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나 정해일은…….
학생 때부터 친구들과 어울리는 대신에, 인터넷으로 연재되는 웬 소설이나 읽으며 음침하게 사이버-반찬 투정이나 하고 다니던 놈이었다.
물론 그게 남에게 욕을 하고 다녔다는 뜻은 아니다. 그냥 ‘작가님 여기 캐붕 났어요’라고 툴툴대는 정도에 그치는 게 대부분이었다.
왜냐면, ‘까탈스러운 취향’이라는 문제점을 갖고 있는 건 나였으니까!
나 말고 재미있게 소설을 읽고 있는 사람이 많은데, 거기서 분탕을 쳐서 얻을 게 뭐가 있겠는가.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절에다가 불을 지르지는 않잖아?’
하여튼, 이 사이버-반찬 투정이라 부르는 취미는 내가 서른이 되어 취업을 하고, 안정적으로 직장을 다니던 어제까지도 이어져 왔다. 이 취미는 이제는 거의 일상의 한 부분이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어제는 <광룡 살해자>라는 웹소설 댓글 창에 대고…… 잘 나가다가 왜 이렇게 급하게 엔딩을 내 버렸느냐고 툴툴댔었지.’
그래. 어제까지는 그랬다.
어제까지는!
‘이게…… 뭐야……?’
그런데 자고 일어나니 왜 이런 풍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는 걸까.
내가 입고 있는 이 플레이트 아머는 무엇이고, 내 손에 들려 있는, 분명 누군가가 애지중지 던전을 클리어해 가며 얻었을 ‘성검’은 또 무엇이며…….
[미욱한 인간이여. 그대에게 영광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주겠노라.]
눈앞에 보이는 저 거대한 드래곤.
아니, 광룡(狂龍)은 대체 뭐란 말이냐.
[부디 나를 죽여 다오.]
근데 이 새끼 진짜 미쳤나 봐.
왜 자길 죽여 달라는 거지?
자살이 하고 싶어졌다면, 나 같은 선량한 시민한테 이러지 말고 조속히 정신 병원에 가는 걸 추천드립니다, 이 미친 도마뱀 새끼야.
1.
뭐 이런 거지 같은 경우가 다 있어? (1)
<광룡 살해자>는 이 시대에 보기 드문 정통 판타지 세계관을 가진 소설이었다.
주인공인 ‘해일 트레클리프 서’는 전설적인 기사인 ‘가일 트레클리프 딘’의 아들로, 아버지의 재능을 물려받아 훌륭한 기사로 자란 녀석이었고, 많은 동료들에게 신뢰받는 성장형 먼치킨 주인공에 해당했다.
‘쉽게 말하자면 재능이랑 혈통 둘 다 타고난 케이스란 거지.’
참고로 성씨가 트레클리프고, 뒤에 붙는 서나 딘의 경우엔 기사들끼리의 항렬자와 비슷했다.
한국에서 자식에게 항렬을 따라서 소윤, 소명 이런 식으로 이름을 지어 주는 거라고나 할까.
‘누가 선배이고 누가 후배인지, 이름만 들어도 알아들을 수 있게 해 두는 거라고 했지.’
기사 서임식 때 황제에게 새로 부여받는 이름인 만큼, 공로를 세워서 얻는 미들 네임과 다르게 성씨보다 더 뒤에 표기하는 것이라던가.
하여튼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면, 내가 처음 이 소설에 흥미가 생긴 건, 주인공의 이름이 나와 같기 때문이었다. 판타지 소설답지 않은 ‘해일’이라는 동양적인 이름은 많은 독자들에게 친근함을 불러일으켰다.
그 증거로 1화 댓글란엔 ‘내 친구 이름이 해일이라 들어와 봄’, ‘헐 우리 오빠 이름인데.’ 같은 댓글이 가득했더랬다.
나도 그 많은 독자들처럼, 그런 독특한 점에 이끌려 그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심지어 <광룡 살해자>는 제법 재미있는 소설이었다.
<용과 인간의 싸움>이라는 주제는 90년대 판타지 소설의 전형적인 클리셰를 따랐으나…….
주인공인 해일의 시원시원한 성격과 깔끔한 전개, 그리고 작가의 훌륭한 필력은 그 클리셰를 ‘유니크한 매력’으로 탈바꿈시켰다.
소설 취향이 까탈스럽다 못해 극성맞고 지랄 맞기까지 한 내가 실시간 연재를 쭉 따라갈 만큼!
그 소설은 정말로…… 재미있었다.
하지만 완결에 다다라서 작가에게 무슨 심경의 변화가 생기기라도 했던 걸까? 작가는…… 사람들이 그렇게 고대하고 또 고대하던 엔딩을 장대하게 망쳐 버리는 실수를 저질렀다.
힘겹게 던전을 뚫고 둥지에 침입하는 데 성공한 주인공이, 한 페이지 뒤에 광룡의 마나 하트를 들고 되돌아 나와 버린 것이다.
그러니까, 최종 보스와의 싸움이 아예 통째로 삭제된 셈이었다.
당연히 글을 잘 읽던 독자들은 기대했던 만큼 실망했고, 실망한 만큼 미친 듯이 댓글로 분풀이를 해 댔다.
-잘 나가다가 왜 이러세요, 작가님. 이거 그런 양산형 먼치킨 소설 아니었잖아요.
-양산형 먼치킨 소설도 이렇게까지 전투를 생략하지는 않아요 시1발.
-작가님 출판사랑 싸우셨어요ㅠㅠㅠㅠ?? 엔딩이 왜 이래요ㅠㅠㅠ???
-요즘 같은 시기에 출판사랑 싸웠다고 이렇게 개같이 멸망한 엔딩을 내겠냐??
-욕하지 마세요, 시발.
-너도 욕하고 계시잖아요. 미친놈아.
흥분한 사람들이 마구 뒤엉킨 탓에 댓글들은 그야말로 폭주 상태였다.
물론 나도 그 폭주한 인간들 중 한 명이었다.
-작가님 힘드셨으면 말씀을 해주시지…….
-이러실 거면 차라리 다른 사람한테 엔딩을 토스하셨어야 했던 거 아닌가요.
-이 소설 읽는 사람 아무나 잡아다가 써도 이거보단 나았을 것 같은데.
아, 내가 소설 읽은 짬이 있지! 내가 써도 이것보단 흥미진진한 엔딩이 나오겠다!
……라는, 축구 경기 보면서 주둥이만 나불거리는 아재1의 심정으로 남긴 댓글이었다.
‘……그게 원인이었을까?’
나는 이 광룡, 칼서스 데포트와 결전을 치루기 직전의 해일에게 빙의해 버리고야 말았다.
* * *
잠에 들었다가 알람을 듣고 깬 줄로만 알았는데. 눈을 떠 보니 기괴하게 생긴 동굴의 안이었다. 마치 어떠한 생명체가 굴로 쓰기 위해서 바닥은 평평하게, 천장은 둥그렇게 파낸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쓰읍, 이거 어째 광룡 살해자에서 묘사한 광룡의 둥지 같은데.’
……어제 너무 개같이 멸망한 엔딩을 읽고 잠들어서 그런가?
내가 꿈에서까지 이런 광경을 보는 걸 보면, 어지간히 그 작품을 재미있게 보긴 했나 보네.
‘하, 제발 단행본으로 출간될 때는 엔딩 리뉴얼 되게 해 주세요. 제발…….’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아직도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했다.
……들고 있던 성검을 떨어트려서 발등을 찍기 전까지는.
“우왓!”
묵직한 철검이 발등을 찍자, 발이 두 쪽으로 갈라지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나는 볼품없는 비명을 내지르며 한 발을 붙잡고 제자리에서 통통 튀었다. 그러고 나니 온몸에서 철갑이 부딪치는 ‘철컥철컥’ 소리가 났다.
‘……플레이트 아머?’
번쩍이는 은빛의 갑옷에는 미미하게 푸른빛이 감돌았다. 소설 안에서 읽었던, 해일이 언제나 입고 다니는 드워프제 플레이트 아머와 정확하게 일치하는 모습이었다.
“…….”
시발, 설마?
설마? 이거 현실이야?
꿈이 아니고?
이쯤 되니 슬슬 현실감이 몰려왔다.
거기에 종지부를 찍은 것이 광룡의 등장이었다.
[인간인가.]
투명화 마법이라도 걸려 있었던 건지, 광룡은 한순간에 모습을 드러냈다.
거대한 둥지를 꽉 채울 정도로 거대한 몸뚱이와 인간보다 거대한 머리통. 빛조차 그 앞에서는 찬란함을 잃을 것 같은 새카만 비늘은 은은한 광택을 가졌고, 그에 대비되는 샛노란 눈동자는 소름 끼쳤다.
다시금 광룡의 목소리가 울렸다.
[미욱한 인간이여. 그대에게 영광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주겠노라.]
광룡은 그렇게 말한 뒤, 거대한 머리통을 내 가슴 앞까지 들이밀었다.
가까이서 본 파충류의 눈동자는 지나치게 징그러웠고, 너무나도 거대해서 두렵기까지 했다.
그런데, 그 새끼가 내뱉은 한마디가 가관이었다.
[부디 나를 죽여 다오.]
그렇게 말한 광룡은 조신하게 내 앞에 고개를 내밀고, 거대한 눈을 살포시 감아 주기까지 했다.
꼭 곧 떨어질 기요틴의 칼날을 기다리던 프랑스의 귀족들처럼.
‘……뭐라는 거야, 미친 새끼가.’
저기요, 저 아세요? 저한테 왜 이러세요?
왜 갑자기 날더러 죽여 달래?!
거기까지 생각한 순간, 나는 광룡 살해자 속의 해일이 단 1페이지 만에 광룡을 잡고 둥지에서 빠져나온 이유를 깨닫고야 말았다.
‘시발, 드래곤이 자진해서 모가지를 내밀었던 거구나!’
아니…….
아니 죽고 싶어졌으면 빠르게 정신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던가 해야 할 거 아냐! 뭐 이런 식으로 자살하려는 새끼가 다 있어?!
‘미친 새끼야, 죽고 싶어졌으면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으시길 바랍니다.’
국번 없이 1577-0199를 누르시면 상담 센터로 연결되……지 않겠구나, 여긴 한국이 아니니까.
‘그래도 남한테 죽여 달라는 건 좀…….’
하지만 나는 어디까지나 사이버 세상의 전사였던 모양이다. 머리로는 시원스러운 대답이 술술 떠오르는데, 주둥이는 생각만큼 나불나불 잘 움직여 주지 않았다.
결국 내가 꺼낸 건 이 한마디였다.
“어, 어어…… 씨발, 생명은 소, 소중한 거예요.”
나는 그날 없는 가오를 잃어버렸다.
없는 걸 어떻게 잃어버리느냐고 하지는 말아 줬으면 좋겠다. 가끔 그런 일이 생길 수도 있지…….
여하튼, 광룡은 내가 내뱉은 말을 듣고는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그놈이 뿜은 콧김이 플레이트 아머를 뚫고 뜨겁게 불어 닥쳤다.
“와, 와악, 왁!”
[생명이 소중하다? 그런 소리를 하는 인간은 또 처음 봤군.]
광룡이 드밀었던 모가지를 회수하며 말했다.
[그런 소리를 할 거였으면, 세계수가 파괴되던 20년 전에나 했어야 했다.]
“…….”
[그대는 나를 능멸하려 하는가.]
광룡이 분노한 것처럼 그르렁거리던 순간, 나는 스스로의 죽음을 예감하고 눈을 질끈 감았다.
‘……난 뒈졌구나.’
꽃다운 이립(而立)의 나이에 미친 도마뱀 새끼의 간식이 되어 뒈질 줄은 몰랐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열심히 살지 말걸……. 괜히 열심히 살아서 억울한 마음으로 죽게 생겼네. 나는 통탄해하며 한 줄기 눈물을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