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친 드래곤의 항우울제가 되었다-3화 (3/101)

3.

우울증 드래곤 (1)

구두 계약을 마친 뒤, 광룡은 내게 멀리 떨어져 있으라고 말했다. 나는 저놈이 어련히 뭘 하겠거니, 생각하며 둥지의 가장 구석으로 물러났다.

광룡은 내가 충분히 멀리 떨어진 걸 확인하고는, 이내 고개를 쳐들고 알아들을 수 없는 단어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노래하듯 중얼거려지는 단어들에 맞춰, 공중으로 부연 빛 가루가 날아올랐다.

‘저게 아마도 작중에서 묘사된 <마나>라는 거겠지.’

소드 마스터가 사용하면 오러라고 불리고, 마법사가 사용하면 마나라고 불리게 되는 그것. 작중에서도 여러 번 묘사된 적이 있었다.

‘해일의 아버지인 가일 트레클리프 서도 오러 유저라고 들었고.’

가일 트레클리프 서.

여덟의 용, 그리고 네 개의 소국을 굴복시킨 인간이자 전쟁 영웅의 칭호를 하사받은 자.

도리어 오러 유저가 아니면 의아해야 할 정도로 대단한 인물이었다.

‘해일도 그런 아버지의 아래에서 혹독한 수련을 견뎠다고 했지?’

그 과정에서 성격이 좀 망가지긴 했어도, 최연소의 나이로 오러 서클을 얻었다고 했으니……. 이 몸 안에도 엄청난 양의 마나가 잠들어 있겠구나.

‘나도 언젠가는 마나를 운용할 수 있게 되려나?’

그렇게 잡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눈앞을 꽉 채우던 광룡의 형태가 작아졌다. 나는 그제야 생각을 지우고 반대편에 선 남자를 확인했다.

“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뾰족한 귀였다.

‘인간이 아니라 엘프로 변했구나.’

피부가 하얀 엘프의 뺨 위로 군데군데 백금발이 섞인 흑발이 흘러내렸다.

‘새치 같긴 한데, 그게 또 묘하게 신비롭네.’

그리고 아까는 징그럽기만 했던 샛노란 파충류의 눈동자였는데……. 긴 속눈썹과 새침한 눈매를 가진 엘프의 눈매 사이에 박혀 있으니 세밀하게 깎아 놓은 보석같이 아름다웠다.

‘미쳤다…….’

저게 정말 나처럼 폐로 호흡하는 생명체의 아름다움이 맞나? CG 아니야?

키는 또 왜 저렇게 커? 백구십도 넘겠다.

‘뼈대가 어떻게 저럴 수 있지? 어깨는 넓고 허리는 잘록한 게, 완전 조각상인데…….’

나는 완전히 넋을 잃고 광룡을 바라보았다. 내가 정신을 못 차리는 와중에도 광룡은 작아진 몸이 낯선지 뾰족한 귀를 만져 보거나, 손을 굼뜨게 쥐락펴락하며 감각에 적응하고 있었다.

그는 그렇게 감각을 조정한 뒤에야 내 바로 앞으로 다가왔다.

‘어? 그런데 가까이서 보니까 그렇게 키 차이가 심하지는 않네?’

작중에서 묘사된 적만 없지, 해일 트레클리프 서도 키가 제법 큰 편이었던 건가?

‘하긴, 아버지인 가일이 거한으로 묘사됐었으니까……. 그 유전자를 받았으면 해일도 꽤 큰 편이긴 하겠네.’

나는 멋대로 납득하며 가까이로 다가온 광룡, 아니 칼서스와 눈을 맞췄다. 시선이 맞아떨어지자, 칼서스가 기다렸다는 듯이 질문했다.

“이제 괜찮은가?”

“네……?”

“아까 네게서 두려움의 냄새가 났다.”

……개들은 인간의 감정을 냄새로 알아챈다던데.

용들도 그런 능력이 있나?

‘호르몬 냄새를 맡을 수 있을 정도라니…… 한국으로 데려가면 전국의 마약 탐지견 다 은퇴시켜도 되겠어.’

나는 스스로의 생각에 웃음이 터져서, 작게 키득거리며 대답했다.

“그럼 겁을 안 먹게 생겼나요? 눈앞에 덩치 큰 용이 버티고 있는데.”

“솔직하군.”

내 웃음 때문인지, 광룡도 푸스스 흩어지는 듯한 웃음소리를 냈다.

약간 까칠해 보이는 엘프가 미소를 짓자, 세상이 한층 더 밝아진 것처럼 느껴졌다. 이 얼굴로 활짝 웃으면서 강남대로를 걷는다면 분명 S모 엔터테인먼트 회사 직원이 게거품을 물고 달려와서 명함을 건넸겠지.

‘시력이 좋아지는 느낌이야…….’

나는 헤죽헤죽 웃으며 칼서스의 얼굴을 구경하다가, 문득 떠오른 질문을 툭 내뱉었다.

“그런데, 용은 원래 그렇게 모습을 바꾸는 게 자유로운가요? 이게 그 폴리모프인지 뭔지 하는 건가?”

“폴리모프에 대한 걸 알고 있나.”

나는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칼서스가 ‘흐음’ 하고 가볍게 비음을 흘렸다.

“용에 대한 건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고 생각했거늘, 마탑이 다른 용들의 시체를 제법 조사한 모양이야.”

“…….”

“네 말대로 이건 폴리모프가 맞다.”

섬뜩한 말이었지만, 정작 그런 말을 내뱉고 있는 칼서스는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하긴, 주변 친구들이 씨몰살을 당했으니 넌더리가 나다 못해 익숙해질 만도 하겠지.’

그래도 트라우마는 남았을 텐데, 제법 이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미치다 못해 한 바퀴 돌아서 어정쩡한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다고 해야 할까…….

내가 그런 고민을 하고 있을 때였다.

나를 빤히 내려다보던 칼서스가 아무런 예고도 없이 공중에 손을 한 번 휘둘렀다.

-사아악!

그러자 베일이 걷히는 것만 같은 소리가 주변을 울리더니, 한순간에 둥지의 풍경이 180도 뒤바뀌었다. 순식간에 둥지는 베르사유의 고성처럼, 아름답고 고풍스러운 느낌의 성으로 변해 있었다.

‘미친, 이것도 폴리모프 비슷한 마법인가?’

내 시선이 자연스럽게 고성에 난 널따란 창문으로 향했다. 그 너머에는 밤이 내려앉은 정원의 아름다운 정경이 펼쳐져 있었다.

“와…….”

저절로 감탄사가 나오는 모습이었다.

내가 놀란 얼굴로 여기저기를 둘러보고 있자, 광룡이 흐릿하게 웃으며 말했다.

“인간과 지내려면 둥지보다는 이런 성이 나을 것 같아서 바꿔 보았다.”

“그럼 폴리모프를 한 것도…….”

“너와 같은 공간에서 생활해야 하기 때문이지.”

와, 지금 너 나 배려해 준 거야?

고마워! 너 좀 미치긴 했어도 착한 놈이구나!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 규모로 능력을 쓰는 건 꽤 힘들 텐데……. 그걸 바로바로 바꿔 주네. 역시 용족이 능력이 좋긴 좋아.’

능력이 좋다.

딱 거기까지 생각한 순간이었다.

‘어……? 그럼 능력을 쓴 거잖아.’

능력을 쓸 때마다 세계수로 돌아가 몸을 정비해야 한다며. 그렇다면 지금 바로 가이딩인지 뭔지를 해야 하는 거 아닌가?

나는 성의 창밖을 구경하다 말고 칼서스를 돌아보았다. 칼서스는 ‘무슨 할 말이라도 있느냐’는 표정으로 나와 시선을 맞췄다.

“칼서스 씨.”

“음?”

“그러고 보니, 그 가이딩이라는 건 어떻게 하는 거예요?”

칼서스는 그 말을 듣고 한 번 더 ‘흐음’ 하는 소리를 냈다. 아무래도 이게 그의 버릇인 모양이었다.

그가 나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글쎄? 보통은 수액을 마시며 휴식을 취했다만, 인간과는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구나.”

아…… 세계수는 거대한 나무였지.

그러다 보니 용들이 가지 위에 올라가 쉬거나, 세계수에서 흘러나온 수액을 마시면서 회복한다고 했었다.

인간들이 세계수를 베었던 것도, 아마 그 수액을 바랐던 것일 터다.

‘그에 비해 나는 인간이니까, 가이딩하는 방식도 거기에 맞춰서 달라지겠네.’

나는 나무가 아니라 수액도 안 나오고, 용을 업을 수도 없으니까.

나는 곰곰이 생각해 보다가, 이내 가만히 서 있던 칼서스를 향해서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정해일’과는 다른, 굳은살이 군데군데 박인 하얀 손이 시야에 들어왔다.

“우선…….”

묘하게 불쾌한 기분이 들어서, 목소리 끝이 갈라졌다.

나는 급히 헛기침을 해 목소리를 가다듬고, 다시 입을 열었다.

“큼, 우선 손이라도 잡아 볼까요?”

칼서스가 웃으며 대답했다.

“좋지.”

그러고는 망설임 없이 제 손을 내밀었다. 하얗고, 길쭉하고, 마디가 약간 불거진 예쁜 손이었다.

‘정말 손을 잡는 것만으로 가이딩이 될까?’

나는 반신반의하며 칼서스의 손을 맞잡았다.

칼서스의 손은 약간 뜨거운 체온을 가지고 있었고…….

“윽……!”

……아주 시끄러웠다.

손을 잡은 순간, 머리가 터질 것 같은 소음이 밀려들었다. 비유하자면, 락 페스티벌이 열린 도시의 번화가 한가운데에 떨어진 햄스터 같은 심정이랄까……. 아니면 우퍼 스피커 속의 부품이 된 기분이랄까…….

기분이 나쁠 만치 시끄럽고, 하염없이 불쾌한 목소리들이 머릿속을 헤집었다.

‘말소리 때문에 몸이 둥둥 울리는 기분이야…….’

고작 손을 잡은 것뿐인데, 이렇게까지 X같은 기분이 들 수 있다니.

판타지 세계관이라서 그런가, 벌어지는 일이 다 버라이어티해서 따라가기 벅찰 지경이었다.

‘토할 것 같아……. 하지만 가이딩을 못 받으면 칼서스가 죽으니까 참아야만 하는데…….’

내 평생직장! 내 건강한 몸!

아니, 따지자면 내 건 아니지만!

어쨌든 이제부터 내가 누리고 향유할 것들임에는 분명했다. 나는 미래의 자산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구역질이 나는 감각을 견뎠다.

그렇게 거의 한계점에 다다른 순간이었다.

-죽고 싶다. 먼저 떠나간 형제들처럼, 나도 한 줌 가루가 되어 자유로워지고 싶구나.

선명하게 들려온 한 줄기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그럴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칼서스의 충동이 내게 옮아 온 것이다.

“우읍……!”

그를 자각하는 동시에 나는 놀라서 반사적으로 칼서스의 손을 뿌리쳐 버렸다.

“아…….”

그리고 그 직후부터, 홍수가 난 것처럼 뺨을 타고 눈물이 줄줄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내 감정이 아닌데, 내가 죽고 싶었던 게 아닌데.

그런데도 칼서스의 마음과 생각에 동조해 버린 탓이었다.

“이런…….”

그 모습을 차분하게 바라보던 칼서스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인간이 감당하기엔 꽤나 괴로운 모양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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