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돌의 공식 수가 되겠습니다-139화 (141/143)

망돌의 공식 수가 되겠습니다 139화

뫼비우스의 띠처럼 끝없이 이어지는 토론에 수겸은 영혼 없는 표정으로 ‘네 말도 옳다’, ‘과연 그대의 말도 옳다’ 하고 있었다.

자신은 누구와 해도 좋기 때문에 누가 유닛 파트너가 되듯 상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냥 얼른 이 긴 회의가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수겸아, 네 생각은 어때?”

“어?”

태원의 물음에 손으로 입을 가리고 하품을 하던 수겸은 흠칫 놀랐다.

그는 얼른 눈동자에 영혼을 넣고 멤버들을 한 명씩 돌아보았다. 네 사람 모두 마치 수겸의 간택을 기다리는 후궁들처럼 수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빛들에 당황한 수겸이 할 말을 잃고 ‘어, 어……’ 하고 말끝을 흐렸다.

“맞아, 이건 형이 결정할 문제야.”

“내, 내가……?”

한솔의 말에 수겸은 마른침을 삼켰다. 멤버들의 눈빛은 또 왜 이렇게 간절한지, 이 중에서 누구도 고르기 힘들 것 같았다.

수겸은 유닛 파트너를 고르는 건 빠르게 포기하고, 커다란 눈알을 굴리며 이 상황에서 빠져나갈 방법을 궁리했다.

그때 수겸을 구원해 줄 한 줄기 빛이 나타났다. 문에서 노크 소리가 난 탓이었다.

문이 열리고 들어온 사람은 다름 아닌 간식거리를 사 들고 회의실에 들른 선욱이었다.

“헉, 이사님!”

유피트 멤버들은 벌떡 일어나 인사를 했다. 선욱은 다정하게 웃으며 사 온 간식거리를 커다란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수겸은 얼핏 보이는 아이스 초코에 눈독을 들였다. 멤버들이 아이스 초코를 먹기 전에 먼저 골라야겠다는 생각만으로 가득 찼다. 물론 수겸이 걱정할 것도 없이 이미 멤버들은 당연히 아이스 초코는 수겸의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회의는 잘 되어가?”

“유닛 멤버 짜고 있었어요.”

선욱의 물음에 이겸이 담담하게 대꾸했다.

선욱은 ‘아, 유닛. 그렇지 콘서트에서 그건 아주 중요하지’ 하고 끄덕였다. 그러더니 멤버들을 둘러보며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되어가?”

“…….”

일동 침묵이 이어졌다. 수겸은 ‘진전이 하나도 없습니다’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걸 억지로 참으며 어색하게 웃었다.

“아, 아직 못 정했구나?”

선욱은 귀신같이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했다. 수겸은 저런 게 바로 연륜인가 싶어 내심 감탄했다. 그러는 사이 선욱은 유피트 멤버들을 한 명씩 차분히 보더니 입을 열었다.

“이겸이랑 한솔이가 같이하고, 태원이랑 유찬이가 같이하고, 수겸이는 솔로 하면 되겠네.”

“네? 어째서…….”

유찬이 그답지 않게 선욱의 말에 토를 달았다. 어지간히 당황스러운 모양이었다.

물론 수겸 역시 당황스럽기는 매한가지였다. 솔로 무대를 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겸이랑 태원이 조합은 팬들 사이에서 수요가 잘 없잖아. 그러니까 둘을 붙여놓을 수는 없고. 또 태원이랑 유찬이는 팀 내 제일 형이랑 막내 조합이라는 포인트가 있으니까 두 사람 붙여놓고. 그럼 자연스럽게 이겸이랑 한솔이가 같이하게 되는 거지.”

“저, 저는요……?”

선욱의 말에는 일리가 있었다. 나름대로 합리적으로 유닛을 짰다는 건 알겠다.

문제는 수겸이었다. 갑자기 솔로 무대를 하게 된 수겸은 어리벙벙할 뿐이었다.

“수겸이는 어차피 솔로 활동도 할 거니까, 사전 연습이라고 생각해. 팬들한테도 복선 까는 거지.”

“아…….”

반박할 수 없는 말에 수겸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멤버들 역시 불만이 가득한 표정이었지만, 상대가 감히 이사님인 데다가 어쨌든 이유가 있는 팀 배분이었기 때문에 뭐라 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그럼 문제는 해결된 모양이네? 어떤 무대 꾸밀지는 이제 고민하면 되고.”

선욱은 여유롭게 웃었다. 수겸은 어찌 되었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맞으니 고개를 끄덕거리며 아이스 초코에 빨대를 꽂아 쪽쪽 빨아 먹었다.

“유닛 배분 이렇게 됐으니까, 재진이한테 말하고 노래 달라고 해.”

“넵.”

수겸은 혼자서 무대를 채울 생각에 걱정이 앞서기는 했다. 다섯 명이 서던 무대를 혼자 장악하려면 그룹 활동을 할 때보다 훨씬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했다. 과연 혼자서 잘 해낼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일단 곡이 나와야 고민을 해도 할 수 있을 터였다. 수겸은 밀려드는 복잡한 마음을 애써 추슬렀다.

* * *

술술 시간은 잘도 흘러갔다. 그사이 유피트 멤버들은 유닛 활동 곡과 솔로 곡을 재진에게 받았다.

유닛 활동 곡과 솔로 곡은 디지털 음원으로 콘서트 전날 자정에 음원 사이트에서 공개될 예정이라고 했다. 팬들이라면 하루면 음원을 집중적으로 듣고 콘서트에서 따라 부를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소속사의 의견이었다.

의상 콘셉트도 하나둘 무대에 맞게 정해져 갔다. 콘서트 무대에 맞게 어느 곡을 본무대에서 할 것이며, 어느 무대를 스탠딩 무대에서 할 것인지 차근차근 정해 나갔다.

다행인 건 처음 유닛 파트너를 정하는 것 이후로는 딱히 막히거나 답답한 부분이 없이 진전되어 갔다는 점이다.

그렇게 회의에서 정할 부분을 정리하고 나서는 무한 연습에 돌입했다.

안무가 없던 수록곡들도 무대를 하면서 안무가 필요하게 된 경우가 있어서, 새로 안무를 연습해야 할 곡이 수두룩했다.

콘서트에 맞게 곡을 편곡하면서 달라진 점에 대해서도 숙지해야 했다. 유닛 곡과 솔로 곡을 녹음하는 것도 뺄 수 없었다.

당연히 콘서트를 하면 준비할 거리가 많을 것이라고 어렴풋이 생각하기는 했다. 하지만 막상 피부로 느껴보는 것과 머리로만 알고 있던 것은 차원이 달랐다.

수겸은 반쯤 넋이 나간 채로 방대하게 쏟아지는 정보를 습득하며, 그것을 제 것으로 만들기 위한 연습에 몰두했다.

* * *

그렇게 하루 이틀 흘러가던 어느 날이었다.

“옷이…… 옷이 왜 이렇게 휑해요? 천이 없었나……?”

“요즘은 이런 게 유행이야.”

“아, 독기룩이요?”

“어, 그래.”

송화의 말에 수겸은 미심쩍다는 듯한 눈으로 송화가 가져온 의상들을 살펴보았다.

그동안 회의 때는 의상 콘셉트를 잡아놓기만 했다. 그걸 실제로 구현해 낸 의상을 보는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이거 망사 아니에요?”

“응, 맞아.”

수겸은 정말 말 그대로 독기가 가득한 의상들을 하나씩 보며 혀를 내둘렀다.

그러다 수겸은 그중 자신의 솔로 무대 의상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누나, 옷이…… 이게 맞아요?”

“왜? 문제 있어?”

송화가 커다래진 눈으로 걱정스럽게 물었다. 수겸은 옷을 물끄러미 보다가 들어서 송화에게 내밀었다.

“셔츠 단추가 맨 위에 하나만 있어요. 밑에는 단추가 안 달려 있는데요?”

“아, 맞아. 원래 그런 옷이야.”

“네?!”

이 당혹감이 가득 서린 대답은 수겸이 한 것이 아니었다. 수겸이 놀라서 입을 쩍 벌린 사이, 수겸을 제외한 네 명의 유피트 멤버들이 되물은 것이었다.

태원은 믿을 수 없다는 성난 걸음으로 와서 수겸의 의상을 확인했다.

수겸이 입어야 할 셔츠는 맨 위에 단추만 하나 있을 뿐, 아래는 단추가 하나도 없었다. 이대로 춤을 춘다면 셔츠가 있는 대로 벌어지며 온 상체가 다 보일 판이었다.

“이, 이걸 어떻게 입어요?!”

“야, 요즘은 다 이렇게 입어. 하여간, 어린애들이 나보다 보수적이야.”

수겸의 물음에 송화는 아무렇지 않은 듯 담담하게 대꾸했다. 수겸은 이 옷을 입고 있을 자신을 생각하니 벌써 민망해서 얼굴이 붉어졌다.

“태원이는 속에 안 입고 재킷만 입을 거야. 당연히 재킷 단추는 없어. 너는 양반이야.”

“그야 태원이 형은 몸이 좋잖아요!”

“수겸아, 세상에는 태원이 같은 몸을 원하는 수요도 있지만, 너 같은 몸도 수요가 있어. 그리고 널 좋아하시는 분들은 네 몸을 예뻐라 하신단다.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청산유수처럼 막힘 없이 줄줄 이어지는 송화의 화려한 언변에 수겸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렇다면…… 입어야지, 별수 있나.

수요가 있다면 공급을 해드려야 하는 게 아이돌 세계에서는 인지상정이었다. 수겸은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말 나온 김에 한번 입어봐.”

“지금요?”

“그럼 피팅 한번 보고 수선할 곳 있으면 해야지. 오늘 아니면 못 해. 너희 콘서트 일주일도 안 남았어. 수겸이 너부터 입어봐. 다른 애들은 잠깐 기다려 봐. 나 멀티 안 되니까, 수겸이 옷부터 처리하고 하자.”

송화의 말에 수겸은 주뼛거리며 옷을 가지고 옆방으로 이동했다.

제일 민망한 것은 솔로 무대 의상이었지만, 사실 다른 무대 의상도 꽤 독기가 가득했다.

수겸은 민망함에 콧잔등을 쓸며 단추가 맨 위에 하나만 있는 셔츠부터 입었다. 단순히 단추가 하나만 있는 게 아니라, 디자인 자체가 아래로 갈수록 더 벌어지게 만들어진 옷이라 가만히 있어도 가슴팍부터 아랫배까지 훤히 트였다.

옷을 갈아입은 수겸이 주뼛거리며 멤버들과 송화가 있는 방으로 돌아갔다.

“저…… 갈아입었어요.”

수겸의 말과 동시에 형형한 눈빛이 일시에 수겸에게로 쏠렸다.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