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친 드래곤의 항우울제가 되었다-2화 (2/101)

2.

뭐 이런 거지 같은 경우가 다 있어? (2)

광룡이 시커먼 아가리를 벌렸다. 쩍 하고 벌어진 파충류의 주둥이에서는 알 수 없는 들척지근한 향기가 났다.

‘흐이익, 미친, 미친!’

뱀의 그것을 닮은, 끝이 갈라진 혓바닥이 길게 뻗어 나와 뺨을 핥았다. 광룡은 이대로 나를 삼켜 버릴 작정인 듯했다.

“으읏!”

파충류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뜨거운 혀가 뺨을 훑자, 소름이 돋음과 동시에 잡아먹힌다는 실감이 들었다.

‘으아악, 씨발. 엄마! 살려 줘!’

죽는다는 생각이 들자, 머릿속으로 주마등이 스쳐 지나갔다.

별로 넉넉하지 않던 형편, 내가 학생일 때 사고로 타계하신 부모님……, 난치병에 걸린 몸까지.

그렇기에 병에 걸렸는데도 속 편히 치료받지 못하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일을 하면서 투병하던 과거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떠올리고 보니 별로 그리워할 만한 것도 없었다.

‘돌이켜 보니 차라리 잠깐이나마 건강한 신체에 빙의한 게 행운인 수준 같은데…….’

내가 딴생각을 하고 있을 즈음이었다.

[음……?]

우울증 드래곤.

아니, 광룡이 갑작스레 혀를 집어넣더니, 커다란 두 눈으로 나를 빤히 내려다보았다. 그 의미 모를 열렬한 시선에 나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광룡을 올려다보았다.

‘맛없나? 맛없어서 안 먹으려는 건가?’

그렇다면 불쌍해 보여서라도…… 나를 이대로 돌려보내 줄 수도 있지 않을까?

거기까지 생각이 닿고 나니, 이 해일이라는 캐릭터가 굉장한 미남으로 묘사되었던 게 떠올랐다.

‘아버지인 가일은 붉은 머리에 붉은 눈을 가진, 엄청나게 우락부락한 쾌남이었는데 해일은 곱상한 미남으로 소개됐었지.’

얼마나 아버지를 안 닮았는지, 가일이 아내의 외도를 의심하며 신전에 친자 확인을 의뢰했다는 내용이 작중에 실려 있었다.

뭐, 그 뒤 가일은 신전을 통해 친자가 맞다는 서류를 받은 뒤 아내에게 이혼 소송을 당했다.

‘하긴, 그래도 싸.’

안 그래도 전쟁광인 탓에 일 년의 반을 전쟁터에서 보내는 데다가, 허구한 날 주변의 소국을 더 정복해서 영토를 늘려야 한다는 헛소리나 지껄이던 놈이다. 한국에서 태어났으면 <히틀러 자서전 잘못 처먹고 미쳐 버린 놈>이라고 손가락질당하는 꼴을 못 면했을 텐데.

여기가 판타지 속 군주제 국가이고, 가일이 귀족 출신의 기사이니 좀 대우를 받은 거지……. 대한민국에서 그랬으면 1호선 광인 취급이나 받으면서 커뮤니티에서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었을 것이다.

‘결혼해 준 와이프 집 담벼락에도 절을 해야 할 놈이 감히 제 아들이 맞느냐고 친자 감별을 요구했으니, 이혼당할 만도 하다…….’

와이프가 와인에 독 안 탄 걸 다행으로 여겨라, 개새끼야.

‘아니, 이게 아니지.’

나는 급히 생각을 마치고 눈앞의 광룡을 흘긋 올려다보았다.

광룡은 잠시 눈이 마주친 것뿐인데도 오금이 저릴 만치 징그러웠다.

‘으악, 씨발. 파충류 눈 존나 싫어!’

하지만 살려면 뭔 짓을 못 하겠는가.

나는 광룡의 번들거리는 눈알을 똑바로 바라보며, 일부러 처량하고 불쌍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제발 불쌍해서 봐준다고 말해 줘!’

광룡은 그런 날 빤히 내려다보더니, 이내 내가 바라던 말과 동떨어진 답을 내뱉었다.

[표정을 보니 그대도 느끼는 바가 있는 모양이지.]

……느끼긴 뭘 느껴, 이 새끼야.

생명의 위협밖에 못 느꼈다.

‘이보세요. 저 불쌍해 보이잖아요. 제발 자비 좀 베풀어 주세요. 저는 진짜 해일이 아니라서 당신을 슥삭 하고 베어 버릴 수도 없단 말이에요.’

나는 다시 필사적으로 낑낑거리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자 광룡이 슬그머니 주둥이를 내밀더니, 내 뺨에 고개를 비비적거리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다른 목적이 있던 게 아니라, 내게 끌려서 찾아왔나 보군.]

끌려?

그래, 이쪽 세상으로 끌려오긴 했지. 그런데 말을 왜 그렇게 하니, 듣는 사람 오해하게.

‘누가 들으면 내가 너한테 프러포즈하러 찾아온 걸로 오해하겠다, 야.’

내가 불쾌함에 미간을 찌푸리고 있을 즈음, 광룡이 한 번 더 혀를 내밀어 내 뺨을 핥았다. 축축하고 뜨거운 감촉에 소름이 돋아서 미칠 것만 같았다.

‘작작 해! 나는 간식이 아니라고!’

내가 얼굴을 일그러트리고 ‘윽’ 소리를 낼 무렵, 광룡이 속삭이듯이 내게 말을 걸었다.

[세계수와 비슷한 느낌이 나.]

세계수?

세계수와 비슷한 느낌이 난다니…….

‘아, 맞다. 작중에서 용들이 강한 능력을 계속해서 쓸 수 있는 이유가 세계수 덕분이라고 했지.’

용이 사용하는 마법은 그 존재만으로 경외를 살 만큼 강하다. 하지만 발산하는 출력이 강한 만큼, 당연히 반작용 역시 컸는데 그 영향을 받는 게 바로 마나 하트였다.

그렇기에 용들은 능력을 사용하는 만큼 마나 하트에 부담이 쌓인다 했다.

‘그리고 그렇게 쌓인 부하는 마나 하트를 비롯해서 용들의 정신까지 망가트린다고 하던가.’

그래서 세상에 존재하는 아홉 용들은 능력을 한 번 사용할 때마다 세계수로 되돌아가 몸을 정비했다. 그리고 그걸 <광룡 살해자> 내에서는 <가이딩>이라고 불렀다.

‘그렇기에 인간이 엘릭서를 만들기 위해서 세계수를 베어 낸 이후로, 용들이 미쳐 버린 거라고 했지.’

작중에서 무어라고 더 설명했던 것 같은데, 뭐라고 했었더라?

‘전쟁으로 죽어 가던 병사들을 살리고 싶으니, 세계수의 힘을 조금만 빌려 달라고 했던가?’

하지만 용들이 그 제안을 거절하고, 도리어 세계수에 접근하는 인간들을 죽였다고 했지.

‘그래서 인간들이 앙심을 품고 용들에게 보복할 셈으로 세계수를 베어 버린 거고…….’

이제야 기억이 나네. 순간 소설 허투루 읽은 줄 알고 당황했잖아.

원래 이런 데 떨어지면 소설 내용이 술술 기억나야 던전 같은 것도 쉽게 클리어하고 그런 법인데, 작중에서 제일 중요하게 다뤄졌던 세계수에 관한 사건을 기억 못 하는 줄 알고…….

‘……어? 잠깐, 세계수라고?’

지금 이 몸에서 세계수와 비슷한 느낌이 든다는 거야?

……그럼 이 몸으로 드래곤을 가이딩할 수 있다는 뜻 아닌가?

‘잘하면 진짜 살 수 있겠는데?’

물론 살아 있어 봤자 한평생 용의 둥지에 묶여 사는 꼴이겠지만, 그건 다른 말로 치환하면 ‘평생직장’이 아니던가?

‘게다가 이쪽의 해일은 건강하잖아.’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불우하고 병약하던 정해일과는 달랐다.

지금 이 몸으로 살 수만 있다면…….

‘자가 면역 질환’으로 백혈구가 체세포를 공격해 대서, 살아 있지만, 동시에 천천히 죽어 가는 거나 마찬가지인.

그런 고통스러운 삶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거잖아.

‘그러니까…… 나 이제 건강한 몸으로 살 수 있는 거지?’

헐, 나 이제 응급실 안 가도 돼?

이제 수술받을 필요도 없고, 약도 안 먹어도 되는 거야? 약 부작용으로 비몽사몽 하게 출근할 필요도 없는 거지?

‘개이득?’

오히려 좋은데?

광룡에게 가이딩만 계속해 주면, 이 건강한 몸을 언제까지고 쓸 수 있다는 뜻이잖아.

게다가 용은 가이딩을 받지 못하면 죽는 몸.

그러니까…….

‘내가 갑이네?’

그리고 저 광룡이 을이고?

……그럼 정말 남는 장사인데?

나는 생존과 평생직장에 대한 희망을 가득 품은 눈길로 광룡을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거대한 덩치의 을이 말했다.

[그대, 이름이 무엇이지?]

“정…….”

나는 반사적으로 ‘정해일입니다’라고 대답하려다가, 이 몸이 내 것이 아님을 간신히 떠올릴 수 있었다. 나는 큼큼 목을 가다듬는 시늉을 한 뒤, 다시 입을 열었다.

“……큼, 해일 트레클리프 서입니다. 편하게 해일이라고 불러 주세요.”

그 한마디를 입으로 내뱉는 순간, 새삼스럽게 완전히 다른 사람의 삶에 뛰어들었다는 실감이 들었다.

어쩐지 낯설고 찝찝한 느낌이었다.

광룡은 그런 나를 몇 초간 빤히 내려다보더니, 이내 제법 차분해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는 칼서스 데포트. 데포트 산맥의 주인이었던 자다.]

나는 반사적으로 질문을 던졌다.

“뭐라고 불러 드리면 될까요?”

[편한 쪽으로 불러라.]

……진짜지?

네가 그렇게 말했다? 편하게 부르라고 했다?

나는 뻔뻔한 낯짝을 하고 말했다.

“좋아요. 그럼 저도 공평하게 칼서스라고 부를게요.”

[…….]

“……편하게 부르라면서요.”

[…….]

파충류의 이목구비가 기묘하게 일그러졌다. 조금 가소로워하는 것 같기도 하고, 황당해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니까, 저 표정은…… 내 제안이 싫다는 뜻 맞지?

이 새끼 호불호 한번 확실하네.

‘을 주제에!’

……물론 계약서상에 을로 적혔더라도 권리를 보장받는 게 당연하긴 해! 대한민국은 헌법의 수호 아래 지어진 민주주의 국가니까!

물론 여긴 대한민국이 아니라 아르테스 제국이지만! 정해일이었던 나는 민주주의 국가의 시민이었잖아?

‘후, 마음을 너그럽게 쓰자. 정해일! 너는 악덕 사장 같은 쓰레기가 아니잖아?!’

그러니까 대한민국의 현행법상, 을의 권리를 보장해 주는 거야! 쫄아서 이런 핑계를 대는 게 아니고, 그냥 정말 그게 팩트니까 해 주는 거라고!

……진짜로!

나는 한참이나 눈을 굴리며 생각을 하다가, 뚱해진 표정으로 꿍얼거렸다.

“그럼 저보다 연상이시니까, ‘칼서스 씨’는 어떠세요?”

[나쁘지 않군.]

광룡은 내가 새롭게 제안한 호칭이 마음에 들었는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우리는 조금 삐거덕거리는 형태로 공생 관계를 맺게 되었다.

나중에 전해 듣기론, 인간과 용 사이에선 처음으로 벌어진 일이었다는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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