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친 드래곤의 항우울제가 되었다-41화 (41/101)

41.

인도하는 자 (2)

“흐으, 춥다. 이 큰 산맥에서 언제 둥지를 찾지?”

나는 눈앞의 거대한 설산을 바라보며 입김을 후 내뱉었다. 이곳은 북부의 끄트머리에 위치한 알테아르였다. 밀려드는 추위에 피부까지 얼어붙어 감각이 둔하게 느껴졌다. 나는 추위에 얼얼해진 귓바퀴를 손으로 주무르며 생각했다.

‘알테아르의 설산은 무척이나 험준해. 거기에 북부 특유의 추위까지 더해졌으니……. 추격자를 따돌리거나,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기에 제격이야.’

오랫동안 설산을 등반해 온 사람들도 까딱 잘못했다가는 동상에 걸려 발이 묶이거나, 골짜기 사이에 고립되어 죽는 일이 빈번하다.

‘그렇기에 다비 알테아르도 알테아르 산맥 밖에서 살해당했지.’

가일은 가이딩을 받지 못해 미쳐 버린 다비가 카스타 영지 언저리까지 내려왔을 때를 노려 그를 살해했다. 그러니 다비가 사용하던 둥지는 아직 알테아르 산맥 어딘가에 남겨져 있을 것이다.

칼서스가 손을 뻗어 얼어붙은 뺨을 감싸 쥐었다. 뜨끈한 온기가 피부를 타고 전해졌다.

“형제끼리도 둥지의 위치는 서로 비밀리에 부쳤으니, 찾는 데엔 시간이 조금 소요되겠지.”

“으으…….”

털옷을 입은 것도, 털을 덧댄 장화를 신은 것도 난데. 왜 칼서스가 더 따듯한 거야…….

나는 억울해하며 칼서스의 외투 사이로 고개를 드밀었다. 그의 품은 한여름의 햇볕 아래만큼이나 따듯했다.

“칼서스, 추위를 덜어 주는 마법 같은 건 없어요?”

“있다.”

“그럼 저한테 그것 좀 걸어 주면 안 돼요?”

그 말을 들은 칼서스가 키득거리며 웃음을 터트렸다.

“키스해 주면 걸어 줄 수 있어.”

“가이딩도 주기적으로 받고 있으면서……. 나를 아주 골수까지 빨아먹으려고 하네…….”

“내가 정말 안 참고 막무가내로 굴었으면 지금 이렇게 걸어 다니고 있지도 못할 텐데.”

“날 죽여라, 죽여.”

하지만 난로를 끌어안고 있어도 추울 것 같은 추위를 막기 위해서라면 골수까지 빨아먹혀도 좋을 것 같아! 춥지 않게만 해 주면 감사하겠습니다!

나는 발끝을 들어 가볍게 칼서스의 입가에 쪽 소리가 나게 입을 맞췄다. 가벼운 입맞춤을 받은 칼서스는 행복하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여 입술을 겹쳤다. 동시에 자연스럽게 외투 사이로 파고들어 온 손끝이 등허리를 문지르자, 등 뒤를 기점으로 점점 따듯한 기운이 번져 갔다.

“아, 살겠다.”

나는 칼서스의 쪼는 듯한 입맞춤을 받으며 뜨듯해진 손을 쥐었다 피기를 반복했다. 이제야 감각 기관이 정상으로 돌아온 기분이었다.

“……응?”

“음? 왜 그러지?”

“뭔가가 있어요.”

숙련된 살수들이 인기척을 느낄 수 있듯, 내 감각 기관이 어느 한 방향을 가리켰다. 나는 그 방향을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저쪽으로……. 꽤 멀지 않은 거리에, 아늑한 곳이 있는 것처럼 느껴져요.”

칼서스가 나와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나지막하게 읊조렸다.

“……다비가 답을 알려 준 모양이군.”

칼서스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나를 번쩍 안아 들더니, 순식간에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 빠른 속도로 날아올랐다. 덕분에 둥지를 찾는 데엔 채 3분이 걸리지 않았다.

입구를 찾아 들어간 둥지는 자작나무로 짠 가구가 가득 들어찬 오두막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나는 산뜻한 자작나무 향이 풍기는 방을 둘러보며 감탄을 터트렸다.

“와…….”

뒤따라 방 안으로 들어온 칼서스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사람을 좋아해서 그런지 평소에도 인간 모습으로 지냈나 보군. 네가 지내기에 알맞은 공간이야.”

“알맞다고 하기에는 너무 넓지 않아요? 침대도 혼자 쓰기엔 너무 넓고…….”

“혼자 쓰기 너무 넓으면 같이 쓰면 되지.”

침대를 같이 쓰자고? 붙어 있으면 그걸 빌미로 들러붙어서 날 쪼물쪼물 만져 댈 게 뻔한데. 이게 어디서 은근슬쩍 같은 침대를 쓰자고 수작을 부려?

나는 말없이 칼서스를 노려보며 눈으로 욕을 했고, 칼서스는 그런 내 표정을 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진짜 능글맞다니까. 하여튼 당분간은 여기서 지내면서 다른 형제들의 시신을 어떻게 인도할지 생각해 보는 걸로 해요.”

“그래.”

칼서스는 그렇게 말하며 침대 가장자리에 걸터앉았다. 나는 그런 칼서스의 옆에 벌렁 드러누웠다. 푹신한 침대는 내 몸을 삼키듯이 받아 내었다.

“남은 형제들은 마탑에 있죠?”

“그래. 마법사들이 용을 이용해서 이런저런 실험을 해 보고 있다는 것 같더군.”

하여간에 빌어먹을 놈들. 황제나 마탑의 마법사들이나 다 똑같은 미친놈들이야. 왜 남의 사체를 가지고 실험을 해?

‘다른 제국의 백성이나 다른 종족이란 이유만으로, 어떻게 그렇게 잔인한 짓을 할 수가 있지?’

죽인 것도 모자라서, 그들의 몸을 이용해서 전리품을 만들다니. 식인으로 유명한 아즈텍 문명에서도 그런 비효율적이고 잔인한 짓은 하지 않았다.

‘애초에 아즈텍 문명은 단백질 부족 때문에 식인을 시작한 거니까, 여기 사람들이랑은 원인과 결과가 완전히 달라.’

황제는 그저 본인의 명성을 위해 용의 비늘과 뼈로 검을 만들었고, 아즈텍 문명의 원주민들은 생존을 위해 인간을 먹었다. 후자는 <잡아먹을 동물이 부족해서 동족이라도 가리지 않고 먹어야 했다.>라는 이유라도 있지만, 전자는 그저 쓰레기 같은 욕심이 원인인 셈이다.

‘다이쇼 로망을 찬미하는 일본인이나 다름없지.’

그러니 더비히에서 가족을 잃고 부르짖던 청년이 나타났던 것이 아닌가.

“아, 맞다.”

“뭐지?”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문득 그 청년의 안위가 궁금해졌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칼서스에게 물었다.

“더비히의 그 청년은 어떻게 됐어요?”

“고국으로 돌아갔다.”

“잘 돌아갔어요?”

칼서스가 잠시 침묵하다가, 한발 늦게 대답했다.

“……그건 지금부터 확인해 보마.”

“돌아갔는지 확인도 안 해 봤어요?”

내가 황당해하며 되묻자, 칼서스는 딴청을 피우듯 알 수 없는 언어를 중얼거렸다.

“하여간 잔소리 싫어하는 건 용이나 사람이나…….”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칼서스가 입을 열 때까지 기다렸다. 그는 얼마 가지 않아 비음을 흘리며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음?”

그 모습을 본 나는 칼서스의 팔뚝을 덥석 붙잡으며 물었다.

“왜요? 무슨 문제라도 생겼어요?!”

“아니……. 그런 건 아니다.”

“아니면 더비히에 역병이라도 돌았어요?!”

“아니, 더비히는 서늘한 국가라 역병이 잘 돌지 않는다. 그 청년도 아주 무사해. 다만…….”

칼서스는 멀리 있는 무언가를 보는 사람처럼 인상을 찌푸리고 허공을 빤히 응시했다.

“그럼 대체 뭐가 걸려서 이러는 거예요?”

내가 조바심을 내며 묻자, 칼서스가 무척 당황한 투로 중얼거렸다.

“……곁에 가일이 있다.”

“……네?”

방금 뭐라고 했어? 그 사람 옆에 가일이 있다고? 대체 왜?!

내가 당황하며 입을 헤벌리자, 칼서스가 앓는 소리를 내며 한마디를 더 내뱉었다.

“그리고…… 곁에 아르사나 엘그리드가 있어. 동부 호수의 주인이었던 나의 형제가, 지금 그 둘과 함께 있다.”

그 말을 내뱉는 표정은 무척이나 고통스러워 보였기에, 나는 어렵지 않게 지금 아르사나 엘그리드가 어떤 몰골인지 알아챌 수 있었다.

가일이 아르사나 엘그리드를 ‘해체’하는 작업에 동원된 것 같았다.

* * *

“드워프고, 마법사고, 하나같이 도움이 안 되는군. 고작 뒈진 시체의 껍질 한 겹을 못 벗겨서 나를 귀찮게 만들어?”

두꺼운 유리 벽 너머에 있는 가일은 평소의 그답지 않게 무척이나 지쳐 보였다. 그가 튜닉의 옷자락을 들어 올려 관자놀이를 타고 흐르는 땀을 훔쳤다.

“드워프가 수십이 나가 뒈지든 말든, 그 자식들을 시키면 될 것을…….”

잇새로는 씨근덕거리는 숨이 새어 나오고, 신검 그람을 쥔 손은 덜덜 떨렸다.

“…….”

그리고 화상으로 얼굴이 얼룩덜룩한 남자는 사이에 유리 벽을 두고 그런 가일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의 손아귀에는 보송보송한 수건이 두어 장 들려 있었다.

가일은 한 박자 늦게 자신을 찾아온 남자에게 질문을 던졌다.

“넌 뭐지?”

“가일 단장님을 보조하라는 폐하의 명을 받고 왔습니다. 편하게 러드라고 불러 주십시오.”

“……하인을 붙여 주신 건가.”

그렇게 말하는 가일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걸렸다. 그는 이를 드러내 웃으며 가감 없이 기쁨을 드러내 보였다.

“이렇게까지 배려해 주시는데, 힘들다고 내뺄 수야 없지.”

짐승처럼 키득거리며 웃던 사내가 손가락을 들어 유리 벽 너머를 가리켰다.

“수건은 거기 테이블 위에 두고 가라.”

“알겠습니다.”

러드라 불린 남자는 양순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해 보였다. 그러고는 소리가 나지 않게 걸어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하아.”

방을 빠져나오자마자, 양순하기만 하던 표정이 마구잡이로 구겨졌다.

‘저놈은 역시 태워 죽여도 모자랄 학살자다.’

닫힌 문고리를 쥔 손이 바들바들 떨리며, 달그락달그락 소리가 울렸다.

‘저자는 더비히의 백성과 여덟의 용을 황제의 전리품으로 만들었다. 피로 목을 축이고 생살을 뜯어 먹는 짐승과 다를 바가 없어.’

인간이라면 응당 가져야 할 측은지심마저 없는, 그야말로 악귀나 다름없는 남자이다.

러드가 이를 악다물자, 그의 잇새로 치아가 갈리는 바드득 소리가 울렸다.

‘함께 지옥에 떨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네놈은 반드시 죽여 버릴 것이다.’

황제의 기쁨을 위해 바쳐진 수많은 목숨들을 위해서.

그의 녹색 눈이 살기를 머금고 어둡게 가라앉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