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돌의 공식 수가 되겠습니다 134화
“1위 하고 싶어요. 그래서 음악방송 1위 트로피 갖고 싶어요.”
수겸이 부끄러운 듯, 그러나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수겸에게는 정말 음악방송 1위 트로피가 간절했다.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건 알지만, 또 누군가는 데뷔하고 1년 만에 30개가 넘는 트로피를 받았다는 기사를 보았다.
아무렇지 않은 척 기사를 껐지만, 사실 수겸의 가슴에는 그게 퍽 깊이 박혀 있었다.
“1위 트로피라…….”
선욱이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수겸이 원하는 것이라면 다 해줄 의향이 있었다. 그런데 그가 원하는 것은 선욱의 힘만으로는 해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마음이 복잡한 것은 선욱뿐만이 아니었다. 수겸을 제외한 유피트의 멤버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간 수겸이 순위에 큰 욕심을 내는 모습을 보이거나, 1위가 하고 싶다거나 하는 등의 말을 한 적이 없기 때문에, 그가 이렇게까지 성적에 욕심을 내고 있다는 것을 미처 몰랐다.
수겸이 원하는 것을 해주고 싶은 마음은 모두가 다 같았다. 그리고 그 마음이 간절한 만큼, 반대로 무조건 해줄 수 있다고 할 수 없는 지금의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참담했다.
“……하면 되지, 1위.”
침묵을 깬 이는 태원이었다. 그의 말에 수겸이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다가 이내 새물거리며 웃었다.
“맞아, 하면 돼.”
사실 수겸은 그저 저 말을 듣고 싶었던 것일지도 몰랐다. 어떠한 확답을 바란 것이 아니라, 마냥 꿈처럼만 느껴지던 걸 현실로 끌어올 수 있다는 누군가의 힘찬 위로가 필요했다. 그렇기에 수겸은 그 말을 해준 태원에게 너무나 고마웠다.
“응, 할 수 있어.”
“맞아, 이번에 우리 정말 열심히 준비하고 있잖아.”
“맞아요. 할 수 있어요.”
이어서 이겸과 한솔, 유찬까지 모두 한마음으로 말을 보탰다.
수겸은 가슴이 벅차올랐다.
내 꿈이, 나만의 꿈이 아니라는 게 위로가 되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이 바로 지금이었다.
수겸은 같은 꿈을 바라보고 함께 가는 이들이 있음에 감사했다. 그리고 그들이 더없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맞아. 충분히 할 수 있어.”
선욱까지 단호한 목소리로 덧붙이자, 수겸은 아직 하지도 않은 1위가 벌써 되기라도 한 듯 기뻤다. 그러면서 겨우 말 몇 마디 한 것만으로도 이렇게 행복한데 정말 그날이 오면 얼마나 행복할까 싶어 궁금하기도 하고 설레기도 했다.
* * *
며칠 뒤, 수겸은 말랑한 볼살을 꼬집었다. 얼얼함에 번쩍 정신이 들다가도 여전히 이게 꿈인 것만 같아서 커다란 눈을 끔뻑거리기에 바빴다.
“마음에 들어?”
선욱의 물음에 수겸은 그를 바라보았다. 다정하게 웃는 표정은 틀림없이 수겸이 알고 있는 선욱의 얼굴이 맞았다. 어딘지 모르게 야릇한 구석이 있는 목소리마저도 모두 그였다. 그러니 지금 이 상황도 현실일 터였다.
수겸은 조심스럽게 손을 앞으로 뻗어보았다.
매끈하고 단단한 촉감이 손끝으로 전해졌다. 그제야 수겸은 이게 정말 허상이 아니라 실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이게 뭐예요……?”
“사 준다고 했잖아, 빨간색으로.”
그제야 잊고 지냈던 기억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저는 언제쯤 이런 차 살 수 있을까 싶어서요.’
‘차 가지고 싶어?’
‘그건 아닌데……. 사실 타고 다닐 곳도 없기도 하고. 그치만 멋있잖아요.’
‘사 줄까?’
‘헉, 장난으로라도 그런 말 하시면 저 정말로 설레요. 그런 말 마세요.’
‘장난 아닌데.’
언젠가 선욱의 차를 타고 이동하던 날에 그의 차에 감탄하고 있으려니, 그가 차를 사 주겠다고 했던 기억 말이다.
그 당시에는 별생각 없이 넘긴 말이었다. 그런데 정말 눈앞에 있는 빨간색 자동차를 보고 있으려니 그의 말이 장난이 아니었다는 게 실감이 났다.
동그라미 네 개가 이어 붙은 자동차의 엠블럼은, 차를 잘 알지 못하는 수겸조차도 알고 있는 고급 외제 차 브랜드의 것이었다.
“그, 그런데 이거 너무 비싼 거 아니에요? 정말 제가 받아도 되는 거예요……?”
“그럼. 당연하지.”
선욱의 말에도 수겸은 차마 실감이 나지 않아, 감히 차를 타볼 생각은 하지 못한 채 차 주위만 뱅뱅 돌았다.
빨간색 SUV 차량은 비싸 보이는 것은 물론, 크기도 퍽 컸다.
“아무래도 초보일 때는 차체가 높은 게 운전하기 편해서 이걸로 골랐어. 나중에 운전 좀 익숙해지면 바꿔줄게.”
“헉, 아니에요, 아니에요! 이것만으로도 충분…… 아.”
“왜 그래?”
손사래까지 치며 다급하게 대답하던 수겸은 이내 무언가를 깨닫고는 짧은 감탄사를 흘렸다. 그러자 선욱이 의아한 표정으로 수겸을 바라보았다.
수겸은 발갛게 익은 뺨을 긁적거리며 민망한 듯 선뜻 입을 열지 못하고 우물쭈물했다.
예기치 못한 그 행동에 선욱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너무 부담스럽나, 마음에 들지 않나. 역시 스포츠카를 사 주는 편이 나았던 걸까 등등.
그리고 이어진 수겸에 말에 선욱은 그답지 않게 크게 당황하고 말았다.
“……있잖아요, 그게…… 저 면허가…… 없어요.”
“어?”
선욱의 눈에 동공 지진이 일어났다. 이건 정말 예상 밖이었다.
물론 지난번 버라이어티 촬영을 할 때 수겸이 불법 유턴을 하는 바람에 면허 시험에서 떨어진 것은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당연히 그 후에 면허를 땄을 것이라 짐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수겸 본인은 어차피 차도 없고, 운전할 일도 없으니 구태여 다시 면허 시험을 칠 생각 같은 건 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덜컥 차부터 생기고 말았다.
“어, 얼른 면허 딸게요…….”
“……그, 그래. 천천히 해.”
“그치만 얼른 운전하고 싶은걸요!”
수겸이 반짝 눈을 빛내며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자동차를 바라보았다. 슬슬 이 번쩍거리는 차가 제 것이라는 게 실감이 나기 시작한 탓이었다.
“알았어, 그럼 빨리 따자.”
선욱은 그런 수겸의 반응에 흡족해져서 번지는 웃음을 갈무리하며 대꾸했다. 그러자 수겸은 고개를 몇 번이나 크게 끄덕거렸다.
* * *
갑자기 생겨난 자동차 덕분에 수겸은 몇 배 더 바빠졌다. 컴백 준비를 하면서 운전면허 시험 준비에도 돌입해야 했다. 그사이 자동차 기본 조작법을 깔끔하게 잊어버린 터라, 너튜브를 보며 시험 준비를 했다.
그러는 사이 눈코 뜰 새 없이 시간이 지나갔고, 마침내 컴백이 코앞으로 다가오게 되었다.
더블 타이틀곡은 발라드곡인 과 빠른 댄스곡인 <예쁘잖아>로 결정되었다.
은 발라드곡이었지만, 아이돌인 유피트가 부르는 만큼 안무가 들어갔다. 스탠드 마이크를 활용한 안무가 주를 이루었다.
<예쁘잖아>는 아이디어 회의 때 나왔던 의견을 발전시켜서 스카프를 활용하는 안무였다.
안무가 나왔으니 곧바로 뮤직비디오 촬영에 돌입했다.
빠듯한 컴백 일정 탓에 두 곡의 뮤직비디오를 연달아 찍게 되었다. 덕분에 유피트는 무박 4일이라는 기적의 일정을 행하는 사람들이 되고 말았다.
“얘들아, 모여서 촬영 좀 할게.”
바쁜 촬영 와중에도 메이킹 필름을 찍어야 했기에 짬이 날 때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수겸은 몽롱한 정신으로 민성이 부르는 곳으로 향했다.
의 의상은 슈트 느낌이 물씬 났다. 뭐, 재킷 안에 셔츠를 입지 않는다는 점과 재킷 뒤태가 훤히 트여 있다는 점이 포인트였지만.
“누나, 아무리 그래도 수겸이는 안에 뭘 좀 입혀야 하지 않을까요?”
“그게 무슨 소리야? 수겸이만 입히면 이상하잖아. 그리고 저 하얀 가슴골 만천하에 보여줘야지.”
이겸이 불만스럽게 물었지만, 송화는 단칼에 거절했다. ‘저 하얀 가슴골을 만천하에 보여주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걸 송화는 도무지 인식하지 못하는 듯했다. 때문에 수겸을 제외한 멤버들은 내내 불만에 가득 차 있었다.
“너희는 이 예쁜 애를 혼자 보고 싶니? 세상과 공유해야지.”
“네, 혼자 보고 싶어요. 안 그래도 혼자 못 봐서 억울하거든요.”
“한솔이 네가 그렇게 말하니까 진짜 둘이 뭐라도 있는 것 같잖아. 스캔들은 수겸이랑 유찬이가 났는데 말이야.”
한솔이 투덜거렸지만, 송화는 킬킬 웃음을 터뜨리며 장난스럽게 대꾸할 뿐이었다.
스캔들 언급에 태원과 이겸, 한솔의 표정은 더욱 안 좋아졌지만 이 역시 송화는 멤버들이 피곤한 탓에 그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형, 담요라도 둘러요.”
유찬이가 어디서 구해 온 것인지 수겸 전용 핑크색 담요를 가져와서 수겸에게 둘러주었다. 그러자 송화는 유찬의 진심도 모르고 역시 열애설의 주인공답게 다정하다며 놀려대기 바빴다.
“자자, 그러면 메이킹 필름 촬영 들어가자.”
민성이 박수를 치며 주의를 집중시켰다.
그러자 내내 장난스럽게 굴던 송화가 재빨리 앵글에 잡히지 않는 곳으로 물러섰다.
마침내 카메라에 붉은빛이 들어오고, 촬영이 시작되었다.