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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돌의 공식 수가 되겠습니다-140화 (142/143)

망돌의 공식 수가 되겠습니다 140화

수겸은 민망함에 콧잔등을 쓸었다. 다른 멤버들은 이렇게 입고 있지 않은데 혼자 맨살이 훤히 보이는 옷을 입고 있으려니 견딜 수 없이 부끄러웠다. 수겸은 붉어진 얼굴로 멤버들의 눈치를 살폈다.

그런데 멤버들의 눈빛이 어딘지 이상했다. 수상하다고 해야 할지, 위험하다고 해야 할지……. 아무튼 예감이 영 좋지 않았다.

“누나, 괜찮아요?”

수겸은 애써 멤버들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송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송화가 어딘지 불만스러운 표정이었다.

“왜 그래요?”

“좀 더 벌어졌으면 좋겠는데. 해보자.”

“여기서 더요?”

“기왕 보여주는 거 제대로 보여줘야지.”

기겁하는 수겸의 반응에도 송화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열의 넘치는 말과 함께 수겸에게 다가왔다. 그러더니 셔츠의 옆구리 쪽을 양쪽에서 쥐어 당겼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셔츠가 더 벌어지며 맨살이 더 드러났다.

“누, 누나……. 너, 너무 벌어지는데…….”

“괜찮아, 괜찮아. 수겸아, 지금 옆에 옷핀으로 고정해 뒀거든? 안무 좀 살살 해봐. 어디까지 벌어지나 보게.”

“이러고요?!”

“그럼. 그래야 옷을 얼마나 수선해야 할지 알지. 얘들아, 너네는 수겸이 좀 봐줘. 옷을 어떻게 하는 게 춤선이 더 예쁘게 사는지.”

안 그래도 부끄러워서 죽겠는데 송화는 옷을 더 틀 생각뿐인 것 같았다. 거기에 더해 다른 멤버들에게 잘 보라고 주목시키기까지 했다.

수겸은 뺨에 열이 오르는 걸 느끼면서도 송화의 말대로 가볍게 안무를 했다.

수겸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셔츠가 유두가 보일 듯 말 듯하게 벌어졌다. 멤버들의 시선이 끈적하게 달라붙는 걸 느끼며 수겸은 눈을 질끈 감았다.

“오우, 죽인다, 죽여. 이거거든. 그치, 얘들아. 너희가 보기에도 미치지? 아주 그냥 시선이 꽂히지?”

송화는 만족스러운지 짝짝 소리가 나도록 박수를 쳤다.

수겸은 힐끔 멤버들을 돌아보았다가 흠칫 놀라 얼른 시선을 피했다. 시선만으로 잡아먹히는 기분이 들 수 있다는 걸 처음 안 탓이었다.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 수겸은 때아닌 방문객에 놀라 몸을 움츠렸다. 헐벗은 몸을 보여주기에 민망해서였다.

“준비 잘되고 있…… 어? 아, 의상 피팅 중이었네.”

방문객은 선욱이었다. 선욱은 수겸의 의상을 보고 놀란 듯하더니, 이내 상황을 파악한 듯 말했다. 그러곤 수겸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수겸은 타는 듯이 빨갛게 익은 얼굴을 손등으로 숨겼다.

“아, 안녕하세요, 이사님…….”

아무리 부끄러워도 이사님에게 인사는 해야 했기에 수겸은 수줍게 인사를 건넸다.

어색한 공기가 감돌려는 찰나, 송화가 환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사님, 이사님도 한번 봐주세요. 수겸이 안무하는데 난리 나요, 아주. 수겸아, 보여 드려.”

수겸은 송화를 만난 후 거의 처음으로 그녀가 원망스러웠다. 물론 악의는 없다지만, 왜 이리 부끄러운 걸 시키는지 모르겠다.

수겸은 내심 송화를 원망하면서도, 선욱이 볼 수 있도록 간단한 안무 동작을 했다. 수겸이 움직일 때마다 진분홍빛의 유두가 아슬아슬하게 보일락 말락 했다.

“송화 씨, 좋긴 한데…… 너무 선정적이지 않을까요?”

“에이, 선정적이라뇨. 콘서트잖아요. 이러고 음방을 나가면 좀 논란이 될 수도 있는데, 원래 콘서트에서는 상탈이 국룰 아닙니까! 나중에 앵콜 무대 할 때는 서로 벗기고 난리일 텐데, 그거 감안하면 이 정도는 뭐……. 물론 아예 벗는 것보다 보일 듯 말 듯한 그 포인트가 야릇하긴 한데, 원래 그런 거잖아요!”

송화는 적극적으로 선욱을 납득시키려 했다. 그러나 선욱은 송화의 말에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고 굳은 표정으로 수겸을 바라볼 뿐이었다.

수겸은 그 시선에 더욱 민망해지는 기분이라 벌어진 가슴을 가리려 두 팔을 가슴 위에 교차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다섯 남자의 시선은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수겸은 왠지 등줄기가 오싹해지는 기분이라 마른침을 삼켰다.

* * *

콘서트 날짜는 무섭게 다가왔다. 쏜 화살처럼 시간은 거침없이 지나갔고 마침내 콘서트 날짜가 되었다.

콘서트 전날까지도 유피트는 자정까지 마지막 연습을 했다. 더 늦게까지 연습하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다음날 콘서트에 좋은 컨디션으로 가는 게 중요하다 보니, 비교적 일찍 헤어졌다.

하지만 이르게 헤어진 것이 무색하게도 수겸은 떨리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새벽녘이 다 되어서야 겨우 잠들 수 있었다.

설렘에 약간의 몽롱함이 더해지자, 수겸은 말 그대로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 밴까지 가는 길이 폭신폭신 솜 위를 걷는 것 같았다.

“수겸아, 잘 잤어?”

“헤헤, 아뇨.”

“그런 것 같다. 이따 안 피곤하겠어?”

“그럼요! 이렇게 힘이 넘치는걸요!”

밴에 오르자 민성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나 수겸은 약간 몽롱할 뿐, 기분은 좋고 기운은 넘쳤다. 수많은 팬을 만난다는 생각에 가슴은 끝을 모르고 부풀어갔다.

"이거 마셔."

그때 먼저 밴에 와 있던 이겸이 텀블러를 건넸다.

“이게 뭔데?”

“미숫가루.”

“완전 좋아!”

이겸이 건네는 미숫가루를 받아 든 수겸이 행복에 겨운 소리를 냈다. 달콤하면서도 고소한 미숫가루를 한입 가득 마시니, 몽롱했던 정신이 맑아지는 것 같았다. 수겸은 기뻐하며 남은 미숫가루를 단숨에 비웠다.

그러는 사이 태원과 한솔, 유찬까지 모두 밴에 올랐다. 전원이 모인 유피트는 콘서트장으로 향했다.

수겸은 오늘 노래할 곡의 가사를 혹시나 까먹을세라 모두 휴대폰 메모장에 옮겨둔 참이었다. 이렇게 많은 곡을 한 번에 불러본 적이 없으니 자신들의 노래라고 하더라도 헷갈릴 것 같아서였다. 메모장을 연 수겸은 수백 번은 본 것 같은 가사를 입으로 빠르게 외웠다.

수겸뿐만이 아니었다. 태원은 동영상을 찍어두었던 안무 영상을 보며 안무를 한 번씩 더 숙지했고, 유찬과 한솔은 콘서트 순서를 확인했다. 이겸 역시 수겸처럼 가사를 외웠다.

“다들 열심이네. 너네 그러고 있는 거 보니까 나도 떨린다.”

“…….”

“아무도 대답을 안 하는 것 보니 정말 열심이구나. 알았어. 나도 이만 입 다물게.”

민성은 혼자 주절거리다가 씁쓸하게 웃으며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유피트를 태운 밴은 조용히 도로를 달렸다.

* * *

콘서트장에 도착한 유피트는 곧장 무대를 확인하러 갔다. 이미 어제 들러서 무대에서 리허설을 해보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워낙 큰 무대를 여러 곡으로 채워야 하다 보니, 좀처럼 몸에 익지가 않아서였다.

“여기서 나랑 태원이 형이 앞으로 빠지는 거 맞지?”

수겸은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 물어보았다. 멤버별로, 그리고 곡별로 좌측, 우측으로 갈라지는 게 달랐다. 외워도 외워도 헷갈렸다. 그런 와중에 가사까지 여러 곡이다 보니 머릿속이 뒤죽박죽이었다. 잘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맞아요. 형이 그쪽으로 가고 2절 후렴부에서는 중간에서 만나서 안무 들어가요.”

“고마워, 유찬아. 하아. 어렵다, 진짜.”

유찬의 대답에 수겸은 감사 인사를 하면서도 정신은 없었다.

이제까지 음악 방송 무대를 할 때면 쭉 안무를 하면서 노래를 부르면 되었다.

하지만 콘서트는 노래를 하면서 사방으로 헤어져서 팬 서비스를 하다가 다시 모여서 안무를 해야 했다. 그것도 한두 곡만 그러면 되는 게 아니라, 거의 스무 곡을 그렇게 해야 하니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

“잘할 수 있겠지…….”

“그럼. 형은 늘 잘 해냈잖아. 그리고 막말로 실수해도 즐겁게 하자. 팬분들도 그걸 바라실 거야.”

수겸이 우는소리를 하자, 한솔이 수겸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그의 위로로 걱정이 다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안심이 되기는 했다.

물론 잘하고 싶은 욕심이야 왜 없겠는가. 하지만 너무 잘하려고, 틀리지 않으려고 하다가 팬들과 함께하는 첫 콘서트를 하나도 즐기지 못한다면 그건 그거대로 문제였다.

“맞아, 한솔이 말이 맞아. 우리 정말 즐겁게 해보자.”

태원이 한솔의 말에 맞장구를 치면서 멤버들에게 기운을 북돋아주었다. 수겸은 그 말을 가슴에 새기며 중얼거렸다.

“그래, 즐겁게 하자. 즐겁게.”

그런 수겸을 본 태원이 장하다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수겸은 다정한 손길에 긴장을 풀고 환하게 웃었다.

“모여봐. 말 나온 김에 파이팅 한 번만 하자.”

태원의 말에 수겸을 비롯한 멤버들이 하나둘 모였다. 그들은 객석이 차지 않은 콘서트장 무대 위에서 손을 하나로 겹쳐 모았다.

“What’s this planet?”

“안녕하세요, 우리는 유피트입니다!”

평소보다 배는 우렁찬 태원의 선창을 따라 멤버들이 후창을 했다. 이제 정말 유피트의 첫 콘서트가 코앞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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