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화 (5/6)

✦ ✧ ✦

주말이 그대로 지나고 월요일 저녁이 되어서야 형이 귀가했다. 아버지가 연락한 듯했다. 끝까지 나를 책임지라고 형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하라고 그를 다그쳤으리라.

“얘기 좀 해.”

나는 방으로 들어가는 형을 붙잡았다. 그의 팔을 붙잡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형의 앞을 막아섰다.

“나 피곤한데.”

그의 말대로 얼굴이 말이 아니었다. 단순히 피로에 절여져 있는 게 아니라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위태롭게 자신을 겨우겨우 지탱하고 있었다.

“귀찮게 안 할게. 잠깐만, 잠깐만 얘기해.”

“할 말 없어.”

“비겁한 개새끼, 형은 개새끼야! 나쁜 새끼!”

나는 거친 욕을 내질렀다. 그를 좋아하게 된 것은, 그를 사랑하게 된 것은 내 의지가 아니었고 형과 이런 관계가 된 것이 고통스러워 억지로 나를 세뇌한 것도 아니었다. 나는 두 주먹으로 형의 등과 어깨를 내리쳤다. 퍽퍽 때릴 때마다 모든 죄를 자신의 것으로 감내하듯 형의 몸이 휘청거렸다.

“그걸 이제 알았어?”

그가 지친 음성으로 되묻는다.

형의 말투 하나하나가 단어 하나하나가 나를 세게 때리고 지나갔다. 형을 보고 있으면 자꾸 눈물이 차올랐다. 나를 외면하는 그의 모습이 슬퍼서가 아니라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우리의 상황이 눈물을 부추겼다.

나를 울리는 짓은 하고 싶지 않았다던 형은 뺨을 적시는 내 눈물을 보며 마른세수를 했다. 그의 얼굴이 곤란하게 경직되어 있었다.

갈피를 잃은 손이 나를 방으로 끌고 갔다. 문을 닫고 그 문을 잠그며 누구도 우리의 대화를 듣지 못하게 차단한다.

우리는 그런 사이였다. 감춰야 하고, 말하지 못하는, 결코 아름답다고 말할 수 없는 관계였고, 형은 그걸 잘 알기에 나를 거부하는 것이었다.

주말이 그대로 지나고 월요일 저녁이 되어서야 형이 귀가했다. 아버지가 연락한 듯했다. 끝까지 나를 책임지라고 형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하라고 그를 다그쳤으리라.

“얘기 좀 해.”

나는 방으로 들어가는 형을 붙잡았다. 그의 팔을 붙잡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형의 앞을 막아섰다.

“나 피곤한데.”

그의 말대로 얼굴이 말이 아니었다. 단순히 피로에 절여져 있는 게 아니라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위태롭게 자신을 겨우겨우 지탱하고 있었다.

“귀찮게 안 할게. 잠깐만, 잠깐만 얘기해.”

“할 말 없어.”

“비겁한 개새끼, 형은 개새끼야! 나쁜 새끼!”

나는 거친 욕을 내질렀다. 그를 좋아하게 된 것은, 그를 사랑하게 된 것은 내 의지가 아니었고 형과 이런 관계가 된 것이 고통스러워 억지로 나를 세뇌한 것도 아니었다. 나는 두 주먹으로 형의 등과 어깨를 내리쳤다. 퍽퍽 때릴 때마다 모든 죄를 자신의 것으로 감내하듯 형의 몸이 휘청거렸다.

“그걸 이제 알았어?”

그가 지친 음성으로 되묻는다.

형의 말투 하나하나가 단어 하나하나가 나를 세게 때리고 지나갔다. 형을 보고 있으면 자꾸 눈물이 차올랐다. 나를 외면하는 그의 모습이 슬퍼서가 아니라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우리의 상황이 눈물을 부추겼다.

나를 울리는 짓은 하고 싶지 않았다던 형은 뺨을 적시는 내 눈물을 보며 마른세수를 했다. 그의 얼굴이 곤란하게 경직되어 있었다.

갈피를 잃은 손이 나를 방으로 끌고 갔다. 문을 닫고 그 문을 잠그며 누구도 우리의 대화를 듣지 못하게 차단한다.

우리는 그런 사이였다. 감춰야 하고, 말하지 못하는, 결코 아름답다고 말할 수 없는 관계였고, 형은 그걸 잘 알기에 나를 거부하는 것이었다.

“준영아, 형 말 잘 들어.”

“……싫어.”

“너 내 꼴 봤잖아. 내가 어떤 상태인지 네가 봤잖아.”

그는 제 몸에 남은 상처를 말하고 있었다.

제정신으로 살지 않았다고, 나를 원하던 그 순간부터 그의 삶은 자기혐오와 고통의 연속이었다. 십 년 넘게 그를 짓누르던 그 혐오의 감정에 질식되어 형은 사랑마저 증오하게 되었다. 사랑이 사랑으로 보이는 게 아니라 죄로 여겨지는 것이었다.

“내가 아무리 나쁜 새끼라지만 나는 너 망치는 짓은 못 해. 너까지 아프게 하는 짓은 안 할 거야. 너 지금 착각하는 거야. 누가 만지면, 그래, 내가 아니더라도 누가 널 만지면 그렇게 반응하게 돼. 기분 좋을 수 있어. 내가, 내가……, 해서는 안 되는 짓을 한 거야.”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게 분명했다. 형은 두서없이 말을 쏟아 냈다. 절절하게 쏟아 내는 그 언어가, 나를 망치지 않으려고 하는 그 모든 말들이 어떤 칼날이 되어 나를 찌르는지는 모르고 있었다.

“그래?”

“그래.”

“누가 날 만져서 그렇게 기분 좋아지는 거면, 그래서 사랑하게 되는 거면, 나 아무한테나 그럴까 봐.”

“…….”

“지금 밖에 나가서 아무나 붙잡고 키스해 달라고, 안아 달라고, 옷 벗고 뒤엉키자고 그럴까 봐……! 아무나하고! 형 말고 다른 사람하고! 내가 그랬으면 좋겠어? 진짜 내가 그랬으면 좋겠느냐고……!”

“…….”

“나는 형 말고 다른 사람은 싫어.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구역질 나. 그런데 더 싫은 게 어떤 건지 알아?”

그가 아연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세상이 무너지는 표정을 지으면서.

“형이 나 말고 다른 사람하고 그런 짓 하는 거야. 나는 형이 나하고만 그랬으면 좋겠어.”

“…….”

“그렇게 계속 같이 있고 싶어. 형하고 같이, 우리 같이…….”

“…….”

“그런 게 사랑이야, 이 등신아.”

나는 나가라고, 꼴도 보기 싫다고 그를 내 방에서 밀어냈다. 그의 몸이 망망히 떠밀려 나가자마자 문을 쾅, 소리가 나게 닫고 주저앉아 소리 내어 울었다. 형에게 들리게, 나를 울리는 짓이 가장 싫다고 하는 그에게 들릴 수 있도록 눈물과 콧물을 짜내며 울었다.

✦ ✧ ✦

형은 완전무결한 무표정으로 나를 대했다. 착실하게 나를 가르쳤고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오히려 차갑도록 열성적이어서 진도를 쫓아가지 못하는 나를 진심으로 걱정하며 근심 어린 한숨을 짓기도 했다.

그는 다른 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 내게 눈길을 주지 않았고 공부 문제 외에는 말을 걸지 않았으며, 내게 손대지 않았다. 내가 사랑이라고 말하자 그와 내 사이는 보이지 않는 두꺼운 유리 벽으로 차단되어 말도 통하지 않았고 감정이 닿지도 않았다.

형은 지난 몇 개월간 우리가 연인으로 지내 온 시간을 완벽하게 모르는 척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처럼 나를 대했고, 같은 공간에 함께 있을 때는 늘 방문을 활짝 열어 두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지난번에 만들어 놓은 오답 노트 자기 전에 복습해.”

“…….”

그는 책상 위에 펼쳐 놓은 책들을 덮어 한곳으로 치웠다. 그리고 먼저 의자에서 일어났다. 공부가 끝났으니 더 이상 내게는 볼일이 없다는 양 기타를 무릎 위에 놓고 튜닝을 했다.

책을 챙겨 일어나며 그를 향해 돌아섰다.

그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형이 하는 고뇌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고, 나를 포기하게 만드는 게 무엇으로 기인하는지도 알고 있다. 그래서 그가 더욱 괴로워하고 있다는 것도.

내가 형을 좋아하지 않았으면, 그를 끝까지 밀어냈으면 형은 스스로 나쁜 놈을 자처하며 자신만의 지옥에서 썩어 갔으리라.

그는 도리에 어긋나는 짓이라 그만둔 것이 아니었다. 천륜이라는 이유로 포기가 쉬웠으면 애초에 시작도 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는 스스로 짐승이고 싶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다만 형은 나까지 짐승으로 만드는 짓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나까지 자신이 겪은 고통 속에 빠트릴 수 없다고 여기는 것이었다.

형이 차갑게 나를 외면할수록 그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수 있었다.

“나 공부 열심히 할 거야.”

“…….”

“죽도록 할 거야. 내가 시험 망치면 전부 형 탓이라고 여길 거잖아.”

그를 괴롭게 만드는 짓은 그 어떤 것도 하지 않을 작정이었다.

“형을 슬프게 하는 일은 하지 않을 거야. 그게 내가 형을 사랑하는 방법이니까.”

형은 나에게 일말의 시선도 주지 않고 고집스럽게 버티고 있었다. 싸늘하게 행동하고 있지만 기타를 만지는 손가락이 여리게 떨려 왔다.

괜찮다고 형을 안아 주고 싶었다.

내가 그를 좋아하게 된 것은 세상이 멸망하는 일도 아니었고, 나를 망치는 일도 아니었다. 그가 힘들어한 시간과 고통을 지금부터 내가 겪어야 하는 것도 결단코 아니었다.

그냥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것뿐이었다. 누군가를 열망하게 되는 일일 뿐이었다.

끝까지 대답하지 않는 형을 바라보다 그의 방을 천천히 걸어 나왔다.

방문을 닫았는데도 기타 치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서로에게 벌어진 일들을 외면하고 하루가 지났다. 또 하루가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고, 점점 날씨가 추워졌다. 형과 나는 서로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착실하게 공부만 했다.

그리고 여지없이 다가온 수능 날, 며칠 사이에 날씨가 급격하게 추워지더니 기온이 영하로 내려갔다.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여니 달라진 계절이 자리하고 있었다. 청명한 공기가 폐부에 가득 들어찼다. 하얀 입김이 숨을 내쉴 때마다 공기 중으로 퍼져 나갔다.

창문 밖으로 고개를 쭉 빼면 형의 방 창문이 보였다. 그의 방 창문은 꽉 닫혀 있었다. 머리를 시원하게 해 주는 시린 공기를 가슴으로 들이켜며 열리지 않는 창문을 오래도록 응시했다.

십 년을 넘게 기다려 온 수능 날이었지만 긴장이 되거나 초조하지 않았다. 나 자신도 놀라울 정도로 별로 떨리지 않았다. 그동안 정말 열심히 했다고 자부할 수 있기에 서둘러 실력을 내보이고 싶어 은근히 설레는 정도의 고양감만이 나를 감싸고 있었다.

정작 수험생인 나는 괜찮은데 아버지와 윤 차장이 긴장해 허둥거리는 아침이었다.

윤 차장은 그녀가 믿는 종교에 대고 기도했다.

우리 준영이 그동안 열심히 했는데, 오늘 시험 실수하지 않고 잘 보게 해 주세요. 그녀를 제외하고 아무도 아멘 하지 않았지만 아버지도 같은 마음인지 실수하지 않게 해 달라고 할 때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 잘 보게 해 주세요, 라고 할 때 괜찮은 의견에 적극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준영이 좋아하는 김치볶음밥하고 반찬 몇 가지랑 보온 통에 어묵탕 넣었고, 혹시 생각 없으면 과일 먹으라고 과일도 쌌어. 다른 거 먹고 싶은 건 없어? 다른 거 싸 줄까?”

“괜찮아요. 잘 먹겠습니다.”

“길 복잡해지기 전에 일어나지. 오늘은 아버지가 학교에 데려다주마.”

아침 식사를 마치고 일어서기 전 아버지가 말했다.

“아니요. 형 차 타고 갈게요.”

나는 괜찮다고 아버지의 제안을 거절했다.

“아버지 차 타고 가. 나 일 있어.”

수능과 나에게는 아예 관심이 없는 것처럼 무뚝뚝하게 앉아만 있던 형이 대뜸 거절했다.

“형 차 타고 가는 게 마음 편해서 그래. 평소랑 다르지 않게 하고 싶어.”

오늘은 수능 날이었고, 수험생이 원하면 이 집의 가장이든 나라의 경찰이든 수험생이 원하는 대로 해 주는 게 당연한 날이었다. 이 나라는 수능 듣기 시험 때문에 비행기 착륙을 늦추는 나라였다.

“그래? 그럼 준원이가 좀 데려다줘. 준영이 그동안 공부하느라 수고했다. 준원이도 고생했고. 부담 갖지 말고 평소처럼 하던 대로 하면 돼.”

아버지가 나를 격려했다. 지난 몇 달 내가 얼마나 열심히 공부했는지 잘 알고 있고, 그 노고도 전부 안다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나는 정말로 열심히 공부했다. 시험을 망치면 그것은 내 몫의 부채감이 아니라 형의 것이 될 게 뻔했다. 지금도 자책하고 있는데 형에게 더 이상의 죄책감을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았다. 목표가 생기니 흔들릴 겨를조차 없었다.

“준영아, 고생했어. 너무 긴장하지 말고 차분하게 풀어. 그리고 좀 잘 안 풀려도 괜찮아. 인생에 고난이 얼마나 많은데, 수능은 네가 살면서 겪을 고난에 비하면 되게, 진짜 되게 작은 고난이다?”

손가락으로 되게 작게, 아주 작게, 눈까지 가늘게 뜨고 수능은 별거 아니라고 말하는 윤 차장에게 아버지가 매서운 눈초리를 보냈다.

“지금 그게 시험 보러 가는 애한테 할 소린가?”

“괜찮아요. 차장님 말씀이 맞는데요, 뭘. 올해 못 보면 내년에 잘 보면 되는 거고요. 근데 저 올해 잘 볼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 준영이 진짜 다 컸다. 언제 이렇게 의젓해졌어?”

윤 차장이 기특하다고 웃음을 터트렸다.

“수험표 챙겼는지 다시 확인하고.”

아버지의 말에 나는 툭툭 교복 앞주머니를 건드려 보였다.

형은 무의식적으로 내 가방과 윤 차장이 챙겨 준 점심 도시락을 들고 있었다. 잘하고 오겠다고 부모님에게 파이팅을 크게 외치고 집을 나섰다.

형과 함께 차에 올랐다. 안전띠를 끌어 매며 운전하는 형을 돌아보았다.

나에게는 일부러 시선도 주지 않고 그는 앞만 주시하고 있었다. 차가 조금 밀렸으면 했는데 멀지 않은 거리는 금세 줄어들어 어느새 형이 나를 내려 주는 학교 근처에 도착했다.

교문 앞이 응원하는 후배들과 자식을 학교까지 데려다주는 학부모들로 떠들썩했다. 벌써 경광등을 반짝이는 경찰차도 나타나 주변 정리를 하고 있었다.

차를 멈추고 형은 가방과 도시락을 챙겨 주었다. 시험 잘 보라는 의례적인 말조차 하지 않았다.

핸들을 잡고 어서 내리라는 듯 앞만 응시한다. 소란스러운 바깥에 비해 차 안은 기이할 정도로 조용했다.

나는 굳어 있는 형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나 시험 잘 볼 거야.”

그간 해 온 노력을 헛되게 하지 않으려 열심히 하겠다는 다짐이 아니라 잘 보는 게 기정사실인 것처럼 정보를 전달하듯 말했다.

“형하고 같은 대학에 들어갈 거야.”

외면하듯 앞만 보는 그의 눈가가 희미하게 움찔거렸다. 그게 지난 몇 개월간 나를 지탱해 온 이유였다. 흔들리지 않게 붙잡아 준 목표였다.

수능이 끝나고 결과가 나오면 그것으로 내 마음을 형에게 증명하겠다고 다짐했다.

“도망칠 수 있으면 도망쳐 봐. 나는 계속 형을 쫓아갈 거야. 그게 미국이든 영국이든 상관없어. 갈 수 있는 데까지 어디 한번 가 봐.”

“……강준영.”

형의 고개가 뻣뻣하게 나를 향했다. 나를 보지 않으려고, 내 눈을 보지 않으려고 내리깔고 있던 시선이 올라왔다.

나는 단호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고, 그 어떤 것도 나를 흔들 수 없었다. 형은 혹독한 대가를 치르듯 나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나는 천륜을 거스르는 게 아니라 그냥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었을 뿐이다. 형이 그 사실을 알았으면 했다. 그가 당한 고통을 내가 당하는 일은 없었다.

“형을 좋아한다고 해서 내가 망가지진 않아. 형이 괴로워한 것만큼 괴롭지도 않고. 나는 양심 같은 게 없나 봐.”

“…….”

“나는 형이……, 형 자신을 망가졌다고 생각하는 게 싫어.”

“내가 정신 병원에 들어가면 그땐 믿을래? 망가지지 않았다고? 나 제정신 아니야. 지금도 널 보면 어떤 생각을 하는 줄 알아? 그게 미친 게 아니면 뭐야.”

“…….”

“잘못된 거야.”

“정말 그렇게 생각했으면 처음부터 그러지 말았어야 해.”

“……처음부터 알고 있었어. 그냥 미친 척하고 싶었어. 일 년만……, 일 년만 날 속이고 모르는 척하고 싶었을 뿐이야. 눈이 뒤집혀서 실수한 거라고.”

오죽 미쳤으면 수험생인 네게 그런 짓을 했겠느냐고, 그는 통제할 수 없었다는 자책의 얼굴로 또 자신을 채찍질했다. 나의 형으로 나를 염려하는 혈육의 마음 또한 진심이기 때문이었다.

“그럼 계속 미친 척해. 모르는 척해.”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만해.”

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처럼 순식간에 고통의 감각이 그를 잠식했다. 나를 생각하는 게, 나를 원하는 일이 형에게는 매일같이 천 개의 바늘에 찔리는 아픔이었으리라.

“나 좀 봐.”

나는 그를 불렀다. 외면하듯 돌아서는 뺨을 붙잡아 나에게 돌렸다.

“나를 보면 어떤 생각을 하는데? 나는 지금 형한테 키스하고 싶어.”

“…….”

“나도 정신 병원에 넣을래?”

“준영아.”

뭐라고 완강히 거절하려는 그의 입술에 내 입술을 포갰다.

형의 움직임이 물벼락을 맞은 것처럼 굳어졌다. 미동하지 않는 그의 입술을 핥아 물고 열어 달라고 채근하듯 지분거렸다. 끝내 입을 열지 않았지만 건조하고 따스한 입술은 여전히 감미를 품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떼고 그에게서 떨어졌다.

그의 목덜미가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또 도망치면 손목 그을 거야. 형의 몸에 있는 숫자만큼……, 내 몸에 만들 거야.”

“강준영……!”

“그러니까 기다려. 내가 형한테 갈 테니까 기다리라고.”

“…….”

차갑게 얼어붙은 뺨을 어루만지고 차에서 내렸다. 가방을 어깨에 고쳐 메고 선팅이 되어 잘 보이지 않는 차창을 향해 손으로 인사를 한 후 걸음을 뗐다.

시험은 차분한 분위기에서 치러졌다.

나는 긴장하지도 않았고 흥분하지도 않았다. 평소 그래 온 것처럼 성실하게 문제를 풀었다. 형의 얼굴도 그의 생각도 머릿속에서 지워 버리고 시험에 집중했다.

이 시험을 망치면 형을 아프게 할 수도 있다는 것만 가슴에 담아 두었다.

시험이 다 끝나고 시험지와 답안지를 걷어 가고 난 후에야 이제 끝났다는 깊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시험을 잘 보고 못 보고를 떠나 드디어 끝났다는 안도와 아쉬움 같은 것으로 가슴이 서늘하도록 허전했다.

술 마시러 가자는 석주의 제안을 거절하고 어수선한 학교를 벗어나 형이 늘 나를 기다리는 곳으로 향했다. 끝내 나를 외면하지 못하는 형의 차가 길가에 주차되어 있었다.

차 문이 열리고 형이 내렸다. 걱정스럽게 나를 바라보는 그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온종일 심란했을 그의 낯빛이 그제야 풀어졌다.

시험은 어땠느냐고, 잘 봤느냐고 물어보지도 않고 그가 내 어깨의 가방을 받아 들었다.

“수고했다.”

“응. 형도.”

그의 차에 올라 핸드폰을 꺼냈다. 윤 차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시동을 걸고 차를 출발하던 형이 내가 차장님, 이라고 운을 떼자 나를 흘깃 돌아보았다.

“네, 지금 끝났어요. 잘 본 것 같아요. 고생은요, 뭘. 수험생 뒷바라지하느라 차장님이 고생하셨죠. 아, 저 친구들하고 놀러 가려고요. 하루 외박해도 괜찮죠? 아버지한테 잘 말해 주세요. 네. 형도 오늘 안 들어간다고 하던데 아버지랑 두 분이서 오래간만에 오붓한 시간 보내세요.”

윤 차장에게 외박을 허락받고 통화를 끝냈다. 형은 못 들은 것처럼 운전만 하고 있었다. 차의 방향이 집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바다로 가자.”

“…….”

“바다 보고 싶어. 시험 끝나면 제일 먼저 바다 보러 가고 싶었어. 바다 가자.”

형은 대답이 없었다. 그럴 생각도 의지도 없어 보였다.

형의 차에 내장된 내비게이션을 내 마음대로 속초로 설정했다.

“마지막으로……, 그럼 오늘 하루만 우리 연인으로 지내자.”

“…….”

“응?”

목이 잠겨 버렸다. 메어 오는 목청으로 묻자 형이 집으로 향하던 핸들을 말없이 돌렸다.

해가 짧아져 저녁이 되기도 전에 주변이 컴컴해지고 흐려졌다.

도심을 벗어나 외곽으로 들어가면서부터 뭔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때 이른 첫눈이었다. 하얗게 거위 털 같은 눈이 앞 유리 너머에서 회오리처럼 흩날렸다.

형은 말없이 운전만 했고, 나도 말없이 차창 밖을 바라보며 앉아 있었다. 그가 히터를 세게 틀어 놓아 가뜩이나 시험이 끝나 피로한 몸에 잠을 부추겼다.

나는 하얗게 변하는 세상을 바라보다 깜빡 잠이 들었다.

커다란 손이 곤하게 자는 나를 흔들어 깨웠다. 부스스 눈을 떴다. 따듯하다 못해 차 안 공간이 안락했다. 이대로 계속 자라고 하면 아침까지 늘어지게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의자는 뒤로 젖혀져 내 자세를 편하게 해 주었고, 어깨에는 형의 다운재킷이 걸쳐져 있었다.

그의 체취가 물씬 묻어나는 재킷을 내리고 일어나 물었다.

“……벌써 도착했어?”

“아까 도착했어.”

그가 흐트러진 내 머리칼을 쓸어 넘기려다 멈칫하고 손을 물렸다. 나는 막 깨어난 얼굴을 쓸어내려 미지근하게 남아 있는 졸음을 걷어 냈다.

그의 말대로 차창 밖이 깜깜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시계는 어느덧 저녁 여덟 시였다. 세 시간을 넘게 잠만 잤다. 형은 한참 전에 도착해 잠든 내가 일어나기를 기다린 모양이었다.

차창 밖은 어둡기만 했다.

“여기 바다 맞아?”

“……바다야.”

나는 차에서 내렸다. 바람이 세게 부는 것 같기는 했는데 막상 차에서 내리자 예상치를 웃도는 한기가 몰아닥쳤다. 코트 깃을 여미고 어깨를 움츠렸다.

하늘에 떠 있는 달은 구름에 가려져 흐린 조도조차 기대할 수 없었다. 호텔과 리조트에 켜진 불빛이 멀리서 일렁였고, 가까운 곳에서 파도치는 소리만 요란하게 들릴 뿐 정작 바다는 보이지 않았다.

몸이 시릴 정도로 추웠지만 그래도 시원했다. 모진 해풍에 가슴이 뻥 뚫리는 해방감도 밀려왔다.

캄캄한 공허를 바라보며 숨을 고르고 있는 내 곁으로 형이 다가왔다.

“형 나 배고파.”

“…….”

“아, 저기 식당 있다.”

주위를 둘러보니 불 켜진 식당이 몇 군데 있었다. 뭘 먹고 싶다는 마음은 없었고 그냥 허기가 느껴져 가장 가까운 식당으로 들어갔다. 형이 대꾸 없이 나를 따라왔다.

“해물탕 맛있겠다. 해물탕 시켜도 돼?”

“그래.”

빈자리에 앉아 주문을 했다. 식당에 켜져 있는 티브이로 수능에 관련한 뉴스가 송출되고 있었다. 올해 난도가 작년보다 높았다는 설명이었다. 나는 딱히 어렵다고 느끼지 않았다.

조리 전의 해물탕이 버너 위에 놓였다. 형이 세심하게 식탁을 세팅해 먹기 좋게 만들어 주었다.

그는 내게 시선을 주지 않으려고 일부러 다른 곳만 바라보고 있었다. 관심도 없는 티브이 뉴스에 시선을 고정한 그의 턱 선이 그간의 마음고생을 말해 주듯 날카롭게 깎여 있었다.

해물탕이 곧 보글보글 끓어오르더니 조개가 딱 다물린 입을 벌렸다.

우리는 대화 없이 식사를 시작했다.

“……우리 호텔 갈까?”

나는 밥을 먹다 말고 그에게 물었다. 수저질하던 형의 손이 허공에서 그대로 멈췄다가 이내 대수롭지 않게 움직였다.

“그냥 집으로 가.”

“싫어. 여기까지 왔는데 일출 보고 갈 거야.”

“…….”

한사코 고집을 피우는 내게 형은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우리는 수능을 망친 것처럼 음울한 분위기로 배를 채우고 식당을 나왔다.

주차장으로 향하는 그를 놔두고 혼자 바닷가를 향해 걸었다. 시커먼 바다에서 파도가 발끝까지 밀려왔다.

운동화가 젖을까 봐 파도가 가까이 올 때마다 뒤로 물러났다. 새파랗게 언 바람을 들이마시자 가슴뼈가 욱신거렸다.

몇 보 떨어진 뒤에서 형이 따라오고 있었다. 추위 때문에 바닷가 횟집에는 손님이 없어 썰렁했지만 아예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멀지 않은 곳에서 불꽃놀이를 하는 무리의 탄성이 아련하게 들려왔다. 그들이 쏘아 올린 불꽃이 하늘에서 환하게 터졌다. 그 순간 어둠 속에 파묻혀 있던 형의 모습이 드러났다.

차가운 무표정이 문득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가 나를 발견하고 멈춰 선다.

“…….”

“…….”

이미 시리도록 차가운데 그의 표정이 나를 보며 더욱 강경해졌다. 형은 한기 서린 바닷바람과 파도 소리에 마음을 정리하고 있었고, 그것을 굳건하게 지키겠다고 다짐하고 있었다.

나를 동생으로 지켜 주겠다고. 더는 더러운 짓을 하지 않겠다고.

나와……, 나와 끝내겠다고.

그가 거리를 좁혀 내게 다가와 말했다.

“안 추워?”

“좀 추워. 아니야, 됐어. 그 정도는 아니야.”

자신의 다운재킷을 대뜸 벗어 주려고 하는 형을 저지했다.

“그만 가자. 너 이러다 감기 걸리겠어.”

“안아 줘.”

“…….”

“형이 안아 주면 안 추울 것 같아.”

망설임 없이 내게 벗어 주려고 지퍼를 내리던 손이 멈칫했다.

그를 대신 해 형의 재킷 지퍼를 마저 내리고 그의 옷 안으로 기어들어 가는 것처럼 형을 끌어안았다. 등줄기를 오그라트리는 온기가 형의 품 안에 있었다. 형을 안은 채로 부르르 몸을 떨었다.

내가 떨자 형은 나를 뿌리치지도 못하고 마주 끌어안지도 못한 채 뻣뻣하게 서 있었다.

“따듯하다.”

“…….”

형은 정말 미치겠다는 숨을 내쉬었다. 그가 내쉬는 숨이 입김이 되어 하얗게 부서졌다. 파도가 포말을 일으키며 우리가 서 있는 지척으로 밀려왔다. 형의 어깨에 이마를 문질렀다. 세게 뛰는 심박이 가슴을 타고 전해져 왔다.

“이러지 마. 네가 이러지 않아도 미치겠으니까 사람 흔들지 마.”

“…….”

“겨우……, 겨우 억누르고 있는데, 겨우 참고 있는 건데. 제발 이러지 마라.”

제 까칠해진 얼굴을 쓸어내리는 형의 손이 파들파들 떨리고 있었다. 그는 정신을 온전히 붙잡으려고 몇 번이고 마른세수를 했다. 어쩌면 친어머니가 잠들어 있는 곳에서 했던 생각과 번민을 되짚고 있을지도 몰랐다.

이래서는 안 된다고, 준영이를 망치게 될 것 같다고.

제가 받은 고통을 준영이에게 주게 될지도 모른다고, 그러니 제발 자신을 멈추게 해 달라고 빌었으리라.

“내가 흔들면……, 형 흔들리는 사람이야?”

떨고 있는 형을 소중하게 끌어안고 조금이라도 온기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몸을 비비면서 물었다.

“흔들려. 세상이 거꾸로 박힌 것처럼.”

그에게 파묻혀 있던 고개를 들었다. 그와 눈이 마주쳤다. 형의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파도처럼 일렁이고 있었다. 먼 곳에서 쏘아 올린 불꽃이 그의 눈 속에서 명멸하는 빛을 뿌리며 피어올랐다가 사라졌다.

“나는 형한테 어떤 존재야?”

그에게 묻고 싶었다. 내내 묻고 싶었다. 십 년을 넘게 묻고 싶었고, 지난 몇 달 내내 묻고 싶었던 것이었다.

불꽃을 담아낸 눈동자가 허공을 바라보다 나를 향하며 마침내 직시하는 눈빛에는 번민도 흔들림도 없었다. 단 한 순간도 내 앞에서 진실할 수 없었던 형은 처음으로 진심을 이야기했다.

“듣고 나면 너 혼란스러울 거야.”

“그건 내 몫이야. 감당하고 못 하고는 내가 알아서 해. 형이 거기까지 관여할 필요 없어. 나는……, 그렇게 어리지 않아.”

형은 내 말에 허탈하고 슬프게 웃었다.

그가 팔을 펼쳐 재킷으로 내 등을 덮어 안았다. 소중하게 품어 주었다. 형이 고개를 기울여 다가와 내 입술 위에 자신의 입술을 격렬하게 포갰다. 뜨겁고 축축한 혀가 입술을 가르고 들어와 입안을 거침없이 빨아 댔다. 호흡이 조여들고 정신이 몽롱해지는 키스였다. 나는 그의 등허리를 움켜잡았다.

뜨겁게 맞물려 있던 입술을 떼고 그가 가쁘게 숨을 내쉬었다.

“원해.”

“하아, 하아…….”

“혈육으로 원해.”

“…….”

“그리고 애인으로도 원해.”

그의 육성이 탁하게 갈라졌다.

애인으로 원한다고, 혈육으로 원한다고 하는 남자가 나의 형이었다.

막 피어난 꽃을 쥐듯 나를 안고 있던 형의 팔이 스르르 풀렸다.

“나는……, 차라리 미쳤으면 좋겠다고, 엄마한테 가서 그렇게 빌었어. 미치는 게 안 되니까 날 그냥 죽여 달라고.”

그는 어떻게든 동생으로 나를 지켜 주겠다고 다짐하고 미치지 않으려고 사력을 다하고 있었다.

집을 뛰쳐나가고, 음악에 몸을 맡기기도 하고, 학교를 그만두고, 저 자신의 몸을 난도질해 가면서 몸부림치듯 나를 염원하는 그 마음이 닳기를 바라고 바란 십 년의 지난한 시간.

너무 긴 시간이었다.

그리고 형은 지나온 시간보다 더 긴 앞으로의 시간을 또 그렇게 보내게 될지도 모른다. 스스로를 더럽다고 여기고 매도하고 비난하고 고통을 주면서.

목구멍이 매캐하게 쓰려 왔다.

“그러지 마. 나는 형 미쳤다고 생각 안 해.”

“미치지 않은 게 아니면 이게 뭔데. 나는……, 나는 너를 사랑해.”

그의 한쪽 뺨으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턱 끝에 맺혔다가 내 가슴으로 툭 떨어지는 눈물방울이 차갑고 뜨거웠다.

“……나도 형 사랑해.”

“그런 의미 아닌 거 알잖아.”

나를 원하는 마음, 미치는 게 불가능해서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는 형의 속이 만신창이가 되어 너덜거리고 있었다. 나를 외면하고 나를 멀리하는 게 그가 형으로서 나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런 의미 아닌 거 알아.”

“…….”

“그게 미친 거면……, 나도 미친 걸로 해.”

“네가 지금 무슨 소리 하는 줄이나 알아?”

파도가 치는 허공을 향하는 그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나는 어깨에 뺨을 묻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 두 번, 세 번. 그리고 네 번.

“한번 내뱉으면 다시는 번복할 수 없는 말 하고 있어.”

나는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그의 음성에 떨리는 기색이 더욱 짙어졌다.

“못 들은 걸로 할게. 안 들은 걸로 할게. 우리 이러지 말자. 제발. 응?”

그는 나를 떼어 내려고 자신의 허리에 감겨 있는 팔을 억지로 풀려고 했다. 손깍지를 껴서 그를 강경하게 옭아맸다. 아예 움직이지 못하게 전신의 힘을 다 쥐어짰다. 팔이 부들부들 떨려 왔다.

“형을 사랑하는 게 미친 거면……, 나는 그냥 미친 사람 할 거야.”

“…….”

나는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극렬한 울음을 참은 것처럼 그의 눈자위가 빨갛게 되어 있었다.

“사랑해. 형을 사랑해.”

“……준영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보는 눈을 한참 동안 마주 응시했다.

천천히 호흡하며 떨림을 가라앉히려고 했지만 형의 목소리가 추위에 질린 것처럼 속절없이 떨리고 있었다. 그의 눈에서 쉴새 없이 눈물이 흘러 뺨을 적셨다. 조용히 흐르며 번지는 눈물을 손으로 닦아 주었다.

“나 이제 못 하겠다. 더 이상은 못 버티겠어.”

만약 옳지 않은 거면 이 자리에서 죽여 달라고, 그의 눈빛이 참담하게 일그러졌다.

“……아무 생각 안 하고, 그냥 그렇게 어쩔 수 없이 되어 버린 것처럼, 할 수 있어?”

형이 물었다. 혼란이 극에 달해 스스로를 난도질해야만 했던 그의 갈등과 고뇌가 내뱉는 음절마다 탁하게 묻어났다.

“할 수 있는 거 아니고……. 그렇게 돼.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됐어.”

“…….”

“그런 거 미쳤다고 하는 거면, 우리 그냥 미친 거 해.”

“이제 취소 못 해.”

그가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목에 코를 박고 나의 체 향을 듬뿍 들이마시는 넓은 가슴이 격렬하게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는 내 손목을 꼭 붙든 채로 걸었다. 우리는 모래사장을 한참 걸어 불꽃놀이를 하는 무리를 지나고 친구들끼리 모닥불을 피우고 앉아 술을 마시는 무리를 지나고, 그렇게 걷기만 했다.

차가운 바람에 새파랗게 질려 외진 해안까지 걸어갔다. 멀지 않은 곳에 바다를 끼고 있는 호텔이 보였다.

그는 걸음을 멈추고 화려하게 불을 밝히고 있는 건물을 오랫동안 올려다보았다. 손이 시리지 않게 꼭 마주 잡고서 나는 호텔을 쳐다보기만 하는 형의 옆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추운데 저기 들어가면 안 돼?”

“많이 추워?”

“응. 많이. 진짜 추워.”

내 체중을 당겨 바삐 걷는 형과 함께 호텔로 들어갔다.

카드 키를 받고 우리는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여전히 내 손목을 놓지 않고 꼭 쥐고 있는 그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 눈이 마주치자 형은 초조함을 감추지 못하고 어색한 미소를 희미하게 지었다.

룸 번호를 확인하고 카드 키를 대고 문을 열고 들어갔다. 불을 켜기도 전에 형의 입술이 부딪쳐 왔다. 나는 평생 이 순간만을 기다려 온 것처럼 그의 목을 휘감아 안았다. 뜨거운 입술이 숨과 열기를 불어 넣으며 안으로 들어왔다. 혀와 혀가 얽히고 조금이라도 서로를 핥고 싶어 몸부림치면서 우리는 입술을 겹쳤다.

입술을 떼고 헐떡이면서 형이 어이없다는 듯 허탈하게 웃었다.

“……왜 웃어?”

“네가 날 이런 식으로 좋아할 거라고는……, 상상도 해 본 적 없어.”

“…….”

계기는 형이 만들었지만 나는 어쩌면 예전부터 형을 좋아했었는지도 모른다. 이런 식의 성애는 아니라도 그것이 우애를 뛰어넘는 감정인 것은 사실이었다. 다만 나도 이런 식으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먼저 씻고, 응? 형, 잠깐만.”

무작정 입술을 포개어 오는 그를 피해 고개를 돌렸다.

겨냥한 곳을 찾지 못한 입술이 뺨과 관자놀이에 닿아 비벼졌다. 탁해진 숨소리로 그동안 형이 얼마나 인내해 왔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가 내 코트를 벗기고 셔츠를 벗기며 몇 번이나 헛손질했다. 달음박질친 것처럼 호흡이 다급해져 있었다.

내가 먼저 벗기기 전에 그가 자신의 니트를 머리 위로 벗어 던졌다. 나는 습관적으로 새로운 자해의 흔적을 찾았다. 분주하게 그의 상반신을 핥아 내리는 눈동자에 형이 그런 짓 하지 않았다고 고개를 저었다.

“약속했잖아. 다시는 안 할 거라고……, 다시는 안 한다고.”

두 팔이 나를 끌어안고 뺨에 입술을 문질렀다. 침대로 향하며 형이 호텔 룸 안의 불을 꺼 버렸다. 드리운 커튼의 갈라진 틈으로 희붐한 빛이 스며들었다.

형은 신발을 그제야 벗었다. 나는 그가 마구잡이로 벗기는 대로 반라의 상태가 되어 침대 위로 쓰러졌다.

나는 흐트러진 채 어둑한 곳에서 그를 올려다보았다. 갈라진 커튼 틈으로 스며든 인공의 조명이 형의 상반신을 비추었다.

양말을 제외하고 그가 급하게 내 몸을 가리는 옷가지를 전부 벗겨 냈다. 그리고 자신의 하의를 대충 끌어 내리고 몸을 겹쳤다.

주체하지 못하는 헐떡임으로 휘청대는 양 뺨을 붙잡아 끌어 올려 입술을 겹쳤다. 내가 유일하게 범할 수 있던 그의 혀와 입술을 마음껏 핥고 빨았다. 순식간에 열이 달아올라 머리가 뜨거워졌다. 그에게 짙은 입맞춤 하며 형의 어깨와 등허리를 손으로 쓸어 만졌다.

나를 향해 굽이치는 그의 등줄기가 안타깝게 오그라들었다. 손바닥에 스치는 살결 위로 면도날에 베인 듯한 상처가 만져졌다.

“아아, 계속 만져 줘. 준영아, 계속……, 읏.”

애타게 나를 기다려 온 남자의 전신을 쓸어 주었다.

형을 끌어안고 만지다 그의 드로즈 위로 융기한 살에 손을 가져갔다.

꿈틀거리는 부피감이 손이 닿지도 않았는데 열을 내뿜고 있었다. 천천히 형의 사타구니를 어루만지며 살을 움켜쥐었다.

“으읏……!”

그의 등이 크게 꿈틀거리고 동시에 칼에 찔린 것처럼 숨을 멈추었다.

나는 멍하게 흐트러진 눈을 떴다. 벌겋게 달아오른 형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가 당황스럽게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만지고 싶었어. 여기……, 계속 만지고 싶었어. 만지고 싶어서 미치는 줄 알았어.”

형의 성기는 완전히 발기해 터지기 직전의 상태로 딱딱해져 있었다. 체액이 드로즈 위로 맺혀 축축했다. 끈적해져 오는 손으로 그의 것을 속옷 위로 만지다 드로즈 밴드 안으로 파고들어 뜨끈한 열이 오르는 살을 움켜잡았다.

“으윽……!”

형의 전신이 그 상태로 굳어 버린다.

아아, 나는 머리가 멍해졌다. 뜨겁고 끈끈했고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각이 손바닥 전체에 감겼다. 심박이 터질 것처럼 뛰었다. 내가 상상하던 것 이상의 감촉이었다.

우북한 체모와 뜨겁게 요동치는 살덩어리를 습기 찬 손으로 문지르자 그가 격렬한 숨을 토해 낸다.

“준영아, 준, 아아, 으읏, 잠깐만, 준영아, 아, 아읏……!”

나는 정신이 나간 것처럼 벌떡거리는 듯한 아래를 만졌다. 만지는 쪽은 나인데 내가 숨이 넘어가는 것 같았다. 그리고 몇 번 만지지도 않았는데 그가 허리를 부르르 떨며 방뇨하듯 사정액을 뿜었다.

“하아, 아으읏……, 읏!”

속옷과 함께 그 안쪽도 끈적하게 젖어 버렸다. 내 몸이 형의 정액으로 뒤덮였다. 나는 잘게 떠는 기둥을 손으로 계속 쥐고 문질렀다. 손을 놓고 싶지 않았다.

“그만, 그, 그만, 준영아, 아, 안 돼, 형, 못 참을 것 같아. 하아, 아읏!”

내게 아래를 붙잡힌 채 그가 허리를 쑤석거리기 시작했다. 손을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어도 손안으로 터질듯한 성기가 난폭하게 스며들어 스스로 문질러 댔다.

헐떡이며 흥분해서 어쩔 줄을 모르는 형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야릇하게 일그러지는 눈매 위로 아찔하게 무너지는 지성이 보였다.

“으으, 으읏!”

그가 또 나의 하복부 위로 정액을 쏟아 냈다. 부연 액으로 질척해진 손바닥이 끈끈하게 살을 감쌌다. 형의 성기가 기괴할 만큼 혈맥과 힘줄을 불근거리고 있었다.

나는 그의 것에서 손을 떼고 손과 상반신 전체에 묻어 버린 끈끈한 액을 문질렀다.

“……하아, 형, 나 그냥, 그냥 쌀 것 같아.”

그의 앞에서 방만하게 벌어진 다리 사이에 형의 것과 비교하면 초라해 보이는 살덩어리가 발기해 애처롭게 떨리고 있었다. 끝에서 물방울이 스미는 것처럼 위쪽이 젖어 있었다.

겨우 숨결을 가라앉힌 그가 내게 몸을 숙이고 잡아먹는 것처럼 입술을 겹쳤다. 치닫는 신음을 짓뭉개며 휘저었다. 입술이 아릴 정도로 빨아 대는 바람에 통증이 느껴졌다.

“으음, 으응……, 응!”

활짝 벌린 다리 사이로 들어와 체중으로 나를 짓누른다. 몸에 묻는 질척한 체액이 아무렇게나 눌러 짠 액상 비누처럼 미끈거리며 달라붙었다.

그의 목을 휘감아 안고 정신없이 입을 맞추다가 고개를 비틀었다.

“하아, 하아, 하아!”

타액으로 범벅이 된 입술을 그의 혀가 핥아 올린다.

“입 벌려 봐. 준영아, 응? 하아, 입 벌려 줘. 제발, 응? 아아, 키스하고 싶어. 씨발, 키스하게 해 줘.”

숨이 막혀 무의식적으로 도리질을 치며 피하는 내 입술을 깨물고 포개며 혀를 얽어 물고 빨아 댄다. 혀가 빨리고 입술이 빨리는 게 아니라 영혼이나 정기 같은 것이 빨려들어 가는 느낌이었다.

“흐읍, 으읍, 형, 으웁, 으음…….”

끔찍하리만치 음란했다. 형의 침으로 얼굴 전체가 다 젖어 버린 듯했다. 척척하게 젖은 살갗 위로 뜨거운 입술이 스쳤다.

그가 아래를 문지르며 비비고, 입술로는 숨을 못 쉬게 밀어붙이는 바람에 의식이 점차 혼미해져 갔다.

야만스러운 혓바닥이 입술에 떨어져 귓불과 목덜미를 꼼꼼하게 물었다.

그의 머리칼을 쥐어뜯을 것처럼 움켜쥐고 흐트러트리며 형이 흔드는 대로 몸이 물결쳤다.

아래를 완벽하게 붙이고 문지르며 밀어 올리는 힘에 하반신이 들썩였다.

“하아, 형, 뜨거워. 너무 뜨거워, 아읏……!”

“준영아, 하아, 날 사랑해? 응? 날 사랑해? 사랑한다고 말해 줘.”

제발, 제발, 제발…….

그가 온몸으로 애원하며 그의 전신이 나를 향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사랑해……, 사랑해, 형, 사랑해. 사랑해…….”

나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속삭였다. 이게 그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면 그 무엇도 진실된 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뺨으로 툭툭, 뭔가가 떨어졌다. 흐리게 눈을 떴다. 벌겋게 달아오른 형의 얼굴이 보였다. 어둠 속에서 그의 눈가가 눈물로 젖어 있었다.

나는 떠는 뺨을 움켜잡고 입술을 겹쳤다. 그의 짠 눈물과 침을 삼키며 형에게 키스했다.

아찔하게 아래를 쳐올리는 힘에 입술이 떨어지고 고개가 젖혀졌다. 가슴이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

“아앗……! 아, 아으응, 응!”

나를 씹어 발기는 완력이 마치 삽입을 하듯 가랑이 사이를 처덕거리며 부딪쳐 왔다. 현기증이 일었다. 눈앞이 몽롱해지고 헐떡이는 숨조차 끅끅거리며 새어 나왔다. 뇌수 깊숙한 곳을 찌르는 저릿한 절정이 전기 자극처럼 등허리를 쳤다.

“으읏……!”

“하아, 아윽, 읏, 준영아, 어떡하지, 아, 씨발, 어떡……, 아윽, 크윽……!”

내 엉덩이를 붙잡고 아래를 퍽퍽 치던 형이 야만인의 호흡을 쏟아 내며 몸서리를 쳤다. 희멀건 액이 왈칵 쏟아졌다.

“하아, 하아, 하악!”

“……아, 아…….”

나는 형의 가슴을 손바닥으로 밀고 있었다. 땀에 흥건하게 젖어 버린 살갗이 외설적으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세 번이나 파정한 그가 그제야 심호흡을 하듯 숨을 내쉬었다.

“……나 죽을 것 같아.”

“아직 제대로 하지도 않았어.”

가랑이 사이가, 조그마한 자극에도 자지러질 것 같은 부위가 닿아 있는 형의 맥박을 선명하게 느끼고 있었다. 그의 성기가 두근두근 불뚝거리며 느릿하게 비벼졌다. 시든 기색이 없이 형의 것은 처음부터 계속 단단하기만 했다.

그가 나를 기다려 주지 않고 상체를 내렸다. 내 등을 싸안고 일으켰다. 순식간에 자세가 역전되어 그의 하체 위에 형의 성기를 깔아뭉개고 앉아 버렸다.

이제 좀 진정이 됐는지 형의 두 손이 나의 엉덩이를 부드럽고 진하게 어루만지고 손으로 말랑말랑한 살을 느끼는 것처럼 주물럭거렸다.

나는 눈물로 촉촉해진 형의 눈가를 꼼꼼하게 문질러 닦아 주었다.

“다음부터는 울지 마. 내가 자주 말해 줄게.”

“…….”

“사랑해, 형.”

“어떤 의미로……?”

형이 물었다. 눈자위가 빨갛게 되어 있는 그의 눈동자를 세심하게 들여다보았다.

“나……, 형을 생각하면 아래가 간지러워.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 키스하고 싶어. 만지고 싶고, 목소리 듣고 싶어.”

“…….”

“그런 의미로.”

“…….”

“사랑하는 것 같아.”

“하아, 씨발.”

그가 도톰한 제 아랫입술을 깨물고 이마를 내 어깨에 부딪치듯 내렸다. 경추가 도드라지는 형의 목덜미를 쓰다듬었다.

끌어안고 있는 그와 사이를 두고 상체를 뗐다. 질퍽하게 젖어 버린 아래가 보였다. 그의 성기가 나와 그의 하복부 사이로 불쑥 올라와 있었다. 시큼하고 비린 냄새가 났다. 욕망은 더럽지도 추저분하지도 않았다.

나는 손을 내려 그의 성기를 감싸 쥐었다. 끈적거리는 살덩어리 위로 징그럽게 혈맥이 튀어 올랐다. 엄지로 위쪽을 둥글리듯 만지며 형의 얼굴을 응시했다.

“……이거 계속 만지고 싶었어.”

“그랬어? 계속 만져. 괜찮아.”

그렇게 말하니까 되게 이상했다. 내가 만지면 만지는 대로, 아니 그 이상으로 느껴 버리는 형의 아뜩한 표정이 좋았다.

나에게 완전히 몰입한 듯한 눈동자가 뚫어져라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섹스하려면 준비 해야 될 거 있지 않아?”

“……뭐?”

“섹스…….”

내 물음에 음란하게 흐려져 있던 그의 눈동자로 총기가 돌아왔다. 형이 눈을 깜박거렸다.

“호텔에서는 보통……, 연인들은 섹스하잖아.”

“오늘은 안 해.”

“……안 해?”

그의 말에 왠지 서운해졌다.

“이런 불경한 데서는 안 해.”

“…….”

지금 그것만 하고 있지 않을 뿐, 거의 섹스나 마찬가지인 상태로 마주 보고 있지 않냐고 나는 눈을 내려 우리의 꼴을 바라보고 형의 눈으로 돌아왔다.

그의 성기가 액을 질질 흘리고 있었고, 선단을 만지는 엄지손가락이 마치 침이라도 뱉어 놓은 것처럼 질척였다. 형과 나의 배는 정액으로 질펀하게 젖은 채였다.

“너 아파서 안 돼.”

“괜찮은데.”

“안 해 봤잖아.”

“괜찮을 것 같은데.”

엉덩이를 쥐고 있는 손이 느릿하게 내 하체를 당겨 아래를 문지르고 놓아주기를 반복했다. 형의 것이 내 손바닥 안에서 꿈틀거리며 더 부풀릴 수 없게 용적을 키웠다.

나는 그의 어깨에 팔을 올리고 바짝 붙어 형의 손을 도와 허리를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아, 일 년 후에는, 그때는 어쩌려고 했어? 내 앞에서 정말 없어질 생각이었어?”

그는 고개를 느리게 끄덕였다.

“그때는 너무 절박해서 아무 말이나, 무슨 애걸을 해서라도, 단 한 번만이라도…….”

어떻게 해서든 붙잡고 싶어서 그랬다고, 그가 아픈 눈동자로 두서없이 말했다.

“나는 그 말이 제일 무서웠어. 형이……, 일 년 후에 정말 사라져 버릴까 봐. 우리가 그렇게 끝나 버릴까 봐.”

불에 달군 듯 뜨거운 입술이 목줄기를 물었다. 나는 고개를 내리고 형의 얼굴을 안는 것처럼 어깨를 움츠렸다.

“우리가 형제도, 타인도 아니게 될까 봐.”

그가 내 살을 물고 빨며 뭐라고 속삭였다. 살결의 떨림으로 그 말이 미안해, 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우리는 안타깝게 서로를 부둥켜안고 하체를 밀착했다.

“형……, 나 어떡해. 자꾸, 자꾸 이상한 말이 하고 싶어.”

“하아, 뭔데? 괜찮아. 말해 봐.”

“나, 나……, 미쳤나 봐.”

“괜찮아. 응? 괜찮으니까 얘기해.”

“나 형 거……, 입에 넣고 싶어.”

“읏……!”

형의 하체가 갑자기 움칠하더니 정액이 왈칵 새어 나왔다. 그의 몸이 부르르 떨리는 것도 동시였다.

“아, 으읏……, 후우, 하아, 준영아.”

대체 어디서 그런 말을 배웠냐고, 그 말뜻을 알기는 하느냐고 그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눈으로 물어 온다.

나도 당황스러웠다. 그렇지만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이 사실이었다. 정말로 저 단단하고 뜨겁고 저 혼자 숨 쉬는 것처럼 헐떡이는 살 기둥에 입술을 대고 핥았다가 콱 물어 버리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어지간한 변태가 아닌 모양이었다. 하긴 그러니 친형과 붙어먹는 이 상황이, 그리고 친형이 사랑스러워 보이는 것이리라.

나는 억울해진 얼굴을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형과 나의 눈높이가 맞아 서로를 조곤조곤한 시선으로 살피고 있었다.

“나중에. 네가 싫다고 해도 입에 물려 줄 거야.”

“그래도 돼? 내가 형 거……, 깨물어도?”

“깨무는 건 안 되지. 깨물지 말고 살짝.”

형의 손가락이 내 입술을 문질렀다. 입이 벌어지자 엄지가 동그랗게 입술 전체를 둥글리며 그의 눈이 뭔가를 상상하듯 황홀하게 젖어 들고 있었다.

“살짝, 어떻게?”

“살짝……, 아주 살짝, 하아, 씨발.”

내 입술을 진하게 훑어 대는 형의 손가락을 아압, 하고 물어 버렸다.

형이 오늘 몇 번이나 쌍욕을 내질렀는지 숫자를 헤아리다 그만뒀다. 어지간해서는 욕을 잘 하지 않는 그가 말끝마다 제길, 제길, 씨발, 씨발 하며 아래를 움찔거리고 떨어 댔다. 형은 무척 예민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무슨 말 한마디에 이렇게 불끈불끈…….

형의 짭조름한 손가락을 쪽쪽 빨다가 놓아주었다.

“왜 이렇게 발랑 까졌어? 원래 이랬어?”

그가 진심으로 걱정된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나는 그냥……, 본능이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야.”

“……널 어떡하지.”

“…….”

“준영아, 널 어떻게 하지? 응?”

“영원히 사랑해 줘.”

“……그래.”

“죽을 때까지.”

“……응.”

“나도 죽을 때까지 그럴 거야.”

그가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서로 끌어안은 채 몸을 부대꼈다.

몇 번의 격렬한 사정이 찾아왔다. 내가 쏟으면 곧이어 형이 쏟아 냈고, 내가 참지 못하고 사출하면 형이 내 손바닥에 전율하며 정액을 분출했다.

몸이 끈적해지고 탈력에 지쳐 나가떨어질 때까지 우리는 전신을 서로에게 붙이고 문지르며 형제로 살아온 시간을 지워 냈다.

언제 정신을 잃는지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뭔가가 나를 꽉 끌어안고 있었고, 다시는 놓지 않겠다고 강고하게 주장하듯 그 힘을 일정하게 주고 있었다. 내 팔을 쓸어 만지며 형이 나를 깨웠다.

“……준영아.”

“……으응.”

“눈떠 봐.”

소금기에 달라붙어 잘 떨어지지 않는 눈을 떴다. 커튼이 걷힌 창문 너머로 검푸른 수평선이 보였다. 아주 조그마하게 주홍색의 동그란 빛이 수면 위로 번져 오고 있었다.

내 등을 끌어안고 있는 형과 함께 창밖을 응시했다. 잿빛 하늘이 푸른색으로 채워지고 손톱만큼 작았던 동그란 빛이 검은 수평선을 붉게 물들이며 허공으로 조금씩 올라왔다.

“……저게 일출이야?”

“응.”

“예쁘다.”

“……그러게. 예쁘다.”

형의 눈이 창 너머의 일출을 보는 게 아니라 나를 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우리 내년에도 저거 보자.”

“그래, 내년에도 그 후년에도.”

나를 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나를 보듬어 안는 게 아니라 구속하고 있었다. 옥죄이고 있었다. 아프도록 조여 오는 무력이 싫지 않았다.

나는 그의 팔을 붙잡았다. 이대로 이렇게 있자고 밝아 오는 해를 등지고 그를 향해 돌아누워 형을 마주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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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면 네 형이 합격했을 때보다 백 배는 더 기쁜 것 같구나.”

“준원이 들으면 섭섭하겠어요.”

“수고했어. 잘했다. 아주 잘했어.”

합격 발표에 오히려 당사자인 나는 덤덤했다.

수능 가채점 후에 형은 어느 정도 예상했던 모양이고, 나도 형의 반응에 합격하겠다고 가능성을 열어 두고 있었기에 노트북 화면에 떠 있는 합격이라는 결과에 날아갈 정도로 기쁘고 좋은 건 아니었다.

무슨 행사처럼 반드시 같이 확인해야 한다고 아버지는 결과 발표가 나오기 십 분 전부터 노트북을 열어 놓고 초조하게 두 다리를 떨며 기다리고 있었다. 아버지의 그런 모습은 처음이었다. 내게 별 관심이 없는 줄 알았는데 드러내지 않던 속내에 내 자리도 있었다.

덤덤하게 합격을 받아들이는 나를 보고 아버지는 세상 행복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하도 웃어서 아버지가 어디 모자란 사람처럼 보일 정도였다.

“저럴 때 보면 제 형하고 똑같다니까. 안 닮은 것 같은데 어떨 땐 아주 똑같아. 준원이는 오늘도 늦는대?”

“네. 알바 늦게 끝난대요.”

“오늘 같은 날은 좀 일찍 들어오지. 형한테 잘해. 네 형이 도와줬으니까 합격한 거다. 알지?”

형이 베풀어 준 은혜를 절대 잊으면 안 된다고 아버지는 엄격하게 말했다.

“……네, 잘할게요.”

내가 어떤 마음으로 공부했고 무슨 목적을 가지고 형과 같은 학교에 지원하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알면 아버지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무슨 대단한 포부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내 앞에서 없어질 거라고, 다시는 나타나지 않을 거라고 한 형을 쫓아간 것뿐이었다.

형은 수능이 끝나고 바로 일을 시작했다. 고액 과외부터 무슨 몸 쓰는 일까지 하는 모양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면 지쳐 쓰러져 자기가 일상이었고, 그의 손과 어깨에 보지 못한 물집과 생채기가 생겨났다.

합격 발표가 있는 날은 그래도 일찍 들어올 줄 알았는데, 형은 오늘도 결국 자정을 넘어서 귀가했다.

씻자마자 침대에 쓰러지듯 누워 버리는 그를 멀뚱히 쳐다보았다.

“……왜.”

그가 반쯤은 잠에 빠져 버린 음성으로 묻는다.

“오늘은 일찍 올 줄 알았어.”

“될 것 같다고 얘기했잖아.”

“아버지 되게 좋아하시더라. 입이 귀에 걸려서 오늘 저녁 내내 안 내려오는데 좀 웃겼어.”

“……내일 집 보러 가자.”

침대에 엎어져 있던 그가 나를 향해 돌아누웠다. 몸을 뒤집으며 앓는 소리를 한다. 침대맡에 앉아 그를 내려다보며 흐트러진 머리칼을 쓸어 넘겨 형의 얼굴이 잘 보이게 했다.

형은 아버지의 도움 없이 그와 내가 살 집의 보증금을 준비하려고 돈에 미친 사람처럼 지난 몇 달 동안 쉬지도 않고 일만 했다. 고된 노동도 마다하지 않아 손가락이 갈라지고 관절 마디마디가 굵어져 있었다.

아버지의 돈은 십 원도 받지 않으려고 하는 고집을 알고 있어서 형이 고되게 일하는데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나도 아버지에게 미안했다. 우리는 아버지가 바라는 모습으로 살 수 없었고 그러지 않을 작정이었다.

“그냥 형 작업실도 괜찮은데……, 둘이 같이 사는 데는 지장 없잖아.”

왜 이렇게까지 무리하는 거냐고 고단해 보이는 그를 걱정스럽게 내려다보았다.

“그런 지저분한 데서 첫날밤을 치를 순 없지.”

“…….”

“그런 데 너 눕히기 싫어.”

그가 비척거리며 상체를 일으켰다. 침대 헤드에 등을 기대고 앉아 내 허리에 팔을 감아 끌어당겼다.

서로의 코가 맞닿을 정도로 가까워졌다. 막 씻어 내린 청량한 샴푸 냄새와 덜 마른 머리칼의 축축한 수분기가 느껴졌다.

나는 내게 기우는 형의 어깨를 두 팔로 감아 안았다. 그에게 입술을 겹쳤다.

형은 이상한 데에 고집과 신념이 있었다.

우리는 첫 관계를 계속 미루는 중이었다.

아직 미성년이라서 안 된다고 했고, 아버지의 집이라서 여기서는 안 된다고 했다. 수능이 끝나고 난 후에는 합격 발표 전이라서 안 된다고도 했고, 자신이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서 안 된다고도 했다. 작업실은 더러워서 안 된다고 했다. 일출이 보이는 호텔에서 나와 그런 짓을 했으면서 호텔은 다른 이들이 들락거린 불경한 곳이라 안 된다고 했다.

제일 해서는 안 되는 짓을 해 놓고, 여간해서는 괜찮은 것들을 가지고 안 된다고 고집을 피웠다.

이미 마음의 준비를 오래전에 끝내 버린 나에게는 가혹한 신념이었다.

입술을 열어 감각이 예민하게 몰려 있는 부위를 핥으며 손을 내렸다. 형의 가슴을 만지고 단단한 배를 지나 다리 사이로 넣으려고 하자 그가 내 손등을 와락 움켜쥔다.

“하지 말랬지.”

“……만지고 싶어.”

“여기서 나가면, 우리 둘만 있을 때. 그때.”

“만지기만 할게.”

“네가 만지면 못 참을 것 같아서 그래.”

“…….”

“못 참을 것 같은 게 아니라, 못 참아.”

무슨 짓을 할지 몰라서 저 자신이 무섭다고 그가 단호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형의 허벅지 사이에 놓여 있던 손을 슬쩍 뺐다.

그날처럼 형의 몸을 적극적으로 만지고 싶었다. 사타구니 사이에 불룩하게 솟아 있는 살덩어리를 손아귀가 가득 차도록 세게 움켜쥐고 터질 듯 힘을 주고 싶었고, 무성하게 자란 터럭을 손바닥으로 느껴 보고 싶었다. 그날 호텔에서 질리도록 만졌는데도 계속 만지고 싶었다.

형의 손이 나의 등허리를 쓸어 만지며 다시 입술을 겹쳐 왔다. 뇌가 녹아내리는 듯한 짙은 입맞춤을 나누고 얼굴을 뗐다. 형의 목에 팔을 두른 채로 그와 가만히 시선을 맞추었다.

“합격 축하해. 집 보여 주면서 해 주려고 한 말인데.”

“그럼 오늘 같이 자자.”

“……하아. 독립하면, 그때.”

“그냥 자는 것도 안 돼?”

“안 돼.”

“…….”

모두 다 안 된다고만 하는 그를 뚱하게 응시했다.

그의 표정이 어느 때보다 단호했다. 수능 끝나고 난 후로부터 매일 밤 엉겨 붙으려고 하는 나를 떼어 내는 게 그로서도 쉽지 않다는 듯 스스로를 엄격하게 단속하고 있었다. 새해가 지난 지도 벌써 한 달이 지났고, 나도 이제 민증 검사를 받으면 술집에 들어갈 수 있는 엄연한 성인이었다.

“나 잠 못 자.”

그가 이해해 달라고 웃음기 띤 입술로 속삭인다. 사탕처럼 달콤한 피곤이 그의 얼굴에 진득하게 묻어 있었다.

나는 누군가와 사귀는 일이 처음이었고, 좋아하는 일도 처음이었다. 수능이 끝나면서 체력과 시간이 남아돌았다. 형과 해 보고 싶은 게 한둘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격렬하게 하고 싶은 것은 나와 다르지 않은 그의 신체를 질릴 때까지 만져 보는 것이었다.

“……나 오늘 고백받았어.”

“뭐?”

피로로 흐릿하게 가물거리던 눈동자가 날카롭게 떠졌다. 금방이라도 잠에 빠지려고 하던 눈매가 사나웠다.

“고백받았다고.”

“누구한테?”

“다른 반 여자애한테.”

“그런데.”

심각하게 굳어 묻는 형에게 안심하라고 그의 등을 토닥거렸다.

“나는 이미 좋아하는 사람 있다고 했어.”

“그랬더니.”

“헤어지면 전화하라고 핸드폰 번호 알려 주던데.”

“……하, 다들 참 쓸데없이 적극적이네. 나보다 낫다.”

형이 자조적으로 중얼거렸다.

“그래서 그럴 일 없다고 했어. 우리는 이제 막 시작했다고.”

빤히 나를 바라보며 그가 그린 듯한 미소를 짓는다.

물끄러미 보던 형이 숨결로 속삭였다.

“고마워.”

나는 인상을 썼다.

“뭐가 고마워? 당연한 거 아니야? 형은 누가 고백하면 받아 줄 거야?”

“받아 주고 싶어도 받아 줄 여력이 없어.”

“뭐야, 그건. 여력 있으면 받아 줬을 거라는 거지.”

“틈이 있었으면 받아 줬을지도 모르지. 그런데 그 틈이 여간해서는 안 생기더라고.”

“…….”

그는 자아가 형성될 때부터 자신의 감정을 부정하면서 살아왔다. 저 자신을 난도질하다 종국에는 생의 의지마저 꺾어 버렸을지도 모른다. 형에게 나의 존재는 그토록 절대적이었다.

일 년 후에 내 앞에서 사라지겠다고 했던 말도, 없어지겠다던 약속도 어쩌면 물리적인 죽음을 말하는 것이었을 수도 있다. 그가 죽음을 선택했을지도 모른다고 가정할 때마다 등골로 진저리가 쓸려 내려갔다.

나의 어디가 그를 이렇게까지 만드는지 궁금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나의 특별함은 내가 강준원의 동생이라는 것뿐이었다.

“나를……, 언제부터 그렇게 봤어?”

“그렇게 보다니?”

“나를……, 언제부터 사랑했어?”

내 머리칼을 습관적으로 쓸어 만지던 손이 뺨을 감쌌다. 형의 온기는 어릴 때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일정한 온도로 치달아 뜨겁게 느껴졌다.

“정확히 언제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아버지가 출장 가고 집에 안 계셨을 때였던 것 같아. 네가 정말 죽을 것처럼 아팠던 적이 있어. 어른들 아무도 안 계실 때.”

형은 그때를 아득하게 떠올리며 말을 이었다.

“병원으로 가야 하는데 그런 생각도 못 했어.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 당장 죽을 것처럼 아픈 널 끌어안고, 아프지 말라고 빌면서, 계속 그렇게 안고 있는 수밖에는. 네 숨이 끊어질까 봐 밤새도록 가슴을 졸이면서……, 차라리 내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아무한테나 빌었어.”

“…….”

자각하지 못했을 때부터 나를 소중하게 여기던 형의 애틋함에 문득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다음 날 아침에 밤새 앓던 네 열이 겨우 내렸어. 숨이 한결 가벼워졌고. 이제 겨우 살았구나 하고 한숨 돌리는데 그때 네가 눈을 뜨고 날 말갛게 쳐다보더라.”

“…….”

“그 순간을 지금도 말로 설명하기가 힘들어. 그냥……, 달랐어. 모든 게 달라졌어.”

꿈을 꾸는 듯한 표정이었다.

“전혀 다른 세계가 열리는 것처럼, 그날 이후로 모든 게 달라졌어. 처음에는 착각이라고 생각했지. 네가 죽었을 수도 있으니까, 그게 무서워서 살려 달라는 간절함을 착각한 거라고.”

“…….”

“그리고 지금도 너는 그 눈으로 나를 쳐다봐.”

지금이 그렇다는 듯, 그의 눈이 나를 뚫어져라 응시했다. 나는 망연하게 그를 보고 있었다.

“그럼 나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고, 언어를 잃게 돼.”

“형…….”

“너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 버려.”

경이로운 순간을 목격하듯 전신으로 소름이 끼쳤다.

가만히 보던 그가 등허리를 조이듯 나를 끌어안고 깊게 입술을 겹쳤다. 형이 오래도록 나의 숨결과 체액을 삼켰다. 그가 목울대를 울컥거리며 나를 삼키는 소리가 혼미해지는 의식 너머로 아득하게 들려왔다.

Fin

로판데이 링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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