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화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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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 다음 날 아침만큼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없었지만 오늘처럼 힘든 적은 없었다.

잠을 잔 것인지 그냥 침대에 누워서 밤을 새워 버렸는지 도통 모를 아침이 찾아왔다.

핸드폰 알람 소리에 이미 깨어 있는데도 등을 둥글게 말아 침대 시트 안으로 피신하듯 기어들어 갔다.

“…….”

미쳤어.

미치지 않고서는……, 미쳤어. 강준영, 너 미쳤어.

돌아 버렸어. 제정신이 아니야.

어제를 돌이키는 것이 그랬다. 상상도 해 본 적 없던 일이었다.

믿기지 않는다. 믿을 수 없다.

나는 어제 형과 이 침대에서 벌인 짓들을 싫어하지 않았다. 나는 그중에 몇 번은 숨이 넘어가도록 흥분했다. 호흡이 끊어질 것 같은 감각이 존재한다는 것도 믿기지 않는데, 사람이 이런 쾌감에 절여져도 괜찮은가 싶을 정도의 자극이 친형과의 접촉에 있었다.

해서는 안 되는 짓을 해 버렸다는 캄캄한 후회와 두려움, 돌이킬 수 없다는 말이 얼마나 무서운 뜻인지 해가 뜨고 주변이 밝아지면서 점차 깨우쳤다.

“하아…….”

몸이 주저앉는 한숨이 흘러나왔다.

형의 수음을 목격한 후로 내 것조차 혐오스러워 외면했던 성감이 어제의 일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아랫배가 뜨거워지고 호흡이 가빠져 왔다.

전신이 흔들릴 만큼 막무가내로 하체를 부딪치던 형의 가열한 몸부림, 그는 앓는 신음을 하며 정결하지 못한 탄성을 내질렀다.

내 이름을 부르며 절정에 닿던 음성과 손바닥 아래에서 꿈틀거리던 등허리의 굴곡, 땀으로 흠뻑 젖어 버린 등판. 그의 셔츠는 마구잡이로 헤집은 것처럼 엉망으로 헝클어져 있었다.

단 한 번도 형을 그런 이미지로, 그런 모습으로 보지 않았는데, 형은 어제 숨 막히도록 관능적이었다.

자극적이던 그의 움직임이 선명하게 재생되어 몸을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

어쩌지, 어쩌지……. 이래도 괜찮은 걸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침대에 엎드려 누웠다. 흐트러지는 머리칼을 방치하고 바짝 열이 오른 하복부를 어제 그에게 했던 것처럼 매트리스에 문지르고 느릿하게 비비적거렸다.

“으응…….”

움직거리며 부스럭대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려왔다. 손을 대지도 않았는데 닿는 것만으로도 자지러질 듯한 감각이 들끓었다.

나는 그가 빨았던 입술에 손가락을 가져갔다. 부어오른 듯 도톰한 입술 살을 쓸어 댔다. 형과의 키스를 되새기는 입이 마치 그의 입술과 혀를 찾는 것처럼 뻐끔거렸다.

“하아, 아으응…….”

막 어느 지점을 통과하려는 찰나, 핸드폰 알람이 울렸다.

나는 누가 방문을 벌컥 연 것처럼 소스라치게 놀라며 호흡까지 멈추고 침대에 납작 엎드렸다. 동시에 뭉개진 하체가 자극을 받아 정액을 뿜었다.

“으읏…….”

등줄기가 가벼운 경련을 하듯 떨려 왔다. 눈동자가 흐릿해지고 사물이 뭉개졌다. 입술을 깨물고 등골을 지지는 전율이 사라지기를 기다렸다. 잔뜩 오그라들었던 척추가 노곤하게 풀어졌다.

가빠진 숨소리도 고르게 가라앉았다.

쾌감이 지나가자 젖은 속옷이 살갗에 닿아 선득거리는 촉각만이 허탈하게 남았다. 찝찝하고 더러웠다.

큰 자극을 주지 않았는데 어제 형의 모습을 떠올렸을 뿐인데 너무 쉽게 절정에 닿아 버렸다.

나 자신이 괴물이 된 것만 같았다. 머리까지 뒤집어쓰고 있던 이불을 끌어 내리고 상체를 일으켰다.

“……으으.”

자괴와 회한의 눈물이 비어져 나왔다.

형이 어떻게 이런 짓을 나한테 할 수 있지.

내가 어떻게 형을 상대로 이런 상상을 할 수 있지.

몰라야만 하는 감정을, 알고 싶지 않은 감각을 일깨워 준 그가 사무치게 미웠다.

나 자신이 참을 수 없이 더럽게 느껴졌다.

형도 이런 죄책감과 더러운 염오감을 느꼈을 거면서 내 이름을 나른하게 젖은 음성으로 불렀던 것이다.

대체 그게 어떻게 가능한 건지, 그런 사고가 얼마나 정신이 돌아야 가능한 것인지, 나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준영아…….’

나를 부둥켜안고 전율에 육신을 바들거리며 어쩔 줄을 모르던 형의 얼굴.

망연하게 나를 감상하던 얼굴로부터 도망치듯 침대에서 일어서다 풀썩 무릎을 꿇는 모양으로 바닥에 엎어졌다.

“윽……!”

허벅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줏대를 잡지 못하는 허벅지를 주먹으로 내리쳤다. 그렇게 몇 번 치자 감각이 돌아왔다.

형이 정신을 못 차리는 거면 내가 정신을 차려야 한다. 형이 이상해진 거면 나라도 제정신으로 있어야 한다. 입매를 단단히 다물고 일어섰다.

샤워를 하고 교복으로 갈아입었다. 거울 앞에 서서 옷을 입었다. 목과 가슴에 형이 남긴 자국이 뚜렷했다. 단추를 다 채우자 거의 가려졌지만 옷으로 커버되지 않는 부분에는 밴드를 붙였다.

거울 앞에는 성실하고 착실해 보이는 학생이 서 있었다. 형과 그런 짓을 벌였다고 믿을 수 없는 순연한 얼굴과 정갈한 옷매무시를 한 남학생이었다.

형의 자해의 흔적도 드러나지 않는 곳에만 남아 있었다. 타인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세심하게 고른 자리에는 그의 정신세계가 심각하게 망가져 있다는 증거가 여백 없이 빼곡했다.

어릴 때부터 형을 향한 주변의 기대가 과도하기는 했다. 나를 돌보는 일까지 포함해 매사에 완벽했던 형은 사춘기에 접어들며 반항기가 심해졌지만 과정이야 어찌 되었든 형은 아버지의 기대에 언제나 그 이상으로 부응했다.

그래서 아버지도 그의 일탈을 크게 훈계하는 법이 없었다. 몸에 그런 자국을 만들어야 할 정도로 형을 시달리게 하는 일은 적어도 이 집에는 없었다.

결국 그가 저렇게 망가지게 된 것은 내 존재가 원인이라는 뜻이었다. 그가 가출을 시도하고 더 이상 착한 학생을 연기하지 않게 된 계기가 나일 수도 있었다.

바쁜 아버지 대신, 없는 어머니 대신 바지런하게 나를 돌봐 주던 형이 갑자기 돌변해 버린 것은 언제나 의문이었고 괜한 자격지심과 피해 의식을 부추겼다.

형이 변했을 때는 나도 철이 들 무렵이었기에 그의 변절에 항의하지 않았고, 눈치 없이 그를 귀찮게 하는 일도 없었다. 우리의 사이는 먹어 가는 나이처럼 자연스럽게 서먹해졌다.

형은 내게 이런 짓을 하지 않으려고 수백 번 죽는 쪽을 선택했다고 했다.

그런 형을 향한 안타까움과 연민, 동시에 원망과 증오가 한꺼번에 일었다.

뭐가 어찌 되었든 수험생인 나에게 할 짓은 아니었다.

나는 한숨을 쉬고 가방과 핸드폰을 챙겨 거실로 내려갔다.

윤 차장은 분주하게 아침을 준비하고 있었고, 아버지는 식탁에 앉아 경제지를 넘기고 있었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어, 그래. 준영이 일어났구나. 잘 잤니?”

윤 차장은 어제 일 때문에 내 안색을 조심스럽게 살폈다.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윤 차장이 원인은 아니었다.

“네, 잘 잤어요.”

아버지와 초혼인데다 그의 비서였던 윤 차장은 처음에 살림이 퍽 서툴렀다. 음식의 간이 맞지 않을 때도 많았고, 나조차 쉽게 해내는 달걀말이를 태우기도 했다. 지금은 처음처럼 엉망은 아니고 점점 발전하는 중이기는 했지만 여전히 초보 티가 났다.

윤 차장은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찌개의 간을 보고 가스레인지의 불을 껐다.

형의 자리는 비어 있었다.

나는 모르는 척 입을 다물고 식탁에 앉았다. 경제지를 읽던 아버지가 나를 흘깃 넘겨다보고 물었다.

“큰애는 아직인가?”

내가 대답하지 않자 아버지의 눈길은 윤 차장을 향했다. 그녀가 형의 기상에 대해 알 턱이 없었다.

“일어났겠죠. 준영아, 가서 형 아침 먹으라고 전해 줄래?”

“……오, 오늘 주번이라서 일찍 가야 해서요.”

그녀의 말에 대답하고 서둘러 수저를 들었다. 아버지가 수저를 들기 전에 그와 함께 앉아 있는 식탁 머리에서 자식인 내가 수저를 먼저 드는 일은 우리 집에서 용납되지 않는 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아버지가 핀잔하지 못하게 무지막지한 속도로 밥을 퍼먹었다.

그들이 황당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준영아, 천천히 먹어. 그러다 체하겠다.”

그녀의 말에도 아랑곳없이 씹지도 않고 밥을 목구멍으로 넘기고 입안에 가득 들어찬 것을 삼켰다. 순식간에 밥그릇을 비우고 일어섰다.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잘 다녀와. 차 조심하고 저녁 거르지 말고.”

윤 차장은 등교하는 나를 현관 앞까지 쫓아와 배웅했다.

“혹시 용돈 부족하지 않아? 아줌마가 줄까?”

“아니요, 아직 남았는데요. 가 보겠습니다.”

어제 일을 사과하려고 하는 그녀의 속도 모르고 나는 이만 가 보겠다고 인사하고 서둘러 집을 나섰다.

다행히 형과 마주치지 않았다.

돌이킬수록 그와 나 사이에 일어난 일은 모르는 척 덮어 둘 수 없는 종류의 일이었다. 형을 어떤 얼굴로, 어떤 표정으로 마주해야 할지 몰랐다.

집에서 나와 뛰듯이 걸었다. 버스 정류장까지 단숨에 걸어 도착했다. 아침 공기가 숨을 내쉴 때마다 시원하게 폐부로 들이찼다.

버스를 기다리며 나는 먼발치로 조금씩 분주해져 가는 거리를 바라보았다.

악몽 같던 어제를 떠올리지 않으려고 벌레가 붙은 것처럼 머리를 털어 댔지만 조금만 방심하면 그 일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일부러 떠올리지 않으려고 생각의 물꼬를 다른 곳으로 틀어도 소용없었다.

“진짜 미쳤어…….”

동생인 나에게 이런 짓을 하다니, 형이 임주호와 한 짓을 안 것만 해도 감당하지 못하는 충격인데, 나를 이렇게 괴롭게 만들다니.

하지 말라고 그토록 애원했는데 결국 그런 일을 벌인 그를 당장 패 버리고 싶은 흉포한 마음이 울컥울컥 올라왔다.

서로의 몸에 정액을 쏟아 낸 우리는 가쁜 숨결을 천천히 잦혔다. 몸에 남아 버린 감각이 파도에 쓸려 가는 모래처럼 어느덧 사라졌지만 그와 나는 가능하다면 언제까지고 그러고 있을 것처럼 몸을 겹치고 있었다.

그가 먼저 일어나 내 방을 나가지 않았으면, 우리는 밤새 그 상태로 상대의 기척을 예민하게 감지하며 숨을 죽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서로를 끌어안은 채.

끝까지 거부했어야 했다. 싫다고 뿌리치고 그의 몸에 어떤 흔적이 있든 개의치 않고 형을 때리고 발로 찼어야 했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

나는……, 나는 도대체 왜 형하고 그런 짓을 해 버린 거지.

나를 욕망하는 형의 애끓음을 거부할 수가 없었다. 그를 밀치다가 어느 순간 미친 것처럼 그의 꿈틀거림에 함께 반응해 버렸고, 정신을 놔 버렸다.

언제 도착했는지, 학교로 가는 버스가 정류장에 도착했다.

같은 방향으로 가는 사람들의 뒤꽁무니를 쫓아 버스에 올랐다.

마침 빈자리가 보여 얼른 앉았다가 어르신이 나타나는 바람에 도로 일어났다. 손잡이를 잡고 버스의 진동에 함께 흔들리면서 그만 생각하자고 고개를 흔들었다.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도착해 학교는 조용했다. 교실 안에는 먼저 등교한 몇몇이 자습을 하고 있었다.

이르게 등교한 임주호도 여느 때처럼 집중해서 공부하고 있었다. 나는 이렇게 미칠 것 같은데 내 형과 뒹구는 짓을 하면서 저 새끼는 태연하게 공부하고 있었다.

교실 뒷문으로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가방 안의 소지품을 꺼내 놓을 때까지 임주호의 뒤통수를 집요하게 응시했다. 아니, 노려보았다는 표현이 옳았다.

임주호를 죽도록 노려보았다. 죽이고 싶은 마음으로 노려보았다.

이 일의 모든 원흉은 임주호였다. 저 새끼가 시작한 일이었다.

임주호와 허경민이 무슨 사이라는 것을 몰랐으면 악몽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형을 잃지 않아도 되었다. 임주호가 형의 작업실에서 나오는 모습을 보지 못했으면, 그날 형을 찾아가지 않았으면, 그런 일은 어쩌면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형은 내가 상대해 주지 않으면 임주호와 뒹굴겠다고 했다.

형과 내가 그런 짓을 벌이는 것도 싫지만 형이 임주호를 만지는 건 차라리 내가 형에게 당하는 게 나을 정도로 싫었다. 도덕적이지 못한 생각이었지만 그만큼 싫었다. 임주호가 그렇게 싫은 것인지, 임주호와 뒹구는 형이 싫은 것인지는 구분이 잘되지 않았다.

우악스럽게 가방 속의 책을 꺼내자 임주호가 뒤를 돌아보았다. 면학 분위기를 해치는 범인이 나라는 것을 확인한 임주호가 건방지게도 못마땅한 표정을 노골적으로 지었다.

당장 책상을 우르르 쓰러트리며 달려가 그 뻔뻔한 얼굴에 주먹을 날리고 싶었다.

어느 쪽도 용서할 수 없었다. 형이 내게 했던 것처럼 임주호를 욕망했다는 것조차도 용서할 수가 없었다. 질투와 비슷한 감정이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차올랐다.

“뭘 쳐다봐? 할 말 있어? 하고 싶으면 해.”

몇 자리를 거리에 두고 있던 임주호가 언성을 높였다.

“…….”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하는 게 좋아. 꾹꾹 담아 놓기만 하면 병 된다.”

임주호는 인생살이에 도움이 되는 충고라도 한 것처럼 혼자 큭큭거리고 처웃었다. 고막을 틀어막아서라도 듣고 싶지 않은 웃음소리였다.

나는 반사적으로 벌떡 일어섰다. 의자가 뒤로 쓰러질 정도의 반동이 일었다.

임주호의 책상으로 걸어갔다. 녀석은 눈동자를 위로 치켜뜨고 나를 올려다본다.

“뭐야, 진짜 할 말 있냐?”

“더러운 새끼.”

나는 그를 내려다보며 침을 뱉듯 말했다.

“……뭐?”

예상치 못한 일격이었는지 임주호가 한쪽 인상을 콱 찡그린다.

“더러운 병균 덩어리. 더러운 새끼.”

“야, 강준영, 너 미쳤냐?!”

“씨발, 더럽게 어디서 입을 열어. 더러운 냄새 나게.”

“……이 새끼가, 너 진짜 미쳤어?”

임주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몇몇 일찍 와 있던 아이들의 눈이 우리에게 일제히 꽂혀 들었다. 임주호는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는 주변을 흘긋거렸다.

“야.”

“…….”

페스트를 품고 있는 시궁창의 쥐새끼를 대하는 듯한 나의 목소리에서, 표정에서, 눈길에서, 혐오감이 맹렬하게 들끓었다. 임주호의 미간이 딱딱하게 경직되었다.

이 매끈한 얼굴이 형에게 매달려 우북하게 자란 그의 검은 치모를 만지고 발기한 성기를 빨았을지도 모른다. 그 몸 어딘가에 형의 성기를 품었을지도 모른다.

형이 내게 그랬던 것처럼 그의 허벅지를 벌려 놓고 살을 치댔을 거라고 상상하자 놈의 얼굴에 뜨끈한 토사물을 쏟아붓고 싶을 정도로 속이 메스꺼웠다.

“구역질 나는 자식.”

감히, 감히, 감히!

너 따위가……. 허경민하고 그런 사이면서 우리 형하고 그따위 짓을 해?

씨발, 이 새끼를 어떻게 하지. 이 새끼를 어떻게 죽여 버리지? 이 새끼를 어떻게 갈가리 찢어 버리지?

미칠 것 같다. 임주호를 칼로 찔러 죽여 버리고 싶었다.

임주호를 죽여 버리고 싶어 어쩔 줄을 모르고 치솟는 살심에 꽉 쥔 주먹만 벌벌 떨어 댔다.

“강준영, 너 뭐야? 약 처먹었냐?”

“너같이 더러운 놈은 죽어야 해. 제발 오늘 중에 죽어 줘라. 부탁한다.”

“…….”

경멸이 득실거리는 눈으로 임주호에게 말하고 내 자리로 돌아왔다.

어쩌면 형도 임주호와 하등 다를 것이 없는 짐승인데 형에게는 임주호에게 느끼는 정도의 불쾌감과 분노가 들지 않았다.

어제 형의 남성과 내 것이 맞물려 닿아 비벼지던 그때는 이토록 짙은 혐오의 느낌은 없었다. 이해할 수 없지만 나는 기이한 안온함마저 느꼈다. 그를 향해 내도록 갈구해 온 보상을 받는 듯한 포근함이었다.

퍼부을 수 있는 욕이라는 욕은 진정으로 다 퍼붓고 싶었지만 숨만 막힐 뿐 말이 제대로 나오질 않았다.

몇몇 아이들이 나와 주호의 대화를 엿듣고 있다 질색을 하며 혐오감을 감추지 못하는 나를 이상하게 흘깃거렸다.

임주호는 학교 수업이 다 끝날 때까지 아랫입술을 지그시 문 채로 단 한 번도 내게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나는 수업이 끝나자마자 교실을 박차듯 나와 버렸다.

임주호와 같은 공간에 있는 것조차 참기 힘들었다.

교실을 벗어나고 학교를 벗어나서야 목구멍을 꽉 조이던 가슴이 가벼워졌다. 어릴 때도 긴장하거나 깜짝 놀라면 과호흡이 와 숨이 막히는 증상이 있었다. 성장하며 괜찮아졌다고 여겼는데 그때처럼 가슴뼈가 조여드는 숨 막힘이 자꾸만 일었다.

교문을 벗어나 학원으로 가려고 버스 정류장으로 힘없는 걸음을 옮겼다. 온종일 임주호에게 분노하느라 지난 밤을 후회하느라 수업에도 집중하지 못하고 기력만 축냈다.

어깨가 축 처져 정류장으로 향하는 사거리에 형의 차가 서 있었다. 설마 같은 차종이겠지 하는 마음으로 걸음을 늦추지 않았다. 가까이 다가가자 차 문이 열린다. 예상대로 형이 운전석에서 내렸다.

어쩌지…….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다. 형이 나를 피하지 않으면 우리는 집에서 매일 마주쳐야 한다. 작은 내 방처럼 그와 내가 형제인 이상 피할 곳은 이 세상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가 보도블록으로 올라와 나에게 다가왔다.

“이제 끝났어?”

“……여기는 어쩐 일이야?”

일부러 불편하게 마주칠 필요가 없는데 굳이 나타난 그의 행동에 임주호의 빤빤한 얼굴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설마 임주호 기다리는 중이었어? 그 새끼 태워 가려고?”

“…….”

“그 새끼 태워 가려고 여기서 기다렸냐고.”

“너 기다린 건데.”

형은 재미있는 뭔가를 발견한 아이같이 순진한 미소를 지었다.

학원으로 가야 하고 그가 타란 말도 하지 않았는데 그의 차에 올라탔다. 컵홀더에 꽂혀 있는 테이크아웃 커피잔을 흘긋 쳐다보았다. 립스틱 자국 같은 게 있는지, 또 누군가 여기 태웠는지 흔적을 찾으려고 차 안을 두리번거렸다. 열심히 탐색하는 내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듯 그의 차 안은 그저 깔끔하기만 했다.

운전석에 오른 그가 분주하게 주변을 확인하는 나에게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저번부터 뭘 그렇게 찾아? 차 안에서 뭐 잊어버렸어?”

“아무것도 아니야.”

“저녁 먹자.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덤덤한 말투가 다정함을 감추지 않고 물었다.

액셀로 발을 옮기는 그를 돌아보았다. 왜, 하고 형이 시선을 마주쳐 온다.

“내가 형을 필요로 할 땐 아는 척도 안 하더니.”

“…….”

“지금은 내가 필요한가 봐.”

“……그래. 지금은 네가 필요해.”

“눈물겨운 우애네.”

“…….”

“나 시간 없어. 학원 수업 한 시간 있으면 시작해.”

그의 차가 앞으로 이동했다.

형의 차가 도착한 곳은 도심 한복판에 자리한 단층짜리 레스토랑 건물이었다.

“여기가 어디야?”

“그냥 내려. 더 묻지 말고.”

형을 따라 차에서 내려 파인다이닝 안으로 들어갔다.

연인이 데이트하기 좋은 장소였고, 실제로 남녀가 서로 마주 보고 앉은 테이블이 많이 보였다. 조용한 음악이 흐르고 밝은 조명 아래 사람들의 표정이 한껏 달떠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고객님. 혹시 예약하셨습니까?”

“네, 강준원으로 예약했습니다.”

뭐 하자는 짓인지 모르겠다.

나는 오늘 임주호에게 침을 뱉는 것과 진배없는 비난을 쏟아부었다. 온종일 임주호와 형이 뒹구는 장면만 상상해서 점심도 제대로 먹지 못했고, 석주가 걱정된다며 사 온 빵을 먹다 욕지기가 올라와 화장실로 달려가 변기에 얼굴을 처박아야 했다.

나는 내내 그렇게 메슥거리는 하루를 보냈는데 형은 저녁 먹을 레스토랑을 고르고 예약하고 그랬던 모양이다.

미쳤다더니, 정말 미친 거다. 제정신이면 나를 이런 레스토랑에 앉혀 놓는 짓은 할 수 없었다.

무슨 기념할 만한 일이 있거나 축하할 만한 일이 있을 때나 오는 곳이었다.

형과 나는 기념할 만한 일도, 축하할 만한 일도 없었다.

직원에게 자리를 안내받았다. 창문가 테이블 한 곳이 비어 있었다.

“……축하할 일이라도 있어?”

메뉴판을 살피던 형이 나를 향해 시선을 들었다가 도로 내렸다.

“주문하시겠습니까?”

유니폼을 갖춰 입은 직원이 다가와 공손하게 물으며 똥 씹은 표정으로 앉아 있는 나와 형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형은 내가 좋아하는 돈스테이크와 광어 요리를 주문했다.

디저트까지 주문을 마치자 직원이 물러섰다.

“옛날에 왔었는데 음식이 괜찮더라. 너하고 여기 와 보고 싶었어. 그게 다야.”

“그전에는 왜 안 데려왔어?”

“그땐 그럴 수 없었어.”

“……왜?”

“널 똑바로 볼 수가 없었거든.”

“그런 짓을 하고 나니까 지금은 똑바로 볼 수 있어?”

“그래.”

“…….”

“그런 짓을 하고 나니까 이제 가능해.”

담담하게 말하고 있지만 형의 얼굴이 통증을 느끼는 것처럼 이지러졌다.

형과 마주 앉아 연인들이 하하 호호 웃으며 데이트하는 장소에서 식사를 했다. 형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맛도 느끼지 못하고 음식을 목구멍으로 그냥 밀어 넣기만 했다.

눈이 마주칠까 자꾸 외면하는 나를 형은 씁쓸한 눈으로 바라보기만 했다.

식사를 마치고 나와 그의 차에 올랐다. 학원 수업이 이미 시작하고 난 후였지만 지금 가면 진도를 따라잡는 데는 문제 없었다.

형의 차가 학원과는 반대 방향으로 향했다.

“학원으로 안 가?”

“아버지한테 말씀드렸어. 오늘부터 내가 너 가르칠 거야. 나한테 과외받는다고 생각해.”

“그게 무슨 말이야?”

청천벽력이었다.

그와 나의 사이가 형제라는 걸 의식해야 하는 시간을 늘리겠다는 뜻이었다. 학교가 끝난 이후의 모든 시간을 형과 보내야 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도망칠 곳이 없는 게 아니라 몇 군데 남지도 않은 도망칠 장소를 그가 점진적으로 없애고 있었다.

“학원 갈 필요 없어. 내가 공부 봐줄게. 이제부터는 형하고 같이 공부하자.”

“그게 무슨 말이야? 누구 마음대로? 싫어. 안 해. 대학 떨어지고 재수하고 삼수하고 사수를 해도, 안 해!”

나는 소리쳤다.

형이 내 공부를 봐줬으면 하는 것은 성적이 뜰 때마다 하던 바람이었다.

싫다고 단호하게 거절하는 내 주장을 그가 무시했다. 차를 세우지 않고 학원으로 방향을 돌리지도 않았다.

그의 차가 계속 달려 도착한 곳은 집이었다.

나는 씨근거리며 그를 돌아보았다. 이게 대체 뭐 하는 짓이냐고, 그에게 항의했다.

“콧김 뿜지 말고 내려.”

“내 공부는 내가 알아서 해. 나한테 신경 꺼. 언제부터 그렇게 신경 썼는데? 내가 뒤지든 말든 언제부터 그렇게 관심 있었는데? 나 여태 그냥 내버려 뒀었잖아!”

“지금부터 신경 쓸 거야. 지금부터 관심 가질 거고.”

“누구 마음대로? 형 마음대로?”

“……그래, 내 마음대로. 내 동생이니까 내 마음대로……, 내 마음대로 할 거야.”

형이 체념하듯 중얼거리더니 차에서 내린다. 나는 보닛을 빙 돌아 내 쪽으로 걸어오는 그를 바라보았다. 차 문이 열리고 내리지 않겠다고 거부하는 내 팔을 형이 잡아끌었다. 억세지만 결코 나를 함부로 다루지 않는 손아귀에 붙잡혀 집으로 들어갔다.

“이제들 오니?”

현관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윤 차장이 막 서재 문을 열고 나왔다. 윤 차장은 전공을 살려 프리랜서로 잠깐씩 일하는 중이었다. 그녀가 나와 형을 보고 인사를 건넸다.

형과 키스하고 있던 것도 아니고 공부하기 싫은 열등생이 헛짓거리하다 형에게 들켜 끌려들어 가는 모습을 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단순히 그녀의 앞에서 형과 닿아 있다는 사실만으로 심장이 곤두박질치듯 내려앉았다.

놓아 달라고 좀처럼 악력을 풀지 않는 손을 사납게 뿌리쳤다.

“저희 오늘부터 집에서 공부할 거라고, 아버지께 얘기 들으셨죠?”

내가 뿌리치면 그가 붙잡았고, 놓으라고 거부하면 손에 강한 힘이 들어가 더욱 옥죄었다.

“응, 아까 들었어. 아버지가 너무 좋아하시더라. 준영이 이제 성적 쑥쑥 오를 거라고. 저녁은 먹었지? 바로 올라가니?”

나는 말썽꾸러기 아이처럼 그에게 붙들려 씨근덕거렸다.

“저희 신경 쓰지 마시고 일 보세요. 그리고 방해되니까 이 층 출입 조심해 주세요.”

나를 단단히 붙들어 매고 그가 윤 차장을 향해 정중하고 엄중한 부탁을 했다. 코빼기도 내비치지 말라는 경고에 가까웠다.

우리를 보는 눈가가 당혹스럽게 굳어졌다.

“어어……, 그래. 알았어. 조심할게.”

“올라가 보겠습니다.”

완강한 무력이 나를 이 층으로 이끌었다. 어긋난 발걸음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계단을 밟아 올라갔다.

형이 나를 먼저 방으로 밀어 넣었다. 방문이 닫히고 문이 잠기던 그때처럼, 세계와 세계가 단절되어 어딘가에 갇혀 버리는 막막함에 눈앞이 캄캄해졌다.

방의 불을 켠 그가 그제야 나를 놓아주었다.

“이게 뭐 하는 짓이야?”

“내 마음대로 한다고 말했잖아. 내 마음대로 과외 해 주려고.”

“형이 뭔데, 형이 도대체 뭔데!”

“네가 놓치고 있는 포인트를 알고 있고, 적어도 네 등수를 십 등 이상 끌어 줄 능력이 있는 사람.”

“…….”

“다른 애들 과외 해 주고 내가 얼마 받는지, 한 시간에 얼마짜리인지 알기는 알아?”

“그래서 임주호도 과외 해 줬어? 작업실에서 뒹굴면서?”

“해 주면 안 돼?”

그가 흥미롭게 물었다. 우리의 대화가 왜 자꾸 상관도 없는 임주호로 튀는지 궁금한 모양이었다.

“…….”

해 주면 안 되는 이유가 생각나지 않았다. 해 주면 안 될 이유는 없었다.

형은 아버지에게 간섭받지 않으려고 아버지의 돈을 쓰지 않았다. 학비도 용돈도 자체적으로 해결했다. 악기도 사야 하고 작업실 세도 내야 하고 차도 끌어야 하고, 임주호를 만나 뒹굴기도 해야 하니 형은 돈이 많이 필요할 거다. 과외도 해 주고 같이 뒹굴기도 하면서 돈을 받는 모양이었다.

“해 주면 안 되느냐고.”

“안 돼.”

“왜 안 돼?”

그가 간지러울 정도로 다정하게 되묻는다.

“……그건, 그건, 안 돼. 걔 학교에 사귀는 애 있어. 형한테 양다리 걸치는 거야. 더러운 새끼라고.”

허경민을 떠올리자 임주호를 향한 염증이 울컥 일었다.

“그래서 안 돼?”

“양다리 걸치는 놈한테 형이 놀아나거나 말거나 관심 없지만,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야.”

“임주호라는 애한테 열등감 같은 거 있어?”

“내가 그딴 거한테 왜 열등감을 느껴?”

그가 얼토당토않은 소리를 해서 발끈했다.

“그게 아니면 뭘 그렇게 질투해?”

“……뭐?”

“왜 그렇게 질투하냐고. 걔가 뭔데. 그냥 그딴 거라면서.”

“…….”

“나는 네 형이고……, 걔는 나한테 아무것도 아니야.”

“그건 당연한 거잖아. 당연한 얘기하지 마.”

혼란스러웠다. 그가 당연한 말을 하고 있어서 더욱 혼란스러웠다.

형에게 형제의 개념이, 가족이라는 관념이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아서 더 혼란스러웠다.

“걔는 나한테 아무것도 아니니까 걱정할 거 없어.”

“아무것도 아닌 걔랑 뒹굴었잖아. 나는……, 나는 뭔데? 나도 그렇게 함부로 취급해도 된다는 거야?”

“…….”

“나한테 그런 짓을 해 놓고 어떻게 그렇게 뻔뻔할 수가 있어? 형이 나한테 무슨 짓을 했는지, 알기는 알아?”

“…….”

“형이 사람이야? 형, 사람 맞아? 그런 짓, 그 자식하고도 모자라서, 나한테 같은 짓을 해 놓고, 걔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럼 나는? 나는 뭐야? 나는 형한테 뭔데?!”

하얗게 질려 물었다. 그에게 따졌다.

임주호와 하던 짓을 내게 해 놓고 그 애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이 사람이 할 수 있는 말로 들리지 않았다. 양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런 말을 할 수 없었다.

“너는……, 준영이 너는, 너는 내 동생이야.”

머릿속이 아연해 따지는 쪽은 나인데 형의 음성이 흔들렸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라고 스스로에게 주지시켰다.

“네가 내 동생이라는 거, 너무 잘 아니까 네가 뭐냐고 물어볼 필요 없어.”

십수 년의 고문을 견디지 못하고 내뱉는 자백처럼 그의 목울대가 비통하게 꿈틀거렸다. 치미는 뭔가를 씹어 삼키고 형이 나를 직시했다.

“그리고 내가 친동생을 강간한 파렴치한이라는 것도.”

“…….”

해서는 안 되는 짓이라고 여겼지, 그걸 그렇게 강한 어휘로 인식하지는 않았다.

그렇게까지, 그런 짓이라고는 여기지 않았다.

“내가 인간이 아니라는 것도. 너한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줬다는 것도.”

흘러내리는 머리칼을 손으로 쓸어 넘기고 그는 큰 손으로 몇 번이나 마른세수를 했다. 메마르고 황폐해 보이는 얼굴 각피가 손을 움직일 때마다 빨갛게 되어 이리저리 쓸려 다녔다.

“그걸 너무 잘 아는데……, 잘 알고 있는데.”

낯선 쌍욕을 뇌까리며 얼굴을 쓸어 만지던 형의 손이 자신의 머리칼을 세게 움켜쥐었다.

“혼자 공부할 수 있지?”

“…….”

“미안하다. 가르쳐 준다고 해 놓고.”

“…….”

말없이 그를 쳐다보기만 했다. 심장이 조여드는 초조함이 일었다.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고개를 비끼던 그가 나를 피하듯 방을 나가 버렸다.

혼자 공부하라고 했지만 될 리가 없었다. 책상 앞에 의무적으로 앉아 의무적으로 책을 펼쳐 놓고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는 문제를 건성으로 풀었다. 오늘따라 유독 느리게 흐르는 시간을 오 분 간격으로 확인했다. 오 분도 집중하지 못하고 핸드폰으로 딴짓만 해 댔다. 석주에게도 메시지를 보냈다.

[쭈야 뭐함?]

[노는데]

[부럽다 나도 놀고 싶어]

[난 대학 안갈 거니까 상관없지만 영이는 해야지 공부해라 얼른]

[심심해]

[대학갈 놈은 공부해]

[너까지 그럴래]

[오늘 걸으면 내일은 뛰어야 된다잖오]

[뚫린 입이라고 잘도 지껄이네]

시간 차를 두고 돌아오는 녀석의 답변에 실없이 피식거렸다.

“후우…….”

한숨이 흘러나왔다.

생각의 갈피마다 형이 스며들었다.

나를 동생이라고 말하면서 형은 그 사실에 생으로 피부를 벗기는 것처럼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괴로워하는 그의 얼굴을 반추하지 않으려고, 그가 내뱉은 말의 의미를 되새기지 않으려고 형의 모든 것을 보류하려고 딴짓만 해 댔다.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 버린 그는 기척도 없이 옴짝달싹하지 않고 있었다. 나는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면서도 소리를 죽였다.

풀리지 않는 수학 문제도, 도통 흥미가 생기지 않는 게임도, 석주의 재미없는 농담도, 모든 것이 혼잡스럽기만 했다. 형을 제외한 모든 것이 번거롭고 귀찮았다.

그는 자신을 동생을 강간한 파렴치한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걸까.

나는 형을 거부할 수도 있었다.

그날 내 방문을 두드리던 윤 차장을 어떻게든 붙들고 늘어져 눈이 돌아 있던 형 앞에 데려다 놓고 그 상황을 모면할 수도 있었다.

형이 내게 그런 짓을 하는 동안 나는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으려고 입을 틀어막았다.

그러다 나도 모르게 그의 목을 끌어안았고, 땀으로 젖은 등판을 더듬거렸다. 그의 등줄기가 나를 향해 굽이치며 꿈틀거리는 느낌이……, 나는 그 느낌이 그렇게 싫지 않았다.

“……미쳤어.”

무의미하게 들여다보던 액정을 꺼 버렸다.

미치지 않고서는 그걸 좋다고 여길 수 없었다.

형은 나에게 더러운 짓을 하지 않으려고 힘들게 참고, 또 참고, 그러다 견딜 수 없으면 몸에 스스로 칼질을 하고, 그런 방법도 통하지 않으면 누군가와 문란하게 뒹굴어 버린다.

나는 형의 망가짐을 막은 것뿐이었다. 방법이 그것밖에 없어서.

좋아서 그런 게 아니었다.

핸드폰을 책상 위에 내려놓고 일어섰다.

방문을 열고 나와 복도 끝에 자리한 형의 방으로 향했다.

똑똑, 노크를 하고 잠시 기다렸다. 안에서는 응답이 없었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형이 보이지 않았다.

나가는 소리를 듣지 못했는데…….

그에게 예민하게 귀를 기울이고 있었는데 그의 모습이 온데간데없었다. 밖에 형의 차가 있는지 확인하려고 돌아서다 멈칫했다. 욕실에서 무슨 기척이 들렸다.

욕실로 걸음을 옮겼다. 똑똑, 욕실 문을 노크했다.

“형, 안에 있어?”

“…….”

이번에도 응답이 없었지만 황급하게 뭔가를 정리하는 소음이 들려왔다. 욕실 문이 잠겨 있어 손잡이를 돌려도 열리지 않았다. 철컥거리며 억지로 문을 열려고 하자 안에서 잠금이 풀렸다.

욕실 문이 슬며시 열었다.

“……왜?”

좁게 열린 문틈으로 새파랗게 질린 형이 피로한 기색이 역력한 낯을 하고 물었다.

그가 황급히 치우던 뭔가를 발견하려고 그의 어깨 너머와 빈 옆구리로 시선을 건너다보았다. 내가 안을 살피자 열린 문틈이 좁아졌다.

“왜?”

“뭐 하고 있었어?”

“욕실에서 뭘 해. 씻지.”

“비켜 봐.”

열지 않으려고 버티고 선 문을 밀었다. 가벼운 무력에 형의 몸이 망망히 떠밀렸다.

나는 안으로 난입해 면밀하게 주변을 살폈다.

욕실은 별다른 게 없어 보였다. 물에 젖은 세면대와 뚜껑이 닫힌 변기, 물기가 찰박거리는 샤워 부스 안에는 막 잠근 수전에서 똑똑, 물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뭘 확인하는 거야? 약이라도 했을까 봐? 내가 그렇게 미친 것처럼 보여?”

“…….”

그게 아니고서는 설명이 안 된다. 빈 휴지통을 곁눈으로 확인하는 나를 보고 그가 어이없다는 웃음을 터트렸다. 메마른 입술이 파랗게 질려 있어 무슨 짓을 한 것만은 분명했는데 단서가 보이지 않았다.

“볼일 다 봤으면 문 닫고 나가.”

“옷 벗어 봐.”

“…….”

“옷 벗어 보라고.”

“지금 여기서 나 상대해 주게?”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한 연약한 눈동자가 나를 비웃으며 물었다. 형은 똑바로 서 있지 못하고 미세하게 휘청거리고 있었다.

그의 상의를 억지로 끌어 올렸다. 피하려던 형이 흠칫했다.

목까지 끌어 올린 상의 아래로 둔중한 미명 속에서 보았던 자해의 흔적이 조그마한 것까지 세세하게 도드라졌다.

“…….”

몸에 남아 있는 상처를 나와 그의 눈이 동시에 훑어내렸다.

“불쌍해 보여?”

잘생긴 얼굴에, 탄탄하고 아름다운 몸에 왜 이런 몹쓸 짓을 한 거냐고, 그 잘난 강준원이 대체 이게 무슨 꼴인지, 익히 알고 있는 상처인데도 다시 보자 가슴이 터지도록 답답하고 속상했다.

형은 그저 속없는 인간처럼 웃기만 했다. 걱정을 넘어서 분노하는 내 모습을 보려고 일부러 이런 짓을 한 것처럼 보였다.

“불쌍해 보이면 좀 핥아 줘.”

그의 상반신에 새로운 상처는 없었다. 나는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바지도 벗어.”

그가 끌려 올라간 상의를 도로 내리고 옷매무새를 정리했다.

“싫은데.”

“빨리 바지 벗으라니까.”

“내 바지 벗겨서 뭐 할 건데?”

장난으로 이 상황을 벗어나려고 드는 그를 붙잡아 변기 위에 억지로 앉혔다.

순간 그의 얼굴에 선명한 통증이 스쳤다. 도로 일어서려고 뻗대는 손을 뿌리치고 바지 버클을 풀고 지퍼를 내려 억지로 잡아 벗겼다.

“…….”

허벅지까지 드러난 그의 넓적다리 위에 막 붙인 커다란 반창고가 보였다. 반창고를 잡아 뜯자 그가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렸다.

“으윽!”

막 가른 생살이 피를 머금고 굵고 긴 선으로 그의 다리를 긋고 있었다. 봉합하다 만 흔적이 남아 있었다.

“이게……, 이게 뭐야? 왜 이래? 이거 왜 이래?!”

예사로운 상처가 아니었다. 형은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통증이 상당하다는 뜻이었다.

“벼, 병원 가자. 빨리 병원에.”

황망하게 일어나 어쩔 줄을 몰라 하는 내 손목을 그가 턱, 붙잡는다.

“나 정신 병원에 넣고 싶어?”

“…….”

“별거 아니야. 금방 괜찮아져. 나가 줄래.”

“…….”

“하아.”

순식간에 고인 눈물이 뺨으로 투둑, 떨어졌다. 입을 앙다물고 우는 나를 곤란하게 바라보던 그가 설득력이 떨어지는 해명은 그만두고 짙은 한숨만 내쉬었다.

형의 방에는 진통제와 지혈제, 유사시에는 봉합까지 할 수 있는 봉합사와 바늘을 갖춘 구급상자가 있었다.

의자에 앉은 그가 자연스럽게 자신의 상처를 돌보았다. 아버지가 보았으면 의대에 보내지 않은 것을 안타까워할 만큼 깔끔한 솜씨였다.

“그냥 습관적인 거야. 병 같은 거.”

나는 벽에 기대어 제가 만든 상처를 스스로 수습하는 그를 울면서 바라보고 있었다.

형은 나를 조금이라도 이해시키려고 낮은 음성으로 설명했다. 목소리가 아무렇지도 않아서 울음을 더욱 부추겼다.

“……나 때문이야?”

“뭐가.”

“그런 짓 하는 거, 그거 나 때문이야?”

“아니야. 네가 그러라고 시켰어? 그런 거 아니잖아. 그냥 내 문제야.”

“왜 그래……, 그럼 왜 그래, 도대체 왜 그런 짓을 해?”

울먹거리며 왜 자신을 아프게 하는 거냐고, 그러지 말라고, 혈육의 그런 모습에 가슴이 아파서 찢어질 것 같다고 호소했다.

상처를 가볍게 보이려고 형은 고통을 절제하고 있었다. 아픔을 참는 태연한 이마에 진땀이 맺혔다. 완강해지는 무표정을 차마 볼 수가 없어서 고개를 돌려 버렸다.

눈살을 일그러트린 그가 상처를 마저 봉합하고 약을 바르고 밴드를 붙였다.

형은 옷을 갈아입고 흐트러진 자세를 바로 했다. 나를 돌아보는 정연한 모습 어디에도 자해를 일삼는 병자의 그림자는 없었다.

결 바른 태연함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형이 바르고 단정하면 할수록 소름이 끼쳤다. 누구도 반박하지 못하는 준수한 얼굴과 몸짓이 구급상자를 정리해 보이지 않는 상처를 숨기듯 침대 아래에 감추었다.

“……병원에 가 봤어?”

“어디. 정신 병원?”

그가 담담하게 되물었고 나는 안타깝게 고개를 끄덕였다. 울먹거리는 음성에 형은 빨갛게 변한 내 눈을 빤히 응시했다.

“내가 그 정도로 미치지는 않았거든. 동생을 상대로 발정한다고 어떻게 말해.”

“…….”

“그 애가 내 속에서 나온 애도 아닌데, 너무 예뻐서, 아까워서, 소중해서……, 그게 주체가 안 되는 걸 어떻게 설명할까. 어느 날은 동생이 너무 예뻐서 좆이 딱딱해졌는데, 이걸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의사한테 물어볼까?”

“…….”

“평생 널 안 보고 살려고 했어. 그게 가능하다고 하면 참으려고 했어. 그게 맞는 거잖아.”

그 충동을 참으려고 형은 스스로를 액면 그대로 난도질하고 있었다.

“나는 엄마 돌아가시고 널 돌보게 된 게 하나도 힘들지 않았어. 오히려 그때는 행복했어. 살면서 제일 행복했었던 것 같아.”

“…….”

나도 그랬다. 형이 나를 아껴 주고 사랑해 주는 것이 절감되어서 그때는 나 역시 엄마의 부재를 의식할 겨를도 없었다.

“어느 날 문득 엄마가 고맙더라. 엄마가 살아 계셨으면 널 빼앗겼겠지. 그렇게 널 돌볼 수 없었겠지. 죽어서 널 온전히 나한테 주고 간 엄마가 고마웠어. 아, 내가 제정신이 아니구나. 그때 깨달았어.”

그의 담담한 말에 놀라 눈이 크게 떠졌다. 놀라는 내 얼굴을 보지 않으려고 형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널 원하는 내가 무서워서, 더러워서, 미칠 것만 같았어.”

말을 하면서도 저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고 벌줘야 한다는 자괴가 들끓었다. 그의 눈이 생살을 칼질할 도구를 찾는 것처럼 번득였다.

그때마다 자기 자신을 죽였다고 했다. 수백 번 생을 끊어도 또 같은 것을 원하는 진절머리 나는 욕망에 그는 그다음의 삶을 끊고, 그래도 같은 것을 욕망하는 생을 그때마다 죽이려고 했다.

제정신이 아닌 형의 고백보다 내가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인간인가 하는 의심이 먼저 들었다.

나는 형이 스스로를 벌줄 만큼 대단한 인간이 아니었다.

“모르겠어. 도대체 형이 무슨 말을 하는지, 나는 도대체…….”

가슴팍을 단단한 끈으로 꽉 조여 맨 것처럼 아팠다.

온몸을 죄어 오는 답답함에 갈비뼈가 우지끈 부러지는 것만 같았다. 손바닥으로 흉곽을 꽉 내리눌렀다. 호흡이 점점 가빠져 왔다.

“……허윽.”

가슴의 옷자락을 세게 움켜잡았다. 누가 목구멍을 틀어막은 것처럼 숨이 헐떡거렸다. 안색이 파리해진 형이 나에게 득달같이 달려왔다.

“준영아, 왜 그래? 숨 막혀? 숨 안 쉬어져?”

“허윽……!”

갑자기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공기를 빨아들이는데 폐가 자꾸만 쪼그라들었다. 내 상태를 살피던 그가 급하게 밖으로 뛰쳐나갔다.

“허억, 허억, 허윽, 윽!”

아무리 호흡을 들이마셔도 숨이 막혔다. 뇌수가 흔들리고 시야가 흐려졌다.

헐떡거리고 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뛰쳐나갔던 형이 벌컥 문을 열고 돌아왔다. 그의 손에 비닐봉지가 들려 있었다.

내 입가에 봉투를 대고 휘청거리는 나를 부축했다. 그가 다급한 어조로 숨을 쉬고 있는 나에게 자꾸만 숨을 쉬라고 재촉한다.

“진정해. 진정하고 천천히 내쉬어!”

형이 입을 비닐로 틀어막아 더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죽을 것 같아 나도 모르게 비키라고 치우라고 헐떡이며 그를 밀치려고 버둥거렸다.

“가만히 있어! 진정하고 숨 쉬어 봐. 내쉬어 봐, 어서!”

형이 완강하게 나를 옭아매고 숨을 쉴 수 있게 봉투를 다시 대 주었다.

호흡이 끊어질 것처럼 가슴이 아려 왔다. 그의 말대로 깊게 호흡을 내뱉어 봉투를 부풀리고 숨을 들이마셔 봉투의 부피를 줄였다. 봉투가 커졌다가 작아지기를 반복했다.

억지로 호흡을 내쉬자 헐떡거림이 차츰 잦아들었다.

“……다 나은 줄 알았는데.”

염려 가득한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며 잦아드는 호흡에 파르르 떨리는 등줄기를 큰 손이 쓸어 주었다.

후우, 후우, 봉지에 대고 숨을 쉬며 그를 응시했다. 거칠었던 숨결이 한층 안정되었다. 늑골이 휘는 것처럼 아프던 가슴도 편안해졌다.

그에게 쓰러지듯 기댔다. 우리가 왜 이렇게 서로 괴로워해야 하는 거냐고 물었다. 내 눈빛을 읽은 형이 입가에 댄 봉투를 치웠다.

“하아, 하아, 하아…….”

“일 년만.”

“…….”

“일 년만 줘. 일 년만 갖게 해 줘. 이해 안 가고 용서 못 하겠는 거 알아. 그러니까 일 년만. 그 후엔 내가 없어져 줄게. 다시는 네 눈에 띄지 않을게.”

“…….”

“일 년만 너 가질 수 있게 해 줘.”

멍청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형은 금방이라도 녹아 사라지려고 하는 소금 인형처럼 보였다. 파도의 포말에 부딪혀 조금씩 녹아 없어지는 하얀 소금 덩어리는 자신이 녹아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너는 그렇게 살면 돼.”

나는 대답하지 않고 입술을 깨물었다.

✦ ✧ ✦

밤늦게 귀가한 아버지가 우리를 불러 내렸다.

전혀 불편해 보이지 않는 형의 걸음을 주시했다. 오른쪽 넓적다리 위를 가르는 자상을 직접 목격하지 않았으면 부상을 전혀 눈치채지 못할 온전한 걸음걸이였다.

“다녀오셨어요.”

아버지는 재킷을 벗어 윤 차장에게 건넸다. 나는 그에게 인사하고 맞은편 소파에 앉았다.

형도 내 옆에 앉았다. 나도 모르게 자세를 고치듯 엉덩이를 들어 그에게서 한 걸음 떨어졌다. 형의 눈이 흘긋 내 옆모습을 훑는 게 느껴졌다.

“준원이가 직접 가르치기로 했다고. 물 좀 한 잔 갖다 주지.”

아버지가 마주 앉으며 우리에게 말하고 윤 차장에게 고개를 돌렸다. 윤 차장은 아버지의 재킷을 툭툭 털어 소파에 걸쳐 놓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아버지는 가부장적인 사람이었다. 가족의 생활을 책임지는 게 가장의 역할이라면 그는 훌륭하게 자신의 책임을 수행하는 가장이었다. 돈으로 우리를 고달프게 한 적은 없었다.

윤 차장에게도 생활비를 넉넉하게 주는 것 같았다. 그녀는 이전에 살림을 해 본 적 없었고, 우리가 사는 집은 이 주변에서 제일 큰 단독 주택이었다. 아버지는 살림에 서툴러 동동거리며 집 안을 돌아다니는 윤 차장을 볼 때마다 가사 도우미를 쓰라고 했지만 그녀는 괜찮다고 한사코 거절했다.

윤 차장은 아기자기하게 집을 가꾸는 일을 좋아하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형과 나에게 문제가 없었으면 아마 우리는 서먹하더라도 한 식구가 되어 평온하게 지냈을지도 모른다.

“준영이 내신이 생각보다 안 좋아요. 수시로 같은 학교는 불가능합니다. 정시에 집중하는 수밖에 없어요.”

무릎에 두 팔을 기댄 형이 입시 전문가처럼 말했다.

“꼭 같은 학교일 필요는 없어. 준영이는 준영이 그릇대로 살면 되고, 너는 네 그릇대로 살면 되지.”

철들고 난 이후로 동생을 무시하고 외면하던 형이 갑자기 마음을 바꾸어 살뜰하게 나를 보살피겠다는 의지를 피력하자 아버지는 내심 반가운 눈치였다.

“아버지가 이런 말 했다고 준영이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고.”

“…….”

윤 차장이 아버지에게 물을 가져다주었다. 그녀는 아버지의 곁에 앉아 나를 바라보며 말은 저렇게 해도 널 사랑하는 거라고, 흐릿한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에 화답하지 않고 나는 어색하게 시선을 돌렸다.

형의 존재로 잘난 자식 가진 아버지가 누릴 수 있는 영달이란 영달은 부족하지 않게 누려 온 덕분에 나에 대한 아버지의 기대치는 형보다 한참 낮았고, 그것은 내게도 다행스러운 일이라 섭섭하게 여긴 적은 없었다.

“학원에만 맡겨 두는 게 영 탐탁지가 않았는데, 준원이 네가 이제 챙긴다니까 마음이 놓인다. 준영이 가고 싶은 학교는 있는 거냐? 하고 싶은 공부는?”

“…….”

소원해지는 우리 둘 사이가 신경이 쓰이기는 했었는지, 아버지는 한시름 앓고 있던 걱정을 내려놓는 얼굴로 나와 형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학교는 막연히 형과 같은 학교를 원하지만, 현재로서는 그의 말처럼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지금 같은 상황이면 같은 학교에 붙어도 가고 싶지 않았다.

“차차 준비시키겠습니다.”

길지 않은 형의 대답에 오히려 아버지는 안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든 다 알아서 하라는 뜻이었다. 형이 아버지에게 받는 신뢰의 크기만큼 내 가슴은 무거워졌다.

아버지는 지갑을 꺼내 카드를 한 장 뽑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고집 피우지 말고 필요한 거 있으면 이걸로 사. 책이든 문제집이든, 입시 컨설팅 같은 것도 한번 받아 보고.”

“제가 알아서 할게요.”

“당장 필요 없어도 그냥 넣어 둬.”

아버지가 재차 권했다.

나는 형을 돌아보았다. 필요 없어도 그냥 챙기라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가 눈짓을 알아듣지 못하고 나를 바라보기만 했다.

아버지가 테이블 위에 올려 둔 카드를 내가 쓱 당겨 형에게 내밀었다.

“그래, 이 녀석아. 아버지가 자식 지원하는 게 당연한 거지, 무슨 빚지는 것처럼 어려워해. 하하.”

“거봐요, 준원이보다 준영이 수완이 더 좋다니까요.”

아버지와 윤 차장이 카드를 챙기는 내 모습이 귀엽다는 양 웃었다.

나와 형은 가족으로 모여 앉아 짓는 웃음에 동참하지 않았다.

“안 써. 필요 없다니까.”

“왜 안 써? 형도 아직 학생이고 아버지 말씀처럼 부모가 자식 지원하는 거 당연한 일이잖아.”

아버지에게 받은 카드를 그에게 내밀었다. 형은 본 체도 하지 않았다.

“안 쓴다고. 필요 없어.”

“그럼 내가 가지고 있을게.”

나는 아버지에게 넉넉한 용돈을 받고 있었다.

용돈은 주로 편의점이나 분식집, 프랜차이즈 햄버거 가게에서 학원 수업 시작하기 전에 저녁 먹는 용도로만 썼다.

나도, 그리고 대학생인 형도 아직은 어린 나이였다. 형이 왜 아버지의 돈을 한사코 거절하는지 예전에는 이유를 몰랐다.

독립심이 강해 생긴 단순한 고집일 거라고, 어쨌든 본인이 능력이 되니까 아버지의 참견과 간섭을 받느니 자립하겠다는 계산적인 속내일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여겼다.

그런데 지금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내게 품은 옳지 않은 마음 때문에 형은 아버지에게 부채감을 가지는 것이었다.

아버지가 만들어 놓은 가정, 아버지의 피와 살이 만들어 놓은 나와 형, 아버지가 창조한 천륜을 어기고 있다는 미안함, 그의 아들이 그의 아버지가 만든 가정을 파괴하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었다. 형은 혈연의 붕괴를 누구보다 바라고 있었다.

“오늘은 늦었으니까 내일부터 공부 시작하자. 학교 끝나는 시간에 맞춰서 데리러 갈게.”

“그렇게까지 할 필요 없어. 버스 타고 오면 돼.”

“그냥 내가 그러고 싶어.”

“내가 도망갈까 봐 그래?”

“…….”

형은 내 눈을 피했다. 사실이라는 뜻이었다.

“형 바쁘잖아. 학교는 어떡할 건데. 형도 곧 시험 보지 않아?”

“그런 건 너 학교 가 있는 동안 하면 돼. 공부도 그때 할 거고.”

“밴드는? 일주일에 한 번씩 공연하는 건 안 해도 괜찮아? 연습도 해야 할 거 아냐.”

“너 수능 보기 전까지는 안 할 거야. 일 년 동안 다른 건 안 해.”

“…….”

나의 일 년을 달라고 했다. 갖게 해 달라고 애원했다. 그 일 년 동안 다른 일을 할 여유 따위는 없다는 뜻이었다. 형은 가능하다고 하면 학교도 휴학할 기세였다.

거절하면 형은 또 자신을 죽이려고 들 것이다. 몸에 상처를 만들고 그 상처를 봉합해 가면서.

그의 치료는 잘못되어 있었다. 생살이 오르기 전에 째고, 고름이 되어 썩어 가는 것을 도리어 반겼다.

형을 그 상태로 둘 수 없었다.

말없이 서 있는 나에게 그가 말했다.

“같은 대학으로 와.”

“그게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잖아.”

“내가 되게 만들 거야. 그럼 같은 대학으로 올래?”

“……싫어.”

그를 김빠지게 하는 소리를 나지막이 그러나 단호하게 내뱉었다.

그는 실망한 눈치였다. 형은 고집을 피우는 나에게 작은 한숨을 쉬고 입을 열었다.

“나 때문에 오라는 거 아니야.”

“그게 아니면 뭔데.”

“제도 교육의 커리큘럼이 인간성을 만드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너를 다른 세상에서 살게 해 줄 수는 있어. 우습게 보지 마. 밥 잘 먹고 사람들이 할 일 없어서 사교육에 돈을 그냥 처바르는 거 아니니까.”

내가 갖고 싶어서, 그럴 때마다 몸에 자해를 해 온 인간의 잔소리에는 그 어떤 무게감도 없다는 걸 본인은 모르는 모양이었다.

“그 훌륭한 커리큘럼이 인간성을 만들지 못한다는 거 하나는 정확하게 알겠어. 그래서 별로 가고 싶지 않아. 그리고 지금 이런 성적으로는 어차피 못 가.”

“미리 포기하지 말고 목표라도 높게 잡아.”

못 갈 것 같아서 미리 약을 치는 내 꼼수를 읽어 내고 형이 웃으며 말했다.

나는 그의 웃음을 피했다.

“나 이만 쉴래. 형도 가서 쉬어.”

“그래.”

방문을 등 뒤에 두고 돌아서다 말고 내 처분을 기다리고 서 있는 그를 바라보았다.

“그럼 임주호는 뭐였어?”

“뭐?”

“그 상처……, 나 때문에 생긴 거라며. 그런데 임주호는 뭐야? 내 대타 같은 거야?”

“……대타?”

“친동생한테는 손 못 대니까 날 조금이라도 닮은 우리 반 애랑……, 그런 짓을 한 거야?”

“걔가 널 닮았다고?”

대체 어디가 어떻게 뭘 닮았다는 거야?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는지 그는 잘 기억나지 않는 얼굴을 떠올리듯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때는, 그 새끼랑 뒹굴 때는 자해하고 싶지 않았지?”

“…….”

형은 내가 임주호를 질투하고 있는 것처럼 말했다.

사실이 아닌데, 조급하게 내뱉는 말들이 내 귀에도 전부 그렇게 들렸다.

나는 임주호를 질투하고 있었다.

나의 형과 털끝이라도 닿았던 놈의 살과 뼈를 질투하고 있었다. 옳지 않은데 그런 감정이 드는 것까지 내가 어떻게 억누를 수는 없었다.

“임주호 귀가 엄청 가려울 것 같은데.”

“또 자해하고 싶어지면……, 그땐 어떻게 할 거야? 임주호한테 갈 거야? 걔는 사귀는 애 있어. 졸업하면 조폭이 된대. 싸움을 엄청 잘하는 깡패 같은 놈하고 사귀어.”

“…….”

“그리고 임주호 걔는 미성년자야.”

“……너도 미성년이야.”

형은 이런 말을 하는 내가 압살시켜 버리고 싶을 정도로 귀엽다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뭔가를 참지 못하고 주먹을 꽉 쥐고 있었다.

“걔는 나보다 생일 더 늦어. 나보다 더 미성년자야.”

“알았어. 안 만날게.”

“적어도 일 년은, 앞으로 일 년은 절대로 다른 사람하고 얽히지 마.”

그에게 일 년을 주지 않으면 형은 자해를 하고 임주호를 만나러 갈지도 모른다.

그가 제안한 일 년을 수락하는 내 말에 형의 가슴이 크게 부풀었다. 믿기지 않는다는 듯 숨을 가득 들이마셨다가 천천히 내뱉어 부푼 가슴을 가라앉힌다.

“그럴게.”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약속했다.

“형이 형을 아프게 하는 거……, 싫어. 형이 다른 누구하고 그러는 것도 싫어. 정말 싫어. 다 싫어.”

이런 고뇌를 안겨 준 그가 원망스러웠다.

“앞으로는 안 할게. 절대로.”

“정말이지? 약속해. 다시는 그러지 않을 거라고 맹세해.”

“다시는 안 그럴게. 맹세해.”

“하늘에 대고 맹세해.”

“알았어. 하늘에 대고 맹세할게. 돌아가신 엄마 이름을 걸고 맹세할게.”

형은 내가 무슨 말을 하면 당장 다 들어줄 것처럼 맹세했다.

내가 그토록 좋아하던 형이, 나를 싫어한다 여기고 귀찮게 여긴다 생각해서 더욱 조바심을 치게 했던 형이,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 나를 염원했으며, 외면하던 시절에는 그 염원하는 마음을 각고의 노력으로 누르고 있었다는 사실이 무섭게까지 느껴졌다.

타의 모범이 되고 누군가의 선망이 되는 그의 비틀리고 구부러져 형체를 알 수 없는 정신세계에 대고 다른 이에게 눈길도 손길도 주지 말라고 하는 나도 제정신이 아니기는 마찬가지였다.

형이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같이 샤워할까?”

“…….”

“어릴 때 늘 같이 씻었잖아.”

형이 나를 다른 존재로 자각한 후로 우리는 같이 목욕하지 않았다. 그것도 벌써 몇 년이나 지난 일이었다.

망설이는 내 팔을 잡아 방 안에 있는 욕실로 이끌었다. 나는 싫다, 좋다 무슨 말도 하지 못하고 그의 뒤를 따라갔다.

그가 자연스럽게 메인 전등을 끄고 간접 등만 켜서 욕실 안을 어둡게 만들었다.

우리는 대화 없이 옷을 벗었다. 나는 미적거리며 단추를 풀었다.

형이 상의를 벗었다. 간접 등의 여린 불빛으로는 몸의 상처가 잘 보이지 않았다. 생살을 난도질한 자국을 보면 내가 또 상처받을 거라고 여기는 모양이었다. 일부러 보여 주지 않으려고 욕실을 어둡게 만들었다.

형은 바지와 속옷도 벗어 발목에 걸리는 옷을 털어 내듯 치우고 나에게 다가온다. 어둑한 속에서도 큰 상처는 보였다. 이미 몇 번이나 봤는데도 그의 몸에 돋아난 상처를 보면 같은 강도로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고, 가슴이 비틀리듯 아팠다.

“……내가 할게.”

“도와줄게.”

나는 애도 아니었고 옷을 벗는 데 형의 도움 따위는 필요 없었다.

어릴 때 해 주던 것처럼 그가 내 옷을 벗겼다. 셔츠를 어깨 너머로 벗기고 바지 버클을 풀어 속옷 밴드와 함께 쥐고 끌어 내렸다.

형의 시선이 나의 사타구니로 향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의 눈동자가 향하는 곳을 의식하는 내 몸짓에 형의 시선이 다른 곳으로 옮겨 갔다.

“…….”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주변이 조용해서 그런지 더욱 도드라지는 적요였다. 작은 움직임조차 선명하게 들려왔다.

나는 그곳에 털이 없었다. 몸이 아프거나 이상이 있는 증세는 아니었고, 그냥 남보다 현격하게 체모가 적을 뿐이었다. 그것이 은근한 콤플렉스라 속옷까지 탈의해야 하는 곳에는 가능한 한 가지 않았다.

쳐다보지 말라고 몸을 비틀었으면서 내 시선은 옷을 벗어 내린 형의 중심에 자꾸만 닿았다.

우리는 슬쩍슬쩍 서로를 넘겨다보았다.

남과 비교해도 그는 체모가 짙고 풍성한 편이었다. 나중에 여자 친구를 사귀게 되어 잠자리를 갖게 된다면 이 밋밋한 하체를 그녀에게 해명해야 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고 고민한 적이 있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상대가 형이라 그에게 이런 내 꼴을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다만 형의 짙은 체모와 배꼽노리까지 올라오는 거웃의 모양이 없어 보이다 못해 곤궁하기까지 한 나와 비교가 되어 똑바로 서 있을 수가 없었다.

그에게 등을 보이고 엉거주춤 서서 어색한 입술을 열었다.

“형 다리 상처에 물 닿으면 안 되지 않아?”

“괜찮아. 방수로 된 밴드 붙였어.”

으응, 하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형은 수전을 틀어 온수를 확인하고 타월에 비누 거품을 잔뜩 만들어 내 등부터 닦아 주었다.

그의 손이 팔 한쪽을 들고 겨드랑이와 옆구리를 따라 주욱 쓸어내리기도 했고 등골을 쓸어내리기도 했다.

나는 혼나는 아이처럼 가만히 서서 나의 허벅지 사이로 미끄러져 들어올 남자의 손을 경계하고 있었다.

상체를 닦은 손이 천연스럽게 하체로 미끄러질 때 흠칫하며 다리 사이를 오므렸다.

“간지러워?”

“아니, 별로. 그냥 조금…….”

“깨끗하게 전부 닦아야지.”

“…….”

동생에게 하는 말인지 연인에게 하는 말인지 헷갈리는 음색이었다.

등 뒤로 바짝 다가온 그의 두 팔이 나를 감싸듯 안았다. 그가 턱을 내 어깨에 걸치고 그대로 손을 내려 가랑이 사이로 넣었다. 손에는 타월 대신 거품이 잔뜩 묻어 있었다.

등줄기가 움찔했다. 미끄러지듯 아래를 파고들어 온 손이 사타구니를 문지르며 닦아 주었다.

“……털이 없어서 이상하지 않아? 징그럽지?”

형은 아무런 암시를 하지 않는데 나는 혼자 괜히 위축되어 중얼거렸다.

“아니. 귀여운데. 깨끗해 보여.”

내 일 년을 보장받은 그가 순수한 웃음을 지었다.

형의 손이 아프지 않게 성기를 문질렀다. 흠칫, 그저 씻겨 주고 있을 뿐인데 하체가 반응하며 살이 차올랐다. 아래쪽이 흠칫거리며 본능적으로 파고드는 듯한 손을 피하려고 했다.

“하아……, 형, 내가, 이제 내가 할게. 내가 할 수 있어.”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의 손을 붙잡아 치우려고 했지만 말을 듣지 않았다.

어깨에 걸친 턱에 힘을 주어 누르며 벗어나려 하는 나를 저지하고 그는 신중한 표정으로 몸을 닦아 주었다. 뺨에 닿는 숨소리가 어느 순간부터 흐트러져 있었다.

“이제 내가……, 내가 할게.”

“싫어. 닦아 주고 싶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만, 그만해. 내가 할게. 내가 할 수 있어.”

“너 할 수 있는 거 알아.”

일 년 후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살 수 있을까.

형을 안 보고 살 수 있을까.

앞을 만지던 손이 뒤를 향했다. 잔 허리께를 따라 엉덩이를 만져 온다. 골을 가르고 들어온 손이 회음과 비부를 손끝으로 진하게 문질렀다.

“읏…….”

그가 천치처럼 삽입할 구멍을 찾지 못하고 살만 처덕거리던 비부 위쪽에 손이 닿았다. 한기가 일며 머리털이 곤두섰다.

“……으응, 읏, 형, 형, 잠깐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살 수 없다.

일 년 후에 무엇이 올지 아무도 모르지만 뭐가 되었든 내가 엉망진창이 되리라는 건 분명해 보였다.

그는 반편이가 아니었다. 형의 손이 앞과 뒤를 만져 주었다. 무릎이 푹푹 꺾이고 똑바로 서 있을 수가 없었다.

손으로 벽을 다급하게 짚었다. 형의 하체가 자신이 만지고 있는 비부 위로 다가와 비벼졌다. 젖은 살이 찰싹 부딪치며 마찰했다.

“……하아, 준영아. 준영아. 기분 좋아. 하아, 씨발, 미칠 것 같아.”

부풀어 터질 것 같은 형의 성기가 엉덩이골에 빠듯하게 끼었다. 그가 뒤에서 밀어붙일 때마다 찰박거리고 바닥을 디딘 걸음이 앞으로 쏠렸다. 뺨과 가슴이 샤워 부스 간유리에 닿아 희멀건 살이 일렁였다.

“읏, 형, 그거……, 아 그거, 싫어. 잠깐만.”

“안 넣을게. 걱정하지 마.”

“무서워. 나 무서워.”

“안 할게. 걱정하지 마.”

걱정하지 말라면서 사람을 걱정하게 만드는, 아니, 두렵게 만드는 거친 육성이 귓가에 속삭였다. 마주 닿는 뺨이 뜨거웠다.

그의 한 팔이 내 허리를 부둥켜안고 한 팔이 벽을 짚었다. 질퍽거리며 부딪치고 비벼지는 살덩어리가 불에 지진 쇠처럼 뜨거웠다.

일 년, 일 년 동안……. 형하고 이런 짓을 해도 괜찮을까.

형의 말대로 일 년, 그리고 그 이후에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렇게 없었던 일로 치부하고 살 수는 없을 거라고, 그가 시한부의 생을 예고했다는 걸 축축하게 젖어 드는 쾌감으로 깨우쳤다. 뇌가 망연해져 왔다.

“아아, 아, 흐읏……!”

다리 사이로 그의 뜨거움이 흘러내렸다. 형의 손에 사정해 버린 액이 질척한 비누 거품에 녹아내린 이성이 되어 섞여들었다.

✦ ✧ ✦

며칠이 지나고 나서야 형이 작업실에도 나가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형의 방에 아버지가 허락하지 않는 기타가 놓여 있었다.

형은 착실하게 내 공부를 봐주었다. 머리가 좋은 사람들은 사고가 일반 사람하고 다르다고 하더니, 그의 경우가 그랬다. 형의 두뇌는 쉬지 않고 움직이는 정교한 기계 같았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아. 적분이고 미분이고 말이 어려울 뿐이지. 이런 유형 어떻게 푸는 건지 이제 이해가 돼?”

수학에서 승부를 보지 않으면 나는 형와 같은 학교에 갈 수 없었다.

혼자 풀 때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데 형의 설명을 듣다 보면 너무나 쉽게 풀렸다. 그는 좁은 입구를 유연하게 통과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문제는 형이 하나를 가르쳐 주면 내가 그 하나밖에 모른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가 풀어놓은 수식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습관처럼 엄지손톱을 입안에 물고 뚝뚝 씹어 댔다.

“뭐가 맛있다고 자꾸 물어뜯어.”

그가 내 왼손을 잡아 내렸다. 그를 돌아보았다.

“…….”

“…….”

형과 눈이 마주치는 하찮은 우연이 이전처럼 쉽지 않았다. 우리는 어느 날은 연인이었고, 어느 날은 형제였다.

서둘러 시선을 도로 노트로 내렸다. 뚫어져라 노트만 쳐다보는 내 얼굴을 단정한 눈매가 유심히 들여다보는 게 느껴졌다. 그의 눈길이 닿는 이마와 뺨이 따가웠다. 눈총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말이 아닌듯했다.

꿈질대며 모르는 척하고 있는데 형의 손이 내 머리칼과 뺨을 동시에 쓸어내렸다.

“똥 마려운 강아지 같아. 귀여워.”

“…….”

거짓말처럼 까맣게 잊고 있다가도 이렇게 그와 접촉하게 되면 긴장으로 목덜미가 뻣뻣해졌다.

“오늘은 그만할까? 꽤 많이 했는데.”

“아, 응. 오늘은 여기까지 하지 뭐.”

그의 제안을 덥석 받아들였다.

책을 덮고 고개를 들어 시간을 보니 어느새 새벽 한 시가 넘었다. 학원보다 훨씬 빠른 진도로 훨씬 많은 양을 매일 그와 소화했다.

나는 공부를 잘하는 쪽이었지만 즐기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형과 공부하면 지겹기만 하던 수학과 물리에 흥미가 생겼고 더 알고 싶은 탐구욕이 치솟았다. 그가 공부를 가르쳐 주면 더디게만 흐르는 시간도 무척 빠르게 흘렀다.

“나 이만 가서 잘게.”

그의 책상을 대충 정리하고 일어섰다. 형의 눈이 나를 따라왔다.

“잠깐 있다가 가.”

그는 나를 부드러운 악력으로 쥐고 놓아주지 않았다.

“벌써 한 시 넘었는데……, 형도 내일 아침에 수업 있잖아.”

“조금만.”

그에게 일 년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나는 엉거주춤 도로 앉았다. 차라리 공부를 계속하는 편이 나았다. 형과 침묵하고 앉아 있는 시간이 어색하고 불편했다.

“다음 주에 모의고사 본대.”

나는 아무 말이나 내뱉었다.

“알아. 봤어.”

수능 보기 전에 치는 마지막 모의고사였다. 이 시험을 망치면 그 불운의 기운이 수능까지 이어질 수 있었다. 그만큼 중요한 모의고사라 형도 예민하게 신경 쓰는 모양이었다.

나보다 내 학사 일정을 더 잘 알고 있는 사람이 형이었다. 그는 수능이 며칠 남았는지 수험생인 나보다 더 세심하게 세고 있었다.

겸연쩍게 앉아 있는 나를 단단한 두 팔이 끌어안았다. 그가 숨을 들이켜자 등에 닿는 가슴이 부풀어 오르는 게 느껴졌다. 우드 계열의 형 특유의 숨결이 나의 냄새를 맡고 있었다.

“나한테 무슨 냄새 나?”

“응?”

“맨날 내 냄새 맡잖아. 무슨 냄새 나?”

“아무 냄새도 안 나는데. 좋은 냄새……, 아기 준영이 냄새.”

이제 코밑에 수염이 나려고 하는 나에게 아기라니, 이러는 걸 보면 정말 제정신이 아닌 거다. 겸연쩍게 앞머리를 쓱쓱 만져 내리자 따스한 손 갈퀴가 반대로 쓸어 넘겨 이마를 드러나게 했다.

“나도 향수 뿌릴까. 향수 뿌리는 애들도 있어.”

그가 보내는 성적인 신호를 받지 않으려고 아무리 말을 돌려도 형은 막무가내였다.

형의 입술이 목에 닿았다. 쪽쪽, 입을 맞추고 뺨에도 뽀뽀를 한다. 어깨가 저절로 움츠러들었다.

“그런 거 뿌리지 마. 그냥 이대로가 좋아.”

“…….”

그에게 사랑받는 일이 싫지 않았다. 외면하고 반목하던 형의 관심이 나에게 온통 쏠려 있었고, 형의 입술이 살갗에 닿으면 가슴이 뜨거워지고 심박이 빨라졌다.

그래서 일 년 후가 두려웠다. 그와 무엇도 될 수 없는 그 이후의 시간이 두려워 미칠 것만 같았다. 무엇보다 두려운 것은 내 앞에서 사라지겠다고 했던 그의 약속이었다.

그가 뭘 원하는지 알면서 모르는 척하고 완곡하게 형을 거절했다.

“나 피곤해서 이만 잘래.”

“잠깐만. 십 분만 이렇게 있자.”

나를 품에 가두고 안식하는 남자의 숨이 어깨 위로 하얗게 부서져 내렸다.

목에 닿는 입술을 피해 고개를 기울이자 그의 눈동자가 뺨을 간질였다.

“……나하고 닿는 거 싫어?”

“…….”

싫지 않다. 싫지 않아서 무서운 거다. 두려운 것이다.

그의 두 팔이 느슨해지는 틈을 타 일어섰다. 이제 자겠다고 돌아보지 않고 도망치듯 나가려는데 형의 손이 나보다 훨씬 더 빨랐다. 열린 문을 어깨 너머에서 건너온 팔이 그대로 눌러 닫아 버린다.

나는 닫히는 문을 막막하게 바라보았다.

“조금만 더 있어. 십 분만.”

그냥 가 버리지 말라고 부탁하는 담담한 음성에 그를 돌아보았다.

대체 어쩌라는 것인지, 내가 형을 향한 성애의 감정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게 되면 우리는 어떻게 되는 것인지 그에게 묻고 싶었다.

“키스해 주면 보내 줄게.”

“그냥 갈 거야. 문 열고 나가면 돼.”

“나한테 일 년 주기로 약속했잖아. 잊어버렸어?”

“안 잊어버렸어.”

“잊어버린 것처럼 행동하길래.”

점점 간격을 좁혀 다가오며 형의 목소리도 다가올수록 작아졌다.

키스할 것처럼 바짝 다가와 놓고 닿지는 않는다. 숨이 느껴지는 거리까지 다가와서는 가만히 있는 그를 향해 시선을 들었다가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나를 또렷하게 주시하는 그와 눈이 정면에서 마주쳐 버렸다.

“……안 잊어버렸어.”

“안 잊어버렸으면 약속 지켜.”

나는 질끈 눈을 감고 그를 향해 턱을 들었다. 형의 입술에 촉, 소리가 나게 입술을 부딪치고 바로 떨어졌다.

이런 내가 가소롭다는 듯, 귀엽다는 듯 형의 입술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은근하게 띠었다. 용기를 쥐어짜 한 짓인데 그의 반응이 나를 수치스럽게 만들었다. 윽, 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빨개진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됐지. 이제 문 열고 나간다.”

“눈 감아 봐. 준영아. 형이 키스하는 방법 가르쳐 줬잖아.”

음성이 다정하다.

형이 다정하게 속삭일 때마다 은근한 악력으로 내 팔을 움켜쥘 때마다 심장이 덜컹 떨리고 가슴이 터질 듯 두근거렸다. 좋지 않은 증상이었다.

가슴이 벌렁거려 나는 오만상을 찡그리고 눈을 꽉 감았다.

아른거리는 그림자가 눈앞에서 일렁이더니 촉촉한 살이 입술에 닿았다. 가볍게 내 입술을 겹치듯 물었다가 놓아주고 좀 더 깊게 물었다가 놓아준다. 움츠러들었던 목이 펴지고 그의 입술에 더욱 닿고 싶어 턱이 저절로 치켜졌다.

부드럽게 쪼아 물던 입술이 갑자기 무례하게 느껴질 정도로 틈새를 벌리고 들어와 혀를 불쑥 밀어 넣었다.

“흐응……!”

나는 이상한 소리를 내며 당혹스럽게 형의 옷자락을 움켜잡았다.

그는 곧장 얼굴 각도를 가파르게 꺾어 견고하게 입술을 맞물리게 한다. 뜨겁고 축축한 혀가 내 혀를 빨기 시작했다. 안쪽을 휘도는 살덩어리의 움직임을 쫓아 다급하게 목구멍에 고이는 침을 삼켜 댔다.

숨이 차오르고 가빠져 왔다. 바짝 다가온 가슴팍 옷자락을 세게 틀어쥐고 눈을 꽉 감았다.

“흐응, 으응…….”

호흡이 딸려 다급하게 내쉬는 숨소리가 신음처럼 들려왔다. 파고드는 혀와 숨소리가 빨라졌다. 벽으로 나를 몰아붙이고 저돌적으로 입술을 문질렀다.

“으읍, 읏, 하아읏.”

숨 쉴 틈이 없었다.

질척질척한 소리가 날 정도로 내 안을 빨고 비벼 대는 젖은 살의 뭉클거림에 혼이 빠질 지경이었다. 아래에서 위로 움직이는 그의 고개를 따라 턱이 젖혀졌다. 숨결을 삼키는 그의 가슴이 들썩였다.

“으음, 으으…….”

움켜쥔 옷자락을 놓고 그의 어깨를 쓸어안았다. 단단하고 너른 어깨를 안고 그의 목을 두 팔로 감쌌다.

형에게 완전히 매달린 꼴이었다. 내 허리를 감아 안은 팔이 불쑥불쑥 나의 체중을 들어 올려 겹친 입술을 진하게 물어뜯었다. 그에게 심하게 빨린 아랫입술에 아릿한 통증이 느껴졌다.

정신없이 안쪽을 휘돌다 입천장을 핥고 나간 혀끝이 이를 간질이고 젖어 오는 표피를 간질인다. 자늑자늑하게 빨던 촉촉한 입술과 혀가 천천히 멀어졌다.

“하아, 하아…….”

생리적인 눈물이 고여 눈가가 흐릿했다. 가쁘게 숨을 고르며 나를 빤히 바라보는 형의 눈빛을 희미하게 확인했다.

“너무 늦었으니까 오늘은 여기까지.”

“……하아, 하아.”

그냥 키스일 뿐인데 좀처럼 진정이 되지 않았다. 틀어쥔 그의 어깨를 쉽사리 놓을 수 없었다.

목이 늘어져 버린 형의 티셔츠 안쪽으로 빗장뼈를 따라 길게 난 상처 자국이 보였다.

고개를 숙여 그의 상처에 입술을 댔다. 마찰하듯 비벼져 바짝 열이 오른 입술의 온도를 서늘한 체온으로 가라앉혔다.

“…….”

고개를 저어 입술을 문질렀다. 형의 어깨에 입술 살을 묻은 채 오래도록 달아오른 열을 식혔다.

✦ ✧ ✦

형이 나를 무시하던 때도 불편했던 아침 식사 자리지만 무시하지 않는 지금도 몹시 불편한 것이 아침 식사였다.

늦게 귀가하거나 아예 귀가하지 않는 날이 더 많았던 형은 내 공부를 봐주겠다고 약속한 후로 규칙적으로 일어나 함께 아침을 먹고 나를 학교까지 데려다주었다.

윤 차장과 아버지는 갑자기 바뀐 형의 모습에 적잖이 놀란 듯했다. 그는 원래 그랬다. 어릴 때는 더 심하게 다정했었다. 살뜰하게 나를 보살피는 모습은 자식 돌보는 엄마와 다를 바가 없었다.

어쨌든 나는 아버지와 시선이 마주쳐도 불편했고, 윤 차장을 바라봐도 괴로웠지만 무엇보다 나를 제일 괴롭게 하는 것은 형의 존재를 끊임없이 의식해야 하는 시간이었다.

그는 내 형이었다. 형을 가족으로 대하는 방법 자체를 잊어버린 것처럼 모든 상황이 낯설었다.

내 옆에 앉아 식사하던 그는 내 손이 닿지 않는 반찬을 가져와 한 가지 반찬으로만 꾸역꾸역 밥을 삼키는 내 밥그릇 위에 올려 주었다.

“둘 사이가 그렇게 좋았다고 하더니, 정말 그런가 봐요. 준원이 어쩜 그렇게 다정하니. 아버지 닮아서 영 무뚝뚝한 줄만 알았는데, 대체 당신은 누굴 닮은 거예요?”

살뜰하게 나를 챙기는 형을 보며 윤 차장은 우애 좋은 형제를 보는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나를 챙기는 형의 모습에 감탄한 불똥은 아버지에게 튀었다. 그녀로서는 아버지의 부하로 드문드문 형을 봤기 때문에 미처 알지 못하던 면모였을 거다. 아버지는 타박받아도 좋다는 듯 그저 뿌듯한 눈으로 우리 형제를 돌아보았다.

윤 차장이 새삼스럽게 놀라는 일도 창살처럼 나를 찌르는 것 중의 하나였다. 우리는 그녀의 눈에 보이는 것처럼 우애 좋은 형제가 아니었다.

형은 동생을 욕망하고 동생도 그런 형에게 동조하고 있었다.

어젯밤에도 우리는 문 뒤에 숨어 서로를 부둥켜안고 설사 연인 사이라도 하지 못할 뜨거운 입맞춤을 질리도록 했던 것이다.

“준원이 성격이 원래 그래. 그동안은 좀 바빴을 거고.”

아버지가 말했다. 아버지도 잘 알고 있었다. 그의 다정함을.

“사실 준영이는 준원이가 키운 거나 마찬가지야. 나는 한 게 없어.”

아버지는 혈육을 잘 돌보는 형을 칭찬했다. 형은 자신의 얘기에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그들의 대화가 불편했다. 빨리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어 급하게 먹는 나를 형이 나무랐다.

“천천히 좀 먹어. 아직 안 늦었어.”

등교 시간에 쫓기는 게 아니었다. 형과 벌이는 짓들이 그랬다. 떨치기 힘든 죄악감이 나를 안절부절못하게 했다.

“나 그냥 버스 타고 갈게. 안 데려다줘도 돼.”

“나도 어차피 나가는 길이야.”

밥그릇을 비우자마자 가방을 챙겨 일어났다. 그를 피해 먼저 나가려고 했지만 형이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우리는 아버지에게 인사를 하고 집을 나섰다. 내 가방은 형이 볼모처럼 들고 있었다. 그와 함께 다니게 된 후로 가방을 들어 본 기억이 없었다. 내 가방은 늘 그의 어깨에 묵직하게 자리했다.

“혼자 가도 돼. 여태 혼자 잘 다녔어.”

“그냥 타. 잔소리하지 말고.”

그와 같은 공간에 있는 것이 괴로웠다.

내 말의 진의를 알면서 형은 일말의 틈도 허락하지 않았다. 호흡의 통로를 모조리 차단하고 있었다. 나는 그의 입술을 통해서만 숨 쉴 수 있었다.

형이 내 가방을 가지고 차에 올랐다. 나는 터벅터벅 걸어 반대편으로 올라탔다.

문을 닫고 앉자 차가 앞으로 움직였다.

버스로도 몇 정거장 걸리지 않는 거리였다. 차로 다니면 더 가까웠다. 말없이 차창만 바라보고 있는 동안 어느새 학교 근처 한적한 거리에 차가 멈춰 섰다.

“학교 끝나면 곧장 이리로 와. 여기서 기다릴게.”

“알았어.”

가석방 중인 범죄자가 된 기분이 이럴 거라고 옅은 한숨과 함께 대답했다.

“잠깐만.”

내리려고 차 문고리를 쥐고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형이 안전띠를 풀고 다가왔다. 그의 입술이 나의 입술을 가볍게 물었다.

굳이 형과 해서가 아니라 다른 이와 키스를 했어도 나는 자연스럽게 눈을 감았을 것이다.

나는 눈을 감아 버렸다. 그의 키스에 반응하지 않고 미약하게 숨만 내쉬었다. 형의 입술은 감미롭고 부드러웠다. 그윽하고 깊이 있었다.

동생이 아니어도 공부하러 가는 학생에게 할 짓은 아니었다. 그의 키스는 공부하지 말고 온종일 제 생각에 빠져서 벗어나지 말라고 거는 주술과 비슷했다.

입안과 입술을 빨던 촉촉한 살이 멀어졌다. 흐릿하게 눈을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공부 열심히 하고.”

“……나 대학 떨어지면 전부 형 탓이야. 형이 책임져.”

“당연하지. 내가 다 책임질게.”

기꺼이 그렇게 하겠다는 양 빨갛게 젖은 입술이 호선을 그렸다.

차에서 내려 학교로 걸음을 옮겼다. 몇 걸음 걷다 말고 뒤를 돌아보았다. 형의 차가 아직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빨리 가라고 손을 흔들었다. 그의 차는 반응이 없었다.

가만히 쳐다보다 돌아섰다. 학교 말고는 갈 곳이 없는데 학교로 향하는 걸음을 감시당하는 기분으로 걸었다.

교문이 자리한 완만한 언덕을 걸어 올라갔다.

“강준영?”

부르는 음성에 고개를 돌렸다. 내가 입학한 해에 우리 학교에 부임한 국어 선생님이었다. 그녀는 지금도 1학년 국어를 맡고 있었고 나도 1학년 때 선생님의 수업을 들었다.

“안녕하세요.”

그녀에게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넸다.

“살기 싫어 죽겠는데 겨우겨우 사니? 걸음에 왜 그렇게 기운이 없어. 터덜터덜.”

선생님이 나의 걸음을 흉내 냈다. 진짜 도살장에 끌려가는 걸음이었다.

“제가 그렇게 걸었어요?”

“아주 바닥을 기어가겠더라.”

좋아서 뛰는 발랄한 걸음까지는 아니더라도 죽지 못해 사는 인간의 걸음으로 보였을 거라 생각하니 그 자리에서 떠나지 않고 오래도록 내 뒷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형의 차가 떠올랐다. 형의 눈에도 내 걸음이 그렇게 보였으리라. 불현듯 가슴이 답답해졌다.

“무슨 고민 있어?”

“네? 저요? 고민 같은 거 없는데.”

고3인 것 자체가 고통이고 고난인데 나는 뜨끔해 그런 거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나는 거짓말을 하고 시치미를 떼는 데 재주가 없었다.

“그냥 후회가 남지 않을 정도로만 해. 공부는 딱 그만큼만 하는 거야.”

선생님의 손이 내 팔을 토닥거렸다.

“시간 빠르다. 그 쪼그맣던 강준영이 벌써 3학년이라니. 키도 이렇게 훌쩍 크고.”

새삼스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격려하는 선생님에게 영혼 없는 대꾸를 했다.

“네……, 시간이 참 빨리 가는 것 같아요.”

그녀의 말대로 시간이 매우 빨리 지났다.

일 년은 그것보다 더 빨리 지나갈 거다.

일 년 후에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거지.

그는 내 눈앞에서 사라지겠다고 했다. 눈에 띄지 않겠다고 했다.

형제로 또 다른 무엇으로 완성할 수 없는 우리의 사이는 불투명한 희망보다 확실한 절망에 가까웠고, 형이 사라진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내 심장을 떨리게 할 정도로 두려운 일이었다.

“수능도 정말 얼마 안 남았구나.”

수능이나 대학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모든 생활의 고민은 뒷전으로 밀려나 오히려 그런 고민을 했던 평범한 시간이 아득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이제 곧 끝나니까 힘 좀 내! 알겠지? 이것도 다 지나가는 일이야. 나중에 보면 아무것도 아니다?”

“……아, 네.”

다른 잡념에 빠져 선생님이 무슨 말을 하는지 듣지 못했다. 대충 뭐 파이팅 하라는 그런 말 같았다. 나는 그러겠다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대답이 그래서 힘이 나겠어? 힘차게!”

“……하아, 선생님이 그러시니까 더 기운이 빠지는 것 같은데요.”

“어머, 미안. 내가 오버했지. 알았어. 아무튼 힘내자!”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은 선생님답게 밝은 웃음을 지으며 그녀는 억지로라도 힘내 보라고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고 먼저 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학생들이 그녀에게 다가가 우렁찬 인사를 건넸다.

남학생들에게 둘러싸여 왁자하게 멀어지는 선생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교사로 발을 옮기는 내 등을 누가 퍽, 때렸다. 무릎이 휘청했다. 엎어질 뻔한 중심을 가까스로 잡고 뒤를 돌아보았다.

“와, 시벌 우리 영이 역시 인기쟁이. 국어랑 무슨 얘길 그렇게 재미있게 했냐?”

“별 얘기 안 했는데.”

“별 얘기 안 하는 것 같지 않았는데? 국어가 너 편애하는 거 아니야? 지난번에도 뭐 사 주지 않았어?”

우연히 학원 근처 번화가에서 마주쳐 선생님에게 커피와 디저트를 얻어먹기는 했다. 그때도 혼자 있지 않았다. 같은 학원에 다니는 다른 녀석과 함께였다.

“명우도 그때 같이 얻어먹었는데 무슨 개소리야.”

“하, 역시 사람은 잘생기고 봐야 해. 그럼 자다가도 떡이 생겨.”

혼자 무슨 상상을 하는지 킬킬 웃으며 앞서 걷는 석주를 따라잡아 함께 교사로 향했다.

녀석의 잘생겼다는 말에 문득 뭔가가 떠올라 그를 돌아보고 물었다.

“너 우리 형 본 적 있지?”

“어? 너희 형? 강준원? 실제로는 못 봤지. 제일 가까이서 본 게 너 차에서 내릴 때. 차만 보고 얼굴은 못 봤지만. 왜?”

“우리 형 어떻게 생겼는지 몰라?”

“알아. 사진으로 본 적 있어. 중앙 계단 로비에 경시대회에서 대통령상 받을 때 너희 형이 장관하고 찍은 사진 아직도 걸려 있잖아.”

“우리 형 어떻게 생긴 것 같아?”

“뭐? 니네 형 어떻게 생겼는지를 왜 나한테 물어?”

“그러니까, 그게. 내 말은……, 우리 형 어떠냐고.”

내 눈에 우리 형은 잘생겼다. 미남이었다. 얇은 속쌍꺼풀이 진 눈매가 우수에 젖어 있어 무슨 고민이 있는 사람처럼 보였고, 미끈한 콧날과 그 아래 자리한 입술까지 적절한 곳에 적절하게 배치되어 균형미를 갖추고 있었다.

그는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 머리통 하나가 불쑥 올라오는 장신이었고 운동을 좋아하는 아버지를 닮아 생활형 근육이 단단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어릴 때 내게 스키 타는 법과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쳐 준 사람도 형이었다.

그의 몸에 남아 있는 자해의 흔적이 그가 갖춘 아름다움을 망가트리는 게 내 것이 아닌데도 안타까울 정도로 수려한 사람이었다.

형을 떠올리던 석주가 무엇에 수긍하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너희 형은……, 씨발, 존나 잘생겼지. 얼굴도 존나 잘생긴 편이지. 근데 분위기가 뭐랄까. 사연이 있어 보여. 잘생겼는데 그늘이 진 잘생김, 알지. 장관하고 사진을 찍는데 일도 안 웃어. 대통령상을 준다는데도 안 웃어. 그리고 학교를 존나 그만둬. 그리고 존나 합격을 해 버려.”

“네 눈에도 우리 형 잘생겼어?”

“응. 존나.”

“……다행이다. 내 눈에도 잘생겼거든.”

무슨 헛소리를 하느냐는 얼굴로 안도하는 나를 미친놈처럼 바라보다 석주가 픽 웃었다.

혈육의 외모를 잘생겼다고 느끼는 건 지극히 정상이었다. 객관적으로 잘생겼으니까 아름답게 보이는 거고, 아름다우니까 만지고 싶고, 닿는 게 싫지 않은 거다. 아름다움은 그토록 막강한 권력이다.

내가 이상한 게 아니었다.

석주는 내 어깨에 팔을 턱 걸친다.

“아유, 귀여운 새끼, 니가 애냐? 그래 너네 형 잘생겨서 좋겠다. 너도 괜찮게 생겼어. 종류가 다르지만.”

“종류가 다르다니, 그게 무슨 뜻이야?”

“너희 형은 좀 음침하잖아. 나는 그런 어두운 타입은 싫더라. 나까지 전염되는 기분이야.”

“우리 형 실제로 본 적도 없다며, 사진 한 장 가지고 너무 함부로 판단하는 거 아냐?”

“아, 새끼. 알았어. 누가 별로래? 그냥 느낌이 그렇다는 거지.”

“음침이 뭐냐? 우리 형 그런 사람 아니야.”

“알았다니까. 야, 삐졌냐? 아, 같이 가!”

사람 보는 석주의 눈이 꽤 정확했다. 형은 제정신이 아니었고 그나마 남아 있는 이성도 몸에 상처를 내며 겨우 유지하고 있었다.

내가 지탱해 주지 않으면 그는 망가지게 될지도 모른다. 지금의 형은 제정신이 아니었고, 시한폭탄과 다를 바 없었다. 그는 고통으로 침식되어 사라지는 중이었다.

우리는 잘못된 짓을 하는 게 아니다. 형을 지키려면 어쩔 수 없이 더러운 짓도 해야 하는 거다. 형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하는 거다.

그렇게 애써 나와 형에게 벌어진 일을 합리화하려고 했다.

등교 시간이 거의 임박해 교실 안이 어수선했다. 내 자리로 걸음을 옮기다가 임주호와 눈이 마주쳤다.

허경민은 임주호와 나를 순간 착각했다. 허경민은 내 어깨를 느끼한 손으로 만지며 왜 전화하지 않았느냐고 구역질 나는 추파를 던졌다.

임주호가 하고 다니는 짓거리를 허경민이 아는지 궁금했다. 임주호에게 일방적인 욕설을 쏟아붓고 난 이후로 나를 보는 녀석의 눈초리가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처럼 날카롭게 변해 있었다.

나 역시 그를 향해 경멸 섞인 눈길을 던졌다.

기회만 있으면 명분만 주어진다면 녀석을 죽도록 패고 싶은 충동을 겨우겨우 가라앉히면서.

내가 노리던 기회는 뜻하지 않은 곳에서 우연히 찾아왔다.

점심시간 식당에서 임주호와 마주쳤다. 허경민이 식판을 들고 빈자리를 물색하고 있었고 그를 피해 후배 녀석들이 밥을 먹다 말고 일어나 자리를 양보했다.

“임주, 여기 앉자.”

허경민이 창가 옆 좋은 자리를 그에게 가리켰다. 임주호는 식판을 들고 허경민이 마련한 자리가 아니라 다른 곳으로 걸어갔다. 무시당한 허경민이 헐레벌떡 그를 쫓았다.

그들이 무슨 사이라는 것을 모르고 봐도 허경민이 임주호를 좋아하고 쫓아다니는 꼴이었다.

허경민을 꼬여 낸 것처럼 우리 형을 꼬여 냈을 거다. 임주호의 모든 것이 더럽게 느껴졌다. 오히려 양아치 허경민의 모습이 순도 높은 순애보로 보일 정도였다.

나는 일부러 임주호가 앉아 있는 뒤쪽으로 지나갔다. 발에 뭐가 걸린 척 비틀하며 식판을 임주호의 등짝으로 쏟았다.

“으악!”

그의 옆에 앉아 있던 남학생이 졸지에 튄 음식물에 호들갑을 떨며 피했다. 임주호는 밥을 먹다 말고 자신의 등짝을 적신 시뻘건 국물에 말 그대로 석상처럼 굳어져 버렸다. 놀란 것은 허경민도 마찬가지였다.

“뭐야, 이 씨발! 야! 너 미쳤어?!”

허경민에게는 김칫국물 한 방울도 튀지 않았는데 그가 벌떡 일어나 내 멱살을 움켜쥐었다.

나는 허경민을 한심하게 바라보았다. 임주호의 정체도 모르고 그에게 순정을 바치고 있는 덜떨어진 양아치 새끼가 가여웠다. 내가 당하는 고통에 비하면 임주호가 받는 이런 사소한 괴롭힘은 고통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미안. 손이 미끄러졌네.”

“뭐야? 이 씨발 새끼가?!”

내 멱살을 틀어쥐고 당장에라도 주먹을 날리려고 드는 허경민에게 영혼 없이 사과했다.

안 그래도 어이가 없는데 쥐꼬리만큼 남은 어이마저 사라져 환장하겠다는 표정의 허경민이 틀어쥔 내 멱살을 콱 조였다.

“경민아, 그러지 마.”

“씨발, 이 미친놈 봐라? 너 내가 누군지 몰라? 죽고 싶냐?”

“허경민.”

임주호가 그러지 말라고 허경민의 이름을 날카롭게 불렀다.

“이 씨발……, 아, 미치겠네. 너 죽을 줄 알아. 나중에 보자. 이 좆만 한 새끼야. 밤길 조심해라.”

멱살을 틀어쥔 악력이 졸업하면 조폭이 된다는 장래 희망대로 보통 강한 게 아니었다. 무슨 강철 같았다. 나 같은 건 상대도 되지 않는 힘이 단순히 멱살을 틀어쥐고 있을 뿐인데 절절하게 느껴졌다.

“뭐야? 준영아! 씨발, 너 뭐야?”

중학교 때까지 유도를 했던 석주가 엉켜 있는 우리를 발견하고 쫓아왔다.

허경민이 석주를 보고 멈칫했다.

둘이 붙으면 볼만할 거라고, 싸움을 싫어하는 석주는 우리 학교에서 유일하게 허경민을 무시하는 사람 중의 하나였다.

대놓고 일탈하는 그를 훈계하지 못하는 여자 선생님이 석주의 등을 떠밀어 학교에서는 금연이라고 허경민이 입에 꼬나문 담배를 뺏어 바닥에 지르밟게 한 적도 있었다.

임주호가 김칫국물을 뚝뚝 흘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걸어가자 허경민이 그를 쫓아갔다.

“임주, 괜찮아? 아 어떡하지. 내 옷 줄게. 내 거 벗어 줄게.”

“꺼져, 개새끼야.”

그들이 멀어지고 석주가 슬리퍼를 털레털레하며 걸어왔다.

“저것들 뭐야?”

“……아니야. 아무것도. 손이 미끄러져서.”

“너 때문에 저렇게 됐다고?”

“그렇게 됐네. 어쩌다 보니까.”

나는 바닥에 떨어진 식판을 주워 올렸다. 석주는 의아한 눈으로 나와 이미 멀어진 그들의 뒷모습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임주호를 엉망으로 만들자 기분이, 그래도 기분이 조금은 나아졌지만 형과 죄를 짓는다는 죄책감은 조금도 덜어지지 않았다.

점심시간이 끝나기 전 양치를 하고 손을 씻었다. 거울 속의 내 얼굴을 가만히 응시했다.

형을 닮은 얼굴, 형제이기 때문에 결이 달라도 어딘가 비슷한 구석이 있는 얼굴이었다.

형이 욕망하는 얼굴…….

그에게 성적 충동을 일으킬 그 무엇도 엿보이지 않는 생김새였다.

“내가 너한테 원한 살 짓 같은 거 했냐?”

내 얼굴 옆으로 낯선 얼굴이 나타났다. 거울 속의 다른 얼굴을 바라보았다.

허경민이 왜 우리를 착각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임주호와 나는 어느 구석도 닮지 않았고 그저 체격이 비슷할 따름이었다.

형이 나의 대체자로 임주호를 선택한 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이유가 뭐냐고.”

“지금 그걸 몰라서 물어?”

그의 옷에 식판을 뒤엎은 쪽은 나인데 황당하고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임주호의 미간이 구겨졌다.

“모르겠으니까 물어보잖아.”

“몰라? 모른다고?”

“모른다고, 씨발! 대체 너 왜 그래? 갑자기 원수진 것처럼 왜 그러냐고?!”

“너 때문에……, 너 때문에 내가 지금.”

“나 때문에 뭐?!”

임주호는 정말 모르겠다는 반응이었다. 분노에 차서 말조차 제대로 잇지 못하는 내 모습에 제가 더 황당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너 때문에 형과 몸을 치대고 뒹군다고, 절대 발설할 수 없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었다.

따지고 보면 임주호의 잘못이 아니었다. 나의 형과 내가 문제였다. 우리 형제가 문제였다.

“나 때문에 뭐? 대체 뭔데?!”

“씨발, 남자끼리 더럽게.”

“…….”

“허경민하고 너하고 사귀는 거 전교생이 다 아는데 다들 왜 입 다물고 있는 줄 알아?”

“…….”

“그게 정상적이라서 가만히 있는 줄 알아? 허경민이 무서워서 가만히 있는 거야. 다들 뒤에서는 너희 더럽다고 욕하고 다녀. 알아? 이 호모 새끼들아. 니 면상만 보면 토가 쏠려. 알아?”

“…….”

허경민과 임주호는 지극히 정상이었다.

정상이 아닌 쪽은 형과 나였다. 더러운 것은 난데, 비상식적인 짓을 형과 하고 있는 것은 난데 임주호를 경멸했다.

그에게 내뱉은 욕설이 화살이 되어 모두 내게로 되돌아와 꽂힐 거라는 걸 알면서 퉤, 세면대에 침을 뱉고 상처받은 눈으로 서 있는 임주호의 어깨를 치고 화장실을 나가 버렸다.

✦ ✧ ✦

“학교에서 무슨 일 있었어?”

“어?”

“왜 이렇게 집중을 못 해?”

문제를 설명하던 형이 전혀 듣지 않는 내 이마를 손가락으로 쿡 찔렀다. 다른 생각에 빠져 있다 고개를 들었다.

임주호는 아프다고 조퇴했다. 그의 빈자리를 내도록 바라보는 동안 수업이 끝났다.

학교를 나오니 형의 차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비정상적이고 더러운 짓을 하려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제 몸을 난자하는 친형이라는 사람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머리 아파. 오늘은 그만할래.”

피로감이 짙게 밀려들었다. 펜을 내려놓고 책상을 정리하려는 내게 그가 일침을 날렸다.

“내일 모의고사 아니야?”

“모의고사든 뭐든.”

“오버하면서 갑자기 열 몇 시간씩 하지 말고 하루에 한 시간이라도 꾸준하게 해. 공부는 매일이 아니면 의미 없는 거야.”

“나한테 잔소리하고 싶어?”

당사자 때문에 힘들어 죽을 것 같은 나에게 원인 제공자가 훈계를 늘어놓고 있었다.

“잔소리하고 싶지. 계속 말하고 싶고, 쳐다보고 싶고.”

“…….”

“안아 보고도 싶고.”

대꾸할 수 없는 말을 늘어놓으며 그의 얼굴이 점차 다가왔다. 입술을 촉 소리가 나게 부딪치고 그대로 멀어진다.

문제는 나와 형에게 있는데 나는 임주호를 비난했다.

그와 더러운 짓을 하는 사람은 나인데, 공부한다는 핑계로 달라붙어 서로의 몸을 은근슬쩍 만지며 마치 연애를 하듯 더럽게 접촉하고 있으면서, 임주호에게 모든 탓을 돌려 버렸다.

등 뒤를 둘러 안은 팔이 상의 아래를 파고들어 왔다. 불쑥 올라온 손이 갈비뼈를 만지고 가슴을 쓸었다. 따듯한 열감이 돋아나는 손바닥에 유두가 스쳤다. 흠칫, 어깨가 떨렸다. 여린 스침에도 가열하게 반응해 버린 내 모습에 나는 지레 놀라 형의 눈치를 살폈다.

심상하게 책을 보던 눈이 나를 향한다.

“그렇게 쳐다보면 키스하고 싶어지는데.”

그를 피하려고 눈을 감은 것인데, 오해한 그가 그대로 고개를 내려 입술을 겹쳐 온다.

혀가 입술을 가르고 들어와 안을 핥아 올렸다. 축축하게 젖은 살이 얽히며 풀어지는 질척거림이 유난히 크게 들려왔다. 그의 손이 가슴을 만졌다. 살도 없는 곳을 움켜쥐듯 붙잡고 손끝으로 유륜을 둥글린다.

상체가 움찔움찔 떨려 왔다. 얼굴을 형의 쪽으로 한껏 돌린 채 잘 맞물리지 않는 입술을 맞대고 입안에 들어온 그의 것을 함께 핥고 삼켜 댔다.

그가 꼬집듯 젖꼭지를 비틀어 쥔다.

“흐읍……!”

하체가 튀어 오르는 감각에 입술을 떼고 형을 밀쳤다.

발갛게 익은 얼굴이 그 이상을 원하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집중 안 되는데 불 끌까?”

“…….”

불쑥 들어와 맨살에 비벼지던 팔이 빠져나갔다.

그는 잠자리에 드는 것처럼 방의 불과 스탠드 전원을 껐다.

주변이 컴컴해졌다. 창문에서 스미는 야외 램프의 불빛만이 어스름하게 내부를 비춰 주었다.

그는 주위를 일부러 어둡게 만들곤 했는데 나에게 죄책감을 주지 않으려고 나름대로 배려하는 것이었다.

누가 누구인지 알 수 없게.

나를 만지는 게 누구인지 알 수 없게.

내가 매달리는 이가 누구인지 알 수 없게.

그는 손목을 움켜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한참 동안 조용한 숨소리만 내며 나 스스로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내가 임주호한테 갔으면 좋겠어?”

“다시는 그런 짓 안 하기로, 다시는 안 하기로 약속했으면서……!”

형이 그 이름을 들먹이자마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나한테 일 년 주기로 했던 거, 자꾸 잊어버리는 것 같아서 말해 주는 거야.”

“……안 잊어버렸어. 그걸 어떻게 잊어버려.”

나는 혼란스러웠다. 그가 싫었으면 어떻게든 이유를 대고 뿌리치고 나갔으리라. 나는 형을 뿌리치지도 않고 그를 붙잡지도 않고 그저 꼼짝도 하지 않은 채로 형이 내게 손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내 망설임을 아는 형이 먹히지 않을 협박으로 내게 면죄부를 주고 있었다.

너는 죄를 짓는 게 아니라고.

너를 아프게 하고 이런 짓을 하게 만드는 사람은 바로 자신이라고.

이곳에서 악역을 맡은 사람은 형이었고, 나는 그의 죄를 방임하는 가련한 피해자였다.

도리어 형의 머릿속에서 임주호를 지우기 위해서라면 나는 더한 짓도 할 수 있었고, 형을 더러워지기 이전으로 만들 수 있다면 형이 원하는 것 이상을 줄 각오도 되어 있었다.

“잊어버리지 마. 기억 안 나는 것처럼 모르는 척하지 마.”

“늦었어. 지금……, 너무 조용해서 들릴지도 몰라.”

“너 소리 안 내는 거 잘하잖아.”

그가 나를 침대로 이끌었다.

형과 입을 맞추며 침대에 풀썩 누웠다. 소리를 내지 않으려 서로 조심했다. 조용조용 내뱉는 숨결이 급해지면 형이 물러나 물끄러미 나를 내려다보며 숨을 골랐다.

형의 팔을 베고 누워 어둠 속에서 그윽한 눈매를 응시했다.

춥지도 않은데 목까지 이불을 덮어 얽혀든 몸을 가렸다.

우리는 조용조용 움직였다.

그의 손이 내 옷을 전부 벗길 것처럼 들추었다. 상의를 겨드랑이까지 가파르게 끌어 올리고, 하의는 무릎 아래로 벗겨 냈다.

단단한 허벅지가 무릎을 가르고 들어와 완만하게 눕힌 후 아래를 지분거리기 시작했다. 음모가 없어 밋밋한 살이 커다란 손에 쓸렸다.

“으응……, 으으…….”

나는 가늘게 신음했다.

희미하게 닿는 그의 국부에서 열기가 느껴졌다. 형이 나를 만지는 것처럼 나도 그에게 손을 대고 싶었다.

무성한 음모를 손으로 만지면 어떤 느낌일까.

따가워서 손바닥이 아플지도 모른다. 발기해 터질 것 같은 성기를 움켜쥐면 형은 어떤 소리로 신음할까. 지금 흩어지는 앓는 숨결 그 이상의 것을 토해 내고 헐떡거릴지도 모른다.

형의 것을 만지는 머릿속의 상상이 그대로 이루어졌다. 형의 손이 내 성기를 움켜쥐고 쓸어 올렸다.

“읏!”

얼굴이 뜨거워지고 이불로 가린 우리의 전신은 더욱 뜨거워졌다. 그와 내가 발산하는 열이 순식간에 침구 속 온도를 올렸다. 숨이 갑갑하고 더웠다.

“으읏…, 하아, 하아, 이상해. 이런 거 이상해.”

“……기분 좋아? 준영아, 말해 줘. 기분 좋아? 응?”

그가 묻는다. 집요하게 나를 확인했다.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모르겠다고, 아니라고, 금방이라도 흐느낄 것처럼 색색거렸다.

“차라리 널 어릴 때부터 이렇게 예뻐했으면……, 응? 준영아. 그랬으면 어땠을까.”

“하아, 미쳤……, 미쳤어. 미친 소리 하지 마. 들려. 들릴 거야. 형, 조용히 해. 아무 말도, 아무 말도 하지 마.”

제발 아무 말도 하지 마.

누가 들을 거야. 들을지도 몰라.

나는 그에게 매달리며 애원했다.

“처음 흥분하는 것도 처음 사정하는 것도……, 네가 느끼는 그 처음을 다 내가 해 줬으면.”

아아, 그렇게 했어야 했다. 그래야만 했다고, 인내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나를 만지는 형의 숨소리가 손의 움직임만큼이나 다급하게 흐트러졌다.

“하읏, 읏……, 으응, 형, 아아, 아읏, 나 갈 것 같아. 나……, 나 쌀 것 같아. 뭐가 나올 것 같단 말이야……!”

이상한 느낌이었다. 내가 잘못되어 가는 기분이 싫었다. 그에게 아래를 붙잡힌 채 너른 가슴에 매달려 작게 속삭였다.

그가 나를 침대 아래로 떨어트리려는 것도 아닌데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허리가 잘게 떨리며 허벅지가 형의 다리에 갇혀 버둥거렸다.

내 뺨에 입을 맞추고 젖혀지는 목에 입술을 대던 움직임이 내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아주 천천히 멎었다.

“……으흐.”

그의 손아귀가 움직이지 않았다. 형의 손에 대고 고간을 밀어붙이며 허리를 튕기던 나도 그대로 굳어졌다.

똑똑, 분명한 노크 소리였다.

“아버지 왔다. 준영아. 자니?”

아버지의 음성이 먼 곳에서 희미하게 들렸다. 아버지가 빈 내 방문을 노크하고 있었다.

방문을 열어 본 아버지의 기척이 당연히 형의 방으로, 우리가 누워 있는 이곳으로 향했다.

굳어 있던 손이 아버지의 걸음이 확연하게 들려오자 풀렸다.

나를 만지는 손길이 이전과 같은 강도로 진해졌다. 부스럭대는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

이러지 말라고, 멈추라고 형의 귀에 숨소리로 소리쳤다.

등을 쓸어안은 팔을 조이고 사타구니를 만지는 손길에 더욱 힘을 준다.

형의 방 앞으로 걸어온 아버지의 기척이 흐렸다. 아마도 공부 중이라 여기는 우리를 방해하지 않으려고 망설이고 있는 듯했다.

어둠 속에서 형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의 손에 붙잡혀 어쩔 줄 모르고 하체를 떨면서 눈 한가득 고이는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으읍……!”

벙긋 벌어지는 입을 틀어막았다. 나는 형의 손을 적시며 사정했다.

전율적으로 몸을 훑어 내리는 쾌감에 내 아래를 만지느라 근육이 꿈틀거리는 형의 팔을 억세게 붙잡았다. 하체가 경련하듯 떨리고 있었다.

우리를 방해하지 않으려는 아버지의 걸음이 돌아섰다. 그가 바로 옆에 있는 것처럼 아버지의 움직임이 세밀하게 들려왔다.

복도를 지나 내 방문을 지나고 아버지의 발걸음이 계단을 내려간다. 그의 인기척이 사라진 것을 느끼고 참았던 숨을 급박하게 쏟아 냈다.

“하아, 하아, 하아……!”

믿기지 않았다. 그와 벌이고 있는 짓들이, 형과 내가 하는 모든 것이.

그 역시 참고 있었는지 내쉬는 호흡이 확연하게 거칠어졌다.

내 위로 체중을 옮긴 그가 발기한 자신의 것을 허벅다리 사이에 끼워 넣듯 빠듯하게 쑤셔 넣었다. 침대에 바르게 누워 나도 모르게 다리 사이를 오므려 그의 것을 조이자 이불에 가려진 그의 등줄기가 움찔거린다.

무의식적으로 형의 등허리를 싸안았다.

질척하게 젖어 미끈한 점액질이 그의 성기 표피에 윤활제처럼 묻었다.

문질러 오는 뭉툭하고 단단한 느낌이 허벅지를 가르고 민감한 살갗을 쑤셔 댄다.

나는 무릎을 더욱 조여 터질 것처럼 단단해진 살을 빠듯하게 품었다.

“허억, 준영아, 으윽, 그러지 마. 하지 마.”

임박한 듯한 사정을 도우려고 꿈틀대는 나를 저지하며 형이 고갯짓을 쳤다.

“움직이지 마. 그냥 있어. 하아.”

내 벗은 엉덩이를 세게 붙들어 쥐고 그가 허리를 퉁기듯 움직였다. 위에서 아래로 내리꽂히며 살 부딪치는 소리가 낭자하게 철벅거린다.

형의 젖은 체모가 사타구니에 따갑도록 쓸렸다.

손으로 만지고 싶었다. 어떤 느낌인지, 발기해 초조해하는 살덩어리의 표면이 굽이치는 등허리처럼 매끈하고 단단한지, 뜨거운지 차가운지, 허벅다리 사이가 아니라 손으로, 감촉으로 느끼고 싶었다.

젖어 드는 형의 은밀한 곳을 만지고 싶어 호흡 기관이 답답해져 왔다.

나까지 정신을 놓을 순 없었다.

형에게 손대지 못하고 아래쪽을 내어 준 채 헐떡이는 움직임을 전신으로 받아 냈다. 이불 속이 뜨거워 주르륵 땀방울이 흘러내리고 그와 살이 마찰할 때마다 미끈거리며 차지게 달라붙었다.

한참 아래를 쑤석이던 그가 참지 못하고 짐승처럼 신음하며 사정했다.

“으읏, 으윽, 으……!”

사정하는 그의 상체를 끌어안았다. 땀으로 젖은 어깨에 뺨을 기댔다. 차마 손댈 수 없는 형의 살갗이 허벅지 사이로 부르르 떨려 왔다.

그가 예민한 살을 비비려 움직거리며 내게 입술을 겹쳤다. 나는 입을 벌리고 나를 휘감는 형의 혀를 마주 안았다.

2권으로

로판데이 링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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