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갱도 속의 왕세자 (2)
“어느 정도 사실에 기반을 둔 선동과 날조로 귀족들의 공포 심리를 자극할 거예요.”
나는 그렇게 말하며 세계사 수업 시간에 들었던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떠올렸다.
‘영국의 남성들이 커피를 두고 <커피는 여성과 아이에게 유해하다.>라며 커피 하우스는 남성들만이 사용할 수 있는 고급스러운 문화인 양 군 적이 있었지.’
그러다 중국으로부터의 홍차 수입이 시작되자, 여성들은 커피 대신 홍차를 마시며 그간 누리지 못했던 ‘티 문화’를 즐기기 시작했다.
‘남성들만이’ 즐길 수 있는 권리나 다름없었던 커피 하우스 문화가, ‘시커먼 남정네들이나 하는 짓’으로 여겨지기 시작한 건 바로 그즈음이었다.
‘그 결과 <영국 남자는 커피 같은 걸 마시니까 프랑스 남자에 비해 정력이 떨어지는 것이다.>라고 조롱당하기나 했다지. 커피 좀 독점하려다가 조루 이미지를 뒤집어쓰게 된 셈이야.’
나는 한쪽 입꼬리를 비죽이 들어 올리며 익살스럽게 웃었다.
“기호 식품에 대한 인식을 조금 바꿔 놓으려 해요.”
그러고는 칼서스가 들고 있던 브랜디 잔을 뺏어 들었다. 내 옆에 앉아 술을 홀짝이던 칼서스가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투덜거렸다.
“고작 두 잔이잖나. 많이 마신 것도 아닌데…….”
“시끄러워요.”
나는 망설임 없이 남은 브랜디를 한입에 털어 넣었다. 그러고는 설명을 이어 나갔다.
“설탕은 몸과 치아를 썩게 만들고, 커피와 홍차는 불면증을 만들어 낸다는 이야기를 퍼트릴 필요가 있어요.”
아주 거짓말은 아닌 이야기이다.
실제로 설탕은 치아를 썩게 하고, 당뇨병을 유발하는 물질이며, 커피와 홍차 또한 각성제이기에 숙면에 지장을 준다.
‘하지만 현대의 상식을 모르는 귀족들은 설탕과 홍차, 커피를 게걸스럽게 입에 부어 넣었지.’
사치의 대가인 줄도 모르고 비만이나 당뇨, 부정맥, 혹은 호르몬계 이상 등을 호소하는 귀족들이 제법 많을 터다.
‘그러니 현대 의학에 의거한 치료법을 전파해서 내 말이 사실이라고 믿게 만들면 게임은 끝인 거야. 시키는 대로 했더니 실제로 치료가 됐다는데, 안 믿을 도리가 있나.’
러드는 내 음흉한 속내를 눈치채지 못하고 질문을 던졌다.
“그걸 귀족이 쉽게 믿어 줄까요?”
“믿게 만드는 게 우리의 과제인 셈이죠.”
이번엔 술을 빼앗겨 침울해진 칼서스가 질문을 던졌다.
“방법은 생각해 뒀나?”
“물론이죠.”
“그 기호 식품을 대체할 다른 것에 대해서도?”
“그것도 물론 생각해 뒀죠.”
나는 빈 술잔을 칼서스에게 돌려주며 이야기했다.
“설탕 대신, 알테아르와 더비히에 걸쳐 있는 자작나무 군락에서 자작나무 수액을 채취할 거예요.”
“자작나무의 수액?”
“네. 자작나무의 수액이 아주 달거든요. 그리고 설탕과는 달리 치아를 썩게 하지 않아요.”
이야기를 들은 칼서스가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그걸 어떻게 단언할 수 있느냐는 질문이 섞인 행동이었다.
“근거가 있나?”
“네. 수시로 치과에 드나들며 생니를 뽑아야 하는 중앙의 귀족들과는 다르게, 북부 사람들은 충치로 고생하지 않잖아요. 북부가 애초에 치과가 적거나 없는 지역인 이유가 그거예요.”
상쾌한 대답을 들은 러드가 ‘아’ 하고 탄성을 터트리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에 비해 칼서스는 아직도 조금 의아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러드가 말했다.
“확실히 더비히에 비해 제국에 치과가 많긴 했는데……. 저는 그냥 제국이 인구가 많아서 치과가 많은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게 자작나무 수액 때문일 줄은 몰랐네요.”
“더비히에 계실 때 자작나무 수액을 넣은 음식을 자주 드셔 보셨나요?”
“네, 대체로 중앙에서 시럽을 사용하듯 사용했어요. 넓게 펼쳐 놓고 굳혀서 사탕처럼 먹기도 했고요.”
러드는 이야기를 한 뒤, 한 번 더 고개를 위아래로 크게 끄덕거렸다.
“확실히 저도 제국에 온 다음에 치과에 갔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치과가 고문소라는 사실도 깨달았고요.”
“……수고 많았어요.”
이 시대의 치과라면 살아서 볼 수 있는 유일한 지옥도나 다름없을 텐데. 그걸 견뎠다니…….
‘마취제도 없고 절개하는 수술도 없는 시대라, 그냥 생니를 펜치로 뽑아서 버리는 게 치료 방법이었더랬지.’
그걸 견뎠다니, 러드 당신도 참 강직한 사람이네요…….
현대 의학으로 나약하게 길러진 현대인이라면 치과 치료를 하다가 쇼크로 죽을지도 모르는 과정인데, 그걸 어떻게 견뎠을까…….
‘나약하게 길러진 나는 칫솔질이나 열심히 해야겠다…….’
기묘한 결론이 나온 뒤에야, 나는 다시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각설하고 이어 나가자면, 자작나무의 외피는 양피지 대신으로도 쓸 수 있어요. 이러면 굳이 타국에서 사탕수수를 재배하며 사람을 혹사시킬 필요도, 양을 길러 도축할 필요도 없죠.”
“더비히에서는 비밀을 유지해야 하는 서신을 보낼 때 사용했어요. 자작나무의 외피는 기름져서 불을 붙이면 잘 타거든요. 읽은 뒤 바로 태워서 없애면 끝이고, 한번 불이 붙으면 잘 꺼지지도 않으니까 다들 애용했어요.”
꽤 재미있는 쪽으로도 많이 사용했구나? 나는 파피루스 대신으로 쓰거나 촛불 심지로 많이 썼다는 이야기가 나올 줄 알았는데.
나는 의외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음 주제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홍차나 커피를 대신할 음료로는 민트로 만든 차를 권할 거예요.”
“……잡초처럼 자라는 그 식물 말인가?”
“네. 아무 데나 심어 둬도 잡초처럼 잘 자라는 그 민트 맞아요.”
러드가 내 말을 거들었다.
“자작나무 수액이 약간 화한 맛이 나니까, 민트랑 잘 어울린다는 거군요?”
“맞아요. 그리고 민트는 커피나 홍차와 달리 적당량 먹으면 숙면에 도움이 되는 약초거든요.”
수험생용 졸음껌이라며 페퍼민트 오일을 잔뜩 넣은 껌이 팔리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민트는 심신 안정에 도움이 되는 허브이다.
‘그리고 괴혈병을 예방하기 위해 억지로 먹어야 했던 시디신 라임 주스를 이용해서 모히또를 만들어 먹게 해도 괜찮을 것 같아.’
일종의 건강 요법으로 ‘하루 한 번 정도는 이렇게 먹으면 건강에 좋아요.’라고 선전하는 것이다. 그러면 귀족들도 반감을 갖기보단 호기심을 가지고 접근해 볼 수 있겠지.
나는 칼서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둘 중 우선해야 할 건 자작나무 수액의 수입이에요. 이 점은 황실을 통해 성사시키려고 해요.”
“네가 혼자 시작해도 될 텐데, 왜 굳이 황실을 끼려 하는 거지?”
“더비히가 돈을 벌어야 하니까요.”
더비히는 제국에게 점령당한 이후, 순식간에 가난해진 나라이다.
사시사철 추운 날씨를 유지하기 때문에 사탕수수나 찻잎을 재배하기도 어렵고, 쌀이나 밀을 심을 수도 없기 때문이었다.
“더비히는 특산물이라 부를 만한 것이 없기 때문에, 제국에게 막대한 양의 금과 은을 진상하게 됐어요.”
“맞아요. 세금을 내지 못하겠다고 하면 집에 쳐들어가서 결혼반지까지 빼앗아 갔어요.”
금화와 은화를 만들 광물마저 모두 빼앗겼는데, 무슨 수로 돈을 찍어 낼 수 있단 말인가.
“그러니까 더비히가 저항 세력이 가장 두드러지는 나라인 거예요. 동시에 지금 돈을 벌어야 하는 최우선 국가이기도 하고요.”
황건적도 본디 평범한 백성이었다. 타고나기를 도적으로 타고난 이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평범하게 일해서는 먹고살기 어려울 지경이 되었으니, 사람들이 도적질을 시작하는 거야. 그래서 도적의 수가 곧 난세의 증거가 되는 거지.’
그러니 더비히에서 혁명을 외치는 자들이 일어난 것도 비슷한 이유일 수밖에.
“그러니까 얼마가 되었든 제국 황실이 더비히에 돈을 주고 자작나무 수액을 사 오기 시작해야 해요. 착취가 아니라 정정당당한 거래의 형태로요. 그래야 거래가 당연한 거라는 인식이 생기죠.”
감격한 듯, 러드의 양 눈시울이 불그레하게 달아올랐다. 그는 빠르게 소매로 눈을 문질러 닦고는 표정을 가다듬은 뒤 다시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 그런데 어떻게 설탕의 유통을 막고, 자작나무 수액을 유행시키실 예정이신가요?”
“그건…….”
나는 말을 하다 말고 테이블 위에 양 팔꿈치를 척, 하니 올려놓은 뒤, ‘꽃받침’ 자세로 칼서스를 빤히 바라보았다.
“우리 카스타 영식이 어떻게든 해 주지 않을까요?”
“…….”
“이렇게 예쁜 건치를 가지고 있는 미남이 권해 주는 건데, 누구든 혹하지 않을까요?”
대놓고 눈치를 주는 행위에 칼서스의 얼굴 위로 당황스러움이 번져 갔다.
나는 부러 더 갸륵하게 눈을 깜빡여 보이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제가 지금까지 이만큼이나 가이딩을 해 줬는데, 카스타 영식도 저를 위해서 이쯤은 해 주시겠죠. 그렇죠?”
“……여우 같은 구석이 있구나.”
“생존이 특기거든요. 살기 위해서 뭔들 못 하겠어요. 잔머리를 굴리는 정도면 양호하죠.”
나는 그렇게 말한 뒤 의자를 당겨서 칼서스의 바로 곁에 바짝 붙어 앉았다. 그러고는 고개를 기울여 칼서스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 채로 살갑게 속삭였다.
“그러니까 카스타 영식, 영식께서 사교계에 눈도장 몇 번 찍어 주시면서 자작나무 수액을 영업해 주시면 될 것 같은데.”
“…….”
“카스타 영식은 좋은 사람이죠?”
그 말을 들은 칼서스가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트렸다.
“……겁도 없이 용에게 이런 일을 시키는 건 세상을 통틀어 너밖에 없을 거다.”
나는 뻔뻔하기 짝이 없는 미소를 지으며 칼서스를 올려다보았고, 칼서스는 ‘못 말려’라고 중얼거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건 네가 바라는 대로 움직여 주겠다는 승낙이나 다름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