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드워프와 마나 하트 (4)
나는 아이처럼 한참을 울부짖고 나서야 간신히 진정할 수 있었다. 칼서스는 눈물로 엉망이 된 내 얼굴을 닦아 주고는 나를 데리고 1층으로 올라갔다.
그러자 1층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린과 오르가가 달려와 호들갑스럽게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다, 단장님.”
“폐하께 하사받은 검이 갑자기 사라졌어요.”
“가루가 되어서 흩어졌는데…….”
당황스러움에 허겁지겁 이야기를 늘어놓던 두 사람의 입이 동시에 다물렸다. 한참 운 탓에 발갛게 변한 눈가와 콧등을 뒤늦게 발견한 탓이었다.
린이 당혹스러워하며 질문했다.
“……단장님?”
나는 먹먹해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다비 알테아르를 인도했어.”
“그게, 무슨…….”
“태그, 이 건물 안에 다른 드워프가 묵고 있거나, 귀중품을 보관해 두고 있습니까?”
“마나 하트 때문에 여긴 개미 새끼 한 마리도 드나들지 못하오. 완전히 텅 빈 건물이지. 그런데 그건 왜 묻…….”
나는 태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칼서스를 되돌아보며 말했다.
“칼서스.”
“응.”
“건물을 불태워 줘요.”
그 말을 들은 오르가가 소리를 내질렀다.
“단장님!”
“드워프들이 이 이상 죽을 수는 없으니, 습격으로 위장하는 게 좋겠어요.”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오르가가 양손으로 내 옆얼굴을 쥐고 억지로 시선을 맞췄다. 그가 혼란스러워하는 표정으로 소리쳤다.
“단장님! 정신 좀 차려 보세요! 왜 건물을 태워야 하는 겁니까?! 드워프들이 애써 마나 하트의 영향이 밖으로 새어 나오지 않게……!”
“내가 그를 인도했어.”
나는 지나칠 정도로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세계수의 자격으로, 나의 형제를 인도했어. 다비 알테아르는 이제 존재하지 않아.”
그 말을 마지막으로 적막이 내려앉았다. 나는 일부러 시선을 내리깔며 린과 오르가의 눈길을 외면했다.
* * *
칼서스는 내 부탁대로 권능을 이용해 건물이 있던 자리를 깔끔하게 태워 버렸다. 드워프 둘은 그 모습을 보며 숨을 들이켰고, 린과 오르가는 체념한 것처럼 넋 빠진 표정을 지었다.
“단장…….”
린이 질문을 던졌다.
“단장이 세계수라는 게, 무슨 의미예요?”
질문을 들은 칼서스가 대신 입을 열었다.
“기존의 세계수는 인간들이 기둥을 자르고, 뿌리를 불태워 시들어 버렸다. 그 사실은 알고 있나?”
“알아요. 그런데 당신한테 물어본 거 아니니까 입 좀 다물고 있어요!”
린이 당차게 대꾸하자, 칼서스가 가소롭다는 듯 웃음을 터트리며 재차 질문을 던졌다.
“그렇다면 가일을 치료해 준 것이 나라는 사실도 알고 있나?”
“……네?”
질문을 들은 린이 눈을 휘둥그레 뜨며 되물었다.
“누가 누굴 치료했다고요?”
“내가, 세계수의 열매를 이용해, 가일을 치료했다.”
“……언제요?”
“너희가 막 태어났을 즈음 벌어진 일이었지.”
담담하게 대답한 칼서스가 손을 뻗어 내 어깨를 끌어당겼다. 나는 저항하지 않고 칼서스의 품으로 끌려가 폭 끌어안겼다.
칼서스가 계속해서 설명했다.
“그리고 가일을 치료할 때 사용한 열매가 해일의 몸속에서 발아한 모양이야.”
“어, 어떻게 가일 단장의 몸에서 해일 단장의 몸으로 계승됐고, 어떻게 발아한 거예요? 대체 왜요?”
“그 이유는 나도 모른다. 그저 그렇게 되었다는 결론만 알고 있지.”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내가 한마디를 툭 던졌다.
“세계수는 용을 사랑했어요.”
그 말에 내 쪽으로 시선이 몰려들었다. 나는 시선을 피해 바닥을 보며, 머릿속에 떠오른 정답을 읊었다.
“그러니 용을 증오하고, 황제를 숭상한 가일의 몸에서는 발아하지 못한 거예요.”
그 이야기를 들은 린이 검지를 치켜세워 나를 가리켰다.
“그럼, 단장……. 단장은…….”
“나는 칼서스 데포트를 사랑해. 사랑해서 함께 있는 거야.”
그 말을 입에 올리고 나니, 어쩐지 목이 간질간질했다.
나는 푸스스 웃음을 터트리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조금 종합적인 의미로.”
그 말을 들은 칼서스가 한숨을 터트리며 중얼거렸다.
“이걸 발전했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제자리걸음이라고 해야 할지.”
“무슨 뜻이에요?”
“몰라도 된다.”
“매번 그 말만 하지 말고…… 아, 간지러워요!”
칼서스는 내 말에 순순히 대답하는 대신, 고개를 숙여 내게 뺨을 비비적거리고 귓바퀴에 입을 맞추는 둥 아양을 떨어 댔다.
“간지럽다니까요…….”
“나도 너를 사랑해.”
“저도 알고 있어요. 당신은 내 용인 걸.”
“전혀 모르는 것 같은데?”
“알고 있다니까요?”
그 말을 들은 린과 오르가가 경악하며 나와 칼서스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어…… 어떻게…….”
“우리 단장을 어떻게 꼬드긴 거야! 이 빌어먹을 도마뱀 자식아!”
나는 린의 말을 듣자마자 반사적으로 호통을 쳤다.
“내 용한테 욕하지 마!”
“단장님은 빠져 계세요!”
“내 용한테 욕을 하는데 내가 어떻게 빠져!”
린과 내가 툭탁거리기 시작하자, 오르가가 다급하게 우리 둘 사이에 끼어들며 소리쳤다.
“다들 진정 좀 해 봐요! 순서가 이상하다는 생각은 안 들어요?!”
“…….”
“…….”
순서? 무슨 순서? 싸우는 데에 대체 무슨 순서가 필요하다는 거야?
린도 마침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어리둥절한 얼굴로 오르가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오르가가 한숨을 푹 내쉬고는 손가락을 꼽아 가며 설명했다.
“어쩌다가 단장님이 세계수임을 자각했는지, 애초에 단장님이 기억을 잃었던 게 맞는지, 어떻게 칼서스 데포트가 다비 카스타의 신분으로 연회장에 왔었는지 해명하는 게 우선 아니에요?!”
“너 똑똑하다.”
“확실히 그 순서가 맞네.”
“헛소리하지 말고 대답이나 해 주세요!”
나는 오르가의 호통 소리에, 고개를 갸우뚱 기울이며 대답했다.
“……감으로 알았는데?”
“본능적으로 깨달았지.”
오르가는 잠시 분통이 터져 죽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릴라처럼 스스로의 가슴팍을 주먹으로 쿵쿵 두드렸다.
“……그건 됐고! 그다음은요?”
나는 오르가가 던졌던 질문을 곱씹어 보며 대답했다.
“기억을 잃은 것도 맞아. 일부를 제외하곤 기억이 없어. 아마 세계수의 씨앗이 발아하면서 생긴 부작용 같아.”
“세상에…….”
뭐, 사실은 빙의한 거라서 기억이 없는 거지만, 이렇게 말하면 안 믿을 테니까……. 이 정도 거짓말은 좀 해도 되겠지.
나는 연이어서 오르가의 마지막 질문에 대답했다.
“그리고 칼서스가 어떻게 다비 카스타의 신분을 얻었는지는 나도 몰라. 칼서스가 알아서 한 거라서.”
나는 그렇게 말한 뒤 칼서스를 올려다보았다. 칼서스는 호박색의 눈으로 날 빤히 내려다보며 대답했다.
“흰 머리와 노란 눈만 있으면 카스타 가의 자식이 될 수 있더군.”
“…….”
“나 말고도 그 이유로 찾아온 자식이 서른이 넘어서 그렇다는 모양이야.”
황당무계한 대답을 들은 오르가는 결국 정신을 놓은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뭐 이런 경우가 다 있어…….”
태그가 그런 오르가의 곁으로 다가가 등을 팡팡 두드려 주더니, 이내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히야, 갑자기 찾아와서는 용의 사체를 보여 달라고 하지 않나, 마나 하트를 회수하겠단 소리를 하지 않나……. 거기다 한 놈은 진짜 용이고 다른 한 놈은 세계수라고?”
“그렇게 됐네요.”
“그리고 드워프들이 추궁당할 걸 생각해서 건물을 저 꼴로 만들어 놓은 거고?”
“맞아요.”
내가 웃으며 답하자, 태그가 오르가의 등을 퍽퍽 두드리며 한 번 더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태그에게 얻어맞은 오르가는 아악 비명을 내지르며 린의 등 뒤로 도망쳤다.
“내 살다 살다 별꼴을 다 보겠네. 이걸 대범하다고 해야 해, 아니면 미쳤다고 해야 해?”
“둘 다 맞다. 난 미쳤고 해일은 대범하지.”
“뻔뻔하다고 하는 게 맞겠군.”
“그것도 맞다. 부정할 생각 없어.”
이 새끼야, 너 욕먹은 거거든? 뭘 또 인정을 하고 있어?
나는 황당해하며 말했다.
“칼서스, 뻔뻔한 것도 좋지만 수치라는 걸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
“눈치 없는 너보다는 낫지.”
“내가 어딜 봐서 눈치가 없어요!”
“이런 점이 눈치가 없다는 거다.”
말을 마친 칼서스가 고개를 숙여서 내 이마에 가볍게 키스를 남겼다. 키스를 받은 나는 미간을 찌푸린 채로 짜증을 냈다.
“또 애교로 넘어갈 셈인 거죠!”
“당연하지.”
“내가 넘어갈 줄 알아요?!”
“응.”
칼서스는 당당하게 고개를 끄덕이곤, 다시 고개를 숙여 내 이마에 키스를 남겼다. 그러고는 고개를 떼고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바라보기까지 했다.
“…….”
“…….”
한참이나 내 눈을 응시하던 칼서스가 말했다.
“어때, 넘어왔지?”
“……씨이.”
내가 얼굴을 벌겋게 물들이며 씩씩거리자, 그 꼴을 바라보던 린이 손을 들어 오르가의 팔뚝을 툭툭 두드렸다.
“오르가.”
“어.”
“나 구역질 나려고 해. 가서 양동이 좀 가져와…….”
“마침 나도 그 생각을 하고 있었어.”
“양동이는 저 마구간 앞에 있다.”
“감사합니다. 오웨엑…….”
태그가 헛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하아, 난리가 이런 난리가 없군. 드워프 인생 70년 차에 이런 꼴을 다 보게 될 줄이야…….”
남들이 구역질을 하거나 말거나, 칼서스는 여전히 예쁜 척을 하며 내게 아양을 부렸다. 나는 품을 파고드는 칼서스를 받아 주며 고개를 돌려 태그에게 사과를 건넸다.
“그, 정말 미안하게 됐습니다……. 칼서스가 너무 예뻐서 어쩔 수가 없었어요…….”
“자네는 입 좀 다물게. 나까지 쏠릴 것 같으니까.”
“…….”
나는 결국 침울한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