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화(1권) (1/6)
  • Madly

    “강준원, 너 지금이 도대체 몇 시야?”

    대화조차 없던 아침 식탁에서 최초로 터진 소리는 아버지의 노성이었다.

    나는 흠칫했지만 고개를 들지는 않았다. 현관문이 열리고 제법 묵직한 발걸음이 복도를 지나 주방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밤새 기민하게 귀를 세워 그의 기척을 감지했기에 돌아보지 않아도 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그의 이름은 강준원이었고, 나의 이름은 항렬을 따라 강준영이었다.

    그는 나의 형이었고 나는 그의 동생이었다.

    형은 화가 잔뜩 난 아버지의 고함에도 별다른 대꾸가 없었다. 그는 딱딱하게 굳은 무표정을 하고 식탁으로 다가왔다. 아버지에게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내 맞은편 자리에 앉는다.

    “…….”

    “…….”

    형과 눈이 마주쳤다.

    형은 무척 오래간만에 보는 것처럼 새삼스럽게 나의 얼굴과 교복 입은 모습을 군더더기 없는 시선으로 훑어내렸다.

    나는 머쓱하게 눈길을 돌렸다.

    새어머니는 형의 앞에 숟가락과 젓가락, 갓 지은 밥이 담긴 밥그릇을 내려놓았다. 나를 향해 있던 형의 시선이 새어머니에게로 옮겨 갔다. 눈동자는 아들의 것이 아니라 타인을 향한 것이었다.

    “성인인데 너무 나무라지 마세요. 알아서 잘하겠죠.”

    짧은 적막이 흘렀다.

    본격적으로 형에게 한 소리 하려고 인상을 찌푸리던 아버지가 새어머니의 두둔에 못마땅한 숨만 내뱉었다.

    새어머니가 거들지 않았어도 어차피 형은 아버지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을 터이다. 형은 아버지뿐만이 아니라 그 누구의 지시에도 순종하는 법이 없었다. 그렇다고 아버지의 말을 아예 듣지 않는 것은 또 아니었다. 듣기는 들었다.

    그저 조용히 듣기만 할 뿐, 아버지가 훈육하면 반박하지도 않고 수긍하지도 않았고 그가 무슨 말을 하든, 말 그대로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내는 식이었다.

    타인은 물론이고 본인에게조차 무심했는데 전반적으로 조용하고 분란을 싫어하는 그였지만 자신의 영역을 침범당하면 걷잡을 수 없이 공격적으로 돌변해 아버지도 형을 지나치게 자극하는 꾸지람은 하지 않는 편이었다.

    “어서 먹어.”

    새어머니가 나와 형에게 다정한 말을 건넸다.

    재혼 가정의 새어머니 자리는 서로의 관계가 호의적이어도 불편한 위치였다. 불행히도 우리의 관계는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다.

    새어머니는 아버지의 비서로 오랫동안 그와 함께 일한 부하 직원이었다. 그녀는 우리에게 윤 차장으로 익숙했다.

    결혼하기 전에도 긴급한 일이 생기거나 아버지의 출장 일정이 잡히면 윤 차장은 아버지를 보좌하려고 종종 우리 집에 들렀다. 나도 형도 그녀를 잘 알았다.

    그녀는 어머니와 사별하고 긴 세월을 혼자였던 아버지와 어머니가 없는 우리 두 형제를 늘 측은하게 여겼다.

    가끔 우리 집에 오면 어린 나에게는 과자를 사 먹으라고 용돈을 몰래 찔러 주기도 했고, 정작 아버지는 준 적이 없는 출장지에서 사 온 선물을 어린이날이나 생일에 내밀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그녀를 차장님이라고 불렀고, 지금도 그녀를 속으로는 새어머니가 아니라 윤 차장이라고 불렀다.

    “어제 뉴스 봤어? 출근길에 천연가스 버스가 폭발했대. 사람들 많이 다쳤다더라.”

    아침 식사마다 이렇게 서로 대화를 나누었던 양 윤 차장이 말을 꺼냈다.

    “준영이 버스 타고 다니지 말고 자전거 타고 다니면 어때? 운동도 되고, 건강에도 좋고. 학교까지 그렇게 멀지 않잖아.”

    “자전거가 더 위험해. 자전거 도로 잘되어 있는 것도 아닌데.”

    학교는 가까운 거리라 자전거로 가도 괜찮았다. 문제는 내가 자전거를 타지 못한다는 것이었고, 자전거가 위험하다고 하는 아버지는 내가 자전거를 타지 못한다는 사실을 몰랐다.

    형은 내가 자전거를 타지 못한다는 걸 잘 알았다. 어릴 때 내게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쳐 주려고 형이 학교 운동장에서 내 자전거 뒤쪽을 붙잡고 달린 거리만 해도 몇십 킬로는 족히 될 것이다.

    그가 가르쳐 주려고 그토록 애를 썼는데 지금이라면 아마 금방 배우겠지만 아무튼 그때 못 깨우쳐서 여태 자전거는 탄 적이 없었다.

    “저 자전거 못 타는데요.”

    내 말에 모두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그때 형은 무서워하는 나에게 할 수 있다고, 해 보라고, 형이 뒤에서 든든하게 붙잡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도닥거리고 달래면서 어떻게든 두발자전거를 앞으로 내달리게 하려고 했었다.

    “준영이가 왜 자전거를 못 타?”

    아버지는 나에게 묻는 게 아니라 형에게 물었다. 왜 똑바로 가르치지 못했느냐는 물음이었다.

    대답을 요구한 질문이 아니라고 판단했는지 형은 별말이 없었다. 한편으로는 동생이 자전거를 똑바로 타든 말든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냐는 침묵처럼도 보였다.

    발발 떠는 내 손등을 힘있게 붙잡고, 해 보라고, 형이 붙잡아 줄 테니까 겁먹지 말라고 달래던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선했다. 그런데 지금은 형과 대화다운 대화를 해 본 게 언제인지 정확하게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지금이라도 배우면 되죠. 그치? 준영아, 수능 끝나고 자전거도 배우고, 수영도 배우고, 수영은 할 줄 알지?”

    “아니요……. 수영도 못하는데.”

    아버지의 한심하게 바라보는 눈이 내가 아닌 똑바로 가르치지 못한 형을 향했다.

    “그래, 그럼 그것도 같이 배우면 되겠다. 준영이는 팔다리가 길어서 잘할 거야.”

    정작 타박받는 형은 반응이 없는데, 무슨 말을 꺼낼 때마다 형이 눈총을 받자 윤 차장은 안절부절못하며 애써 좋게 대화를 마무리했다.

    아버지는 윤 차장이 나와 형에게 인정받고 싶어 조바심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형의 비호의적인 태도만이 문제는 아니었다.

    윤 차장과 안면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열여덟에 생긴 새어머니에게 덜컥 정을 주고 그를 어머니라 따르는 이는 적어도 내 주변에는 없었고, 그것은 형도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나도 형도 딱히 윤 차장을 밀어내거나 거부하지는 않았다. 아버지의 부인이라는 사실은 인정하지만 아버지의 부인이라고 해서 우리의 어머니가 되는 일은 불가능하기에 그녀와는 예전에 알던 윤 차장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상태로 감정적 간섭을 인정하지 않고 지낼 뿐이었다.

    형이 물통으로 손을 뻗자 그 순간 술 냄새가 진동했다. 그는 밤새 술을 퍼마시고 아침이 되어서야 귀가한 것이었다.

    윤 차장이 저도 모르게 한 차례 손을 휘적거리며 냄새를 피하는 듯한 동작을 했을 뿐, 퍼지는 알코올 냄새를 맡았으면서도 아버지와 윤 차장은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런 지독한 냄새를 풍기면서 멀쩡한 얼굴로 앉아 있는 형이 내 눈에는 그저 신기하기만 했다.

    형은 국에 밥을 말아 마시듯이 삼켰다. 씹지도 않았다. 빨리 가서 침대에 드러누워 잠들고 싶은 고단한 짜증이 성의 없이 밥을 먹는 손길에 낙낙히 묻어 나왔다.

    김치를 집다 형의 젓가락에 내 젓가락이 부딪쳤다. 나는 서열이 낮은 비굴한 짐승처럼 서둘러 젓가락을 거두었다.

    형이 나를 쳐다보았다. 표정도 없었고 어떤 암시도 없었다.

    나의 형 강준원은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어머니를 일찍 여읜 우리는 그 어느 형제보다 사이가 좋았다. 좋은 정도를 넘어 서로에게 애틋했다.

    형은 바쁜 아버지를 대신해 부모가 필요한 때마다 아버지가 되어 주었고, 때로는 어머니가 되어 주기도 했다. 나의 정서는 형의 오롯한 보살핌으로 완성되었다.

    형이 내게 얼마나 지극정성이었는가 하면 어릴 적 남들보다 발육이 더디고 몸이 약했던 내가 커 오면서 앓은 모든 병수발을 전부 형이 도맡아 했을 정도였다.

    아버지는 출장이 잦아 집에 계시지 않을 때가 더 많았다.

    지금도 아픈 나를 간호하던 형의 모습이 기억난다.

    아버지가 부재중인 어느 날이었다. 정신이 가물거리도록 열이 오르고, 뇌가 물러지듯 전신이 다 아팠다. 집에는 우리 둘밖에 없었다.

    어린 형과 그보다 더 어렸던 나.

    나를 끌어안고 우는 형의 냄새와 간곡했던 체온.

    그때는 정말 우리 둘밖에 없었다. 나와 형은 그런 사이였다.

    그랬던 형은 이차 성징이 시작되고 사춘기에 들어서면서 변했다. 만사에 모범적이던 그는 위험한 냄새를 풍기기 시작했고 가족에게서, 정확히는 내게서 멀어졌다.

    귀찮았던 거다. 지겨웠던 거다. 무슨 일만 생기면 어미 새 찾는 새끼 새처럼 형만 찾아 대는 내가 싫었던 거다.

    네 살이나 손아래인 나 때문에 형은 나의 그릇됨과 모자람을 대신해 늘 아버지에게 꾸중을 들어야 했다. 응석 한번 제대로 받아 주지 않는 아버지는 또 나대로 무서워서 나는 언제나 형의 발치에서만 징징거렸다.

    내가 무슨 잘못을 해도 모든 허물을 형이 뒤집어쓴다는 사실을 깨달은 영악한 나이가 되어서는 나는 그에게 보호자 역할을 노골적으로 강요하기도 했었다. 무슨 잘못을 해서 아버지에게 혼날 것 같으면 모든 게 형의 탓이라고 우기기도 했다.

    형은 내가 부끄러움과 자존심을 배울 나이가 되었을 즈음부터 확연하게 달라졌다. 학생회장을 도맡아 하고 어른들에게서 성실하고 모범적인 것을 넘어서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던 그가 열다섯, 열여섯이 되자 이상해졌다. 흔히 말하는 사춘기 반항의 시작이었다.

    형은 등교한다고 집을 나서서 학교에 가지 않았고, 학원에도 가지 않았다. 어느 날은 집에 귀가하지도 않았다. 그러다 고등학교 2학년 겨울에 누군지도 모르는 여자 어른을 대동하고서 고등학교를 자퇴해 버렸다.

    형은 자기 마음대로 학교를 그만두고는 태연히 교복을 입고 학교에 간다고 집을 나갔다. 나는 물론이고 아버지도 일이 바빠 그의 기행을 전혀 몰랐다. 아니 정확히는 그때까지 혼자의 몸이었던 아버지와 나만 모르고 온 세상이 다 아는 일이었다.

    특목고 학생들을 제치고 경시대회라는 경시대회는 다 휩쓸었고 얼굴까지 반듯하던 형은 이 근방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위명이 높았는데, 그저 그런 동네 어중이떠중이가 아니라 신문에도 실린 지역구 유명 인사였다.

    형이 학교를 그만두고 무슨 짓을 하고 다녔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마 돈을 벌고 있었을 거다. 집을 나가려고, 나를 버리려고, 우리를 떠나려고 치밀한 준비를 하는 중이었을 거다.

    사춘기를 지나면서 그가 이상해졌음을 아버지도 눈치채고 있었지만, 아버지는 본인의 사업이 너무 바빠 형에게 관심을 기울일 여유가 전혀 없었다. 또 형은 그 자체로 비범했기에 아버지는 알아서 잘하겠지 하고 그에 관해서는 고의적인 방임을 했다.

    형에게 졸업할 고등학교가 없다는 걸 아버지가 뒤늦게 알았을 때, 그는 대학 합격 소식을 전해 왔다. 아버지는 그때도 형을 혼내지 않았고 그 이전부터도 마찬가지였지만 그 이후로 형의 일에 이러쿵저러쿵 훈수를 두지 않았다. 그러나 예외는 언제나 있었다.

    나와 관련한 문제에 대해서 아버지는 당신이 직접 훈육하는 게 아니라 형을 통해서 했다. 당신의 말보다 형의 말이 내게 더욱 영향력이 크다는 사실을 아버지는 알고 있었다.

    성인이 된 형과 내 사이는 시간이 지나면서 극도로 소원해졌다. 형은 나와는 아예 다른 인종이었고 철이 들면서부터 그가 나를 싫어하고 귀찮아 한다는 걸 아무리 눈치가 없는 나라도 알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런 형이 어려웠다. 그는 그 잘난 머리로 내게 수학 공식 하나 알려 준 적이 없었다. 우리는 한 달에 한 번조차 말을 섞지 않을 때도 있었다. 남보다 더 못한 사이였다.

    “준영이 그러다 늦겠다. 빨리 먹어야지.”

    “네.”

    윤 차장이 멍하게 정신을 빼고 있는 나를 재촉했다. 나는 윤 차장의 말에 짧게 대답하고 보기에도 답답할 정도로 꾸역꾸역 밥을 먹었다. 형은 그새 자신의 몫을 다 먹고 물을 마시는 중이었다.

    “데려다줄까?”

    불쑥 튀어나온 형의 목소리에 우리 셋은 움찔 굳어 버렸다.

    나는 고개를 들어 그를 응시했다. 아버지 역시 형을 바라보았다. 윤 차장만 모르는 척 묵묵히 식사를 이어 갔다.

    “내가 데려다주면 안 늦을 것 같은데.”

    “…….”

    “아직 시간 남았으니까 천천히 먹어. 꾸역꾸역 그러지 말고.”

    나의 의아한 시선에 대고 형이 말했다. 지독한 술 냄새를 풍기면서 그의 말투는 또박또박하고 단정했다.

    아버지는 주의를 주려 입을 열었으나 숙취를 주장하기에 그의 음성이나 행동이 너무나 분명했으므로 취한 상태로 누굴 데려다주려고 하느냐는 말은 결국 하지 않았다.

    나는 급히 먹던 것을 천천히 씹어 삼켰다. 형은 재촉하지 않고 조용히 앉아 내가 아침을 다 먹을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난데없는 그의 호의와 친절이 당황스러웠다. 바라보는 형의 시선에 긴장해 행동이 점점 굳어졌다. 나는 결국 수저를 내려놓고야 말았다.

    “다 먹었니?”

    윤 차장은 그렇게 물으면서도 반쯤 남은 내 밥그릇과 숟가락, 젓가락을 한 번에 그러쥐고 치우며 개수대에 넣어 버렸다.

    형이 식탁 위에 내려놓았던 차 키를 쥐고 일어섰다. 그것은 기다리고 있을 테니 밖으로 나오라는 의미였다.

    나는 물을 마시고 식탁 의자 밑에 내려 둔 가방을 집어 들었다. 학원에서 풀 문제집이 들어 있어 가방이 묵직했다.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공부 열심히 하고. 얼마 안 있으면 모의고사라고 했지? 이제 진지하게 해야지.”

    “네.”

    나는 아버지의 말에 의무적으로 대꾸하고 거실을 가로질러 문을 열었다.

    현관 밖에 그가 서 있었다. 형이 나를 향해 불쑥 손을 뻗었다. 그럴 이유가 없는데 나는 전신을 흠칫했다. 어느새 그의 손에 내 어깨에 메고 있던 가방이 들려 있었다.

    “가방이 왜 이렇게 무거워.”

    “…….”

    “무식하게 다 들고 다니지 말고 사물함에 놓고 다녀. 집에 와서 너 공부 안 하잖아?”

    “…….”

    꽤 무거운 가방이 거슬렸는지 형이 나를 핀잔했다.

    그의 타박에 불현듯 서글픔과 억울함이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나는 수험생이었다. 형은 집에 들어오는 날보다 들어오지 않는 날이 많았고, 직장 상사를 보필한다는 명목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방문이 잦다 싶던 윤 차장은 결국 작년에 아버지와 재혼해 우리와 함께 살게 되었다.

    내 어머니가 될 거라고 전혀 예상 못 했던 윤 차장을 부모의 한쪽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파랑과 변혁에 가까운 일이었다.

    가뜩이나 나는 모두 내 기분을 맞춰 주어도 살고 싶지 않은 고3이었고, 고3이 된 것도 억울한데 난데없는 삶의 변화를 혼자서만 오롯하게 감당해야 했다. 손위 형제는 죽었는지 살았는지 궁금해질 때나 되어야 얼굴을 비추며 생존 신고를 했고, 그 누구도 파랑과 변혁의 소용돌이에 갇혀 있는 나에게는 관심조차 주지 않았다.

    비단 그것만 섭섭한 것은 아니었다. 그가 나의 형제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이가 이토록 소원하고 어색하다는 사실도 나를 한층 서럽게 만들었다.

    나 때문에 그가 유년 시절의 무엇을 손해 봤다고 하면 나는 그만큼 형에게 갚아 줄 자신이 있었다. 다정하다 못해 하나뿐인 동생인 나에게 애틋하던 그의 모습은 이제 온데간데없어져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를 따라 단독 주택 정원 사이의 보도를 걸었다.

    여름이 지나 가을로 접어들며 정원의 색이 바랜 빛깔처럼 흐려지고 있었다. 이 정원과 마당에도 그와 함께한 추억이 즐비했다.

    한여름에는 에어 튜브로 만든 미니 풀장에서 물장구를 치고 놀았고, 눈이 많이 온 겨울에는 눈싸움도 하고 눈사람도 만들었는데 눈사람은 꼭 두 개를 만들어 사이좋은 우리 형제처럼 나란히 세워 두었다. 눈사람이 봄기운에 녹아내릴 때가 되면 징징거리는 나를 위해 형은 냉장고로 작아진 눈덩이를 옮겨 주기도 했었다.

    “…….”

    우는 동생을 위해서 눈사람을 냉장고에 넣어 주는 형.

    어린 시절 형의 다정함은 치사량 수준이었다.

    그랬던 이가 지금은 호흡을 내뱉을 때마다 독한 알코올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날숨을 따라 술에 취할 것 같은 미세한 입자가 내 입술을 타고 들어왔다. 숨이 가쁘게 쉬어졌다.

    정원을 지나 대문을 나서자 길 한쪽에 형이 올 초에 아버지의 도움도 받지 않고 마련한 새 차가 서 있었다. 차분한 그의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검은색 세단이었다.

    밖에서 친구와 놀고 허세도 부리고 여자도 꼬시려면 차는 필수품이었다. 들어오라는 집구석에는 안 들어오고 술 냄새 풀풀 풍기면서 여자나 열심히 꼬시고 다니는 모양이었다.

    “형 술 마셨잖아.”

    운전하는 데 아무 거리낌이 없어 보이는 뒷모습에 대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안 마셨는데.”

    “술 냄새 나.”

    “누가 술을 쏟아서 그래. 난 안 마셨어.”

    “거짓말하지 마. 술 냄새 엄청 나. 나 그냥 버스 타고 갈래.”

    “정말 안 마셨어.”

    그가 이성에게 잘 보이려고 구입한 차에 타고 싶지 않았다.

    형의 차로 향하지 않고 보도블록을 따라 걸음을 돌렸다. 형이 다가와 내 팔을 붙잡아 세웠다. 술을 마시지 않았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갑자기 얼굴을 불쑥 들이대고, 한번 냄새를 맡아 보라고 입을 아, 벌렸다.

    “……!”

    나는 깜짝 놀라 고개를 뒤로 뺐다. 가까이서 냄새를 맡아 보라고 그가 또 숨을 내쉬었다.

    그의 몸에서 진동하는 술 냄새는 그가 내뱉는 숨에서 오는 게 아니라 그의 가슴팍에서 나고 있었다.

    형이 붙잡은 내 손을 자신의 가슴팍에 가져가 만지게 했다. 상의가 덜 말라 축축한 수분기가 느껴졌다. 형의 옷을 더듬은 손을 코로 가져왔다. 술 냄새가 유독성 물질처럼 지독하고 선명하게 맡아졌다.

    “내가 술을 퍼마시고 널 학교에 데려다준다고?”

    대체 그런 발상이 어떻게 가능한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내 손목을 도로 쥐고 차로 이끌었다.

    뜬금없이 이런 친절을 베푸는 걸 보니 윤 차장과 아버지가 보는 앞에서 그들의 눈치를 살피며 꾸역꾸역 밥을 삼키던 내 모습이 어쨌든 피가 섞인 형제라 불쌍해 보였던 모양이다. 팔이 안으로 굽고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형제란 그런 것이었다.

    나는 형의 호의에 응해 주고 싶지 않았다. 그런 거북하고 낯선 공간에 날 혼자 방치했다는 죄책감을 고작 학교에 한 번 데려다주는 것으로 등가 교환하려는 수작이었다. 나에 대한 부채감을 이딴 것으로 덜어 내고 가뿐해지려는 속셈이 야속했다.

    “나 그냥 버스 탈래. 형 피곤하잖아.”

    “잔소리하지 말고 얼른 타.”

    “형 졸릴 거 아니야. 밤새고 들어온 거 아니야?”

    “안 죽일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타.”

    형의 목소리가 낯설 정도로 오래간만에 하는 대화였는데 생각보다 쉽게 말이 나왔다.

    고집 피우는 나를 슬쩍 돌아보며 미간을 찡그리는 형의 반응에 나는 더 큰 반항을 하지 못하고 차 문 앞에 섰다.

    그가 잠금을 풀었다. 언젠가 집을 나가려고 돈을 모으는 것이라 여겼는데, 그는 독립은 하지 않고 용돈도 받지 않는 대학생 형편으로는 어울리지 않는 새 차를 샀다. 나를 태워 준 적은 없었다. 이번이 처음이었다.

    나는 공부를 하다 집 앞을 지나가는 차 소리가 들릴 때마다 이 층 창문을 돌아보며 형의 차인지 아버지의 차인지, 아니면 그냥 지나가는 차인지 넘겨다보곤 했다.

    형이 운전석에 앉았다. 나는 그의 옆에 올라탔다. 동시에 누군가 동석한 흔적이 있는지 찾으려고 눈을 분주히 움직였다.

    차 안은 그의 성격답게 깔끔하고 단조로워 뭔가를 추적할 만한 단서 같은 건 남아 있지 않았다. 그 흔한 립스틱 자국이 묻은 테이크아웃 커피 컵조차 없었다.

    “벨트 매.”

    그가 분주한 나를 이상하다는 눈으로 쳐다보며 재촉했다. 벨트를 매자 차가 매끄럽게 앞으로 이동했다.

    차 안은 곧 조용해졌다. 침묵만이 팽배하게 감돌았다.

    그는 말없이 운전만 했다. 액셀을 밟아 속도를 높였다가 적색 신호에 브레이크를 밟아 차를 멈추었다. 나를 죽이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키듯 정숙하고 안전한 운행이었다. 술을 마시지 않았다는 주장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집은 언제 나갈 거야?”

    차창으로 멀어지는 거리의 풍광을 버스가 아닌 그의 옆에 앉아 돌아보며 나지막이 물었다.

    나를 향하는 시선이 느껴졌다.

    “뭐?”

    “언제 나갈 거냐고. 집 나갈 거잖아.”

    “누가 그래, 내가 집 나간다고.”

    “군대도 집 나가고 싶어서 간 거였잖아. 말도 안 하고.”

    형은 대학에 들어가고 한 학기 만에 휴학했다. 그는 우리에게 통보도 없이 해군에 자원입대하고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 그리고 간간이 생기는 휴가 때에도 집에 온 적이 없었다. 나는 그때 형에게 버림받았다고 생각했다.

    형이 정말로 나를 버렸다고.

    “군대는 언젠가 가야 하는 거니까 빨리 해치워 버린 거야.”

    “이 년 동안 연락 한번 안 하고? 그게 정상이야? 다른 사람들도 다 그래?”

    “…….”

    “형, 요새 왜 그래?”

    왜 그러냐는 물음에 요새라는 수식은 옳지 않았다.

    요사이가 아니었다.

    형은 성장통을 겪으면서부터 나를 멀리했다. 그가 어른의 골격을 갖추어 갈수록 우리의 사이는 심하게 서먹해졌다.

    형제의 어색함은 내 탓이 아니라 온전히 그의 탓이었고, 나는 그가 세심하게 신경과 관심을 기울여 줘야 하는 예민하고 날카로운 나이였다. 우리 사이가 이토록 멀어진 이유가 누구의 잘못인지 따지고 싶었다.

    “…….”

    그는 가타부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원망을 가득 담고 쳐다보는 내 눈동자를 외면하고 앞만 주시했다.

    공회전하는 차의 소음과 차창 너머에서 들려오는 아침의 활기들이 차 안의 밀도 높은 침묵을 간간이 흔들었다.

    버스로 이십 분, 정류장까지 걷는 데 십 분, 등교에 삼십 분이 걸리는 학교를 단 십 분 만에 도착했다.

    형은 교문과 조금 떨어진 곳에 차를 세웠다. 그가 한때 다녔고 내가 지금 다니는 고등학교 정문이 멀리서 보이는 곳이었다.

    차가 완전히 멈춰 서고 안전띠를 풀었다. 어차피 그는 대답하지 않을 거고, 대답할 가치를 느끼지 못할 거고, 내가 어떻게 생각하든 개의치 않을 것이다. 형이 아니라 차라리 남이면 이렇게 섭섭하지 않았으리라.

    그가 건네는 가방을 챙겨 차에서 내렸다. 그에게 반항이라도 하듯 차 문을 쾅, 세게 닫아 버렸다.

    형의 차가 나를 거리에 남겨 두고 이내 제 갈 길로 가 버린다.

    나는 그 자리에 멈춰 서서 멀어지는 차체를 응시했다.

    “……그래, 가. 가 버려. 나도 이제 형 필요 없어.”

    허탈하게 중얼거리며 터덜터덜 걸음을 옮겼다.

    그의 옷섶을 축축하게 적신 술 냄새가 손끝에 묻어 버렸다. 형이 내 형이라는 것도 인식할 수 없을 만큼 강렬하고 낯선 체취가 코끝에 남았다.

    그와 나의 대화는 정확히 두 달 만이었다.

    ✦ ✧ ✦

    형은 사춘기가 오면서 말수가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온화하고 다정하던 표정은 어디가 아픈 사람처럼 굳어졌고 행동도 부드럽고 유연하지 않았다. 그의 성장은 돌과 같은 굳어짐이었다.

    형이 성장통을 겪을 때 나는 초등학교 4학년이었다. 그는 열다섯이 되었고 또래보다 키도 얼굴도, 그리고 사고하는 방식조차도 월등해져 빠르게 성숙했다.

    그는 모든 일에 타의 모범이 되는 학생이었다. 타의 모범이 되어 그가 받은 수많은 상장이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비단 나만이 아님을 증명했다.

    또 나에게도 훌륭한 형이었다. 부모님 참관 수업이라도 있을 때면 한부모 가정의 바쁜 아버지를 대신해 교복을 입은 형이 친구들 부모님 사이에 서서 손을 흔들어 주었고, 체험 학습 때도 어디서 사 온 도시락이 아니라 형이 직접 샌드위치나 김밥 같은 걸 만들어 주었다.

    숙제든 과학 과제든 혼자 하기 버거운 것들은 언제나 형과 함께였다. 달 이동 경로를 관찰하는 여름 방학 숙제는 옥상에 텐트를 쳐 놓고 한 달 내내 거기서 자면서 형과 함께했다. 형 때문에 엄마가 없다는 감정의 공백을 느낄 새가 없었다.

    나는 샤프펜슬의 꼭지를 습관적으로 누르면서 수업 중인 선생님의 칠판 너머를 응시했다.

    그런데 형의 중학교 2학년 겨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

    누구와 싸운 것처럼 형이 얼굴에 붉은 생채기를 달고 들어온 날이었다. 핏기가 묻은 상처는 나를 무섭게 했다. 남자가 되었다는 혈흔이 그의 얼굴에 묻어 있었다. 고작 열다섯이면서 형은 낯선 이의 외피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나는 평소처럼 곁으로 다가가지 못하고 형의 주변을 맴돌았다.

    그날 형은 얼굴에 생긴 상처 때문에 아버지의 서재로 불려 가 꾸지람을 들었다.

    나는 형이 아버지에게 혼나는 동안 그의 방으로 몰래 들어갔다. 그의 방에서 형이 잃어버린 소년을 찾아보려 했다.

    형의 가방을 열고 책과 공책 사이를 헤집었다. 그가 남긴 소년의 단서를 발견해 내려는 발악이었다. 혈육에 대한 끈질긴 미련을 추격하듯 물건을 마구잡이로 뒤졌다.

    엄격한 훈육은 형에게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깨달은 아버지는 길게 꾸중하지 않았다. 그는 때린다고 해서 말을 듣는 족속이 아니었고, 형은 때리는 이의 부아를 더욱 치밀게 하는 의연함마저 가지고 있었다.

    아버지는 그에게 손을 대지 않았는데 소득 없이 자신만 비루해지는 일임을 알기 때문이었다.

    나는 형의 발소리를 듣고 방 안에서 허둥거렸다. 숨을 곳이 마땅찮았다. 그가 문을 열기 직전, 책상 밑으로 재빨리 기어들어 갔다.

    아버지에게 잔뜩 꾸지람을 들었을 형의 호흡은 평상시와 다르지 않았다. 고요하고 조용했다.

    형은 조용한 숨소리를 내며 한참 동안 문에 등을 기댄 채 서 있었다. 그러다 내가 헤집어 댄 가방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공부를 시작하려는 것처럼 책가방 안에서 책과 필통 노트 같은 것을 꺼냈다.

    나는 숨을 죽인 채 가만히 웅크리고 있었다. 형이 어서 나를 발견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람 하나, 그가 나를 발견하지 못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마음속에 양분하고 있었다.

    형은 책상 밑에 숨어 있는 나를 보지 못했다.

    그는 가방과 책상을 정리하고 의자에 앉아 또 한동안 정적을 유지했다. 깊은 상념에 잠긴 세밀한 정적이 지루하도록 길게 이어졌고 나는 점점 숨이 막혀 왔다.

    차라리 형이 나의 존재를 눈치채 주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오른발을 삐죽이 책상 밑으로 내밀었다. 그는 여전히 내가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책상 의자에 조용히 앉아 있던 그가 이윽고 움직였다. 나는 웅크리고 앉아 그의 허벅지와 종아리만 바라보고 있었다.

    형의 허벅지가 벌어졌다. 책상 위의 손이 내려와 바지 버클을 풀고 지퍼를 내렸다. 그는 지퍼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우리는 얼마 전까지 같이 목욕도 했다. 점점 어른을 닮아 가는 그의 신체가 새삼스럽지 않았다. 어머니의 양육을 대신하는 듯한 그의 정성스러운 목욕 시중 역시 그가 성장통을 겪던 그해 여름부터 중단되었다.

    그의 이차 성징이 못 본 새에 자못 짙어져 있었다. 형이 손을 대자 성기는 추욱 늘어져 있다 어느새 완벽한 골격을 갖추고 솟구치기 시작했다.

    나는 우리의 목욕도 그의 신체도 한 번도 불쾌하게 여겨 본 적이 없었다. 형이 나를 씻겨 줄 때 우리는 장난을 치며 겨드랑이와 옆구리를 쓸어안고 서로를 간질이기도 했었다. 그와 나의 신체는 서로를 만지는 장난에 익숙했다.

    그런데 그의 속살이 난데없이 나를 불쾌하게 만들었다.

    나는 온몸에 벌레가 기어 다니는 듯한 혐오스러운 기분에 사로잡혀 내밀었던 발을 도로 불러들였다. 형에게 지금 책상 밑에 숨어 있는 나의 존재를 결단코 들키고 싶지 않았다.

    형은 참았던 숨을 가쁘게 내뱉으며 성기를 쓸어 쥐고 움직였다. 표피가 쓸려 올라가고 쓸려 내려가기를 반복했다. 형은 그런 행위에 익숙해 보였다. 자연스럽게 자신의 민감한 부위를 어루만졌다. 스스로 선단을 긁기도 했고 귀두를 움켜잡기도 했다. 변용하는 손가락에 그의 숨이 더욱 차졌을 때였다.

    앓는 신음을 흘리던 그가 괴롭게 헐떡이다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바지를 추켜올리고 손에 닿는 것을 가방에 마구잡이로 쏟아 넣은 후 방을 나가 버렸다.

    그것이 형의 최초의 가출이었다.

    그는 일주일 넘게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그 이후로 형은 더는 착한 학생을 연기하지 않았다. 밝게 웃던 천사 같은 얼굴에서 웃음기가 완전히 사라졌고 성격도 표정도 조용한 것을 넘어 을씨년스럽게 바뀌었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변화였다.

    툭툭.

    석주가 내 옆구리를 쳤다. 나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시야를 바로 했다. 선생님이 어느새 내 앞까지 다가와 나를 빤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일어나서 79페이지 본문부터 읽어 봐.”

    선생님의 말에 나는 황망한 얼굴로 일어나 책을 뒤적였다. 책을 아예 펼쳐 놓지도 않은 채였다. 선생님이 교과서의 모서리로 내 머리를 아프지 않게 때렸다.

    “똑바로 해. 앉아.”

    나는 자리에 앉았다. 한숨을 내쉬고 79페이지를 펼쳤다.

    선생님의 목소리가 본문을 읽어 내려갔다. 모든 소리가 공허하게 가슴에 울리는 착각이 일었다.

    나는 형의 자위를 목격하고 오랫동안 불분명한 불쾌함에 사로잡혔다.

    형이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데도 그를 걱정하기는커녕 이 불쾌한 기분이 사라지기 전에는 나타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정도로, 그의 자위를 목격한 일은 어린 나에게 충격을 주었다.

    그가 일주일쯤 지나 집으로 돌아오고 아버지와 각서까지 작성하며 다시는 가출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난 후에도 꽤 오랫동안 그의 얼굴을 볼 때면 형의 사타구니 사이에 돋아나던 음모와 자극을 받아 성감을 느끼던 살, 가쁜 신음이 연상되어 그를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흥분해 앓는 숨소리가 자려고 누우면 자꾸 떠올랐고, 형을 대하면 얼굴을 보는 게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그의 신체를 응시하는 일까지 생겼다.

    어른이 된다는 일이 그렇게 불쾌한 것이라면 나는 결코 되고 싶지 않다고, 눈 감을 때마다 간헐적으로 떠오르는 그의 남성을 머릿속에서 밀어내며 빌고 빌었다.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고.

    가출하고 돌아온 형은 더욱 나와 거리를 두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내게 말도 걸지 않았고, 없는 사람 취급하며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우리 형제가 남보다 더 못한 사이로의 전환을 맞이한 때였다.

    그가 고등학교 1학년이 되고 내가 중학교 1학년이 되어 우리 형제가 같은 재단의 중고등학교에 다니게 되면서부터 삶의 전환은 삶의 일상이 되었다.

    나는 수업이 끝나자마자 책상 위로 엎어져 버렸다. 학원 수업은 늘 밤 열 시가 넘어서야 끝났다. 집으로 돌아가서도 공부는 계속해야 했다. 잠이 모자라 속이 메슥거리는 구토감이 3학년이 되고 나서부터 늘 두통과 함께 따라다녔다.

    석주가 나 정도의 성적을 받았으면 그 집에서는 녀석을 받들어 모셨을 테지만, 우리 집은 아니었다. 나 정도의 성적으로는 누구도 감동시킬 수 없었다.

    나는 무슨 짓을 해도 형의 성적을 뛰어넘을 수 없었다. 그의 성적은 재학생들에게 지금도 전설처럼 언급될 정도로 확고한 위치에 있었다.

    내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따라잡을 수 없는 기록이었고, 애초부터 불가능하다고 단념해서 그런지 그다지 따라잡고 싶지도 않았다. 그 근처 언저리에서 비비는 것도 사실 대단한 일이었다. 같은 재단이라 형을 아는 선생님들이 많았고, 그들은 매우 잘난 형을 둔 나를 측은하게 여겼다.

    “야, 매점 가자.”

    석주가 내 등을 손가락으로 찔렀다. 나는 미동하지 않고 잠든 척 가만히 있었다.

    “너 오늘 타고 온 차, 그거 누구야? 너희 아버지 차는 아닌 것 같은데.”

    “……언제 봤어?”

    “버스 타고 옆으로 지나갔는데, 나 못 봤지? 손 엄청 흔들었다.”

    석주는 이렇게 열렬히 흔들었다고 두 팔을 허공에서 교차하여 세차게 움직여 댔다.

    “못 봤어.”

    “누구 차야?”

    “몰라.”

    몰라서 모르는 게 아니라 귀찮아서 모른다고 하자 석주는 누구 차냐고 집요하게 캐묻다 편의점에 가자는 누군가의 말에 곧 친구들과 웅성거리며 교실 밖으로 나가 버렸다.

    나는 아무리 해 봐야 내 형제를 따라잡을 수 없을 거라는 패배 의식에 찌들어 있었다. 그 형과 사이라도 좋았으면 나는 그를 자랑스러워했겠지만 우리는 그렇지 못했다.

    내가 유별나서가 아니라 잘난 사람에게 당하는 무시는 가슴에 큰 상해를 남기는 법이었고, 그 상처가 누군지도 모르는 어느 엄마 아들이나 딸이 아니라 노상 비교를 당할 수밖에 없는 형제라면 더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피곤하다. 무거운 상체를 부스스 일으켜 앉았다. 흐트러진 머리를 쓸어 넘기다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다.

    나와 비슷한 등수를 유지하는 우리 반의 임주호라는 녀석이었다. 그는 나를 빤히 보다 도로 책으로 자연스럽게 시선을 돌렸다. 같은 공간에 있으면 가끔 일어나는 별것 아닌 대수롭지 않은 시선 교환이었다.

    “새우깡 먹을래?”

    어느새 매점에 다녀온 석주가 내 앞으로 과자 봉지를 던졌다. 그의 입에는 이미 빵이 물려 있었다.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입안이 버석거려서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았다. 석주는 과자 봉지를 부스럭부스럭 뜯으며 말했다.

    “오늘 너 타고 온 차, 그거 누구 거냐니까.”

    “우리 형.”

    “오, 그 차 좋은 거지?”

    “잘 몰라.”

    “진짜 멋있더라. 그런 걸 스포츠카라고 하는 거야? 아니면 컨버터블이라고 하는 거야?”

    “나도 몰라. 그냥 승용차 아니야?”

    “한번 빌려 달라고 하면, 빌려주시나?”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면허는 있고? 나도 오늘 처음 타 봤어.”

    “엥? 진짜? 여친만 태우나?”

    “아, 모른다고. 그런 얘기 잘 안 해, 우리 형.”

    석주나 친구들이 형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할 때면 나는 꼭 ‘우리 형’이라는 수사를 붙였다.

    그들에게 나의 형은 우상이었다.

    학교를 때려치우는 대범함, 불리한 조건 속에서도 합격한 좋은 대학, 수려한 외모, 그를 흘깃거리는 흠모의 시선들, 멋지게 생긴 차, 밤새 남이 퍼마시는 술이나 묻히고 다니는 그런 일들은 내 또래의 남자아이들이 가장 선망하는 것이었다.

    ‘우리 형’이라는 말만큼 나를 으쓱하게 하는 것도 사실 없었다. 그는 누구 어느 집 엄마의 아들이 아니라 우리 형, 나의 형이었다.

    “왜 얘길 잘 안 해? 서로 말을 안 해?”

    “바빠, 형이. 얼굴도 못 봐.”

    “공부도 안 가르쳐 줘?”

    “학원에서 배우는 걸, 뭐.”

    “야, 그래도 현역하고 선생하고 같냐? 벌써 피부로 와닿는 체감이 다르잖냐, 수능의 고통은 수능을 본 사람만이 아는 거야.”

    “학원 강사들도 수능 봐.”

    “너희 형이랑 같냐. 전국구하고 일개 학원 강사하고 같냐고.”

    “내가 알아서 할 수 있어. 우리 형도 그냥 내가 알아서 잘하겠거니 해.”

    거짓말.

    내가 공부를 잘하는지 등급은 어떻게 되는지 어느 대학을 지망하고 어느 과를 희망하는지, 나에 관해서 형은 아무것도 궁금해하지 않는다. 그는 나를 싫어한다.

    철들 시기가 오면 형제라는 관계가 원래 데면데면해진다는 것은 알고 있다. 나 역시 형에게 그리 살가운 동생은 아니다. 그의 무시와 외면에 나까지 덩달아 동참할 필요는 없었지만 하도 무시를 당하는 바람에 나도 마음의 문을 닫은 지 오래였다.

    형의 입장에서 본다면 시작은 그가 먼저였지만 나 역시 그를 무시하고 외면하고 있었다.

    “아, 씨발. 질소 과자 두 번 집어 먹으니까 아무것도 먹을 게 없네.”

    아쉽게 입맛을 다시며 석주는 봉지를 들고 탁탁 부스러기를 모으더니 입으로 쓸어 넣으며 투덜거린다. 녀석이 입가에 묻은 지저분한 것들을 털어 내고 묻는다.

    “이따 피방 갈래? 학원 근처에 새로 생긴 데 가 봤는데, 미친, 우리 가던 데랑 가격은 똑같은데 컴 사양이 장난 아니야. 학원 몰려 있는 동네에 새로 생긴 개좋은 피시방. 영업 전략이 대단하지 않냐. 사장이 존나 천재라니까.”

    “나 오늘 상담 있어서 학원으로 바로 가야 하는데.”

    “딱 한 시간만, 그리고 공부하면 더 집중 잘되는 거 몰라? 불닭볶음하고 고기만두가 개존맛이래. 어차피 저녁도 먹어야 되잖아. 응? 강준영아, 준영아아아아. 영아아아.”

    석주와 문자질을 할 때면 장난으로 서로를 쭈, 영이, 이렇게 부르곤 했다. 나는 입으로 소리를 내서 쭈라고 석주를 불러 본 적이 없지만, 석주는 가끔 소름 끼치는 목소리로 나를 영이, 영이, 하고 불러 댔다. 녀석이 그럴 때면 진짜 징그러워서 나는 질색하고 그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아, 진짜. 알았어. 그거 하지 마. 징그러워.”

    “영아, 영아, 영아아아아아.”

    “하지 말라고! 간다고.”

    덩치 큰 놈이 몸을 구기며 아양을 떨어 대는 꼴이 가관이었다. 몸서리를 치면서도 웃음이 터졌다. 한 시간 정도는 여유가 있었기에 나는 마지못해 그러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학원 근처 새로 생긴 피시방은 석주의 말대로 컴 사양도 좋고 깨끗했다. 시큼하고 이상한 냄새가 나지 않는 게 제일 마음에 들었다.

    저녁을 그곳에서 대충 때우고 게임을 몇 판 하니 약속했던 한 시간이 거짓말처럼 훌쩍 지났다. 두 시간을 넘어 학원에서 전화가 왔을 때야 나는 아쉽게 마우스에서 손을 떼고 일어섰다.

    피시방에서 알바를 하는 대학생 누나가 은근슬쩍 연락처를 물어 왔지만 나는 이성이나 연애에는 관심이 별로 없기도 하고 고3이라 그런 일에 시간을 할애하고 싶지 않아 단칼에 거절했다.

    “너 미쳤어? 저 누나 얼마나 인기 많은데. 아오, 씹. 내 번호라도 알려 줄걸.”

    정작 누나 앞에서는 말도 한마디 못 하고 내 옆구리만 퍽퍽 쳐 대면서 번호를 주라고 오만 난리를 떨어 대던 석주는 이제 그 누나는커녕 건물밖에 보이지 않는 피시방을 몇 번이나 돌아보며 쌍욕을 내뱉었다.

    “그럼 지금 빨리 가서 알려 줘. 이게 내 번호다, 하고.”

    “아이, 진짜. 창피하게. 나중에 또 가자.”

    “그래, 또 가자.”

    그러자고 나는 지켜도 되고 지키지 않아도 그만인 약속을 건성으로 해 주었다.

    “그때 저 누나가 또 네 번호 물어보면 내 번호를 주는 거야. 어때?”

    “그거 속이는 거잖아. 솔직하게 말해. 나 누나가 좋아요. 사귀고 싶어요.”

    “야, 그럼 번호를 주겠냐? 너니까 주는 거지.”

    “뭐야, 왜 이렇게 자신 없는 척하는데.”

    갑자기 쑥스러운 척을 하며 소심하게 구는 석주를 황당하게 돌아보았다. 석주도 어디 가서 못생겼다는 소리를 듣는 외모는 아니었다. 키가 크고 덩치가 좋아서 같이 있으면 은근히 그를 돌아보는 여학생들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석주는 내가 그런 말을 하면 저를 보는 게 아니라 나를 보는 거라고, 가뜩이나 속상한데 염장 지르지 말라고 화를 냈다.

    “몰라. 너하고 다니면 좀 위축돼.”

    석주는 내 얼굴을 쓱 돌아보고 그런다.

    “웃기고 있네.”

    피시식 소리를 내며 그를 비웃었다.

    “그런 거 있어.”

    “그런 게 있기는 뭐가 있어. 나 여자한테 관심 없다.”

    “너 여자한테 관심 없는 거 내가 잘 알지.”

    “늦었어. 더 늦으면 학원에서 집으로 전화할지도 몰라.”

    석주는 작년에 학원 건물에서 만난 여자애에게 관심을 보였다. 인형 캐릭터처럼 귀엽게 생긴 애였는데, 그 여자애는 석주가 아니라 공교롭게도 나에게 관심을 보였다.

    석주를 위로하려고 한 말이 아니라 나는 정말 여자에게 아무 관심이 없었다.

    이것도 사실 형이 원인이었는데, 형의 수음을 목격하고 난 후로 성에 대한 욕구가 정말 말 그대로 아예 상실되어 버렸고, 그 감정을 혐오하게 되었다.

    작년에 같은 반인 애와 우연히 친해져 사귀기 직전까지 간 적이 있었다. 나는 내가 그런 감정을 혐오로 받아들인다는 걸 그때까지 잘 몰랐다.

    여자애와 손만 잡았을 뿐인데 소위 야릇한 분위기가 되자 타인에게 느끼는 성애의 감각이 불쾌하게 나를 휘감았다. 나는 진저리치듯 그 애를 뿌리쳤고, 당황한 우리는 도로 서먹한 사이로 돌아갔다.

    그게 누구든 성적인 끌림은 불쾌하기만 했다. 그 후로 이성 교제는커녕 자위도 거의 하지 않게 되었다.

    아무튼 석주의 표정이나 말에서 그 일을 암시하는 듯한 신호가 보이면 나는 얼른 말을 돌리고 모르는 척했다.

    친구와 그런 것으로 경쟁하고 서로를 의식하는 것은 몹시 어색한 일이었고, 나는 학교와 학원 다니는 것 자체만으로도 삶이 피곤한 인간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패기 발랄한 십 대를 형 때문에 이성 교제도 하지 못하는 채로 살고 있었다.

    “하여튼 신기한 새끼야. 딱히 그렇다고 나를 좋아하는 것도 아닌 것 같고.”

    도통 그쪽으로는 관심이 없는 나를 석주는 가끔 기이하고 신기한 생명체를 보듯 골똘히 쳐다보곤 했다.

    “토 나오는 소리 하지 마라. 간다.”

    “어깨 좀 펴, 인마. 공부하러 가지, 죽으러 가냐.”

    “죽으러 가는 건 아닌데, 사는 것 같지도 않아. 뭐야, 너. 넌 학원 안 갈 것처럼 말한다?”

    여친은 무슨, 하루하루 사는 것도 고단하다.

    이런 생활에 곤궁함이 느껴질 때면 내가 이토록 힘들게 지나는 시절을 형은 특별한 노력 없이 쾌속정처럼 빠르고 경쾌하게 지나쳤다는 사실까지 덩달아 떠올랐다. 일탈이라는 일탈은 있는 대로 해 가면서.

    내가 형에게 열등감을 느끼는 이유는 바로 이런 것들 때문이었다. 자질구레한 일에 필사적일 수밖에 없는 나와 그런 것들을 너무 쉽게 쟁취하고 간과하는 형의 모습.

    “불금을 이런 식으로 보낼 순 없지. 더군다나 오늘은 공부할 기분이 아니야.”

    “어떻게 맨날 공부할 기분이 아니야? 대학 안 갈 거야, 진짜?”

    “가긴 가야지. 그건 내일의 내가 감당할 몫이지. 오늘의 나는 아니라는 거지.”

    피시방에서 이미 두세 시간을 훌쩍 보낸 후였다.

    “너 1학년 때부터 그 소리 한 거 알지? 너 지금 고3이야. 대체 언제 정신 차릴 거냐.”

    “내가 너냐? 나는 공부해 봤자 아무 소용 없어. 아는 형네 들러서 옷 갈아입고 홍대 갈 거야.”

    해가 저무는 저녁이었다. 석주는 홀가분하게 말하며 눈을 반짝였다. 형과는 다른 의미로 석주의 인생은 언제나 홀가분했다.

    “어휴, 마음대로 해라. 마음대로. 난 갈게. 월요일에 학교에서 보자.”

    “계속 개소리할 거면 얼른 가라.”

    석주는 대강 인사하고 걸음을 옮겼다.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던 뒷모습이 제자리에 서 있는 나를 돌아보더니 영아아아아, 하고 크게 부르고는 공부를 존나게 열심히 하라고, 큰 소리로 외치는 바람에 주변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키득거렸다.

    나는 빨개진 얼굴로 못 들은 척하고 빨리 꺼지라고 손을 휘적거렸다. 멀어지는 녀석을 바라보다 나도 돌아섰다.

    “하아…….”

    한숨을 푹 쉬었다.

    학원으로 가야 한다. 석주는 나오지 않으면 왜 오지 않느냐고 닦달하는 학원에 다니지 않는다. 석주는 돈만 내면 아무나 다닐 수 있는 학원에 다녔고, 나는 생기부와 자소서 관리까지 해 주는 학원에 다녔다. 시험을 쳐야 들어갈 수 있는 학원으로 이 주변에서 명문대 진학률이 가장 높은 곳이었다.

    오늘따라 다리가 천근만근이었다. 석주와 노닥거린 시간이 재미있었던 걸 떠올리자 걸음이 자꾸만 무거워졌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특히나 책상에 앉아 공부는 더더욱 하고 싶지 않은 무력감이 걸음을 축축 늘어트렸다.

    움직임을 멈추고 습관적으로 바닥만 보고 걷던 시선을 들었다. 대로변의 모든 빌딩에 사람을 질리게 하는 문구로 이곳에 소속되지 않으면 인생이 망할 거라고 위협하는 학원 간판이 즐비했고, 길가에는 아이들을 실어 나르는 학원 차들이 불법 주차를 하고 줄줄이 서 있어서 어디를 둘러봐도 시야가 꽉 막혀 답답했다.

    이곳에 가득 차 있는 것은 더 나은 미래를 기대하는 희망과 학구열이 아니라 경쟁에서 도태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불안과 공포였다.

    문득 숨 쉬는 게 괴로웠다. 버스를 기다리는 석주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석주는 이 갑갑한 곳에서 유일하게 살아 있는 생명체로 반짝거리고 있었다.

    나는 녀석에게 뛰어갔다. 제 뒤를 따라 쫓아온 나를 보고 녀석의 표정이 의아해졌다.

    “어? 안 갔냐? 왜? 뭐 잊어버렸어?”

    “나도 갈래.”

    “어딜? 홍대 가자고? 나 클럽 갈 건데?”

    “나도, 나도 가 보고 싶어.”

    오늘은 때려죽여도 책상 앞에 앉고 싶지 않았다. 저녁에 학원을 가지 않는다는 사실만으로도 한 짐을 덜어 내는 것처럼 몸이 가벼워지고 생기가 돌았다.

    “진짜? 진짜지? 정말? 나중에 딴소리하기 있어, 없어, 응?”

    “나도 그 형한테 옷 빌려 입을 수 있어?”

    “아, 체급이 살짝 차이 나지만 있을 거야. 옷 없다고 안 간다고 하기 있어, 없어?”

    “없지.”

    나는 피식 웃으면서 대꾸했다.

    석주는 내게 꾸준히 일탈을 권유해 왔고, 나는 꾸준하게 거절해 왔다. 그랬던 내가 나서서 같이 클럽에 가자고 하니 석주는 제가 더 들떠서 말 바꾸는 거 없기다, 하며 도망가지 못하게 내 팔을 아예 붙잡고 섰다.

    석주와 함께 홍대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탔다. 사람을 잔뜩 실은 버스가 복잡한 도심을 가로질렀다. 목적 없는 탈주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우리는 석주의 지인 집에 들러 옷을 빌렸다. 그 형은 나보다 키가 컸지만 바지는 길이가 꼭 맞았다. 작년보다 키가 조금은 더 큰 모양이었다. 석주는 아예 그 집에 사복을 숨겨 두고 있었다.

    교복을 벗으니 석주도 나도 입시에 찌든 수험생이 아니라 대학생으로 보였고, 성인이 된 듯한 기분이 들어 더욱 들떴다.

    형네 원룸에서 시간을 얼마간 죽이고 우리는 어두워지기가 무섭게 홍대로 향했다.

    금요일 저녁은 어디든 소란스러웠고, 홍대는 매우 혼잡했다. 나는 원래도 사람이 많은 곳을 싫어했기에 학원을 빠졌다는 해방감과 흥분은 얼마 가지 않아 흐려졌다.

    유흥을 즐기려고 요란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에 섞여 거리를 헤매고 있으려니 문득 짜증도 나고 내 행동이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실실 웃으며 길거리에서 껄렁거리는 일에는 얻을 것이 없었다. 이럴 시간에 영어 단어 한 개라도 더 외우고, 수학 문제 하나라도 더 풀 것을, 하는 후회가 한 시간도 되지 않아 초조하게 밀려들었다.

    일탈조차 대범하게 저지르지 못하고 즐길 줄 모르는 내 꼴이 한심했다. 공부하고 있어도 마음이 편치 않았고, 그렇다고 놀아도 마음이 좋지 않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조바심에 불안해하는 내 모습은 사춘기의 나에게 환멸감을 심어 주는 데 손색이 없었다.

    홍대 근처를 돌아다니다 밤 열한 시가 넘어서 클럽으로 들어갔다. 석주의 지인이 엠디로 일하는 클럽이었다.

    계단을 밟아 어두워지는 지하로 내려갔다. 건물 밖에서부터 희미하게 울리던 EDM이 계단을 내려가고 클럽에 가까워질수록 점차 커지며 문을 열자 전신을 쾅쾅 두드렸다.

    석주는 나를 라운지 바로 데리고 갔다. 첫 잔은 제가 추천하겠다며 칵테일을 사 주었다. 나는 바텐더가 내준 술잔을 받아 놓고 괜히 손목을 감싼 띠를 만지작만지작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여기 잠깐 있어.”

    제 친구들을 발견한 석주는 내 어깨 한쪽을 꾹 누르고 굳이 소리 지르지 않아도 잘 들리는데 큰 소리로 말하고는 그쪽으로 사라졌다.

    클럽의 음악은 몸을 때리는 소음처럼 다가왔다. 계속 듣고 있으니 몸의 기력을 빼앗아 가는 느낌이었다. 오랫동안 두들겨 맞아도 적응할 수 없을 성싶은 소리였다.

    불안정한 곳에 있으면 머리가 어지러웠고, 무엇보다 싫은 것은 서로 거리감을 유지하지 않고 다닥다닥 붙어 있는 타인과의 간격이었다. 내 등 뒤에도 사람이 있었고, 내 옆에도 사람이 있었고, 내 앞에도 사람이 있었다.

    타인과 접촉하면 기분이 나빠졌다. 만원 버스나 지하철도 마찬가지였고 클럽 안이라고 해서 싫던 것이 갑자기 좋아질 리 없었다.

    현란한 조명과 음악에 몸을 맡기고 주위의 시선은 개나 주라는 양 무신경하게 사지를 흔들어 대는 사람들 그 누구와도 닿고 싶지 않아 나는 일부러 움직이지 않았다.

    특히 내 등 뒤에 서 있는 누군가에게 가까이 달라붙지 말라고 팔꿈치를 휘둘러 싫은 티를 냈다. 등 뒤에 서 있던 형용이 조금 멀어지는가 싶더니 이내 도로 달라붙는다. 사람은 많고 장소가 좁으니 어쩔 수 없었다. 여유롭게 거리를 두고 서 있을 공간이 아예 없었다. 등에 바짝 붙어 선 체온과 열감이 무척 신경에 거슬렸다.

    어깨를 움츠리고 뻣뻣하게 굳혔다. 신나게 노는 이들을 어색하게 의식하며 쳐다보고 있을 때였다.

    작은 술잔이 내 앞에 놓였다. 의도적인 인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혼자 왔어요?”

    “……네?”

    “혼자 왔느냐고요.”

    “아니요. 친구하고 왔는데요.”

    뭐야, 이게 말로만 듣던 그건가?

    내게 술잔을 내밀며 말을 거는 사람은 이런 곳에 유독 잘 어울리는 차림과 생김새를 가지고 있었는데 여자가 아니라 남자였다. 사람의 환심을 사는 가벼운 웃음이 그의 입술에 걸려 있었다.

    여자가 핸드폰 번호를 물어보는 경우는 간혹 있었지만 미소 띤 남자가 먼저 말을 거는 일은 생전 처음이었다. 매우 당황스러운 상황이었다.

    뭐 하자는 거냐고 멀뚱멀뚱 그를 쳐다보았다. 나는 남자와 그러고 싶은 마음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이거 내가 사는 거예요. 취할 정도로 도수 높은 거 아니니까 마셔 봐요. 맛있어요.”

    “…….”

    “괜찮아요. 약 같은 거 안 들었어요.”

    생전 처음 보는 남자가 내게 재차 술을 권했다.

    괜찮으니 마셔 보라고 권하는 미소에 닳고 닳은 능숙함이 엿보였다.

    약 같은 게 들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는데 약이 안 들어 있다고 주장하니 더 마시기 싫었고, 남자가 던지는 흥미에 응해 주고 싶지 않았다. 갑자기 기분이 더러워졌다. 나는 싫은 표정을 노골적으로 지어 보였다.

    “됐어요.”

    나는 ‘꺼져요’와 동일한 ‘됐어요’를 말하고 한마디만 더 얹으면 주먹으로 얼굴을 날려 버리겠다는 경고의 눈빛을 보냈다.

    그를 무시하고 나는 일행을 찾는 것처럼 고개를 돌렸다. 웃고 떠드는 석주의 모습이 조명에 언뜻 드러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눈이라도 마주치면 그쪽으로 가려고 했는데 석주는 내 쪽으로는 고개조차 돌리지 않고 웃고 노느라 정신이 없었다.

    “고딩이죠? 어떻게 들어왔어요? 미성년자 출입 금지인데, 여기.”

    어떻게 들어왔느냐면 석주가 아는 형이 우리를 그의 친구라고 소개했고, 입구를 관리하는 직원이 어어 하는 동안 우르르 밀고 얼떨결에 들어왔다.

    “누가 입장 시켜 줬지? 고딩을?”

    쳐다보지 않자 그가 내 쪽으로 아예 얼굴을 불쑥 들이밀고 취조인지 질문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말을 했다. 마치 내가 불법이라도 저지른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이거 안 마실 거죠? 그럼 내가 마실게요.”

    그가 술잔을 도로 가져갔다. 나는 남자를 향해 얼굴을 들었다. 그는 정당하게 이런 곳에 출입하는 성인은 이 정도쯤이야 간단하게 해치운다는 양 술잔을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술을 거절해서 이런 곳에 출입해서는 안 되는 십 대로 보이고 싶지 않았고 미성년이라는 이유로 쫓겨나고 싶지도 않았지만 무엇보다 그의 말에 위축된 것처럼 보이고 싶지 않았다.

    나는 남자가 가져간 술잔을 빼앗듯이 집어 들었다. 슬쩍 냄새를 맡아 보았다. 투명한 갈색 액체에서 술 냄새가 나기는 했다. 무슨 개도 아니고 겨우 후각만 가지고 어떤 더러운 것이 첨가되었는지 구분하기는 어려웠다.

    “와, 되게 시간 끈다. 마셔도 안 죽어요. 내가 그거 하나는 약속할게. 절대 안 죽어. 뭐 안 탔어.”

    그만 애태우고 빨리 해치우라는 듯 남자는 애가 닳는 몸짓을 하며 나를 재촉했다.

    나는 음료 하나를 교환할 수 있는 쿠폰을 그에게 내밀고 술을 들이켰다. 쿠폰을 건네받은 그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웃으며 내 뒤쪽을 넘겨다보았다.

    쓴맛에 진저리를 치며 입가를 손등으로 훑었다.

    미간이 저절로 찡그려지는 맛이었다.

    “맛없는데요. 맛있다면서요.”

    “나는 맛있던데. 너 큰일 났다, 준원아. 얘 지금 술 마셨어.”

    남자가 내 어깨 너머의 누군가를 바라보며 말했다.

    준원이라는 이름에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가 까무러칠 정도로 기겁했다.

    “……!”

    내 뒤에 형이 서 있었다.

    아까부터 거리감 없이 등에 바짝 닿아 있던 성가신 체온의 정체가 바로 나의 형 강준원이었다.

    비키라고 팔뚝을 휘두르는데도 비키지 않고 철벽처럼 등 뒤에 버티고 서서 나를 불편하게 만들고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하던 열감의 정체가 바로 그였다.

    “마시란다고 진짜 마시네. 겁도 없이.”

    남자가 나와 형을 비웃으며 쿠폰을 흔들었다. 나를 보는 형의 눈살이 미세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아, 나는, 저기, 석주가 가자고 해서. 그래서.”

    막 삼켜 제대로 가시지 못한 술 냄새가 입을 열자마자 알싸하게 풍겼다. 나는 그에게 변명을 늘어놓다가 멈칫했다.

    형은 늘 이런 시선으로 내게 불편을 하사했다. 너절하게 변명을 읊게 만드는 그 표정이 싫었다. 형보다 모자란 놈이라고 스스로를 낙인찍고 행동하는 것은 나였고, 나를 그렇게 만드는 게 형이었다.

    “학원은?”

    이런 곳에서 형의 물음이 정말이지 생뚱맞았다. 나는 꾸중을 듣는 아이처럼 그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안 갔어.”

    “…….”

    “오늘은 가기 싫었어.”

    “…….”

    형은 더 묻지 않았다. 모든 게 내 할 탓이라는 침묵이었다. 그저 내 옆에 선 채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사방이 벽으로 막힌 곳에 갇힌 기분이었다.

    “한 잔 더 마실래?”

    형의 친구로 보이는 남자가 또 술을 권했다. 형은 나를 말리지 않았다. 술잔을 쥐고 형의 눈치를 살피자 남자가 말했다.

    “기왕 노는 거 화끈하게 놀아. 왜 눈치를 봐? 너희 형은 이것보다 더 나쁜 짓도 많이 하는데.”

    남자는 알 수 없는 말을 늘어놓았다. 내가 모르는 곳에서 형은 이런 사람과 이런 식으로 어울리면서 노는 모양이었다.

    형의 침묵을 의식하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술을 들이켰다. 뜨거운 액체를 삼키자 눈앞이 핑그르르 돌았다. 식도가 불에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남자가 한 잔 더, 를 외치자 그제야 형이 잔을 빼앗아 갔다. 힘줄이 돋아 있는 손등을 내리깐 눈으로 응시했다. 술잔을 빼앗겨서 그런지 손도 허전하고 가슴도 허전했다.

    “그만하고 집에 가.”

    “…….”

    형이 말했다. 무슨 반발심이 일었는지 나는 형의 말에 따르지 않았다. 라운지 바로 다가가 양쪽에서 주문받느라 정신이 없어 보이는 바텐더를 불렀다. 시끄럽게 울리는 음악이 등허리를 툭툭 때리고 있었다.

    나는 지갑에서 돈을 꺼냈다.

    “이 돈만큼 술 좀 주세요.”

    옆에 서 있던 형의 친구가 웃음을 터트렸다. 형을 조롱하는 웃음이었다. 바텐더는 황당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이 돈만큼 달라니까요.”

    시끄러운 노래가 멈추지 않고 계속되었지만 정확한 어조로 그녀를 다그쳤다. 형이 무어라고 눈짓했는지 바텐더는 나를 무시하고 다른 이의 부름에 자리를 옮겼다.

    나는 형을 돌아보았다.

    “뭐야?”

    “좋은 말로 할 때 집에 가라.”

    형은 높낮이가 없는 말투를 구사했다. 형제이기에 가능한 무시의 어법이었다.

    “이럴 때만 형 행세하지 마. 나한테 신경도 안 쓰면서.”

    “…….”

    어이없는 눈이 나를 바라보다 우리 둘을 보며 실실거리는 친구를 향했다. 그는 형의 무표정에 비웃던 기색을 죽였다.

    “알았어. 갈게. 간다고.”

    쳐다보는 시선에 질려 버린 남자가 형을 피해 다른 곳으로 사라졌다.

    나는 어리다는 것으로 형에게 이래라저래라하는 무시를 당해서 화가 난 게 아니었다. 그가 집에 돌아오지 않던 시간에 이런 곳을 전전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화가 난 것이었다.

    나의 형이라면, 강준원이라면 좀 더 건설적이고 수지 타산이 맞는 일을 하고 있어야 했다. 도서관에서 밤새도록 공부하든가,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기 위한 사회 경험을 쌓는다든가, 좀 더 생산적이고 도덕적인 일을 하고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어린 나조차도 시시하고 허무하게 여기는 이런 클럽에서 몸이나 비틀거리고 있을 줄은 정말 상상도 하지 못했다. 부모의 불륜 현장을 목격한 것처럼 기분이 불쾌했다. 알 수 없는 배신감이 밀려왔다.

    혼자 잘났다고 집에도 들어오지 않고 밖에서 뭐 하고 있나 했는데, 그동안 나를 버려두고 이런 시시한 곳에서 시간을 허비하고 있었던 거다.

    형에게 쌓아 왔던 기대치가 한순간에 무너지고 그에게 드는 실망감에 저절로 인상이 굳어졌다.

    “데려다줘야지 갈래?”

    “그럴 필요 없어. 나도 쉴 땐 쉴 거야.”

    “쉬어? 2등급이 세 개나 있는데 쉬어?”

    나는 비장하게 대꾸했다가 형의 말에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2등급이 처음으로 세 개가 넘은 지난 중간고사 성적표를 아버지는 아직도 확인하지 않았다. 형이 늘 받아 왔던 1, 이라는 숫자가 아니라 관심도 없을 게 뻔하지만, 느닷없이 아버지가 마음을 바꾸어 성적표를 보자고 할까 봐 전전긍긍했던 지난 중간고사 성적을 그가 이야기하고 있었다.

    “……어떻게 알았어?”

    “뭘 어떻게 알아. 보이니까 봤지.”

    “형이 그걸 왜 열어 봐?”

    “내가 보면 왜 안 되는데?”

    나는 굴욕감에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동시에 주먹까지 꽈악 쥐었다.

    “나는 형이랑 달라.”

    “…….”

    말투가 차갑게 튀어나왔다.

    형은 말이 없었다. 그의 침묵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비참해졌다.

    스스로 내 치부를 까발린 꼴이었다. 술을 마셔서 그런 건지, 아니면 쪽팔려서 그런 건지 얼굴로 피가 몰리듯 뜨겁게 열이 올랐다.

    형제에게 그를 시기하고 그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있음을 자인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나하고 다르다는 걸 알면 노력해.”

    짧은 침묵 후에 그가 내뱉은 말이었다.

    내 열등과 피해 의식을 고스란히 읽어 냈으면서 저런 말을 내뱉다니. 분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나 이러는 거 오늘 처음이야. 이런 데 온 적 없어. 공부도 안 되고 생각하는 것도 지겨워. 외우는 것도 책도 다 싫어. 나도 기분 전환이 필요하단 말이야.”

    “평생 그렇게 합리화만 해. 손해 보고 뒤처지는 건 너야.”

    형은 이 일로 더는 훈계하지 않겠다는 듯 술잔을 쥐고 훌쩍 술을 삼켰다. 술을 마시는 그의 모습이 지나치게 자연스러웠고 멋스럽게까지 보였다.

    성적이 떨어져 고민하는 나에게 이제부터 형이 신경 써서 공부를 가르쳐 주겠다는 말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다. 그래도 최소한 힘을 내라든지, 열심히 하라든지 하는 상투적인 위로의 말이라도 해 줄 거라고 기대했다. 그런데 그는 숨이 막힐 만큼 냉정한 어조로 알아서 하든지 말든지, 뒤지든지 말든지, 그러고 있었다.

    강준원은 이런 인간이다. 앞뒤 재지 않고 자기 하고 싶은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뱉어 낸다. 어떤 이는 그런 면이 뒤끝이 없어 좋다고 했고, 어떤 이에게는 가슴에 칼을 품게 했다. 칼을 품지 못하는 나약한 성격의 나는 그저 생채기 하나를 더 만드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뒤처지든 말든 형이랑 무슨 상관인데. 내 일에 신경 쓰지 마.”

    격앙되고 빠른 어조로 일갈했다.

    형은 나를 빤히 바라보다 눈을 라운지 홀로 돌렸다. 모두가 엉켜 신나게 리듬을 타고 있었다. 그는 손목의 시계를 내려다보고 말했다.

    “놀아 봐. 어디.”

    “…….”

    “공부에 재주가 없으면 노는 거라도 잘해야지.”

    형의 도전적인 눈동자가 나를 주시했다. 그의 시선이 무엇을 부추기는지 알면서도 꼼짝할 수가 없었다. 나는 그의 말대로 공부에도 재주가 없었고 노는 데에는 더 재주가 없었다.

    보란 듯이 뽐내며 그의 앞에서 일탈하는 재주 따위는 나중에 갈고 닦는다 해도 갖지 못할, 그런 인간이 나였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불쌍한 처지의 나를 형은 말없이 바라보았다.

    “…….”

    “여기서 이러지 말고 나가자.”

    형은 나직이 말하고 돌아섰다. 고집부리는 나를 안쓰러워하는 듯한 말투였다.

    치기 어린 내 행동이 한심했다. 내심은 걱정하는 형에게 톡톡 튀는 소리만 해 댄 것도 조금 미안했다.

    나는 복잡한 마음으로 그의 뒤를 쫓아 클럽을 나왔다.

    금요일 밤의 홍대 거리는 혼란과 흥분이 혼재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질서 없고 두서없었고, 그런 방탕이 거대하게 춤추는 하나의 질서로 느껴질 정도였다.

    그는 그곳을 앞서 걸었다. 나는 그 틈바구니에서 그의 뒷모습을 놓칠 수도 있다는 불안에 허둥지둥 그를 쫓았다.

    얼마나 걸었을까, 아무도 없어 스산한 놀이터를 지나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대는 인파를 지나고 골목 여러 개를 그렇게 몇 번 지났을 때 우리는 더 이상 무질서가 질서처럼 보이는 곳에 있지 않았다.

    모든 것이 조용했고 모든 것이 잠들어 있었다. 시간은 어느새 자정을 훌쩍 넘어가는 중이었다.

    한참 앞서 걷던 형은 마치 내가 뒤따라오고 있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은 것처럼 갑자기 뒤를 돌아 나를 확인했다.

    “너 아직 안 갔어?”

    “뭐? 어딜 가? 나 혼자 가라고?”

    “하아…….”

    내가 그의 뒷모습을 다른 사람들의 꼬리에 묻혀 놓칠까 초조하게 쫓고 있을 때, 형은 내가 그를 뒤따라간다는 것조차 잊고 있었다.

    알아서 집으로 갔을 거라 여긴 그가 쫓아오는 나를 향해 한숨을 내쉬었다. 내 얼굴에 떠오르는 망연함을 무시하고 형은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이제야 기껏 형 노릇을 한다고 생각했다. 바깥으로 불러내 어떤 위안의 말이나 위로의 술잔이라도 채워 줄 줄 알았다. 내내 그런 것을 기대하며 걷고 있던 내게 그는 또 뜨거운 물 같은 모욕을 쏟아부었다.

    “알았어, 갈게.”

    “여기야.”

    나의 통고와 그의 말이 동시에 터졌다. 형은 내 말을 무시했고 나는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외관이 궁색하고 초라했다. 벽은 우중충한 빛으로 채색한 것처럼 어둡고 지저분했다. 차라리 밤이라 다행이었다. 해가 밝은 낮이었다면 나는 살인 사건이 벌어져도 이상해 보이지 않을, 몰골이라고밖에 설명이 되지 않는 건물에 발조차 디디기 꺼렸을 터이다.

    빗줄기에 그대로 쓸려 내려가는 먼지의 흔적이 수년 동안 누적된 건물 지하로 그가 먼저 내려갔다. 나는 쭈뼛대며 그를 따라갔다.

    형이 몇 계단을 내려가 도어락을 풀었다. 감방처럼 보이는 반지하 현관이 열리고 그가 안으로 들어가 전등 스위치를 켠다. 주변이 환해졌다.

    “어디야? 설마 여기서 살아?”

    “연습도 하고 공부도 하려고 얻은 거야.”

    제법 널찍한 공간에는 작은 옷장과 잠깐 쉬어 잠을 청할 수 있는 싱글 침대, 소파와 책상이 놓여 있었다. 한쪽 벽에 쌓인 CD와 그의 책들, 이런 곳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오디오, 앰프, 그리고 기타.

    형의 기타.

    나는 소파에 미끄러지듯 주르르 앉아 그의 기타를 매만져 보았다. 형의 통기타를 가슴팍에 안고 디리링, 줄을 튕겼다. 튜닝이 완벽하게 되어 있었다. 여전히 그의 손때를 가장 많이 타고 있으리라.

    잊어버리고 있던 추억을 뜻하지 않은 곳에서 발견한 것처럼 어쩐지 반갑고 감격스러웠다.

    형은 어릴 때 취미로 기타를 시작했다. 우리는 같은 노래를 들었고, 침대에 누워 그 노래를 따라 부르기도 했다. 밴드 음악을 좋아하는 내 취향도 그가 만들어 준 것이었다. 형이 내게 발휘하는 영향력은 그토록 절대적이었다.

    그의 연주가 어설프게 반주를 할 수 있게 되면서 나는 형의 연주에 맞추어 노래도 불렀다.

    형이 기타를 연주하면 나는 그의 목에 매달려 간지럽다고 하는 형의 귓가에 노래를 흥얼거렸다. 잊고 지낸 형과의 추억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그 기억이 문득 평범한 형제의 모습이 아니라 연인들이나 할 법한 일들이라 불현듯 귀가 뜨거워졌다.

    “되게 오랜만이다, 기타.”

    그에게 처음 배웠던 코드를 잡아 보았다.

    C G Am FM7 C G F C

    비틀스의 렛잇비를 찬찬히 짚어 보았다.

    어색하고 서투른 연주였지만 그는 내 옆에 앉아 말없이 바라봐 주었다. 가끔 코드를 잘못 짚거나 막히는 부분이 나오면 그가 나의 손가락을 지판의 바른 지점으로 옮겨 주었다.

    벌써 몇 년이 지났는데도 손이 기억하고 있는 것인지 굳이 떠올리려고 하지 않았는데 자연스럽게 그다음 코드로 손가락이 이동했다.

    렛잇비를 끝내자 형이 중얼거렸다.

    “머리가 아예 안 돌아가는 것도 아닌데. 성적은 왜 그럴까.”

    “형이 이제 안 하는 줄 알았어. 기타랑 음악, 다시는 안 하는 줄 알았어.”

    나는 흥분했다. 형이 변했듯이 음악을 저버렸을 거라고,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다.

    “음악을 계속하면 널 미국에 계시는 외할아버지한테 보낸다고 했어.”

    “……어? 아버지가? 날? 형이 아니라?”

    형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른 곳에 시선을 두고 말을 이었다.

    “이 짓을 계속하면 널 미국으로, 할아버지가 보고 싶어 한다고, 그쪽으로 보낼 거라고 했어.”

    “그게 무슨 말이야?”

    아버지가 날 가지고 형을 협박할 이유는 없었다.

    형이 기타를 잡고 서툴기만 하던 연주에 조금씩 기교를 얹을 무렵 우리는 그즈음부터 멀어졌고, 더는 애틋한 형제 사이가 아니었다.

    형이 아버지의 말을 들을 이유가 없는데, 나를 유독 챙기던 형의 태도가 여전하다고 여긴 아버지는 가당찮은 경고를 한 것이다.

    “형 음악 계속하면 아버지가 나를 미국으로 보낸댔어?”

    의아하게 묻자 그가 이내 시선을 바로 했다.

    “또 하면 죽인다더라. 또 기타 잡으면 손가락 부러뜨린다는데 고집 피울 이유 없잖아. 밖에서 모르게 하면 그만이지. 아버지도 속 편하고 내 속도 편하고.”

    그는 감상에 젖어 있던 표정을 풀고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심드렁하면서 오만한 말투에 저절로 웃음이 새어 나왔다.

    형이 변한 것처럼 그가 그렇게 사랑하던 음악도 어느 순간 변해 버렸다고 생각했다. 기타 코드를 짚으며 연주할 때 형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 진지하고 날카로웠다.

    집중하는 그의 모습과 하루가 다르게 늘어가는 실력을 동경과 흠모의 감정을 담아 바라보던 시절, 그때가 언제인지도 이제 잘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오래된 것만은 확실했다.

    “이렇게 좋은 걸 왜 안 해. 이리 줘.”

    그는 혼잣말처럼 낮게 읊조리고 내게 안겨 있는 기타를 제 품으로 가져갔다.

    애인을 껴안듯 기타를 사랑스럽게 안고 멜로디만 아는 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기타가 단순히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라 어떤 호소를 해 오는 듯한 연주였다. 담백하고 그럼에도 서정적인 느낌이 가슴에 차올랐다.

    잘난 형에게 저런 재주까지는 필요 없었다. 굳이 형이 아니어도 세상이 불공평하다는 것이야 알고 있었지만 형을 보고 있으면 그 사실이 새삼스럽게 절감되었다.

    나는 넋을 놓고 형의 연주를 바라보았다. 그의 손이 지판에서 멀어지고 선율이 멈추고 나서야 아, 했다. 맥이 빠진 목소리로 물었다.

    “그 클럽에서 공연해?”

    “왜, 내가 그런 시시껄렁한 데서 술이나 퍼마시고 논다고 계속 생각하지 그래.”

    “…….”

    “일주일에 한 번, 한 시간만 일찍 왔으면 네 형이 얼마나 멋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을지도.”

    “나한테 그런 말 한 적 없잖아.”

    “고3한테 그럼 일일이 고해 갖다 바쳐? 안 그래도 성적 안 나와서 머리 쥐어짜는 너한테?”

    또 성적을 들먹이는 그를 야속하게 쳐다보자 형이 알았다고 그만하겠다고 입술로만 웃었다.

    “예전에 가르쳐 준 노래 생각나?”

    “어? 어……. 응.”

    형의 손가락이 연주를 시작했다. 흐름을 타며 내게 목소리를 요구했다.

    긴 손가락이 만드는 음은 부드러운 애무 같았다. 등허리를 감싸고 끌어안으며 기어코 소리를 내뱉게 하는 멜로디였다.

    형이 가르쳐 준 노래도 잊지 않고 있었다. 형의 반주에 맞춰 노래한 적이 있다는 것도 잊어버렸을 만큼의 오랜 시간이 그 사이에 있었는데도 가사와 음절이 저절로 떠올라 입술을 타고 흘렀다.

    따스한 온기가 느껴지는 목을 끌어안고 노래하던 때의 기억 때문인지 갑자기 형의 목을 끌어안고 싶었다. 예전처럼 그의 목을 두 팔로 감아 안고 귀에 속삭이듯 노래하고 싶었다.

    이제는 다 커서 나도 그도 그런 짓을 하기에는 어색한 나이가 되어 버렸다.

    형의 연주가 먼저 끝나고 나의 목소리도 점차 잦아들었다. 형은 가만히 기타의 지판을 바라보고 다소 침잠한 눈빛으로 중얼거렸다.

    “사람 미치게 해.”

    “…….”

    “음악이라는 게…….”

    단 한 번도 칭찬한 적 없고, 단 한 번도 언급한 적 없지만, 그는 나의 목소리를 좋아했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것을 너무나 확연하게 감지하는 나 자신이 쑥스러워 나는 얼른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여기서 잠도 자고 밥도 먹고 그래?”

    “…….”

    형은 대답하지 않았다. 클래식 기타를 내려놓고 일렉 기타를 집어 들었다. 앰프와 연결된 헤드폰을 귀에 쓰고 연주를 시작했다. 형이 저렇게 자세를 잡으면 기타를 내려놓을 때까지 한 시간은 족히 걸렸다.

    나는 형을 놔두고 천천히 작업실 내부를 구경했다. 대충 아무렇게나 쌓아 둔 것처럼 보이지만 장르별로 구분되어 있는 책과 CD, 그리고 옷가지들이 어쩐지 형다웠다.

    그러다 소파 아래 떨어져 있는 투명한 무언가를 발견하고 흠칫했다.

    “…….”

    기가 막혔다. 형을 돌아보았다.

    형은 이맛살까지 찌푸린 채 손가락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나는 다시 소파 아래 쓰레기로 눈을 돌렸다. 실물로 본 적은 없지만 본능적으로 알 것 같았다. 누군가 사용하고 난 후의 콘돔이었다.

    저 더럽고 추잡스러운 것을 사용한 이가 바로 나의 형이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형의 수음을 떠올렸다. 책상 밑에 숨어 훔쳐보았던, 성감을 끌어올리려고 살덩어리를 쥐고 만지던 흥분한 호흡이 귓전에서 흩어졌다.

    어릴 때 훔쳐본 형의 수음을 혐오스러운 것으로 인식하고 난 후로 나는 자위를 수치스럽게 여겼다. 어쩐지 쏟아 내고 나면 죄의식이 강하게 밀려와 다시 시도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침대 시트로 몸을 꽁꽁 가리고 숨어서 그 짓을 할라치면 형이 생각났다. 그때 그가 내뱉던 호흡의 궤적까지 뚜렷하게 되살아났다. 그 불쾌하고 혐오스러운 감정을 완전히 잊어버리는 시간이 지나지 않는 한은 내 사타구니 사이로 손을 집어넣는 일은 없었다.

    나는 쭈뼛거리면서도 그것에서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

    빵빵하게 부풀렸다 공기를 뺀 풍선처럼 쪼그라든 얇은 라텍스 안에 더럽게도 점액질이 흥건하게 남아 있었다. 도리어 피임하는 걸 칭찬해야 하는 일인가?

    당황스럽기도 하고 어처구니가 없기도 했고, 무엇보다 곤란한 것은 머릿속에서 정사는 나누는 두 개의 알몸이 자꾸만 떠오른다는 것이었다.

    혼란스러워하는 내 기척을 감지했는지 형은 돌연 연주를 멈추고 나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

    나는 아직 그런 불편함을 능숙하게 감추는 것을 모르는 나이였다. 내 눈동자가 혼란스럽게 향하는 곳을 확인한 그가 다시 나를 향해 시선을 주었다.

    “…….”

    “…….”

    나는 모르는 척하며 어색하게 고개를 돌렸다. 무슨 말이든 빠르게 내뱉어서 이 어색함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형 배 안 고파?”

    “…….”

    당황에 안절부절못하는 내 낯을 그는 조용히 바라보기만 했다.

    점점 참기가 힘들었다. 그럴 이유가 없는데 공기가 뜨거워지는 것도 같았고 호흡이 불편해지는 것도 같았다. 형과 이런 불쾌한 교감은 나누고 싶지 않았다.

    말로 형용하기 힘들고, 정확하게 표현하기 어려운 이런 거북한 기억의 저변에는 언제나 형의 수음이 자리하고 있었다.

    “배 안 고파? 나, 나는 배고픈데.”

    “…….”

    “……왜 그렇게 쳐다봐?”

    그렇게 물은 것은 본능적인 방어였을지도 모른다.

    어색하고 민망한 것이 아니라, 그 순간 나를 뚫어져라 보는 형의 눈동자가 무서웠다.

    형은 느릿하게 시선을 거두어 갔다. 그는 턱짓으로 작은 주방을 가리켰다.

    “거기 어디에 라면 있을 거야.”

    “가스레인지는 있어?”

    “버너 있어. 알아서 끓여 먹어.”

    도망치듯 그곳을 벗어나 허기지지도 않은 배를 밀가루로 채우고 돌아왔을 때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던 콘돔은 소파 밑에서 자취를 감추고 흔적 없이 말끔하게 치워진 후였다.

    ✦ ✧ ✦

    그날 클럽에서 나와 우연히 마주친 이후로도 형의 태도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여전히 무심했다. 그래도 나는 전처럼 그에게 서운하지 않았다.

    나는 형의 비밀 장소를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모르는 비밀을 형과 공유하고 있었다. 형의 비밀을 알게 되자 그에게서 더는 낯선 이방인의 냄새가 나지 않았다. 그간 내게 타인처럼 섭섭하게 굴어 온 그의 행실을 아예 잊어버릴 정도였다.

    그의 사적인 공간을 안다는 것은 잘해 주겠다는 형의 다짐보다 더 큰 위안으로 다가왔다. 계기만 있으면 우리는 이전처럼 회복할 수 있었다.

    전처럼…….

    “너 옷 안 갈아입냐?”

    등교할 때부터 체육복 차림이던 석주는 쉬는 시간 종이 치고 한참이 지났는데도 미적거리고 있는 내게 물었다.

    “선규 자식이 빌려 갔는데 안 가지고 오네.”

    “그 새끼는 유독 화장실 들어갔다 나올 때가 달라. 내 장담하는데 종 칠 때까지 안 가지고 온다. 갔다 와, 그냥.”

    “하아.”

    귀찮은 한숨을 내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선규에게 빌려준 체육복을 받으러 교실을 나섰다.

    복도는 뛰어다니는 무리로 왁자했다. 선규의 반 앞에서 녀석을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누군가가 내 어깨를 툭 치며 말을 걸어 왔다.

    “어제 왜 전화 안 했어?”

    누군가 싶어 고개를 돌렸다. 상대방도 나도 당황했다.

    나는 눈앞의 녀석과는 단 한마디도 말을 섞어 본 적이 없었다.

    그는 선생님들도 눈을 마주치기 싫어하는 우리 학교의 유명한 일진이었다. 강남의 유명 조폭들에게 스카우트 되어 수시 발표를 앞둔 이들보다 훨씬 빠르게 졸업 후 진로를 결정지어 놨다는 허경민이었다.

    나는 허경민이 누구인지 알아서 당황했고, 허경민은 내가 누구인지 몰라서 당황했다. 다른 누군가와 나를 착각한 모양이었다.

    “……아는 사람인 줄 알았다.”

    “…….”

    목소리 톤이 급격하게 바뀌는 것은 물론, 평소의 사나운 낯으로 변한 얼굴이 썰렁한 해명을 들려주었다.

    나는 그저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 말았다. 허경민은 나를 정수리부터 발끝까지 찬찬히 훑어보더니 몸을 돌려 가 버렸다.

    “너 허경민이랑 아는 사이냐?”

    선규가 체육복을 내게 떠안기듯 넘기며 호들갑스럽게 물었다. 나는 아니라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다른 사람이랑 착각했나 봐. 새끼야, 빌려 썼으면 빌려 간 사람이 갖다 줘야 하는 거 아니야?”

    “어여 갈아입어라. 종 치겠담마.”

    갈퀴눈을 세우는 내 등을 서둘러 떠밀며 어영부영 미안한 마음을 넘기려고 하는 선규에게 구시렁대고 서둘러 교실로 돌아갔다.

    교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서다 보이는 두 사람의 인영에 흠칫하며 급했던 움직임을 죽였다. 모두 운동장으로 나간 모양이었다. 몇몇을 제외하고 교실에 남아 있는 사람은 없었다.

    주번은 책상에 고개를 푹 숙인 채 엎드려 있었다. 아마 나가야 할 타이밍을 놓친 모양이었다.

    남자들끼리 서로 달라붙어 무어라고 속닥거리는 쪽은 허경민이었고, 허경민의 팔에 거의 안겨 있다시피 한 것은 우리 반 일 등인 임주호였다.

    밀애 장면을 목격한 것처럼 당황스러운 순간이었다. 도로 나가기도 민망해 나는 어색한 표정으로 부스럭대며 체육복을 갈아입었다.

    “그래서 말이지…….”

    속닥거리는 음성이 조용한 곳에 또렷하게 울렸다. 체육복 상의로 머리를 밀어 넣으며 허경민을 돌아보았다가 흠칫했다.

    허경민이 독사 같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생전 처음 보는 생물을 대하듯 묘한 표정이었다.

    “내가 저 자식을 너라고 착각했다니까.”

    “…….”

    임주호가 고개를 들어 나를 돌아본다. 나는 못 들은 척 눈알을 굴려 그의 시선을 피했다.

    허경민과 임주호가 저렇게 친한 사이인 줄은 몰랐다. 그들은 친해지기 어려운 조합이었다.

    3학년이라 강전도 되지 않는 일진과 누가 제 자습을 방해하기만 해도 날카롭게 소리치는 내신 일 등급.

    소름 끼치게 달라붙어 서로를 끈적하게 만져 대는 그들에게 눈길을 주지 않으려 애쓰며 급하게 체육복을 갈아입고 교실을 나와 버렸다.

    “…….”

    불쾌하다.

    등 언저리에 벌레가 기어 다니는 것처럼 가려웠다. 옷 안으로 손을 넣어 가려운 곳을 벅벅 긁어 댔다.

    체육관으로 뛰어갔다. 반 아이들은 이미 짝을 지어 성의 없이 배드민턴을 치는 중이었다.

    바구니에 남아 있는 배드민턴 채를 가지고 혼자서 허공으로 공을 튀기는 석주에게 다가갔다. 신중하게 숫자를 헤아리고 있던 석주가 나를 돌아보다 공을 놓쳤다. 녀석이 바닥에 떨어진 공을 주워 올리며 슬리퍼를 직직 끌고 다가왔다.

    “왜 이렇게 늦었냐?”

    체육 선생님의 눈치를 살피며 석주가 핀잔하듯 물었다.

    나는 교실에서 목격한 장면을 잊어버리려 도리질을 쳤다. 순간 몸을 휘감았던 더러운 기시감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다 큰 사내 녀석들이, 여자도 아니고 남자 둘이 바싹 붙어 서로의 몸에 기대 있는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불쾌했고 역겨웠다. 참을 수 없는 혐오감이 치솟았다.

    점점 일그러지는 내 표정에 석주가 사이를 두고 배드민턴공을 넘기면서 무슨 일이냐고 장난스러운 낯을 심각하게 바꾸고 물었다.

    생각하기도 싫어 아무것도 아니라고 고개를 내젓다 돌연 멈추고 석주를 돌아보았다. 석주가 친 공이 멀찍이 떨어진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너 혹시……, 혹시 말이야.”

    “나 혹시 뭐? 나 혹시 왜? 나 뭐 걸렸어?”

    “아니, 그게 아니라 허경민하고 임주호랑 친한 사이였던 거 알고 있었어?”

    “……아아.”

    애매한 호응이었다. 석주는 곧이어 애매하게 고개를 돌렸고 애매하게 눈살을 찌푸렸다. 모든 일에 명쾌한 석주답지 않은 반응이었고 그답지 않은 표정이었다.

    “걔네 그런 이상한 거야? 너 알고 있었어?”

    “너 몰랐냐?”

    한쪽 눈썹을 살짝 일그러트리고 석주는 나를 향해 정녕 몰랐냐고, 되물었다.

    “임주호하고 허경민 진짜 그런 거 맞아?”

    “나도 구란 줄 알았는데, 진짜 있더라. 그런 게.”

    “그런 거라니?”

    “임주호하고 허경민 둘이 그렇고 그래.”

    석주는 한쪽 주먹을 손바닥에 탁탁 부딪혀 보였다. 무슨 손짓인지 이해가 가지 않아 도무지 모르겠다는 얼굴을 했다.

    석주는 목청을 가다듬고 누구 듣는 사람도 없는데 작아진 목소리로 유난스럽게 입 모양을 만들며 말했다.

    “그 새끼들 둘이 사귀잖아.”

    “뭐?”

    “씨발, 걔네 둘이 사귄다니까. 학교에서 떡도 친대요. 대범한 것들이.”

    탁탁, 다시 석주의 손바닥에 주먹이 두 번 부딪혔다.

    “뭐, 뭘 쳐?”

    “호모들이야, 그것들.”

    석주는 마치 입에도 담지 못할 더러운 말을 내뱉은 것처럼 카악, 하고 침을 그러모아 바닥에 뱉고 슬리퍼로 찍 문질렀다.

    더럽다는 듯이 더러운 행동을 했다.

    호모들이야, 그것들.

    갑자기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임주호를 거의 끌어안듯 품 안에 가두고 있던 허경민의 팔 동작과 언뜻 차가워 보이는 눈빛으로 나를 응시하던 임주호의 모습이 동시에 머릿속에 그려졌다.

    이상하다.

    그런 이들이 있다는 얘길 본 적도 있고 들은 적도 있다. 아주 잠시이기는 하지만 진지하게 어떻게 남자를 상대로 그런 성적 충동이 이는 것인지 고민해 보기도 했었고, 상상이 가지 않아 고민은 의문이 되어 기억 속에서 점차 사라졌다.

    “야, 똑바로 안 하냐들?!”

    체육 선생님의 호령에 나와 석주는 설렁설렁 배드민턴을 쳤다.

    깃털 달린 공이 나와 석주의 사이로 핑, 하고 솟아올라 이쪽으로 저쪽으로 날아다녔다.

    선규의 반 앞에서 기다리는 내 어깨를 툭 치던 허경민의 은밀한 손동작과 은근한 말투.

    벌레가 기어가는 것처럼 등이 간지러웠다. 나는 상체를 꿈틀거렸다. 받아치지 못한 공이 먼 곳으로 떨어졌다. 슬리퍼를 털레털레하며 공을 주워 온 석주가 멍하게 넋을 빼고 있는 내게 다가왔다.

    “임주호, 이 새끼 또 안 나왔네. 어, 너 설마 둘이 같이 있는 거 봤냐? 걔네 지금 교실에 있지?”

    “……진짜야, 그거?”

    “네가 소식이 느려서 그렇지, 전교생이 다 아는 거야. 허경민, 그 새끼도 은근히 즐긴다고. 종종 임주호 자기 거라고 도장 박아 대는 거 몰랐어? 누가 임주호 같은 놈한테 침 흘린다고, 혼자 아주 오만 생쇼를 다 해요.”

    “…….”

    “아리송한 조합이지. 전교에서 노는 범생이랑, 전교에서 포기한 일진이랑. 아리송해.”

    석주는 음식물 쓰레기 봉투에서 흘러나온 오물이 손에 닿기라도 한 것처럼 혐오감을 온몸으로 표현하며 진저리까지 쳐 댔다.

    나 역시 불쾌함을 참을 수 없었다. 그들의 모습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려졌다. 머릿속을 잠식해 버린 영상을 털어 내고 싶어 나는 석주가 했던 것처럼 입안의 침을 그러모아 바닥에 퉤! 하고 뱉었다.

    불쾌감은 그것으로 조금 희석됐지만 미간은 여전히 미세하게 일그러진 채였다.

    “아……. 뭐야, 그거. 기분 더럽네.”

    학교에서 학원으로 그리고 다시 학원에서 집으로.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레이스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자 시간은 막 열한 시를 넘기고 있었다.

    허경민과 임주호를 목격하고, 석주에게서 그들이 사귀는 사이라는 말을 듣고 난 후로 내내 어딘가 넋이 팔린 것처럼 생각이 딴 곳에 머물러 공부도 잘되지 않았다.

    끊어 내고 싶어도 혐염한 느낌이 사라지지 않고 계속 꼬리를 타고 이어졌다. 모의고사를 앞두고 들어간 학원의 총정리도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남의 사생활이다. 허경민이 나한테 달라붙는 것도 아니고 메스껍고 더러운 것을 봤다고 치부해 버리면 그만이다.

    이상한 일이었다. 마치 무의식이 내내 골몰하고 있던 문제를 마침내 의식이 자각한 것처럼 추잡한 무엇이 계속 머릿속에 찌꺼기처럼 남아 떨어지지 않았다. 아무리 떨쳐 내려고 해도 생각이 정리되질 않았고 불쾌함만이 더해질 뿐이었다.

    임주호의 허리를 둘러 안은 힘 있는 팔 동작.

    아아, 그만.

    그만 떠올리자고 고갯짓을 쳤다.

    시간이 많이 늦었는데 아버지와 윤 차장은 잠자리에 들지 않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티브이의 시사 프로그램을 무성의하게 시청하며 소파에 앉아 있었다.

    “다녀왔습니다.”

    “그래, 늦게까지 수고했다. 뭐라고 좀 먹고 올라가. 바로 자지 말고 한 장이라도 공부 더 하고.”

    아버지는 내 인사에 티브이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잔소리를 해 댔다.

    나는 가방을 내려놓고 소파에 앉았다. 윤 차장이 미리 준비해 둔 야식을 가져와 거실 테이블에 올려놨다.

    “잘 먹겠습니다.”

    “밤이니까 소화 잘되게 꼭꼭 씹어 먹어.”

    눈이 마주치자 윤 차장은 생끗 웃었다.

    아버지의 비서로 십 년 넘게 일한 윤 차장은 무장한 듯한 친절함이 몸에 배어 있었다.

    처음에는 항공사 승무원 같아서 대하기 이상했는데 어느덧 윤 차장의 정형화된 미소에도 익숙해져 새삼스럽게 자각될 때를 제외하곤 그다지 이질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윤 차장도 해 본 적도 없는 엄마 노릇이 무척 불편할 거고, 나름의 고충이 있을 터였다.

    먹고 싶지도 않은 간식을 입에 밀어 넣었다.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의 목소리만이 적막한 거실에 울려 퍼졌다.

    나는 아버지에 대해서만큼은 이상하리만치 순종적이었다. 윤 차장을 가족으로 맞아들일 때도 반항은커녕 싫다는 소리조차 하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 무슨 짓을 해도 형보다 못난 존재였다. 아버지의 기대에 차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기에 어떤 모양으로든 마음에 드는 자식이 되고 싶었다. 형에게 뒤처지는 게 두려운 것이 아니라 그와 형제라고 생각할 수가 없을 만큼 내 수준이 떨어져 보이는 게 두려웠다.

    한배에서 나왔는데 나는 왜 이렇게 형보다 못한 걸까.

    형은 취미로 하던 기타를 사람들 앞에서 공연도 할 정도로 연주 실력을 키웠고, 좋은 대학에 다니고, 여자 친구를 작업실로 데려가 섹스도 하면서 즐길 거 다 즐기면서 멋지게 사는데.

    나는 공부도 그저 그렇고, 대학에 못 갈지도 모르고, 여자 친구도 없고, 여자 친구는커녕 여자가 연락처만 알려 달라고 해도 싫다고 거절하기 바쁘다.

    윤 차장은 피곤한데도 억지로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는 나를 안쓰러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공부하느라 많이 힘들지? 아줌마가 학원 라이드 해 줄까?”

    “아니요. 괜찮아요.”

    학원 수업이 끝나면 도로 앞에 줄지어 선 차량이 자식들을 데려가고자 기다리고 있었다. 컨디션이 안 좋을 때는 나도 누군가가 데리러 와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지만 윤 차장과 단둘이 어색하게 귀가하느니 피곤하더라도 차라리 혼자 귀가하는 편이 나았다. 정말 힘들면 택시를 타면 그만이었다.

    “응석도 적당히 받아 줘. 너무 오냐오냐하는 게 애들한테 더 안 좋아.”

    “당신이 언제 오냐오냐 받아 주기는 했어요? 이런 때는 좀 봐줘도 괜찮아요.”

    “준영이 너, 많이 힘들어?”

    “저 힘들다고 한 적 없는데요.”

    윤 차장의 말에 서로 옥신각신하던 아버지가 나에게 물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봐. 애 안 힘들다잖아.”

    “그렇게 대놓고 물어보는데 그럼 힘들다고 그러겠어요?”

    “아무튼 힘든 거 올해만 해. 올해 아니면 다시는 기회 안 올 거라고 각오하고. 알겠어?”

    “네.”

    아버지의 잔소리는 늘 일리가 있었다. 나는 순종적으로 대답했다.

    무슨 말을 그렇게 극단적으로 하느냐고, 윤 차장은 나에게 기회는 다시 또 온다고 부담 갖지 말라고 아버지의 말을 서둘러 정정했다.

    그러며 슬그머니 형을 주제로 끌어왔다.

    “늦네요, 매번.”

    “……누가?”

    무심코 내뱉는 그녀의 말에 아버지는 거의 듣지 못한 것처럼 건성으로 되물었다. 동시에 아삭, 차갑게 식은 배가 그의 입안에서 부서졌다.

    “큰애 말고 누가 있어요. 매번 늦네요. 벌써 열두 시도 넘었잖아요. 그제는 안 들어오고.”

    “그놈한테 신경 쓸 거 없다니까.”

    “어떻게 신경을 안 써요. 없는 사람도 아니고.”

    “첫째는 내 손아귀 벗어나도 한참 옛날에 벗어났어. 다 커서 제 아비 맞먹으려고 드는 놈인데 늦는다고 잔소리하면 그쪽 꼴만 상해. 아무 말도 하지 말아요.”

    존대와 하대가 적절하게 섞여 있었다.

    아버지는 형에게 무관심한 게 아니라 형과 같은 인간의 속성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형을 잘 아는 아버지가 왜 형에게 음악을 그만두지 않으면 나를 미국에 있는 외할아버지에게 보낼 거라고 협박했을까.

    형은 내가 미국으로 가든 부산으로 가든 별 관심 없을 텐데.

    형이 나를 미국으로 보내지 않으려고 아버지가 모르는 곳에 작업실을 구해 놓고 음악을 계속하는 건 아니었다. 아버지와 언쟁하고 다투고 신경전 하는 게 귀찮으니 그만둔 척하는 것뿐이었다.

    형에게 통하지도 않을 협박을 한 아버지를 나는 의아한 눈으로 관찰했다. 아버지는 무표정한 얼굴로 티브이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윤 차장은 제 마음을 몰라주는 아버지가 섭섭한지 입술을 살짝 삐쭉거렸다.

    형은 윤 차장에게 관심이 없었다. 그에게 그녀는 새어머니도 아니고, 가족도 아니고, 그냥 아버지의 여자일 뿐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통제가 어려운 형과 그런 형을 통제함으로 우리 가족의 당당한 구성원이 되고 싶은 윤 차장의 안달을 아버지는 모르는 척했다.

    “그래도요. 다 컸어도 너무 밖으로 나도는 거 보기 안 좋아요.”

    “잔소리한다고 듣는 놈 아니래도.”

    윤 차장은 마치 나는 그녀의 말을 잘 듣고 그녀의 통제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은 것처럼 내게 소담하게 깎인 과일 한 조각을 내밀었다.

    나는 멍한 표정으로 있다 그녀가 내미는 과일 조각을 얼결에 받아 들었다.

    “준영이는 안 그러잖아요. 준원이랑 너무 달라요.”

    그녀는 과일을 먹는 나에게 동조를 구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쪽이 아직 우리 애들 잘 몰라서 그래. 큰애도 작은애도 둘 다 똘똘해. 엇나가면 자기들이 손해라는 거 잘 알고 있는 애들이니…….”

    아버지는 말을 하며 나를 슬쩍 돌아보았다. 나는 그들의 대화에 관심 없는 얼굴로 과일만 아삭아삭 씹어 댔다.

    집안 분위기는 언제나 적막했다. 사실 아버지와 두 아들의 모습은 아버지의 재혼 전후로 별반 달라진 점이 없었다.

    윤 차장과 같이 살게 되어서 좋은 사람은 아버지뿐이었다. 그렇다고 우리가 윤 차장의 존재를 적극적으로 거부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어색했다. 한 번도 그런 쪽으로는 생각해 본 적 없는 사람이 갑자기 어머니가 된다는 사실에 단번에 적응하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다.

    아버지는 능력이 있었고 어머니와 사별한 지도 오래되었다. 아버지는 우리가 어릴 때부터 재혼 압박을 심하게 받았는데 다만 형이 워낙 처신을 잘하고 나를 잘 돌보았기에 어머니의 존재가 그다지 필요하지 않았다. 아버지 당신이 우리를 키우느라 고달팠으면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이는 윤 차장이 아니라 다른 사람일 수도 있었다.

    어쨌든 이제 아버지의 사업도 안정되었고, 그도 언제까지고 앞만 보며 죽도록 일만 하고 살 수는 없었다. 우리에게는 필요하지 않아도 아버지에게는 필요한 것이 반려자였다.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고집을 부리며 새어머니를 거부할 정도로 우리는 어리지 않았고 어리석지도 않았다. 나와 형은 윤 차장을 밀어내지도 받아들이지도 않고 있었다.

    친어머니는 내가 어릴 때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형은 모르겠지만 나는 어머니의 기억이 거의 없었다. 부재한 어머니의 정이 사무치게 가슴을 채우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어머니라는 존재에 아무 감각이 없다고 하는 게 옳았다. 굳이 그 느낌을 떠올려 보자면 떠오르는 것은 사진으로만 남아 있는 어머니의 얼굴이 아니라 아픈 나를 끌어안고 밤새 울던 형의 얼굴이었다.

    나는 과일을 먹으며 아버지와 윤 차장을 바라보았다.

    아버지와 아버지의 여자.

    남자와 여자.

    나는 형의 여자 친구를 상상해 보았다. 생각의 연상은 가지를 타고 계속 퍼졌다.

    책상 밑에 숨어 훔쳐보았던 형의 자위. 덜 자란 사내의 혐염하기만 하던 치부. 작업실 바닥에 버려져 있던 콘돔, 피임을 위해 부푼 성기 위에 콘돔을 씌우고 이름 모를 그녀에게 품게 하는 형의 벗은 뒷모습. 땀에 젖어 꿈틀거리는 등줄기.

    도리질을 치자 윤 차장이 왜 그러느냐는 눈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뒤늦은 사춘기가 이제야 시작되려는 모양이었다. 모든 상념이 전부 그쪽으로만 쏠렸다.

    석주 때문이다. 아니 허경민과 임주호 때문이다.

    아니다. 사실은 형 때문이다.

    여자 친구를 작업실로 데려가 이상한 짓이나 하는 형 때문이다. 쓸데없는 걸 봐 버렸다. 형에게 여자 친구가 있는 게 당연한 건데 파충류라도 만진 것처럼 진저리쳐지는 거부감이 일었다.

    생각이 엉망진창이었다.

    과일을 먹다 말고 내려놓았다. 목이 퍽퍽한 모래로 꽉 막혀 있는 듯했다. 급히 들이켠 물이 급기야 목구멍에 걸려 버렸다. 콜록콜록 밭은기침이 쏟아졌다.

    “괜찮니?”

    “콜록, 콜록, 네. 괜찮아요.”

    윤 차장의 물음에 겨우 괜찮다고 대꾸하며 다시 쿨럭하고 기침을 토해 냈다.

    피곤했다. 침대에 누워 쉬고 싶은 간절함이 일었다. 형의 그런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정신적 피로감이 급격하게 밀려들었다.

    “저는 올라가 보겠습니다. 안녕히 주무세요.”

    붉어진 얼굴로 아버지와 윤 차장에게 인사하고 일어나 이 층 계단으로 올라갔다.

    윤 차장의 꿍얼거림이 들려왔다. 내 모습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꺼낸 말은 아버지를 향한 것이 아니라 나를 향한 것이었다.

    “애들이 애들 같지가 않아요. 내 새끼들 같지가 않다고요. 상무님 닮아서 도대체 정이 안 가요.”

    “언제까지 그 상무 소리 할 거야? 상무 졸업한 지가 언젠데.”

    아버지의 음성에 어이없다는 웃음기가 묻어 나왔다.

    “네, 대표님. 대표님 애들이 너무 차갑다고요. 나한테 두 마디 이상 하는 걸 못 봤어요.”

    “애도 안 낳아 본 여자가 무슨 새끼 타령이야. 당신 새끼들 아니잖아. 아닌 건 아니라고 칩시다.”

    “자꾸 이러실 거예요? 이럴 거면 왜 같이 살자고 그랬어요? 처음부터 따로 살았으면 이런 눈치 안 봐도 되잖아요. 잘못한 것도 없는데 자꾸 애들 눈치를 보게 돼요.”

    “괜한 자격지심이야. 이 집에서 누가 당신한테 눈치를 준다고 자꾸 그래?”

    “준영이도 준원이도 다 컸잖아요.”

    “준영이 고3이야. 고3인 애를 독립하라고 내보내? 말이 되는 소릴 해. 그리고 새 여자 들이고 바로 애들 내보내는 게, 그게 애비가 할 짓은 아니잖아?”

    자신을 그런 파렴치한으로 만들 거냐고, 아버지는 도리어 황당하다는 투로 되물었다.

    “불편해서 어떻게 계속 이렇게 살아요.”

    “그럼 불편한 상사 모시듯이 해. 그거 당신 전문이잖아.”

    “…….”

    층계참 그늘에 몸을 가리고 그들의 대화를 엿들었다. 침묵하는 윤 차장의 볼멘 표정이 저절로 그려졌다.

    아버지는 무뚝뚝하고 날카로운 언변의 소유자지만 윤 차장에게는 그런 말투를 쓰지 않았다. 그녀를 놀리는 게 재미있는 것 같았다.

    남자가 여자를 좋아하면 저렇게 장난도 치게 되고 살살 약도 올리고 건드려 보기도 하고, 그 반응을 보면서 실실거리기도 하고 그렇게 되는 모양이었다.

    여자를 좋아하는 감정은 어떤 걸까.

    피시방에서 내 핸드폰 번호를 물어보던 대학생 누나를 떠올렸다. 석주가 알려 주라고 내 옆구리를 팔꿈치로 멍이 들게 찔렀지만 귀찮게만 느껴졌다.

    며칠 전 버스에서 보았던 옆 학교 여학생도 떠올렸다. 교복 치마가 무릎 위로 껑충 올라와 허벅지가 하얗게 보였는데 키가 크고 날씬해서 그런지 야해 보이지 않았다. 여학생은 앞머리에 헤어롤을 말고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그 애는 얼른 헤어롤을 풀고 머리칼을 헝클이듯 만져 댔다.

    결 고운 머리칼이 부드럽게 풀리는 모습은 다른 이들의 말처럼 예뻤다.

    그런데 그뿐이었다.

    다들 예쁘다고 하는데, 아이돌 연습생이라고 그랬는데, 그 애를 떠올려도 가슴이 두근거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딱히 남자를 떠올리며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도 아니었다.

    “그럼 집에서도 그냥 그렇게 부르죠, 뭐. 이쪽은 대표님, 저쪽은 부장님, 아직 안 들어오신 분은 이사님.”

    “어색해서 그래. 당신을 엄마라고 부르게 될 줄 알았겠어? 엄마 소리가 그렇게 덥석덥석 나올 나이도 아니고. 시간 지나면 편해질 거야. 올해는 부장님 입시도 있으니까 조용히 지냅시다. 윤 차장, 조용히.”

    아버지는 윤 차장의 투정 섞인 말에 이제 그만하자고 그녀를 달랬다.

    “애들 앞에서 낯 좀 세워 주세요. 이 집에서 꼭 쓸모없고 할 일 없는 사람 된 것 같아서 기분 안 좋단 말이에요. 당신이 내 편 아니면 이 집에서 누가 내 편이 돼 줘요?”

    “그래, 나한테만 잘해. 그거면 돼.”

    “어휴, 정말.”

    토라진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찰싹, 아버지의 팔뚝이나 등짝을 때리는 소리도 들렸다. 아버지는 얻어맞으면서도 좋다고 껄껄 웃었다.

    윤 차장은 형이나 나를 걱정해서 저런 말을 하는 게 아니었다. 내가 불편한 것처럼 그녀도 우리가 불편할 거고, 아무리 잘해 줘도 거북살스러워하는 우리의 태도 때문에 노력하고 참는 게 보람도 없고 재미도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버지의 말에 크게 반항하지 않는 우리의 앞에서 위신이라도 세우고 싶은 모양이었다.

    방문을 닫고 들어온 나도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교복을 막 벗으려고 할 때였다. 인기척이 들렸다. 천천히 복도를 지나오는 묵직한 발소리는 아버지가 아니라 형이었다.

    나는 옷을 갈아입으며 형의 궤적을 머릿속에 그려 보았다. 그가 내 방을 지나가고 있었다. 얼른 방문을 열었다. 무심코 방문을 스쳐 지나가던 형이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이제 오는 거야? 많이 늦었네.”

    “……안 자고 뭐 해?”

    “나도 조금 전에 왔어. 아버지가 자기 전에 한 페이지라도 더 보고 자라고 하셔서 샤워하고 공부 좀 하다 자려고.”

    형의 눈이 내 손에 들린 교복 셔츠와 맨몸을 드러내고 있는 상체를 훑었다가 바로 치웠다. 그는 나와 눈 마주치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적당히 시늉만 하고 그냥 자. 많이 늦었는데. 잘 자라.”

    “어, 형도…….”

    그는 복도 끝에 자리한 자신의 방으로 걸어갔다. 사라지는 형의 뒷모습을 아쉽게 바라보다 방문을 닫았다.

    “형도……, 형도 잘자.”

    무슨 얘기라도 좀 더 하고 싶었는데…….

    그날 이후로 형과 얘기할 기회가 좀처럼 없는 게 아쉬웠다.

    샤워를 하고 잠옷으로 갈아입었다. 공부도 하지 않고 잘 준비만 했는데도 시간은 어느덧 열두 시를 넘어 버렸다.

    침대에 누워 공연히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뒤척거렸다. 학원에서 돌아올 때만 해도 피곤해 당장 쓰러져 자고 싶었는데 막상 자려고 하니 잠이 오질 않았다.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하고 있는데 형의 방 쪽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다. 형도 이제 막 씻고 방으로 들어간 듯했다.

    핸드폰 게임을 하다 부스스한 꼴로 일어나 앉았다.

    “……아, 낮에 커피 마시지 말걸.”

    벽에 걸린 시계를 확인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머릿속이 정리되는 게 아니라 심란해졌다.

    우유라도 데워 마실 요량으로 침대에서 일어났다. 여린 조명등만 켜진 복도에 희미한 담배 냄새가 났다. 형의 냄새였다.

    “형 아직 안 자는 모양이네.”

    잠시 망설이다 형의 방으로 걸어갔다. 형이 잠들었으면 그냥 돌아가려고 노크도 없이 살짝 방문을 열었다.

    그는 침대에 누워 하체를 가리는 브리프만 걸친 채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그의 입술에 가늘게 연기를 피워 올리는 담배가 물려 있었다.

    불쑥 나타난 형용에 놀란 그가 퍼뜩 고개를 들었다. 동시에 입술에 물고 있던 담뱃재가 벗은 가슴팍으로 파스스 떨어졌다.

    형이 황급하게 일어나 옷을 찾아 입었다. 가슴팍에 묻은 담뱃재를 닦지도 않고 상의를 머리 위로 뒤집어썼다.

    “…….”

    나는 문고리를 잡은 그대로 굳어 버렸다.

    방금 그게 뭐였지…….

    잘못 본 건가.

    얼핏 스치듯 본 반라에 흉한 상처가 가득했던 것이다.

    한쪽 눈썹이 완전히 일그러져 형은 불청객에게 불쾌감과 적의를 가감 없이 드러냈다. 불청객이 나라는 걸 확인했으면서도 화가 난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

    당장 꺼지라는 사나운 기세에 짓눌려 나도 모르게 그를 야단했다.

    “바, 밖에 냄새나잖아. 방에서 담배 피우면 어떻게 해. 전에 형 방에서 담배 냄새 난다고, 아버지가 뭐라고 하셨어. 방에서 담배 피우지 마.”

    급하게 입은 옷을 정돈하고 형이 창문을 열었다. 희미하게 남아 있는 담배 냄새가 창문 밖으로 바람을 타고 사라졌다.

    “뭐야, 너 노크할 줄 몰라?”

    그가 날카롭게 물었다.

    “……그거 뭐였어?”

    “뭐가.”

    “형 몸에…….”

    “내 몸에 뭐.”

    “상처 있던 것 같던데…….”

    “무슨 상처, 어두워서 뭐가 보이기는 해?”

    “…….”

    형의 말대로 방에는 불이 꺼져 있었지만 커다란 창으로 정원에 커져 있는 야외 조명이 안으로 새어들어 굳이 불을 켜지 않아도 괜찮을 만큼 어스름했다.

    무슨 싸움 같은 걸 하고 다니는 걸까.

    아무리 성격이 변했다고는 하지만 그는 태생적으로 타인과 다투고 분쟁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형이 누구와 죽도록 싸우고 다니는 모습은 도무지 상상이 가질 않았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그는 더 이상 내가 아는 형이 아니었다.

    내가 아는 형은 이제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작업실에서는 여자 친구 불러다 별의별 짓을 다 하고, 밖에서는 싸우고 돌아다니고. 조폭으로 취직한 것은 허경민이 아니라 형이었다. 대체 밖에서 무슨 짓을 하고 돌아다니는 건지 물어보고 싶었다.

    “헛소리하지 말고 빨리 가서 자.”

    “…….”

    그가 담배를 입에 물고 볼이 패도록 깊이 빨아들였다. 창문 밖으로 상반신을 내놓고 담배 연기를 내뿜는 안색은 평온했다. 몸의 상처를 들켰다는 당황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뭘 잘못 봤겠지.

    그가 싸우고 다니는 것도 말이 안 되지만 일단 그렇게 많은 상처가 사람의 몸에, 나의 형에게 있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워낙 찰나의 순간이라 제대로 보지 못했고 일순 그림자 때문에 이상하게 보인 걸 수도 있었다.

    흐릿한 조명과 형의 방 창문 옆에 자리한 커다란 단풍나무의 무성한 잎사귀가 형의 매끄러운 살갗 위에 그림자를 드리우며 착시처럼 보인 거다.

    지금도 조롱조롱 달린 잎사귀들이 바람에 흔들리면서 그의 침대 위로 어른거리고 있었다.

    “방에서 담배 피우지 말라니까. 냄새 배면 어떡할 거야? 아버지 알면 화내실 텐데.”

    “창문 열었다.”

    “윤 차장이 가끔 방 청소도 한단 말이야.”

    “내 방엔 들어오지 말라고 했어.”

    “언제 그런 말 했어?”

    “그 여자 이 집에 들어온 날.”

    형이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나도 들어오지 말라고 그럴걸……. 나는 그런 말은 못 하겠던데.”

    “싫으면 내일이라도 얘기해. 윤 차장이 뭐 그런 이상한 고집 피우는 사람 아니잖아.”

    “그렇긴 한데 지금은 뭐든 좀 예민하게 받아들여서 말을 잘 못 하겠어.”

    “그 여자도 엄마 노릇 처음이니까 힘들겠지.”

    비서였던 윤 차장이 예전부터 우리 집을 하도 들락거려서 형도 그녀를 새어머니나 아주머니가 아니라 윤 차장이라고 불렀다. 그래도 옛날에는 그녀가 있건 없건 늘 공손하게 윤 차장님이라고 불렀는데 지금은 윤 차장을 그 여자라고 부를 때가 더 많았고 투명 인간으로 취급했다.

    “형이 나 대신 얘기해 주면 안 돼?”

    “바보야? 그런 말도 못 하게?”

    “나까지 윤 차장 말 안 들으면……, 차장님 섭섭해할 거야.”

    내 말에 형의 입가에 설핏 미소가 걸렸다가 사라졌다.

    “알았어. 그 여자 섭섭하지 않게 얘기해 줄게. 그만 가서 자.”

    미처 지퍼를 채우지 않은 바지가 그의 하체를 가리고 있었다. 짙은 네이비 색상의 바짓단 아래로 맨발이 보였다. 바지 색 때문에 형의 발이 유난히 하얗게 도드라졌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짙은 하의와 하얗게 도드라지는 발을 가만히 응시했다.

    형의 여자 친구는 어떤 사람일까.

    지나가는 사람들이 흘긋대며 돌아볼 정도로, 형은 매력적인 외형의 소유자였다. 나와 형은 어머니를 닮아 짙은 밤색 머리칼을 가지고 있었다. 형의 것은 유난히 윤기가 흐르고 탐스러웠다.

    그 머리끝에서 전신으로 넘쳐흐르는 수려함이 이성의 마음에 불을 질러 댄 것은 그의 학창 시절부터 이미 시작된 일이었다.

    저런 아름다운 육신으로 아버지처럼 여자를 사랑하고 때때로 여자를 품기도 하겠지.

    “준영아.”

    “…….”

    “강준영.”

    “……어?”

    하얀 발을 바라보던 시선이 나도 모르게 저절로 그를 훑고 올라가 그의 하체를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 나는 황급히 고개를 들었다.

    형과 눈이 마주쳤다. 그가 급하게 입느라 미처 올리지 못한 지퍼를 마저 끌어 올렸다. 대체 뭘 보고 있는 거냐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나는 당황스럽게 시선을 피했다.

    그와 나는 어머니의 한배에서 나온 핏줄이었다. 그런데 타인의 사생활에 불쑥 침범해 낯선 이의 알몸을 본 것처럼 심장이 방망이질을 쳤다.

    지금 머릿속으로 한 더러운 상상을 형이 눈치챈 것만 같았다.

    “무슨 할 말 있어?”

    “아니, 아니야. 나는 그냥 잠이 안 와서, 형도 아직 안 자는 것 같아서. 그래서.”

    “…….”

    “뭐 얘기하고 싶은 것도 있긴 했는데……, 나는 그냥.”

    형의 아랫도리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동생이라니.

    나는 숨을 곳이 없는데 바닥을 파고들어 가는 것처럼 고개를 숙이고 말꼬리를 흐렸다.

    “무슨 얘긴데.”

    형이 말을 해 보라고 낮은 목소리로 되물었다.

    “별거 아니야.”

    “괜찮으니까 얘기해 봐.”

    형의 아랫도리를 뚫어져라 쳐다본 걸 들켜서 당황한 게 아니라 내가 무슨 다른 이유가 있어서 머뭇대는 거라고 여기는 그가 자못 심각하게 물었다.

    “아니야. 나중에 얘기할게. 늦었으니까……, 형 자야지.”

    “괜찮으니까 말해 보라고. 여기 앉아 봐.”

    형이 내 팔을 붙잡아 침대에 억지로 앉혔다. 나는 괜찮다고 하면서 은근슬쩍 그가 하는 대로 앉았다.

    형이 책상 의자를 빼 앉고 나를 본격적으로 돌아보았다. 할 말이 있으면 제대로 해 보라는 자세였다.

    온종일 기분이 싱숭생숭했는데 형이 들어 주겠다고 하니 갑자기 무슨 말이든 그에게 쏟아 내고 싶은 안달이 일었다.

    형은 나와 피를 나눈 사람이었고, 형이라면 내가 왜 이렇게 종일 마음이 불편하고 껄끄러운지 아주 작은 단서만으로도 알아채고 명쾌한 답을 줄 것 같았다.

    “혹시 그 여자가 무슨 구박 같은 거 해?”

    “뭐?”

    “윤 차장.”

    그는 전에 없이 심각했다.

    “윤 차장이 아버지 없을 때 너한테 함부로 구냐고.”

    “함부로 구는 게 뭔데? 아버지 안 볼 때 윤 차장이 날 꼬집기라도 한다는 거야?”

    “…….”

    잔뜩 구겨져 있던 눈매가 그제야 풀어졌다.

    “형 상상력이 그 정도밖에 안 된다니, 실망이야.”

    “그럼 뭐야. 뭐가 그렇게 심란한 얼굴인데.”

    “윤 차장하고 아무 상관 없어. 나한테 잘해 주셔.”

    “그거 아니면 뭐야. 성적이야 늘 별로였잖아. 새삼스러울 것도 없을 거고.”

    “……그게 지금 고3한테 할 소리야?”

    어이가 없었다.

    그의 손에 이끌려 앉았던 나는 슬그머니 형의 침대에 누워 버렸다. 아버지보다 더 의지하고 좋아하는 형이었다.

    그와의 이런 대면을 얼마나 그리워했던가.

    형의 침대에 머리를 대고 누워 막 씻어 내린 시원한 체취를 들이마시자 우리의 우애가 애틋하던 몇 년 전으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그의 성장통이 오지 않았던 그 시절로.

    형은 재촉하지 않고 가만히 나를 바라보기만 했다. 수험생인 나의 신산함과 고민을 다 아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잘생긴 얼굴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청량해졌다. 그가 나에게 작은 관심을 기울여 주는 것만으로도 종일토록 나를 따라다녔던 불쾌감이 하얗게 휘발되어 날아가는 듯했다.

    “형 올 때도 거실에 아버지랑 윤 차장 같이 있었어?”

    형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가 아무 말씀도 안 하셨어? 윤 차장도 별말 없고?”

    그의 오른쪽 눈썹이 살짝 치켜 올라갔다. 의도를 모르겠다는 질문이었다.

    형과 함께 윤 차장을 대화의 주제로 삼은 것은 놀랍게도 오늘이 처음이었다. 그는 그토록 내게 무심했다. 차라리 형제가 아니라고 하는 쪽이 위안이 될 정도로.

    나는 형의 베개에 뺨을 비벼 댔다. 외로 누워 그를 곧바로 응시했다. 비밀 이야기라도 꺼내는 것처럼 조급한 말투가 튀어나왔다.

    “아버지한테 그러더라. 우리랑 사는 거 불편하대. 우리도 불편할 거라고, 따로 살았으면 좋겠다는 식으로 말하던데.”

    그는 아무 의견도 덧붙이지 않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관심 없어 했다. 내가 구박 같은 걸 당하지 않음을 확인하고 안심하는 것도 같았다.

    “형 늦게 들어온다고 뭐라고 했어. 윤 차장은 형을 휘어잡고 싶나 봐.”

    “…….”

    “형, 이번 주에 형 공연하는 데 가 봐도 돼? 형 밴드 공연할 때만 잠깐 보고 바로 학원으로 가서 공부할게.”

    우리 형, 이라는 수사만큼 나를 기쁘게 하는 것도 없었다. 우리 형, 이라는 것만큼 나를 자랑스럽게 하는 것도 없었고, 뿌듯하게 하는 것도 사실 없었다.

    형의 침대에 누워 형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는 사실에 피로감마저 잊었다. 누적된 하루의 피곤이 사라지고 긴장이 풀어졌다. 그토록 재촉하고 안달하던 졸음이 그제야 밀려들었다.

    “나 진짜 공연만 보고 가서 공부할게. 그럼 더 잘될 것 같아서 그래.”

    그는 반쯤 감긴 내 눈을 바라보다 의자에서 일어나 내가 누워 있는 침대맡에 앉았다. 큰 손이 내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버클을 제대로 채우지 않은 바지의 허리춤이 벌어지며 그의 골반이 아슬아슬하게 드러났다.

    나는 멍하니 나의 시야로 들어온 형의 너른 가슴팍과 배, 옷 아래로도 뚜렷하게 자리를 잡은 외복사근과 배꼽 아래로 희미하게 비치는 거웃을 바라보았다.

    “참……, 그리고 형 있잖아. 그거 혹시 알아?”

    “…….”

    대답 대신 그는 나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커다란 손가락 사이로 결결이 스며드는 머리칼을 기분 좋은 악력으로 쓸어 넘겼다.

    진한 접촉의 느낌에 반쯤 떠져 있던 눈이 스르르 감겼다. 가슴이 미약하게 두근거렸다. 기분 좋을 정도의 고양감이 몸을 감쌌다.

    “우리 학교에 공부 엄청 잘하는 애 있는데, 나보다 잘하는 애.”

    “…….”

    “한 명은 전교 일 등이고, 한 명은 교장 선생님도 포기한 일진이야.”

    “…….”

    “……그런데 둘이 잔다더라? 그런 거 뭐라고 하더라? 그거……, 호몬가? 아무튼 그런 거……. 남자들끼리 더럽잖아.”

    “…….”

    “응?”

    졸음의 무게가 눈을 짓이기는 듯했다. 나는 감기는 눈을 겨우 뜨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형이 무슨 표정을 짓고 있기는 한데 어떤 감정인지, 어떤 마음인지 짐작이 되지 않았다. 사고하는 뇌가 바닷속에 잠기고 있었다.

    “둘이 키스하고……, 둘이 그거, 섹스도 한대.”

    나를 쓰다듬던 손길이 멈추었다.

    나는 계속 쓰다듬어 달라고 그의 허벅지로 뺨을 옮겨 눕고 형의 손등을 쥐고 내 뺨과 머리를 만지게 했다. 멈칫하던 열 오른 손바닥이 바삭거리는 촉감으로 내 살갗을 쓸어 만졌다. 건조하고 따스했다.

    “형……, 형은 해 봤지?”

    “…….”

    “그거……, 섹스.”

    “…….”

    “더러워서 싫어.”

    뭐라고 중얼거리기는 했는데, 뭐라고 했는지 생각이, 의식이, 자각이 되지 않았다. 의식이 타들어 가는 검불처럼 마지막 불길을 번득이고는 그대로 바스러졌다.

    “……그런 거 하지 마.”

    나는 그대로 잠이 들었다.

    커다란 손의 온기가 뺨에 머물러 있다는 것만 알 것 같았다.

    ✦ ✧ ✦

    공연을 보러 가겠다는 말에 대답은 듣지 못했지만 나는 과감하게 학원을 빠지기로 했다. 혹시라도 아버지나 윤 차장에게 연락이 가는 일이 없도록 몸살감기에 걸렸다고 학원에 전화해서 거짓말도 미리 해 두었다.

    등교할 때부터 가방에 숨겨 놓은 사복을 학교 끝나자마자 지하철 화장실에서 갈아입고 치밀한 계획대로 냅다 튀어 홍대로 갔다.

    금요일 저녁이면 형의 밴드가 정기적으로 공연하는 클럽은 이미 사람들로 가득했다. 복잡한 클럽 입구를 지나 지하 계단을 밟아 내려갔다.

    요란한 음악이 전신을 휘감았다. 마치 다른 세계로 통하는 입구를 지나친 것만 같았다.

    형을 아는 바텐더에게 다가가 가볍게 고갯짓으로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저기, 오늘 저희 형이요.”

    목소리가 강렬한 스피커에 파묻혀 바로 앞에 있는 그녀에게조차 전달되지 않았다.

    “저희 형이요! 강준원! 아세요?! 혹시 지금 어디 있는지 아세요?”

    바텐더는 음량을 높인 단어를 알아듣고 내 팔을 휘어잡아 확 끌어당겼다. 그녀가 귓가에 말을 전했다.

    “오늘 공연 취소됐어. 보컬이 저 지경이 됐거든.”

    그녀의 손가락이 어느 한 지점을 가리켰다.

    지난번에 만난 형의 친구가 소파 위에 앉아 있었다. 얼굴은 불콰했고 늘어진 자세로 박장대소하고 있었다.

    바텐더는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수신호를 보내왔다. 취했다거나, 맛이 갔다거나, 그런 뜻인 것 같았다.

    본격적인 형의 연주를 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잔뜩 부풀어 있던 나는 얄궂은 분노마저 느꼈다. 취해 나자빠진 형의 친구를 부질없이 노려보다 그곳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밤 열 시가 넘어가도록 홍대 골목을 헤매고 다녔다. 형의 작업실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의 핸드폰으로 계속 전화를 걸어 보았지만 묵묵부답이었다.

    그사이 다섯 통도 넘는 전화가 윤 차장에게서 걸려 왔다. 받지 않고 버티다 아버지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을 때는 할 수 없이 전화를 받아야만 했다.

    통화를 수신하면서도 나는 왜 이렇게 아버지에게 반항하지 못하는 걸까. 이러는 나 자신을 한심하게 여겼다.

    “……네.”

    ―강준영, 너 지금 어디야. 학원도 빠지고, 어디냐고.

    “여기……, 서울이요.”

    홍대라고 솔직하게 대답하려다가 형에게 피해가 갈지 몰라 서울이라 말했다. 뭔가 참는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핸드폰 너머에서 들려왔다.

    ―그래, 당연히 서울이겠지. 서울 어디야.

    “서울 중심, 아니 서쪽.”

    ―뭐 하느라 학원도 안 가고 서울 서쪽에서 헤매고 있는 건지 말해 봐.

    “친구들하고 놀고 있는데요.”

    이번에는 화를 억누르는 숨소리가 들려왔다.

    ―친구들하고 놀아? 뭐 하고 노는데? 너 취했어?

    “네, 조금 마셨어요. 뭐 하고 노느냐면 술 마시고 놀고 있었거든요.”

    미성년의 신분인 주제에 나는 아버지에게 음주도 하고 방탕하게 놀고 있다고 직설적으로 말했다.

    ―허…….

    아버지는 어이없고 황당한 한숨을 내뱉었다. 거짓말이었지만 직설적이라 그는 내가 진심을 토하는 거라고 믿는 눈치였다.

    ―아줌마 전화는 왜 안 받아.

    “죄송해요. 받기 싫었어요.”

    아버지는 내가 늦는 게 걱정된 것이 아니라 윤 차장 등쌀에 못 이겨 전화를 한 모양이었다.

    “어차피 잔소리하실 건데 저는 드릴 말씀이 없거든요.”

    나는 솔직하게 대꾸했다. 나는 반항이 소란스럽지 않았다. 아버지의 권위를 침탈하지도 않았고 그럴 의지도 없었다.

    ―할 말 없어도 생존 신고라도 하란 말이야. 연락 안 되면 상대방은 나쁜 상상부터 하는 거 몰라?

    “그럼 생존 신고만 문자로 해도 돼요?”

    ―그래, 그렇게라도 해. 나는 오늘 반항을 좀 하고 싶다고, 그렇게 보내면 새어머니도 걱정 안 할 거 아니야.

    “다음부터는 문자로 보낼게요.”

    ―적당히 놀고 너무 늦지 않게 와. 올 때는 택시 타고.

    “네.”

    아버지는 알겠다고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빨리 들어오라는 말도 과하게 놀지 말라는 잔소리도 없었다.

    싱겁게 끝나 버린 아버지와의 통화에 어리둥절해져 걸음을 옮기다 아, 하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형과 함께 지나쳤던 골목이었다. 나는 그제야 지리를 기억해 내고 확신에 찬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형의 작업실이 자리한 낡은 건물이 멀리서 보였다. 나도 모르게 종종걸음을 쳤다.

    막 계단을 밟아 내려가는데 작업실 문이 열리며 검은 인영이 툭 튀어나왔다. 나는 깜짝 놀라 난간을 붙잡은 채 우뚝 멈추었다.

    “…….”

    임주호였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마주친 전혀 예상치 못한 얼굴이었다.

    나는 당황해 발소리를 죽이고 계단을 도로 올라와 길가에 주차된 차 뒤로 몸을 숨겼다. 녀석이 튀어나온 곳은 바로 형이 작업실로 얻은 궁색한 건물 반지하 계단이었다.

    임주호는 나를 보지 못했는지 천연덕스러운 표정으로 골목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곧이어 누군가의 인영이 그를 뒤따라 올라왔다.

    강준원이었다. 나의 형이었다.

    임주호가 골목에 서서 기다리고 있던 사람은 형이었다.

    임주호는 그가 나오자 다시 걸음을 옮겼다. 한 손에 담배 불티를 날리고 있던 형은 주호의 곁에서 함께 걷기 시작했다.

    나는 잔뜩 굳은 채 차 뒤에 숨은 어깨를 옹송그렸다. 심박이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올랐다.

    그들이 어둠에 몸을 숨긴 나를 지나칠 때는 손바닥으로 씨근거리는 입술과 코를 틀어막았다.

    나는 그들의 뒷모습이 골목 끝으로 사라져 완전히 보이지 않을 때까지 내 숨통을 틀어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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