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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아침은 최악이었다. 나는 방 안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주말을 보냈다. 형은 주말 내내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주말 동안 한잠도 자지 못해 붉게 충혈된 눈으로 임주호의 뒤통수를 노려보고 있었다.
가능하다고 하면 그의 뒷덜미를 강하게 움켜잡고 흔들어 대고 싶었다. 그로 피해 입은 것은 무엇도 없으면서, 추궁할 것도 없으면서 당연하게 그래야 할 것만 같았고, 당장 그렇게 하고 싶은 충동이 자꾸 치솟았다.
임주호의 목을 졸라 숨통을 차단하고 대체 나의 형과 무슨 짓을 한 거냐고, 그가 피를 토할 때까지 다그치고 싶어 책상 아래의 주먹이 꽉 쥐어졌다 풀어지기를 반복했다. 마른침이 따갑게 목구멍을 훑고 내려가고 이마 위로는 진땀이 배어 나왔다.
막연하게 용서할 수가 없었다. 허경민과 흘레붙는 그 더러운 몸뚱이가 나의 형과 무슨 짓을 했다는 단순하고 막막한 예감이 나를 참을 수 없게 만들었다.
까닭 없는 서러움이 북받쳐 숨이 씨근거렸다. 격하게 부풀어 오르는 숨소리를 들키지 않으려 길게 호흡을 내뱉었다.
수업이 끝나고 임주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는 화장실로 향하는 그의 뒤를 쫓았다.
패기 좋게 화장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갔다가 흠칫했다. 임주호는 마치 나를 기다리는 모양새로 문 앞에 서 있었다.
“…….”
“……너 뭐냐?”
임주호는 퉁명스럽게 물었다.
녀석이 평소에 나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는 것은 알고 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성적 때문일 거라고 여겼다. 임주호가 두 개 틀리면 내 등급이 올라갔고, 임주호가 백 점을 맞으면 내 등수가 내려갔다.
나는 원래 공부에는 큰 관심도 욕심도 없었고 목표는 애당초 형이었기에 시험 때마다 나와 앞뒤가 수시로 바뀌는 임주호에게 별다른 사감이 없었다. 허덕거리며 쫓아가면 임주호 정도는 앞지를 수 있지만 형을 앞지르는 것은 불가능했다.
“임, 주호, 너…….”
나는 주체 못 하는 호흡을 씨근거렸다. 숨결이 다급해져 그의 이름을 발음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임주호의 입꼬리가 그런 나를 비웃는 것처럼 말려 올라갔다. 분노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치솟았다. 점점 숨 쉬는 게 힘들었다. 흉곽이 꽉 조여들었다. 과호흡이 올 것 같았다.
“나 뭐?”
임주호는 갑자기 주먹으로 내 가슴팍을 퍽 때렸다. 난데없는 공격에 몸이 휘청했다.
“나 뭐, 빨리 말해. 뜸 들이지 말고. 너 따위하고 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으니까.”
그는 휘청대는 나를 황당하게 바라보며 빈정거렸다.
변기통에 놈의 얼굴을 처박고 싶었다. 그러나 무어라고 물어야 할지 몰랐다. 분기는 씹어 삼킬수록 더욱 거대하게 치솟아 나를 집어삼킬 것 같은데 도대체 뭐라고 임주호를 다그쳐야 이 분기가 사그라지는지 알 수 없었다.
“너, 너……. 개새끼, 너…….”
“너 평소에 나한테 쌓인 게 많았나 보다? 아까부터 계속 잡아먹을 듯이 쳐다보더니.”
“이 개새끼…….”
차마 물어볼 수가 없었다.
나는 아랫입술을 억세게 깨물며 화장실 문을 밀고 나와 버렸다. 입술이 바들바들 떨렸다. 울컥 뜨거운 눈물이 뺨으로 흘러내렸다. 시야가 부옇게 흐려져 온갖 사물이 뭉그러졌다.
차마 물어볼 수가 없었다.
나의 형과 그런 짓을 했냐고, 차마 그 더러운 말을 입에 담을 수가 없었다. 설혹 아니라고 하더라도, 설혹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그런 더러운 말을 입에 담으며 형을 모욕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가방도 챙기지 않은 채 학교를 나와 버렸다.
학원에도 가지 않고 버스를 타지도 않았다. 시내의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꼬박 걸어 집에 도착했다. 길게 드리우던 해가 한풀 꺾여 어느덧 저녁이었다.
교복은 땀으로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그 자리에서 고꾸라질 것처럼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먼 거리를 무작정 걸어와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충격으로 주체가 되지 않는 것인지, 팔다리가 눈에 띌 정도로 바들거리고 떨려 왔다.
도어락 번호를 모르는 것도 아니고, 우리 집 앞이 아닌 것도 아닌데 나는 육중한 나무 대문 앞에서 멍청하게 서서 인터폰 버튼만 바라보았다.
얼마나 서 있었을까. 누군가가 나를 대신 해 도어락을 해제했다.
“뭐 하는 거야?”
그때까지 망연하게 서 있는 내 어깨를 턱 붙잡는다. 아니, 부축했다고 하는 편이 옳았다.
나는 비틀거리며 그제야 고개를 돌려 상대를 의식했다. 의아해하는 형이 보였다. 내내 머릿속에 박혀 뽑히지 않던 이의 얼굴이었다.
“너 안색이 왜 이래? 어디 아파?”
“…….”
대답하지 않는 나를 부축해 그가 대문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나는 형의 손에 짐짝처럼 가볍게 끌려갔다.
정원을 지나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서부터 팔을 붙잡고 있던 형은 내 허리를 감싸 안아 나를 거의 들어 올렸다.
주방에서 요리를 하는 윤 차장의 형용이 어렴풋하게 보였다. 인기척에 돌아보지도 않고 그녀는 귀가한 이를 지레짐작하며 경쾌하게 말했다.
“준영이 왔구나. 씻고 간식 먹어. 맛있는 거 해 놨어.”
형도 나도 그녀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형은 나를 끌어안다시피 부축해 이 층 계단을 밟아 올라갔다. 반쯤 계단을 올라갔을 때 나는 탈진했다. 몸에서 힘이 완전히 빠져나가 주르르 주저앉아 버리자 그가 나를 안아 올렸다. 어금니를 꾹꾹 깨무는 그의 턱이 질끈질끈 움직였다.
아버지의 재혼으로 그와 우리 형제의 연대는 아예 끊어졌다.
어머니가 부재했지만 아버지와 우리 형제는 나름의 강한 끈으로 묶여 있었다. 어머니의 빈자리가 우리를 단단하게 묶어 주었다.
나는 되도록 편부인 아버지를 거역하지 않으려 노력했고, 아버지가 나에게 형만큼의 기대와 관심을 주지 않아도 혼자 된 당신을 안타깝게 여기고 측은하게 생각했다. 어머니가 안 계시기에 아버지에게 더 잘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기도 했었다.
그런 우리의 연대를 저버리고 부하 직원일 뿐이라고 변명하던 윤 차장과 재혼한 아버지에게 나는 서운한 것 이상의 배신감을 느껴야 했다.
나에게 아버지는 차라리 형이어야 했다. 내가 얼마나 그에게 의지하는지, 그리고 그를 의식하는지 형도 아버지도 잘 알고 있었다.
땅이 꺼져 버리는 듯한 이 좌절감을 설명할 길이 없었다.
버림받은 것만 같았다. 형이 말도 없이 군대에 가 버린 것과는 차원이 다른 배신감이었다.
아무 사이 아니라고 하던 윤 차장을 갑자기 새어머니라고 하면서 집안에 끌어들인 아버지에게도 버림받았는데, 형마저 나를 버린 것만 같았다.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형마저 나를 버렸다. 결국 이 집에는 내가 있을 자리도 없었고, 기댈 사람도 없었다. 그래도 혼자가 아니라고 여겼는데 나는 철저하게 혼자였던 것이다.
“이리 누워.”
형은 나를 신속하게 내 방 침대에 눕혔다. 나는 그가 부리는 짐처럼 늘어졌다. 조금도 움직이지 못하고 형을 올려다보았다.
“학교에서 무슨 일 있었어?”
“…….”
“준영아. 강준영.”
대답하지 않고 물끄러미 쳐다만 보는 내가 답답했는지 그가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지난 금요일 밤 임주호와 형을 목격하고 나도 모르게 등신처럼 차 뒤로 몸을 숨겼다. 찍소리도 내지 못하고 어두컴컴한 차 뒤에 숨어 그들이 사라지기를 기다렸다가 뭔가에 홀리듯 형의 작업실로 들어갔다.
머릿속이 폭격을 맞은 것처럼 멍했다.
문단속조차 하지 않은 비밀 작업실에는 어떤 꿉꿉하고 축축한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가슴이 미치도록 세차게 뛰었다. 손을 희미하게 떨면서 탐색적으로 그의 공간을 훑어보았다.
검은 비닐봉지를 씌워 놓은 쓰레기통에 방금 사용한 콘돔이 버려져 있었다. 그들이 알몸으로 뒹굴고 형이 임주호에게 개처럼 흘레붙던 흔적이 곳곳에 명징하게 남아 있었다.
식은땀이 배어 나와 목덜미를 축축하게 적셨다. 한기가 밀려들었다. 그의 작업실 문을 벌컥 열어 놓은 채 그곳에서 도망치듯 나와 버린 것이 지난 금요일의 일이었고, 주말 내내 악몽에 시달리듯 그들을 상상하며 넌더리를 쳐야 했다.
“물 가져다줄까? 왜 그래, 무슨 일 있었어?”
누가 봐도 내 상태는 정상이 아니었다. 얼굴은 허옇게 뜨고 잠을 자지 못해 눈 밑은 퀭하게 꺼져 들었다.
“……혹시 누가 때렸어? 학교에서 누가 괴롭히고 그러는 일 있는 거야?”
내 꼴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며 강준원이 가증스럽게 묻는다. 설마 그런 일이 내게 있으리라고는 믿지 못하는 눈으로.
보랏빛으로 질린 입술을 깨물고 가까스로 상체를 일으켜 앉았다. 그것조차 힘들어 가쁘게 숨을 내쉬며 걱정스럽게 나를 보는 형을 노려보았다.
“형한테는 얘기해도 돼.”
“뭘 얘기해?”
어이가 없는 정도가 아니라 화가 치밀었다. 그가 나를 걱정하는 것조차 가식으로 보였다.
“무슨 일인지 얘기해 보라고.”
“갑자기 왜? 너 나한테 관심도 없잖아.”
“…….”
손윗사람을 대한다고는 생각할 수 없는 건방진 말과 표정이 그를 할퀴고 지나갔다.
“갑자기 내가 왜 궁금한데?”
“너 지금……. 강준영.”
그가 경고처럼 내 이름을 낮게 불렀다. 나는 코웃음을 쳤다.
“왜? 내가 너라고 해서 기분 나빠? 강준원, 이 개새끼야!”
“…….”
내가 무슨 칼이라도 침대 밑에 숨기고 있는 것처럼 그의 표정이 차갑게 굳어졌다. 나를 가만히 내려다본다. 걱정하는, 염려하는 표정에는 자신이 금요일 밤에 한 짓을 돌이키는 회개의 기색은 전혀 없이 그저 가증스럽기만 했다.
“임주호라고, 내가 전에……, 말한 애 기억해? 우리 반에, 예전에 말했었잖아. 장학사도 아는 전교 일 등. 기억하지?”
“…….”
“걔는 나보다 공부 잘해.”
도대체 해석이 불가능한 타국의 언어를 듣는 것처럼 그는 퍼즐을 맞추지 못하고 이상하게 구는 나를 주의 깊게 살피듯 보고만 있었다.
“하나는 전교생이 다 아는 수재, 하나는 전교생이 다 아는 깡패 새끼. 그 둘이 떡 치는 거 아이러니하지 않아?”
허술하게 깔려 있는 복선들. 그의 얼굴에 조금씩 균열이 일었다.
“강준영.”
그가 높낮이 없는 어조로 내 이름을 불렀다. 요점 없이 배회하는 말투가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의 말투와 나를 다그치는 표정이 엄격해졌다. 나는 그가 가당찮은 형 흉내를 내면 낼수록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런 거 더러운 거 아니야?”
“…….”
“남자들끼리 그러는 거 더럽잖아. 둘이 바짝 달라붙어서는 더럽게.”
“…….”
“게네들은 내가 보는데도 신경도 안 쓰고 서로 더듬어 댔어. 그렇게 남이 보는 데서 그런 짓 하니까 더 꼴리는 모양이더라고.”
나는 비척거리며 상체를 지탱하고 도전적으로 그를 응시했다.
그 어떤 칼날도 나의 것만은 못할 것이리라.
“금요일 저녁에 형 공연 보러 홍대 갔었어. 그런데 보컬 때문에 공연이 취소됐다고 해서, 그날 밤에……, 형 작업실 찾아갔어.”
“…….”
“우리 학교에 그 더러운 호모 새끼랑 섹스하니까 좋았어? 그 짓 하려고 작업실 얻은 거지?”
나는 그날 본 것을 떠올리며 몸서리를 쳤다. 떠올리고 싶지 않은데 자꾸만 떠오르고, 자꾸만 불결한 것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임주호 그 새끼랑 떡 치니까 좋았어? 걔를 만지니까 좋았어? 어떻게 그런 더러운 새끼랑……! 나한테 뻔뻔하게, 형이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
“형은……, 더러워. 더럽다고. 이 더러운 새끼야. 더러워서 침을 뱉고 싶어. 퉤!”
나는 벌떡 일어나 딱딱하게 굳어진 얼굴을 향해 침을 뱉었다. 부지불식간에 하얀 거품 섞인 뜨끈한 타액이 형의 눈가를 더럽히고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의 얼굴에 침을 뱉고 모욕한 것은 나인데 내가 한 짓에 내가 충격을 받아 멈칫거렸다.
한쪽 눈을 질끈 감았다 뜬 그가 미동도 하지 않고 나를 바라보았다.
“더, 더러워. 더럽다고!”
그를 비난했다. 내가 아는 모든 단어를 총동원해서 그를 욕보이고 싶었다.
“꺼져. 형도, 아버지도……. 이제 다 꼴 보기 싫어. 정말 다 싫어.”
“…….”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아. 더러우니까 나가.”
“…….”
요동 없이 나를 보는 그의 뺨에는 내가 뱉은 침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나가라고! 나가!”
형에게 여자가 있는 것이라 여겼다. 그 사실도 받아들이는 게 쉽지 않았다. 누가 되었든 그 만남을 인정하는 데만 해도 엄청난 인내와 의지가 필요했을 것이고, 형과 나는 결국 타인이라는 것을 인정하기까지 몸을 앓듯 정신을 앓아야 했을 터이다.
모든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내가 이토록 분개하는 까닭은 그간 나를 향한 형의 경원과 반목, 무시와 소홀의 이유가 무엇인지 알았기 때문이다. 그에게 나를 대신할 소중한 이가 생겨 버렸다. 그래서 형은 나를 버린 거다.
“꺼져!”
나는 손에 잡히는 것을 닥치는 대로 형에게 집어 던졌다. 베개를 집어 던지고, 책을 집어 던지고, 그쪽으로는 닿지도 않는 침구마저 펄럭거리며 그에게 집어 던졌다.
형은 내가 마구잡이로 던지는 책과 베개를 아무 방어도 하지 않고 맞고 서 있었다. 반박하지 않는 그의 모습이 이런 비난을 당하는 게 온당하다는 의미처럼 보여서 더 눈이 뒤집힐 것 같았다.
침대 옆 콘솔에 놓인 알람 시계를 움켜잡았다. 미운 걸 넘어 증오스러운 그를 이것으로 패 버리고 싶었다.
손아귀에 꽉 잡히는 알람 시계의 벨이 파르르 떨려 왔다. 집어 던지려고 시계를 벌컥 치켜들고 비축하는 숨을 삼킬 때였다.
층계참에 가벼운 발소리가 들렸다. 윤 차장이었다.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던 형이 발소리를 감지하고 손을 뒤로 뻗었다. 그 손이 찰칵, 방문을 잠가 버렸다.
방이 엉망진창이었다. 형에게 그악스럽게 악다구니를 치는 내 꼴도, 패악을 고스란히 받아 내는 형의 모습도 모든 게 엉망이었다.
“…….”
“…….”
씨근대는 내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형은 손바닥을 제 뺨으로 가져갔다.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제 뺨에 묻은 모욕의 흔적을 손바닥으로 문질러 닦아 낸다.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내 침이 묻은 손을 그대로 자신의 입술로 가져간다. 벌어진 입술 새로 붉은 혓바닥이 나와 손바닥에 묻은 타액을 얼굴 전체에 문지르듯 짙게 핥아 올린다.
똑똑.
“준영아?”
“…….”
손바닥을 핥아 먹는 모습을 질겁하고 쳐다보고만 있는데 그가 다가온다.
형은 알고 있다.
어머니가 아닌 타인인 여자가 밖에 있는 한은, 문이 잠겨 있든 잠겨 있지 않든 간에 내가 절대 소리 내지 못하리라는 것을. 아니, 절대 소리 지르지 못한다는 것을.
형은 무감각해 보여서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무표정이 조금 더 짙어졌을 뿐이었다.
그는 내 입을 틀어막지 않았다. 억센 손아귀가 땀에 절어 더러워진 내 교복 셔츠의 멱살을 쥐고 와락 들어 올렸다. 허술하게 달려 있던 단추 하나가 떨어져 나갔다.
나는 겁에 질린 게 아니라 형에게 기가 질렸다. 문밖에서 다시 똑똑,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준영아? 뭐 하니?”
밖에서 윤 차장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리는데도 형은 전혀 아랑곳이 없었다.
지금 그가 나에게 하려는 짓을 무의식이 먼저 눈치챘다. 심장이 덜컹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추락했다.
아아, 하며 엉거주춤 물러서 도망치려는 내 옷자락을 틀어쥐고 불쑥 다가온 얼굴이 그대로 기울어지더니 내 입술 위에 형의 입술이 뜨겁게 부딪친다.
“흐읍!”
두 눈이 경악으로 홉떠졌다. 형의 입술이 나를 삼키고 있었다.
손에 잡히는 대로 그를 밀어냈다. 강인한 어깨에 내려앉는 주먹의 무력함이 새삼 절감되었다. 입술을 뚫고 들어온 혀가 막무가내로 안을 쑤셔 댔다.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흐읍, 으읍, 으……! 읍!”
들릴 것만 같았다. 밖에 서 있는 그녀에게 지금 우리가 하는 짓이 들릴 것만 같아서 나는 작은 소리도 내지 못하고 입술을 벌린 채 뜨거운 혀가 내 혀를 휘감아 빨아 당기는 것을 온몸으로 거부했다.
거친 호흡과 타액이 얽혀들었다. 뒷덜미를 더럭 움켜잡은 손에 다시 강한 힘이 들어갔다. 먹어 치울 것처럼 살을 빨아 대던 입술이 떨어지자 요란한 소리가 났다.
나는 순간적으로 흡, 하고 숨을 멈췄다. 불안정한 호흡이 조금이라도 새어 나가게 할 수 없었다. 그는 나의 친형이었다.
“준영아, 자니? 간식 다 준비해 놨어. 준영아, 얘!”
윤 차장은 포기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형은 그렇다 쳐도 나는 저를 무시하지 않는다고 여기던 윤 차장은 마침 아버지도 없으니 내가 일부러 그녀의 부름에 응답하지 않는 거라고 오해하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날카롭고 표독스러운 노크 소리가 점점 커져 망치로 뭔가를 때려 부수는 소음처럼 크게 울렸다.
“하아, 하아…….”
지악스럽게 노크를 해 대는 윤 차장과 내 멱살을 쥐고 헐떡이는 형 때문에 무슨 판단을 할 수 없었다.
필사적으로 그를 밀쳤지만 어떤 반항도 유효하지 않았다. 그의 손이 단추가 뜯겨 나간 교복 셔츠를 벗기려고 했다. 막무가내로 상의가 벗겨져 어깨 뒤로 넘어갔다.
풀썩하고 침대 위로 몸이 쓰러졌다. 묵중한 인기척이 바깥에 들릴 것 같았다. 노크 소리가 잠시 멈칫하는 것을 보니 윤 차장도 들은 듯했다.
나는 당황스럽게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가 완력으로 나를 침대로 쓰러트리고 두 손으로 양 손목을 붙잡아 움직이지 못하게 짓눌렀다.
그가 내게 고개를 숙여 더럽다고 비난했던 행위를 이어 갔다. 뜨겁게 느껴지는 입술이 목줄기에 달라붙었다. 축축한 것이 목선을 따라 끈적하게 움직이다 살을 콱 물었다. 소리를 질러 보라는 부추김이었다.
“읏!”
어떻게 버둥거려도 나를 짓누르는 형의 무력을 뿌리칠 수가 없었고, 그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난폭하게 나를 다루는 형의 행동에 서러움과 비슷한 통증이 밀려왔다.
눈꼬리를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악문 입술에서 비릿한 핏기가 번졌다.
“준영아, 얘! 너 내 말이 말 같지가 않아? 얘가 점점!”
똑똑, 똑똑, 쾅쾅쾅……!
내 양 손목을 부러트릴 것처럼 짓누르고 있던 형이 돌연 움직임을 멈추고 나를 놓아주었다.
침과 피, 눈물이 범벅된 얼굴로 나는 형과 흔들리는 방문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하아, 하아, 아으…….”
혼란에 의식이 박살 나 버린 듯했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나는 침대를 개처럼 기었다. 쿵, 하고 바닥에 무릎을 찧으며 넘어졌다. 전신이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떨려 왔다.
수건으로 더러워진 얼굴을 미친 듯이 닦아 냈다. 서둘러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고치고 방문을 열었다.
얼굴이 붉어져 어쩔 줄 모르고 선 윤 차장이 다시 손을 높게 치켜들고 문을 내리치려는 중이었다.
“죄, 죄송해요……, 씻으려고, 물 틀어놓고 잠깐 다른 거 하느라고 못 들었어요.”
문 두드리는 소음이 순간 뚝, 하고 끊어지자 괴괴한 적요가 사위를 가득 메웠다. 숨 막히는 전조였다.
“뭐 하는데 못 들었어? 얼마나 두드렸는지 알아? 듣고 있는 줄 알았잖니……. 안에서 다 듣고 있는 줄 알았잖니…….”
헝클어진 옷매무새와 내 손에 들린 수건을 보고 윤 차장은 황망하게 말꼬리를 흐렸다.+
나는 고개를 숙였다. 살짝 열린 문틈의 간격을 더 벌리지 않으려고 문고리를 세게 붙잡았다.
“물소리 때문에 안 들렸어요. 죄송해요. 저 씻고 내려갈게요.”
“그, 그래, 그래라. 미안해. 나는 듣고 있는 줄 알고……, 뭐 하는 줄 모르고…….”
그녀는 당황한 낯으로 몸을 돌려 계단을 내려갔다.
나는 그녀의 뒤꽁무니가 사라질 때까지 좁은 문틈으로 눈동자를 굴렸다. 그녀가 사라지고 나서도 한참을 경계하며 복도를 노려보았다. 곧 인기척이 사라지고 주변이 고요해졌다.
찰칵 문을 닫았다. 그리고 다시 문을 잠갔다.
한참 문고리를 쥐고 막막하게 문만 바라보다 뒤로 돌아섰다.
준원 형은 침대에 앉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표정은 차가웠고 눈빛은 서늘했다.
우리는 꼼짝도 하지 않은 채 서로를 응시했다. 사지에서 마주한 적군을 대하듯, 숨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
“…….”
먼저 긴장의 끈을 놓은 쪽은 형이었다.
형은 내 옷을 억지로 벗기고 상식적으로 할 수 없는 짓을 했다고는 믿기 어려운 차분한 눈빛을 유지하고 있었다. 조용한 눈동자와 내색 없는 표정에서 소름 끼치는 광기 같은 게 느껴졌다.
“이리 와.”
“…….”
“이쪽으로 와.”
“……싫어.”
“싫어?”
“싫어.”
“어떡하지. 네가 싫어하는 짓을 오늘 해야 할 것 같은데.”
“…….”
가벼운 자세만큼 가벼운 어조, 평상시와 다를 바 없는 일상을 이야기하듯 말한다. 지금 내 귀에 들리는 말이 상상하기도 끔찍한 그런 뜻이 맞는지 정녕 의심스러울 정도로 덤덤한 말투였다.
“도망치고 싶어?”
“……뭐?”
“소리 지르고 싶어?”
“형 미쳤어?”
소리 지르는 건 안 된다. 소리를 지르면 누군가 내 방문을 두드릴 것이고, 형이 하는 미친 짓을 보게 될 거다. 우리가 한 짓을 들키게 될 거다.
“소리 질러도 괜찮은데…….”
형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주저 없이 내게 다가온다.
도망갈 곳이 없는데 나는 다리에 잔뜩 힘을 주고 있었다. 내 방에서 그를 피할 곳은 없었다. 이 상황이 그저 믿기지 않았다.
나는 맹수를 피해 도망가야 하는 연약한 동물이 아니었고, 그와 나는 서로 마주치는 일이 결단코 없어야 할 철천지원수가 아니었다. 우리는 그냥 형제였다. 그와 나는 누구를 피해 도망쳐야 할 이유가 없는 그냥 형제 사이였다.
“왜 이래? 형, 왜 그래? 진짜 미쳤어?”
“…….”
“왜 그래, 그러지 마. 그러지 마……!”
제발 이러지 말라고, 제발 정신 차리라고 그를 다그치듯 날카롭게 소리쳤지만 평소 대화 소리의 반도 되지 못하는 쪼그라든 음량이었다. 나는 속삭이는 비명으로 제발 이러지 말라고 애원했다.
그의 손이 다가와 가위 질려 창백해진 내 뺨을 어루만졌다. 손이 따스했다. 어린 나를 달래고 안아 주던 그때의 온기 그대로였다.
어루만지던 손이 흐트러진 머리칼을 쓸어 넘기더니 이내 꽉 틀어쥔다. 통증이 느껴지는 악력은 아니었지만 나를 옴짝달싹 못 하게 만드는 당황스러운 힘이었다. 그는 나를 이런 악력으로 만진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하지 마, 제발. 정신 차려. 제발……, 제발.”
바들거리고 떠는 내 코앞까지 바짝 얼굴을 들이밀고 빤히 쳐다본다. 형이 무슨 짓을 하려는지, 그 어떤 장면도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가 이런 짓을 해서 무서운 게 아니라, 이런 짓을 벌이고 나면 우리가 정상적인 관계로 지낼 수 없다는 사실이 무서운 것이었다.
그가 선을 넘어 버리면, 해서는 안 되는 짓을 해 버리면.
무엇이 되었든 파국이거나 파멸이었다. 형을 잃을 수도 있었다. 불길한 결말을 예감하는 손끝이 극심한 공포에 질려 떨려 왔다.
“형…….”
틈 없이 다가온 그의 입술이 형을 부르는 내 입술에 마주 닿았다. 형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 도톰하게 올라온 살에서 체온이 느껴진다. 형의 냄새와 형의 숨소리가 세세하게 전신을 뒤덮어 온다.
그의 입술이 벌어지며 후끈한 입김이 번져 왔다.
“나는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는지 잘 알고 있어. 미치지도 않았고 돌지도 않았어.”
“…….”
“멈출 생각이 없다는 뜻이야.”
뭐라고 속삭인 건조한 입술이 곧장 내 입술에 진하게 포개졌다.
그는 자신이 무슨 짓을 하는지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 오랫동안 고심하고 고대하던 것을 맛보듯 형의 입술과 혀는 처음과 다르게 부드럽게 나를 핥아 올렸다. 맛을 보려고 느끼려고 자신의 혀에 새기려고 필사적이었다.
스스로를 통제하기 힘든 숨이 왈칵 쏟아지고 내 뒤통수를 움켜잡은 손 갈퀴에 강한 힘이 들어갔다. 머리털이 한 움큼 뽑히는 통증이 일었다. 눈살이 저절로 일그러졌다.
“하읏……! 읏, 으읍……!”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무엇을 느껴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이러지 말라고 나를 움켜쥔 억센 팔과 어깨를 주먹으로 때리고 밀쳤지만 강철 같은 단단함에 도리어 결연함이 깃들어 버렸다.
그는 혀를 더욱 깊숙이 밀어 넣고 내 안을 핥아 댔다.
그 소리가, 그 느낌이, 그 감각이 미치도록 선명하다.
“흐읍, 읍, 으……, 읏.”
하나 놓치는 곳 없이 안쪽 구석구석을 헤집던 흉포한 혀와 입술이 멀어졌다.
“하아……! 하아, 하아.”
막혀 있던 숨구멍이 터지며 거친 호흡이 쏟아졌다.
형의 입가와 턱이 뒤엉킨 타액으로 지저분해져 있었다.
나는 어떤 사고도 할 수가 없었다.
형이 내게 자신의 혀와 입술을 맞대고 미친 것처럼 관능을 탐닉했다. 그리고 그 짓을 계속하고 싶어 하듯 더 가까이 다가왔다.
이 상황을 설명할 그 어떤 적절한 단어조차 떠오르지 않았다.
그가 다시 다가오는 바람에 황급히 물러섰다. 동시에 쿵, 하고 방문에 등이 부딪쳐 요란한 소리가 났다. 나는 흠칫하고 굳어 버렸다.
소스라치게 놀라 황급히 그를 올려다보았다.
내 몸이 엉망으로 부서져 형체조차 남지 않게 되는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상상할 수 없는 이 일의 끔찍한 결말 따위 아무래도 좋았다.
머릿속에 긴박하게 떠오르는 것은 들켜서는 안 된다는 경고였다. 소리가 나서는 안 된다는 것뿐이었다.
이 집 안에 있는 그 누구도, 이 세상에 사는 그 누구에게도 나와 형의 이런 모습을 들켜서는 안 된다.
급박한 초조함에 그가 무력으로 나를 세게 짓누르는데도 작은 신음조차 내지 않았다.
“…….”
형은 이를 악물고 버티는 나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내가 왜 이를 악물고 전신을 떨면서도 미세한 소리조차 내지 않으려 참고 있는지 그제야 깨달은 모양이었다.
형의 그런 모습에 왈칵 두려움이 밀려들었다. 형은 이 이후의 상황 따위는 관심도 없는 것이다. 그는 무서워하지 않았다. 자신이 하는 짓에 대해서.
나를 붙잡고 있던 손이 멀어졌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지탱하고 있던 힘이 사라지자마자 문에 등을 기댄 몸이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가 내 앞에 한쪽 무릎을 굽히고 앉았다.
바들바들 떨리는 내 뺨을 어루만졌다. 예전의 형으로 돌아와 달라고, 제발 정신 차리라고 눈물을 가득 머금은 눈망울로 형을 바라보았다.
“더러웠어?”
“……형?”
“더럽게 느껴졌어?”
그를 자극하고 싶지 않았다. 형을 더럽게 생각하지도 않고, 방금 한 짓이 더럽게 느껴지지 않았다고 도리질을 쳤다.
“하면 안 되는 거, 우리 한번 해 볼까?”
뺨을 쓰다듬던 손이 이내 양 볼을 움켜쥔다.
손아귀가 좁아지며 억지로 입술이 벌어졌다. 피하려고 고개를 돌렸지만 벌어진 입술 사이로 긴 손가락이 이미 들어오고 난 후였다. 무슨 짓인지 몰라 멍청하게 그의 손가락을 물고 쳐다보았다.
손가락이 나의 입천장을 훑었다. 질척한 곳을 훑어 대는 손가락에 야릇하고 미세한 감각이 있었다.
나는 당혹스럽게 그를 바라보았다.
형의 손가락이 안쪽을 훑어 대자 입 안에 침이 고였다. 침을 삼키려면 그의 손가락을 조이듯 물 수밖에 없었다.
“흐읍……, 우움, 웁…….”
물고 있는 손가락을 쪽 빨듯 목구멍을 조여 흥건하게 고이는 침을 삼켰다. 나를 뚫어져라 보는 눈빛이 파문이 이는 물그림자처럼 흔들렸다.
긴 손가락이 목젖에 닿을 정도로 깊이 들어왔다. 큭, 하고 호흡이 흐트러졌다. 구토감이 치솟아 나는 고갯짓을 치며 손가락을 뱉어 냈다.
“켁켁, 콜록, 콜록…….”
간헐적으로 기침이 터져 나왔다.
그는 내 타액으로 질척하게 젖어 버린 자신의 손을 응시했다.
나는 바닥에 엎어져 콜록거리다 다가오는 그를 피해 일어섰다. 도망칠 곳이 없었다. 욕실은 그를 지나쳐야 했고, 문밖으로 나가면 윤 차장이 있을지도 몰랐다.
이 층 창문으로 내달리는 나를 그의 팔이 와락 붙잡는다.
“놔, 놔아……, 이거 놔!”
“뛰어내리겠다고? 다리까지 부러지고 싶어?”
“이거 놔, 건드리지 마!”
“더러워서 닿는 것도 싫어?”
“싫어, 싫어! 형, 제발!”
단단한 팔이 버둥거리는 내 체중을 그대로 안아 들고 침대에 던지듯 내려놓았다.
흐트러진 모습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아니겠지, 아닐 거야, 하면서 다가온 형이 내 위로 올라타 양팔을 침대에 결박하듯 짓누를 때까지 아닐 거라고, 뭐가 잘못됐다고 고개를 저었다.
단정하던 형의 머리칼도 흐트러져 나를 향해 흘러내렸다. 바윗덩어리처럼 나를 짓누르는 그에게 제발 이러지 말라고 애원하는 시선을 들었다.
“그만해. 진짜 미쳤어? 왜 이래, 정말!”
“나는 미치지 않았어. 지금 제정신이야.”
“…….”
흐트러진 머리칼 사이로 음영이 진 잘생긴 눈동자가 괴괴한 빛을 뿌렸다.
“나는 그……, 더러운 짓을, 너한테 하지 않으려고, 나를 몇 번이나 죽였어. 넌 모를 거야.”
넌 영원히 모를 거야. 영원히.
무슨 짓을 당하고 있는 사람은 나인데 그가 고통스러워 보였다.
침착한 무력으로 펄떡이며 반항하는 나를 짓누르고 움직이지 못하게 버둥대는 두 다리를 휘감아 누르면서 그가 점차 간격을 좁혀 다가왔다.
“그건 참는 게 아니라, 그때마다 나를 죽이는 일이었어.”
“……이러지 마.”
“왜인 줄 알아? 하면 안 되는 짓이기 때문이야.”
“형, 제발!”
“나는 너를 보면서 수백 번 자살했어. 그 죽음이 하나하나 다 기억나.”
거짓말이 아니었다. 죽음의 뒤켠에 서서 혼백처럼 그 근처를 배회하는 눈동자가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하체에 닿는 그의 아래가 부풀어 있었다. 고통에 절여져 슬퍼하는 육신이 흥분으로 발기해 내 몸에 자신을 밀어붙이듯 누르고 문질렀다. 끔찍한 양감이었다.
“그래서 내가 이 꼴이 되어 버렸나 봐.”
스스로를 너무 많이 죽여서 이제 강준원이라고 할 수 있는 자아가 남아 있지 않다고 그가 자조적으로 중얼거렸다.
형이 그대로 고개를 내려 입술을 겹쳤다. 손목을 움켜쥔 손에는 내가 뿌리칠 수 없는 악력이 더해져 뼈가 부러질 것만 같았다.
억지로 벌어진 입술 새로 두툼하고 뜨거운 혀가 숨과 함께 밀고 들어왔다.
“읍……!”
나를 움켜쥐고 있던 손이 손목을 놓아줌과 동시에 나는 다가오는 어깨와 가슴을 밀쳤다. 거칠게 저항했지만 정신이 나가 버린 형을 저지하는 데는 터무니 없었다.
서로에게 뻗대는 악력에 겹쳐진 몸이 비틀거렸다. 형의 손가락이 머리칼을 파고들어 두피가 당길 정도로 그러쥐었다.
그가 고개를 움직여 접합된 부위를 더욱 깊게 만들었다. 아교를 바른 것처럼 맞붙은 입술에 숨 쉴 틈조차 없었다.
형과 젖은 입술 살을 마주 비비고 뜨거운 체온을 더듬어 대는 이것이 현실이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그런 생각이 들자 문득 꿈인가,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상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말도 안 되는 상념에 사로잡혔다.
열에 달뜬 입술이 떨어지며 질척거리는 현실의 소리가 났다.
숨도 못 쉴 정도로 그악스러운 입맞춤은 꿈도 내 상상도, 착각도 아니었다.
“하아, 하악, 하아, 아, 하지 마, 이러지 마. 형, 정신 차려.”
“더러워서 싫어?”
그가 서글프게 물었다. 그게 아니라고 도리질을 쳤다. 더러운 게 아니었다. 옳지 않은 일이었고,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젖은 입술이 뺨과 목을 타고 내려갔다. 땀으로 끈끈해진 살갗이 함께 쓸려 내려가자 누군가가 나를 만지고 있고 애무하고 있다는 감각이 소름으로 느껴졌다.
그가 내 젖꼭지를 입술에 물고 빨기 시작했다. 참기 힘든 느낌이 온몸을 집어삼키는 듯했다. 등허리가 뜨거워지고 아래쪽이 자꾸만 저릿해서 두 다리를 가만히 둘 수 없었다.
“하아, 형, 아, 준원 형, 아, 아, 아으……!”
그와 떨어지려고 버둥거리는 내 허리를 단단히 옭아매고 가슴에 매달려 그 짧은 시간에 부은 듯한 유두를 핥고 입술에 머금은 채 지근지근 씹어 댄다.
무섭고 두렵고 누군가에게 들킬까 봐 극도로 초조한 것 외에도 형이 임주호와 이런 짓을 하고 있었다는 데에 생각이 미치자 갑자기 그가 참을 수 없이 미워졌다.
“하지 마!”
나는 그를 때렸다. 형의 머리통을 주먹으로 때리고 어깨를 때리고, 그의 셔츠가 흐트러지고 찢어질 때까지 주먹을 휘둘렀다.
그는 거친 반항에도 어떤 타격도 받지 않고 내 바지와 속옷을 한꺼번에 벗겨 냈다. 형의 앞에서 치부가 허옇게 드러났다.
“읏!”
나는 허벅지를 오므렸다.
어릴 때는 그가 목욕도 시켜 주고 함께 씻기도 했지만 이차 성징이 나타나면서부터는 늘 혼자 씻었다. 그의 앞에서 옷을 벗는 일도 없었고, 형이 내 앞에서 옷을 벗는 일도 없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고, 말할 필요도 없었다. 나는 그곳에 털이 없었다. 쪼그라들어 축 늘어진 성기와 그저 허옇기만 한 살갗, 형에는 결코 보여 주고 싶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는 수치스러움에 눈물이 비어져 나왔다.
그가 벗겨진 하체를 진해진 눈동자로 주시하고 있었다.
“우욱……, 윽.”
형이 손을 내려 나의 남성을 어르고 만져 주었다. 전혀 경험해 보지 못한 몸서리쳐지는 감각이 긴장한 육체를 휩쓸었다. 등줄기가 뻣뻣하게 굳어 버린다. 나는 형의 팔을 더럭 붙잡아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괜찮으니까 긴장 풀어.”
“하지 마. 하지 말란 말이야! 나는, 나는……!”
싫고 무서운 것을 넘어서 이제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는 절망감과 더불어 감각이 세밀하게 더해질수록 참을 수 없는 수치와 모욕감이 일었다.
“씨발, 씨발, 형, 형……, 임주호한테도, 그 새끼도, 이렇게 만졌어?”
“…….”
“그 새끼도 이렇게 만졌지?”
“…….”
“건드리지 마! 나 만지지 마. 내 몸에 손대지 말란 말이야!”
혼재한 온갖 감정이 그가 나의 성기를 쥐고 만지는 동안 파도처럼 덮쳐 왔다. 반항하면 할수록 손길이 찐득해졌다.
습기로 달라붙은 손바닥 살에 무력하게 늘어져 나를 만지는 형의 손길에 사지를 간헐적으로 떨며 쉴 새 없이 욕을 중얼거렸다.
“……형은 짐승이야. 흐윽, 이러는 거 짐승이나 하는 짓이야. 씨발, 임주호한테도……, 개새끼.”
임주호의 욕을 했다가, 형의 욕을 했다가, 이 비현실적인 상황을 저주했다가…….
점점 아무 생각을 할 수 없는 망실의 상태가 되어 그의 손에 사타구니를 바짝 붙이고 흐느끼듯 신음했다.
어릴 때 책상 밑에 숨어서 본 형의 수음이 감은 눈 안으로 영상처럼 펼쳐졌다.
검게 자란 음모, 덜 여문 성기가 징그럽게 발기되어 그의 손가락 하나하나에 반응하고, 고조된 숨소리를 억제하지 못해 형의 호흡이 씨근거렸던 그때.
“아, 아……, 아읏……!”
절정에 임박해 단애 아래로 추락하는 듯한 아찔함이 전율처럼 일었다.
땀이 배어나는 손으로 나를 만지느라 근육이 불거진 팔뚝을 다급히 붙잡았다. 전신이 떨려 오는 파정에 시야가 뿌옇게 흐려졌다.
“하아, 하아……, 아…….”
주르륵 눈물이 눈꼬리를 타고 관자놀이를 지나 귓바퀴로 흘러들었다. 뜨겁게 고이는 물소리가 찰랑였다.
독 같은 쾌감이 혈관을 도는 피를 타고 온몸으로 물감처럼 번져 온다. 구역질이 나고 아득하다.
“…….”
흐려진 눈을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제 손을 적신 내 흔적을 보고 있었다.
형의 수음을 목격하고 난 이후로 나는 자위에 거부감이 생겼다. 성적 호기심보다 불쾌하고 더러운 감각이 먼저 느껴졌고 죄책감 때문에 흥분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자위를 외면하자 몇 번의 몽정이 있었다. 무슨 꿈을 꾸었는지 새벽에는 거의 기억이 나지 않는 그저 몽환처럼 내 몸은 나른하게 혼자 쾌감에 젖었다가 생리적으로 발산했다.
그가 사이드 테이블 위에 놓인 휴지를 뽑아 손을 닦았다. 형이 뭐라고 말했는데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들리지 않았다. 침대에 늘어져 부옇게 보이는 내 방 한구석에 멍한 소실점을 두었다.
부석거리는 소음이 들려왔다. 옆에 누워 있던 그가 침대에서 일어나는 소리였다. 흐트러진 머리칼과 옷을 추스르고 그가 달칵 방문의 잠금을 풀고 문을 열었다.
나는 기겁하며 사지를 바르작거렸지만 그뿐이었다. 허옇게 드러낸 치부를 감추지도 못했고 다리를 오므리지도, 이불을 가져와 벗은 하반신을 가리지도 못했다. 무기력하게 늘어져 벌레처럼 한 차례 퍼덕이기만 했다.
“네, 저 들어왔어요. 준영이는 좀 피곤한가 봐요. 잔다고 누웠어요. 그냥 놔두세요. 자게.”
형의 목소리였다. 층계참에서 무슨 일이냐고 물어 오는 윤 차장의 음성도 아득히 먼 곳에서 울리는 메아리처럼 들려왔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밖으로 적막한 어둠이 깔렸다.
학원에 가야 하는데……. 오늘 모의고사를 대비한 기출 문제 풀이를 한다고 했다.
불처럼 타오르던 뜨거움에 비례한 걸까, 차가운 공허가 내 방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늦여름 밤이 써늘했다. 팔다리가 한기로 떨렸다. 뺨에 말라붙은 소금기 때문에 양 볼이 따끔따끔했다.
나는 침대에 늘어져 터럭 하나 없이 민둥한 다리 사이로 내가 쏟아 낸 흔적이 말라붙어 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몇 번인가 일어나 앉으려고 사지를 꿈틀거렸다. 손가락 끝을 움직이는 정도는 쉬웠지만 형이 짓눌렀던 손목과 그가 붙잡았던 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상반신도 일으킬 수 없었다.
곳곳에 형의 흔적과 그가 나를 만졌던 감각이 선뜻하게 남아 있었다.
그는 책상 의자에 앉아 침대에 늘어져 누운 나를 무심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에게 말을 걸 의지도, 돌아볼 기력도 없었다. 나는 그대로 침대에 누워 시간을 좀 더 흘려보냈다.
조용한 사색에 잠긴 형은 내게 한 짓을 후회하는 것도 같았고 곱씹어 보는 것도 같은 침묵을 유지하고 있었다. 미치지 않았다고 주장하면서 미친 사람만 할 수 있는 상념에 빠진 얼굴이었다.
나는 꿈틀거리다 가까스로 일어나 앉았다. 형이 나를 짓누르고 그의 손에 사정했을 뿐인데 온몸에 기운이 다 빠져 팔다리가 후들후들했다.
실제로 손목과 눈에 들어오는 상반신 여기저기에 형이 만들어 놓은 열상이 보였다.
“……거기서 뭐 해?”
침대에 앉아 두 다리를 내리고 형에게 물었다. 물끄러미 나를 보던 그의 눈썹이 희미하게 움찔했다.
벽의 전등 스위치를 눌러 어두워진 방 안에 빛을 불러들이려는 그의 움직임을 서둘러 막았다.
“불 켜지 마.”
“…….”
“불 켜지 마. 나 그럼……, 죽을지도 몰라.”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욕실로 걸음을 옮겼다.
그의 손에 겨우 사정 한번 했을 뿐인데 휘청하고 무릎이 꺾이며 몸이 비틀거렸다. 갑자기 중력이 사라진 것만 같았다. 벽을 짚어 간신히 중심을 잡았다.
“할 얘기 있어.”
“…….”
“앉아 봐.”
“나는 할 말 없어.”
“준영아.”
형이 나를 불렀다. 나의 이름을 부르며 돌아보기를 채근했다.
익히 아는 음조 낮은 육성이 귓전을 간지럽히듯 들려왔다. 불현듯 소름이 끼쳤다. 그가 내 하체를 뜨겁게 만지며 내뱉던 호흡이 바로 등 뒤에서 들리는 것처럼 가까운 곳에서 들려왔다.
“강준영.”
“…….”
나는 벽을 짚은 채 그를 돌아보았다.
그는 책상 의자에 앉아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한기가 느껴졌다. 더럽다거나 역겹다는 말로는 설명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스산해진 저녁 바람이 그가 열어 놓은 창문으로 들어왔다. 바람이 부드러운 옷감처럼 피부를 한 차례 휩쓸고 지나갔다.
“우리 아무 일도 없었어.”
나는 그에게 말했다. 목소리가 말라 부스러지는 검불처럼 건조하게 울렸다. 형의 미간이 굳어졌다.
“여기서 아무 일 없었어. 형하고 나……. 우리 아무 일 없었어.”
“…….”
“아무 일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거야.”
나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걸었다.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벽을 짚어 가며 욕실로 들어갔다.
씻고 싶었다. 흔적이 남지 않도록 깨끗하게 씻은 후 그에게 말한 대로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조용히 잠들고 싶었다.
샤워기 밑에 서서 수전을 틀었다. 차가운 물이 세차게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지만 춥다는 감각이 마비되었는지 어떤 느낌도 없었다.
물줄기가 가슴을 타고 허벅다리 사이로 주르륵 흘러내렸다. 미미하게 끓어오르던 열기와 체액이 씻겨 내려갔다.
눈을 감고 고개를 들었다. 물방울이 이마를 세차게 때렸다. 어떤 생각도 하지 않고 차가운 물을 오랫동안 맞았다.
✦ ✧ ✦
잠든 것인지 기절한 것인지 알 수 없는 수면이었다. 열어 둔 창문으로 서늘한 아침 공기가 스며들었다.
버석하게 마른 시트가 안락한 온도로 나를 감싸고 있었다. 일어나고 싶지 않은 아침이었지만 일어나야 했다. 아침 식사 시간에 내려오지 않는다고 누가 데리러 오는 것은 질색이었다.
겨우겨우 삭신을 일으키고 나서야 오늘이 쉬는 날이라는 사실이 기억났다. 공휴일이라 학원도 오늘은 쉰다. 어제 학원에 갔어야 했다. 모의고사 문제를 받아서 오늘 공부하려고 했었다.
예정대로라면 나는 오늘 학원 자습실에서 하루 종일 문제를 풀어야 했다. 그게 내 일상이었다. 당장 저번 주까지도 그렇게 살았고, 수능 전까진 그렇게 사는 게 예정되어 있었는데 하루아침에 모든 일이 엉망진창이 되어 버렸다.
일상을 살아 내야 한다는 의무감도 의지도 생기지 않았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고, 심지어 생각마저 하고 싶지 않은 무기력이 온몸을 처지게 했다.
도로 침대에 누우려다 말고 노크 소리에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네?”
겁에 질린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형이 아니었으면 했다. 형만 아니면 된다. 하고자 한다면 의도적으로 형과 마주치지 않고 살 수 있었다. 운이 사납지만 않으면 몇 달이고 우리는 마주치지 않을 수 있었다. 여태 그렇게 살았으니까 계속 그 꼴로 살면 되는 일이었다.
“준영이 아직도 자니?”
윤 차장이었다.
안도감과 함께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시계를 퍼뜩 돌아보았다. 아침 여덟 시, 주말이나 쉬는 날에는 늘 이 시간에 아침을 먹는다.
“아니요. 저 일어났어요.”
“아침 차려 놨어. 아버지가 내려오라고 하셔.”
“……저 피곤해서요. 오늘 휴일이니까 더 자려고요. 이따 먹을게요.”
달칵, 달칵, 그녀가 문고리를 흔들었다. 문이 잠겨 있었다.
샤워를 마치고 나왔을 때 형은 내 방에 없었다. 그가 나갔음을 확인하고 단단하게 방문을 걸어 잠갔다.
형이 어제 내게 그런 짓을 하지 않았으면…….
나한테 키스하고……, 내 몸을 애무라도 하는 것처럼 핥고 깨물고, 살을 씹어 대고……, 그의 손에 사정하게 만들고, 그리고 그는, 형의 하체는 나를 만지면서 외면하기 힘들 정도로 용적을 부풀리고 있었다.
나는 부르튼 입술을 멍하게 만지작거렸다. 생전 느껴 보지 못한 날카로운 감각이 아직도 표피에 흐리게 남아 있었고, 손가락으로 만지자 형의 냄새와 입술의 감촉, 물컹하고 입안으로 들어와 헤집던 두툼한 혀, 축축한 숨결, 그 모든 것들이 선명하게 되살아났다. 전부 다.
“준영아, 응?”
“네?”
윤 차장의 말을 듣지 못했다.
이 상황이 정말 싫었다.
그가 그런 짓을 하지 않았으면 방문을 잠글 필요가 없었다. 방문 잠그는 작은 소리가 들릴까 봐 극도로 긴장할 이유도 없었고, 형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아침 식사를 거르는 일도, 내게 예민해져 있을 윤 차장의 신경을 건드릴 필요도 없었다. 모두가 다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었다.
“그러지 말고 내려오렴. 응? 먹고 다시 자. 자는 것도 기운이 있어야 하지. 어제 저녁도 걸렀잖니.”
그녀는 내가 어제 저녁을 거른 게 마음에 쓰이는 듯했다.
그렇지만 하루 이틀 굶는다고 죽는 것도 아니고, 한 끼 정도 안 먹어도 사는 데 아무 지장이 없었다. 대체 왜 저렇게 밥밥밥밥 하는 건지, 나를 잘 먹이는 일이 임무인 윤 차장에게 짜증이 일었다.
“정말 괜찮아요. 먼저 드세요. 이따 배고프면 먹을게요.”
지금은 그녀에게 말을 건네는 것조차 힘들었다. 언성을 높이려고 복부에 힘까지 줘야 했다. 한층 발성을 높여 됐다는 거절의 의사를 전하고, 그 사소한 대화에도 지쳐 가파르게 숨을 내쉬며 침대 위로 쓰러지듯 누워 버렸다.
몸도 아팠고 머리에는 두통이 일었다. 입맛이 없어 물도 삼키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윤 차장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어제 일로 내가 기분이 상해 그녀를 마주하기 싫어 온갖 이유를 대며 피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아침 꼭두새벽부터 차려 놓은 성의가 있지. 누가 일어나서 공부하라니? 먹고 다시 자. 아버지 게으름 피운다고 뭐라 하면 아줌마가 말해 줄게.”
“정말 먹기 싫다니까요……! 싫다는데 왜 자꾸 그러세요?!”
지금은 어릴 때 돌아가신 친엄마가 살아 돌아와서 밥을 먹으라고 해도 싫었다. 제정신이면 어제 그런 일이 있었는데 당사자가 있는 식탁에 마주 앉아 태평스럽게 밥을 먹을 수는 없었다. 나는 밥을 먹기 싫은 게 아니라 형을 마주치는 게 두려운 것이었다.
짜증 섞인 대꾸에 윤 차장은 말이 없었다.
“어휴, 진짜! 짜증 나.”
나는 이불을 확 뒤집어쓰고 온갖 성질을 다 부렸다.
잠이 확 달아났다.
수면으로 느슨하게 풀어져 있던 신경이 가시처럼 치솟았다. 밤새 겨우 가라앉았던 기억이 분탕질 치듯 일어났다. 집요하게 나를 아침상에 앉히려고 하는 그녀에게 진심 어린 진절머리가 일었다.
나 좀 놔두라고 이불 안에서 뻥뻥 발차기를 하고 있는데 느닷없이 쾅쾅대는 소리가 들렸다. 흠칫 놀라 머리 위까지 뒤집어썼던 침구를 걷어 내렸다.
“강준영, 너 이리 나와!”
아버지였다.
한숨을 쉬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힘겹게 걸어 방문을 열었다.
아버지와 윤 차장이 문밖에 서 있었다. 그녀의 눈가가 붉었다. 윤 차장은 화가 잔뜩 난 아버지의 팔을 붙잡고 하지 말라고 흔들고 있었다.
“됐다니까. 하지 마세요.”
“사과드려.”
“…….”
나는 고개를 숙인 채 아버지의 발치만 응시했다. 윤 차장이 다시 아버지를 말렸다.
“이러지 마요, 진짜. 늦잠 자고 싶을 때도 있는 거지. 더군다나 오늘 오랜만에 쉬는 날인데, 그냥 두세요.”
“얼른 사과해라.”
“……죄송해요. 정말로 피곤해서 그랬어요.”
아무래도 좋았다. 식탁으로 내려가지만 않으면 되는 일이었다. 나는 반성하는 얼굴로 말했다.
“그럴 필요 없다는데도. 내려가서 식사해요. 준영이는 더 자고.”
윤 차장은 사과할 필요도 없는 일이라고, 괜찮으니 들어가 보라는 눈짓을 했다. 그녀는 곧 한숨을 쉬고 일 층으로 걸음을 돌렸다.
아버지는 바닥만 보고 멀거니 서 있는 나를 매서운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죄인처럼 고개를 푹 숙인 나에게 아버지는 그래도 한층 누그러진 말투로 말했다.
“너 짜증 내는 소리 밑에까지 다 들렸어. 윤 차장 보기 민망해서 아버지 혼났다.”
나는 그 말에 흠칫했다.
겨우 그 정도의 외침이 아래층에 전달될 줄은 몰랐다. 형과 어제 한 짓들이, 그와 나눈 대화들이 들렸을지도 모른다. 등 뒤가 서늘해졌다. 나는 슬쩍 눈을 들어 아버지의 안색을 살폈다. 우리가 한 짓을 들었는지, 듣지 않았는지 확인하려고 정신없이 그의 낯을 살폈다.
감히 그런 일이 있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하는 아버지가 혼나는 강아지처럼 두 귀를 축 늘어트리고 쳐다보는 내 눈길의 진의는 파악하지 못하고 조금은 안쓰러워졌는지 내 어깨를 토닥토닥 두드렸다.
“내려와 밥 먹어. 어제 저녁도 안 먹었다며. 백 마디 죄송하다는 말보다 그거 하나면 아줌마 마음 풀어진다.”
“조금 이따 먹을게요.”
“집안 분위기 이상하게 만들지 마라.”
또 거부하자 같은 말을 두 번씩 하게 만드는 걸 용납하지 않는 아버지는 내 팔을 억지로 끌어냈다.
“나, 나중에 먹을게요.”
“그럼 먹지 말고 앉아만 있어.”
나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아버지에게 붙잡혀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숙인 시야로 형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고개를 들지 않고 식탁에 앉았다. 그를 보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수저를 들고 내 몫의 밥을 먹기 시작했다. 목이 막혀 들어가지 않아 물에 말았다. 꾸역꾸역 억지로 밥을 먹는 내게 아버지가 윽박질렀다.
“준영이 고개 들어. 사내새끼가 그게 뭐 하는 짓이야.”
“…….”
아버지는 내가 하지도 않던 늦은 반항을 한다고 여기는 듯했다. 모든 것을 꼴도 보기 싫어하는 자세로 앉아 있으니 그것은 구차스럽게 변명을 늘어놓아도 그의 생각처럼 보일 테다.
내 소심한 반항을 초장에 잡아 놓겠다는 의도가 다분했다.
“맛있게 먹어. 너희 새어머니가 아침부터 일찍 일어나 힘들게 준비한 거다.”
늘 받는 아침상이었다. 새삼 아침부터 일찍 일어나 힘들게 준비했다는 과장은 필요치 않았다.
마지막 경고와 진배없는 아버지의 말에도 나는 고집스럽게 얼굴을 들지 않았다.
우리의 신경전을 남의 일처럼 방관하며 묵묵히 아침을 먹던 형이 수저를 식탁에 내려놓고 입을 열었다.
“제가 알아듣게 얘기할게요.”
설득력 있는 부드러운 저음이었다.
식탁에 이마가 닿을 정도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기에 아버지가 어떤 수긍의 표시를 했는지는 보이지 않았다.
“그래라. 준원이 네가 잘 좀 가르쳐.”
아버지는 높아졌던 언성에 비해 순순하게 형의 말을 듣고 물러났다.
대화 없는 침묵의 아침 식사가 계속되었다.
물에 만 밥만 무식하게 먹어 대는 내 밥그릇에 형이 반찬을 놓아 주었다. 김치며 볶은 멸치, 내가 좋아하는 햄 반찬 같은 것들.
그의 젓가락이 내 수저 위에 반찬을 살뜰하게 올려 줄 때마다 가슴이 저미듯 욱신거렸다.
투둑, 꾹 참으려고 했던 눈물이 양 뺨을 가르고 식탁 유리로 떨어졌다.
내 눈물을 보고 형도 아버지도 조용했다. 아버지는 당신이 윤 차장의 편을 들며 나를 윽박질렀기에 내가 설움에 젖어 우는 것이라 여기는 듯했고, 형은……. 형만이 내가 왜 울음을 터트렸는지 알겠지.
아버지가 자신의 편을 들어 준 것이 민망했는지 윤 차장은 수선스럽게 싱크대로 걸어가 갑자기 설거지를 시작했다.
울음을 참느라 어깨를 희미하게 들썩거리며 겨우겨우 밥 한 공기를 비우고 일어났다.
“잘 먹었습니다…….”
목구멍이 막혀 말도 잘 나오지 않았지만 인사했다.
“그래. 얼른 올라가. 공부하느라고 피곤했을 텐데 내가 눈치 없었어. 가서 좀 더 자. 자고 일어나면 간식 만들어서 올려 보내 줄게.”
“……네.”
윤 차장은 미안하다는 듯이 측은하게 나를 바라보았다. 어서 들어가 쉬라는 동정과 위로가 녹아 있는 말투였다.
식탁에서 일어나다 형과 부지불식간에 눈이 마주쳤다. 황급히 그의 눈동자를 피했다. 형도 막 식사를 끝낸 참이었다.
나는 그와 함께 이 층으로 올라가지 않으려고 빠른 걸음으로 주방을 벗어났다.
거실을 지나 계단으로 향하는 급한 움직임은 자칫 잘못하면 고꾸라질 것처럼 불안했다. 계단을 반쯤 올라갔을 때 형의 인기척이 들렸다.
도망치듯 움직이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 태연함을 가장하면서도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서둘러 내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막 문을 닫으려는데 형이 바깥쪽에서 불쑥 밀었다. 내가 저지할 것이라 예상한 힘이었다. 막을 새도 없이 그가 문을 밀치고 안으로 들어왔다.
“혼자 있고 싶어. 나가 줘.”
“싫으면 싫다고 말해. 아버지한테 무조건 네 네 할 필요 없어.”
“싫다고 말했어. 내 말은……, 이 집에서 내 말 들어주는 사람 없어. 그건 형도 마찬가지야.”
방으로 들어온 형의 존재가 아무 짓도 하지 않는데 나를 공포에 떨게 만들었다. 어서 나가 달라고 방문을 활짝 열어 그를 절대 반기지 않음을 시사했다.
“어제 일은……, 준영아.”
무슨 말을 하려는 형의 얼굴을 나는 그제야 제대로 직시했다.
형은 나만큼 혼란스러워 보이지 않았다. 언뜻 보면 표정이 없어 태연해 보이기까지 했다. 어떻게 저리도 아무렇지 않을 수가 있는지, 그런 짓을 해 놓고 나의 눈을 물끄러미 응시하는 형의 천연한 태도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데?”
내가 되묻자 그가 나를 바라보았다.
뚫어져라 바라보는 검은 눈동자에 찰진 윤기가 스며들었다. 총기가 지나치다 못해 고요한 광기가 선명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그와 마주 보고 대치하고 있는 듯한 이 상태가 불안해 미칠 것만 같았다.
어젯밤의 일을 없던 일로 만드는 나를 보며 그의 입가에 쓴 웃음이 그려졌다.
혼란스러웠다. 형이 내게 왜 그런 짓을 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었는지, 그런 짓을 하고도 태연할 수가 있는지, 나의 상식으로는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다.
백번 양보해서 갑자기 정신에 무슨 병이 생긴 거면, 그래서 형이 그랬던 거면 그 정도는 되어야 겨우 이해 가능한 일이 바로 어제 우리가 벌인 짓이었다.
그만 나가 달라는 내 간절한 눈빛에 그럴 마음이 전혀 없어 보이는 형이 말했다.
“오늘 휴일이고 아버지도 외출 안 하실 것 같던데.”
“…….”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덮어 두기에는 조금 큰 일이지. 그렇지 않아?”
“무슨 말이야?”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굴지 말라고. 아무 일도 없었던 거 아니니까.”
“…….”
뇌에 벌레가 달라붙어 정신이 나가 버린 형은 기어코 어제의 일을 입 밖으로 꺼내 발설해 가며 힘겹게 덮어 두려고 하는 나를 자극했다.
“형 진짜 왜 이래.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두 사람 다 지금 너한테 신경 곤두서 있는 것 같은데 재미있는 소리라도 나면 냅다 튀어 올 거야.”
그가 조심성 없이 지껄여 대는 단어들이 문밖으로 흘러나갈 것 같아 활짝 열어 둔 방문을 서둘러 닫아 버렸다. 이 집의 방음이 그다지 좋지 않다는 걸 아침에 확인한 터라 더욱 조심스러웠다.
아버지와 윤 차장은 아래층에 있고, 주변에 누가 있을 턱이 없지만, 쥐새끼라도, 작은 새라도 우리들의 대화를 들어서는 안 된다.
“진짜 미쳤어? 무슨 약 같은 거, 그런 거 먹어?”
“뭐?”
“우울증이나……, 그거 티브이에서 봤어. 수면제 과용하면 나타나는 환각이나 환청 같은 거, 조현병, 그런 거.”
차라리 제발 그런 거였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물었다. 그의 표정이 황당하고 아팠다.
“임주호하고 일 때문에 형한테 더럽다고 해서, 그래서 그런 거면……! 그거 잘못했다고 말했잖아. 내가 잘못했다고…….”
어제 더럽다고 비난한 말이 형을 이토록 화나게 한 것이라면, 그래서 형이 나를 벌주고 있는 거면 나는 백 번이고 천 번이고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 수 있었다.
“다시는 그런 말 안 할게. 다시는 그런 생각도 안 할게.”
그렇다고 해도 지나치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 혼란스럽게 말을 쏟아 내다 형을 바라보았다.
“이러면 안 되잖아. 내가 무슨 잘못을 한 거여도, 형이, 형이 나한테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
“…….”
그는 대꾸하지 않고 가만히 나를 응시할 뿐이었다. 납득할 수 있게 어서 설명해 보라고 온몸으로 시위하는 나에게 툭 던지듯 말했다.
“내 동생, 내 마음대로 해도 괜찮잖아……?”
“……뭐라고?”
그의 말에 놀라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내가 한 걸음 물러나면 그가 한 걸음씩 다가왔다. 벽에 등이 닿아 더는 물러설 곳이 없었다.
가까이 다가온 그가 하얗게 질린 내 뺨을 손으로 쥐고 어제처럼 쓸어만졌다.
형은 정신이 완전히 나가 버린 눈을 하고 있었다.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는 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런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소름 끼치는, 마냥 싫지만은 않아서 더 소름 끼치는 감각이 그가 내 아래를 만져 주었을 때처럼 등골을 타고 진저리치듯 내려갔다.
“장난……, 하는 거지? 이런 장난하지 마. 싫어. 싫어.”
“장난이라고? 넌 이런 게 장난이야? 동생한테 이런 장난을 쳐?”
“…….”
“누가? 어떤 미친 새끼가?”
“형…….”
잘못한 것은 그인데 또 애달프게 물어 온다. 어젯밤을 장난이라고 말하지 말라고.
장난이라니 말도 안 된다. 장난이 아니기 때문에 문제였다.
경직돼 그를 경계하는 내 귓가에 형의 입술이 살포시 내려앉았다. 애처롭게 달아오른 입김이 살갗에 닿아 어깨가 흠칫했다. 오한이 일었다.
허벅지에 뭉툭한 것이 불쑥 밀려와 시선을 내리다 그대로 굳어 버렸다. 그의 남성이 발기해 있었다. 그것은 뚜렷하고도 명확하게 나를 향해 발정하고 있었다.
혐오감이 치솟았다. 어릴 적 보았던 그의 수음, 어제 내 속살에 닿고 싶어 하던 부풀어 오른 성기, 선뜩한 실물감이 피부로 느껴졌다.
형은……, 나를 상상하며 사정했을까.
나는 거칠게 도리질을 쳤다.
“아직도 장난 같아?”
“왜 이래, 도대체 왜 이러는 건데……! 차라리 화를 내!”
그의 팔이 어깨를 감쌌다. 곧 으스러질 정도의 힘으로 싫다고 뻗대는 나를 가슴에 안았다.
나는 단단한 어깨에 뺨을 기댔다. 등을 조이고 팔을 조여 오는 완력에 갇혀 형의 냄새와 체온을 진력나도록 절감했다.
그의 애정을 그리워했다. 그가 예전처럼 나를 사랑하는 동생으로 도닥거려 주었으면 좋겠다고 빌기도 했었다. 다만 이런 방식은 아니었다.
그는 자신에게 혼잣말하듯 말했다.
“그건 내가 십 년이 넘게 알고 싶었던 거야.”
“…….”
“차라리 화를 내라고……? 네가 뭘 잘못했는데?”
그가 자조적으로 묻는다. 저 자신에게 묻는다.
형을 좋아하고, 형에게 인정받고 싶고, 그를 누군가에게 빼앗기고 싶지 않았지만 이렇게는 아니었다. 형에게 사랑받는 동생이 되고 싶었지, 욕망의 대상이 되는 것은 꿈에도 생각지 않았다.
아랫입술을 콱 깨물었다. 임주호에게 하듯 동생인 나에게 욕구를 풀어내려는 그의 모습에 모멸감이 일었다. 전신이 떨려 왔다.
으스러지게 나를 끌어안고 있던 팔이 풀렸다. 그를 향해 적의를 드러냈다. 그를 노려보았다. 원망스럽게 올려다보았다.
“그렇게 쳐다보지 마. 아파.”
“아파? 나한테 이런 짓을 해 놓고……, 아프다고?”
“아파. 진짜야. 정말로 아파.”
자신의 왼쪽 가슴을 손으로 문지르며 형은 정말 통증을 느끼는 것처럼 눈살을 구겼다.
그도 나도 알고 있었다. 나는 그와 벌이는 어떤 짓도 발설할 수 없었다. 누구에게도 발설할 수 없는 일이 닫힌 방문 안에서 하필이면 살붙이와 함께 벌어지고 있었다.
닫아 놓은 문을 그가 슬쩍 돌아보았다. 그의 손이 문을 잠갔다.
나는 형의 어깨 너머로 보이는 방문을 망연하게 응시했다.
문이 닫히고, 닫힌 문이 잠기면서 어떤 세계와 세계가 단절되었다.
나를 압도하는 형의 완력에 몸부림은 소음을 만들 뿐이었다. 내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을 아버지는 형의 말처럼 작은 낌새에도 곧장 달려와 참견할 가능성이 농후했고, 윤 차장은 나를 어미 고양이를 잃은 새끼 고양이처럼 여기고 수시로 살폈다. 그 나름의 배려로 엄마 없이 자란 나의 결핍을 채워 줄 수 있다고 믿는 여자였다.
무슨 짓을 하려고 작정한 형을 두려움 섞인 눈동자로 바라보았다.
그가 나를 훌쩍 안아 올렸다. 형보다는 작았지만 이제 성인으로 보이는 나를 그는 무게감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가뿐하게 들어 올려 침대 위에 눕힌다.
“형은 짐승이야. 우리 이러는 거 짐승이나 하는 짓이야!”
“그럼 임주호하고 할까?”
그가 임주호의 이름을 꺼내자마자 피가 싸늘하게 식어 버렸다.
“뭐?”
“……걔 이름이 임주호 맞지? 걔랑 할까? 짐승처럼?”
“…….”
입이 떨어지지가 않았다.
차마 임주호하고 뒹굴며 욕구를 풀라고 말하지 못하는 내 울컥거림을 주시하며 형이 물었다.
“아니면 너랑 할까?”
“…….”
“짐승처럼.”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다. 나는 올가미에 묶인 새처럼 나를 뚫어져라 보는 눈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형을 미워하게 만들지 마.”
“내가 존경받고 사랑받는 형으로 살 수 있을 것 같아?”
“…….”
“그게 가능하다고 하면 피를 갈아 버리고 싶었어. 차라리 짐승이 됐으면 좋겠다고, 나는……, 나는, 몇 번이나.”
알 수 없는 말을 혼곤하게 중얼거리던 형의 입술이 앙다문 나의 입술을 덮었다. 열어 주기를 채근하는 입술의 강도가 더해질수록 나는 어금니를 세게 악물었다.
고개를 비틀어 입술을 떼어 낸 그가 낮게 한숨을 쉬었다.
“준영아.”
입아귀를 꽉 닫고 있는 나를 감미로운 음성으로 부른다. 나를 예뻐하고 귀하게 여기던 옛날처럼.
“강준영.”
눈을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형의 눈동자가 기타를 다루듯 진지했다. 또 한편으로는 무언가에 푹 젖어 깊은 밤처럼 그윽하게 빛나고 있었다. 짐승의 눈동자는 아니었다. 총명하고 아름다웠다.
뜨거운 손이 내 뺨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꽉 다물고 있는 입술을 저절로 느슨하게 만드는 손놀림이었다.
제발 이러지 말아 달라는 애원을 하려 할 때였다. 살짝 벌어진 틈새를 놓치지 않았다.
형이 내게 키스했다. 벌어진 입술로 미끄덩한 혀가 불쑥 들어와 안을 자극했다. 맞물린 고개가 각도를 더하며 비틀어질 때마다 큰 손아귀가 목덜미를 꽉 움켜잡았다.
“……으웁! 흣!”
그의 어깨를 때렸다. 조금만 다정해지면 바로 풀어져 버리는 내 속성을 형은 잘 알고 있었다. 음흉한 간교였다.
“윽!”
막무가내로 밀고 들어오는 혀를 깨물었다. 형의 얼굴이 떨어져 나갔다.
“하아, 하아, 하악…….”
가슴이 격하게 부풀었다 꺼지기를 반복했다.
그를 노려보았다. 죽일 수만 있다면 형을 죽여 버리고 싶다는 강한 충동이 밀어닥쳤다. 손에 잡히는 것을 막무가내로 휘둘렀다.
“……읏!”
겨우 손에 잡힌 것이 연필이었다. 연필의 흑연이 그의 팔 위쪽에 박히며 부러졌다. 반소매 상의 아래로 드러난 팔뚝에 가는 핏줄기가 주르르 흘러내렸다.
부러진 채 내 손에 쥐어져 있는 연필과 씨근덕거리는 나를 형의 눈이 차례로 바라보았다.
“정신 차려. 아직 안 늦었어. 제발, 제발 정신 차려.”
“다음부터는 칼로 찔러. 이 정도는 아프지도 않아.”
그는 어깨에 박힌 흑연을 심상한 손길로 빼냈다. 핏줄기가 굵어졌다. 형은 소매를 끌어 내려 대충 피를 닦아 냈다. 닦아 내도 꽤 깊게 찔린 상처에서 핏방울이 계속 솟아났다.
멎지 않는 핏방울을 그대로 두고 그가 다시 내게 다가왔다. 붉은 피를 본 그의 숨과 살갗이 흥분해 있었다.
먹이를 노리는 듯한 입술이 나를 덮었다. 살을 물어뜯는 키스를 쏟아부으며 나와 닿는 면적을 점차 넓혀 갔다.
다급하게 헛손질하던 손이 내 상의를 벗겨 올렸다. 하지 말라고 뻗대는 내 바지와 속옷도 한꺼번에 그러잡고 벗겨 낸다.
털 오라기 하나 없이 밋밋한 치부를 주시하는 혈육의 눈길이 죽기보다 더 싫었다.
허리를 비틀고 가랑이를 오므리고 하체를 꿈틀거렸다.
“흐읍, 읍……! 으응, 읏.”
정신없이 입을 맞추는 형의 가슴 고동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심박이 빠르게 뛰고 있었다. 달음박질치듯 매우 빠르게, 육식 동물을 피해 초원을 달리는 사슴처럼 싱싱하게 펄떡이고 있었다.
그를 밀치는 손에 피가 묻어났다.
형은 피를 흘리면서 나를 애무했다. 내 입술을 빨고 여린 살을 빨고, 가슴을 빨고, 믿기지 않는 짐승의 소리를 내면서 열이 올라 부푼 젖꼭지를 입술에 머금고 목구멍을 조여 빨아 댔다.
“아읏, 흣, 형……, 아, 욱……!”
그에게 아무런 성적인 자극을 느끼지 않을 거라고 다짐하고 있던 몸이 움칠움칠 떨려 왔다.
형의 손가락과 입술에 거짓말처럼 곤두선 유두가 작은 자극에도 자지러질 것 같은 감각을 불붙이듯 일으켰다.
그가 나를 만지고 핥고 빨 때마다 뒷골이 찌릿찌릿했다. 발가락이 곱아들 정도로 꽉 말아 힘을 주어도 아래가 움직거리며 떨리는 것까지 감출 수는 없었다.
안 돼, 안 돼…….
이런 혐염하고 더러운 짓에 몸이 반응하고 있었다. 모욕감과 수치심에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숨이 자꾸 가빠져 와 정신을 잃는 것처럼 눈앞이 희미해졌다.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러지 말라고, 그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다그치는 고갯짓을 쳤다. 정신을 놓고 전부 놔 버리고 헐떡거리고 싶은 아득함이 자꾸만 나를 덮쳐 왔다.
왜 이러지, 싫어야 하는데, 거부해야 하는데, 자꾸만 그에게 휩쓸렸다.
“하아, 하으……, 으읏, 아아, 형, 형…….”
친형과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자각하는 이성을 내려놓고 그의 주장대로 짐승처럼 앓고 싶은 무의식 저변의 시뻘건 욕망이 입술을 타고 흘러나왔다.
나는 그 감각이 커질수록 도리질을 쳤다. 끝까지 정신을 놓지 않으려고 이미 피가 묻어 심각한 부상을 당한 것처럼 보이는 그의 어깨와 등을 후려쳤다.
“여기……, 느껴져?”
푸석하게 갈라지는 육성이 묻는다. 음험한 손가락이 사타구니 사이로 솟아오른 성기를 조심스럽게 감아쥐고 있었다.
젖꼭지를 희롱하던 것처럼 귀두를 쓸어 만지는 손길에 허벅지 안쪽이 눈에 보일 정도로 파들파들 떨렸다.
이래서는 안 된다는 걸 확연하게 알면서 내 육신은 그렇지 않았다.
싫지 않았다.
그가 나를 만지는 게, 입술로 핥아 오고 살이 볼록 올라오도록 빠는 은근한 압력이, 숨 냄새와 뜨거운 체온까지, 형의 모든 것이 사람을 미치게 만들었다.
거칠게 고갯짓을 치고 그를 때려도 소용없었다. 저속함이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속살을 드러냈다. 선액이 방울방울 맺혀 나를 만지는 성급한 손가락이 끈끈해졌다. 질척거리는 소리가 끔찍했다.
“만지지 마. 나 만지지 마.”
“……하아, 만지지 마? 하지 마? 정말 하지 마?”
“……하지 마. 이러지 마. 형, 제발.”
교묘한 눈빛이 애처롭게 경계하는 뺨을 주시했다. 그가 고개를 숙여 가슴을 빨아 댔다. 나를 환장하게 만드는 압박감이 숨골을 틀어쥐고 점점 의식을 앗아 갔다. 발기한 성기를 움켜잡은 손바닥이 살 전체를 휘어 감고 쓸어 올린다.
“읏……!”
목울대가 꿈틀거렸다. 만지는 손놀림이 진해질수록 나는 입술을 베어 먹을 것처럼 씹었다 놓기를 반복했다.
“하아, 아, 아읏, 형……! 형, 형! 아으, 읏……!”
허리가 치솟았다. 그가 오래 만져 준 것도 아닌데 자극이 너무 강했다. 나 자신조차 나를 이런 식으로 강하게 만진 적은 없었다. 나는 하체를 불쑥 튕겨 올리며 견디다 못해 사정했다.
“아아읏!”
전신으로 소름이 돋았다. 동물과 다를 바 없는 신음이 벌어진 입술로 터져 나왔다.
하얗고 뜨거운 정액이 그의 가슴팍으로 튀어 올랐다. 터지려고 하는 오줌보를 참지 못하고 아무 곳에 싸지른 것만 같은 쾌감이 온몸을 경련하듯 떨리게 했다.
“아아……, 하아, 하아, 아아.”
“…….”
그는 제 상의에 튀어 오른 정액을 눈동자만 내려 응시했다. 나는 붉게 달아오른 얼굴을 반대쪽으로 돌려 황급하게 가렸다.
흥건하게 젖은 아래를 감추고 싶었다. 떨리는 사지를 추스르고 시트를 끌어 몸을 가리려 하자 커다란 손이 손목을 쥐고 움직이지 못하게 내리누른다.
“…….”
형의 수음을 목격한 후로 성에 흥미를 잃어버렸지만 무지한 것은 아니었다.
모든 일에는, 심지어 이런 야만의 행위에도 과정과 순서가 있었다. 섹스는 나 홀로 발정하고 싸 버리는, 간단하게 끝나는 일이 아니었다.
형은 작업실에서 임주호와 한 것처럼, 그 짓과 같은 짓을 나에게 하려는 것이었다.
당황하는 나를 바라보며 그가 자신의 바지 지퍼를 내리고 남성을 끌어냈다. 흘깃 내려다본 흉물이 미개할 정도로 발기한 상태였고, 스스로 주체하지 못하고 중력에 의해 묵직한 무게감이 휘청거리고 있었다.
누가 봐도 건드리면 터질 것만 같은 상태였다. 그가 자신의 하반신을 내 허벅지에 뭉근하게 끓어오르는 수프처럼 비비기 시작했다.
허벅지 안쪽에 닿는 표피가 단단한 몽둥이 같았다. 탄력적이고 보드라웠다. 그리고 불에 달군 것처럼 뜨거웠다.
그가 입술을 겹치고 애가 타는 신음을 흘리며 나에게 전신을 비벼 댔다.
“하아, 아으……, 으읏.”
책상 밑에 숨어서 훔쳐본 형의 수음은 그를 형이 아니라 남자로 의식하게 만든 계기였다.
그와 나는 형제였고, 무엇도 될 수 없는 사이였다.
“입술 벌려 봐. 응? 제발, 준영아. 입술 열어 줘.”
“……하지 마. 하지 마.”
나는 하지 말라고 입술을 벌렸다. 자신의 것을 만지며 또 내게 비비며 형은 정신이 나간 것처럼 입을 맞추었다. 친형의 뜨거운 혀가 왈칵 밀려들어 입안을 헤집는다.
급박하게 혀를 빨아 대는 형 때문에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자꾸만 벌어졌다. 그와 어긋나 겹쳐진 채로 서로의 안으로 들고 나는 혀의 꿈틀거림이 적나라하게 비쳤다.
단단하게 열이 오른 살덩어리가 점점 아프게 살을 찔러 온다. 포개진 그의 입술과 나의 입술 틈으로 흥분한 숨결이 혼란스럽게 쏟아졌다.
몇 번 치대지도 않았는데 형의 몸이 떨려 오고 뜨거운 점액질이 살 끝에서 터져 나왔다.
“으읏, 허억, 허억, 하아, 아아…….”
하얗게 벗은 허벅다리 사이에 사정하며 전율하는 형의 얼굴과 아득한 표정, 나는 멍하게 의식을 내려놓았다.
그가 나를 마음껏 희롱하는데도 미동도 없이 그에게 짓눌린 채로 정신을 놔 버렸다.
짐승이 되어 버린 형 앞에서 무방비한 상태가 되어서는 안 되는데, 나는 멍청하게도 탈력해 잠이 들어 버렸다.
격렬하게 꿈틀거리다 사정해 버린 너절한 육신은 절정을 가혹한 육체노동으로 인식하는 듯했다.
무엇보다 내 다리 사이에 욕망을 쏟아 낸 형의 농익은 체온과 몸 냄새가 미약처럼 사람을 혼몽에 빠트렸고, 제발 이러지 말라고 그를 거부하던 몸부림이 하도 가열해 지쳐 버린 탓이었다.
나는 어이없게도 형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그의 허리를 꼭 끌어안은 채 잠이 들었다.
뜨거운 물처럼 나른하게 나를 감싸던 체온이 문득 멀어지는 듯했다. 안타까워 가지 말라고 붙잡다가 눈을 떴다.
형의 가슴과 목이 보였다. 그가 나를 이불에 둘둘 싼 채로 꼭 끌어안고 있었다.
깨어난 기척을 느꼈는지 형의 고개가 움직였다.
“……깼어?”
“…….”
나를 감싸 안은 팔에는 갈변한 피가 말라붙어 있었다. 나는 황망하게 둘러 안은 팔을 풀고 부스스 일어나 앉았다.
그에게서 분리되자 말로 설명하기 힘든 스산함이 살갗을 소름처럼 타고 올라왔다. 형도 상체를 일으켜 나를 향해 돌아앉는다.
“나가. 나가……. 나 좀 혼자 놔둬.”
그런 짓을 당해 놓고 형의 품에서 기력을 놓고 잠들었다.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정신이 돌아 버렸다.
제발 나가 달라는 몸짓에 형이 침대에서 일어섰다. 곁눈으로 돌아본 그의 옷에 핏자국이 흥건했다. 누구라도 끔찍한 상처를 떠올릴 흔적이었다.
방을 나가는 그를 다급하게 불러 세웠다.
“오, 옷 갈아입고 가. 옷에 피 묻었어. 누가 보면, 아버지가 보면, 윤 차장이 보게 되면…….”
무슨 짓을 했는지 추궁할 거다.
나는 황급하게 일어나 옷장을 뒤져 그에게 맞을 만한 셔츠를 찾아 주었다. 형에게 직접 건네지 않고 바닥에 던져 버렸다.
그가 허리를 굽히고 바닥에 떨어진 셔츠를 주워 든다.
“방에 가서 갈아입을게.”
“갈아입고 나가. 아버지가 보시면 어떡할 건데……!”
출혈이 적지 않았다. 그의 소매 한쪽이 피로 물들어 끔찍한 참상처럼 굳어져 있었다.
“갈아입어. 당장, 지금 당장!”
“…….”
형이 머뭇거렸다.
옷 갈아입는 게 뭐가 그렇게 어려운 일이라고 고집을 피우는지, 왜 이렇게 사람을 불안하게 만드냐고, 형에게 진심 어린 염증이 일었다. 그를 향해 야멸찬 시선을 들었다.
그의 얼굴에 떠오르는 감정은 난감함이었다. 동생에게 그런 짓까지 벌인 인간이 옷 갈아입기를 주저하고 있었다.
내 앞에서 형이 옷 벗는 것을 망설이고 있다.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 퍼뜩 지난번 형의 방에서 봤던 장면이 떠올랐다.
침대 위에 누워 담배를 태우고 있던 벗은 가슴과 복부, 반소매로 가려지는 속살에 남아 있던 상처 자국들.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많아서 무성한 나뭇잎 그림자가 만들어 낸 착란이라고 여겼던 흔적들.
불길한 예감이 한기처럼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린다.
“……여기서 갈아입어.”
나는 넋이 나가 중얼거렸다.
“내 앞에서.”
“…….”
“내 앞에서, 내가 보는 앞에서 갈아입으라고……!”
형에게 작게 소리쳤다.
형은 듣지 못한 척 손에 셔츠를 쥐고 돌아섰다. 의심하는 내 표정과 눈빛, 여기서 갈아입으라는 떨리는 음성을 알아채지 못한 것처럼 외면한다.
내 옷은 전부 벗기고 나를 만졌으면서 그는 피가 묻은 제 상의를 벗지 않았고, 바지도 벗지 않았다.
자신의 발기한 남성만 벌어진 지퍼 밖으로 끌어내 극히 일부분을 노출한 채로 몸을 치댔다.
욕정에 눈이 돌아 버린 인간이라면 야만스럽게 옷을 다 벗어 던지고 전라로 얽히고 싶어 했을 것이다.
방을 나가려는 그를 다급히 붙들었다.
“옷 벗어 봐.”
“뭐?”
“티셔츠 지금 입고 있는 거 벗어 봐.”
“짐승 같은 짓 또 하고 싶어졌어?”
형이 그도 나도 웃을 수 없는 농담으로 이 상황을 모면하려 하고 있었다.
나는 창백하게 질려 버티고 선 형의 상의를 와락 붙잡아 억지로 벗기려고 했다. 얇은 반소매 티셔츠를 막무가내로 잡아당기자 그가 뿌리치고 막을 새도 없이 머리 위로 훌러덩 벗겨졌다.
“……!”
그날 밤 보았던 게 착란이나 과장이 아니었다. 믿기 어려울 정도의 상처가 그의 몸을 뒤덮고 있었다.
놀라 굳어진 채 그를 주시했다.
작은 상처만 있는 게 아니라 큰 것도 있었다. 당시에는 목숨이 위태로웠을 만큼 큰 상흔이었다.
“뭐, 뭐야? 그게 뭐야……? 이게 도대체……, 형 몸이 왜 이래?”
놀라서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아연한 채로 그를, 정확히는 동물의 날카로운 발톱에 난자당한 듯한 형의 상체를 충격에 젖어 바라보았다.
형은 태연하게 낮은 한숨을 내쉬더니 갈아입으라고 내준 검은색 티셔츠를 신속하게 입어 상체를 가렸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내 손에 들린 피 묻은 셔츠를 가져간다.
“별거 아니야.”
“별거 아니라고? 그게……? 그게 별거 아니야? 형한테 대체 별거는 뭐야?”
그는 내 형이었다. 내 가족이었다. 피붙이의 몸에 남은 참담한 상처를 보고 눈물을 흘리지 않을 인간은 없었다. 그 상처로 말미암은 고통을 떠올리자 희부연 눈물이 가득 차올랐다.
이러지 말라고 붙잡는 손을 뿌리치고 형의 검은색 상의를 목까지 확 끌어 올렸다.
“이게 도대체 뭐냐고……! 누구한테 맞은 거 아니지? 형이 이런 거지? 형이……, 형이 이런 거 맞아?”
누구에게 맞고 다닐 사람도 아니고 그럴 이유도 없었다.
반소매 셔츠를 입으면 교묘하게 전부 가려지는 속살에 무수한 칼자국이, 심지어는 담배로 지진 것처럼 살이 짓이겨진 흔적도 보였다.
그의 상의를 올려놓고도 믿기지 않았다. 그에게 그런 짓까지 당했으면서 그것은 떠올리지도 못하고 오로지 형의 상처만 보였다.
나는 멍청하게 눈물을 게워 내며 물었다.
“왜 이랬어……? 대체 왜 이랬어?”
“…….”
“도대체 왜?”
“……나를.”
그가 뭔가를 말하려고 입술을 달싹였다. 나는 주르륵 흘러내리는 눈물을 팔로 훔쳐 냈다. 형의 모습이 자꾸만 흐려져서 종국에는 뿌옇게 보이는 지금처럼 사라져 버릴 것 같아 덜컥 무서워졌다.
“나를 죽이고 싶었어.”
“…….”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잘난 것이 도를 넘어 비범하기까지 했던 형에게 결핍이란 있을 수 없었다.
하염없이 가라앉은 눈동자가 나를 망연히 바라본다.
매끄러운 살을 쓸어내리자 손바닥으로 거친 흔적이 도드라졌다. 이 상처 하나하나가 조금 전처럼 피를 흘리고 새살이 돋아날 때까지 쓰리고 아팠을 거다.
온몸 가득한 통증에 인상을 찡그리는 대신 형은 딱딱하게 석화되는 쪽을 선택했다. 때때로 형의 무표정은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무기질의 돌덩어리 같았다.
“너한테 이런 더러운 짓을 하지 않으려고.”
“…….”
“이렇게 되지 않으려고. 그때마다 나를 죽여야 했어.”
“…….”
그건 참는 게 아니라 그때마다 자신을 죽이는 일이라고 했다.
나를 원하는 자신을 저주하면서 형은 수백 번의 자살을 했다고 했다.
수천수백 번 스스로 난자한 몸에 나마저 상처 하나를 더 보탰다. 어느새 팔뚝의 상흔은 피딱지가 되어 굳어 가고 있었다.
“말했잖아. 이 정도 통증은 가렵지도 않아.”
그가 팔뚝을 매만졌다. 살갗에 쓸리는 오돌토돌한 피딱지의 요철이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눈물이 한쪽 뺨을 타고 툭 떨어졌다.
“널 울리는 짓은 정말 하고 싶지 않았는데.”
다정한 손가락이 닦아 주기가 무섭게 눈물이 계속 떨어졌다.
“결국 이렇게 되어 버렸어.”
아프게 나를 바라보던 형이 말없이 돌아서서 방을 나가 버렸다.
✦ ✧ ✦
보이지도 않는데 건넌방에 있는 형의 존재를 내내 의식해야만 했다.
의무적으로 책상 앞에 앉았지만 공부가 될 리 없었다. 의미도 없이 소용도 없이 공책에 낙서만 끄적거렸다.
무슨 소리라도 날까 싶어 그의 방 쪽에 온 신경을 다 기울였다. 작은 기척이 들리면 귀가 쫑긋거렸고 가슴이 미친 듯이 두근두근했다.
입시와 오르지 않는 성적, 나와 눈도 마주치지 않는 형의 태도, 부담스럽고 어색한 아버지와 새어머니, 그런 사소한 문제들이 신경을 자극하던 평범한 일상이 마치 거짓말인 것 같았다. 내게 평범한 일이라는 것은 애당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너한테 이런 더러운 짓을 하지 않으려고.」
「이렇게 되지 않으려고. 그때마다 나를 죽여야 했어.」
그가 한 말을 되새기자 가슴이 욱신거렸다.
그때 형의 방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일정하게 울리는 발걸음이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얼마 뒤 노크 소리와 함께 방문이 열렸다. 나는 공부하고 있던 것처럼 펜을 쥐고 그를 돌아보았다.
무수한 상처는 옷으로 가리고, 나의 일격으로 다친 팔뚝에는 살구색 밴드가 붙어 있었다.
그는 손에 책을 쥐고 있었다.
형은 한번 책을 붙잡으면 앉아서도 읽고 걸어 다니면서도 읽었다. 어떤 때는 밥을 먹으면서도 옆에 펼쳐 두고 책을 읽어서 아버지에게 식사 태도를 지적받은 적도 있었다. 보던 책을 계속 들고 다니는 것은 그의 오랜 버릇이었다.
형은 유난히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활자로 되어 있는 종류는 그것이 무엇이 됐든 간에 읽어 내려야 직성이 풀리는 중독자였다.
수천 권의 지성을 탐독한 이의 몸에 남아 있는 비이성적인 흔적들.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칼질한 상흔은 우리가 벌인 짓만큼이나 주제로 삼기 힘든 이야기였다.
“……왜?”
“공부하고 있었어?”
내 의식 세계를 엉망진창으로 들쑤시고 물어뜯고 부수었다 재조립한 그가 조심스러운 질문을 던졌다.
나는 그에게 대꾸하지 않고 눈길을 피했다.
잠시 머뭇거리던 그가 물었다.
“형 배고파서 뭐 가지러 갈 건데, 너도 뭐 가져다줄까? 먹고 싶은 거 있어?”
시간은 어느덧 휴일의 오후를 지나고 있었다.
창문가로 스며드는 하오의 해와 동생을 챙기는 다정한 말투.
우리에게 벌어진 일이 모두 거짓으로 느껴지는 따스함이었다.
눈을 깜박일 때마다 그와 벌인 일들이 떠올랐다. 나와 내 주변을 감싼 모든 것들이 을씨년스러웠다.
“커피 마실래? 이제는 커피 마실 줄 아는 것 같던데.”
“…….”
관심 없는 척하면서, 동생이라는 존재가 이 세상에 없는 사람처럼 굴었으면서 형은 커피를 마시지 못하던 내가 작년 언제서부터 카페인에 입에 대기 시작한 것도 알고 있는 눈치였다.
보지 않는 것 같았는데 그는 나를 세심하게 관찰하고 있었다.
그 사실이 좋기도 하고 싫기도 했다. 복잡한 심경이 표정에 그대로 드러났다.
“갖다 줄까?”
그가 문을 열어 놓고 또 다정하게 물었다. 대답하지 않자 그냥 돌아서는 뒷모습을 좇다 황급하게 그를 불러 세웠다.
“형, 형, 잠깐만.”
“응?”
“……옷 똑바로 입어.”
그는 그제야 자신의 꼴을 내려다보았다.
내 눈에만 그렇게 보이는지 모르겠지만 그의 옷차림이 단정치 않았다.
셔츠 단추를 다 채우지 않아 갈라지는 가슴 근육이 보였고, 머리칼도 이리 삐쭉 저리 삐쭉 솟아 꼭 자다 일어난 사람 같았다. 단정하지 않은 그의 차림이 자꾸 뭔가를 연상케 했다.
그는 곧 옷을 고쳐 입고 멀끔한 모습으로 돌아섰다.
배가 고프다기보다 속이 텅 빈 것처럼 허전했다. 온몸이 파열되는 팽창으로 터질 듯 부풀었다 꺼진 것처럼.
주방에서 뭔가를 챙겨 온 형이 곧 방으로 돌아왔다.
“포도 좋아하잖아. 먹어.”
“…….”
“다른 거 가져다줄까?”
탐스럽게 익은 포도와 단아하게 깎인 과일 몇 조각, 찐득해 보이는 초콜릿 브라우니와 커피.
그가 책상에 내려놓는 간식을 그냥 쳐다만 보았다. 입맛이 없었다.
“그냥 놔둬. 나중에 먹을게.”
“자.”
형이 포크를 들고 입술 가까이에 포도알을 가져왔다. 달큼하고 싱그러운 냄새가 코끝에 맴돌았다.
“이따 먹을게.”
“계속 이렇게 눈도 안 마주칠 거야?”
“…….”
“임주호라는 녀석하고 뒹굴지 말라며. 시키는 대로 한 건데.”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해?”
그를 보지 않으려고 했는데 한사코 돌아보게 만드는 말투였다.
“내가 그 녀석하고 얽히는 것보다 차라리 너하고 얽히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거.”
“…….”
“너 그건 정상이야?”
“…….”
그것도 정상은 아니었다. 나는 정상이 아니었다. 형의 말이 사실이었다.
차라리 내게 욕정을 풀어 버리는 게 낫지, 형이 임주호를 만지고 그 새끼에게 내게 한 것과 같은 키스를 하고 애무한다는 그 상상만으로도 미쳐 버릴 것 같은 거부감이 들었다.
차라리, 그의 말처럼 차라리 나하고 얽히는 게, 차라리 나에게 풀어 버리는 게 나았다.
형은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을 만큼 나에게 소중한 사람이었다. 이런 선택을 하게 만드는 그에게 처절할 정도의 배신감이 들었다. 삭신이 에이도록 사무쳤다.
“시위 그만하고 먹어. 반항하고 때릴 기운이라도 만들어. 사람을 미워하는 데도, 그리고 사랑하는 데도……, 에너지가 필요한 법이니까.”
형의 말이 옳았다.
나는 쟁반을 가져와 먹어 치우듯 삼켰다. 게걸스럽게 브라우니와 과일을 씹어 대는 내 머리칼을 그의 손이 쓸어 넘겼다. 화가 난 동생을 달래 주는 부드러운 손길이었다.
갑자기 코끝이 맵싸해지고 가슴이 뭉클했다. 입안 한가득 들어찬 음식물을 겨우겨우 삼켰다. 눈시울이 붉어지는 나에게 그가 말했다.
“아프게 해서 미안하다.”
“…….”
형의 몸에는 지금 내가 당한 일보다 더 큰 상처와 상흔이, 오랜 세월 켜켜이 쌓여 완성한 흔적이 난무했다. 어디가 아팠다고 하면 내가 아니라 형의 아픔이 더욱 오래되고 더욱 많았다.
툭툭, 눈물이 뺨을 가르며 떨어졌다. 눈물방울이 턱 끝에 맺혔다.
흐르는 눈물을 연신 닦아 내며 그가 나지막이 말했다.
“울지 마. 응?”
“누가 울게 만들었는데, 누가……!”
사람을 아프게 해 놓고 달래 주는 형의 행태가 야속했다.
달래던 그가 고개를 숙여 입을 맞추었다. 형의 체취가 알큰하고 부드러웠다. 축축한 혀가 축축한 턱과 뺨을 핥아 올렸다. 뺨을 지나 관자놀이로, 그의 혀는 따듯한 열감이 되어 나를 위로했다.
나를 망가트리고 나를 유린한 그임에도 불구하고 가슴이 벅차오르는 위로에 소리 내어 엉엉 울고 싶어졌다.
아프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더럽고 혐오스럽기만 한 것도 아니었다.
친형과의 더러운 교합, 수치도 모르고 서로를 욕망하는 요사스러운 배덕, 몸을 겹치고 그가 밀어붙일 때마다 느껴지던 야릇한 쾌감.
미숙한 내 다리 사이에 소년처럼 참지 못하고 절정을 쏟아 내는 그의 목덜미를 내가 끌어안았던가.
그와 벌인 짓들이 몽정처럼 희미해져 있었다. 창문으로 드리우는 해의 그림자가 눈을 부시게 했다. 질끈 눈을 감았다. 머리가 어지럽게 흔들렸다.
“흐으… 으음…….”
전신이 뜨거운 물에 잠겨 나른하게 풀리듯 그의 입술이 칼끝처럼 치솟은 긴장과 처절한 배신감을 어루만졌다.
이것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나는 형의 입맞춤에 반응했다. 열 오른 숨결을 토해 냈다.
입술을 붙인 채 그는 손을 뻗어 쟁반과 포크, 그릇을 사이드 테이블 위로 치웠다.
허공에 떠 있는 듯한 망망함에 열정적으로 내게 키스하는 그의 표정과 몸짓을 흐리게 뜬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는 자연스럽게 나를 감싸 의자에서 일으켜 침대로 이끌었다.
그를 부둥켜안고 입술을 겹친 채로 형과 함께 침대에 앉았다. 그가 나를 눕히고 형의 체중이 내 위로 올라오는 모든 과정이 자연스러웠다. 우리는 또 몸을 겹치고 서로의 체온을 갈구하기 시작했다.
변태하는 생물처럼 당연하게 찾아온 탈피를 하듯 형의 손이 내 옷을 벗겼다. 나도 형의 옷을 벗기고 싶었다. 허물이 스르르 벗겨져 내리고 완연한 알몸이 되어 그와 맨살을 비비고 싶은 아뜩함으로 머리가 다 어지러웠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전라로 그의 상반신과 하체, 평범한 일상에서는 절대 드러나지 않는 부위마다 칼로 썰어 댄 자해의 흔적을 쓰다듬고 싶었지만 그의 셔츠 자락을 움켜쥘 뿐 벗기지는 못했다.
이것은 옳지 않은 행위였다. 해서는 안 되는 짓이었다.
그가 두 팔로 나를 끌어안았다. 저항하지 않고 그에게 딸려갔다. 가슴에 가슴을 붙이고 그의 어깨에 턱을 얹었다. 그는 틈새 하나 없이 완벽하게 육신을 겹쳐 나를 끌어안았다.
형의 단단하고 너른 등판을 만지자 그의 날개뼈가 움찔거렸다.
체온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라 좋은 냄새가 났다. 형은 옛날부터 체취가 좋았다. 옅은 나무 냄새가 그윽한 향처럼 배어 나와 그에게 몸을 비비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졌다.
나는 그에게 살갗을 비벼 댔다.
얼마나 오랫동안 이 체온을 그리워했던가.
그와 체온을 비비면 비빌수록 애가 타는 그리움이 밀려왔다. 딱히 목표를 정해 놓은 그리움이 아니었다.
그냥……, 그리고 마냥…….
결핍되어 말라붙어 있던 무엇이 축축하게 젖어 들어가듯 나는 나를 녹이는 온도에 취해 가고 있었다.
“……하아.”
허리 버클을 풀고 지퍼를 내려 발기한 성기를 밖으로 꺼내고 내 허벅지에 문질러 댄다. 그가 무릎을 나의 다리 사이로 밀어 넣고 간격을 벌렸다.
허벅지가 벌어져 결단코 해서는 안 되는, 이래서는 안 되는 자세로 사지가 얽혀들었다.
이렇게까지는, 여기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몸이 움츠러들었다.
“형……, 잠깐만, 형, 잠깐만.”
그의 등을 끌어안고 있으면서 고개를 내저었다. 나의 벌어지는 다리 사이로 체중을 옮긴 그가 나를 부둥켜안고 자신의 하체를 밀어붙이듯 내려놓는다.
“흣……!”
민감한 살점이 부딪쳤다. 소름이 쭉 끼쳤다.
움찔한 하반신이 뻣뻣하게 굳어 버렸다. 그가 아래를 느릿하게 둥글리고 있었다. 내게 자신의 것을 비비고 있었다.
“아, 아, 잠깐만……, 잠깐, 형, 이러지 말고, 잠깐 내 얘기 좀 들어 봐.”
나의 치부에 닿아 살이 쓸리도록 문지르는 형의 하복부를 피하려고 주춤거렸다.
발기한 성기가 나의 가랑이에 닿아 비벼졌다. 닿는 부위와 살점을 치대는 감각이 참혹하기만 했다.
“내 얘기 좀, 그만, 그만……!”
밀려드는 듯한 가슴을 밀었다. 체중을 버티지 않고 아예 놓아 버린 무게감이 묵직하게 나를 누를 뿐, 뿌리치는 내 손길과는 다른 반응을 보였다.
“무슨 얘기, 응? 하아, 무슨 얘기?”
상체를 세운 그가 나와 눈을 마주치고 물었지만 형의 눈동자는 대화가 통하지 않을 만큼 풀어져 있었다.
“이런 건……, 이런 건 안 돼. 이러지 마.”
“그럼 어디까지 되는데? 어떻게 더 참으라는 거야? 준영이 너는 그게 가능해? 어디까지 하면 되는지 말해 줘.”
어디까지 가능하다는 경계는 없었다. 시작도 하지 말았어야 하는 짓이었다.
“어디까지 할까. 어디까지 널 만지면 되는지 가르쳐 줘. 하아, 그럼 그대로 할게. 네가 시키는 대로 할게.”
시키는 대로, 요구하는 대로 하겠다면서 내 말은 전혀 듣지 않고 있었다. 그는 열 오른 호흡을 쏟아 내며 지키지 않을 말을 지껄여 댔다.
“정신 좀 차려, 제발……!”
그의 어깨를 퍽 때렸다. 흠칫하며 잠시 머뭇거릴 뿐, 아래를 부딪쳐 오는 움직임이 더욱 가열해져 왔다.
타들어 가는 듯한 감각에 허리가 꿈틀거렸다.
“아, 잠깐만, 형, 형, 잠깐, 읏!”
그가 갑자기 하체를 띄웠다가 내리꽂는다. 여자에게 하듯 발기한 살덩어리를 내 사타구니 사이에 턱턱, 소리를 내며 부딪친다.
“아, 형, 형, 이상하단 말이야……!”
어떤 애원을 해도 그의 귓구멍으로는 단어 하나 박히지 않았다. 이러지 말라고 애원하면 할수록 가열해져만 갔다.
여기서 더 소리를 높이면 들릴지도 모른다. 누군가 들을 수도 있었다.
그가 허리를 띄우고 그대로 내리꽂는다. 뜨겁게 발기한 살덩어리가 부푼 나의 살에 철벅거리며 충돌한다.
“하아, 아, 아읏, 으응!”
형과 눈을 마주칠 수 없는 수치스러움, 걷잡을 수 없는 흥분이 뒤섞여 행위가 더해질수록 신음이 조절되지 않아 더 미칠 것만 같았다.
“아, 아… 형, 아읏, 흐으!”
“준영아, 하아, 준영… 하아, 준영아.”
그가 혼이 나간 것처럼 내 이름을 부르며 삽입하듯 살을 부딪쳐 온다. 낭자하게 맞붙은 처덕거림이 끔찍하리만치 음란했다.
임주호와도 같은 짓을 했을 거다. 형이 성적으로 흥분해 그에게 했던 짓을 나에게도 한다고 생각하자 걷잡을 수 없는 격앙으로 감정이 고조되었다. 참기 힘든 불쾌함과 분노, 쾌락이 지저분하게 뒤섞였다.
형은 삽입할 구멍도 찾지 못하는 반편이처럼 터질 듯 발기한 성기를 어쩔 줄 모르고 내 아래에 처덕거리며 거칠게 헐떡였다.
“하아, 준영아, 아아, 아읏, 윽.”
발기한 하체가 강하게 아래를 치자 통증과 함께 쾌감의 지점을 건드렸다. 터지는 신음을 막으려 그의 목을 둘러 안고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흐읍, 윽, 읏……!”
아찔한 탄성이 가까스로 틀어막은 입술 새로 튀어나왔다.
형의 몸이 탄력적으로 내 쪽으로 구부러지고, 나의 무의식이 그를 향해 허리를 띄워 사타구니를 맞물리게 했다. 정신없이 처덕거리기만 하던 그가 바짝 아래를 붙이고 운율을 타듯 끈적하게 움직인다.
“아, 하아, 아으응, 으응… 읏.”
육감적으로 꿈틀대는 등허리를 손톱을 세워 세게 움켜잡았다. 떨어지지 않으려고 하복부를 더욱 밀착시켜 형에게 달라붙었다. 굽이치던 여울이 곧 시위가 일어난 물살이 되어 속도를 더해 가고 있었다.
뜨겁게 달아오른 형의 성기와 부푼 나의 성감이 한 지점에서 겹치듯 만나 뭉개진다.
“하읏, 으응, 읏!”
빨갛게 열이 오른 그의 귓가에 입술이 닿았다. 달뜬 숨소리가 형의 귓전에 닿아 부서졌다. 그는 귀가 간지러운지 어깨를 움츠렸다.
“흐으, 허억, 준영아, 하아, 하아, 씨발, 아아, 씨발, 준영아……!”
“형, 소리… 소리 들려, 소리……! 아읏……!”
하복부에 비벼지는 형의 중심은 탄탄하고 부드러웠다. 내 것과 마찰하고자 안간힘을 쓰는 움직임이 반복되었다.
손에 닿는 형의 등판이 땀으로 끈끈해져 오고 한여름 뙤약볕에 내던져진 뜨거운 열기가 우리를 휘감았다.
참지 못하는 형의 거친 헐떡거림이 목과 가슴으로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그의 머리칼을 움켜쥐고 엉망으로 헝클였다. 뒤통수를 콱 틀어잡았다.
“하아, 형, 아아, 형!”
형의 움직임에 완연히 의지하고 그와 함께 하체를 부딪쳤다. 숨이 꼴딱꼴딱 넘어가며 감당하지 못하는 쾌감으로 치닫는다.
살이 쓰리도록 아래를 비비던 그가 급박한 호흡을 쏟아 내며 눈을 마주쳐 왔다.
“크읏……!”
출렁이는 검은 눈동자와 시선이 얽혀 버렸다. 안타깝게 신음을 흘리는 눈자위로 그렁그렁 눈물이 맺혔다.
“아읏, 읏, 아아……!”
움찔, 열기로 터져 버릴 것 같은 화기가 온몸을 휩쓸며 그와 나는 눈을 마주친 상태로 절정에 가까이 닿았다.
긴박하게 튕겨 올라간 허리가 그의 국부에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려고 비통하게 움직거리며 뜨끈한 점액질을 뿜어 댔다. 허리를 꺾어 그가 아래로 파고들어 오듯 짙게 문질러 온다.
고개가 저절로 젖혀지고 가슴이 튀어 올랐다.
“아으응……!”
경련하는 입술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전신이 땀과 분비물로 끈적끈적하게 젖어 버렸다.
“준영아……, 하아, 하아, 아아, 준영아.”
그가 나를 불렀다. 나는 형과 입을 맞추었다. 벌어진 입술 사이로 그와 나의 혀가 서로의 입안을 미친 것처럼 오갔다. 말초적인 감각을 조금이라도 더 핥으려고 꿈틀거리며 나는 형과 짙은 키스를 나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