄청 집중 중이라 모를 줄 알았는데, 덕분에 외려 당황한 내가 티나게 눈을 굴렸다.

“심심해?”

다시금 강수하가 입을 열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심심한 게 아니라 그저 너를 보고 있는 쪽이 조금 더 좋았을 뿐이었다. 대답 없는 나를 힐끗 보며 강수하가 책을 덮었다.

“이것만 빌리면 될 것 같아.”

“천천히 더 봐도 돼.”

무척 단호한 말이었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방해를 한 기분이었다.

“필요한 건 다 골랐어.”

하지만 강수하는 단호하게 웃으며 내가 들고 있던 책을 옮겨 받았다. ‘안 빌려 갈 거지?’ 하는 소리에 고개를 끄덕이니 내 대신 원래 있던 책장으로 책을 꽂아 넣는다.

“수하야.”

“응.”

“……아냐, 그냥.”

근데 그게 하필 또 넓은 가슴팍에 무척이나 가까워서 하마터면 평소처럼 그 품 안으로 안겨들 뻔했다. 하지만 여기는 공공장소였다. 보는 눈이 많았고. 사실 이 도서관에 들어온 순간부터 너무 많은 시선들이 이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나라도 무심코 쳐다보게 될 것 같은 외모긴 하지만, 자리를 옮길 때마다 닿아 오는 시선이 부담스럽기도 했다. 뭐라고 할까, 조금 질투가 나기도 했고.

“왜?”

책을 제자리에 꽂은 수하가 자연스레 내 어깨에 손을 내리며 물었다. 으, 심장 아파. 부쩍 편하게 구는 수하 덕분에 나는 요즘 녀석을 만날 때마다 가슴을 부여잡고 있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머쓱한 대답에 강수하는 그냥 편하게 웃었다. 나는 슬금슬금 그 눈을 피했다. 슬쩍 주위를 둘러보자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화들짝 놀라며 사람들이 고개를 돌렸다. 나는 슬그머니 강수하의 팔을 잡아끌었다.

“응?”

“다 골랐으면 나가자. 나 배고파.”

최대한 자연스레 하는 말에 강수하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우리가 움직이는 방향대로 사람들의 시선도 움직이고 있었다.

“먹고 싶은 거 있어?”

도서관 밖으로 나오자마자 수하가 내 손을 붙잡으며 물었다. 아직 보는 눈이 많아 당황한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나는 어정쩡히 웃으며 잡힌 손을 밀어 냈다. 잘생긴 미간에 살짝 주름이 지는 것은 금방이었다.

“손 줘.”

단호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아직도 보는 눈이 많았다. 바깥에서 편하게 서로 손을 잡고 다닐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오늘은 이상하게 불퉁한 얼굴로 수하가 손을 내밀고 있었다.

“밖이잖아…….”

나는 또 어색하게 눈을 굴렸다. 나도 잡고 싶지, 생각 같아서는 자꾸만 수하를 바라보는 그 시선 앞에서 손을 잡고 안기며 내 거라고 표시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그게 뭐.”

하지만 곧 무심한 대답이 들려왔다. 아니, 왜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건데……. 나는 입을 비죽거렸다. 그렇게 막 불퉁한 말을 내뱉으려는데 나보다 강수하가 조금 더 빨랐다.

“손 줘. 응?”

다시금 내 앞에 강수하의 손이 내밀어졌다. 나는 순간 내가 불퉁했었다는 생각도 잊고 가만히 수하를 보았다. 뭔가 좀 평소랑 다른데.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수하야. 왜 그래?”

“뭐가.”

무심한 대답이 이어졌다. 결국 강수하는 내밀지 않았던 내 손을 직접 잡아 왔다. 덕분에 잡힌 손을 빼내려 했지만 손에 힘을 주는 강수하 때문에 그 행동은 아무 의미 없는 짓이 되었다. 결국 나는 한숨을 내쉬며 손에 힘을 주는 것을 멈췄다. 수하는 별다른 표정 변화가 없었다.

“수하야.”

“…….”

“화났어? 내가 손 빼려고 해서?”

하지만 어쩐지 일자로 다물린 입이 뭔가 마음에 안 든다는 기색이 역력했던지라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녀석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냐, 그런 거.”

나는 잡고 있는 손을 꼼지락거렸다.

“다들 쳐다보기도 하고, 여긴 너희 학교고…….”

“…….”

또 강수하는 말이 없었다. 그에 신경 쓰였던 마음에 갑자기 불퉁한 생각이 피어올랐다. 나도 잡고 싶었는데, 너 생각해서 안 잡은 건데. 나도 강수하 내 거라고 보여 주고 싶었는데. 나는 결국 움직이던 걸음을 우뚝 멈췄다. 덕분에 걸음을 옮기던 강수하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다 너만 쳐다보고 있어서 나도 손잡고 싶었어.”

“……어?”

“나도 너 내 거라고 동네방네 다 자랑하고 싶었는데, 너 생각해서 안 그런 건데. 왜 나한테 화내.”

서운한 마음에 미운 소리가 튀어나왔다. 한 걸음 정도 앞에 서 있던 강수하가 미간을 찌푸리며 그 거리를 좁혔다.

“다 완전 눈에 하트 달고 너만 보고 있는 것도 짜증 나는데. 너까지 왜 그러는데.”

애꿎은 신발 코를 바닥에 부딪치며 나는 고개를 숙였다. 짜증 나. 한번 서운한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나는 괜히 잡힌 손을 비틀었다. 불퉁한 마음이었다.

“아, 나 화낸 거 아냐, 정말이야.”

“…….”

“어, 아니 그냥 나도 똑같은 생각을 해서…….”

나는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힐끗 본 얼굴이 당황을 담고 있었지만 그 와중에 조금은 기분이 좋은 기색이라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강수하가 내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흩트렸다.

“미안. 나는 다들 너 보고 있다고 생각했거든.”

“……바보냐. 나를 왜 봐. 다 너 보는 거지.”

“너는 가끔 너 스스로를 너무 낮춰서 보는 경향이 있더라.”

무심한 듯 부드러운 목소리가 울렸다. 아직 내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흩트리는 손길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었다.

“네가 얼마나 예쁜데.”

낮은 목소리가 귓전을 울렸다. 덕분에 나는 마주하던 눈을 황급히 피하며 바닥을 내려다봤다. 머리 위 기분 좋은 웃음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정말이야.”

“아, 알았어. 그만 말해.”

“도서관 안에서도 밖에서도 그리고 평소에도 네가 너무 예뻐서 걱정된다고.”

“알겠다니까아. 창피하니까 그만 말해.”

이렇게 심각한 콩깍지가 어디 있담.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얼굴이 열기가 오르고 있었다. 분명히 빨개졌을 거야. 안 봐도 알 것 같아 나는 굳이 고개를 들지 않았다.

“신경 쓰지 마. 누가 보고 있어도 상관없으니까. 그러니까 다시 손잡아도 돼?”

나는 쭈뼛거리며 어렵게 고개를 끄덕였다. 기분 좋은 웃음소리가 다시금 귓전을 울렸다. 부드러운 손길이 내 손에 닿아 왔다. 나는 울렁이는 심장을 애써 진정시키고 있었다.

“뭐 먹고 싶어.”

잔뜩 기분 좋은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나는 조심조심 손을 움직이며 강수하를 마주했다. 딱히 대답이 없는 나를 가만히 바라보는 그 시선을 마주 보고 있었다.

“맛있는 걸로.”

“응. 뭐가 있지…….”

“네가 만들어 주면 좋겠어.”

“어?”

“……둘만 있고 싶으니까.”

무척이나 작게 소곤거리듯 뱉은 말에 강수하가 잡은 손에 힘을 줬다. 그리고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

“도와줄까?”

“괜찮아. 그냥 앉아 있어.”

내 집 안 부엌에서 분주히 움직이는 강수하가 무척이나 어색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 덕에 왠지 기분이 좋아진 나는 발을 동동 굴리고 있었다.

강수하는 파스타를 만들어 주겠다고 했다. 그래서 돌아오는 길, 마트에 들러 필요한 재료를 사 온 참이었다. 그 돌아오는 길도 얼마나 걸음이 빠르고 급한지 너무 빨라 힘들다고 헉헉거리고 나서야 걸음을 늦춰 줬던 수하였다.

“아닌데, 나 도와줄 수 있어. 내가 요리를 엄청 못하는 줄 아나 본데……!”

“못하지 않아?”

장난스럽게 강수하가 내 말에 대답했다. 뭐, 썩 잘하지 않기는 하는데……. 아주 단호한 대답에 뭔가 미묘하게 자존심이 상했다. 나도 하려고 하면 할 줄 아는데. 뚱한 마음에 입이 비죽거려졌다.

“그래. 뭐. 안 도와줄 거야.”

그 퉁명스러운 말에 웃음소리가 대답으로 들려왔다. 수하는 아주 익숙한 몸놀림으로 장을 봐 온 것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게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닌 것 같아 나는 분주히 움직이는 수하를 보며 입을 달싹거렸다.

“있잖아.”

“응?”

“자주 해 먹어, 음식?”

사실 에둘러 한 말이었다. 정작 묻고 싶은 말은 누구한테 이렇게 요리를 해 준 적이 있는 지였다. 그렇지만 대놓고 물어볼 수는 없으니까. 강수하가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보통 집에서 시간 나면?”

“왜?”

“왜라니?”

“아니, 부모님하고 같이 사니까, 보통은 잘 안 하잖아. 난 항상 엄마가 해 줘 가지고.”

“아아. 어머니가 바쁘셔서.”

강수하는 여전히 대수롭지 않은 목소리였다. 나는 그 목소리에 일말의 질투심을 접고 고개를 끄덕였다. 있지도 않은 가상의 존재를 만들어 질투한 것 같아 괜히 찔려 민망해졌다. 아, 나 왜 이렇게 못났냐. 괜스레 머리카락을 헤집어 버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수하의 옆으로 다가섰다.

“왜?”

“아니, 뭐 도와줄 거 없어? 저거 씻어 올까?”

“아무것도 안 해도 돼.”

강수하가 제 머리로 내 머리를 콩 찧었다. 괜찮다는 제스처였는데 그래도 왠지 마음이 불편했다. 그냥 얻어먹는 기분이라…….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

“응. 이거 버릴 거야? 내가 갖다 버릴게.”

“아냐. 너 나 도와주고 싶은 거지?”

“응.”

“그럼 뽀뽀나 해 줘.”

갑자기 요리와는 전혀 연관성 없는 이야기가 튀어나왔다. 내 입에서 어이없는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게 요리랑 무슨 상관이야.”

“사기 충전?”

능글맞게 웃고 있는 강수하는 막상 내가 진짜로 해 줄 거라고는 생각지 않는지 여전히 분주하게 손을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수하를 가만히 살펴보다 까치발을 들어 그 볼에 쪽, 하고 입술을 붙였다 뗐다. 강수하의 눈이 살짝 동그래졌다.

“뭐야. 해 달래 놓고 왜 놀라.”

“아.”

강수하가 머쓱하게 웃었다. 잠시 멍청하게 서 있더니 이내 뭔가 생각한 듯 완전히 손을 털어 내 버리고는 싱크대에서 돌아섰다. 곧 내 허리가 확 끌어당겨졌다.

“어?”

“볼에 말고, 입에.”

그러곤 배시시 웃었다. 나는 곧 수하를 따라 웃으면서 그 입술에 입을 맞췄다. 쪽, 하고 붙었다가 입술이 떨어졌다. 하지만 떨어진 보람도 없이 다시 두 번, 세 번, 입술을 맞부딪혔다.

“아, 간지러워.”

“간지러워?”

수하는 내 웃음기 섞인 말을 따라 하면서도 계속해서 입을 맞추고 있었다. 이미 준비하고 있던 것은 뒤로 치워 버린 후였다.

“뭐야. 파스타 해 주기로 했잖아.”

“배고파?”

완전히 나를 껴안은 수하가 계속해서 입을 쪽쪽 맞춰 왔다. 입술에서 뺨으로, 뺨에서 귀로 그리고 목으로 천천히 넘어가는 입술이 간지러워 몸을 움츠리며 웃었다. 멈출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그러기를 한참, 갑자기 수하가 내 몸을 획 돌렸다. 덕분에 나는 싱크대에 기대면서 강수하의 팔에 갇혀 버린 꼴이 되었다.

“뭐, 뭐야.”

“조금만 있다가 먹자.”

“어?”

“응? 조금만.”

답지 않게 보채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귓가가 살살 핥아 올려졌다. 닿아 오는 그 느낌에 내가 몸을 움츠렸지만 피할 곳은 없었다. 앞뒤, 양옆으로 사방이 막혀 있었다. 나는 결국 웃음을 터트렸다.

“아, 진짜.”

별수 없다는 소리를 내며 나는 그 목에 팔을 감았다. 가까운 귓가에 기분 좋은 웃음소리가 흘러 들어오나 싶더니 곧 내 몸이 휙 들어 올려졌다.

“으악!”

덕분에 놀란 내가 목을 감은 팔에 힘을 줬다. 나는 어느새 물기가 없는 조리대 위에 올라와 있었다. 음식 만들 때나 쓰지, 평소 앉을 일 없는 곳에 앉게 되니 굴욕적이게도 어렵게 목을 감을 필요 없이 수하와 눈높이가 맞았다.

“어쩌면 이렇게 눈높이가 딱 맞지.”

“고등학교 때 이후로 키가 안 큰 것 같다, 너.”

장난스런 기색이 가득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선을 곧게 맞추고 웃는 얼굴이 못 견디게 좋았다.

“네가 너무 큰 거래도.”

배시시 웃으며 나는 강수하의 얼굴을 당겨 입을 맞췄다. 기꺼이 내 입술에 입을 맞댄 수하가 내 아랫입술을 물고 늘어졌다. 그러곤 이를 세워 한번 깨물었다가 그 깨문 자리를 혀를 내어 살살 핥아 낸다.

“으응…….”

그 사이 강수하의 손은 분주히 움직였다. 상체를 슥 쓸어내린 손이 아래에서부터 천천히 톡, 톡 소리를 내며 단추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그제야 파드득 정신이 돌아왔다. 이상하리만큼 그 소리가 귓가에 크게 들린 탓이었다. 나는 다급하게 그 입술에서 떨어졌다.

“여기서?”

“……여기서부터?”

의아한 기색을 보이던 수하가 곧 내 눈가에 입을 맞추며 웃었다. 아, 이러면 또 약해지는데…….

당황한 나를 뒤로하고 강수하는 눈, 코, 입, 이마, 뺨 할 것 없이 쪽 소리를 내며 입을 맞췄다. 그 얇고 긴 손은 내 어깨를 살살 쓰다듬으며 옷을 벗겨 내고 있었다. 결국 내 옷은 바닥에 떨어졌다. 안에 받쳐 입은 옷 하나 없던 내 상체가 휑하게 드러났다.

“아……, 잠깐만…….”

강수하는 꾸물거리며 손길을 피하는 내 몸을 조심스레 훑어 내려갔다. 내 목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는 것이 분명했다. 쭉 내려갔던 손이 다시금 배를 지나 올라옴에 몸이 움찔 떨리고 있었다.

“읏…….”

마치 나를 관찰하듯 빤히 보며 그 야릇한 손길이 가슴께를 더듬었다. 그에 무심코 잇새로 억눌린 소리가 튀어나왔다. 강수하가 낮게 웃음을 터트렸지만, 나는 강수하의 시선이 꼭 이글이글 타는 것처럼 뜨거워서 똑같이 웃을 수도 없었다.

아, 모르겠다. 장소고 뭐고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나는 강수하의 얼굴을 당겨 입을 맞췄다. 차라리 시선이 마주치지 않으면 덜 민망할 성싶었다.

“아…….”

하지만 수하는 내 생각대로 해 줄 생각이 전혀 없는 모양이었다. 살짝 입술을 쪽, 하고 맞추고는 다시금 내게서 떨어졌다. 나를 보는 눈빛도 그대로였다. 온몸에 열기가 가득했다. 시선만으로도 숨이 거칠어졌다.

“넌 모를 거야.”

“……아으, 수하야.”

그의 손이 부드럽게 허리를 지분거렸다. 갈비뼈를 타고 오르는 손길이 닿은 자리가 홧홧했다.

“내가 너를 안고 싶어서 매번 얼마나 안달이 나 있는지.”

그 밭은 숨과 함께 내뱉은 말에 시선이 맞물렸다. 열기가 가득한 그 감정이 온 피부로 와 닿았다. 나는 좀체 강수하에게서 들을 수 없는 낮은 음성에 몸을 떨며 숨을 깊게 내쉬었다.

“안아 줘.”

열기에 가득한 내 얼굴은 어땠을까. 잔뜩 붉어져 있을까. 강수하처럼 눈에 안기고 싶다는 내 욕망이 가득 들어차 있을까. 잘 모르겠다. 나는 그저 지금 안기고 싶었다. 너에게.

내 대답에 녀석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내 입술을 머금었다. 느릿하던 손길은 어느새 다급해졌다. 손길이 가슴께를 짓눌렀다. 엄지손가락으로 장난스럽게 긁는 느낌에 키스에 막힌 입 속에서 읏, 하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입술을 핥아 낸 강수하의 혀가 바로 목으로 이어졌다. 나는 부끄러움에 눈을 꾹 감았다. 하지만 오히려 그 덕에 자극이 더 생생하게 다가왔다.

“아, 아…….”

목에서 내려간 입술은 어느새 가슴에 닿아 있었다. 혀에 핥아 올려지는 느낌에 갈 곳 잃은 손이 그 어깨를 부여잡았다. 하지만 녀석은 천천히 내 상체를 핥아 올리고 있었다.

깊숙이 들어오는 오후의 햇살이 몸에 닿아 강수하가 닿았던 그 부분이 번들거리는 게 내 눈으로도 확인이 돼 발끝이 저려 왔다. 순간 다급한 손길이 바지 버클에 닿았다. 미련 없이 풀어진 버클 사이로 이미 흥분감에 축축해진 속옷이 드러났다. 녀석의 손이 망설임 없이 그 안으로 들어갔다.

“으읏, 아, 아. 수하야, 아!”

어렵지 않게 내 허리를 한 손으로 든 수하가 내 바지까지 벗겨 내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참을 수 없이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지금은 너무 밝았고, 나는 조리대 위에 올라와 있는데다 나와 달리 강수하는 옷을 다 갖춰 입고 있었다. 우스운 것은 그 부끄러움에 섞여 흥분도 터지기 일보 직전이라는 거였다.

“아흣, 아.”

강수하가 브리프 안에서 바짝 기립한 성기를 매만졌다. 그에 앓는 소리를 내면서도 나만 벗었다는 참을 수 없는 창피함에 녀석의 옷을 벗겨 내고자 손을 뻗었다. 하지만 머리끝까지 찬 흥분 탓인지 손은 그 티셔츠 하나를 벗겨 내지 못하고 헛손질을 하고 있었다.

“아, 진짜 너…….”

강수하가 미간을 확 찌푸렸다. 그러고는 내가 잡고 있던 상의를 미련 없이 벗어 냈다. 단단한 상체가 드러났다. 내 몸은 어느새 덜덜 떨리고 있었다.

제 상의를 벗어 낸 수하가 내 벗겨지지 않은 드로즈 위로 입을 맞췄다. 그에 점점 더 축축해지고 있는 브리프 아래가 뜨거워지고 있었다.

아무것도 안 했는데, 속옷조차 벗지 않았는데 이 손길로 가 버릴 것 같은 불안감이 들었다. 손이 다급해졌다. 정말 싸 버릴 것 같았다.

“아, 나……. 가, 갈 것, 으읏, 같아. 수하야, 아……. 읏.”

하지만 수하는 내 말이 들리지 않는 듯 계속해서 속옷 위를 혀로 애무했다. 아무리 다급하게 어깨를 밀어 봐도 녀석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결국 나는 속옷을 입은 채로 정액을 분출해 버리고 말았다.

“아……!”

외마디 비명과 함께였다. 허리가 뒤로 넘어갔지만 내 허리를 잡은 수하 덕에 넘어가진 않았다. 사정의 여운이 가시고 나자 만족스러운 얼굴을 한 수하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금세 불퉁한 얼굴을 했다.

“하, 이씨. 내가 갈 것 같다고, 했는데.”

“괜찮아.”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수하는 제 입가를 혀로 핥아 냈다. 그게 또 얼마나 야한지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마주하고 있던 시선을 내리깔 수밖에 없었다. 강수하가 내 허리를 들어 올렸다. 바지가 벗겨질 때처럼 공중에 들려진 내가 녀석의 목을 휘어 감았다. 그 아래로 축축해진 속옷이 툭 떨어졌다.

강수하는 내 속옷을 벗겨 내고 엉덩이를 받쳐 들었다. 내 다리가 자연스레 그 탄탄한 허리에 휘감겼다. 공중에 떠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덕분에 방금 전의 사정으로 축 처져 버린 성기가 탄탄한 복부에 닿았다. 그게 부끄러우면서도 수하의 뜨거운 몸에 닿는 것이 금방 또 자극으로 다가왔다. 아, 나는 왜 이렇게 본능에 충실하냐. 방금 전 사정을 해 힘없이 처져 있던 성기가 또 슬금슬금 기립할 태세에 나는 차마 고개를 들지도 못했다.

하지만 강수하는 말없이 빠르게 움직였다. 나를 든 것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빠른 발걸음이었다. 내가 침대 위로 옮겨진 것은 금방이었다. 강수하는 무척이나 다급해 보였다. 몇 번이나 헛손질을 하며 수하는 젤을 집어 들었다.

사실 이건 집들이 선물이랍시고 녀석들이 가져온 것이었다. 너무나 어이없게도 누구 하나 빠짐없이 이것들을 준비해 왔었다. 콘돔과 젤의 향연에 내가 황당해했던 것도 얼마 전의 일이었다.

수하는 금방 제 손에 젤을 짜냈다. 그리고 젤이 잔뜩 묻어 찌걱거리는 손으로 내 뒤를 훑는 손길이 다급하기 그지없었다. 그 차가운 손길에 나는 몸을 움츠렸다.

“괜찮아.”

아니, 그러니까 뒤를 보이고 있는 건 난데 왜 네가 괜찮은 건데……! 무척이나 억울한 마음이 순간 들었지만, 그런 말을 할 수도 없을 만큼 여유가 없는 표정이라 나는 결국 웃음을 터트렸다. 웃은 지 5초도 되지 않아 후회하고 말았지만.

“웃는 거 보니까 여유 넘치나 보네, 한지헌.”

무척이나 무심한 목소리가 들리고 손가락은 빠르게 뒤를 침범해 왔다. 움직이는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강수하가 조급해하는 것을 금방 알아챌 수 있을 정도였다. 동시에 바지 버클이 풀리고 지퍼가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흉흉하게 서 있는 성기가 툭 튀어나왔다.

“아, 아니. 읏, 하, 읏.”

당연히 여유가 있을 리가 없는데, 정말 그렇게 생각했는지 뒤를 괴롭히고 있는 손은 계속해서 이곳저곳을 움직였다. 아주 잠시라도 빼낼 생각이 없는지 쓰지 않는 손과 이빨을 이용해서 콘돔의 포장지를 벗겼다. 녀석이 어렵지 않게 제 성기에 콘돔을 씌웠다.

그때까지도 뒤를 침범한 손가락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다. 손가락이 뒤를 드나들면서 찌걱이며 마찰이 이는 소리가 계속해서 방 안을 울렸다.

“아, 아읏, 아흑! 아, 빨, 빨라, 하아……. 윽.”

정말로 나는 여유가 없었다. 참기 힘든 자극에 시트를 꽉 쥔 손이 새하얘졌다. 그 손 위로 강수하의 손이 겹쳐진 것은 아래의 자극이 급작스럽게 사라진 다음이었다.

수하는 곧장 내 입술에 입을 맞췄다. 농밀한 키스가 계속되었다. 도망치듯 움직이는 내 혀를 옭아매는 숨이 막힐 정도로 깊은 키스가 이어지던 때, 강수하의 성기가 일말의 여유도 없이 내 안으로 단박에 들어왔다.

“아흑.”

퍽, 하고 밀려 올라온 성기가 배 속을 가득 채워 신음성이 터져 나왔다. 마주 본 녀석의 얼굴이 흥분감으로 얼룩져 있었다.

“아, 그렇, 게…… 흐, 한 번……에…….”

“미안.”

강수하가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짧게 사과했다. 하지만 가득한 흥분을 증명하듯 허리가 쉴 새 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 아으, 응……!”

이게 정말 내 입에서 나온 소리인가 싶을 정도로 높은 소리가 튀어나와 다급하게 입을 틀어막았다. 하지만 그도 잠시였다. 수하의 손이 부드럽게 내 손을 잡아 왔기 때문이었다. 마주한 얼굴이 무척이나 가까웠다. 허리를 난폭하게 움직이면서도 마주한 얼굴은 어찌나 다정한지, 몇 번이고 입술이 부딪쳐 오고 있었다.

“윽, 아, 수, 하야.”

“좋아해. 지헌, 아. 한지헌, 내가 진짜 좋, 아해.”

움직임에 한 번씩 끊기는 목소리가 가슴 터지도록 좋았기에 나는 수하에게 입을 맞추지 않았다. 듣기 좋은 목소리였다. 너무 좋아서 계속해서 듣고 싶은 말이었다.

“나, 흑, 나도. 좋아해. 윽, 응? 계속, 말, 해 줘. 흣, 아.”

“좋아, 해. 사랑해. 정, 말로.”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빠르게 움직이는 수하의 성기가 크게 느끼는 지점에 닿자 저절로 몸이 움츠러들었다. 머리가 새하얘지고 있었다.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저 좋아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는 소리만 계속 들려오고 있었다.

“아, 아읏, 아……. 윽.”

방 안에는 신음 소리, 그리고 허리 짓에 따른 찌걱거리는 소리, 수하가 내 귓가에 속삭이는 소리만 계속해서 들려오고 있었다. 움직임이 점점 더 빨라졌다. 퍽퍽퍽 쳐올리는 허리 짓에 나는 더 이상 아무런 생각도 못 하고 있었다.

“아윽!”

한번 사정을 했음에도 다시 뻣뻣해졌던 성기가 또 정액을 분출했다. 녀석도 절정에 다다랐는지 움직임을 멈추고 내 몸을 감싸 안았다. 울컥거리며 흐르는 것이 생생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동시에 절정에 올랐던 터라 우리 사이에는 잠시 침묵이 일었다. 강수하와 나는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그 침묵 끝에 수하가 웃으며 말했다.

“아, 미치게 좋다. 진짜.”

나는 기진맥진해 있었다. 곧 수하가 입꼬리를 당겨 웃었다. 그 얼굴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한 번…… 더 말해 줘.”

“좋아해. 사랑해. 몇 번이고 말해 줄게. 내가 많이 사랑해. 네가 너무 좋아. 지헌아.”

나는 녀석의 말에 웃으며 눈을 깜빡였다.

“한 번만 더 할까.”

적어도 녀석의 덧붙인 말이 아니었다면 그렇게 웃으면서 잠들었을 터였다. 슬금슬금 수하의 손이 다시 허리를 쓸어 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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