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친 드래곤의 항우울제가 되었다-12화 (12/101)

12.

붉은 수사자 (2)

“너무 달아요.”

나는 패스츄리처럼 겹겹이 층이 진 케이크를 포크로 쿡 찔렀다. 그러자 ‘바자작’ 하는 소리가 나며 케이크의 겉면이 흐트러졌다.

“달아서 혀가 녹을 것 같아요. 왜 이렇게 달게 만들었어요?”

내가 불만이 가득한 목소리로 묻자, 칼서스가 도리어 당황한 것처럼 대답했다.

“귀족들은 단 걸 좋아하지 않던가?”

“왜 다들 단 걸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게 부의 상징이니까.”

“…….”

하긴, 중세에서 전근대 정도의 생활 양식을 보이고 있는 국가에서 설탕이란 곧 먹을 수 있는 금이나 마찬가지겠지.

‘사탕수수는 온열대 지방에서만 자라니까, 설탕의 공급이 한정되어 있어서 과거에는 부를 과시하는 용도로 쓰이곤 했다고 듣긴 했는데…….’

해일의 시선이 테이블 위를 흘긋 훑었다.

‘그래도 이건 너무한 거 아닌가?’

터키(튀르키예)의 전통 디저트인 바클라바처럼 생긴 케이크에 메이플 시럽을 잔뜩 적셔 놓고, 거기에 곁들이는 게 설탕을 넣은 홍차라니.

‘한국인에게 너무 가혹한 차림이잖아…….’

한국인은 디저트에 보내는 최고의 찬사가 ‘적당히 달아서 속이 메슥거리지 않아요.’란 말이야.

‘하여간 귀족 놈들이란……. 이런 거 먹어 봤자 몸에 좋을 거 하나 없고 배에 기름이나 낄 뿐인데.’

이래서 소설 속에 등장하는 남작이나 자작들이 하나같이 ‘배가 불룩하고, 얼굴에 기름기가 좔좔 흐른다’는 묘사가 붙는 거구나.

‘이렇게 단 음식만 처먹고 살면 누구나 그렇게 되겠지.’

나는 포크를 내려놓고 새로운 잔에 갓 우린 홍차를 따랐다. 아직 설탕을 넣지 않은 홍차였다.

“저는 덜 단 음식이 좋아요. 거의 안 달면 더 좋고.”

“특이하군.”

칼서스는 자연스럽게 내가 내려 둔 포크를 집어 들더니, 남은 케이크를 잘라 입으로 가져갔다. 혀가 아릴 만큼 달짝지근할 텐데, 칼서스는 아무런 표정의 변화도 없이 케이크를 우물우물 씹었다.

‘안…… 달아? 혹시 혀에 문제 있어?’

그렇게 먹어도 용은 당뇨가 안 오니? 건강 괜찮아?

나는 경악과 걱정이 반반 섞인 표정으로 멀거니 칼서스를 바라보았다. 칼서스는 케이크 한 조각을 두세 입만에 해치우더니, 다시 나를 바라보았다.

“귀족인 듯하면서도 정작 귀족들이 즐기는 건 좋아하지 않다니……. 그대, 정말 귀족이 맞나?”

……그, 아니긴 아니지. 정신은 서민이고 몸뚱이는 귀족이야…….

나는 태연한 척, 우아하게 대답했다.

“귀족이기 전에 기사이니까요.”

“아아, 하긴……. 그 가일의 자식이니, 특별하게 자랄 수밖에 없었나.”

‘그’ 가일?

꼭 가일에 대해서 오래 알고 지낸 사람처럼 말하네.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질문을 던졌다.

“제 아버지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나요?”

“그걸 지금 용에게 묻는 건가?”

“아…….”

가일은 용을 여덟이나 죽인 기사였지, 참.

‘너무 평화롭게 지내고 있어서 잊어버렸네…….’

나는 어색하게 눈을 굴리며 칼서스의 시선을 피했다. 칼서스는 그 모습을 보고 재미있다는 듯 웃더니, 설탕을 넣은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보는 내가 속이 메슥거리는데, 정작 칼서스는 덤덤하기만 했다.

“가일이 네게 그런 이야기는 안 해 주던가?”

“사사로운 이야기를 나눌 사이는 아니었습니다.”

최대한 담담하게 되받아치자, 칼서스가 깨달음을 얻은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가. 역시 그놈답군.”

칼서스는 남은 차마저 한입에 털어 넣어 삼키더니, 나와 눈을 맞추며 말했다.

“네가 나와 지내게 되었으니, 인간과 용의 과거에 대해서 설명을 해 줘야겠지.”

“아무래도 그래야겠죠. 제가 알고 있는 것보다는 칼서스가 알고 있는 게 더 많을 테니까…….”

대답을 들은 칼서스는 만족스럽다는 듯 웃더니, 이내 고개를 숙여 내 입술을 탐하려 들었다. 은은하고 달큼한 향이 나는 입술이 내 입술 위에 부드럽게 머물렀다.

나는 당황스러워하며 고개를 돌렸다.

“으읍, 뭐, 뭐 하는 거예요.”

“울화가 치밀기 전에 미리 도움을 받는 게지. 너와 하는 키스는 정말 황홀하니까.”

“일부러 남이 들으면 오해할 말만 골라서 하는 거죠?!”

“그걸 이제야 알았나?”

칼서스는 태연하게 웃더니, 다시금 고개를 내밀어 나와 입술을 겹쳤다. 곧 겹쳐진 입술이 벌어지더니, 입 안으로 뜨거운 숨결과 함께 혀가 밀려들어 왔다. 밀려들어 온 혀는 입 안을 점령하고 이곳저곳을 부드럽게 헤집어 댔다.

들척지근하면서도 매캐한 메이플 시럽 맛이 났다.

몇 번 혀를 섞고, 입술을 빨아들이자 거북한 감정이 가슴 가득 차올랐다. 나는 견디지 못하고 주먹으로 칼서스의 어깨를 퍽퍽 두들겼다. 그는 그제야 미적미적 고개를 떼어 내며 미소 지었다.

“음, 좋아. 그대는 언제나 놀리는 보람이 있군.”

“성격 나쁜 용 같으니.”

“칭찬 고맙네.”

시럽을 들이부은 것 같은 맛 때문에 혀가 아릿할 지경이었다.

‘달아, 달아서 혀가 녹을 것 같아! 대체 저런 걸 어떻게 먹은 거야!’

나는 입 안에 남은 강한 단맛에 진저리를 치며 쌉쌀한 홍차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칼서스는 내가 홍차 한 잔을 비우기를 기다렸다가 입을 열었다.

“20년 전까지만 해도 인간은 용을 증오하지 않았고, 용은 인간을 경멸하지 않았다. 어울려 살아간다고 말할 만큼 가깝지는 않았지만, 이웃이라고 에둘러 표현할 만큼은 되었어. 참 모호한 관계였지.”

이야기를 하는 칼서스의 낯빛은 온화했다. 어두운 과거를 입에 올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칼서스가 손끝으로 내 콧날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런 인간이 변절하기 시작한 건, 그대가 태어나기 한두 해 전이었을 거야.”

그의 목소리는 시를 읊는 것처럼 평온해서, 도리어 살아 있는 존재가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그 기묘함에 가슴 한구석이 갑갑해졌다.

“전쟁에 나갔다 돌아온 기사가 죽어 가고 있다. 제발 좀 도와 달라. 그 한마디를 넘겨 보내지 못한 용 하나가 세계수의 열매를 이용해 기사를 치료해 주었지.”

“……그건 인간들이 용에게 감사해야 하는 일 아닌가요?”

“그렇지.”

칼서스의 손끝이 어느새 아래쪽으로 내려와 내 입술에 가볍게 닿았다가 떨어졌다. 야릇한 동작이지만, 칼서스의 표정은 건조하기 짝이 없었다.

칼서스가 낮은 목소리로 조곤조곤 설명했다.

“하지만 인간들은 그걸 빌미로 세계수를 호시탐탐 노리기 시작했다. 용의 마나 코어를 치료할 수 있는 힘이라면, 인간쯤이야 너끈하게 치료할 수 있으리라 믿은 게지.”

그 말을 듣자, 머리가 띵해졌다.

‘아니…… 원작에서 서술됐던 거랑 완전히 정반대잖아?’

원작에서는 용이 세계수를 독점하고, 세계수에 접근하려 하는 인간들을 다 죽였다고 묘사되었었는데…….

나는 당황스러워하며 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원작의 설정을 다 꿰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아는 것과는 전혀 다른 현실이 눈앞에 드러난 탓이었다.

‘작중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체로 인간이었고, 서술자는 원작의 해일이었어.’

그렇기에 나는 지금까지…… 원작의 해일이 이해하고, 습득하고 있던 걸로 이 세계를 이해하고 있었는데…….

‘용은 악역이 아니었고, 인간은 정의롭지 않았다.’

그 사실에 뒤통수를 망치로 얻어맞은 듯한 감각이 느껴졌다. 나는 멍하니 머리를 굴리다가, 문득 떠오른 질문 하나를 입 밖으로 내뱉었다.

“용이 치료해 주었다던 그 기사가 혹시……?”

우물쭈물하고 있는 나를 본 칼서스가 부드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 그 기사가 젊은 날의 가일이었다.”

“…….”

“가일은 자신에게 사용했던 신묘한 영약을 이용해 선대 황제였던 데르반 아르테스의 병을 고쳐 달라 요구했다. 하지만 우리로서도 더는 방법이 없었어. 세계수는 한 번에 하나의 열매만 맺기 때문이었지.”

그러면…….

가일은 용에게 목숨을 빚진 주제에, 용 살해자가 되었다는 건가?

‘그럼 내가 읽은 소설은 뭐야?’

무섭지만, 동시에 해일의 자랑이기도 했던 가일은 대체 뭐란 말인가.

이전에 보았던 린의 분노는 어디서부터 나오는 거냔 말이야.

용으로 인해 가족을 잃었다고 소리 지르던 소녀가, 사실은 가해자 중 한 명이었단 말이야?

칼서스는 손을 내밀어 혼란스러워하는 내 뺨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허나 그가 내뱉는 말들은 상냥하고 달콤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하지만 가일은 그 사실을 설명해 줘도 이해하려 하지 않았고, 세계수의 수액이라도 달라 청했지.”

“……용들이 그 제안을 거절했나요?”

“그래. 한 번 제안을 받아들이게 된다면 인간들은 계속해서 수액을 요구하지 않겠나. 하지만 세계수에 비해 인간은 수가 너무 많아, 그들을 위해 수액을 짜내다간 세계수가 버틸 수 없을 것이 자명했다. 해서 이번 선에서 잘라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칼서스는 잠시 침묵하더니, 숨을 들이켰다가 깊게 내쉬었다. 그리고 침착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리고 그 결과가 이것이지.”

“…….”

“용은 세계수를 빼앗겼고, 인간들은 세계수를 빼앗아 간 주제에 용을 원망하기 시작했다.”

그려 놓은 그림처럼 아름다운 손가락이 내 뒷덜미를 끌어당겼다.

“용이 살려 준 목숨이 용의 목숨을 끊어 놓은 게지.”

“…….”

“너는 그런 자의 아들이다.”

칼서스는 말을 끝맺고는,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내밀어 나와 입술을 겹쳤다. 나는 거절할 생각도 하지 못하고 그의 흐름에 휩쓸려 가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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