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친 드래곤의 항우울제가 되었다-55화 (55/101)

55.

사실적시에 의한 멘탈파괴 (1)

“에헤헤…….”

순식간에 만취한 해일은 뺨을 불그레하게 밝히며 웃었다. 방긋거리며 순진하게 웃는 얼굴이 귀여우면서도 보기 좋았다.

해일의 맞은편에 앉아 술을 마시던 카르나가 웃음을 터트렸다.

“형님, 완전히 취하셨네요.”

“카르나가 할 말은 아니죠오…….”

해일은 휘청거리는 몸을 똑바로 세우고는, 짐짓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저 아직 안 취했어요.”

그 말을 들은 칼서스가 어이없다는 듯 대꾸했다.

“그 몰골로 안 취했다는 거짓말을 하면 누가 믿겠나.”

“칼서스는 믿어야죠…….”

“방금 그 믿음에 배반당한 참이다만.”

“미워…….”

해일의 왼편에 앉아 있던 가네시아가 질문을 던졌다.

“해일 경은 술이 많이 약하신가 보네요.”

질문을 들은 해일이 한 손을 들어 손가락을 꼽아 보기 시작했다. 그가 눈을 굴리며 한 손의 손가락을 모두 접은 뒤 말했다.

“이번이, 딱 다섯 번째로 마셔 본 거던가?”

“칼서스 씨가 술을 못 마시게 해서 그런 건가요?”

“그렇긴 한데, 나쁜 목적으로 술을 못 마시게 한 건 아니에요…….”

웅얼거리는 목소리 사이로 칼서스를 옹호하려고 하는 기색이 가득했다. 그 탓인지, 해일의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의 얼굴에 미소가 피었다.

“그러게요. 칼서스 씨가 왜 술을 못 마시게 했는지는 이해가 가네요.”

“완전 무장 해제 되시니 걱정스러워하신 거겠죠.”

해일은 다정하고 유한 편인지라, 평소에도 ‘얕잡혀 보이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받곤 했다. 나쁜 의도로 접근하는 사람이 있진 않을까 하는 염려 탓이었다.

“누가 따라오라고 하면 정말 순순히 따라가실 것 같아요.”

가네시아가 실없이 웃으며, 해일의 앞에 놓인 잔에 물을 따라 주었다. 해일은 제 잔에 물을 따라 주는 손을 빤히 보다가 중얼거렸다.

“가닛.”

“네, 해일 경.”

해일이 가네시아가 입은 튜닉의 소매를 조심스럽게 잡아당기며 두 눈을 빛냈다.

“팔뚝 보여 주세요.”

“……네?”

“전부터 궁금했어요.”

갑작스러운 요청을 받은 가네시아가 얼떨떨해하자, 해일이 그녀를 어르듯 이유를 설명했다.

“오러 유저도 아닌데 힘이 엄청나게 강하니까, 문득 궁금해지더라고요.”

“아아…….”

술에 취해 두서가 없긴 했으나, 말하고자 하는 바는 확실하게 이해가 갔다.

가네시아는 제 손목에 달린 단추를 풀며 설명했다.

“부계로 드워프의 피가 조금 섞여 있어서 그런 것 같아요. 키가 훤칠해서 그런지 다들 제가 드워프 혼혈이라고는 생각 못 하더라고요.”

“가닛도 혼혈이었구나…….”

“드워프 혼혈은 괴력으로 유명해요. 그래서 용병단이나 영지의 사병을 모집할 때 드워프 혼혈을 우대하기도 하죠.”

단추를 다 풀어낸 가네시아는 제 팔을 덮고 있던 튜닉의 소매를 접어 올렸다. 그러자 천 한 겹 아래에 가려져 있던 팔뚝이 드러나 보였다.

“와, 미쳤다.”

가네시아가 가볍게 움직이는 것에 맞춰, 쩍쩍 갈라진 근육의 선이 요동쳤다. 해일은 그 팔을 진귀한 보물을 보듯 바라보며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근육이랑 힘줄 대박이다. 완전 예술이에요…….”

해일의 손끝이 조심스럽게 가네시아의 팔뚝을 콕콕 찔렀다. 그 모습을 본 가네시아가 웃음을 터트리며 팔에 힘을 주자 더 단단해진 근육이 불뚝하니 부풀어 올랐다. 가네시아의 팔을 콕콕 찌르던 손가락이 더 부산스럽게 여기저기를 찔러 댔다.

“완전 벽돌 같아. 대박……. 가닛 팔뚝 너무 멋있어요…….”

“아하하, 감사합니다.”

호쾌하게 웃음을 터트린 가네시아의 시야에, 부럽다는 듯 자신을 바라보는 카르나가 보였다. 그녀는 물 흘러가듯 자연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다른 사람들은 어디가 좋으세요?”

“어…….”

질문을 던진 가네시아가 손끝으로 가볍게 카르나를 가리켰다. 그러자 해일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카르나에게로 옮아갔다. 긴 금발을 하나로 땋아 내린 미남을 한참이나 바라보던 해일이, 방긋 웃으며 말했다.

“금을 늘려 만든 실 같은 머리카락이랑, 긴 속눈썹이 너무 예뻐요. 카르나는 정말 예쁜 것 같아요.”

“형님께 예쁘다는 말을 들으니 기분이 좋네요.”

이번엔 카르나가 손짓으로 러드를 가리켰다. 이번에도 해일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흘러갔다.

“러드는 똑똑하고 상황 판단이 빨라서 항상 신세를 지고 있어요…….”

“과분한 칭찬입니다.”

수줍게 미소 지은 러드가 이번에는 시르야를 가리켰다.

“시르야는 침착하고, 글씨가 예뻐요. 재경 관리에 능통한 것도 너무너무 멋있어요.”

“감사합니다.”

시르야는 침착한 건지, 감흥이 없는 건지 구분이 가지 않는 모습으로 차분하게 감사 인사를 건넸다. 그러고는 손끝으로 가볍게 칼서스를 가리켰다.

해일의 시선이 마지막으로 칼서스에게 옮겨 갔다.

“그리고…….”

해일은 고개를 돌려, 제 옆에 앉아 술잔을 기울이고 있는 칼서스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한참이나 그렇게 칼서스를 바라보던 해일이, 푸스스 흩어지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칼서스는 내 용이니까 다 좋아요.”

“…….”

가장 후한 칭찬이었다.

그 대답을 들은 가네시아가 가볍게 휘파람을 불며 “축하드려요.” 하고 칼서스를 놀려 댔다. 칼서스는 자신을 놀리려 드는 가네시아를 날카롭게 한 번 쏘아보더니, 해일에게 한마디를 건넸다.

“이만 들어가서 쉬도록 하지.”

“네에…….”

고개를 끄덕인 해일은 당연하다는 듯 칼서스를 향해 양팔을 벌렸다. 안아 달라고 채근하는 듯한 몸짓이었다.

“…….”

칼서스는 아랫입술을 꾹 깨문 채로 그가 바라는 대로 양팔을 벌려 해일을 안아 올렸다.

“둥지로 돌아가 있겠다. 부를 일이 있으면 귀걸이를 통해 연락해.”

“그럴게요.”

가네시아의 선선한 대답을 들은 칼서스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를 중얼거렸다. 그걸 마지막으로 두 사람의 모습이 흐릿해지더니, 완전히 사라졌다.

권능을 사용해 둥지로 돌아온 칼서스는, 익숙한 풍경을 보자마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칼서스는 올리브 나무로 짜인 침대 위에 해일을 눕혀 주고는,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내가 견제해야 할 사람을 너무 늘리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으응?”

해일이 의아해하며 칼서스를 올려다보자, 그가 호박색 눈으로 해일을 빤히 내려다보며 속삭였다.

“네게 닿는 건 나 하나였으면 해.”

“……질투예요?”

“질투하는 게 맞다.”

“욕심도 많지.”

해일은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손을 뻗어 칼서스의 팔을 잡아당겨 침대 위로 넘어트렸다. 그러더니 꾸물꾸물 칼서스의 몸 위로 올라탔다.

“……해일?”

허벅지가 교차 되고, 아랫배가 맞붙었다. 해일은 그 상태로 칼서스의 가슴에 고개를 기대 누웠다.

“……칼서스 몸은 조각 같아요.”

“…….”

“넓은 어깨도 좋고, 늘씬한 허리도 우아해서 좋아요.”

해일은 작은 소리로 웅얼거리며 손가락으로 칼서스의 흉곽을 덧그렸다.

“여기 붙은 근육들도 예뻐요.”

칼서스의 흉곽을 따라 움직이던 손가락이 느리게 허리를 타고 내려와 장골 위에 멈췄다. 그 손짓에 칼서스가 앓는 소리를 내며 마른세수를 했다.

“해일.”

“으응.”

“곤란한데.”

손가락 밖으로 삐죽 튀어나온 귓바퀴가 붉었다. 해일은 붉어진 귀를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왜 곤란해요?”

“……너무 집요하게 만져 대니 하는 말이지.”

“칼서스도 날 맘대로 주물러 댔으면서.”

내가 좀 만지면 닳나…….

해일은 투덜거리며 손끝으로 오목하게 패인 장골 언저리를 매만졌다. 그 순간 해일의 코끝에 독특한 향기가 스쳐 지나갔다.

“응?”

꿀처럼 달콤하면서, 무척이나 먹음직스럽게 느껴지는 향기였다.

해일은 이끌리듯 달콤한 향기가 느껴지는 곳으로 고개를 움직였다.

“단 냄새…….”

달콤한 향기는 칼서스의 목덜미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해일은 그의 목덜미에 고개를 파묻으며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그러자 폐부 가득 달큼한 향기가 들어찼다.

“단 음식은 별로 안 좋아하는데…….”

그럼에도 향기를 맡고 있자니, 맛을 보고 싶다는 충동이 그의 머리를 가득 메웠다.

해일이 느릿하게 입을 벌려 칼서스의 목덜미를 꾹 깨물었다. 그와 동시에 칼서스의 어깨가 흠칫 떨리더니, 잇새로 그르렁거리는 듯한 소리가 새었다.

“……그만.”

칼서스가 몸을 돌려 위를 점하고는, 제게 엉겨 붙으려 하는 해일의 양손을 손바닥으로 짓눌러 고정시켰다.

잠시 숨을 고른 칼서스가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더 하면 못 참아.”

해일은 그 질문에 ‘뭘요?’라고 묻고 싶었으나, 새빨갛게 달아오른 칼서스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져 있었기에 차마 질문을 던지지 못했다.

가만히 그 표정을 바라보던 해일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저 졸려요.”

졸리다는 말에 칼서스의 손아귀에 들어가 있던 힘이 빠져나갔다. 칼서스가 해일의 옆으로 풀썩 쓰러지듯 눕더니 한숨을 푹 내쉬었다.

“……다음부턴 한 잔도 못 마시게 할 거다.”

“치사해요.”

“그래서, 또 마실 건가?”

“아니요. 칼서스한테 혼나기 싫어요.”

해일은 그렇게 대답하고는 칼서스 쪽으로 몸을 돌려 누웠다.

“좋은 꿈 꿔요.”

“……너도.”

대답을 들은 해일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마냥 순진하고, 한 점 티 없이 맑아 보이는 미소였다.

칼서스는 그 미소를 보며 착잡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다시금 깊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남의 배 속에 추잡스러운 감정이 들끓게 만들어 놓곤 저렇게 순진한 미소를 지어 보이다니. 그럼 추잡스러운 감정을 품은 스스로가 쓰레기같이 느껴지지 않는가.

“너 때문에 미치겠다…….”

칼서스는 힘없이 한마디를 중얼거리고는, 손을 들어 해일의 어깨를 토닥거렸다. 부드러운 손길에 안 그래도 취해 있던 해일은 금세 잠에 빠져들었다.

물론, 칼서스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뜬눈으로 밤을 지새워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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